가을날 - 릴케
by 송화은율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요점 정리
작자 : 릴케 (Rilke, Reiner Maria, 1875-1926)
형식 : 번역시는 자유시, 서정시
운율 : 번역시는 내재율
성격 : 종교적 형이상학에 기초를 둔 낭만적, 신비적, 종교적, 지성적
어조 : 경건한 기도조의 목소리.( 이 작품은 절대자를 청자로 하여 기도조로 노래하고 있다. 기도조는 절대자에 대한 겸양과 숭배의 정신을 바탕에 두고 형성되고 있다.)
심상 : 비유적, 상징적 심상이 사용됨. '해시계'는 계절을 '남국의 날(햇볕)'은 신의 은총을 비유했고,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징함.
특징 : 대조의 기법 [자연의 가을(자연의 성숙) ↔ 인간의 가을(성숙하지 못한 시적 자아)]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근원적이고 무거운 주제가 평이한 시어들을 통하여 차분하게 표현되고 있고, 경건한 기도조의 어조가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는 내용과 적절히 조화를 이룸.
제재 : 가을의 정감
주제 : 가을날에 느끼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 가을에 느끼는 서정으로 인간의 실존 깊숙이 자리잡은 근원적 고독, 신의 섭리와 인간의 근원적 고독에 대한 성찰, 또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성찰. 절대자의 자비를 기원함
구성
제1연 : 가을의 도래(해시계 : '계절'의 의미)
제2연 : 만물의 완전한 성숙의 기원
제3연 : 외롭고 쓸쓸한 가을, 고독한 자아 그리고 구원의 기도
시상의 전개 : 1연과 2연은 온갖 곡식과 과일이 익어 가는 가을의 맑고 풍성함을 노래하여, 외적으로 충실한 계절, 가을의 특성을 표현하였고, 3연은 낙엽이 뒹구는 가로수의 길을 방황하게 될 집없는 사람과 고독한 사람을 그려 가장 고독한 계절로서 가을의 특성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3연의 고독에는 비애, 절망 같은 감상이 배제되었다. 글을 읽고, 편지를 쓰고, 가로수 길을 낙엽과 함께 지니는 고독, 이러한 고독은 고독을 비관하는 사람의 고독이 아니라 고독을 수용하는 사람의 고독이다. 오히려 내적 충실을 위하여 고독을 희구하는 사람의 고독이다.
이 시는 가을의 풍성함과 쓸쓸함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시인은 오히려 쓸쓸함과 고독 속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진정한 고독의 체험을 가진 자만이 신과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방황과 실존적인 불안조차 긍정하는 것이다.
내용 연구
주여(릴케가 생각한 신은 주 예수를 향한 믿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충실함으로써 얻어지는 범신론적인 것이었다. 그의 시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끊임없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때[결실과 완성의 시기]가 왔습니다[가을이 온 것에 대한 깨달음의 표현. 작가는 만상(萬象) 속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언제나 몸 가까이 있는 신을 느끼고 있다. 여기서 '때'는 결실(結實) 또는 완성의 계절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지난 여름[성장의 시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만물을 성숙하게 한 신의 조화에 대한 경탄. 만물을 성숙하게 한 긴 여름 동안의 당신의 은총은 위대하였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신의 섭리] 위에 얹으시고[해 시계는 규칙적으로 회전하는 태양을 비유한 말로, 자연의 질서 있는 순환에 신의 섭리가 작용함을 뜻함. 또는 이제 서늘한 그늘을 주십시오. 서늘한 가을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 신에의 찬송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만물을 완전히 영글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성숙'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기원이 드러나 있다. 이틀만이라는 말에는 짧은 며칠 동안만, ' 완성'을 위한 최소의 시간'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함. .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를 '햇볕을 주시어'로 번역한 시도 있음. 햇볕은 신의 은총을 상징]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성숙의 미. 완숙미를 의미함)이 스미게 하소서. [독한 포도주에는 - 스미게 하소서 : 충분히 성숙된 만물에 존재의 본질적 의미가 구현되는 상태를 추구함. 절대자에 대한 기원의 자세가 강조된다.] - 풍성한 가을에 대한 소망 - 외부 세계의 풍성함
지금 집(정신적 안식처)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안식처를 갖지 못한 사람은 이제 그러한 안식처를 마련할 만한 겨를이 없습니다. 즉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불안과 공허감을 나타내었다. 여기서 '집이 없는 사람'은 존재의 거처를 잃어버린 고독한 인간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에 대한 겸허의 태도로 볼 수 있다.]
지금 혼자인 사람[집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자아 성찰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과의 대화'로도 해석 가능)를 쓸 것이며 [깨어서 책을 읽고(잠자지 않고,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 겨울을 맞는 인간의 고독, 불안감을 나타내고, 그러한 고독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와 내적 충실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영혼의 완숙을 위해서 인간이 겪어야 할 고독과 번민과 갈등의 구체적 모습이다. ]
낙엽[방랑과 유랑의 이미지]이 흩날리는 날[낙엽이 흩날리는 날(바람) : 종언을 재촉하는 시간의 뜻이 숨어 있다. '낙엽이 흩날리는 날'은 '바람에 불린다'는 '방황과 고독'을 상징하기도 함. 시마다 번역의 차이가 있다. 불안스레 헤매인다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방황을 상징하는 말. 여기서 실존이라는 말은 철학에서는 사물의 본질이 아닌, 그 사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라고 말하고, 스콜라 철학에서는 가능적 존재인 본질에 대하여 현실적 존재를 뜻한다. 실존 철학에서는,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 ]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 길을 헤매일 것입니다. : 고독한 인간의 근원적인 방황과 실존적인 불안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 인간의 실존적 고독 - 내면 세계의 고독
또 다른 번역
주여, 때[결실과 완성의 시기 / 가을]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성장의 시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신에게 기도하는 시로 시적 화자는 모든 생명체가 오랜 성장의 시간을 거쳐 완성의 시간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있다. 여름을 거쳐 가을이 왔다는 사실은,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이라는 인식의 전제가 된다.]
해시계[신의 섭리 / 태양의 규칙적인 회전을 비유한 말로, 자연의 질서 있는 순환과 생성 과정에 신의 섭리가 작용함을 보여 줌] 위에 당신의 그림자[가을날의 서늘함]를 얹으십시오.[가을의 도래가 자연의 원리이자 신의 섭리라는 시적 화자의 인식과 그러한 절대자의 힘에 순응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를 드러냄]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 가을의 도래와 찬양
마지막 과실[결실을 맺지 못한 생명체]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남쪽에 위치한 나라. 지리적으로 유럽의 남부인 이탈리아, 프랑스 남부,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의 햇볕[만물을 성숙시키는 신의 은총 / 뜨거운 햇볕으로, 열매를 익게 해 주는 신의 은총]을 주시어
그들을[마지막 과실들, 완성되지 못한 생명체나 성숙하지 못한 영혼을 의미]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성숙, 완숙]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 풍요와 완성의 가을
지금 집[정신적 안식처]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안식처를 마련할 겨를이 없음 / 존재의 거처를 잃어 버린 고독한 인간을 의미한다.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불안과 공허함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임.].
지금 고독한 사람[집이 없는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고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몸짓, 시인의 내적 충실의 자세가 드러나 있는 부분]
바람에 불려 나뭇잎[방랑과 유랑의 이미지]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고독한 인간의 근원적 방황 - 실존적 불안을 노래함]. - 인간의 고독과 한계
표현상의 특징
1. 표면적 청자의 설정 - 종교적인 절대자를 시의 표면적인 청자로 등장시켜서 경건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형성
2. 경어체의 사용과 기도조의 어조 - 절대자인 신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시상을 전개
3. 평이한 시어의 사용 - 인간의 실존과 관련된 주제를 형상화함.
1~2연 |
외부 세계 |
진정한 고독의 체험 |
인간의 근원적인 방황, 실존적인 불안의 긍정 |
풍성함 |
|||
3연 |
내면 세계 |
||
적막함 |
이해와 감상
릴케 자신 스스로 "예술가에게는 깊은 외로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듯이. 릴케의 작품에는 고독을 노래한 시가 많다. 이 시도 그러한 계열로, 1902년 조작가 로댕을 만나 사물을 보는 눈과 자세에 대하여 배운 바를 시 창작에 응용한 작품으로 이 시는 사물을 명확하게 꿰뚫어 보려는 노력과 현실 세계를 진지하게 살아가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가을의 계절 감각을 인생살이에 연결시킴으로써, 고독의 깊은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자연의 변화 앞에서 여러 가지 감회를 가지게 되는 시인의 성찰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시로서 종교적이고 경건한 분위기가 시 전편에 흐른다. 시인은 가을이라는 계절의 이중적 속성, 즉 풍성함과 황폐함을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에 대비시켜 우수와 고독을 형상화하였다. 인간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 흘린 땀과 대비하여 무수한 능력을 지닌 신의 권능을 생각하고 있다.
작품의 1연은 가을이 도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제 긴 여름 동안의 노고를 쉬고 이제 들에 서늘한 바람을 불게 해 달라는 것이다. 2연은 이미 익어 가고 있는 만물을 완전히 익도록 해 달라는 기원이다. 1연과 2연이 외적 세계의 풍성함과 결실을 노래한 것이라면 3연은 내적 세계의 고독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고독은 극복되어야 할 '외로움'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적 고독(독서와 편지, 사색을 포함한 고독)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이란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며 방황하는 불안정한 존재인 고독한 인간을 나타낸다.
따라서, 고독한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내적 충실을 기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지만 그 고독한 사람이 바람에 불려 날려 가는 나뭇잎처럼 불안하고 방황할 것이라는 의식이 나타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가을이라는 결실과 조락(凋落)의 계절에 인간 존재의 본질을 생각하고 투시하는 서정적 자아의 경건성과 구도 정신이 간결하고 평이한 표현 속에 잘 드러난 서정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1) 작품 선정의 취지
이 작품은 가을날의 정서를 기도하는 어조로 표현한 종교적 신비주의 경향의 서정시이다. 일반적으로 시인은 자신의 정서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특히 기도조의 어조를 취함으로써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시의 정서와 주제를 형상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고 감상하는 동안 학생들은 시의 어조가 작품의 정서와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2) 지도의 핵심
이 작품에서는 특히 가을의 도래와 함께 만물을 생성· 성장시켜 결실을 맺게 하는 신의 은총과 겨울을 앞두고 불안감에 방황하게 하게 되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대조적 구성은 시적 정서와 시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매우 적절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작품과 유사한 어조로 된 시들을 찾아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종교적 행위와의 관계에까지 생각의 깊이를 넓혀 보는 것도 가치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3) 작품 연구
가을은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낙엽을 떨어뜨리고 혹독한 겨울의 시련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릴케의‘가을날’은 그러한 가을의 이중적 속성, 곧 풍성함과 황폐함을 각각 인생의 외적 세계와 내면 세계에 대입시켜 형상화한 작품이다. 가을날의 우수와 고독을 소재로 삼되, 독일 시 특유의 관념적 진실이 형상화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는 종교적 형이상학을 다루고 있다. 이 시의 제재는 가을이지만, 주제는 인간의 실존 깊숙이 자리잡은 근원적 ‘고독’이라 할 수 있다. ‘주여’로 시작하여 기도조로 일관하는 표현은 경건한 분위기를 이루며, 신과 작가가 서로 대화하는 듯한 신비감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그러나 고독감을 표현하면서도 비애(悲哀)나 절망 등의 감상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지적이고 이성적인 분위기를 주는 시이다. 특히 이러한 분위기는 신과 대화하는 듯한 표현을 통해 작품에 신비감을 불어넣고 있다.
학습 활동
친해지기
1. ‘가을’이라는 계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지도방법 : 자유롭게 연상해 보는 활동이다. 그러나 연상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음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일반화에 의한 연상, 추상화에 의한 연상, 유사성의 원리에 의한 연상, 인접성의 원리에 의한 연상 등, 이러한 종류에 맞추어 여러 가지 연상을 하도록 하거나, 반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가을과 관련된 것들을 열거하도록 한 뒤에 그것들을 연상의 원리에 맞추어 분류하게 해 보면, 학생들이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연상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시 답안 : ‘낙엽’, ‘고독’, ‘높은 하늘’, ‘쌀쌀한 날씨’ 등은 가을을 구성하는 요소하고 할 수 있고, ‘고독’은 가을의 추상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2. 이시를 읽으면 어떠한 분위기가 느껴지는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시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활동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을 제시하기보다는 객관적인 단서를 제시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 느낌이 듭니다.”와 같이 발표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예시 답안 : 우선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를 보면 가을의 쓸쓸하고 고독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기도조의 어조를 통해 신의 은총을 찬미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시는 고독하고 쓸쓸한 정서를 극복하고자 하는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꼼꼼히 읽기
1. 이 시에서 가을의 계절감을 드러내는 시어를 찾아보자.
지도 방법 : 이 시는 직접적· 간접적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계절을 드러내고 있다. 직접적으로 가을임을 알게 해 주는 시어들과 비유적· 암시적으로 가을과 관련된 시어들을 차례로 찾게 한다.
풀이 :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등은 직접적으로 가을임을 알게 해 주는 시어들이다. 반면 ‘고독’은 가을의 분위기와 어울리며, 해시계 위의 ‘그림자’는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시어이다.
2 다음 시어들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시어의 함축적· 상징적 의미를 파악해 보는 활동이다. 여기서 주의시켜야 할 것은 학생들이 시어 자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제시된 시어의 상징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 해시계 :
(2) 남국의 햇볕 :
풀이 :
(1) ‘해시계’는 태양의 규칙적인 회전을 비유한 말로, 자연의 질서 있는 순환과 생성 과정에 신의 섭리가 작용함을 보여 준다.
(2) ‘남국의 햇볕’은 뜨거운 햇볕으로, 열매를 익게 해 주는 신의 은총을 뜻한다.
3. 3연의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의 의미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과 대비하여 설명해 보자.
지도 방법 : 시구의 의미를 특정한 조건하에서 파악해 보게 하는 활동이다. 제시된 시구의 의미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과 대비하여 파악하라고 했으므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이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과 대립적이거나 반대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제시된 시구의 의미를 파악하도록 지도한다.
풀이 : 신은 완벽하고 무한한 능력을 지닌 존재인 반면, 인간은 모든 면에서 불완전하고 신 앞에서는 말할 수 없이 하찮은 존재이다. 따라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불안과 공허감에 젖어 있는 불완전한 상태의 인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신에 대한 겸허한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탐구 / 가을의 상반된 이미지
가을은 완성과 결실의 계절이자 한편으로는 죽음을 준비하는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이 시는 이러한 가을의 상반된 이미지를 활용하여 풍성함과 적막함을 각각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에 대입시켜 인간의 고독을 형상화하고 있다. |
지도방법
고도의 시적 표현을 이해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시의 분위기와 시상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한 뒤에 이루어져야 할 활동이다. 교사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교사의 설명 뒤에는 반드시 상반된 이미지의 대립을 통해 시상이 전개된 작품을 선정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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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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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함 |
극단적 대비 |
적막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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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고독의 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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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근원적인 방황과 실존적인 불안조차 긍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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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시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시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탐구’에서 이해한 대립적 이미지를 이용해서 시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게 한다. 시상의 내용뿐만 아니라 어조나 중심 소재 등도 구분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풀이 : 전반부인 1연과 2연은 온갖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는 가을의 맑고 풍성함을 노래하여, 외적으로 충실한 계절인 가을의 특성을 표현하였다. 반면 후반부인 3연은 낙엽이 뒹구는 가로수 길을 방황하게 될 집 없는 사람과 고독한 사람을 그려 가장 고독한 계절로서의 가을의 특성을 표현하였다.
시야 넓히기
(1) 이 시와 ‘가을날’은 모두 기도조의 어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도조의 어조는 어떠한 효과를 주는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어조의 효과를 알아보는 활동이다. 종교가 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기도를 할 때 어떤 마음 상태가 되는지 등을 이야기해 보게 한다. 더불어 시에 있어서의 기도조 어조도 그런 종교적 기도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하여 기도조 어조의 효과를 깨닫게 한다.
풀이 : 기도는 종교적 절대자에게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기도조의 어조는 경건한 분위기를 이루며, 신과 시적 화자가 서로 대화하는 듯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2) 이 시와 ‘가을날’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가을의 속성과 주제에 대해서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두 작품의 공통점을 소재와 주제에 맞추어 살펴보는 활동이다. 이미 ‘가을날’의 소재의 속성과 주제를 파악했으므로 그것들을 ‘가을의 기도’에 적용해 보도록 한다. 그리고 그러한 유사성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도 생각해 보게 한다.
풀이 : ‘가을날’의 중심 소재는 ‘가을’로, 결실과 고독을 속성으로 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소재들을 바탕으로 ‘신의 섭리와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노래하고자 했다. ‘가을의 기도’ 역시 ‘채우소서’· ‘열매’ 등의 이미지를 통해 ‘결실’을, ‘호올로’· ‘까마귀’ 등을 통해 ‘고독’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고독을 통한 경건한 삶의 가치 추구’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따라서 두 작품은 소재의 속성이나 주제가 매우 유사하다.
도우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시인의 첫시집인 ‘김현승 시초’(1957)에 실린 작품으로, 세상 모든 것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종말을 고하는 가을에 깨닫게 되는 신의 섭리와 인간의 고독을 노래한 시이다. 인간 내면의 충실을 갈망하는 시기인 가을에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신과의 만남을 가지려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기도조의 어조에 잘 담겨 있다. 시인 자신도 단순한 서정 외에 좀더 깊은 생의 가치를 추구하려고 이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표현하기
자신이 현재 간절히 소망하는 바를,‘가을날’의 1,2연을 모방하여 기도조의 어조로 표현해 보자.
지도 방법 : 모방을 통해 새로운 시적 감수성을 익히는 활동이다. 먼저 주제를 정하고 그러한 주제를 어떤 시어로 나타낼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자신이 고른 시어들을 ‘가을날’에 대입해 보게 하여 운율이 맞도록 다듬게 한다. 특히 형식적인 면에만 신경을 써서 내용의 흐름이 일관되지 않거나 주제가 모호해지지 않도록 주의시킨다.
예시 답안 :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수험생의 기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지난 3년의 제 노력 위에 당신의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짧은 지식이 봄바람처럼 퍼지게 해 주십시오.
사과의 결실을 위해 내리신 햇볕을
이 작은 몸짓에도 비추어 주시어
저의 간절한 소망이
상아탑 속에서 맺어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더 읽을거리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 신시집’, 현암아, 2001.
조두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 건국대학교출판부, 2001.
김인섭, ‘김현승 시의 상징체계 연구’, 보고사, 1999.
심화 자료
Rainer Maria Rilke 1875~1926
독일 시인. 보헤미아 수도 프라하 출생. 청년기 이후로는 유럽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각 지방의 문화를 흡수한 반시대(反時代)·반통속적인 시인이다. 병약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커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육군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에 시를 쓰기 시작, 19세 때 시집을 출판했다. 프라하대학·뮌헨대학 재학 중에는 시·산문·희곡·평론 등을 썼고 몇 권의 책도 냈으나, 모두 신낭만파·자연주의·유겐트슈틸 등 그 시대와 전시대의 양식을 모방한 데 그쳤다. 1897년 뮌헨에서 알게 되어 일생동안 우정을 나눈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사귀는 동안 개성있는 일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회화에 눈을 뜬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루에게 보내기 위해 계속해서 쓴 《피렌체일기(1898)》, 루와 동행한 2회의 러시아 여행을 토대로 쓴 《시도시집(時禱詩集, 1905)》, 단편집 《하느님 이야기(1900)》 등이 이 때의 대표작인데, 방종하고 낭만적·신비적 감수성에 바탕을 둔 범신론적(汎神論的) 세계인식 방식이 두드러진다. 체코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는 단편집 《프라하의 두 이야기(1899)》에는 훗날의 작품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회적·정치적인 관심이 엿보인다. 1900년 브레멘 교외 보르프스베데 예술가마을에서 그 시대의 예술과 접촉하게 된 것이 인생과 일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그 고장의 조각가 C. 베스토프와 결혼하고, 화가평전 《보르프스베데(1903)》를 완성한 뒤 《로댕론(1902~1907)》 집필을 의뢰받고 파리로 갔다.
이미 《형상시집(形象詩集, 1902)》의 몇 편의 시에서도 그때까지의 무한정한 정감유로(情感流露)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즉물적인 표현이 시도되고 있었지만, F.A.R. 로댕 밑에서 배운 손재주의 중요성과 <보는 일>에 바탕을 두어 《신시집(新詩集, 1907)》의 시를 계속 써 나갔다. <사물시(事物詩)>라고 하는 조소풍(彫塑風)의 조형성(造形性) 강한 이들 시는 자아(自我)와 대상을 동일시하고 감정을 객체화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며 대도시 파리가 만들어낸 현대사회의 생존 불안에 대한 대항물로서 의도된 작품이다.
그 시기의 《말테의 수기(1910)》도 역시 불안한 가운데서 로댕의 조각수법을 산문에 적용하여 새로운 현실성을 얻으려는 의지에 의거한 것이다. 그 뒤 10여 년 동안에 발표된 시집은 《마리아의 생애(1913)》뿐이지만 《말테의 수기》를 완성한 직후와 스스로 군무에 종사했던 제 1차 세계대전 때를 제외하고는 창작력이 쇠퇴하는 일이 없었다. 《신시집》에서 시에 대한 형식성을 초월한 새로운 시작법(詩作法)을 모색했는데, 거기서는 개개의 형상(形象)에 의지하였던 생의 불안을 직접 존재문제로 다시 수용하면서 아프리카와 에스파냐로 여행, P.R. 피카소의 그림이라든지 J.C.F. 횔덜린, P.A. 발레리의 시와의 만남 등에 의해 쌓은 정신적 양식을 바탕으로 하여 10년에 걸쳐 《두이노의 비가(悲歌)》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쓰인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1923)》 등에서는, 삶과 죽음을 꿰뚫는 <열려진 공간>이라는 독자적인 시와 존재의 공간이 시사되어, 갖가지 형상으로 그것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실존주의와도 통하는 내용이므로 그의 시는 M. 하이데거 등에 의해 자주 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시작(詩作)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독일어 표현능력을 높였고, 표현할 수 있는 시어의 영역을 확대시킨 점에 있다. 그것은 종래의 양식 또는 언어표현에 의해서는 파악이 불가능하게 된 근대도시의 생활감각에 대하여 신체감각 자체를 지성화하는 차원에서의 한 표현의지의 성과이다. 특히 후기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스스로 육체성을 갖춘 낱말에 바탕을 두고 시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시법(詩法)은 유럽 근대의 로고스중심주의를 벗어나 현실적 재구성을 도모하려는 현대시 방법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만년은 주로 스위스 시에르 근처의 뮈조트성관(城館)에서 보냈다.
릴케의 시풍과 우리 나라 시인들
릴케 시의 일반적인 특징은 종교적 신비주의(神秘主義)로서 만상(萬象)속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믿고, 그러한 신을 항상 몸 가까이 느끼며, 만상을 애정으로 직관(直觀)함으로써 그의 영적(靈的)인 세계를 넓힌 데 있다. '가을날'에 있어서도 신과 대면하여 담화를 하는 듯한 친근한 느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첫째 연(가을의 도래), 둘째 연(자연물에의 애정), 셋째 연(고독)의 세 가지 요인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시풍은 우리 나라 근대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윤동주, 김춘수, 김현승 등에 영향을 주었다. 윤동주선생은 순수한 동심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릴케의 시를 수용하였고, 김춘수는 사물에 내재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탐구로 릴케와 같은 맥락에 놓인다. 김현승은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에 대한 경건한 성찰의 측면에서 릴케의 영향을 받았다.
작품에 나타나는 릴케의 신(神)의 의미
릴케의 신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자기의 생명에 충실함으로써 얻어지는 범신론적인 것이다. 그의 시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며, 그의 시가 생명을 가지고 사물로 하여금 스스로 빛을 발하게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의 신은 반드시 그의 시에 동반되며, 주로 어두움의 심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형상과 불꽃, 짐승과 시인 자신, 모든 인간과 그들이 가진 권력조차도 모두 어두움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그 본질의 깊은 곳에 어두움이 발견될 때 비로소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릴케가 인식의 끝을 신으로 본 때문이다. 인식의 길은 어렵다. 하나의 사물이 지닌 본질과 그 온갖 비밀을 알아챌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길은 끝난다. 그 험하고 고단한 길이 릴케에게는 어두움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요점 정리
지은이 : 김현승
성격 : 종교적, 사색적, 명상적, 기구적
어조 : 기도조의 어조(가을의 계절감을 사랑과 명상, 기도로써 체험하는 겸허한 목소리. 기도조의 어조, ‘하소서’라는 서술어의 반복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구성
1연 : 조락의 계절 - 내적 성숙을 위한 기도 / 자아의 겸허한 반성
2연 : 결실의 계절 -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한 사랑 / 참된 사랑의 의미
3연 : 삶의 긍극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절대 고독의 추구 / 새로운 영혼 세계의 추구
제재 : 가을
주제 : 진실된 삶을 위한 절대 고독의 추구, 생명에의 외경감과 겸허함 / 절대 고독의 경지를 기원함.
특징 : 기도 형식의 구절이 3연 전체에 반복됨. 시행의 점층적 증가,‘가을에는/~하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시적 화자가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출전 : <김현승시초>(1957)
내용 연구
가을[내적 충실을 기할 수 있는 시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기원형 어미로 경건한 기도조]
낙엽들이 지는 때[조락의 계절로 생명의 유한성을 깨닫고 겸손해지는 시간]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영혼의 소리(기도)]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신, 절대자, 참된 사랑의 대상]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가치 있는 이상, 신의 축복, 사랑의 결실 등 - 삶의 깨달음]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기름진, 풍요로운]
시간[보람되고 알찬 가을의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고독을 의미]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고뇌와 수난의 인생길로 봄을 의미하거나 청년기의 영혼 / 질풍노도의 시대]
백합(百合)의 골짜기[여름을 의미하는 말로 부귀영화, 영광, 환희, 행복으로 가득한 장년기의 영혼]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지극히 외로운 경지 / 모든 욕망을 떨쳐 버린 노년기의 영혼] 위에 다다른 까마귀[세상과 절연된 절대 고독의 경지('까마귀'는 관습적으로는 '불길함'을 상징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시련과 혼란을 거쳐 삶의 본질과 대면한 고독한 존재를 의미하며, 나의 영혼의 감정이입.)]같이.
작품 개관 : 한국 문학과 외국 문학의 교섭 관계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여 제시하였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릴케의 ‘가을날’에 비교할 때, 후에 창작된 작품이면서 소재면에서 유사하고,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등에서 작품 사이의 교섭 여부를 생각할 수 있다. 두 작품을 감상한 후, 상호 교섭 관계를 비교문학적인 관점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지도 방법 :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영향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두 작품은 영향 관계가 있음이 어조와 내용면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두 작품의 영향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영향 관계를 통해 문학은 상호 교섭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도 필요하다.
김현승의 시가 지닌 독자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릴케의 시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가을의 기도’가 지닌 독자적인 성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떤 점에서 ‘가을의 기도’가 독자성이 있는 지를 작품 내용에 충실하게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학습 활동 풀이
1. 두 시에 나타난 유사한 점과 다른 점을 찾아내어 말해보자.
이끌어주기 :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는가를 묻는 활동이다. 개인별로 답을 하게 할 수 도 있으나, 여건이 된다면 모둠별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혼자 할 경우 막연하게 생각하고, 어렵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시답안 :
공통점:
1. 어조면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시 모두 기원의 어조를 보여 준다.
2. 태도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시의 시적 화자는 절대자에 대한 겸양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절대자에게 자비를 기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3. 제재면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두 시 모두 ‘가을’을 제재로 하여 형상화하였다.
4. 주제면에서도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두시 모두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
1. 내용면, 주제면에서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가을날’은 겨울을 앞둔 현재의 시점에서, 신의 자비를 통해 과실들이 익고 포도주가 익을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정착의 삶을 허락해 달라고 기원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기원의 대상은 시적 화자라기보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가을의 기도’는 시적 화자 자신의 소망을 기원하고 있다. 그것은 절대 고독의 경지에 이르기를, 다시 말해 정신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는 기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 어조면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 ‘가을에’는 ‘~을 해 주십시오.’ 라는 어조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람을 놓으십시오.’ ‘스미게 하십시오.’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을의 기도’의 시적화자는 ‘~하게 하소서.’라고 표현함으로써 내적인 충족의 어조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①에서 본 내용과 주제면에서의 차이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다음 글을 읽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요약하여 말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쉽게 답할 수 있는 활동이다. 제시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로써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예시답안 : ‘가을의 기도’의 내용과 시상의 흐름을 소개한 후, 김현승의 시가 릴케의 시에 영향을 받았지만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일방적인 영향 관계를 부정하는 말이다. 물론 김현승의 시의 세계를 예찬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2) ‘가을의 기도’가 ‘가을날’과 유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문학의 보편성과 고유성의 관점에서 토의해 보자.
이끌어 주기 : 각 민족의 문화는 끊임없이 외부의 문화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문학 작품 중에는 중국이나 서구의 작품과 유사성을 지니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들 작품들이 외부로부터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작품은 한국 작가에 의해, 한국적인 감수성에 의해 새롭게 창작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활동의 목표라는 점을 기억하며 토의 토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시답안 :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와 릴케의 ‘가을날’은 모두 가을이라는 제재에서 인간의 실존 깊숙이 자리 잡은 근원적 ‘고독’을 기도조의 표현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을의 기도’가 ‘가을날’을 일방적으로 모방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은 바른 해석과 관점이 아니다. 실존적 고독과 또한 그 속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 정서라고 볼 수 있고, 김현승은 이를 훌륭하게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가을의 기도’ 평론
일단 시가 태어나게 되면 그 언어들은 그것을 낳은 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기 자체의 이미지로 홀로서기를 한다. 그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 바로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이다. 김현승의 시 ‘가을의 기도’에 등장하는 ‘백합의 골짜기’도 마찬가지이다. 백합이라고 하면 서구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화병이 아니라 골짜기에 핀 백합꽃이라고 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골짜기에는 진달래나 혹은 할미꽃들만이 피어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서양의 경우라 해도 ‘백합의 골짜기’는 현실 속에서도, 그리고 시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미지의 근원은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오역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골짜기의 백한’은 ‘은방울 꽃’(Lisdes Valles)이라는 발자크의 소설 제목을 일본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옮겨놓은 데서 생겨나게 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덕분에 여태껏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이미지 하나를 얻게 된 셈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골짜기의 백합’은 당당히 홀로서기를 하고, 김현승의 시 ‘가을의 기도’에 와서는 아주 절묘한 시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아마도 그 말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는 공자가 보면 크게 탄식했다는 ‘골짜기의 난초’(난향유곡)가 되었거나, 혹은 백합의 경우라 해도 성경에 있는 구절대로 ‘들에 핀 백합’ 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가을의 기도’에서 ‘백합의 골짜기’는 단순한 장식적 은유가 아니라 ‘굽이치는 바다’와 ‘마른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를 잇는 중요한 매개 공간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영혼’을 가시화하는 결정적 작용을 한다. ‘굽이치는 바다’란 말은 시인 자신의 말대로 ‘겸허한 모국어’에 비추어 보더라도 어법에 잘 맞지 않는 표현이다. 냇물이나 산맥이라면 몰라도 넓고 편편한 바닷물은 굽이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연극이나 소설의 경우라면 대단원에 해당되는 ‘마른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처럼’은 누가 봐도 진부한 비유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백합의 골짜기’가 끼어들면 거짓말처럼 그 모든 시구들은 갑자기 새롭고 긴장된 이미지로 살아난다.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다른’이라는 말이 보여주고 있듯이 이 마지막 시행들은 시인의 내면 속에서 변화해 가는 영혼의 모습을 세 단계의 은유적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영혼은 ‘바다→ 골짜기→ 마른 나뭇가지’의 순서로 공간을 옮겨가면서, 그 단계마다 영혼의 모습은 ‘파도’(바다)와 ‘백합’(골짜기)과 ‘까마귀’(마른 나뭇가지)로 변신한다. 넓은 바다는 좁은 골짜기로, 골짜기는 다시 앙상한 나뭇가지로 면에서 선으로 이동하면서 축소되어 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수평의 바다가 점차 수직화하고 위로 올라가면서 골짜기가 되고 이윽고 높은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다. 물론 그 공간에 자리한 대상물들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변화해 간다. 바다의 영혼은 파란색 파도로 굽이치고(그렇다. 바다가 골짜기의 백합과 연결되었을 때만이 굽이치는 바다의 시적 일탈성은 허락된다), 골짜기의 영혼은 백합처럼 흰빛으로 조용하게 피어난다. 그리고 그것이 앙상한 나뭇가지에 이르면 바다의 파도들은 날개를 접은 까만 까마귀가 되어 정지된다. 그러니까 영혼의 색채는 청-백-흑으로, 그 움직임은 동-부동-정으로, 그리고 상태는 무생-식물-동물로 변모해 가고 있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그 패러다임 읽기를 통해서 푸른 바다에서는 봄(젊음)의 영혼, 골짜기에서는 하얗게 정화해가는 여름(노장)의 영혼, 그리고 이윽고 마른 나뭇가지에서는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에 있는 영혼의 사계절을 보게 된다. 그리고 움직임도 넓이도 색채도 모두 떨어져 나간 가을의 영혼이지만, 그것이 다다른 곳은 바다와 골짜기보다 훨씬 높은 수직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영혼의 위치야말로 ‘홀로 있게 하소서’ 의 마지막 고독에서 얻어질 수 있다.
‘가을의 기도’는 시와 종교(유일자에 대한 사랑)를 거쳐 최종적인 죽음의 자리에 다다르는 삶의 과정을 성숙과 조락의 가을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을의 기도’에는 봄의 바다와 여름의 백합,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인 마른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로 삶의 사계절이 내포되어 있다. 첫연의 낙엽과 마지막 연의 고목 사이에는 백합꽃이 피어있는 골짜기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백합과 까마귀의 절묘한 결합으로 ‘가을의 기도’는 비로소 높은음자리표를 지닌 화음처럼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음성을 너무 닮았다고 나무라서는 안 된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골짜기의 백합’처럼 오히려 오역의 경우가 보다 아름다운 시의 이미지를 낳듯이 릴케의 기도를 닮았다 해도 이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홀로 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혼의 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출처 : 이어령, ‘다시 읽는 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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