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Odysseia)
by 송화은율
작품 선정의 취지와 지도 방법
세계 각 지역의 고대 문학은 문명 발생지별로 독특한 양상을 띠고 발전하였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그리스·로마 고대 문학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그 갈래상 장편 서사시에 해당한다. 대체로 동양과는 달리 그리스·로마 고대 문학은 서사시와 비극을 중심으로 한 문학 체계를 지녔던 것으로 설명된다. 또한 현대 서양 문학의 원형에 해당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현대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이 작품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오디세이아'의 '귀향 모티프'는 다른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이런 점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각 지역별 고대 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작품 지도안
1. 내용 구성
갈래 : 장편 서사시
주제 : 오디세우스가 겪은 모험담과 그와 그의 부인 '페넬로페'의 깊은 신뢰와 애정
무사(뮤즈) 여신에게 오디세우스의 소식을 말해 주길 부탁 |
10년간의 해상 표류와 귀국 후 40일 간의 사건 |
오디세우스의 현재 상황(요정 칼립소가 억류함)과 그 원인이 설명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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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끼리 모여 오디세우스의 귀향 문제로 협의. 아테나의 의견대로 귀향 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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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가 같혀 있는 오기기아 섬에 헤르메스를 보내 신들의 뜻을 전달 |
오디세이아(Odysseia) : '오디세이'의 그리스 어 이름.
2. 이해와 활동 길잡이
·그리스 신화의 특징 :
그리스 신화란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B.C. 8∼9세기에서 A.D. 3∼4세기까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여러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온갖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는 천이백 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여러 다양한 출처에서부터 형성되었기에 소재가 풍부하고 신화의 성격이 복잡하며 다양하고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 많다. 이러한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인들의 문화와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는 호메로스의 작품을 다양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다양성(多樣性) :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에 주제가 다양하고 같은 주제를 가진 여러 가지 이본(異本)이 풍부하게 존재하며 서사시 작가와 성정 시인, 비극 작가들에 의하여 수많은 개인적 창작이 가미되었다. 그 결과 어떤 다른 신화보다 많은 신과 영웅들이 등장하게 된다.
유기적(有機的) 관계 : 모든 신들은 거대한 족보에 의해 매우 복잡한 친족 집단을 이루며 서로 유기적 관계 속에 하나의 거대한 사회 조직을 이루고 신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각기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또 수많은 신들을 거대한 관계망에 편입시키기 위해 운명과 저주, 인간이 오만과 신의 분노, 인간의 반항과 같은 모티프를 사용하고 이런 기법이 문학의 단계에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처럼 분노하고 복수하길 즐기는데, 오디세우스가 10년 간 고향에 가지 못하게 된 까닭은 포세이돈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또한 신과 이간의 관계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아테나 여신이 오디세우스를 후원한다든지 아폴론과 해라가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를 후원한다든지 하는 예가 자주 나타난다.
사실적(事實的) 분위기 : 신화의 각 인물들에게 족보상 고유한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신화의 인물들은 고유한 이름과 특정 활동 시기를 가진 현실적인 존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그리스 신화는 구체적 인물이 특정한 시기·장소에서 경험한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띠게 되었다. 온갖 위험에 맞서는 영웅의 모습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인의 본보기가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인문주의의 바탕이다.
자료실 돋보기
1. '오디세이아'의 모티프와 의의
'일리아드'에는 분노의 모티프 하나밖에는 없는 데 비해 '오디세이아'의 모티프는 여러 가지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그 중 하나는 귀향자 모티프이다. 어떤 사내가 젊어서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객지를 방랑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고향에 들어와서 아내의 구혼자들을 죽이고 다시 옛 권리를 회복한다는 모티프가 그것이다.
다음은 선원 모티프이다. 어떤 뱃사람이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하다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혼자 살아남아 온갖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모티프는 해양 민족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양 민족의 경우 이 두 모티프는 쉽게 하나로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이아'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이 두 모티프가 '오디세이아'라는 인물을 통하여 트로이아 전설권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그밖에 '일리아드'에서는 사납고, 자제력이 없고, 굽힐 줄 모르고, 오직 불멸의 명성만을 추구하는 아킬레우스(Achilles)가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음에 비추어, '오디세이아'에서는 호메로스 당시에 이미 해상 무역을 장악하기 시작한 유연한 이오니아인들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 더 찾을 거리
- 호메로스, '일리아드'
줄거리 :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로 절세의 미인인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유혹해 간다. 이에, 그리스인들은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지휘로 1,000척의 배를 이를 공격하지만 트로이성(城)은 함락되지 않는다. 자기의 딸 헬레네가 포로가 된 데 격노한 아폴론 신(神)이 벌로 액병(厄病)을 내린다. 이 수습책 때문에 벌어진 말다툼에서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한 그리스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가 노하여 싸움에서 손을 뗀다. 이 아킬레우스의 이탈이 바로 '일리아드'의 주제이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간청으로 주신(主神) 제우스는 신(神)들에게 양군을 원조하지 말도록 명하여 그리스군을 패배케 한다. 패배한 그리스군의 참상을 좌시할 수 없어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와 전차를 빌려 그의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적을 패주(敗走) 시켰으나 그는 트로이의 장수 헥토르에게 살해된다. 이 소식에 접한 아킬레우스는 복수하기 위하여 헤파이스토스가 특별히 만들어준 갑주를 입고 출전하여 헥토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욕보인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왕은 신들의 비호(庇護)로 야음(夜陰)을 틈타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헥토르의 시체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낸다.
작품 해제 :
'일리아드'는 트로이 공방 50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10년의 전망을 담았으며,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암시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하였고, 여러 가지 비유로 자연계와 인간계의 관계를 특색 있게 묘사하였다. 무용(武勇)을 노래하고 그리스 기사도를 찬양한 이 시는 B.C. 90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마침내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가 되었고 교육위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서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문학에 튼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로마 신화
작품 해제 :
그리스 민족고유의 신화를 중심으로 선주민족(先住民族)과 이웃 민족의 신화를 종합하여, 오랜 소장(消長)과 변천을 거쳐 발전시킨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 신화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그리스 옛 전설의 발전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이전의 변천 과정은 옛 시인이나 문인, 또는 고대 미술 유품(단지나 돌에 새긴 그림)에서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다. 모든 민족의 신화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도 많은 초자연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내용도 매우 복잡하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신들의 이야기나 영웅 전설, 그 밖의 내용이 담긴 이야기를 미토스(mythos)라고 하였다. 미토스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그 내용이 신들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사(人事)·자연·문화 일반에 걸쳐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또 믿고 있던 것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시사나 암시가 들어 있다. 신들이나 초자연적 요소가 일상적 사실은 아니지만,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 인 특유의 미화(美化) 과정을 거쳐 인간화된다. 이렇게 하여 이상한 기원(起源)을 가진 신들도 그리스 조각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름다움으로 묘사된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서 통칭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로마 신화가 그리스 신화에 접합됨으로써 로마 신화와 그리스 신화 사이의 유사한 신들은 통합되고 그 차이가 희석되어 지금 현존하는 신화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로마 신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 트로이(Troy)
(그)Troia (라)Troia/Troja/Ilium. Ilios, Ilion이라고도 함.
아나톨리아 북서부에 있던 고대도시로 스카만데르 강 북쪽과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 떨어진 트로아스 평야에 있었다. 트로이 전설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근간을 이룬다. 광활한 유적 덕분에 트로이는 고대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적지가 되었다.
고고학상의 트로이
청동기시대에 트로이가 누렸던 세력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통로를 지배하는 전략적인 위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BC 3000~2000년에 번성한 문화 중심지로서, 트로아스의 농업 공동체들을 지배하던 왕권의 수도였다. BC 1100년경부터 버려졌다가 BC 700년경에 그리스 정착민들이 트로아스를 차지하기 시작하자 트로이에도 다시 사람들이 살게 되었으며 일리온이라는 이름으로 4세기까지 존속했다. BC 6세기말부터 이 지역은 페르시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아시아 남서부의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왕국, 로마인들에 차례로 점령당했다. BC 85년 로마인이 약탈한 후 같은 해에 로마 장군 술라가 부분적으로 복구시켰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다른 황제들이 많은 애정을 기울였다. 그러나 324년에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되고 나서 일리온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갔다.
투르크인들이 히사를리크라고 불렀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일리온 유적을 포함한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졌던 구릉이 1822년 찰스 맥라렌에 의해 호메로스 시대의 트로이 소재지로 밝혀졌으나, 학자들이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은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에 발굴을 시작한 이후였다. 1890년 슐리만이 죽은 뒤에도 그의 동료인 빌헬름 되르펠트에 의해(1893~94), 그후에는 신시내티대학교의 원정대에 의해(1932~38) 발굴작업이 계속되었다. 슐리만과 되르펠트는 집들이 건설되어 사람들이 살다가 마침내는 파괴되어 버린 아홉 기(紀)를 나타내는 9개 주요지층의 순서를 밝혀냈다. 제1~7기 트로이는 요새, 트로아스의 수도, 왕의 가족·신하·노예들이 살았던 왕의 거주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1~5기는 청동기시대 초기(BC 3000경~ 1900)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 기간 동안의 주민들이 에게 해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 헬라도스 문화기의 그리스 본토에 살던 주민들의 선조였을 것이며, 아나톨리아 남서부 또는 시리아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된다. 트로이 제6·7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와 말기(BC 1900경~1100)에 해당한다. 불과 한 세대 동안 지속되었던 제7a기는 BC 13세기경 발생한 화재로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이때의 트로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Iliad〉에 묘사된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의 파괴 이후 약 400년간 이곳은 사실상 버려졌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제8기이며,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일리온은 제9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로마의 전설
트로이의 전설은 그리스·라틴 문학에서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가장 초기의 문학적 증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Odyssey〉에서 주요 이야기는 이미 골격을 갖추고 있다. 〈일리아스〉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일부는 분실된 연작시가 〈키프리아 Cypria〉·〈아이티오피스 Aethiopis〉· 〈소(小) 일리아스 Little Iliad〉· 〈일리오스의 약탈 Sack of Ilios〉에서 나타났으며 개개의 주제들이 나중에, 특히 그리스 희곡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트로이 출신의 용사 아이네아스 이야기는 로마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 Aeneid〉의 제2권에는 트로이 약탈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설명이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딕티스 크레텐시스와 다레스 프리기우스라는 이름의 작가들이 쓴 것으로 통용되는 의사(擬似) 연대기들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테우크로이와 다르다노이라는 이름들이 대체로 '트로이인들'과 같은 말로 사용된다. 그래서 전설은 스카만데르 강의 아들 테우크로스를 트로아스의 첫번째 왕으로 만들었고, 제우스와 엘렉트라(아틀라스의 일곱 딸인 플레이아데스 중의 한 사람)의 아들인 다르다노스를 그의 사위이자 후계자로 삼았다. 다르다노스의 아들 에릭토니오스는 트로스의 아버지이며, 트로이인이라는 말의 기원이 된 트로스에게는 일로스·아사라코스·가니메데스(이다 산에서 제우스에게 납치됨) 등 3형제가 있었다. 일로스는 얼룩소가 알려준 지점에 일리움(트로이)을 건설했으나 이 도시는 그의 아들 라오메돈이 승계했을 당시에 아직 성벽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라오메돈은 성벽을 쌓기 위해 포세이돈과 아폴론 신을 고용했으나 그들이 성벽을 다 쌓은 후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포세이돈은 트로이를 괴롭히기 위해 바다괴물을 보냈으며 헤라클레스는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괴물로부터 구출해냈다. 그러나 라오메돈은 헤라클레스에게 약속했었던 말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와 그의 동료들이 트로이를 약탈하고 라오메돈과 그의 아들들을 살해했다. 이때 막내아들 프리아모스만이 헤시오네가 지불한 보상금으로 석방되었다.
부유하고 강한 왕인 프리아모스는 아내 헤카베와 첩들 사이에서 50명의 아들과 12명의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 파리스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자'를 위한 것이라고 표시해놓은 황금사과를 놓고 아프로디테·헤라·아테나 중에서 누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심판하도록 요구받았다. 아프로디테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었고 그리스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만난 뒤 사랑에 빠져 그녀와 도주하고 말았다. 헬레네를 찾기 위해 그리스인들은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르고스·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총 지휘하에 대원정을 시작했다. 트로이인들은 헬레네를 돌려줄 것을 거절했다. 트로아스 내부와 근처의 작은 도시들이 그리스인에 의해 약탈당했으나 트로이는 소아시아와 트라키아 동맹군의 지원을 받아 10년 동안 포위공격을 견디어냈다. 신들 역시 편이 갈라져서 특히 헤라·아테나·포세이돈은 그리스 편을, 아프로디테(아사라코스의 손자인 트로이 용사 안키세스와의 사이에 아들 아이네아스를 두었음)·아폴론·아레스는 트로이 편을 들었다. 전쟁 10년째에 시작된 이야기인 〈일리아스〉는 아가멤논과 그리스의 가장 훌륭한 용사 아킬레우스 사이의 반목과, 그로 인한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와 프리아모스의 장자 헥토르의 전사를 기록하고 있다.
헥토르가 죽은 뒤에는 두 외국 동맹군인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아와 에티오피아의 왕이자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 멤논이 트로이 편에 가세했다. 아킬레우스가 이들 두 사람을 모두 죽였으나 파리스가 화살로 아킬레우스를 살해했다.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전에 그리스인들은 성채로부터 팔라스 아테나의 목조상(팔라디움)을 훔치고, 렘노스로부터 헤라클레스의 화살과 병든 궁수 필록테테스를, 또 스키로스로부터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피로스)를 데려와야 했는데,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모두 성공적으로 해치웠다. 마침내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에페이오스가 거대한 목마를 완성했다. 여러 명의 그리스 용사들이 목마 안에 숨고, 나머지는 포위공격을 포기한 척하면서 근처의 섬 테네도스로 빠져나갔다.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인들은 탈주자임을 가장한 그리스인 시논의 말만을 믿고 그 목마를 아테나에게 바치는 공물로서 트로이 성벽 안으로 가져왔다. 그 목마를 파괴하려고 애썼던 라오콘 신관(神官)은 바다뱀에게 죽음을 당했다. 밤이 되자 그리스인 함대가 돌아왔고 목마 속에서 나온 그리스인들이 트로이의 성문을 열었다. 뒤이은 철저한 약탈에서 프리아모스와 남아 있던 그의 아들들이 살해당했고, 트로이 여자들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로 가서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스 지도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은 위험하고 종종 비참하기까지 했던 항해여행은 2개의 서사시 〈귀향 Nostoi〉과 〈오디세이아〉에 그려져 있다. 엘렉트라는 자신의 후손에 대한 슬픔 때문에 플레이아데스 성단 중 자신의 별을 가장 희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중세의 전설
중세기 작가들은 호메로스 작품들을 직접 접한 적은 없었지만, 트로이 전설의 영웅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를 자신들 시대의 궁정연애나 기사도적 사랑의 개념과 끼워 맞출 수 있었고 특히 프랑스·영국의 국가 기원을 설명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중세기 판(版)의 주요출처는 딕티스 크레텐시스와 다레스 프리기우스가 쓴 허구적인 전쟁담이었다. 다레스는 서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가 쓴 의사연대기가 트로이 측에 유리하게 기록되었고 몇몇 서구 국가들의 기원이 트로이인 것으로 여겨져서 서구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엑시터 출신의 조지프, 슈타더의 알브레히트, 플릭세쿠르의 장, 워터퍼드의 조프루아, 세르베스 코팔 등이 다레스의 글을 작품의 소재로 이용했지만, 트로이 주제를 이용한 핵심적인 작품은 브누아 드 생트모르가 쓴 프랑스의 로맨스 〈트로이 이야기 Roman de Troie〉(1154~60)이다. 방대한 시(詩)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이아손과 헤라클레스에 의한 최초의 트로이 파괴, 프리아모스에 의한 재건, 파리스의 헬레네 유괴, 트로이의 포위공격과 전쟁들, 영웅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포함한 전후 이야기 등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헬레네와 파리스, 아킬레우스와 플릭세나, 트로일로스와 브리세이다(크레시다) 간의 사랑이야기가 강조되었다. 후일 중세기 작가들은 〈트로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시칠리아의 판사 구이도 델레 콜론네가 1287년경에 라틴어 산문 〈트로이 파멸의 역사 Historia destructionis Troiae〉를 완성하고부터는 이것에서 소재를 얻었다. 구이도의 산문은 오랫동안 독창적인 것으로 명성을 누렸지만 사실은 〈트로이 이야기〉의 축약판이었다.
트로이의 전설은 15세기에 특히 부르고뉴 왕실의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부르고뉴 공 도서실에는 트로이에 관한 필사본이 17개나 소장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구이도의 작품에 기반을 둔 라울 르 페브르의 〈트로이 역사집 Recueil des histoires de Troye〉(1464)은 윌리엄 캑스턴에 의해 영어로 번역·인쇄(1474경)된 최초의 책이 되었다. 또한 구이도 작품의 스페인어·이탈리아어·덴마크어·네덜란드어·스웨덴어·아이슬란드어·체크어 판도 나왔다. 트로이 전설의 인기는 특히 프랑스 문학 같은 중세의 다른 문학에서 전설 자체와 전설 속의 인물·주제가 많이 언급된 데서도 입증된다. 그 주제는 또한 필사본 채색과 태피스트리 등의 중세예술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트로이의 흩어진 영웅들이 몇몇 서구 국가들, 특히 영국과 프랑스를 세웠다는 문학적 또는 심지어 애국적인 전설이 수천 년간 지속되었다. 7세기 중엽에 프랑크족 연대학자 프레데가리우스는 일단의 트로이인들이 트로이 시 파괴 이후 자신들의 왕 프란키오의 지휘 아래 라인 강, 도나우 강, 지중해 사이 지역에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설명했다. 프랑크족의 기원을 트로이인으로 보는 이 최초의 견해는 이후 계속해서 연대학자·계보학자·찬사가 간에 반추되었다. 16세기에도 여전히 끈질기게 남아 있던 이 신화는 장 르메르 드 벨주의 〈갈리아의 삽화와 트로이의 진기함 Illustrations de Gaule et singularites de Troie〉(1510~13)과 롱사르의 민족서사시 〈라 프랑시아드 La Franciade〉(1572)에 영감을 주었다. 영국에서는 영웅 아이네아스의 증손자이자 로마인의 전설적인 시조인 브루투스가 영국인의 시조이면서 트로이아노바(뉴트로이[런던])의 창건자라는 비슷한 전설이 일찍이(9세기 이전) 형성되었다. 저지의 웨이스(바스)가 자신의 작품 〈브루트 이야기 Roman de Brut〉(1155)에서 맥을 이은 이 전설은 셰익스피어의 시대가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트로이전쟁(── 戰爭)/Trojan War
초기 그리스 사람들과 서(西)아나톨리아의 트로이인 사이에 일어난 전설적인 싸움으로 이후의 그리스 작가들은 그 시기를 BC 12세기 또는 BC 13세기경으로 추측했다. 그리스 역사상의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이 전쟁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Iliad〉와 〈오디세이아 Odyssey〉를 위시하여 지금은 없어진 수많은 다른 초기 작품들에서 다루어졌고 고전주의 시대의 훌륭한 극작가들에게도 자주 소재가 되었다. 또한 로마(예를 들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Aeneid〉)와 이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민족문학에서도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설에 따르면, 트로이 왕의 아들인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달아나자 메넬라오스의 형제인 아가멤논이 트로이를 치기 위해 그리스 원정대를 이끌고 간다. 전쟁은 1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리스군이 불시에 습격할 무리를 안에 숨긴 커다란 목마를 남겨놓고 철수를 위장하는 방법을 써서 끝났다. 트로이 사람들이 그 목마를 도시 안으로 들여놓자 그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인들은 자기 편 군대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그리스 군대는 트로이를 약탈하고 남자들을 학살하고 여자들을 데려갔다. 이 설은 수세기 후에 기록되었고 어디까지가 실제 역사상의 사건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4. 참고자료
호메로스적 인간은 주어진 가능성 내에서 자기가 원할 수 있는 최선의 것 이 무엇이며, 그것을 얻기 위하여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서 행동할 뿐, 결코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행동하다가 파멸의 심연 속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호메로스적 인간들은 철저한 현세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술과 고기와 ‘달콤한 잠의 선물’과 잔치와 무도회와 사랑을 마음껏 즐기며, 이러한 물질적 향락에 대한 그들의 쾌감을 조금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세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는다. 예컨대 죽은 아킬레우스(Achilleus)의 혼백은 그를 찾아간 오디세우스에게 저승에서 모든 사자(死者)들의 지배자가 되느니, 차라리 이승에서 아무 재산도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 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호메로스적 인간은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무한히 뻗으려고 하는 하나의 힘이므로, 어쩔 수 없이 외부적인 힘과 충돌하게 된다. 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러한 외부적인 힘들은 인간사에 깊이 개입하여 때로는 인간의 자아 실현을 방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호메로스적 인간에게는 그의 행동이 자의적이냐 타의적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그를 나쁜 인간, 즉 비겁한 인간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훌륭한 인간, 즉 용감한 인간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가 온갖 고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추구해 온 것은 오직 명성뿐이며, 명성만이 모든 것을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참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양심이란 것이 아직 없는 상황에서는 동시대인들과 후세 사람들의 평판만이 유일한 가치 척도이기 때문이다.
서사시는 영웅들의 명성을 영원한 것으로 해 주지만, 그들의 모든 면모가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특성만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서사시는 인간의 보편적인 가능성을 구체화한 원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네스토르(Nestor)는 훌륭한 노인의 원형이고, 아킬레우스(Achilleus)는 훌륭한 젊은이의 원형이다. 또한 개개의 인물들은 나름대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어 한가지 특성은 곧 그들의 다른 면모까지 유추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스군의 총수 아가멤논은 왕자다운 태도를 보일 뿐 아니라 용모도 뛰어나게 수려하고, 테르시테스(Therssites)는 용모도 못났을 뿐 아니라 행동도 비열하다. 이러한 통일성은 서술을 단순화하면서도 등장인물들에게 기념비적 면모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 출처 : 천병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문학과 교육)
참고 문헌
토마스 불핀치(최혁순 역) 그리스 로마 신화 (범우사, 1980)
M. 그랜트 외(김진욱 역),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 (범우사, 1933)
부르노 스넬(김재홍 역), 정신의 발견 (까치, 1994)
이해하기
1. 이 작품에서 오디세우스의 사람됨과 관련된 진술을 모두 찾아, 이를 토대로 오디세우스의 사람됨에 대해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교과서에 수록된 부분에서 오디세우스의 성품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찾도록 하여 오디세우스의 성품에 대해 재구성, 발표해 보도록 지도한다. 이를 통해, 언제나 스스로 문제를 설정,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읽는 습관을 기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임기응변에 능한 사나이', '수많은 사람들의 도시를 보고 그들의 마음가짐을 알았으며, 바다에서는 자신의 목숨과 전우들의 귀향을 구하려다가 마음속으로 많은 고통을 당함', '신과 같은 오디세우스', '지혜에 있어 인간들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넓은 하늘에 사는 불사신들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재물을 바쳤음.' -> 이런 설명들을 종합해 보면, 오디세우스는 지혜롭고 신에 대한 경외심이 깊으며 다른 동료 인간들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가장 모범적인 인간상이라 하겠다.
2. 이 작품의 핵심적인 모티브인 '귀향자' 모티브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작품의 줄거리를 참고하여 설명해보자.
교수·학습 방법 :
줄거리를 참고하면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어떤 이유로 표류하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귀향하게 되었는지 정리한 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추리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행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한 사건으로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 바다를 표류하게 되었다. 표류하면서 갖은 고난을 겪던 그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귀향하게 된다. 고국에서 아내 페넬로페는 수많은 청혼자들로부터 고난을 겪고 있었는데 역시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오디세우스는 다시 왕의 자리를 회복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귀향 과정은 갖은 고난을 겪은 후에 가능해지는데, 이것은 인간의 자아를 발견해나가는 정신적 방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육체적으로 겪는 고난은 정신적 성숙을 동반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이런 상식적 의미를 추리해 볼 수 있다.
3. 이 작품과 같은 이야기 문학의 현대적 양상에 대해서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서사 문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 문학사 관련 자료를 참고하여 정리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유럽 문학에서 서사 문학은 고대의 장편 서사시에서 기원하여 근대의 소설로 발전하게 된다. 서사 문학은 기본적으로 인물과 사건으로 구성되는데, 서사시 단계에서는 운문적 형식을 취했지만 소설 단계에 와서는 완전한 산문적 형식 및 정신에 기초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탐구를 지향하는 문학이 되었다.
4. 오디세우스의 로마식 이름은 율리시스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1922년 '율리시스'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썼고, 1954년 이탈리아의 감독 마리오 카메리니는 '율리시스'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렇게 고전 작품이 다양하게 개작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고전'의 두 가지 의미, 즉 시대적으로 과거의 작품이라는 의미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에게 보편적 정신 세계를 표상하는 정전(正典)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모두에게 정신적으로 모법이 될 만한 가치를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런 힘 때문에 고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재해석, 재창조의 작업이 지속된다.
확장하기
1.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의 ‘오디세이아’는 음송(吟誦)하는 사람들이 시를 낭송할 때 참고로 하기 위해서 간단한 줄거리만 기록해 두는 식이고, 전승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구전(口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간단하게 기록되었던 서사시가 오늘날과 같이 방대한 분량을 가진 서사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구전(구비) 문학은 적층(積層) 문학의 성격도 지닌다는 점을 중심으로 지도한다. 우리의 구비 문학의 사례를 들어 비교하면서 지도하는 방법도 효과적일 것이다.
예시 학생 활동 :
구비 문학은 구전 과정에서 가창자들이 조금씩 내용의 수정 및 첨삭을 하게된다. 오랜 세월 동안 구비 전승되면서 역시 '오디세이아'도 수많은 가창자들에 의해 내용이 첨가되다가 문자의 도움을 빌어 정착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 이 작품에 나타난 신(神)들은 '정의로운 세계의 조정자'로서의 윤리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한편, 사소한 이해 관계에 얽매이기도 한다. 이 작품에 나타난 신들의 도덕성에 대해서 토론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의 성격이 어떻게 설정되는지 찾아보도록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오디세이아'에 나타난 신의 성격에 대해 분석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작품에 나타난 신(神)들은 윤리적으로 모범적인 측면도 지니지만 , 범상한 인간처럼 노여워하고 복수하기도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 나타난 신들 역시 모두 인간적 성품을 지닌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마무리하기
1. 지도방법
고대의 한국 문학 및 세계 문학에 대한 개괄적 지식 및 소단원별로 제시된 작품에 대한 이해, 학습 활동에 대한 이해의 정도 등을 스스로 점검하고, 제시된 '성취 기준'을 활용하여 자신의 학습 성취도를 평가해 보도록 지도한다. 이를 바탕으로'다시 보기'와 '깊이보기'의 활동 가운데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활동을 선택하여 학습하도록 지도한다.
2. 짚어 보기
고대의 한국 문학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으며, 대표적인 작품 및 경향이 어떠했는지 소단원별 작품을 중심으로 내용을 짚어 보도록 한다. 또한 앞서 한 활동들을 각자 나름대로 변형시켜 자문자답(自問自答)해 보는 형식을 취하면서 학습 내용을 검토하도록 지도한다. '고대 한국 문학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 '어떤 장르와 작품이 대표적이었는가', '고대의 설화문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고대 서정 문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당시 세계 문학의 흐름은 어떠했는가'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 답변할 수 있는지 검토해 보도록 지도한다.
3. 평가하기
(1) 평가 목표 및 방법
1. 평가목표 : 한국 문학의 발생에 대하여 이해하는가?
관련단원 : 고대의 문학
예시 문항 : 고대 국가의 제천 의식의 성격 및 문학과의 연관성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예시 답안 : 고대 국가의 제천 의식은 하늘을 숭배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원시 종교 의식이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등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온 국민들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으로 보아 고대의 제천 의식은 원시 종합 예술적 성격을 지녔으며 이 속에는 이야기와 노래로서의 고대 서사 문학과 서정 문학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제천 의식은 문화의 모태 구실을 한 것이다.
2. 평가목표 : 고대의 서정 문학과 서사 문학의 성격을 이해하는가?
관련단원 : (1) 구지가, (2) 단군신화
예시 문항 : 주몽 신화를 찾아 읽고, 단군 신화와 주몽 신화를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해 보자.
예시답안
3. 평가 목표 : 이 시기의 세계 문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한국 문학과의 교섭 양상을 이해하는가?
관련 단원 : (3) 오디세이아
예시 문항 : 고대의 세계 문학의 흐름에 대해 말해 보자.
예시 답안 : 고대의 세계 문학은 고대 문명 발생지별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중국은 <시경>, <논어>등이 편찬되면서 후대 문학의 근원을 형성하였고, 일본은 중국과 우리나라를 통해 문물을 받아들인 후 <고사기>, <만엽집>등을 편찬하였다. 인도는 브라만의 종교 문학과 철학적 성격의 작품들이 형성되었다. 아랍은 마호메트의 경전 <코란>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아랍 서사 문학을 대표하는‘아라비안 나이트’의 원형이 갖추어졌다. 그리스·로마 문학은 신화 시대를 거치면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및 소포클레스의 비극 등이 꽃을 피웠다. 역시 서양 문학의 원형을 형성하였다.
(2) 평가상의 유의점 및 활동 방안
평가 목표에 따라 학습 활동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게 한다. 주어진 목표와 관련된 예시 문항을 읽고 수수로 평가하거나 친구와 서로 평가하며 O, X로 평가란에 채워 넣는다. 결과적으로 성취 기준 2개 이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깊이 보기'로, 성취 기준 1개 이하를 이해하는데 그치고 있다면 '다시 보기'의 활동을 선택하여 학습하도록 지도한다. 이때 학생 개인의 의사 존중하여 다음 활동을 하도록 한다.
1. 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黃鳥歌)'의 배경 설화이다. 글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황조가'를 개인적 감정을 노래한 서정시로 보고 작품의 의미를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이 문제는 '황조가'를 고대 서정가요의 발전 과정상에서 개인적 서정시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는 관점과 연관된다. 따라서 고대 서정가요의 발전 과정을 고려하여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가 무엇일지 추리하여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작품의 작가인 유리왕의 시대는 수렵 시대에서 농경 시대로 변화하던 시대이다. '화희'와 '치희'는 각각 농경 부족과 수렵 부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화(禾)'가 벼, '치(稚)'가 꿩이란 사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유리왕은 농경 부족과 수렵부족의 융합 속에서 국가의 발전을 꾀하려 했는데, 둘 사이에 불화가 깊어져 드디어는 수렵부족이 떠나자 이를 개탄하면서 '황조가'를 지은 것이라 볼 수도 있다.
2. 고구려의 건국 신화인 '주몽신화(朱蒙神話)'의 앞부분이다. 글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주몽의 탄생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주몽의 탄생 과정을 설명해주는 부분을 중심으로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말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주몽은 유화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 사람이 알을 낳으니 괴이하다 하여 모두 버리려 했으나 개와 대지, 소와 말, 자연 모두가 그 알을 경외하였다. 알을 깨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처럼 주몽은 신성성을 지닌 존재란 점, 그리고 다른 신화와 비교해도 유일하게 '사람이 낳은 알'에서 태어난 존재란 점에서 특이하다.
(2) 이 이야기의 신화로서의 특성을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교과서 60쪽에 제시된 신화의 특성을 참고하면서 어떤 점에서 이 이야기가 신화인지 정리하여 설명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신이(神異)한 배경 속에서 태어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 다른 등장인물들도 신적이며 일어나는 사건 또한 신 이하 다는 점에서 신화적 특성을 보여 준다.
(3) '단군 신화'와 '주몽 신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앞서 배운 “단군 신화”와 비교하면서 신화로서의 공통점과 세부 내용상의 차이점을 검토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공통점 - 하늘을 중시하는 관념 : 건국 시조의 부계 혈통을 천신(天神)으로 설정, 이는 우리민족이 하늘을 생명과 권위의 원천으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 인간 중심적인 사고 : 건국 시조인 단군이나 주몽 등은 모두 인간으로 태어나며, 하늘이 아니라 인간 세상을 위하여 존재한다.
·차이점 - 갈등 구조의 유무 : ‘단군 신화’에는 주인공이 시련을 이겨내는 갈등의 구조가 없다. 이에 비해 ‘주몽 신화’는 지속적인 갈등 구조가 나타나 있다.
- 국가 이념의 유무 : ‘단군 신화’에는 홍익 인간이라는 뚜렷한 건국 이념이 있으나 ‘주몽 신화’에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천손하강 과정의 차이 : '단군 신화'에서 단군은 환웅(천신)이 지상계(곰 토템족)와 결합하여 '알'로 출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4) 이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상상하여 이어 써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주몽 신화'는 후대 영웅 소설의 모태가 될 정도로 그 구성의 박진감이 뛰어나다. 즉, ‘주몽 신화’의 갈등 구조는 뛰어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을 해 봄으로써 고전 소설은 물론 서사 문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활동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주몽 신화'전편을 찾아 그대로 모방하기보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주몽'이 위기를 극복하고 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을 상상력을 발휘, 재구성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주몽이 여윈 말, 사실은 좋은 말을 데리고 집을 떠난 후 어느 날, 왕은 살진 말, 사실은 나쁜 말을 타고 명마 대회에 참여하게 된다. 전국의 왕들이 모여 자기가 기른 명마를 뽐내며 기수로 하여금 명마 대회를 벌이는데 왕의 말은 몸이 둔하고 느린 터라 꼴찌를 하고 만다. 왕이 이에 격분하는 순간, 1등을 차지한 말과 기수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역시 주몽은 대단해."하는 웅성거림을 듣게 되는데······.
깊이 보기
교과서 71~72쪽
1. 시를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 백수광부의 아내,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작품 해제 :
관련 설화를 참고할 때 이 작품에서 '임'은 '백수광부(白首狂夫)'를 의미하며 이 작품의 화자는 그의 아내라 볼 수 있다. 이 노래는 물에 빠져 죽은 미친 남편 앞에서 그의 아내가 애통해하면서 부른 것으로, 간결하면서도 직정적(直情的)인 표현 속에 한 여인의 비극적 정황이 거침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는 피안(彼岸)과 차안(此岸),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임과의 합일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원시적·집단적 서정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 가요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적 작품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여기서 '물'은 임과의 이별을 낳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또한 임과의 영원한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것은 강물이 '나'와 '임'의 사별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 '나'가 임을 따라 죽음으로써 재결합하게 되는 매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1행이 이별의 의미를 지닌 '물'을 표현한 부분이라면 3행 이후는 영원한 재결합을 표현한 부분이다.
(1) 이 작품의 배경 설화를 조사해 보고, 이 작품이 문학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고대 문학의 발전 단계와 관련해 이 작품이 지니는 의미, 이 작품에서 나타난 상징들이 문학사적으로 어떻게 계승되는지 찾아보도록 하여 문학사적 의미를 말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노래는 '황조가'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서정 가요로, '구지가'와 같은 원시 고대 문학의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 가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이 시에 나타난 '물'의 상징성은 이후 나타나는 이별가류, 즉 '서경별곡', '송인' 등의 모형이 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2) 이 작품에 나타난 '물'의 이미지를 설명해 보고, 이런 물의 이미지가 고려 가요 '서경별 곡', 정지상의 '송인(送人)', 조선 시대의 시조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조사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학습 활동 (1)에서 미리 조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나타난 '물'의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발표해 보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작품에서 '물'은 이별의 공간이자 계기이며 영원한 만남을 낳는 의미를 지닌다.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죽음으로써 이별하게 되며, 그의 아내가 물에 빠져 죽음으로써 다시 그들이 죽음을 넘어 영원한 결합을 하게 된다. 이 같은 의미를 지니는 '물'은 '서경별곡'이나 '송인', 그리고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 등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서경별곡' 등의 작품에서는 이별의 슬픔을 상징하는 것으로만 나타날 뿐 영원한 만남의 계기까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2. 글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줄거리 :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나라 안에 악역(惡疫)이 유행할 때, 선왕(先王)을 살해한 범인을 추방해야 된다는 신탁(神託)에 따라 그 범인 색출에 전력을 기울인다. 왕은 한때, 집정(執政)인 크레온을 의심하지만,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예언과 선왕의 왕비이며 자신의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설명을 들은 뒤로는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한 의혹이 깊어져 간다.
코린토스의 사자(使者)의 말, 자신이 테베에 들어오기 직전에 저지른 살인,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스러운 예언, 그리고 선왕의 아들을 버린 양치기의 증언으로 마침내 자신이, 바로 운명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운명의 그물에 사로잡힌 존재로서, 아버지인 선왕을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극도의 절망 상태에 빠진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자신의 눈알을 뽑아내고,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살한다.
작품 해제 :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것' 이라는 숙명적 신탁 때문에 깊은 숲 속에 버려지지만 결국 그 운명의 실현을 보게 되는 오이디푸스 왕 신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분석극이기 때문에 작품의 시작은 살인 사건이 이미 발생한 다음부터이며, 왕 자신이 범인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여섯 단계로 나뉘어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개된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신적 진실 앞에서 겸허하게 행동하는 순간, 곧바로 참 자유를 누리게 된다.
작가 소개 :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B.C. 406) :
BC 496경 그리스 아테네 근처 콜로노스~BC 406 아테네 생으로 아이스킬로스 및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
그는 123편의 희곡을 썼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7편뿐이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 Oedipus Tyrannus〉이다. 소포클레스는 고향 아테네가 문학적·정치적·경제적으로 절정을 향하여 발전해가고 있던 BC 5세기에, 복잡하고 모순된 경험을 고대 그리스의 다른 어떤 극작가들(위대한 동료 비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를 포함하여)보다 깊은 통찰력을 갖고 심오하게 표현했다. 그는 희곡을 통하여 긴 생애 동안 최고의 존경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고전문명의 본질적인 요소를 영원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연극으로 바꾸었다.
공직생활
소포클레스가 태어난 BC 496년경에 아테네 사람들은 불과 12년 전부터 새로운 형태의 제한된 민주정치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BC 406년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힘을 합쳐 이 도시의 상업적·제국주의적 '폭정'을 뒤엎으려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세력에 굴복하려 하고 있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도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포클레스는 마지막 희곡인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Oidipous Epi Kolono〉에서 아테네 성벽 밖에 있는 고향마을 콜로노스와 대도시 아테네(당시 아테네는 BC 431년에 스파르타와 긴 전쟁을 시작하기 전으로, 아직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음)를 찬양했다. 아테네와 그 도시의 이상에 대한 소포클레스의 믿음은 아테네가 고통과 패배를 당하고 있을 때도 외국으로 이주하여 궁정에서 살라는 외국 왕들의 초청을 단호히 거절했다는 고대의 기록이 실증한다.
소포클레스가 청년이었을 때 일어난 사건이 그의 미래를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몸매가 아름다웠고 운동능력이 뛰어났으며 음악에도 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16세 때인 BC 480년에 그리스가 페르시아군과의 살라미스 해전에서 거둔 결정적 승리를 축하하는 찬가(신에게 바치는 정식 합창곡)를 지휘할 사람으로 선발되었다.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그후 50년 동안 안전을 확보했고 거대한 사업과 바다를 통한 팽창 및 문화적 업적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런 아테네 역사의 전환기에 소포클레스는 이미 공동체 행사와 종교의식에 적극 참여하고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여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의 시민생활에 관한 정보는 비교적 부족하지만 모든 정보가 이것과 일치한다. BC 442년에 그는 아테네 제국의 속국인 약 300여 개 나라에서 공물로 바치는 돈을 받아 관리하는 출납관으로 일했다. BC 440년에 그는 10명의 장군(군대 사령관인 동시에 고위 행정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혔다. 그리고 당시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페리클레스(?~BC 429)의 동료로서, 망설이고 있는 '동맹국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원정에 참여했다. 그는 그후에도 2번쯤 장군으로 일했을 것이다. BC 421년경에는 한 군소신인 의술의 신을 기리는 종교단체의 사제로 활동하면서, 신성한 의사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쳐진 뱀을 건축중인 신전이 완성될 때까지 자기 집에서 맡아 보관했다. BC 413년 83세의 소포클레스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은 10명의 자문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서 참패한 아테네의 경제 회복과 국내질서 회복을 계획하는 일을 맡았다.
소포클레스의 생애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은 이런 몇 가지 사실뿐이다. 이 사실들은 소포클레스가 아테네와 그 도시의 정치·종교·사회 형태에 대해 뚜렷하고 확고하며 진지한 애착을 가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일부 학자들은 BC 5세기에 이루어진 아테네의 세력팽창과 당파싸움 및 문화적 격변에 내재하는 문제들도 소포클레스를 전혀 괴롭히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고대 작가들의 말을 인용하여, 소포클레스의 성품은 '상냥'하고 '차분'했으며 관점은 (반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정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쓴 비극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이런 결론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포클레스는 부유한 집안(그의 아버지는 갑옷 제조업자로 추정됨)에서 태어난 유한계급의 신사였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우아함과 매력으로 유명한 세련된 사교가였고, 귀족 가문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으며 보수적인 정치가 키몬이나 애국적 역사가인 헤로도토스 같은 사람들의 친구였고, 자식복도 있었으며(그의 아들 가운데 하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존경받는 비극작가가 되었음), 고대인이 말했듯이 아테네가 BC 404년에 마지막으로 항복하기 전에 '운 좋게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희곡들을 보면, 이런 사실과 그밖의 알려진 사실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실도 소포클레스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어떻게 느꼈으며 정치나 국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증명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테네의 영광을 기뻐한 사람이 〈안티고네 Antigone〉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결을 꾀하거나 〈아이아스 Aias〉에서 그리스 지도자들에 대한 아이아스의 증오심을 표현한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또한 단순히 '상냥'한 사람이 타락한 오이디푸스나 사회에서 따돌림받는 불건전한 필록테테스나 비통하게 울부짖는 엘렉트라 같은 등장인물을 창조할 수 있었다는 것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비극
결국 소포클레스의 생애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그가 쓴 비극이다. 그는 아테네에서 해마다 열리는 디오니소스 대축제에서 상연할 희곡을 쓰고, 연극에 삽입할 음악과 무용을 고안하고, 그의 연극에 출연할 모든 배우와 합창단원들을 지휘하고 훈련시켰으며, 때로는 직접 역을 맡아 연극에 출연하면서 생애의 마지막까지 65년을 보냈다. 그는 28세 때인 BC 468년에 축제용 극작 경연대회에서 위대한 아이스킬로스를 물리쳤고, BC 450년까지 계속해서 24편의 희곡을 썼다. 그리고 그때쯤 그는 이미 전통적 비극 형식을 부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는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형식을 각각 완전한 형식을 갖춘 3편의 희곡으로 바꾸었고, 아이스킬로스는 대사를 말하는 배우 2명을 채택했지만, 그는 여기에 3번째 배우를 추가하여 극적 갈등의 범위를 넓혔고, 합창단의 비중을 줄였다. 이러한 혁신은 비극의 근본적인 기법과 격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혁신을 통하여 소포클레스는 그의 독특한 표현수단, 즉 응집력과 지속적 긴장감을 지닌 상황 속에서 다양한 성격묘사와 의미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1시간 남짓한 복합극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Poetics〉(BC 335경)에서 소포클레스를 다른 비극작가들보다 높이 평가하고 〈오이디푸스 왕〉을 그의 대표작으로 선정한 것은 바로 이처럼 완벽한 형식 때문이다.
소포클레스는 축제를 위해 통틀어 123편의 희곡을 썼다. 축제용 극작 경연대회에 참가하도록 선발된 작가들은 한 번의 축제에 각각 4편씩의 희곡을 상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그는 30여 차례나 대회에 참여한 것이 분명하다.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그는 유명한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창조적이었다. 그는 동시대인이면서 그보다 선배인 아이스킬로스나 후배인 에우리피데스보다 훨씬 오래 활동했다. 그는 더 많은 작품을 썼고, 두 사람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아이스킬로스는 13번 정도였고, 에우리피데스는 5번이었던 반면, 그는 무려 24번이나 우승했음). 그리고 당시는 문학과 그밖의 예술이 전무후무할 만큼 화려하게 꽃핀 시대였다. 그가 쓴 비극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7편뿐이다(그밖에 절반만 남아 있는 가벼운 사티로스 극, 단편 일부, 그리고 90개의 제목이 남아 있음). 이 작품들은 소포클레스의 내적 경험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그의 태도와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각 작품이 언제 씌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면, 그의 발달 과정을 순서대로 개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2~3편의 작품에 대해서만 상당히 확실한 제작 연도가 알려져 있고, 이들 작품은 변화나 발전보다는 변함없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일부 학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소포클레스의 작품 7편의 관점은 모두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소포클레스의 주요주제는 위기, 특히 고통이나 그 고통의 절정인 죽음의 위기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불행과 고통 및 죽음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슬프지도' 않고 무의미하지도 않다. 불행과 고통 및 죽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거짓된 삶에서 진정한 삶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낳거나 변화의 조짐이 된다. 죽음 같은 고통(정신이나 육체의 고통, 또는 정신과 육체의 고통)은 더 커진 이해력과 더불어 '재생'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디오니소스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 황홀경과 번식 및 성장의 변형력(디오니소스 연극 대축제 자체가 이 힘을 찬양하는 축제였음)과 비슷하다. 이것은 또한 가까운 엘레우시스에서 열린 신비의식(비밀의식과 환상)의 정신적 기본내용과도 비슷하다. 소포클레스는 이 신비의식에 입회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우주
소포클레스의 희곡은 (신이나 자연력의 작용보다) 대표적인 인간상들간의 상호작용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등장인물과 관객을 시작과 변화의 과정 속에 끌어들인다. 그러나 전체적인 전개나 유형은 많은 등장인물(그리고 관객)의 경험뿐만 아니라 각 희곡의 형태를 낳은 바탕이기 때문에, 인간상 자체보다 더 근원적이다. 이 역동적 유형은 소포클레스가 생각했듯이 우주 전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세계관, 또는 우주관은 그리스도교나 근대과학의 우주관을 비롯한 어떤 우주관과도 다르며, '신'이나 '역사', 또는 '물질'이나 '운명'과 비슷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다. 그의 우주관은 다원적('신성'·'시간'·'자연'·'필연성' 같은 다양한 힘의 상호작용, 또는 다양한 힘 사이에 생기는 긴장관계)이다. 우주는 이런 힘들이 질서 있게 조정되거나 율동적인 일정한 형태를 이루는 것이며, 여기에서 비극의 줄거리에 기본적으로 내재해 있는 기쁨과 절망, 삶과 죽음의 엇갈림이 나온다. 이 우주는 근대적 관점에서 보면 '신적'인 동시에 '자연적'이고, '비개인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다. 우주를 응집력 있는 하나의 통일체로 보든 추진력으로 보든 우주는 영속성을 갖고 있다. 희곡에서 우주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신들이다. 신들은 영원한 힘과 현실의 구조를 구현한 화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이런 힘과 구조에서 차단되어 있고 시간과 변화 및 고통과 죽음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어두운 무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우주의 질서와 확실하게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간과 고통 및 죽음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소포클레스가 쓴 비극의 주요주제이다.
7편의 비극은 각각 이 과정의 한 단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과정 전체도 어렴풋이 보여준다. 주인공은 줄거리 속에서 일찍 죽을 수도 있다(아이아스나 안티고네처럼). 주인공이 죽은 뒤, 희곡의 대부분은 그 죽음이 등장인물을 어떻게 정당화했으며, 그것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살아남은 사람들(관객을 포함하여)에게 어떻게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또는 고통이 갑자기 출현하여 비극적인 결말을 맺을 때까지의 사건전개와 동기의 뒤섞임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도 있다(〈오이디푸스 왕〉, 〈트라키스의 여인들〉·〈안티고네〉의 크레온). 또는 불행하게 지속되다가 마침내 잔인하지만 꼭 필요하고 정당한 행동으로 끝나는 과정을 보여줄 수도 있다(〈오이디푸스 왕〉의 끝부분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전체에서 오이디푸스가 한 행동, 〈엘렉트라〉·〈필록테테스〉).
죽음
우주의 작용은 생명을 낳고 인간성을 성취하지만, 항상 죽음과 고통으로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에 두렵다. 소포클레스의 어떤 등장인물들은 당연히 끔찍한 시련을 피하려고 애쓰며, 어떤 등장인물들은 거기에 압도당한다. 또 어떤 등장인물들은 적어도 어느 정도 그 시련에 맞서서 대항한다(오이디푸스, 안티고네, 필록테테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시련에 대항해도, 주인공(그리고 일부 조역들)은 결국에는 모두 죽는다. 데이아네이라, 이오카스테, 에우리디케, 하이몬, 그리고 콜로노스의 신성한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오이디푸스처럼 대다수의 주인공은 육체적으로 죽는다. 또한 다른 주인공들은 상징적으로 죽는다. 예를 들어 동생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 엘렉트라, 자기 섬에 남겨질 것을 죽기보다 더 두려워하는 필록테테스, 아들과 아내를 잃은 크레온,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고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는 오이디푸스가 그런 주인공이다. 그리고 적어도 두 사람은 상징적으로 죽는 동시에 육체적으로도 죽는다. 굴욕적으로 체면을 잃은 아이아스의 삶은 살 가치가 없어지지만, 그는 자살을 통해 고귀해진다.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부당한 포고령에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은 결국 감옥에서의 자살을 예시해준다.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 '죽음'은 가장 의지가 확고한 등장인물의 예상도 초월하여 나타나는데, 이것은 진리와 보다 더 가깝게 접촉하여 자아의 새로운 영역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방법에 있어서 죽음은 '삶'의 포기에 의해 더 진실한 인간, 보다 더 본질적인 자아를 뜻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아를 초월하여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증거가 된다. 오이디푸스와 아이아스 및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주인공들은 불의 시련을 겪는 인류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불 속에서는 모든 점에서 더 커진 인물이 나온다. 불의 시련을 이겨낸 사람은 더 사납고 더 부드러우며, 더 강인하고 더 복잡하고 더 잔인하고 더 고귀해진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은 사실상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 그들은 '신화적' 자아가 된 것이다.
신화적 진리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신화는 진리를 상징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 전체의 신화나 유형을 배우고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지식과 수용은 일찍이 주인공을 좌절시킨 가혹한 경험을 분명히 설명해준다(필록테테스, 2편의 희곡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헤라클레스, 그리고 어느 정도는 〈트라키스의 여인들〉에 나오는 데이아네이라). 또는 신화적 유형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에만 분명히 드러나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관객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만 특정한 등장인물은 그 신화적 유형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아이아스, 엘렉트라, 안티고네). 예언자들과 신탁은 모든 희곡에서 이 신화적 진실을 밝힌다. 게다가 소포클레스의 모든 비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우주의 작용은 그것의 신화적 유형과 동등하다. 그러나 소포클레스가 전통적인 이야기들을 얼마나 자유롭게 각색하여 희곡을 만들었으며, 그가 생각해내어 이용한 신화가 그 자신의 특정한 주제와 어떻게 뒤얽혀 있고, 겉으로 드러난 '줄거리'의 윤곽을 제시하기는커녕 그 가닥조차 잡을 수 없을 만큼 다층적인 희곡을 낳았는가를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등장인물들이 본질적·신화적 자아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소포클레스가 상상해낸 오이디푸스는 전설에 나오는 모순된 '오이디푸스'('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가장 비참한 인간',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 장님, 폭군, 왕, 범죄자, 추방자)이지만, 동시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공격적이면서도 너그럽고, 오만하고, 진리에 몰두하고, 열정적인 인물)가 되었다.
자유와 책임
소포클레스의 등장인물들은 우주를 분열시키는 작용과 맞선다. 따라서 우주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소포클레스의 견해나 모든 장면에서 서로 생생하게 대결하는 개인들이 어느 정도의 자유와 자율성 및 책임을 갖느냐에 대한 그의 견해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소포클레스는 이런 문제들을 제거하는 대신 극화하고 싶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가정일 것이다. 그의 비극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는 뚜렷이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가 자유 행위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와 보편적 원리, 도덕적 특성, 사회적 역할 따위를 보여주는 '전형'이기도 하다. 소포클레스에게는 자유로운 결정과 우주의 필연성 사이에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의 확대(BC 460년대 이후)와 더불어 개인의 자율성도 발전했을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자율성을 무대로 가져왔다. 그러나 그는 신성한 사회적 진리가 참신함과 다양성 및 개성으로 인해 희미해지는 것을 보는 대신,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영원히 새로운 그 진리의 의미를 재발견했다. 그의 우주는 결국 인간을 배제하지 않고 인간을 포함한다. 신이나 사실이 인간에게 아무리 이질적으로 여겨지고 잔인해 보일지라도, 그것의 진리는 인간 존재의 신비로운 책임을 가리키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숙명이 마치 외부에서 강제로 부과된 것인 양 숙명을 피해 달아났다. 그러나 그는 그 숙명이 자신의 현실임을 깨닫는다. 인간은 진실을 자기 '밖'에 놓고 우주와 싸움으로써 진실에서 벗어난다. 인간이 단순히 '개인'이나 '자아'라면, 이 싸움은 인간을 파멸시킬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이 싸움이 자아를 파괴하지만 그럼으로써 파괴할 수 없는 정신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포클레스가 죽은 뒤에 초연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이 점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는 불행과 쇠약과 고통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이 곤경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가 다시 태어난 것을 알려주는 징후는 말하는 능력(설득·명령·예언)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는 새로 얻은 인식을 통해 다른 모든 사람들 위에 우뚝 서서, 길을 '보고' 비밀 장소로 다른 사람들을 안내한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자, 오이디푸스는 영원한 수호신으로 그를 바꾸어줄 초자연적인 죽음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태도와 성격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대한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면, 소포클레스라는 인물에 대한 몇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게 된다.
정치와 공동체
소포클레스의 희곡 가운데 당시의 문제를 당파적으로 편협하게 다루거나 정치적 의도에 짜맞춘 작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몇 가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그의 희곡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은 개인, 국내 관계, 정부와 사회, 그리고 우주의 전체 질서라는 유기적 통일체에 바탕을 둔 아테네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정화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을 찬탈하거나 남용하는 것, 또는 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이 친밀한 통일체를 어지럽힌다. 그러나 소포클레스는 똑같이 타당한 수많은 의견들을 '민주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대다수의 사람은 지혜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항상 무지와 착각 및 어리석음과 충돌하는 진리를 제시한다. 그의 희곡에는 생각과 계획, 결정 및 의사 전달의 결점과 실수(남의 판단을 그르치는 보고와 믿을 수 없는 소문, 거짓된 낙관론, 광기, 성급한 판단)를 극화한 장면이 많다. 이것은 대중이 정책을 결정하고 사법권을 행사하는 아테네 체제의 약점과 인간 지식의 한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포클레스는 힘없는 사람들의 비참함과 전쟁의 공포, 노예 상태, 폭정 및 배신의 공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평화주의자나 노예 제도 폐지론자가 아니었고 급진적 민주주의자도 결코 아니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과 연민 및 동정 따위의 '사회적' 미덕은 그의 희곡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가치가 아니다. 소포클레스가 특정한 사건들(그가 직접 참여한 사건들조차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삶의 불행이 나오는 원천을 정치 체제가 아닌 다른 곳에 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정치적 혁신을 통해 삶의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의 우주와 그가 쓴 비극은 BC 5세기의 그리스 세계와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무자비한 권력투쟁, 인물과 국가의 예측할 수 없는 부침(浮沈), 그리고 행복은 논리적 계산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인으로서의 소명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비영리적이고 종교적인 행사였지만 경쟁이 치열했다. 일부 학자들은 소포클레스가 주로 '연극인'으로서 이 축제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가장 큰 희곡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쓴 비극은 아이스킬로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일부 작품보다는 대중의 지지에 노골적으로 호소하지 않는 듯하고, '오락적'일 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교훈적'이었다. 소포클레스는 비극이 관객에게 삶의 매우 중요한 지혜를 주어야 한다고 믿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예술로써 자연을 대체하거나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로 보지 않았으며, 그 자신을 압도하는 우주적 질서의 산물로 여겼다. 그는 예언자나 신탁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뛰어넘는 어떤 힘의 대변자 그러나 극작 기법에 관한 이론적 논문까지 쓴 자유롭고 자율적인 대변자였고, 그 힘은 그의 세계관을 완전히 표현하는 복잡하고 율동적이며 건축학적인 구조를 가진 언어로 표현되었다. 소포클레스가 언젠가 예술의 여신인 뮤즈를 기리는 문학 단체를 결성했을 때, 그는 시에 영감을 주는 힘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인간 정신의 힘에 대한 헌신을 강력히 주장했던 것이 분명하다. 시에 대한 소포클레스의 개념에서 인간과 우주는 상호 의존적이다. 인간의 언어는 진리의 영역 속에서 살 수 있고,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여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인간의 본질적 자아를 지적할 수 있다. 문헌에 기록된 소포클레스의 마지막 활동은 BC 406년에 디오니소스 축제가 열리기 전에 죽은 경쟁자 에우리피데스의 공개 장례식에서 합창단을 지휘한 것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소포클레스다운 일이었다. 소포클레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시극에서 이룩한 업적만이 아니라 시극 자체에 대한 헌신을 강조했다.
종교
소포클레스의 종교적 태도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인도주의자라고 부르고, 다른 학자들은 그를 정통적이고 경건한 신앙인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현실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그의 인식에 비추어보면, 이런 해석은 둘다 적절하지 않다. 그의 희곡들은 우주의 신성에 경의를 표한다. 극작가로서 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종교(그리고 특히 디오니소스 숭배)에 봉사하고 있었다. 그가(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평생 동안 종교의식에 헌신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기록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를 기리는 신전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에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봉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 자신이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그의 희곡들은 비록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탁소의 신탁이 진실이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어떤 특정한 숭배 대상이나 신을 존경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실제로 그의 희곡들은 인간의 정의 및 미덕과 신의 관계가 갖는 모든 다의성을 극화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근대 용어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고대 그리스 고유의 포괄적 종교에 몰두해 있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영원한 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았지만, 그 힘 앞에 굴복하지는 않았다.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신비주의자도 아닌 소포클레스는 아테네라는 지역에 한정된 자신의 삶 전체로 신성을 인정했다. 그는 초자연적인 미지의 힘을 자신의 질서정연한 우주 속에 받아들였다. 그는 이따금 완전하고 숭고한 조화를 낳는 삶과 죽음의 뒤틀린 엇갈림에 경의를 표했다. 숙명론자도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모든 것을 체념하지도 않았던 그는 잔인한 필연성 속에서 인간의 성취를 발견했다.
성격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드러나 있는 인간은 고대인과 현대인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을 인상적으로 풍부하게 집대성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희곡의 예술적 기교와 제어 장치가 그 속에 내재하는 기본적인 원동력이나 어둠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듯, 소포클레스의 외적인 침착함 및 냉정함과 내적인 엄격함 및 열정 사이에는 사실상 모순된 관계가 존재한다. 그의 희곡들은 오랫동안 일관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존경을 정당화하지만, 곤혹스러울 정도의 다양성은 그가 모든 각도에서 경험을 관찰하고자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희곡은 그가 본래 긍정적인 인물이라는 전통적 의견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희곡의 줄거리에는 완전한 고통과 절망이 드러나 있어서, 그가 '정통파'라면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악덕에도 불구하고 그가 강한 개인적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평정'하다면, 그것은 죽음과 고통이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실제로 직면한 뒤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평정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T. Woodard 글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1) 이 작품에 나타난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성격의 차이를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교과서에 제시된 부분에서 알 수 있는 바를 바탕으로 하면서, 작품 전체를 찾아 읽어보고 두 인물의 성격을 종합하여 그 성격 차이를 설명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오이디푸스는 상당히 지혜롭고 용기 있는 인물이며, 교과서에 제시된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궁금한 문제는 그 어떤 것이라도 해명하고자 하는 집요함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이오카스테는 뛰어난 외모에 고운 마음씨를 지니고 있지만, 운명적 비극이 밝혀질까 노심초사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오이디푸스를 막지 못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2)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그 사람을 죽이고, 자기 어머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여인과 결혼한'오이디푸스'의 행위가 상징하는 바에 대해서 토론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여 작용하는 운명이 신의 의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그리스인들의 세계관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오이디푸스의 행위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 행위, 즉 신의 의지가 개입한 행위라는 점에서 매우 비극적이다. 이것은 신의 의지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이 작품의 내용을 세계 문학의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이 시대의 유럽 문학이나 중국 문학, 인도 문학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비교 문학적인 시각에서 이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도록 지도한다. 즉, 다른 문명 지역의 문학들의 흐름과 비교하여 이 작품의 가치를 설명하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작품은 매우 충격적이며 상징적인 사건을 제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건의 원인이 신의 의지에 있다는 관점은 실상 중국이나 한국 문학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작품은 그리스·로마인들의 특수성을 반영한 작품이라 평가 할 수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을 제재로 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을 보아도 이런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오만함과 잘못을 깨닫고 신적 진실 앞에서 겸허한 행동을 하는 것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는 보편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즉 오이디푸스가 육신의 눈을 잃었지만 마음의 눈을 얻은 것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다.
운명과 관련된 작품
김동리의 '역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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