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롯 유다에 대한 증언(證言) / 요점정리 - 백도기
by 송화은율작자소개
백도기(白道基: 1939- )
전북 군산 출생. 서라벌 예대 중퇴. 한국 신학대학 졸업. 1969년 단편 <어떤 행렬(行列)>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그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 사회적 조건에 대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닌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불타는 제물>, <청동(靑銅)의 뱀>, <등잔>, <가롯 유다에 대한 증언>, <바벨의 소리>, <가시떨기나무>, <우리들의 불꽃>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가롯 유다에 대한 증언>은 1979년 <전망사>에서 발간된 전작 장편 소설로서, 신약의 재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을 시므온이라는 성전 판매소 상인이었던 자가 삼십 년 전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된 작품이다.
그는 유다와 동향 친구였고 대제관 안나스 및 가바야와 유다를 연결짓는 역할을 했다. 예수의 행적을 관찰하고 유다의 내면을 엿보고 안나스와 가바야들의 형태에 접할 수 있도록 설정된 이 시므온이라는 인물이야말로 이 소설의 구조적 지주인 셈이다. 이 시므온이 살아 있는 성경으로 그려졌다는 점은 이 소설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된다.
시므온에 의하면 당대의 유대는, '신다운 신이 없는 세상'이었다. 로마의 식민지 유대의 민중은 로마에 수탈당하고 유대를 지배하는 한 줌도 안 되는 특권층에 억압받고 착취당해 '기아 선상에서 헤매며 갈 바를 몰라 정처 없이 방황'한다. 야훼라는 이름의 신은 죽었거나 없다. 있는 것은 로마와 결탁하여 민중을 착취하며 야훼라는 이름으로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타락한 유대교의 성전뿐이었다.
시므온은 '신이 없는 세상의 혼란'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5년이나 성전 판매소의 상인으로 일하면서 그에게 맡겨진 임무를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러울 만큼 지혜롭게 잘 처리'해 온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교활한 소시민적 이기주의자이다. 그런 자가 안나스의 밀명으로 예수의 행적을 감시하고 유다와 접촉하게 되면서 점차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띠게 된다.
유다는 엄준한 도덕주의자이며 민족 해방을 추구하는 혁명적 민족주의자이다. 그는 인간의 힘으로 '이 멸망의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예수의 방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유다가 정의의 윤리에 입각해 있다면, 예수는 사랑의 윤리 그 자체이다. 유다의 예수에 대한 기대는 유다만의 것이 아니다. 갈릴리에서, 그리고 뒤에는 유월절에 즈음한 예루살렘에서 민중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유대 민족에게 해방을 가져다 줄 정치적 메시아로 환영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 기대를 부정한다. 그 그대는 정의의 윤리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고 예수의 방법은 사랑의 윤리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윤리에 의하면 '사랑만이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이며 힘'이고, 예수는 이 사랑을 '이 세계의 모든 불행한 이들'에게 전해 주려고 온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스스로 속죄양으로서의 죽음에 이르는 길을 준비하고 그 길을 걸어간다.
여기서 정의와 사랑의 문제가 하나의 문제로서 분명히 제기된다. 그런데 작가 백도기는 그 두 윤리의 대립 갈등을 더 밀고 나가서 그 대립 갈등의 깊숙히에 있는 신의 현현(顯現)을 탐색하지 않고 사랑의 윤리의 우위에 의해 그 대립 갈등을 해결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식의 해결은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와 유다를 작중 인물로 설정할 때부터 이미 그 귀결은 예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다의 정의의 윤리가 철저히 사랑의 결핍으로 특징 지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유다는 창녀가 된 누이 라헬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는 누이에게 '죽어라!'라는 심판의 말과 자살용 칼을 보내 줄 뿐이다. 시므온의 말처럼 유다는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개처럼 서로의 상처 자국을 핥아주는 사랑의 아픔과 깊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 정의의 윤리로써 행하는, 사랑의 윤리에 대한 도전은 바로 유다의 배신이다.
'배신'이라고 불리우는 그 도전을 결심한 유다는 시므온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일생 일대의 도박을 해볼 셈일세. 내 목숨을 걸고 스승을 자극해 볼 작정이야. 사랑이 불의(不義) 앞에 섰을 때, 현실적으로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몸소 체험하게 해 준다면 …… 그는 달라질지도 모르네 …… 달라질는지도 …… ."
그러나 그 도전은 실패로 끝난다. 아니 예수의 그 '사랑의 윤리의 길'을 완성하는 데 불가결한 하나의 고리가 되어 버린다. 패배한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시므온의 추측처럼 그는 '자신을 너무 신뢰했으므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에 반해 시므온은 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최후를 지켜보면서 예수의 사랑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성민엽, 작품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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