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가고파 - 이은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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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 - / 이은상


 요점 정리

 

 지은이 : 이은상

 갈래 : 현대 시조, 연시조, 서정시, 낭만시

 성격 : 회상적, 향수적

 

구성 : 열거적 구성
 1연 : 고향 바다에 대한 그리움
 2연 : 고향 동무들에 대한 그리움
 3연 : 고향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
 4연 : 동심으로 돌아가서 지내고 싶은 마음
 5연 :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6연 : 고향을 떠난 허무감과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
 7연 : 고향에 살고 있는 벗들에 대한 부러움
 8연 : 타향살이로 지내온 자신에 대한 회한
 9연 : 고향에 가서 옛 동무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
 10연 : 평화로운 고향 나라로 돌아가 깨끗하게 살고 싶은 마음

 제재 : 고향, 향수

 주제 :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

 특징 :

① 전통적인 시조 형식을 현대적으로 변용시켜 표현하고 있다.

② '아'음의 사용을 통해 애달프고 간절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③ 유년회상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출전 : 동아일보, 1932. 1. 8일자

 

 

 

 내용 연구

 

 내 고향 남쪽 바다 : 작자의 고향인 '마산', 일제 치하의 현실과 상반되는 곳

 내 마음 색동 옷 입혀 : 동심으로 돌아가

 거이 : 게

 처자 : 어린 여자

 동자 : 어린 남자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 인생의 길이 달라서 이렇게 되었구나

 치 : 키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 평화로운

 나명들명 : 나면서 들면서, 나가고 들어오면서

 센 바람 : 강풍(强風)

 알몸으로 : 순수한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이해와 감상

 

 작가의 실제 고향인 경남 마산 앞바다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이 시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시의 화자는 정말 고향에 가고 싶어하고, 고향 친구들을 보고 싶어하고, 고향을 떠나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고향에서의 근심 없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에서는 특히 파란 바다와 물새로 대표되는 고향의 이미지가 끼끗하고 선명한 느낌이라서, 그만큼 화자나 우리의 현재 삶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그리고 각 연마다 고향에 대한 화자의 소망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럼 표현 역시 화자의 감정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해 준다. 이렇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화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느낌에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시의 아름다움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

 

 심화 자료

 

가고파

 이은상(李殷相) 작사, 김동진(金東振) 작곡의 가곡. 1933년 김동진이 평양의 숭실전문학교 학생시절에 작곡하였다. 노랫말의 처음은 다음과 같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4분의 3박자의 사장조로 된 곡으로 보통빠르기로 부른다. 통절형식(通節形式)에 전주와 간주를 제외하면 모두 62마디로 구성되었다. 곡의 중간에서 속도가 빠르게 바뀌며 박자도 4분의 4박자로 바뀐다.

그러나 종지는 다시 보통빠르기에 4분의 3박자의 원상태로 이루어져 있다. 광복 후에 발표되어 널리 알려졌고, 현재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 중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音樂年鑑(音樂年鑑出版委員會, 世光出版社, 1966), 韓國歌曲 200曲選(世光出版社,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은상(李殷相)  

      

 1903∼1982. 시조작가·사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노산(鷺山), 필명은 남천(南川)·강산유인(江山遊人)·두우성(斗牛星). 경상남도 마산 출신. 승규(承奎)의 둘째 아들이다. 1918년 아버지가 설립한 마산 창신학교(昌信學校) 고등과를 졸업하고,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수업하다가 1925∼1927년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사학부에서 청강하였다.

 

1931년·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비롯하여, 동아일보사 기자, ≪신가정 新家庭≫ 편집인, 조선일보사 출판국 주간 등을 역임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홍원 경찰서와 함흥 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1945년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 경찰서에 유치 중에 광복과 함께 풀려났다. 광복 후 이충무공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민족문화협회장,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 문화보호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 두우성이라는 필명으로 ≪아성 我聲≫(4호)에 〈혈조 血潮〉라는 시를 발표한 바 있으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1924년 ≪조선문단≫의 창간 무렵부터였다. 그는 이 잡지를 통하여 평론·수필·시 들을 다수 발표하였는데, 그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국학이나 시조는 거의 등한시하고, 서구의 자유시 쪽에 기울어 있었다. 이 무렵에 발표한 자유시는 30편을 헤아리고 있는 데 비하여 시조는 단 한편에 불과하였다.

 

또, 평론부문에서도 1925년 ≪조선문단≫에 게재된 〈시인 휘트만론〉·〈테니슨의 사세시〉·〈영시사강좌 英詩史講座〉·〈예술적 이념의 본연성〉(1926.6.)이나 ≪동아일보≫에 발표한 〈아관남구문학 我觀南歐文學〉(1925.1.30.∼2.23.) 등의 제목들이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그러다가 1926년 후반에 이르러 시조부흥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시조를 비롯한 전통문학과 국학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시가 분야에서는 1929∼1930년에 민요조의 리듬을 살린 〈새타령〉·〈매화동 賣花童〉·〈조선의 꽃〉·〈말몰이〉·〈님 향한 생각이야〉·〈남산에 올라〉·〈말노래〉 등을 발표하였다.

 

평론분야에서도 같은 시기에 〈청상(靑孀)민요 소고〉·〈이언(俚諺)의 의의 및 그 형식에 관하여〉·〈특수 이언과 공통 이언〉·〈풍수(風水)를 믿던 이들〉·〈문학상으로 본 조선의 어희(語戱)〉·〈황진이의 일생과 예술〉 등을 발표하였다.

 

그는 시조는 문학이 아니라고 낮추어 생각하였다가 시조 논의가 일어나자 비로소 시조를 문학시하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으나, 한동안 자유시와 시조의 창작을 병행하다가 1930년대 후반부터 시조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그는 시조를 쓰는 한편, 당시(唐詩)를 시조형식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시조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조 문제〉(1927.4.30.∼5.4.)·〈시조 단형추의(短型芻議)〉(1928.4.18.∼25.)·〈시조 창작문제〉(1932.3.30.∼4.9.) 등의 논고를 통하여 자수로써가 아니라 음수율로써 시조의 정형성을 구명하려 시도하였다. 1932년에 나온 그의 첫 개인 시조집인 ≪노산시조집 鷺山時調集≫은 향수·감상·무상·자연예찬 등의 특질로 집약된다.

 

이 중 〈고향생각〉·〈가고파〉·〈성불사의 밤〉 등은 시조의 평이하고 감미로운 서정성이 가곡에 걸맞아 노래로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광복 후 그의 시조는 국토예찬, 조국분단의 아픔, 통일에 대한 염원, 우국지사들에 대한 추모 등 개인적 정서보다는 사회성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울어갔다.

 

이러한 작품들은 시조집 ≪노산시조선집≫(1958)을 비롯하여, 특히 ≪푸른 하늘의 뜻은≫(1970)과 마지막 작품집인 ≪기원 祈願≫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의 시조는 대체로 평이하고 기발한 표현으로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다.

 

그는 한때 주요한(朱耀翰)에 이어 두 번째로 양장시조(兩章時調)를 시험하여, 시조의 단형화를 시도한 바도 있으나 말기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음수가 많이 늘어나는 경향을 띠었다.

 

사학가이자 수필가이기도 한 그는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유려한 문장으로 국토순례기행문과 선열의 전기를 많이 써서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광복 후에 문학보다는 사회사업에 더 많이 진력하였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마산에 그의 시조를 새긴 ‘가고파 노래비’가 세워졌다.

 

그 밖에 저서로는 시문집으로 ≪노산문선 鷺山文選≫·≪노산시문선≫ 등과 수필집으로 ≪무상 無常≫, 사화집으로 ≪조선사화집 朝鮮史話集≫과 기행문집 등이 있고, 전기로는 ≪탐라기행한라산 耽羅紀行漢拏山≫·≪피어린 육백리≫·≪이충무공일대기 李忠武公一代記≫ 등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참고문헌≫ 鷺山文學硏究(鷺山文學硏究會, 棠峴社, 1976), 近代時調集의 樣相(林仙默, 檀國大學校出版部, 198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양장시조(兩章時調)

 

 초장과 종장의 2장으로 이루어진 시조. 이은상(李殷相)이 처음 시도하고 이름붙였다. 그의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에 <양장시조시작편(兩章時調試作篇)>이라 하여 7편을 묶어 놓았는데, 1931∼32년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의 전통시 와카[和歌]의 <5·7·5·7·7> 음수율을 한국의 전통 시형식인 시조에 접합해 보려는 것이었으나,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배일감정에서도 찾을 수 있으나, 더 깊게는 시조와 와카의 차이 때문으로, 시조가 정형시에 속하기는 하지만 자수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이라는 점을 도외시한 결과이다. 초장·중장·종장의 <3장>이라는 형식은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해낸 한민족 심성의 한 결구(結構)이므로 새로운 시형으로서의 양장시조의 정착은 실패하였다.(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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