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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中吟(진중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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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中吟(진중음)

 

天步西門遠 천보서문원

東宮北地危 동궁북지위

孤臣憂國日 고신우국일

壯士樹勳時 장사수훈시

誓海魚龍動 서해어룡동

盟山草木知 맹산초목지

讐夷如盡滅 수이여진멸

雖死不爲辭 수사불위사

 

임금의 행차는 서쪽에서 멀어지고,

왕자는 북쪽 땅에서 위태롭다.

외로운 신하는 나라를 걱정할 때이고

사나이는 공훈을 세워야 할 시기로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도 감동하고

산이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준다.

원수를 모두 멸할 수 있다면

비록 죽음일지라도 사양하지 않겠노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이순신

형식 : 오언율시

시대적 배경 : 임진왜란

수사법 : 대구법

주제 : 우국충정(憂國衷情)

내용 연구

천보 : 임금의 행차

서문 : 경복궁의 서쪽(연추문)

동궁 : 왕자

수훈 : 공훈을 세우다

여 : 만약

 

이해와 감상

 

왜적의 침입으로 어려워진 조국을 걱정하며, 조국을 구해야겠다고 맹세하는 충무공의 각오를 읊음

심화 자료

율시(律詩)

4운 8구로 이루어지는 한시 형식으로 1구 5언의 5언율시와 1구 7언의 7언율시 2종류가 있다. 율시의 명칭은 〈서경〉 순전(舜傳)의 '성의영 율화성'(聲依永律和聲)에서 비롯되었는데, 처음에는 구수에 상관없이 운율이 있는 모든 시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3운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에서부터 100운, 150운에 이르는 장률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통칭이었다. 당·송대에 이르러 율시의 범주를 8구의 시에만 한정하기 시작했지만 절구를 율시라 부르기도 했는데, 그 경계를 확연히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원·명대에 이르러서부터이다. 8구로 이루어진 율시는 각 2구씩을 묶어 첫 구를 출구(出句), 둘째 구를 대구(對句)라 한다. 이 2구가 연이 되어 4연을 각각 기연(起聯)·함연(聯)·경연(頸聯)·미연(尾聯)이라고 부르며 그밖에도 여러 명칭이 있다.

율시의 각 연은 전체 시 안에서 적절한 역할을 함으로써 입체적인 시의(詩意)의 전개과정을 이루어내야 한다. 〈시법상론 詩法詳論〉에는 "기연은 문을 열면 산이 우뚝 가파르게 선 듯, 혹은 골짜기 사이로 구름이 솟아나와 가볍게 떠다니듯, 승연은 풀 속에 뱀이 숨듯 붙지도 아니하고 떨어지지도 아니하며, 전연은 1만 길이나 되는 큰 파도의 이면에 반드시 그만큼의 근원이 있듯, 함연은 회오리바람에 기가 모여 깊은 연못 속에 쌓여 있듯 해야 한다"라고 하여 작법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서사증(徐師曾)은 〈문체명변〉에서 율시의 원형을 상고시대부터 잡았다. 〈시경〉, 패풍(風)의 '구민기다 수모불소'(閔旣多受侮不少)의 구절과 〈서경〉 순전의 '성의영 율화성'의 구절에서 각기 대구와 성률의 교묘함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율시의 본격적 성립은 제나라 심약(沈約), 주옹(周)의 성률설과 당나라 상관의(上官儀)의 육대(六對), 유협(劉)의 사대(四對) 등 대구법의 영향을 받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5율의 출현은 6조시대 음갱(陰)·하손(何遜)·유신(庾信)으로부터 비롯되지만 운율로나 내용으로나 율시의 정체가 성립된 것은 초당(初唐)의 심전기(沈佺期)·송지문(宋之問)에 이르러서이며 이때 비로소 7율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5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률이 복잡하고 시의가 확대된 7율은 이보다 조금 늦은 성당(盛唐)에 이르러서야 확립되었는데 이는 두보에 의해 시체가 완성되고 고도의 예술성을 갖추게 된 뒤부터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율시의 특징은 복잡한 대우와 성률의 법칙을 세밀하게 적용하여 운율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대우법은 3구와 4구, 5구와 6구가 내용상 반드시 대우를 이루어야 하며, 다시 3·4구와 5·6구가 대우를 이루기도 하는 것으로 이런 대우법 역시 두보에 이르러서 완성되었다. 성률은 다시 운과 평측의 조화로 나누어지는데, 5율은 2·4·6·8구의 끝 글자에서, 7율은 1·2·4·6·8구의 끝 글자에서 압운하는 것이 정격이며 5율의 1구에서 압운하며 7율의 1구에서 압운하지 않는 변격도 있다. 평측법은 각 구 안에 평성과 측성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소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1구 2번째 글자의 평측 여하에 따라 평기식(平起式)과 측기식(仄起式)으로 나눈다. 5율과 7율의 평측법은 각기 다음과 같다.

특히 매연 출구의 제2자, 제4자, (제6자)와 대구의 제2자, 제4자, (제6자)의 평측이 상반되어야 하는 것을 대(對)라 하며, 위 연 대구의 제2자, 제4자, (제6자)와 아래 연 출구의 제2자, 제4자, (제6자)의 평측이 같아야 하는 것을 점()이라 한다. 율시가 이와 같은 평측법을 벗어난 것은 요체(拗體)라 하며 요체를 구제하는 방법으로는 단요(單拗)·쌍요(雙拗)·고평요구(孤平拗救)의 3가지 방법이 있다.

율시 각 구의 명칭들

제1구, 제2구

起聯, 發句, 發端, 破題, 起首, 首聯, 開句

제3구, 제4구

聯, 聯, 胸句, 前聯, 承聯

제5구, 제6구

頸聯, 腰句, 腹聯, 後聯, 轉聯

제7구, 제8구

尾聯, 結句, 落句, 結聯, 末聯, 結尾, 合聯

율시의 평측법

 

평기식 정격

측기식 정격

5율

(平)平平仄仄

(仄)仄平平仄

(仄)仄仄平平

平平(仄)仄平

(仄)仄平平仄

(平)平平仄仄

平平(仄)仄平

(仄)仄仄平平

(平)平平仄仄

(仄)仄平平仄

(仄)仄仄平平

平平(仄)仄平

(仄)仄平平仄

(平)平平仄仄

平平(仄)仄平

(仄)仄仄平平

7율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仄)仄平

(仄)仄平平(仄)仄平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平仄仄

(平)平(仄)仄平平仄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仄)仄平

(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平仄仄

(仄)仄平平(仄)仄平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平仄仄

(平)平(仄)仄平平仄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仄)仄平

괄호 안의 평측은 통용될 수 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순신(1554 - 1611)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 전주. 자 입부(立夫). 시호 무의(武毅).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 의주(義州)판관으로 있다가 상관의 뜻에 거슬려 해임당하고 집에 돌아와 있었는데, 북변(北邊)이 소란하자 혜산진(惠山鎭) 첨절제사(僉節制使)로 특명을 받았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휘하의 중위장(中衛將)으로 옥포(玉浦) 등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뒤로는 항상 선봉장이 되어 부산(釜山)·안골포(安骨浦) 등지에서 적군을 무찔렀으며 왕의 특지(特旨)로 호서(湖西)수군절도사가 되었으나 얼마 후 좌천되고, 1년 만에 유도방호(留都防護)대장에 오르고 이순신(李舜臣)이 원균(元均)의 후임으로 다시 통제사(統制使)가 되자, 또 휘하의 중위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598년 노량(露梁)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한 후 모든 군사를 이끌고 개선하니 선무(宣武)공신이 되고 완천군(完川君)에 피봉되었으며, 그 후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재임중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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