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피는 꽃 물망초 이야기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4月[월]에 피는 꽃 물망초 이야기
― 꽃 속에 젖어 있는 불쌍한 유언 ―
4월에 피는 꽃에 물망초라는 풀꽃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 꽃이 널따란 들에 조그많게 피어 있지마는, 이름조차 아
는 이도 없어 보아 주는 이도 없고, 위해 주는 이도 없이 가엾게 그냥그냥
잡초처럼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물망초! 물망초! 잊지 말라는 풀! 그 이름부터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연연
한 이름입니까?
화려한 색깔도 없고, 그렇다고 좋은 향기도 없는 꽃이지마는, 물망초라는
애련한 이름을 가진 하늘빛 같이 파르스름한 조그만 그 꽃은 마치 두 손을
가슴에 안고, 무언지 홀로 깊은 생각 속에 들어 있는 소녀와 같이 보드랍고
연연한 귀여운 꽃입니다.
아아, 잊지 말아 달라는 풀, 물망초! 이름만 들어도 가련한 색시의 애원을
듣는 것같이 애련하고도 사랑스럽거든, 그 조그만 꽃 속에 잠겨 있는 가련
한 내력의 이야기를 알면, 누가 이 꽃을 귀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
까?
아무 찬란한 빛깔도 없고, 아무 좋은 향기도 없는 조그만 이름 없는 풀이
세상 사람들에게 물망초, 물망초 하고 불리면서, 귀염을 받게 되기까지에는
옛날 어느 한 사람의 기사(騎士)의 불쌍한 죽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멀고 먼 옛적에 독일이란 나라에 곱게 잘생긴 젊은 기사가 한 사람
이 있었습니다.
어느 일기 좋은 날, 기사는 자기와 혼인할 약속을 정해 놓은 처녀와 함께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뉴브 강이라는 강가를 산보하였습
니다.
기사가 사랑하는 그 처녀는 그야말로 하늘 위의 선녀같이 곱고 아름다운
색시였고, 그의 입고 있는 푸른 비단옷에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같이 보석이
반짝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처녀의 옥같은 손을 잡고 가는 기사는 참으로 사내답고 풍채가
좋은 데다가, 훌륭해 보이는 기사의 복장을 입고 있어서, 색시보다 지지않
게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서로 손목을 잡고 걸어가면서, 이
야기하는 데 재미가 들어서 어디까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모르게 이야기만
소곤소곤 하면서 걸었습니다.
이렇게 강변으로 한참 동안이나 가다가 언뜻 보니까 어디서부터 흘러오는
지 길고 긴 강물 위에 조그맣고 파란 풀이 떠서, 물결과 함께 흘러 내려옵
니다.
어렸을 때부터 화초를 좋아하는 색시는 그것을 보고 기사의 손을 잡고 발
을 멈춰 서서, 무슨 풀인가 하고 보고 있었습니다. 물에 뜬 그 풀은 두 사
람이 서 있는 곳 가까이 흘러 왔습니다. 보니까, 그 파란 풀 끝에 엷은 하
늘빛의 아름다운 꽃까지 피어 있지 않습니까
아마 이 강물이 흘러 내려오는 저 꼭대기, 사람도 안 사는 들가에 저절로
피어 있던 꽃이 어떻게 물 위에 뜨게 되어서 그대로 그대로 흘러 내려온 것
인가 봅니다.
흔히 보지도 못하고 이름도 모르는 그 조그맣고 예쁜 풀꽃이, 도회지에서
자라난 처녀에게는 어떻게 신기하고 귀엽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처
녀는 어렸을 때부터 화초를 좋아하던 터이라, 지금 본 그 어여쁜 꽃을 그냥
그대로 물에 떠내려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저 꽃을 잡았으면, 저 꽃을 잡았으면…….”
하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색시가 잡아 가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 기사는 그냥 그 꽃을 잡으
려고 강물로 텀벙 뛰어 들어갔습니다. 물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꽃을 잡
으려고 들어가서 기어코 그 공중색 파란 꽃 핀 풀을 잡아들었습니다. 강가
에 서있는 처녀는 그 꽃 잡은 것을 보고 기꺼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애닯은 큰일이 생겼습니다. 기사는 그 꽃을 잡기는 잡았으나, 입
고 있던 갑옷이 무거워서 물 속으로 점점 가라앉아 갑니다. 얼른 다시 나오
려고 돌아서려고 아무리 애를 썼으나, 갑옷에 싸인 무거운 몸을 어쩌지 못
하고 그대로 물 속에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물가에서 이 광경을 본 처녀는 놀래서, 소리를 질러 구원을 청하였으나 원
래 인적 없는 적적한 곳이라, 뉘라도 그 소리를 듣고 올 사람이 없었습니
다. 처녀는 그만 어찌 할 줄을 모르고, 미친 사람같이 날뛰는데 벌써 기사
는 몸이 다 잠겨서 인제는 누가 와도 구원할 수 없이 되었습니다. 처녀는
아무래도 하는 수없이 발을 구르며 섰는데, 마지막 가라앉는 불쌍한 기사는
마지막 기운들 들여 손에 쥐었던 그 풀을 처녀 섰는 곳을 향하여 던져 주
고, 마지막 마지막 유언으로,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하는 불쌍한 소리가 가짓빛으로 변한 입에서 간신히 나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기사는 영영 물 속에 가라앉아 버리고 처녀는 기사가 던져
준 풀을 기르며 울면서 , 울면서 눈물로만 지냈답니다. 그 후부터는 진한 푸
른빛 잎에서 맑은 하늘빛 연연한 눈동자를 꿈벅이고 있는, 그 꽃을 세상 사
람들이 잊지 말라는 풀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물망초, 물망초!”
하고, 귀엽게 여기며 정다운 친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잊지 말라는 뜻
으로 이 꽃을 서로 보내는 것입니다.
아아, 애련한 꽃, 물망초! 조그만 그 꽃에는 지금도 기사의 불쌍한 넋이
맺혀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1권 3호, 1923년 4월호, ㅈ·ㅎ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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