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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 민족․민중 운동의 정신적 모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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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중 운동의 정신적 모태 419 혁명

 

일제 식민지 해방, 좌우익의 대립, 남북의 단독 정권 수립, 625 전쟁, 분단체제의 고착화, 이승만 정부의 독재와 부패, 경제적 궁핍...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현대사는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할 수 없는 격변과 고난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특히 625전쟁은 한국 사회가 미비하게 가지고 있었던 인적물적 자원을 훼손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자립경제의 틀을 갖추지 못했던 한국사회는 미국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한 체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경험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1950년 대 말에는 미국의 원조가 감소하여 국가 재정은 더욱 위축되었고 사회 경제적 모순은 증폭되었다.

 

그런데 구식민지의 관료체제와 미군정하에서의 군사통치를 그대로 계승한 이승만 정권은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는 관심이나 의욕을 가지지 않고 무능했으며 권위주의 통치와 장기집권의 욕망에만 가득차 있었다. 이에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패 및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염증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315 부정선거와 김주열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419가 일어났다.

 

권력연장을 위한 자유당과 이승만의 노골적인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출발한 학생시위는 시위학생들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유혈진압 사실이 보도되면서 전국 규모의 학생봉기로 발전하였다. 전국은 거대한 혁명의 분위기에 휩싸이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대다수 민중들의 완전한 이반, 교수지식인들의 진요구, 군부의 비협조 및 미국의 이승만 지지철회는 결국 이승만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일어난 516 군사 쿠데타는 혁명성 자체를 허약한 것으로 만들고 미완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419를 역사에 남게 하였다. 그렇지만 419 혁명이 비록 미완적 성격을 갖고 있다해도 혁명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동력의 원천이 되었으며 1960년 이후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를 위한, 혹은 진보와 변혁을 향한 민족민중 운동의 중요한 정신적 모태로 작용하여왔다. 419 혁명을 계기로 민중의 의식은 괄목한 성장을 보이는데 그 가운데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와 통일을 향한 민족적 각성이 형성되었다.

 

419 혁명과 새로운 도약

 

민족민주를 양대 이념으로 삼고 있는 419 혁명은 문학사에도 커다란 반전을 가져왔다. 625 전쟁 후의 폐허와 가난, 독재와 사상적 경직, 그로 인한 절망과 고뇌와 불안으로 요약되는 50년대의 문학은 419 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다.

 

50년대의 시적 경향은 크게 두 갈래의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1930년대의 순수시, 인생파, 자연파들의 뒤를 이은 비교적 온건한 경향이며 다른 하나는 모더니즘의 뒤를 이은 실험적, 현대적 경향이다. 첫 번째 경향의 시들은 대개 삶의 의미, 자연의 질서, 사라져 가는 옛것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삼았으며 두 번 째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들은 625를 겪어 오는 과정에서 경험한 혼란, 불안, 상실감 등을 주로 노래하고 돌연한 이미지의 연결, 지적인 조작, 낯선 어휘와 사물들을 제시하면서 실험적이고 난해한 시들을 썼다.(신동엽은 이들을 李朝的인 농촌과 전원을 지향하는 향토적 村落, 유리쪽으로 바깥 세상을 내다보는 정도의 성의만 가지고 있는 현대 감각파, 단어로 기교를 부리는 언어 세공파로 분류하고 문화적인 귀족풍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이들의 시적 경향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지만 역사와 사회에 대해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형상화 내지 못했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60년대 접어들면서 젊은 시인들 중 일부는 이러한 경향들을 비판하고 우리의 현실상황과 민중들의 생활에 충실한 시를 요구하였다. 이 현상은 외부적으로는 독재 정권의 억압을 무너뜨린 419 혁명의 자극에 의한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50년대 시의 흐름이 그 나름의 전개 과정을 거쳐 반성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도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주장들 중에는 시의 사회 참여를 핵심적 명제로 제창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흔히 참여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이 중시한 점은 시인들이 사회 현실의 문제와 이웃들의 경험, 느낌 등을 절실하게 노래하여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이었다. 이 경향의 대표적 시인이 김수영과 신동엽이다.

 

시민적 자유에의 갈망-김수영

 

한마디로 말해 김수영 시의 주제는 자유이다. 김현에 따르면 419 이전까지 자유가 억압된 시대에 그의 시는 비애가 주조를 이루었으나, 419를 전후해서 혁명을 통해 자유의 실현을 절규하듯 외쳤고 이후에는 그의 시세계도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증오와 소시민적 자기 부정과 연민으로 변모한다고 하였다 혁명의 대의가 변질 되가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는 이를테면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 현실에 비켜서 있는 자신의 비겁함을 질타하고,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라고 조소하고 연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시민성에 대한 냉소와 연민조차도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정직성의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만큼 그는 자신과 현실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보려는 자기 긴장으로부터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비판을 통해 사이비 시민성(소시민적 속물근성) 혹은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반외세와 분단극복 의지의 형상화 - 신동엽의 시세계

 

김수영의 시가 주로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혁명의 민주주의적 이념 추구와 관련되어 있다면, 반외세 자주정신에 기초한 혁명의 민족주의적 요소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은 신동엽의 시세계이다.

 

그의 시는 우선 주위의 것들을 따뜻하고 연민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누이, 굶주림에 지쳐 흙벽을 파먹는 50년대의 농촌 아이들, 625 체험과정에서 만난 떡판을 멘 소녀, 오빠인지 지아비인지 옷보따리를 들고 면회가는 처녀, 꿀꿀이 죽을 뒤지다가 미국 병사에게 총 맞아 죽은 소년, 60년대 후반의 이향 소년 등... 그리고 이러한 이들의 고통과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왔던 외세의 침략과 민족 분단, 그리고 분단극복을 저지하는 세력 및 구조에서 찾고 있으며 결국 분노한다.

 

내 고향은 바닷가에 있었다./인적 없는 폐가 열 구비 돌아들면/배추꽃 핀 돌담, 쥐쑤신 모녀/내 고향은 언덕 아래 있었다//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부황 든 보리죽/툇마루 아래 빈 토끼집엔, 어린 동생/머리 쥐어 뜯으며/쓰러져 있었다.//선민들은 밀밭가 쫒겨있는 토분(土墳)/조국위를 쉬임없이 궂은 비는나리고.// 자전거를 탄 신사 날씨좋은 팔월/이 마을 황토길을 넘어오면/싸릿문 앞에 무표정한 납세고지서//신식의 북새는 해마다 신록아래 있었고/붓깍지로 빼앗긴 사천만의 가슴/행복은 멀리 몇 뿌리의 도시탑위/곪아 있었다//오늘도 광화문 앞 마당/고등식을 배 불린 해외족의/마이크 연설//몽고(蒙古)에의 여공(女貢), 청조(淸朝)에의 대배(大背)/공항(空港)으로 결집된/새 시대의 봉건영토 -주린 땅의 지도원리중 일부

 

눈이 오는 날/ 소년은 쓰레기통을 뒤졌다//.........//나는 모른다/그 철조망들이/맨발로 된장찌개 말아먹은 소년들에게/목숨을 강요해서까지/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왜쏘아/우리가 설혹/쓰레기통이 아니라/그대들의 판자 안방을 침범했었다 해도/우리가 맨손인 이상 총은 못 쏜다.//쏘지 마라./솔직히 얘기지만 그런 총 쏘라고/ 박첨지네 기름진 논밭/그리고 이 강산의 맑은 우물/그대들에게 빌려준 우리 아니야.//벌 주기도 싫다/머피 일등병이며 누구며 너희 고향으로 그냥 돌아가 주는 것이 좋겠어//솔직히 얘기지만/ 이곳은 우리들이/ 백년 오백년 천년을 살아온/아름다운 땅이야. -왜쏘아중 일부-

 

작고 여린 이들의, 그리고 현실적 고통을 몸으로 경험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연민과 분노가 신동엽의 치열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매개하는 촉수인 것이다.

 

그리고 신동엽은 외세가 우리 민족에게 분단의 굴레를 씌우고 아름답고 기본적인 것들을 훼손시키고 막아온 근본적인 장애임을 깊고 일관되게 인식하면서 외세와 그 추종 세력을 씻어내는 통일과 순수함의 회복을 열망한다.

 

봄은/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오지 않는다.//너그럽고/빛나는/봄의 그 눈짓은,//제주에서 두만까지/우리가 디딘//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겨울은,/바다와 대륙 밖에서/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이제 올/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우리들 가슴 속에서/움트리라.//움터서,/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녹이듯 흐물흐물/녹여버리겠지. -봄은의 전문

 

바다와 대륙 밖에서 몰려온 겨울, 매운 눈보라, 그로 인한 미움의 쇠붙이가 난무하는 곳에서 419를 통해 신동엽은 회복해야할 순수성과 민중의 위대한 생명력과 그 끈질긴 영원성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영원의 하늘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19604/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영원의 얼굴을 보았다//잠깐 빛났던,/당신의 얼굴은/우리들의 깊은/가슴이었다//하늘 물 한아름 떠다,/1919년 우리는/우리 얼굴 닦아 놓았다.//1894년쯤엔, 돌에도 나무등걸에도/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하늘, 잠깐 빛났던 당신은 금새 가리워졌지만/꽃들은 해마다/강산을 채웠다. -금강의 일부

 

한 인간이 존중받아야 할 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권력과 여러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엄성이 말살되고 유린될 때 그 세력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저항하고 투쟁함으로써 하늘의 의미 즉 영원한 이상, 생명, 자유, 사랑 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신동엽은 영원의 하늘419 혁명에서 31운동을 거쳐 반외세와 반봉건을 외쳤던 갑오 동학농민 혁명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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