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1930년대 한국문학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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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이 활동했던 1930년대 문학 구도 읽기

 

 

한국근대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30년대 문학은 전시대와 동일한 차원에서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극히 다양하고 성숙한 면모를 보인다. 문학운동, 유파활동, 사조 등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그 활동들이 이루어진 공간과 작가적 활동의 무대인 장르에서도 다채롭다. 또 질적인 측면에서도 20년대와 같은 습작의 수준에서 완숙한 경지에 이른 작품까지 활성있는 분포도를 이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검토한 상황과 목적과 양태는 30년대 문학을 갈래짓는데 도움이 된다. 민족사적 차원에서 시대적 과제는 무엇이었고, 이를 위한 각 집단계층들의 지향과 문학활동은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살핌으로써 다양한 문학활동을 일정하게 유형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분류해 볼 때 30년대 문학은 리얼리즘문학과 모더니즘문학, 항일혁명문학으로 크게 나뉘어짐을 알 수 있다. 즉 일제 시대 전기간을 통해서 시대적 과제였던 반제반봉건을 위하여 각 집단과 계층문학인들이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했는냐 하는 물음을 통해 각 문학의 양상과 지향이 해명되는 것이다.

 

반제반봉건의 과제가 민족해방과 근대화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음을 상기하면서 자유러운 여건에서 이루어진 항일혁명문학이 반제반봉건을 지향하는 태도를 선명히 가질 수 있었음에 반해서 리얼리즘문학과 주로 연결되는 국내의 프로문학에서는 민족해방운동과 계급해방운동의 선차성에 대한 인식, 정치성 또는 사상성과 예술성의 통일에 대한 인식에서 혼란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좌경적 경향과 공식주의에 함몰되는 양상을 드러내며, 순수모더니즘에서는 반제의 의미가 내면화되고, 근대화, 그것도 문학의 근대화를 주요 관심사로 떠올린다.

 

1) 리얼리즘 문학

30년대에 리얼리즘 문학이 거둔 결실은 다른 어느 유형의 문학보다도 풍요롭다. 염상섭의 삼대’, 이기영의 고향’, 한설야의 황혼’, 강경애의 인간문제’, 채만식의 탁류, 태평천하’, 김유정의 단편들, 홍명희의 임꺽정등 소설 작품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이밖에 시에서 임화, 이용악, 백석의 작품, 희곡에서 송영, 유치진의 작품이 더 열거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계도 전대의 문학이 포용한 세계와는 비견할 수 없으리만큼 폭과 깊이가 있다. ‘임꺽정의 광활한 서사세계와 삼대’, ‘태평천하의 역사의식, ‘고향’, ‘황혼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상성, 김유정, 이태준, 박태원의 작품들이 품고 있는 소담한 세계 등은 30년대 소설의 풍요로움뿐만 아니라 그 문제의식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리얼리즘 문학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작품들의 연원을 찾고 물줄기를 따라서 계열을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프로문학 운동의 전개와 각 작품이 지니는 리얼리즘의 성격 사이에는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어 그 운동의 변전과정과 지도이론의 변화 양태, 작품의 실제 양상을 결부지어 살펴보는 작업이 효율적이라고 생각된다.

 

1930년대에 접어들 무렵 카프조직을 중심으로 벌어진 프로문학 양식에 대한 논의와 대중화논쟁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것이 단순하게 프로문학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대중화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소박한 의식 수준에서 이루어진 논의가 아니라 프로문학이 종래의 부르주아문학과 다른 독자적인 질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대중화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 것을 말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의 각성과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30년대 전체의 문제의식이 이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논의는 정치투쟁에 있어서도 예술 작품의 인식론적 의의가 중요하다고 본 김지진의 주장에 대해서 정치투쟁에 의해 예술운동이 규정되는 속에서 양자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임화의 볼셰비키화론이 대중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난다. 정치적 또는 사상성과 예술성의 통일 라는 문제가 프로문학에서 기초범주에 속하는 사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논의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30년대 내내 그 문제 의식은 지속되어 이론적으로 전개되어간다. 즉 정치성을 강조함으로써 문학에서 당파성을 고조한 임화의 문학 운동론이 볼셰비키화론,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반해 상대적으로 예술의 형상적 인식이란 특수성에 비중이 실린 김기진의 주장에 변증법적 리얼리즘론, 비판적 리얼리즘론으로 계승되고 있다.

 

이 같은 프로 문학내의 이론적 갈등은 다 같이 볼셰비키화론자였던 김남천과 임화의 물 서화논쟁에서 심화되고 결정적인 분리의 계기를 맞는다. 임화는 이기영의 서화일시대의 계급투쟁의 역사적 경험의 전체를 그리고 일정한 시대의 객관적 현상을 역사적으로 개괄하는 형식이라고 표현했는데, 김남천은 이 작품이 적극적 일면을 망각한 작품으로서 당파성이 실현되어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 의견 대립은 볼셰비키화론을 카프조직의 지도이론으로 내세웠으면서도 실제비평에서는 변증법적 리얼리즘론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론비평과 실제 비평의 괴리, 임화 문학이론의 변전과 관련되어 있으며 30년대 후반에는 이 입장이 역전되면서 임화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론과 김남천의 비판적 리얼리즘론이 양립한다. 물론 문학이론의 변전과정에서 반제반파쇼 통일전선을 결성하고자 한 민족해방운동과의 교섭관계도 변수로 작용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수영과 삼대’ ‘서화’ ‘고향등의 작품이 끼친 영향, 현실정세 등이 훨씬 더 직접적인 결정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30년대 리얼리즘문학은 이러한 이론적 대립을 반영하면서 문학의 혁명성정치성을 견지하고자 한 작품과 기본적으로 예술적 형상의 인식적 가치에 신뢰를 둔 작품군으로 크게 나뉜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군은 프로문학 독자의 질을 확보하려는 지향과 사회현실의 총체적 인식을 추구하는 지향이라는 상이한 지향성을 내포하게 한다. ‘프로문학 독자의 질의 예로는 고향, 황혼사회 현실의 총체적인 인식의 예로는 삼대, 탁류, 태평천하등을 쉽게 손꼽을 수 있고, 이 작품들의 차별적 양상 또는 동질성을 통해 30년대 리얼리즘문학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이들 작품군의 차별적 특성에 눈을 돌리기 전에 30년대 소설에서 나타난 장편화 경향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광수의 무정이후 장편다운 장편을 갖지 못한 소설계는 3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조음, 선풍시대, 삼대, 등의 많은 장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현상은 소설 창작 역량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할 수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문학사적 의미로서 이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전체를 인식대상으로 하는 포괄적 의식과 민족현실을 역사적 지평 위에서 이해하려는 역사의식이 심화되었음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한 가계의 조자 삼대가 현실에서 영위하는 삶의 상이한 양태를 비춤으로써 동시대를 역사적 조망 아래 놓은 염상섭의 작품에서 선취된 그 의식은 이후 이기영, 채만식, 김남천, 한설야, 이태준 등에게로 이어진다. 특히 이 측면에서 이기영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양상은 시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식주의적인 경향에 빠져 있던 프로문학 작품의 조급성을 탈피하여 농촌생활을 전체화하려는 시각에서 다룬 과도기적 작품 서화를 거쳐 고향으로 나아간 과정은 당대에도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서 예술적 형상을 통한 현실인식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리얼리즘의 중심명제를 환기시키고 있다. 일제시대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히는 고향의 창작 방법을 살펴보면, 당시 작가의 의식이 복합적임을 알 수 있는데 문제적 주인공의 활동을 통해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계층의 서로 다른 지향성과 그것들이 연결되면서 부딪치는 계기들을 생생히 그리려는 의도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의 궁극적 총체성인 계급투쟁이 생활 속에서 현상하는 구체적인 계기들을 포착한 것으로서 그 형상들이 풍속과 일상성을 통해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프로문학 작품과 스스로를 차별지우고 있다. 이 작품의 파급효과는, 풍속과 일상성을 중시하는 측면은 이른바 세태소설, 가족사년대기소설, 풍자소설 등과 김남천의 비판적 리얼리즘론으로 전개되고, 사상성 강조의 측면은 정치적 입장으로나 심정적으로 문제적 주인공을 포기하기 어려웠던 한설야와 임화에게서 사회주의 리얼리즘론과 황혼등의 작품으로 계승되어 계급투쟁의 본질적 양상의 형상화가 추구된다.

 

이처럼 30년대의 장편소설들은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의식을 기본바탕으로 하여 객관현실에서 주관적 요인의 올바른 자리를 결정하는 사회적 필연성에 대한 지식을 추구했으며 그 내용에 따라 적극적이기도 했고 정관적이기도 한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 적극성을 담지한 것인데 비해 비판적 리얼리즘은 정관적(靜觀的)인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그 적극성과 정관적 자세는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으로서 비판적 리얼리즘 작품에서 엿보이는 풍자와 해학, 고발 등의 수법이 가진 공격성을 과연 정관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인지, 또 작품에서 사상성의 강조, 적극적 주인공의 설정, 계급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현장을 소재로 하는 것이 적극성으로 통용될 수 있을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더욱이 30년대 말엽에는 한설야, 이기영, 김남천, 채만식, 이태준 등이 한결같이 개화기를 소설 무대로 삼고 있는데 그러한 사태는 작가의 전향이나 세계관의 차이로 해석될 측면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에 부닥쳐서 고안된 전술적 대응으로 이해된다. 30년대 중반에 고향, 황혼이 나온 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걸맞는 작품이 거의 하나도 씌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상도(想到)할 때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마련한 전술적 대응의 현실정합성은 쉽게 분별이 된다.

 

이같은 구체적 사실의 바탕 위에서 검토할 때문이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차별성과 동질성이 의미있는 것으로 드러나며, 3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문학사적 의의가 한결 뚜렷해진다.

 

30년대 리얼리즘 문학에서 두 번째로 살펴볼 문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성과이다. 작품으로는 고향, 황혼, 인간문제를 손꼽을 수 있다. 농촌생활에 실제로 뛰어든 각성된 지식인이 겪는 좌절과 번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현실의 구체적 연관들을 형상화한 고향’, 한 여성노동자로서의 계급적 각성과정과 관념으로만 진보적인 지식인의 현실순응을 대비하면서 노동운동의 발전 양상을 보여준 황혼’, 이 두 작품은 프로 문학 독자의 질을 확보하여 한 여러 시도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또한 사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울인 작가들의 남다른 것으로 드러난다. 항일혁명문학의 선명한 정치적 관점이나 투쟁성에 비추어 미약하고 미흡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들의 사상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시대가 치안유지법과 사상범보호관찰령이 민족해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데 동원되고 있던 엄혹한 계절이라는데 있다. ‘인간 문제에서 지주자본가는 부도덕한 존재로, 지식인은 기회주의적 속성을 가진 계급으로, 노동자농민은 사상적으로 간결한 사람으로 제시한 것이 경직된 도식적 현실인식이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중들의 삶과 노동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만 빚어질 수 있는 예술적 형상이라 이해되는 것은 프로문학을 성취코자 하는 작가들의 진지성이 전달되어 얻어진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비판적 리얼리즘 문학이 계발한 다양한 기법과 현실의식의 심화확대를 주목할 수 있다. 채만식이 풍자에 동원한 판소리의 기법과 공간이동을 통해 개체적 수준의 일상성이 역사적 현실에 매개되었음을 암시하면서 사회의 축도를 제시하는 공간이동법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자의 경지를 확보하고 있다. 또 서민생활의 애환을 압축시켜 보여주는 박태원의 점묘수법, 김유정의 작으면서도 넉넉한 해학의 방법 등도 모두 이 시대 리얼리즘문학이 거둔 풍성한 성과들이다. 이와 함께 도시빈민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친 유치진의 토막은 리얼리즘 연극의 정공법을 보여주며 모더니즘의 수법을 채용하면서도 서정시의 내포적 총체성을 유감없이 예시한 이용악의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낡은 집’ ‘오랑캐꽃’, 백석의 모닥불’ ‘산숙’ ‘팔원등은 리얼리즘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비판적 리얼리즘이 현실의 부정성을 부정함으로써 긍정성을 지향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30년대 소설들은 이 부정성의 제시에서 당당한데 그것은 때로는 신랄하고 예각화되기까지 한다. ‘만세전에서 당대 현실의 부정성의 실상을 포착한 바 있는 염상섭은 도시중산층의 개인주의적 관점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한말 세대화 개화기 세대의 부정성을 과감하게 비판하며 젊은 세대의 부동하는 면모에도 너그럽지만은 않다. 이 시각은 김유정, 박태원, 채만식에게서 발전적으로 계승되는데 김유정의 숙명론이라 할 만한 현실수용의 태도가 해학의 기법적 특성에 따라 허무주의에 근접한다고도 할 수 있는 부정성으로 반전하게 되며 박태원의 도시서민들에 대한 애증이 엇갈린 해부는 이상의 날개에서 드러나는 자아분열적 현실의 정조를 보여준다. 특히 3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능란해지는 채만식의 풍자는 독자의 감정개입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현실을 역사적 단계로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전체화하는 사고에 의해 인식할 것을 강조한다. 한편 비판적 리얼리즘의 부정성조차 허용되지 않게 된 상황에서 나온 가족년대기소설은 그것이 역사의식과 전체화하는 시각을 담보하려는 의욕을 내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 자체가 현실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현실성의 약화라는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다.

 

2) 순수모더니즘 문학

오늘날 문학사에서 모더니즘문학이나 순수문학으로 분류되는 문학활동가들이 보여주는 지향성을 돌아보면 그것들이 일제의 폭력에 대한 비정치성의 정치성이라는 소극적 방법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지나치다 할 정도로 깎이고 다듬어진 김영랑의 시어들, 이태준과 정지용의 조선어에 대한 섬세한 감각의 육성, 백석의 방언주의라고 부를 만한 어법 등은 그 방법의 근원에 대한 사고를 필연적으로 요청하며, 그 결론으로서 그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보여준 한결같은 정치지향성이 그 방법들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라 유추할 수 있게 해 준다.프로문학인들이 주로 소설 속에서 사상성의 구현을 추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못할 때 식민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적 선전이나 물화의 구조 속에 은폐된 사회적 모순의 폭로고발풍자로 나아갔던 데 반해서 순수파 시인들은 시적 방법의 모색을 통해 출구를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

 

대체로 순수문학, 모더니즘 문학, 생명파로 구분해 볼 수 있는 30년대의 유파적 문학활동은 생명파가 비교적 후반기에 나타났다는 점 외에는 혼재된 모습들 보여준다. 기왕의 문학사에서 순수문학모더니즘문학생명파로 보고 있지만, 정지용 시의 모더니즘적 경향이 20년대 후반부터 선을 보였고 순수적 경향이 40년대초 이태준을 중심으로 하는 문장, 청록파의 작품 등에 지속되고 있어 일괄해서 논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다만, ‘순수라는 태도의 대두, 모더니즘적 경향의 유파형성, 생명파적 문학의식의 대두라는 측면에서는 기왕의 시간적 순서가 타당하다. 따라서 순수모더니즘문학의 성과를 개괄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보편적 특성과 각 유파문학인들의 특질을 각 계기들에 유의하면서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순수모더니즘문학이 대두하게 된 문학적 배경에 대해서는 그동안 충분히 논의되어왔다. 경향문학이나 계몽문학, 감상적 문학에 대한 반발로서, 예술성 추구로서 순수적 태도의 발현이 설명되고, 그와 유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으나 문학사에서 근대성을 실현하려는 상이한 문제의식에서 전연 판이한 양상을 갖춘 모더니즘문학의 출현이 이해된다. 그리고 순수모더니즘문학의 몰인간적비생명적 요소에 대한 반발에서 생명파의 문단진출이 설명된다. 또 사회문화적 배경으로서는 만주사변, 중일전쟁의 발발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사상탄압, 한글운동, 카프조직의 해체에 이르는 과정 등이 예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으로 각 유파문학의 출현을 이해시킬 수는 있으나 그것들의 다르면서도 같은 성질을 일관되게 통일적인 것으로 해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30년대 순수모더니즘문학의 전모는 바로 이와 같은 각 유파의 외적 차별성과 내적 동질성의 통일적인 파악을 통해서만 올바로 해명될 수 있다. 그 동질성이란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역사적구체적 현실의 소거라고 생각된다. 30년대 순수모더니즘 문학에서는 객관현실이 문학적 현실만을 주로 의식하는 역사의식에 의해서 다른 현실도 대치된 것이다. 이를테면 김영랑의 시에서 현실이 은은한 정조에 휩싸여 감춰져 있는 점이라든가 김기림의 기상도에서 현실을 서구현대문명으로 상정하고 있는 점, 유치환의 생명의 서나 서정주의 화사에서 똑같이 등장하는 원시적본원적 세계는 그들의 사조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질성을 내보이고 있다. 시문학파의 이론가인 박용철은 시는 시인이 늘어놓은 이야기가 아니라, 말을 재료 삼은 꽃이나 나무로서 시인이 시인되는 소이는 현실의 본질이나 그 각각의 전이(轉移)를 인지할 뿐만 아니라 체험하며 그 모든 깊이를 가진 자신을 하나의 꽃이나 새, 나무로 변용하는 데 있다.’고 했을 때 순수문학의 현실은 분명해 진다. 박용철이나 김영랑이 시에서 은은하고 아련하며 애틋한 시어들은 현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이올 침잠한 체험내용을 표출이며 거기에서 현실 본래의 모습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걸맞지 않은 과업이 된다.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의 이론가인 김기림은 시는 언어의 한 형태로서 시인은 시를 제작하는 것이고 당위의 세계인 가치의 창조를 지향하며 시는 꿈의 표현이기 때문에 어떠한 시간적공간적 동존성(同存性), 비약도 이곳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을 갖는 모더니즘문학에서 구체적 현실의 내용이 큰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정지용의 향수고향에서 기억 속의 고향이 감각적으로 재현된 것이나 김광균의 도시가 전신주와 성교당, 고층빌딩, 와사등에 의해 시각적 심상으로 제시될 때 삶이 근거하고 있는 생활 그 자체는 격자 속의 풍경일 수밖에 없다.

이같은 양상의 왜곡된 현실관은 생명파나 김동리, 이상에게서 엿볼 수 있다. 서정주의 석유먹은 듯숨가뿐 관능이나 김동리의 무속도에서 원형질적인 인간세계가 탐색된다면 언어를 거부하며 자아의 세계에 칩거하는 이상의 실험은 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서로 다른 국면에서 상이한 양상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 현실을 유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처럼 순수모더니즘문학은 많은 가지가 뻗어 있고 잎사귀를 무성하게 달고 있지만 그 줄기는 민족의 궁핍한 삶으로부터 다른 세계로 시선을 옮기는 그 문학적 방법인 것이다.

 

시적 현실(내용)에 대한 시적 방법(현실)의 우위는 곧잘 형식주의로 명명되는 게 통례이다. 시문학파에서 시의 형식과 형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영랑에 의해 확보되고 실천에 옮겨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유파의 특성을 형식주의로 분류하는 데 큰 이의는 없을 것이다. 시적 방법의 개혁에 의한 시적 현실의 발견, 시어에 대한 세심한 배려, 남도사투리의 시어로의 채택 등은 시문학파의 새로운 시도이자 성과였고, 이후 순수모더니즘문학의 각 유파가 방법적 성찰을 진행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모더니즘문학과 생명파문학이 종래의 시를 지양하기 위해 시적 방법에 따른 시적 현실의 발견을 재시도하고 청록파가 시문학파의 자양을 흡수해 모더니즘의 극복을 기도하면서 시적 방법에 따라 시적 대상을 달리하고 있는데 그 중심축에 시문학파가 놓이는 것이다. 특히 청록파는 한국의 시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세계로서 자연과 한국적 정서의 발견에 주력했는데 그 시적 방법의 원형은 시문학파에 보존되어 있다. 30년대 후반기에 독자적인 경지에서 토속적 어법을 시험한 백석의 벙언주의는 조선어에 대한 혼혈작용앞에서 모국어의 향토성, 순수성을 보존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영랑의 지방어의 시어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모더니즘 문학은 방법에 대한 의식이 훨씬 더 자각되어 있고 조직적이다. 김기림이 체계적인 시작의 방법을 주장하면서 정의(情意)와 지성의 통합을 목표로 내세운 것은 바로 그 사례이다. 그의 주지적 방법이 정의보다는 지성의 관여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고 모더니즘문학에서 정의의 측면이 약화되면서 이미지 조형을 위한 회화성의 도입이 강력히 추진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언어의 음질, 음운에 대한 시문학파의 배려와는 다른 차원에서 회화의 내재적 리듬에 기초한 작시법을 주장하며 김기림은 문명현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공장의 기계소리, 교통기관, 군중들의 아우성을 시에 반영하라고 요구한다. 문명의 대표적 현상인 도시적 감수성에 대한 이 요구는 김광균의 시에 가장 세련된 감각으로 화답되고 있는데 김기림 자신도 기상도에서 극히 축약된 속도감있는 어법으로 현대문명을 시에 담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즉 설명을 생략한 채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을 통해 현실의 단편들을 제시하고 그것으로 현대문명현상을 비판하고자 한 시적 방법의 실험인 것이다. 최재서가 기상도에 대해서는 지나친 이미지의 고립과 내면적 통일성의 부족으로 실패에 그쳤다고 평가했지만, 정지용, 김광균은 이 방법에 의해서 한국시의 새로운 측면을 개척하였다.

 

그러나 모더니즘 시들은 김기림의 기상도처럼 현대문명 비판을 시도하고 있지만, 소재가 현대문명일 뿐 문명의 구체적 내용도 그에 대한 비판도 불분명하다. 모더니즘시가 현대주의를 표방했으면서도 이 땅의 현대나 현실에는 밀착하지 못한 원인이 현실의 발견보다는 시적 방법의 혁신에 주안점을 둔 그 형식주의에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센티멘탈 로맨티시즘과 편내용주의적 경향에 대한 부정이라는 30년대 모더니즘의 역사의식은 사회현실과 문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하지 못함으로써 문학현상을 현실로 대치하고 그것의 타개를 문학사적 발전이라고 믿었던 셈이다. 이 점에서 시인부락동인을 중심으로 한 생명파의 기도도 동일한 차원에 놓인다. 생명파는 처음부터 자신들의 문학적 입장을 뚜렷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시인부락의 주요 동인인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이 작품에 나타난 공통적 경향이 그들을 생명파, 인생파로 부르게 했다. 서정주의 문둥이’ ‘화사와 오장환의 성벽’ ‘해항도등이 시인부락에 실린 대표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밖에 유치환의 시적 경향에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인간적 고뇌를 육성 그대로 표출하면서 약동하는 생명의 상태를 통해 인간원형을 탐구하는 것이다.

 

한편 30년대 후반기에 펼쳐진 이상의 시적 실험은 유파적 활동과는 거리를 둔 것이었지만 어느 시인보다 전위적이다. 언어를 거부한 것으로 흔히 이야기되는 그의 시는 숫자의 배열, 기하학적 도형의 도입, 상식적으로는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 이미지의 병치 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실험은 그의 현실인식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식민지 자본주의사회에서 출구를 잃은 개인의 좌절과 절망의식이 그의 극단적인 실험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상의 문학적 실험은 역설적으로 다른 문학형식의 실험에 비해서 현실에 밀착하는 측면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항일혁명문학

식민지시대에 이루어진 문학행위이지만 해방 이후에야 그 진면목이 밝혀진 작품 성과로서 윤동주, 이육사의 시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시에서 똑같이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현실의식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그 현실에 결연히 맞서려는 의지에서는 육사가 좀더 치열하다. 윤동주는 서시’ ‘쉽게 쓰여지는 시등에서 엿볼 수 있는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올바른 세계인식을 지향하고 또 다른 고향’ ‘’ ‘참회록등은 그의 인식이 도달한 지점을 가리켜주는 동시에 연표할 수 없는 내면적 의지를 표상해주는 작품이다. 이육사는 교목’ ‘절정’ ‘광야등에서 절망적 현실인식들 딛고 선 주체의 모습을 남성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들은 민족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의 현실에 놓여 있을 때 시인이 예기하는 내일에의 전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시적 상상력에 의한 현실인식의 투철성을 보여준다.

 

30년대의 문학인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문학과 비판적 리얼리즘문학 또는 순수문학과 모더니즘문학 그 어디에 속하든, 일정한 문제의식을 갖고 문학 행위를 했으리라. 그 문제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왜 그와 같은 양상을 갖게 되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발제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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