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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 쫓겨나는 대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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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 쫓겨나는 대목

 

아니리

 아동방(我東邦)이 군자지국(君子之國)이요, 예의지방(禮儀之邦)이라. 십실지읍(十室之邑)에도 충신(忠信)이 있고 칠세(七歲)의 아이라도 효제(孝悌)를 일삼으니, 어찌 불량(不良)한 사람이 있으리요마는. 경상 전라 충청 삼도(三道) 어름에 놀보 형제(兄弟)가 사는디, 놀보는 형이요 흥보는 아우라. 놀보란 놈이 본디 심술(心術)이 많은 데다가 어찌 하면은 그 착한 흥보동생(興甫同生)을 쫓아낼까 하고 밤낮으로 집안에 들어앉어 심술공부(心術工夫)를 하는데, 꼭 이렇게 하겄다.

 

자진모리

 대장군방(大將軍方) 벌목(伐木)허고, 삼살방에 이사(移徙) 권코, 오귀방(五鬼方)에다 집을 짓고, 불붙는 데 부채질, 호박에다 말뚝 박고, 길 가는 과객(過客) 양반 재울듯이 붙들어다 해가 지면 내여 쫓고, 초란이 보면은 딴 낯 짓고, 거사 보면 소구 도적, 의원(醫院) 보면 침(鍼) 도적질, 양반(兩班) 보면은 관(冠)을 찢고, 다 큰 큰애기 겁탈, 수절과부(守節寡婦)는 모함(謀陷)잡고, 우는 애기 발가락 빨리고, 똥 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祭酒甁)에 오줌 싸고, 소주(燒酒)병 비상 넣고, 새 망건(網巾) 편자 끊고, 새갓 보면은 땀대 떼고, 앉은뱅이는 택견, 꼽사둥이는 뒤집어 놓고, 봉사는 똥칠 허고, 애밴 부인(婦人)은 배를 차고, 길가에 허방 놓고, 옹기전에다 말 달리기, 비단전에다 물총 놓고, 이놈의 심사(心事)가 이래 놓으니 삼강(三綱)을 아느냐 오륜(五倫)을 아느냐, 이런 제기럴, 이런 모질고도 독한 놈이 세상천지(世上天地) 어디가 있드란 말이냐.

 

아니리

 삼강도 모르고 오륜을 몰라노니, 어찌 형제윤기인들 알 수가 있겠느냐. 하루는 비오는 날 와가리 성음(聲音)을 내여,

"야 이놈 흥보야, 너도 늙어가는 놈이 겻마리에 손 넣고 서리 마진 구렁이 모양 슬슬 다니는 꼴 보기 싫고, 밤낮으로 내방출입(內房出入)만 하야 자식(子息) 새끼만 되야지 이몰듯 퍼낳듯 허고, 날만 못살게 구니 보기 싫어 살 수 없다. 그러니 너도 오늘부터 나가서 살아 보아라."

"아이고 형님 한 번만 용서(容恕)해 주세요."

"잔소리 말고 썩 나가."

 

중모리

나가란 말을 듣더니마는

"아이고, 여보 형님. 동생을 나가라고 허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까. 갈 곳이나 일러 주오. 이 엄동(嚴冬) 설한풍(雪寒風)에 어느 곳으로 가면 살 듯허오.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伯夷叔齊) 주려 죽든 수양산(首陽山)으로 가오리까."

"이놈, 내가 너를 갈 곳까지 일러 주랴. 잔소리 말고 나가거라."

흥보가 기(氣)가 막혀 안으로 들어가며,

 

"아이고, 여보 마누라. 형님이 나가라고 하니 어느 영(令)이라 거역(拒逆)허며, 어느 말씀이라고 안 가겠소. 자식(子息)들을 챙겨보오. 큰 자식아 어디 갔나, 둘째 놈아 이리 오너라."

이삿짐을 챙겨 지고 놀보 앞에가 늘어서서,

"형님, 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옵시요."

"오냐, 잘 가거라."

흥보 신세(身世) 볼작시면, 울며불며 나가면서,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부모님 살아계실 적에는 네 것 내 것이 다툼 없이 평생(平生)의 호의호식(好衣好食), 먹고 입고 쓰고 남고, 쓰고 먹고도 입고 남아, 세상분별(世上分別)을 내가 모르더니마는, 흥보놈의 신세가 일조(一朝)에 이리 될 줄은 귀신인들 알겠느냐. 여보게 마누라, 어느 곳으로 갈까. 아서라 산중(山中)으로 살자. 전라도(全羅道)는 지리산(智異山), 경상도(慶尙道)는 태백산(太白山), 산중(山中)으로 살자 허니 백물(百物)이 없어서 살 수 없고, 아서라 도방(道傍)으로 가자. 일 원산(一元山), 이 강경(二江景), 삼 포주(三抱州), 사 법성리(四法聖里), 낙안(樂安) 부원다리, 부안(扶安) 줄내 근방(近傍)을 다 찾아다녀 보니 비린내에 속 뒤집혀 암만해도 살 수 없고. 아서라, 서울 가서 살자. 서울 가서 살자 허니 경어(京語)를 모르니 따귀만 맞고, 충청도(忠淸道)가 사자 허니 양반(兩班)들이 억세여서 살 수가 없으니, 어느 곳으로 가면 살 듯허오." (하략)

요점 정리

 주제 : 흥보 쫓겨나는 대목

내용 연구

 아동방이 군자지국이요, 예의지방이라 : 우리 나라가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이 밝은 나라요, 밝은 예법이 행해지는 문명한 나라라. '아동방'은 우리 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있으므로 부르는 이름.

 십실지읍 : 매우 작은 고을

 충신 : 행위가 성실하고 표리가 없는 것. 충은 임금에. 신은 붕우에 대한 도(道)

 효제 : 부모, 형제를 잘 섬김.

 대장군방 : 병란을 조심하라는 간지(干支)의 방위(方位)

 오귀방 : 병마, 재살이 있는 불길한 방위

 편자 : 망건을 졸라 매기 위하여 아랫 시울에 붙여 말총으로 좁고 두껍게 짠 띠

 백이 숙제 - 가오리까 ; 기원전 12세기 무렵 백이와 숙제가, 무왕이 은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리다가 듣지 않으므로,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부끄럽게 여기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를 캐어 먹으며 숨어 살다가 굶어 죽음

 일 원산 - 부원다리, 부안 : 옛 지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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