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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 매품 파는 대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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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 매품 파는 대목

 

아니리

 방울이 떨렁 사령이 예이 야단났지. 흥보가 삼문간(三門間)을 들여다보니 죄인이 볼기를 맞거날 흥보 숫한 마음에 저 사람들은 먼저 와서 돈 수백 냥 번다. 나도 볼기 까고 엎쳐 볼까. 삼문간에서 볼기 까고 엎쳐 놓니 사령 한 쌍이 나오더니,

"병영형문배판지후(兵營刑問排判之後)에 볼기전 보는 놈이 생겼구나. 아니 당신 박 생원 아니시오?

"알아맞혔구만."

"당신 곯았소?"

"곯다니 계란이 곯지 사람도 고나."

"박 생원 대신이라 하고 와서 곤장 열 대 맞고 돈 설흔 냥 받아 가지고 벌써 갔소."

흥보가 기가 막혀,

"아이고 그 놈이 어떻게 생겼던가?"

"키가 구 척이요, 기운이 좋습니다. 놀먀한 쉬염에 아조 매를 썩 잘 맞습디다."

흥보가 이 말을 듣더니,

"어젯밤에 우리 계집이 밤새도록 울더니마는 옆집 꾀쇠애비란 놈이 발등거리했구나."

 

 

흥보 놀보 집 간다

 

중모리

 번수(番手)네들 그러헌가.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수번(守番)이나 평안히 하소. 내집이라 들어가면 엿 달라고 우는 놈은 떡 사 주마고 달래이고, 떡 달라고 우는 놈은 밥 해 주마고 달랬는데, 돈이 있어야 말을 허지 그렁저렁 당도허니,

 

아니리

 흥보가 당도커날,

"여보 영감 어디 좀 봅시다 얼마나 맞았소?"

"날 건드리지 마오. 요망한 계집이 밤새도록 울더니 돈 한 푼 못 벌고 매 한 대를 맞았으면 인사 불성 쇠아들 놈이세."

 

중중모리

 흥보 마누라 좋아라고 얼시구나 절시구 얼시구나 절시구. 영감이 엊그저께 병영길을 떠날 적으, 부디 매를 맞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시라 하나님 전에 빌었더니, 매 아니 맞고 돌아오시니 어찌 아니 즐거운가 얼씨구나 절시구. 옷을 헐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시구나 절시구, 어허허, 어얼시구 얼시구 얼시구 절시구.

 

아니리

 흥보도 좋아라고 절굿대 춤을 추면서,

"참 열녀(烈女)다 열녀, 백녀다."

"여보 영감 죽으나 사나 그래도 형제간밖에 없으니 건너 마을 시숙댁에 건너 가서 죽게 된 사정을 여쭈오면 다소 전곡간(錢穀間)에 줄 테니 건너가 보시오."

"이 사람아 건너 갔다가 만일 보리를 주면 어쩌나?"

"보리라도 많이만 주면 좋지요."

"이 사람아 먹는 보리가 아니고 몽둥이 보리 말일세."

"형제간에 윤기(倫紀)가 있으매 그럴 리가 없으니 건너가 보시오."

흥보가 할 일 없이 치장을 차리고 형님 댁을 건너가는디,

 

자진모리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 치레를 볼작시면 철대 떨어진 헌 파립(破笠) 버릿줄 총총 매여 조새갓끈을 달아서 떨어진 헌 망건(網巾) 밥풀 관자(貫子) 종이 당줄 두통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 이어 고픈 배 눌러 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 조대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 들고, 서리 아침 찬 바람에 옆걸음 쳐 손을 불며 가만가만 건너간다.

 

아니리

 건너가다 놀보 하인 마당쇠를 만났것다.

"아이구 서방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냐 잘 있었으며 큰서방님도 평안하시냐?"

"말씀 마십시오. 작은 서방님이 계실 적에는 제사를 모셔도 음식을 많이 장만하시더니 서방님이 떠나신 후로는 약음이 바싹 생겨 대전(代錢)으로 바칩니다. 접시에다 제육( 肉)이라, 피륙이라고 패지(牌紙)를 써 붙이니 이 통에 들어가셨다가는 몽둥이 뜸질만 할 것이니 도로 건너가십시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다 형님을 안 뵙고 간대서야 말이 되겠느냐? 인사나 드리고 갈란다."

흥보가 성큼성큼 사랑 앞을 들어서니, 어찌 겁이 났던지,

"아이고 형님 소인 문안이오."

"예, 성씨가 뉘댁이시오."

"아이구 형님 흥보 동생을 모르시오."

"아니 여보 나는 오대 독자 독신으로 아우가 없는 사람이오."

흥보가 이 말을 듣더니,

 

진  양

 두 손 합장 무릎을 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 전에 비나이다. 살려 주오, 살려 주오, 불쌍한 동생을 살려 주오. 그저께 하루를 굶은 처자가 어제 점도록 그저 있고, 어저께 하루를 문드러미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을 그저 있사오니 인명이 재천이라 설마헌들 죽사리까마는, 여러 끼니를 굶사오면 할 일 없이 죽게 되니 형님 덕택에 살거지이다. 벼가 되거던 한 섬만 주시고, 돈일 되거던 닷냥만 주시고, 그도 저도 정 주기가 싫거던 니명기나 싸래기나 양단간에 주옵시면, 죽게 된 자식을 살리겠소. 과연 내가 원통하오, 분하여서 못살겠소. 천석군 형님을 두고서 굶어 죽기가 원통합니다.

 

아니리

 과거를 깍깍 대놓고 뗄 수가 없거든.

"오오. 이제 보니 네가 바로 그 흥보냐. 네 이놈 심심하던 차에 잘 왔다. 얘 마당쇠야. 대문 걸고 아래 행랑 처마 끝에 지리산에서 검목쳐 내온 박달 홍두께 있느니라. 이리 가져오너라. 이런 놈은 복날 개 잡듯 해야 하느니라."

 

자진모리

 놀보놈의 거동 봐라. 지리산 몽둥이를 눈 위에 번듯 들고, 네 이놈 흥보놈아 잘 살기 내 복이요 못 살기도 니 팔자. 굶고 먹고 내 모른다. 볏섬 주자헌들 마당에 뒤주 안에 다물다물 들었으니 너 주자고 뒤주 헐며, 전곡(錢穀)간 주자헌들 천록방(天祿房) 금궤 안에 가득가득 환을 지어 떼돈이 들었으니 너 주자고 궤돈 헐며, 찌깅이 주자헌들 구진방(舊陳房) 우리 안에 떼 돼야지가 들었으니 너 주자고 돝 굶기며, 싸래기 주자헌들 황계(黃鷄) 백계(白鷄) 수백 마리가 턱턱 하고 꼭꾜 우니 너 주자고 닭 굶기랴. 몽둥이를 들어메고 네 이놈 강도놈. 좁은 골 벼락치듯 강짜 싸움에 기집 치듯 담에 걸친 구렁이 치듯 후닥닥 철퍽. 아이구 박 터졌소. 이놈. 후닥닥. 아이구 다리 부러졌소, 형님. 흥보가 기가 맥혀 몽둥이를 피하느라고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대문을 걸어 놓니 날도 뛰도 못하고 그저 퍽퍽 맞는데, 안으로 쫓겨 들어가며 아이구 형수씨 날 좀 살려 주오. 아이구 형수씨 사람 좀 살려 주오.

 

아니리

 이러고 들어가거든 놀보 기집이라도 후해서 전곡간에 주었으면 좋으련마는, 놀보  기집은 놀보보다 심술보 하나가 더 있것다. 밥 푸던 주걱 자루를 들고 중문에 딱 붙어 섰다가,

"여보. 아주벰이고 도마뱀이고 세상이 다 귀찮허요. 언제 전곡을 갖다 맽겼던가. 아나 밥, 아나 돈, 아나 쌀."

하고 뺨을 때려 놓니 형님한테 맞던 것은 여반장(如反掌)이오. 형수한테 뺨을 맞아 놓니 하늘이 빙빙 돌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진  양

 여보 형수씨! 여보, 여보, 아주머니. 형수가 시아재 뺨치는 법은 고금 천지 어디 가 보았소. 나를 이리 치지 말고 살지(殺之) 중치(重治) 능지(陵遲)하여 아주 박살(撲殺) 죽여 주오. 아이구 하느님, 박흥보를 벼락을 때려 주면 염라국을 들어가서 부모님을 뵈옵는 날은 세세원정(細細原情)을 아뢰련마는 어이허여 못 죽는거나. 매운 것 먹은 사람처럼 후후 불며 저의 집으로 건너간다.

 

아니리

 흥보 마누라가 막내둥이를 받어 안고 흥보 오는 곳을 바라보니 건너산 비탈길에서 작지를 짚고 절뚝절뚝 하고 오는 모양이 돈과 쌀을 많이 가지고 오는 듯하거늘 흥보가 당도하니,

"여보 영감 얼마나 가져왔소 어디 좀 봅시다."

"날 건드리지 마오."

"아니 또 맞었구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들어보오. 형님댁을 건너갔더니 형님 양주분이 어찌 후하던지 전곡을 많이 주시기에 짊어지고 오다가 요 너머 강정 모퉁이에서 도적놈에게 다 빼앗기고 매만 실컷 맞고 왔네."

흥보 마누라가 이 말을 듣더니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머리

 그런대도 내가 알고 저런대도 내가 아요. 가빈(家貧)에는 사현처(思賢妻)요 국난(國難)에는 사양상(思良相)이라, 내가 얼마나 우준(愚蠢)하면 중한 가장 못 먹이고 어린 자식을 벗기겠소. 차라리 내가 죽을라요. 밖으로 우루루루 뛰어나가 서까래에 목을 매고 죽기로만 작정을 허니 흥보가 달려들어 아이구 여보 마누라. 마누라가 죽고 내가 살면 어린 자식들은 어이 헐거나 차라리 내가 죽을라네. 둘이 서로 부여잡고 퍼버리고 앉아서 울음을 우니 흥보 자식들도 슬피 운다.

(자료 출처 : 박녹주(朴綠珠) 창본(唱本))

 

또는

 


- 흥보 아내의 신세 한탄과 장래 걱정

요점 정리

 주제 : 매품 팔이 실패와 놀보집에서 매맞은 대목과 신세 한탄과 장래 걱정

 

 

 

내용 연구

 

 

(1) 고수 : 북을 치는 사람.
(2) 광대 : 노래를 부르는(판소리를 하는) 사람.
(3) 소리(唱) : 노래를 부름.
(4) 발림 : 광대가 노래할 때 연기로서 하는 몸짓.
(5) 너름새 : '발림'과 같으나 가사, 소리, 몸짓이 일체가 되었을 때 일컫는 말.
(6) 추임새 : 고수가 발하는 탄성. 흥을 돋우는 소리.
(7) 아니리 : 창 도중에 창이 아닌 말로 이야기하는 것.
(8) 진양조 : 소리가 가장 느린 장단으로 사설의 극적 전개가 느슨하고 서정적인 대목에 쓰임
(9) 휘모리 : 소리가 가장 빠른 장단으로 어떤 일이 매우 빠르게 벌어지는 대목에서 쓰임
(10) 중모리 : 소리가 중간 빠르기로 안정감을 주고, 사연을 담담히 서술하는 대목이나 서정적 대목에서 쓰임
(11) 중중모리 : 흥취를 돋우며 우아한 맛이 있다. 춤추는 대목, 활보하는 대목, 통곡하는 대목에서 쓰인다.
(12) 자진모리 : 섬세하면서도 명랑하고 차분하다. 어떤 일이 차례로 벌어지거나 여러 사건을 늘어 놓는 대목, 격동하는 대목에서 흔히 쓰인다.
(13) 엇모리 : 평조음으로 평화스럽고 경쾌하다.
* '-모리'라는 용어도 분명하게 통일된 것은 아니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몰이', '-머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이런 현상은 주인공의 이름을 '흥보'라고도 하고, '흥부'라고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판소리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비전승과정에서 빚어진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리

 

방울이 떨렁 사령이 예이 야단났지. 흥보가 삼문간(三門間 : 대궐이나 관청 등의 건물 앞에 세운 세 개의 문. 곧, 정문(正門)·동협문·서협문.)을 들여다보니 죄인이 볼기를 맞거날 흥보 숫한(순박하고 진실한) 마음에 저 사람들은 먼저 와서 돈 수백 냥 번다. 나도 볼기 까고 엎쳐 볼까. 삼문간에서 볼기 까고 엎쳐 놓니 사령 한 쌍이 나오더니,

"병영형문배판지후(兵營刑問排判之後 :병영에서 형문을 벌려 놓은 이후로.)에 볼기전 보는 놈이 생겼구나. 아니 당신 박 생원 아니시오?

"알아맞혔구만."

"당신 곯았소?"

"곯다니 계란이 곯지 사람도 고나."

"박 생원 대신이라 하고 와서 곤장 열 대 맞고 돈 설흔 냥 받아 가지고 벌써 갔소."

흥보가 기가 막혀,

"아이고 그 놈이 어떻게 생겼던가?"

"키가 구 척이요, 기운이 좋습니다. 놀먀한(놀면한. 보기 좋을 만큼 노르스름한) 쉬염에 아조 매를 썩 잘 맞습디다."

흥보가 이 말을 듣더니,

"어젯밤에 우리 계집이 밤새도록 울더니마는 옆집 꾀쇠애비란 놈이 발등거리(발등걸이. 남이 하려는 일을 먼저 앞질러 하는 짓.)했구나."(우리 마누라가 매 맞으러 가지 말라고 밤새도록 울더니만, 아내가 울어 재수가 없어서 매품 팔 기회를 남에게 빼앗겼다는 분한 마음의 표현)

흥보 놀보 집 간다

 

중모리

번수(番手 : 번기수. 대궐에 차례를 들어 호위하는 기수. 여기서는 사령(使令)의 경칭(敬稱))네들 그러헌가.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수번(守番 : 번갈아 일직함)이나 평안히 하소. 내집이라 들어가면 엿 달라고 우는 놈은 떡 사 주마고 달래이고, 떡 달라고 우는 놈은 밥 해 주마고 달랬는데, 돈이 있어야 말을 허지(홍보집의 가난한 생활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적 표현) 그렁저렁 당도허니,

 

아니리

흥보가 당도커날,

"여보 영감 어디 좀 봅시다 얼마나 맞았소?"

"날 건드리지 마오. 요망한 계집이 밤새도록 울더니 돈 한 푼 못 벌고 매 한 대를 맞았으면 인사 불성 쇠아들 놈이세."

 

중중모리

흥보 마누라 좋아라고 얼시구나 절시구 얼시구나 절시구. 영감이 엊그저께 병영길을 떠날 적으, 부디 매를 맞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시라 하나님 전에 빌었더니, 매 아니 맞고 돌아오시니 어찌 아니 즐거운가 얼씨구나 절시구. 옷을 헐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시구나 절시구, 어허허, 어얼시구 얼시구 얼시구 절시구.

 

아니리

흥보도 좋아라고 절굿대 춤을 추면서,

"참 열녀(烈女)다 열녀, 백녀다."[언어 유희로 리듬을 맞추기 위해 '열녀(烈女)'를 숫자로 해석하여, 열(10)녀·백녀(100)로 했음, 다시 말해서 '열녀'의 '열'이 '열(十)'과 발음이 유사한 것을 이용하여 '열녀(十女)', '백녀(百女)'로 표현한 언어 유희임]

"여보 영감 죽으나 사나 그래도 형제간밖에 없으니 건너 마을 시숙댁(남편의 형제, 시아주버니집. 여기서는 놀보의 집)에 건너 가서 죽게 된 사정을 여쭈오면 다소 전곡간(錢穀間 : 돈이든 곡식이든 간에)에 줄 테니 건너가 보시오."

"이 사람아 건너 갔다가 만일 보리를 주면 어쩌나?"

"보리라도 많이만 주면 좋지요."

"이 사람아 먹는 보리가 아니고 몽둥이 보리 말일세."

"형제간에 윤기(倫紀 : 윤리와 기강(紀綱)을 아울러 이르는 말)가 있으매 그럴 리가 없으니 건너가 보시오."

흥보가 할 일 없이 치장(잘 매만져 곱게 꾸밈.)을 차리고 형님 댁을 건너가는디,

 

자진모리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 치레(잘 손질하여 모양을 냄)를 볼작시면 철대(갓철대. 갓 양태의 테두리에 두른 테.) 떨어진 헌 파립(破笠 : 찢어진 헌 갓) 버릿줄(벼릿줄. 그물의 벼리를 이룬 줄.) 총총 매여 조새(조사. 낚싯줄. 또는 조잎을 엮어서 만든 줄.)갓끈을 달아서 떨어진 헌 망건(網巾 : 상투를 튼 사람이 머리에 두르는 그물 모양의 물건) 밥풀 관자(貫子 : 망건에 달아 당줄을 꿰는 작은 고리.) 종이 당줄(망건에 달아 상투에 동여매는 줄.) 두통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 이어 고픈 배 눌러 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지방과 같은 광택과 양초와 같은 매끈매끈한 감촉이 있는 광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조대(곱돌로 만든 담뱃대)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 들고(양반의 허례허식이 엿보임), 서리 아침 찬 바람에 옆걸음 쳐 손을 불며 가만가만 건너간다.

 

아니리

건너가다 놀보 하인 마당쇠를 만났것다.

"아이구 서방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냐 잘 있었으며 큰서방님도 평안하시냐?"

"말씀 마십시오. 작은 서방님이 계실 적에는 제사를 모셔도 음식을 많이 장만하시더니 서방님이 떠나신 후로는 약음[못된 꾀]이 바싹 생겨 대전(代錢 : 물건 대신 내는 돈)으로 바칩니다. 접시에다 제육(祭肉)이라, 피륙이라고 패지(牌紙 : 조선 때 신분이 높은 사람이 비천한 사람에게 정식으로 보내던 글발로, 항목이나 제목을 적어 붙이는 종이)를 써 붙이니(제사상에 차려야 할 물건들을 장만하지 않고, 물건의 이름 등을 종이에 써서 제사상에 대신 올려 놓으니) 이 통에 들어가셨다가는 몽둥이 뜸질만 할 것이니 도로 건너가십시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다 형님을 안 뵙고 간대서야 말이 되겠느냐? 인사나 드리고 갈란다."

흥보가 성큼성큼 사랑 앞을 들어서니, 어찌 겁이 났던지,

"아이고 형님 소인 문안이오."

"예, 성씨가 뉘댁이시오."

"아이구 형님 흥보 동생을 모르시오."

"아니 여보 나는 오대 독자 독신으로 아우가 없는 사람이오."(놀보가 흥보를 도와 주지 않으려고 능청을 떨고 있는 모습)[안면박대(顔面薄待) : 잘 아는 사람을 푸대접함]

흥보가 이 말을 듣더니,

 

진 양

두 손 합장 무릎을 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 전에 비나이다. 살려 주오, 살려 주오, 불쌍한 동생을 살려 주오. 그저께 하루를 굶은 처자가 어제 점도록 (저물도록의 방언) 그저 있고, 어저께 하루를 문드러미(멀쩡하게, 말끔히의 뜻으로 쓰이는 방언)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을 그저 있사오니 인명이 재천이라 설마헌들 죽사리까마는, 여러 끼니를 굶사오면 할 일 없이 죽게 되니 형님 덕택에 살거지이다. 벼가 되거던 한 섬만 주시고, 돈일 되거던 닷냥만 주시고, 그도 저도 정 주기가 싫거던 니명기('니'는 '뉘'의 사투리. 뉘 같은 것 '뉘'는 찧은 쌀에 섞인 벼 알갱이)나 싸래기나 양단간에 주옵시면, 죽게 된 자식을 살리겠소. 과연 내가 원통하오, 분하여서 못살겠소. 천석꾼(1천 석이나 추수를 할만큼 땅이 많은 부자) 형님을 두고서 굶어 죽기가 원통합니다.

 

아니리

과거를 깍깍 대놓고 뗄 수가 없거든.

"오오. 이제 보니 네가 바로 그 흥보냐. 네 이놈 심심하던 차에 잘 왔다. 얘 마당쇠야. 대문 걸고 아래 행랑 처마 끝에 지리산에서 검목쳐(건목치다. 잘 다듬지 않고 대강 만들다.) 내온 박달 홍두깨(옷감을 감아 다듬이질하는 굵고 둥근 몽둥이) 있느니라. 이리 가져오너라. 이런 놈은 복날 개 잡듯[몹시 심하게 때리거나 맞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해야 하느니라."

 

자진모리

놀보놈의 거동 봐라. 지리산 몽둥이를 눈 위에 번듯(번쩍) 들고, 네 이놈 흥보놈아 잘 살기 내 복이요 못 살기도 니 팔자. 굶고 먹고 내 모른다(놀부의 우애 없음이 단적으로 드러남). 볏섬 주자헌들 마당에 뒤주 안에 다물다물(물건이 무더기 무더기 쌓인 모양) 들었으니 너 주자고 뒤주 헐며, 전곡(錢穀)간 주자헌들 천록방(天祿房 : 하늘이 준 복록이 담긴 방으로 곳간에 붙인 이름) 금궤 안에 가득가득 환(동그라미)을 지어 떼돈이 들었으니 너 주자고 궤돈 헐며, 찌깅이(지게미. 술을 거르고 난 찌거기) 주자헌들 구진방(舊陳房 :돼지막, 또는 오래 묵은 방) 우리 안에 떼 돼야지가 들었으니 너 주자고 돝[돼지] 굶기며, 싸래기 주자헌들 황계(黃鷄) 백계(白鷄) 수백 마리가 턱턱 하고 꼭꾜 우니 너 주자고 닭 굶기랴[놀보의 태도는 아전인수(我田引水) : 자기 논에 물 대기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 몽둥이를 들어메고 네 이놈 강도놈. 좁은 골 벼락치듯 강짜( '강샘'의 속어. 질투. 투기) 싸움에 기집(계집) 치듯 담에 걸친 구렁이 치듯 후닥닥 철퍽. 아이구 박 터졌소. 이놈. 후닥닥. 아이구 다리 부러졌소, 형님. 흥보가 기가 맥혀 몽둥이를 피하느라고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대문을 걸어 놓니 날도 뛰도 못하고 그저 퍽퍽 맞는데, 안으로 쫓겨 들어가며 아이구 형수씨 날 좀 살려 주오. 아이구 형수씨 사람 좀 살려 주오.

 

아니리

이러고 들어가거든 놀보 기집이라도 후해서 전곡간에 주었으면 좋으련마는( 판소리 광대가 직접 자신의 판단이나 생각을 말하는 편집자적 논평 부분), 놀보 기집은 놀보보다 심술보 하나가 더 있것다. 밥 푸던 주걱 자루를 들고 중문(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문)에 딱 붙어 섰다가,

"여보. 아주벰이고 도마뱀이고 세상이 다 귀찮허요(아주벰은 아주버니의 사투리로, 벰과 뱀이 발음이 유사한 데서 착안한 언어유희이다.). 언제 전곡을 갖다 맽겼던가. 아나 밥, 아나 돈, 아나 쌀."

하고 뺨을 때려 놓니 형님한테 맞던 것은 여반장(如反掌 : 손바닥을 뒤집는 것 같다는 뜻으로, 일이 매우 쉬움을 이르는 말)이오. 형수한테 뺨을 맞아 놓니 하늘이 빙빙 돌고 땅이 툭 꺼지난 듯, (흥보의 처지를 '설상가상'으로 볼 수 있음)

 

진 양

여보 형수씨! 여보, 여보, 아주머니. 형수가 시아재(남편의 아우) 뺨치는 법은 고금 천지 어디 가 보았소. 나를 이리 치지 말고 살지(殺之) 중치(重治) 능지(능지처참 陵遲處斬의 준말 : 대역죄를 범한 자에게 과하던 극형. 죄인을 죽인 뒤 시신의 머리, 몸, 팔, 다리를 토막 쳐서 각지에 돌려 보이는 형벌이다.)하여 아주 박살(撲殺) 죽여 주오. 아이구 하느님, 박흥보를 벼락을 때려 주면 염라국을 들어가서 부모님을 뵈옵는 날은 세세원정(細細原情 : 자세한 사정을 하소연함.)을 아뢰련마는 어이허여 못 죽는거나. 매운 것 먹은 사람처럼 후후 불며 저의 집으로 건너간다.

 

아니리

흥보 마누라가 막내둥이를 받어 안고 흥보 오는 곳을 바라보니 건너산 비탈길에서 작지(작대기의 방언)를 짚고 절뚝절뚝 하고 오는 모양이 돈과 쌀을 많이 가지고 오는 듯하거늘 흥보가 당도하니,

"여보 영감 얼마나 가져왔소 어디 좀 봅시다."

"날 건드리지 마오."

"아니 또 맞었구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들어보오. 형님댁을 건너갔더니 형님 양주분이 어찌 후하던지 전곡을 많이 주시기에 짊어지고 오다가 요 너머 강정(강가의 정자) 모퉁이에서 도적놈에게 다 빼앗기고 매만 실컷 맞고 왔네."

흥보 마누라가 이 말을 듣더니 문드러미(물끄러미) 바라보며,

 

중머리

그런대도 내가 알고 저런대도 내가 아요. 가빈(家貧)에는 사현처(思賢妻 : 현명한 아내)요 국난(國難)에는 사양상(思良相)이라( '사기(史記)'의 '위세가'에 나오는 구절로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을 생각한다는 말로 남편이 굶주리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오로지 아내인 자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내가 얼마나 우준(愚蠢 : 어리석고 둔함)하면 중한 가장 못 먹이고 어린 자식을 벗기겠소. 차라리 내가 죽을라요. 밖으로 우루루루 뛰어나가 서까래에 목을 매고 죽기로만 작정을 허니 흥보가 달려들어 아이구 여보 마누라. 마누라가 죽고 내가 살면 어린 자식들은 어이 헐거나 차라리 내가 죽을라네(두 부부가 서로 죽겠다고 다투는 장면. 비극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이유는 해학적 문제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둘이 서로 부여잡고 퍼더리고(퍼더버리고, 팔 다리를 아무렇게나 내어 뻗고) 앉아서 울음을 우니 흥보 자식들도 슬피 운다. (박녹주(朴綠珠) 창본(唱本) )

 

이 작품은 판소리가 불려지는 현장에서 채록한 창본이다. 이 작품은 사설 내용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창을 하는 상황이나 분위기 등에 따라 그 내용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특징을 바탕으로 하여 문학이 소통의 결과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수, 학습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품의 해학성

 제시된 부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해학성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흥보가 먹을 양식이 없어 형을 찾아가나 형과 형수에게 매를 무수히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소리의 묘미는 이러한 상황을 해학적으로 그린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이러한 판소리의 특징을 매우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매품을 팔지 못하고 돌아오는 첫 대목, 아내를 '참 열녀다 열녀, 백녀다'라고 말하는 대목, 흥보의 외관을 묘사하는 대목, 놀보가 흥보를 매질하는 대목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마지막 대목에서는 제시된 상황의 본질적인 면모의 비장미를 느끼게 해 줌으로써 그 웃음이 현실을 무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주제 의식

 표면적으로 형제간의 우애(友愛)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변화하는 조선 후기 사회, 경제적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한 놀보와 여전히 유교적 사고 방식에 젖어 현실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흥보를 그린 것으로 이 작품의 주제를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지도방법

 

내용전개 과정에 나타난 해학적인 성격에 주목하여 감상하도록 한다.

 제시된 부분의 내용은 매우 비극적이다. 그런데 내용의 구성은 해학성을 바탕에 두고 전개되고 있다. 이 점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하고, 이것을 통해 판소리의 특징을 이해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면 훌륭한 수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전승 과정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작품은 '생산-유통-소비'의 과정으로 볼 때 적층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작자의 일방적인 생산과 그에 따른 독자의 소비 과정이 아니라 청중이나 독자의 개입에 의해 작품 내용이 변개(變改)되었으며, 그러한 속성을 통해 유통되고 소비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특징이 판소리 작품의 전승 과정의 핵심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 이 작품이 청자와 소통되는 상황(연행 상황)을 고려하며 작품을 감상한다.

 판소리 대본의 형식으로 제시하였지만, 이 작품은 판소리 연행 현장에서 체록한 작품이므로 작품을 감상할 때에 연행 상황을 고려하면서 감상하여 생동감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제시문의 장단을 염두에 두고 사설을 감상하는 활동 역시 실제상황을 재구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글은 소리로 듣는 판소리 대본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보듯이 어려운 한자가 많아 읽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당대의 청중들은 이 소리를 들으면서 울고 웃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그 럴수 있었는지 함께 이야기 해보자.

 

이끌어주기 :

 판소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고전으로 대접받고있지만, 당대에는 대중문화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판소리 역시 대중들의 언어감각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보기에는 어려운 한자어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학생들에게 먼저 `박탕령' 의 언어가 어려운 이유를 묻고, 그 이유를 간단하게 들은 후, 학생과 교사가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언어 습관과 과거의 언어 습관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가 한문이나 한자를 대하는 것과 과거의 사람들이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끌면 토의가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예시답안 :

 판소리에서 한시문이나 중국의 고사와 관련된 어휘 및 구절이 빈번하게 구사되는 현상과 관련하여, 이를 판소리 향유층의 문제 혹은 판소리의 이데올로기적 표상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설명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가지기는 하나, 이를 언어 습득이나 언어 활동의 측면에서 보면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은 낱낱의 `문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낱말의 그 뜻에 결부시켜 습득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평민들이 한자를 모른다는 것은 그 `문자적 표기'를 모른다는 의미이지 그 의미까지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언중들은 당시의 언어생활에서 한시의 한 구 또는 한 행, 혹은 전체 차원에서도 그 낱낱의 개별적인 의미가 아니라 개념적으로 굳어진 의미의 덩어리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시문이나 고사 관련 어구들은 특정한 상황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면 즉각 동원될 수 있는 하나의 의미 덩어리로 갈무리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오늘날의 언중들이 지식 수준에 상관없이 외래어는 물론이고 몇몇 외국어까지 우리말과 다름없이 구사하고 있는 현실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우리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한자어들도 당대의 언중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구 있어야 한다. 당대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는 이해의 어려움은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2. 다음 글을 읽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박타령'의 전승 과정에서 여러 이본들이 만들어진 이유를 말해보자.

 

이끌어주기 :

 판소리 장르의 성격과 판소리의 전승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판소리는 대본을 미리 암기하고 창을 하는 것이지만, 창자의 재능과 판소리를 하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며, 또한 판소리 창자의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예시답안 :

 판소리는 정해진 대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소리는 창자의 판소리를 익히는 과정에서 대본을 암기하기는 하나 창을 하는 경륜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대목을 골라 그 부분을 변형할 수 있고, 판소리를 하는 상황이나 장에 따라 즉석에서 내용을 달리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서 새로운 이본이 탄생했다. 또한 판소리 향유계층 중에는 직접 판소리 창본을 기록하여 보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은 `신재효'이다. 이러한 청중들에 의해 새로운 이본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2) `박타령' 외에 전승 과정에서 이본이 만들어진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사해보자.

 

이끌어주기 :

 판소리계 소설이나 판소리는 다양한 이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으로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생들이 여러 이본들을 일일이 찾아서 발표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현실적으로 다양한 이본들을 전시해 놓은 자료실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활동에서는 여러 문헌들을 통해 이본들이 다양하게 존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단계까지만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다 심화된 조사. 탐구를 한 학생이 있다면 이본 사이의 내용을 비교하여 발표할 수 있도록 과제를 부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시답안 :

 `춘향전'을 예시로 하여 발표해 보자. 춘향전은 `춘향가(남창)', `춘향가(여창)', `별춘향전', `열녀춘향수절가', `남원고사', `옥중화', `증상연예옥중가' 등의 여러 이본의 형태도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춘향전이라는 말과 더불어 `춘향전군(群)' 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이 중 가장 많은 분량으로 이루어진 것은 `남원고사'이다.

 

 이러한 춘향전군의 작품들은 대게 전체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춘향의 신분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그 종류가 다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열녀춘향수절가'의 경우는 춘향을 남원부사였던 성참판과 월매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설정한다. 또한 춘향은 하늘의 점지로 태어난 존귀한 존재로 설정한다. 신재효의 `남춘향가'와 `옥중화'도 이러한 계통에 속한다. 춘향전의 여러 이본을 조사하면서 판소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고 변형되면서 형성된 적층 문학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3) 오늘날의 소설 작품의 `생산-유통-소비'와 판소리의 그것이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토의해 보자.

 

이끌어주기 :

 판소리나 판소리계 소설은 구술(口述) 문화의 산물이고 소설 작품은 기록 문화의 산물임을 먼저 이해하도록 한다. 기록 문학인 오늘날의 소설 작품은 고정되어 있어 변화 가능성이 매우 적으나, 판소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활동의 목적이다.

 모둠별로 진행할 수도 있으나, 교사가 사회자가 되고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도움말을 주는 형식으로 토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학생들에게 오늘날의 소설 작품의 생산-유통-소비의 과정을 질문한다. 이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그렇다면 판소리의 그것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연스럽게 현대 소설과 판소리의 생산-유통-소비의 과정이 다르다는 이해에 스스로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예시답안 :

 판소리는 숱한 근원 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구비 문학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작자를 알 수 없는 작품이 아니고 수많은 서민 대중들이 모두 작자인 셈이다. 그리고 판소리가 전승되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취향에 맞추어 작품을 변개(變改)시키게 된다. 이 점 또한 판소리의 작자가 당대의 언중들임을 말해 준다. 곧 판소리나 판소리계 소설은 오늘날의 소설처럼 작자와 독자가 되고, 독자가 곧 작자가 되는 형태로 유통되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각종 시리즈 유머가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유통되면서 새롭게 가공되고 창조되는 모습과 유사하다.

 

 반면에 소설 작품은 한 번 책으로 출간되면 그것을 임의로 고치거나 새로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작자가 치밀한 계산으로 설정한 상황과 사건, 인물이 소설 작품을 이루게 되는데, 이를 임의로 고치면 일관성과 유기성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른바 `저작권'의 문제까지 있어서 독자가 작자의 역할을 일부라도 수행하는 것은 법적으로고 금지되어 있다. 독자는 오직 독자일 따름이다.

 

 요컨대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은 작품의 유기성을 다소 손상을 받더라도 독자(청중)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허락함으로써 대중적인 공감대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흥부전'류의 구조와 주제

 

 흥부전의 구조에 대해서는 먼저 선인과 악인이 대립하여 인물의 행위를 모방하고 반복하는 모방담의 구조라는 주장을 들 수 있다. 이 모방담의 구조랑 선한 인물이 우연한 기회에 선행으로 행운의 결과를 얻고, 악한 인물이 선한 인물의 행위를 흉내내다가 악운의 결과를 얻는다는 민담의 구조이다. 이 모방이 흥부와 놀부에 의해 ‘흥부전’을 이루어 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흥부전의 구조에서 흥부는 선하고 놀부는 악하며, 흥부는 제비로부터 보은(報恩)박을 받아 부자가 되고 놀부는 보수(報讐)박을 받아 패가망신(敗家亡身)한다는 내용의 고정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하여 비고정체계는 판소리 공연이 부분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부분의 독자성이 인정되는 단락들을 가진다. 예컨대 가난하고 무력한 흥부가 권력을 쥔 이속(吏屬)과 대립하거나, 흥부가 항상 선인으로 그려지지 않고 무능력하고 형식주의적이며 무계획적인 인간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집짓는 장면이나 치장하는 장면, 그리고 가난하면서도 웬 자식은 수십 명이나 낳아 놓았다고 흥부를 비판하는 작가의 세계는 비고정 체계면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이러한 분석 방식을 바탕으로 흥부전은 선량한 자는 복을 받고 비도덕적이고 탐욕에 눈이 어두운 자는 벌을 받는다는 주제가 표면에 드러난다. 그러나 부분의 독자성을 인정하여 숨겨진 주제를 찾아본다면 천부로 가난해져 버린 양반과 현실주의적으로 변한 서민이 등장하는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발견된다. 이와 같은 주제 의식 뒤에 흥부전은 적층 문학으로 조선 후기 민중들의 근대 지향 의식과 전근대적 의식이 혼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 정하영, ‘흥부전 해제’)

 흥부전의 근원 설화 - 방이설화

 

 금추설화(金錐說話)라고도 한다. 중국에까지 전해져 당(唐)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속집(酉陽雜俎續集)》 권1, 《태평어람(太平御覽)》 권 41, 《동사강목(東史綱目)》 부권(附卷) 중의 괴설변증(怪說辯證) 방이조(旁嘲條)에 각각 실렸다. ‘내 코가 석자’라는 속담도 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김방이(金旁嘲)가 살았는데 그의 아우는 부자였고, 형인 방이는 몹시 가난하였다. 어느 해 방이는 아우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구걸하자 심술사납고 성질이 포악한 아우는 누에와 곡식 종자를 삶아서 형에게 주었다. 이를 모르는 방이는 누에를 열심히 치고 씨앗도 뿌려 잘 가꾸었다. 그 중에서 단 한 마리의 누에가 생겼는데, 그것이 날로 자라 황소만큼 컸다. 소문을 듣고 샘이 난 아우가 찾아와 그 누에를 죽이고 돌아갔다. 그러자 사방의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켜 주었으므로 형은 ‘누에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곡식도 한 줄기밖에 나지 않았으나, 역시 이삭이 한 자가 넘게 자랐다. 하루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이삭을 물고 산 속으로 달아났다. 새를 쫓아서 산 속 깊이 들어갔던 방이는 해가 저물어 돌 옆에 머물게 되었다. 그 때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타나 금방망이[金錐子]로 돌을 두드리니 원하는 대로 음식이 다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를 먹고 놀더니 금방망이를 돌 틈에 놓아두고 헤어졌다. 방이가 그 금방망이를 주워서 돌아오니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심술이 난 아우는 형처럼 하여 새를 쫓아가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지난번 금방망이 도둑으로 몰려 사흘이나 굶주리며 연못을 파는 벌을 받고 코끼리처럼 코를 뽑힌 다음에야 돌아왔다. 《흥부전(興夫傳)》은 이 설화를 번안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코 떼었다’ 또는 ‘내 코가 석 자’라는 속담도 이에서 유래한 것이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흥부전의 근원 설화 - 박 타는 처녀(몽골 설화)

 

 옛날 어느때 처녀 하나가 있었다. 하루는 바느질을 하고 있노라니까, 무슨 서툰 소리가 들리는데, 나가 본즉 처마 기슭에 집을 짓고 있던 제비 한 마리가 땅으로 떨어져서 버둥거리며 애를 쓴다. 에그 불쌍해라 하고 집어 살펴본즉, 부둥깃이 부러졌다. 마음에 매우 측은하여, 오냐 네 상처를 고쳐 주마하고, 바느질하던 오색 실로 감쪽같이 동여 매여 주었다. 제비가 기쁨을 못 이기는 듯이 날아갔다.

 

 얼마 뒤에 그 제비가 평소와 같이 튼튼한 몸이 되어서 날아오더니, 고마운 치사를 하는 듯이 하고 날아간다. 우연히 날아간 자리를 본즉, 무엇인지 씨앗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이상한 일도 있다 하고, 무엇이 나는가 보리라고 뜰 앞에 심었다. 그것이 점점 커지더니, 그 덩굴에 가서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엄청나게 크니까, 희한한 김에 굳기를 기다려 하루바삐 타 보았다. 켜자마자 그 속에서 금은 주옥과 기타 갖은 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그 처녀가 금시에 거부가 되었다.

 

 그 이웃에 심사 바르지 못한 색시가 하나 있었다. 이 색시가 박 타서 장자 된 이야기를 듣고, 옳지 나도 그 색시처럼 제비 상처를 고쳐 주리라 하였다. 그래서 제집 처마 기슭에 집 짓고 사는 제비를, 일부러 떨어뜨려서 부둥깃을 부러뜨리고 오색 실로 찬찬 동여매어 날려 보냈다. 얼마 지나니까 과연 박씨 하나를 가져왔다. 너무나 기뻐서 얼른 뜰에 심었더니, 여전히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오냐, 금은 주옥 갖은 보화가 네 속에 들었느냐 하고 그 박을 탔다. 뻐개어 본즉 야단이 났다. 그 속에서 무시무시한 독사가 나와서 그 색시를 물어 죽였다.


 

 삼문(三門) : 대궐이나 관청 등의 건물 앞에 세운 세 개의 문. 곧, 정문(正門)·동협문·서협문.

 숫한 : 순박하고 진실한

 병영형문배판지후 : 병영에서 형문을 벌려 놓은 이후로.

 놀먀한 : 놀면한. 보기 좋을 만큼 노르스름한

 발등거리 : 발등걸이. 남이 하려는 일을 먼저 앞질러 하는 짓.

 번수(番手) : 번기수. 대궐에 차례를 들어 호위하는 기수. 여기서는 사령(使令)의 경칭(敬稱)

 수번 : 번갈아 일직함

 어젯밤에 우리 계집이 밤새도록 울더니마는 : 우리 마누라가 매 맞으러 가지 말라고 밤새도록 울더니만, 아내가 울어 재수가 없어서 매품 팔 기회를 남에게 빼앗겼다는 분한 마음의 표현

 내 집이라 들어가면 - 돈이 있어야 말을 허지 : 홍보집의 가난한 생활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적 표현

 시숙댁 : 시아주버니집. 여기서는 놀보의 집

 전곡간에 돈이고 곡식이고 간에

 윤기(倫紀) : 윤리의 기강(紀綱)

 치장(治裝) : 잘 매만져 곱게 꾸밈.

 철대 : 갓철대. 갓 양태의 테두리에 두른 테.

 버릿줄 : 벼릿줄. 그물의 벼리를 이룬 줄.

 조새 : 조사. 낚싯줄. 또는 조잎을 엮어서 만든 줄.

 관자 : 망건에 달아 당줄을 꿰는 작은 고리.

 당줄 : 망건에 달아 상투에 동여매는 줄.

 곱돌 조대 : 곱돌로 만든 담뱃대

 대전(代錢) : 물건 대신 내는 돈

 참 열녀다 열녀, 백녀다 : 언어 유희. 리듬을 맞추기 위해 '열녀(烈女)'를 숫자로 해석하여, 열(10)녀·백녀(100)로 했음

 윤기 : 윤리의 기강

 철대 : 갓철대, 갓 양태의 테두리에 두른 테

 벼릿줄 : 그물의 벼리를 이룬 줄.

 조새 : 조사. 낚시줄. 또는 조짚을 엮어서 만든 줄.

 관자 : 망건에 달아 당줄을 꿰는 작은 고리

 당줄 : 망건에 달아 상투에 동여매는 줄

 조대 : 곱돌로 만든 담뱃대

 패지 : 항목이나 제목을 적어 붙이는 종이

 집시에다 제육이라 - 써 붙이니 : 제사상에 차려야 할 물건들을 장만하지 않고, 물건의 이름 등을 종이에 써서 제사상에 대신 올려 놓으니

 아니 여보 - 없는 사람이오 : 놀보가 흥보를 도와 주지 않으려고 능청을 떨고 있는 모습

 니명기 : '니'는 '뉘'의 사투리. 뉘 같은 것 '뉘'는 찧은 쌀에 섞인 벼 알갱이

 검목쳐 : 건목치다. 잘 다듬지 않고 대강 만들다.

 찌깅이 : 지게미. 술을 거르고 난 찌거기

 구진방 : 돼지막, 또는 오래 묵은 방

 강짜 : '강샘'의 속어. 질투. 투기

 능지 : 능지처참(陵遲處斬 : 대역죄를 범한 자에게 과하던 극형. 죄인을 죽인 뒤 시신의 머리, 몸, 팔, 다리를 토막 쳐서 각지에 돌려 보이는 형벌이다.)의 준말

 세세(細細)원정(原情) : 자세한 사정을 하소연함.

 천록(天祿)방 : 하늘이 준 복록이 담긴 방

 이러고 들어가거든 - 하나가 더 있것다 : 판소리 광대가 직접 자신의 판단이나 생각을 해설하는 부분으로 편집자적 논평이라고 함.

 능지 : 능지 처참의 준말. 대역죄를 범한 경우에 머리·몸·팔·다리를 토막 쳐서 죽이던 극형

 작지 : 작대기

 강정(江亭) : 강가의 정자

 점도록 : 저물도록

 문드러미 : 물끄러미

 가빈에는 사현처요 국난에는 사양상이라 : '사기(史記)'의 '위세가'에 나오는 구절로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을 생각한다는 말로 남편이 굶주리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오로지 아내인 자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우준(愚蠢) : 어리석고 둔함

 차라리 내가 죽을라요 - 차라리 내가 죽을라네 : 두 부부가 서로 죽겠다고 다투는 장면. 비극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이유는 해학적 문제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 대한 교과서)

 

 

 

 

 

이해와 감상

 

 조선 후기에 신재효(申在孝)가 개작하여 정착시킨 판소리 작품의 하나. 필사된 이본 중에는 ‘박타령’이란 제목 외에 ‘박흥보가(朴興甫歌)’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제목의 상이(相異)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동일하나 간혹 미세한 자구의 차이만 보일 뿐이다.


〈박타령〉은 판소리로 불리는 작품 중에서 판소리 창자가 향유한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인 〈흥보가〉의 성격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재효가 개작하여 정착시킨 판소리 사설에는 상층 문화를 지향하는 성격과 하층 문화로 복귀하는 성격의 이중성이 드러나고 있는데, 〈박타령〉은 하층문화로 복귀하는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놀부의 악을 징벌하기 위해서 놀부 박에 등장하는 인물의 언동은 매우 저속하지만 발랄한 느낌을 주고 있다. 또 흥부라는 인물을 형상화함에 있어서도, 그의 아내를 학대하는 일면을 설정함으로써 훨씬 현실적인 인물로 재창조하였다.
이것은 판소리를 공연한 주체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신재효의 문화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남창 춘향가〉나 〈토별가〉에서 양반 사대부들의 문화를 긍정하는 그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박타령〉에도 신재효 판소리 사설의 전반적인 성격의 하나인, 독서물로 전환시키는 기록문학적 성격이 드러나고 있다. 이 점은 신재효의 〈박타령〉 일부를 수용한 판소리 창본에서 소리하기에 적합하도록 문장의 길이와 짜임이 재편성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되는 일이다.


이 작품의 상당한 부분이 이날치(李捺致)의 창본에 수용되어 김제 지방의 김이수(金二洙)라는 창자에게 전승되었다. 또 이날치와 이종 간이었던 김창환(金昌煥)에게도 일부 수용되었고, 김정문(金正文)에게도 일부 수용되었다. 성두본(星斗本)을 영인한 자료와 주석을 달고 이본 간의 차이를 표시한 자료가 출판되었다.

≪참고문헌≫ 唱樂大綱(朴憲鳳, 國樂藝術學校出版部, 1966), 판소리 興甫歌의 硏究(洪顯植, 全北大學校 文理大論文集, 1974), 흥보가에 있어서 박사설의 생성과 그 기능(徐鍾文, 白影鄭炳昱先生還甲紀念論文集, 198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에서는 우직한 흥보와 의뭉스러운 놀보라는 대립적인 인간상을 대조시켜 놓고 그들의 인간상 속에서 무력한 서민과 교활한 부농(富農)을 비교시켜 어진 인간보다 인색하고도 몰인정한 인간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문제점을 던져 주고 있다. 이는 명확히 한낱 동화(童話)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흥보의 뼈를 깎는 가난만이 진실이고, 당시 양반의 수탈을 만나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농민 일반의 형상(形象)으로 박진력(迫眞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숱한 선물이 나와서 흥보를 부자로 만들고 숱한 악한 것이 나와서 놀보를 빈털터리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서민들의 대상 심리적인 환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서민의 꿈을 그리면서 양반 사회의 도덕률을 만족시켜 준 이 작품의 이중적 구조는 광대 문학 전반에 따라다니는 뚜렷한 기교이기도 하다.

 

 

이해와 감상2

  인용된 부분에서 흥보는 매품을 팔러가서 옆집 사람보다 늦어 돈을 벌지 못하면서 재수가 없었던 탓이라고 여겨 부인을 원망한다. 이미 쫓겨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흥보 아내는 놀보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으며, 흥보가 놀보를 찾아가는 원인이 된다. 흥보는 놀보가 제사상에 종이쪽을 올리고 처사를 듣고도 앞으로 다가올 횡액은 짐작치도 못하며, 놀보와 놀보 아내는 한통속으로 홍보를 접근도 못하게 다그친다. 서로 간에 오가는 마음보다 재물을 위하는 놀보와 놀보 아내의 마음이 절실하게 드러나 있으며, 매맞지 말라고 흥보를 보냈던 흥보 아내는 결국 흥보가 매맞고 오는 모양을 보게 된다. 흥보에게 있어 모든 것은 어긋나기만 하며, 놀보는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어간다.

 

  당시의 인정 세태는 흥보와 놀보 사이에 있어 이 둘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들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물의 성격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어 있어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판소리에서는 인물이나 주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공연 양식이었다는 점에서 형태의 즐거움 또한 유별나다. 인용된 부분에서도 판소리의 창자는 자유롭게 여러 가지 시점을 구사하고 있으며, 한 문장에서도 시점이 변하는 경우조차 있다. 관객은 판소리를 들으면서 여러 사람의 내면, 사건, 자연 풍경들을 그려 보이는 창자의 노래에 빠져들며, 그 소리의 느낌과 자유로운 서술에 감탄하게 된다.

 

  다른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흥보가 역시 '박 타는 처녀 설화', '방이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판소리계 소설인 '흥보전'으로 정착되었다. 또한 개화기에는 이해조의 신소설 '연(燕)의 각(脚)'으로 개작되기도 하였다.

 

이해와 감상3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하나로, '박타령'이라고도 불린다. 짐승이 사람에게 은혜와 원수를 갚는 이야기는 몽고의 '박 타는 처녀' 이야기, 일본의 '혀를 자른 새' 이야기, 중국의 '은혜를 갚은 누런 새' 이야기에서 보듯이, 아시아에 널리 퍼져 전해 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를 조선 왕조 어느 때쯤에 가객들이 판소리로 짠 것이다. 흥보와 놀부 형제를 등장시켜 엮어 나가는 이 이야기 속에는 서민다운  재담이 가득 담겨 있고, 또 놀부가 탄 박통 속에서 나온 놀이패들이 벌이는 재담도 들어 있어서,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민속성과 민중의 해학이 가득 담긴 판소리로 꼽힌다. (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심화 자료

  '흥부전'은 제비가 박씨를 물어와서 형제 사이의 다른 처지를 바꾸어 놓는 기적을 근간으로 해서 마음씨 착한 흥부는 흥하고, 심술만 부리는 놀부는 망하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우애를 권장하는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심청전'의 용궁, '춘향전'의 전생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제비의 나라 강남국이 초경험적인 영역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도덕적 당위를 보장해 주고 있다. 효성 정절과 함께 우애는 널리 권장되던 기본 덕목이어서 작품이 쉽사리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판소리계 소설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천상계의 질서나 거기 근거를 둔 도덕적 당위나 그동안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 자체는 현실적인 문제 의식에 근거를 두고 따로 전개된다. 이본에 따라 달라지고 얼마든지 새로 지어 보탤 수 있는 가변적인 내용이 고정적인 체계에 느슨하게 걸려 있으면서 '흥부전'이 사회 소설로서 대단한 작품일 수 있게 했다.

 

  흥부와 놀부는 형제라고 했지만 사회적인 처지나 지향하고자하는 의식에서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흥부는 먹고 살 길이 없어 빈민의 처지로 내려가 품팔이를 하다 못해 매품팔이까지해야 하면서도, 양반이라고 자처하고 인륜 도덕을 무엇보다 존중한다. 의식에서는 양반이고 생활에서는 양반이 아니어서 생기는 갈등을 자기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나날이 경험하면서도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을 조금도 바꾸어놓지 않으니 어리석기만 하다. 놀부는 스스로 농사를 지어 이문을 남기고, 돈놀이도 해서 재산을 늘리면서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 성미이다. 심술이 대단하다고 했는데, 심술이란 다름이 아니라 일정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놀부는 화폐 경제의 위력으로 중세적인 질서를 청산하는 방향을 제시하며, 그렇게 하는 데서 생기는 부작용까지 나타낸 인물이다. [출처 : 조동일, <한국 문학 통사 3> (지식산업사, 1989)]

 

참고문헌

김유자, <판소리 흥보가 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4)

최동현, <판소리란 무엇인가> (문학아카데미,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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