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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 - 매품 선약금을 받고난 대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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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성현동 복덕촌을 당도허여 고생이 자심헐 제 철모르는 자식들은 음식노래로 부모를 조르난 디, 떡 달라난 놈, 밥 달라난 놈, 엿을 사 달라난 놈 각심으로 조를 적에, 흥보 큰아들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이 자식아 너는 어찌허여 고등뿌사리목성음이 나오느냐?"

"어머니, 나는 낮이나 밤이나 불면증(不眠症)으로 잠 안 오는 서름이 있소."

"그 서름이 무엇이냐? 말이나 좀 해라. 나는 배고픈 것이 제일 섧드라."

"어머니 아버지 공론(公論)하고 날 장가 좀 들여주오 내가 장가가 바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손자가 늦어 갑니다."

흥보 마누라가 이 말을 듣고 기가 맥혀

 

진양

 "엇다, 이놈아! 야 이놈아 말들어라 내가 형세(形勢)가 있고 보면 네 장가가 여태 있으며 중한 가장을 굶주리게 하고, 어린 자식을 벗기겠느냐? 못 먹이고 못 입히는 어미 간장이 다 녹는다. "

 

아니리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없이 사는 살림에 밤낮 그렇게 눈물만 짜니 무슨 재수가 있겠소? 나 오늘 읍내 좀 갔다 올라야."

"읍내는 무엇 하러 가실라요?"

"환자(還子)맡은 호방한테 환자 섬이나 얻어, 굶는 자식들 살려야 하지 않겠소"

"내라도 안 줄테니 가지마오"

"구사일생(九死一生)이지 누가 믿고 가나? 내 갓 좀 내 오오"

"갓은 어디다 두었소?"

"굴뚝속에 두었지"

"아니 여보 영감! 갓을 어째 굴뚝 속에 두었소?"

"그런 것이 아니라, 신묘(辛卯)년 조 대비 국상(國喪)시에 백립(白笠)이 갓양이 단단하다 해서 끄름에 끄슬려 쓰려고 굴뚝 속에 두었지. 거 내 도복(道袍) 좀 내 오오"

"도복은 어디다 두었소?"

"장안에 들었지"

"아니 여보, 우리 집에 무슨 장이 있단 말이요?"

"허허 이 사람아, 달구장은 장이 아닌가?"

흥보가 치장을 채리고 질청(秩廳)을 들어가는 디

 

자진모리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치레를 볼작시면 철대 부러진 헌 파립(破笠) 버레줄 총총 매어 조새 갓끈을 달아 써. 면자 떨어진 헌 망건(網巾) 밥풀 관자(貫子) 노당줄을 뒷통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 이어 고픈 배 눌러 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 조대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 들고, 죽어도 양반이라고 여덟 팔자 걸음으로 엇비식이 들어간다.

 

아니리

흥보가 들어가며 별안간 걱정이 하나 생겼지.

'내가 아무리 궁핍할망정 반남 박씨 양반인디 호방을 보고 허게를 하나, 존경을 할까? 아서라, 말은 하되 끝은 짓지 않고 그냥 웃음으로 얼리는 수밖에 없다.'

질청으로 들어가니 호방이 문을 열고 나오다가,  

"박 생원 들어오시오?"

"호방 뵌 지 오래군."

"어찌 오셨소?"

"양도(糧道)가 부족해서 환자 한 섬만 주시면 가을에 착실히 갚을 테니 호방 생각이 어떨는지? 허허허!"

"박생원, 품 하나 팔아 보오. "

"돈 생길 품이라면 팔고 말고 "

" 다른 게 아니라, 우리 고을 좌수(座首)가 병영(兵營) 영문(營門)에 잡혔는디, 좌수 대신 가서 곤장(棍杖) 열 대만 맞으면, 한 대에 석 냥씩 서른 냥은 꼽아 논 돈이요, 마삯까지 닷 냥 제시했으니 그 품 하나 하나 팔아 보오."

"돈 생길 품이니 가고 말고, 매품 팔러 가는 놈이 말 타고 갈 것 없고, 내 정강말로 다녀올 테이니 그 돈 닷 냥을 나를 내어 주제"

 

중모리

저 아전(衙前) 거동을 보아라. 궤문을 떨껑 열고 돈 닷냥을 내어주니 흥보가 받아들고

"다녀오리다"

"평안히 다녀오오"

박흥보 좋아라고 칠청 밖으로 썩 나서서 "얼씨구나 좋구나 돈 봐라 돈 돈 봐라 돈, 돈, 돈, 돈, 돈을 봐라 돈,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다 보이고 조금 있다가 나는 지화(紙貨)를 손에다 쥐고 보면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끊어지니 보이는 것 돈밖의 또 있느냐. 돈, 돈, 돈, 돈봐라 돈, 떡국집으로 들어가서 떡국 한 푼 어치를 사서 먹고 막걸리 집으로 들어가서 막걸리 두 푼 어치를 사서 먹고 어깨를 늘이우고 죽통을 빼뜨리고, "대장부 한 걸음에 엽전 서른 닷냥이 들어를 간다. 얼씨구나 좋구나 돈 봐라!"

저의 집으로 들어가서

 "여보게 마누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고 집안이라고서 들어오면, 우루루루 쫓아 나와서 영접하는 게 도리에 옳지, 계집이 이 사람아, 당돌히 앉아서 좌이부동(坐而不動)이 웬일인가 에라, 이사람, 몹쓸 사람! "

 

중중모리

흥보 마누라 나온다. 흥보 마누라 나온다.

"아이고, 여보 영감! 영감 오신 줄 내 몰랐소. 어디 돈, 어디 돈? 돈 봅시다, 돈 봐!"

"어디 돈 어디 돈 돈봅시다 돈봐!"

"놓아두어라 이 사람아 이 돈 근본을 자네 아나?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 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生殺)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를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봐라"

요점 정리

 주제 : 모진 가난에 허덕이면서 그 고난을 헤쳐 나가려고 기를 씀

내용 연구

 고동뿌사리 : 고동사부리. 코를 뚫어 코뚜레를 꿰어야할 만큼 자란 수소. 힘이 세고 사람에게 달려들기도 하여 다루기가 매우 힘듦.

 어머니 아버지 공론(公論)하고 - 손자가 늦어 갑니다 : 나는 장가갈 생각이 별로 없지만 부모님 손자가  늦는 게 걱정이라는 뜻. 곤궁한 형편 때문에 겪는 심각한 상황에서 엉뚱한 생각을 제시함으로써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행위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해학적 효과를 조성한다.

 백립 갓양이 - 굴뚝 속에다 두었지 : '백립'은 흰 베로 싸개를 한 갓이며, '갓양'은 '갓양태'의 준말로 갓의 밑둘레 밖으로, 둥글넓적하게 된 바닥 부분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나라의 장례 때 갓에 흰 싸개를 했던 갓이 그 갓양태가 단단하여서 굴뚝 속에 두어 연기로 검어지게 해서 쓰고자 했다는 말이 된다. 흰 싸개를 벗기면 바로 검은 갓이 나올 터인데 그러지 않고 연기에 그을린다는 데서 터무늬없다는 느낌을 주게 되고, 결국 이 말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내 정강말로 다녀올 테니 그 돈 닷 냥을 나를 주제 : '정강말'은 아무것도 타지 않고 제 발로 걷는 것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판소리는 이처럼 웃음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 돈밖에 또 있느냐 : 돈을 눈에 대면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생각하게 되고, 돈을 손에다 쥐면 삼강오륜(三綱五倫)도 무시하게 된다는 뜻.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예의와 염치가 생기는가 하면, 돈에 욕심을 냄으로써 예의와 염치를 버리게도 되는 돈의 이중성을 잘 형상화한 표현이다.

 돈, 돈, 돈, 돈, - 돈 봐라 : 돈을 여러 차례 되풀이함으로써 돈에 얽힌 기쁨과 설움이 별다른 설명 없이 함축으로 드러나게 된다.

 아나 : '옜다'의 방언

 맹상군(孟嘗君) (? ~ BC 279?) : 성명 전문(田文). 맹상군은 시호 또는 봉호(封號)라고도 한다. 선왕(宣王)의 서제(庶弟)인 아버지의 뒤를 이은 다음,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후하게 대접하여 그 명성과 실력을 과시하였다.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의 초빙으로 재상(宰相)이 되었으나 의심을 받아 살해위기에 처했을 때 좀도둑질과 닭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것이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故事)이다. 후일 제나라와 위(魏)나라의 재상을 역임하고 독립하여 제
  후(諸侯)가 되었다. 보통 돈이 많은 사람으로 일컬음.

이해와 감상

 모진 가난에 허덕이면서 그 고난을 헤쳐 나가려고 기를 쓰고 있는 내용인데, 이 사설을 읽어 보면 그것이 처절하거나 비통한 느낌을 주기보다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흥보의 언행도 그러하거니와 그 자식들의 언행도 마찬가지다. 슬픔도 웃음으로 바꾸어 버린다는 특징이 판소리가 지닌 아름다움의 하나라는 점을 아는 것도 문학을 즐기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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