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계(花王戒)
by 송화은율화왕계(花王戒)
화왕(花王)께서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휘장으로 둘러싸 보호하였는데, 삼춘가절(三春佳節)을 맞아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꽃보다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꽃들이 다투어 화왕(花王)을 뵈러 왔다. 깊고 그윽한 골짜기의 맑은 정기를 타고 난 탐스러운 꽃들이 다투어 모여 왔다.
문득 한 가인(佳人)이 앞으로 나왔다.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 옷을 입고 아장거리는 무희(舞姬)처럼 얌전하게 화왕에게 아뢰었다.
"이 몸은 백설의 모래 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었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름은 장미라 합니다. 임금님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몸을 받아 주실는지요?"
이 때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 머리는 흰 백발을 한 장부 하나가 둔중한 걸음으로 나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몸은 서울 밖 한길 옆에 사는 백두옹(白頭翁)입니다. 아래로는 창망한 들판을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 경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옵건대,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는 고량(膏梁)과 향기로운 차와 술로 수라상을 받들어 임금님의 식성을 흡족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드리고 있사옵니다. 또, 고리짝에 저장해 둔 양약으로 임금님의 원기를 돕고, 금석의 극약으로써 임금님의 몸에 있는 독(毒)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르기를 '비록 사마(絲摩)가 있어도 군자된 자는 관괴라고 해서 버리는 일이 없고,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이러한 뜻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한 신하가 화왕께 아뢰기를.
"두 사람이 왔는데, 임금님께서는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 "
화왕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부의 말도 도리가 있기는 하나, 그러나 가인(佳人)을 얻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할꼬?"
그러자 장부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제가 온 것은 임금님의 총명이 모든 사리를 잘 판단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뵈오니 그렇지 않으십니다. 무릇 임금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 하지 않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은 낭관(廊官)으로 파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오니 저인들 어찌하겠습니까?"
화왕은 마침내 다음의 말을 되풀이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다." 고 하였다.
이에 왕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르기를,
"그대의 우언(寓言)에 정말 깊은 의미가 있으니 글로 써서 왕자(王者)의 계감(戒鑑)을 삼게 하기 바라오."
하고, 총을 발탁하여 높은 관직에 임명하였다.
요점 정리
작가 : 설총(薛聰)
연대 :신라 신문왕(神文王 : 681∼693)때
구성 : '도입-전개-절정-결말'의 소설적 구성
성격 : 우언적(寓言的 :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이솝 이야기'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풍자적(諷刺的), 교훈적
제재 : 꽃(모란꽃)
내용 : 꽃을 의인화하여 임금에게 충고한 풍자적 이야기로 자연물을 의인화하는 방식으로 주제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주제 : 임금에 대한 경계(또는 간언)
구조
① 도입 : 화왕의 내력, 탐스러운 영기와 오묘한 향기를 풍겨 온갖 꽃들이 따름
② 전개 : 장미와 백두웅의 간청, 충신 백두웅과 간신 장미의 간청-두 신하의 대조
③ 위기 : 화왕의 갈등(화왕의 망설임)
④ 절정·결말 : 화왕의 깨우침, 임금에 대한 우의(寓意)적 경계
의의 :
① 설총의 유일한 유문(遺文)으로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이다.
② 이 설화의 가전적(假傳的)요소가 고려 시대 가전체에 영향을 주었고, 조선 중기 화사(花史)와 같은 작품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③ 구토설화(龜土設話)와 함께 의인체 설화의 효시가 되었고, 목적 문학이다.
줄거리 : 꽃나라를 다스리는 화왕 모란은 자기를 찾아오는 많은 꽃 중에서 아첨하는 장미를 사랑하였다가 뒤에 할미꽃 백두옹(白頭翁)의 충직한 모습에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간곡한 충언에 감동하여 정직한 도리(道理)를 숭상하게 된다는 내용
출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내용 연구
화왕(花王 : 꽃 중의 왕이라 하여 모란을 이르는 말)께서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휘장으로 둘러싸 보호하였는데, 삼촌가절(三春佳節 : 봄 석달 중의 가장 좋은 때 즉 음력 3월)을 맞아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꽃보다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꽃들이 다투어 화왕(花王)을 뵈러 왔다. 깊고 그윽한 골짜기의 맑은 정기를 타고 난 탐스러운 꽃들이 다투어 모여 왔다. - 화왕의 빼어난 미모[도입]
문득 한 가인(佳人 : 아름다운 여자)이 앞으로 나왔다.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 옷을 입고 아장거리는 무희(舞姬 : 춤추는 여자)처럼 얌전하게 화왕에게 아뢰었다.
"이 몸은 백설의 모래 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었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 유유자적(悠悠自適 :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대로 조용하고 편안히 생활하는 일)하면서 지냈습니다.[ "이 몸은 ∼ 지냈습니다." : 그 자라는 환경으로 보아 장미과에 속하는 해당화로 보이며, 세파에 물들지 않고 곱게 자랐음을 알 수 있다. 뒤의 '백두옹'과 대조되는 속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다.] 이름은 장미[세파에 물들지 않고 곱게 자란 인물로 '백두옹'과 대조되는 속성을 지님]라 합니다. 임금님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침실]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몸을 받아 주실는지요?" - 장미가 미모로서 화왕의 환심을 사려함
이 때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 머리는 흰 백발을 한 장부 하나가 둔중한 걸음으로[베옷을 입고,∼둔중한 걸음으로 : 해당화의 화려함에 비교되는 형상화로, 검소한 옷차림으로 가죽띠를 둘렀다는 것은 서민이 아님을 뜻하고, 세상사를 많이 겪은 이력이 드러남. 지팡이를 든 백발이라는 것은, 왕의 스승이 될 만큼 연륜을 쌓은 원숙한 나이를, 침착한 걸음은 무게 있는 인품을 표현한 것이다. 임금에게 충간할 만한 인품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임. 이 작품은 임금의 도리를 은근히 풍자하였을 뿐, 교훈 등을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나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몸은 서울 밖 한길 옆에 사는 백두옹(白頭翁 : 할미꽃, 머리가 센 노인) 입니다. 아래로는 창망한(넓고 멀어서 아득함) 들판을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 경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옵건대,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는 고량[膏梁 : 고량진미(膏粱珍味)의 준말로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차와 술로 수라상(임금의 진짓상)을 받들어 임금님의 식성을 흡족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드리고 있사옵니다. 또, 고리짝(옷을 담는 상자의 하나로 고리나 대오리로 엮어서 만든 큰 상자)에 저장해 둔 양약(매우 효험이 있는 약)으로 임금님의 원기를 돕고, 금석의 극약(위험을 주는 약)으로써 임금님의 몸에 있는 독(毒)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르기를 '비록 사마(絲摩 : 명주실과 삼실로 '최선의 것'을 의미함)가 있어도 군자된 자는 관괴(관과 괴 둘 다 풀이름, 관은 도롱이와 삿갓을, 괴는 돗자리를 짜는 원료로 일종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나타낸 말이다. '차선의 것'으로 대비책을 말함)라고 해서 버리는 일이 없고,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有備無患).[군자 된 자는 비록 ~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 : 좌전의 '수유사마 무기관괴(雖有絲摩無棄管 )'에서 인용한 말. 최선의 것이 있어도 차선의 것을 버리지 않음을 비유한 말로 유사시에 대비함을 의미한다. 사마는 명주실과 삼실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것을 의미하고, 관괴는 띠풀과 왕골로서 거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이라 해서 하찮게 여기고 멀리하려고 해서는 안 됨을 지적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이러한 뜻[귀에 좋은 말만하는 신하보다는 임금께 직언을 하는 신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백두옹이 화왕의 마음가짐을 경계함]" - 장미와 백두옹의 청원[전개]
한 신하가 화왕께 아뢰기를,
"두 사람[장미와 백두옹]이 왔는데, 임금님께서는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 " [양자택일(兩者擇 : 둘 중에서 하나를 고름. 비슷한 말로 이자선일, 이자택일.]
화왕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부[대장부 = 백두옹]의 말도 도리가 있기는 하나, 그러나 가인(佳人)[장미]을 얻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할꼬?" - 화왕의 갈등
그러자 장부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제가 온 것은 임금님의 총명이 모든 사리를 잘 판단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뵈오니 그렇지 않으십니다. 무릇 임금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교언영색 (巧言令色) : 아첨하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 ]를 가까이 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 하지 않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 : 한 나라 안륭 사람, 어진 인재였으나 벼슬이 낭관에 그쳤음)은 낭관(廊官 : 조선 시대에, 정오품 통덕랑 이하의 당하관을 통틀어 이르던 말. 여기서는 하급직 벼슬을 의미함)으로 파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오니 저인들 어찌하겠습니까?" [임금의 어리석음에 정문일침(頂門一鍼 : 정수리에 침을 놓는다는 뜻으로, 따끔한 충고나 교훈을 이르는 말로 유사어로 정상일침이 있다.)을 가하고 있다.]
화왕은 마침내 다음의 말을 되풀이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다.[화왕(花王)이 외관에 눈이 어두워 본질을 보지 못한 잘못, 즉 옳은 말을 하는 충신을 몰라 본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말이다.]" 고 하였다.
이에 왕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르기를,
"그대의 우언(寓言 : 우화로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이솝 이야기'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에 정말 깊은 의미가 있으니 글로 써서 왕자(王者)의 계감[戒鑑 : 경계(鏡戒)와 같은 말로 분명히 타일러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함]을 삼게 하기 바라오."
하고, 총을 발탁(拔擢 : 여러 사람 가운데서 쓸 사람을 뽑음)하여 높은 관직에 임명하였다.- 화왕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침[결말]
화왕 : 꽃 중의 왕이라 하여 모란을 이르는 말
삼촌가절 : 봄 석달 중의 가장 좋은 때 즉 음력 3월
유유자적(悠悠自適) :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대로 조용하고 편안히 생활하는 일
가인 : 아름다운 여자
무희 : 춤추는 여자
백두옹 : 할미꽃, 머리가 센 노인
"이 몸은 ∼ 지냈습니다." : 그 자라는 환경으로 보아 장미과에 속하는 해당화로 보이며, 세파에 물들지 않고 곱게 자랐음을 알 수 있다. 뒤의 '백두옹'과 대조되는 속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다.
고량 : 고량진미(膏粱珍味)의 준말로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
수라상 : 임금의 진짓상
베옷을 입고,∼둔중한 걸음으로 : 해당화의 화려함에 비교되는 형상화로, 검소한 옷차림을 가죽띠를 둘렀다는 것은 서민이 아님을 뜻한다. 지팡이를 든 백발이라는 것은, 왕의 스승이 될 만큼 연륜을 쌓은 원숙한 나이를, 침착한 걸음은 무게 있는 인품을 표현한 것이다. 임금에게 충간할 만한 인품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임. 이 작품은 임금의 도리를 은근히 풍자하였을 뿐, 교훈 등을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고리짝 : 옷을 담는 상자의 하나로 고리나 대오리로 엮어서 만든 큰 상자
양약 : 매우 효험이 있는 약
극약 : 위험을 주는 약
사마 : 명주실과 삼실
관괴 : 관과 괴 둘 다 풀이름, 관은 도롱이와 삿갓을, 괴는 돗자리를 짜는 원료로 일종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나타낸 말이다.
군자 된 자는 비록 ~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 : 좌전의 '수유사마 무기관괴(雖有絲摩無棄管 )'에서 인용한 말. 최선의 것이 있어도 차선의 것을 버리지 않음을 비유한 말로 유사시에 대비함을 의미한다. 사마는 명주실과 삼실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것을 의미하고, 관괴는 띠풀과 왕골로서 거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이라 해서 하찮게 여기고 멀리하려고 해서는 안 됨을 지적하고 있다.
풍당 : 한나라 안릉 사람. 어진 인재였으나 벼슬이 낭관에 그쳤음.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다" : 화왕(花王)이 외관에 눈이 어두워 본질을 보지 못한 잘못, 즉 옳은 말을 하는 충신을 몰라 본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말이다.
이해와 감상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로, '동문선'에는 '풍왕서'라는 제목으로 실려 전해 온다. 신라 신문왕 때의 설총(薛聰)이 한문으로 지은 우언적(寓言的)인 단편 산문이다. 어느 날 무슨 신기한 이야기를 하라는 신문왕의 명을 받고 들려 준 이야기라고 하는데, 꽃을 의인화하여 임금을 충고한 풍자적인 내용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소설적인 기록이며, 후대의 가전체 소설은 이 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꽃을 의인화하여 쓴 서사문학 작품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이처럼 사물을 의인화 한 작품을 만드는 전통은 고려 시대의 가전문학으로 이어지고, 조선 시대에 이르면 심성을 의인화한 소설로 동물을 의인화한 소설 등으로 발전적인 변모를 하게 된다. 조선 시대에 나온 꽃을 의인화한 대표적인 소설로는 '화사(花史)'를 들 수 있다.
하여간 이 작품은 식물을 의인화해서 사람의 처신을 말함으로써 문학적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의인 설화로서 문학적인 가치가 있다.
백두옹으로 자처하는 인물이 화왕 앞에 나타나서, 그 동안의 생활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충간한 말은 깊이 새겨야 할 뜻을 담고 있다. 서울 밖 한길가에 산다고 하면서 자연의 경치를 말한 데서는 선비의 고결한 품성에 관한 은근한 자부심이 나타나있다. 즉, 화려한 서울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마음의 바른 도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임금에게 하는 말은 부귀만 누리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원기를 돋우고 독을 제거하는 약이 또한 필요한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 약이야말로 백두옹이 제시해 줄 수 있는 마음의 바른 도리이다.
설총은 이런 구실을 하는 백두옹으로 자처하고자 했고, 신문왕은 또 그 점을 인정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한 에피소드로, 왕에게 신하를 가려 뽑는 슬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진 임금 밑에는 어진 신하가 모이고 폭군(暴君) 밑에는 간신들이 모인다는 역사적 교훈을 꽃에 비겨서 상기시키는 이 작품은 반드시 왕이나 지체 높은 사람에게만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평범한 속담과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교훈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교우관계, 사제 관계 등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며,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갈등, 가치 판단, 도덕적 책임에도 관련된다. 특히 작품의 전개에서 왕의 심리에 갈등을 도입하여 위기를 설정하는 장면은 뛰어나다.
이러한 문학적 특징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심성을 의인화한 소설, 동물을 의인화한 소설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꽃을 의인화한 '화사', 심성을 의인화한 한문 소설 '수성지', 동물을 의인화한 한글 소설 '장끼전' 등이 그 예이다.
심화 자료
설총(薛聰 [?~?])
자 총지(聰智). 호 빙월당(氷月堂). 경주설씨(慶州薛氏) 시조.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아들. 어머니는 요석궁 공주(瑤石宮公主). 신라 십현(十賢)의 한 사람. 한림(翰林)을 지냈고 주로 왕의 자문역을 맡아보았다. 유학(儒學)과 문학(文學)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서 일찍이 국학(國學)에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쳐 유학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가 창제한 중국 문자에 토를 다는 방법은 당시 중국 학문 섭취에 큰 도움이 되었다. 즉 ‘은 ·는’은 贊자를 썼는데 이는 ‘隱’자의 왼쪽을 딴 것이며, ‘니’는 ‘匕’자를 썼는데 이는 ‘尼’자의 아래쪽에서 딴 것이다. 또 이두(吏讀)도 창제했다고 하나 그가 생존하기 전인 진평왕 때의 《서동요(薯童謠)》, 선덕여왕 때의 《풍요(風謠)》 등이 이두로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그가 창제한 것이 아니라 집대성한 것으로 보인다. 《화왕계(花王戒)》를 지어 신문왕(神文王)을 충고한 일화가 있으며 1022년(현종 13) 홍유후(弘儒侯)에 추봉되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경주의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제향되었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설화의 배경
어느 여름날 신문왕이 설총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오던 비도 개었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니, 비록 진수성찬과 서글픈 음악이 있으나 고상한 이야기와 멋있는 익살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이 좋을 것같소, 그대는 기이한 이야기가 있거든 나를 위하여 이야기하여 주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설총이 옛날 이야기 하듯이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화왕계'이다.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쓸쓸한 표정을 짓고 말하기를
"그대의 우언에는 참으로 깊은 뜻이 있으니 청컨대 이를 써두어 임금된 자를 경계하는 말로 삼으리라." 하고 설총에게 높은 벼슬을 주었다.
화왕계
신라 때 설총(薛聰)이 지은 단편산문. ≪동문선≫ 권52에는 우언적(寓言的)인 ‘풍왕서(諷王書)’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원래는 ≪삼국사기≫ 열전에 설총을 다루면서 제목 없이 언급된 것이며,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화왕계’라 부른 것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신문왕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설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것을 청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설총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꽃나라를 다스리는 화왕(花王) 모란이 처음에는 자신을 뵙고자 온 많은 꽃 중에서 장미를 사랑하였다가 뒤이어 나타난 할미꽃의 충직한 모습에 심적인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결국 할미꽃의 간곡한 충언에 감동하여 정직한 도리를 숭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마치자 신문왕은 설총의 우언이 매우 뜻이 깊다 하고 글을 써 후세의 임금들에게 경계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할미꽃은 설총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신하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우언인 것이다.
우언을 통하여 완곡하게 바른 도리로써 정치를 해야 함을 주장하고 부귀에 안주 (安住)하고 요망한 무리들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꽃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곧, 꽃을 의인화하여 인간세계를 빗대어놓은 이 작품은 문학적 표현방식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줌으로써 고려 중기에 나타나는 가전체(假傳體) 문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고, 또한 조선 중기에 보인 〈화사 花史〉와 같은 작품의 선구적 형태로 작용하기도 한 것이다.≪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東文選.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전체(假傳體)
물건을 의인화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일깨워 줄 목적 즉, 계세징인(誡世懲人)을 목적으로 지은 이야기를 말한다.
(1) 형성 : 설화와 서사시(敍事詩)가 활발히 수집·정리되고, 창작되면서 의인체(擬人體), 즉 가전체의 작품이 출현하게 되었다.
(2) 의의 : 패관 문학이 개인의 창작이 아님에 대하여, 가전체문학은 개인의 창작물이어서, 소설에 한 발짝 접근한 것이 되어, 설화와 소설의 교량적 구실을 하였다는 데에 있다.
(3) 가전체의 효시 : 신라 때 설총이 지은 '화왕계(花王戒)'가 있다.
'화왕계'·'화사'·'화왕전'의 비교
1. '화왕계'를 '화사'와 '화왕전'과 비교해 보면, 꽃에 인성(人性)을 부여하여 의인화(擬人化)한 수법과 군주를 주인공으로 풍간(諷諫)한 유사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판이하다. 이러한 의인화 수법은 한유의 '모영전'을 비롯해 당·송의 가전과 고려 가전체에 나타난다.
2. '화사'는 꽃을 국가 군신에 비유하고, 중국의 역사를 본떠서 한(漢)나라의 흥망 성쇠를 논했다. 당시 정치, 사회상을 비판하고, 제왕의 치국(治國)사상을 보인 정치 비평 소설이다. 제왕의 흥성에 보좌하는 신하의 충절이 있으면 왕업이 창성하게 된다는 교훈을 나타내고 있다.
3. '화왕전'은 '화사'에 비해 직·간접표현법과 성격 묘사,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흥미 유발 등으로 보아 소설로서 한발 나아간 구조이다. 제왕이 호사 호색에 빠져 충간을 듣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으로 군주의 치국 사상에 경계가 되는 교훈적인 작품이다.
화사(花史)
조선 중기 문인 임제(林梯)가 지은 한문소설. 작자가 남성중(南聖重)이나 노긍(盧兢)이라는 설도 있다. 식물세계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사건을 전개하면서 역사 서술방식인 본기체(本紀體)에 의하여 편년식으로 서술하였다. 매화(梅花)는 도(陶 ; 겨울), 매화꽃술은 동도(東陶 ; 봄), 모란(牡丹)은 하(夏 ; 여름), 부용은 당(唐 ; 가을)이라는 왕국의 군왕(君王)으로 삼고 계절에 따라 피는 여러 꽃들을 중신(重臣)·간신(奸臣)·역신(逆臣) 등으로 비유하였으며, 여러 제도·인명·지명 등을 모두 꽃과 관련된 글자들로 모아 중국 역대 역사에 비유하여 국가의 흥망성쇠를 그렸다. 특색은 중요한 대목 밑에 사신왈(史臣曰)이라 하여 작자의 사평(史評)을 달아 역대 왕정의 성쇠와 신하들의 행실이 미치는 인과응보관계를 비유적으로 형상화하여 당대 현실사회의 부정을 풍자하고 이상사회를 희망하는 작가의식을 반영하였다. 1958년 중간된 임제의 문집 《백호집(白湖集)》 별책부록 《남명소승(南溟小乘)》에 수록되어 있다. 1책. 필사본.(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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