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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아내, 만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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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아내, 만카

 

옛날 옛적에, 돈은 많지만 성격이 매우 탐욕스럽고 파렴치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거래든지 항상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하여 가난한 이웃들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욕심 많은 농부의 이웃 중에 가난한 양치기가 한 명 있었습니다. 양치기는 암소 한 마리를 받기로 하고 농부를 위해 일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기가 다 되었는데도 농부는 양치기에게 암소를 줄 수 없다고 잡아떼었습니다. 그래서 양치기는 그 사건을 해결(解決)해 달라고 시장을 찾아갔습니다.

 

아직 젊은데다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시장은 양쪽의 말을 다 들어 보고, 잠시 생각한 다음에 대답했습니다.

이 사건을 판결하는 대신, 당신 두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겠소. 그리고 둘 중에서 훌륭하게 대답한 사람에게 암소를 주겠소. 둘 다 동의하시오?”

농부와 양치기가 모두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시장이 다시 말했습니다.

좋소, 그럼 문제(問題)를 내겠소.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가장 단 것은? 가장 부유한 것은? 이 세 질문에 대해 잘 생각한 다음, 내일 이 시간에 내게 답을 가져오시오.”

그러자 농부는 화가 나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그 따위 시장이 다 있어? 암소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으면 내가 배라도 한 상자 보내주었을 텐데……. 그 우스운 질문에 대한 답을 도통 모르겠으니 이러다간 꼼짝없이 암소를 빼앗기게 생겼잖아!”

그러자 아내가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 새로 온 시장 녀석 말이야. 전에 있던 시장 같았으면 군소리 않고 내 편을 들었을 텐데, 이 젊은 시장은 우리가 수수께끼를 푸는 걸로 판결을 내리겠다지 뭐야?”

그러고는 아내에게 시장이 낸 문제를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석에서 대답하였습니다.

여보, 봐요. 우리 집 말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거예요. 길에서 우리 마차를 지나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가장 단 것도 우리 집 꿀이에요. 우리 집 꿀보다 더 단 것 먹어 봤어요? 그리고 지난 사십 년 동안 모은 금화로 가득 찬 우리 집 금고보다 더 부유한 것은 없다고요.”

아내의 대답을 들은 남편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맞아, 맞아! 당신 말이 옳다고! 이제 암소는 그대로 우리 것이야!

한편, 양치기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의기소침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에게 만카라는 영리한 딸이 있었는데, 문에서 아버지를 맞은 만카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 시장이 뭐라고 그랬어요?”

양치기는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암소를 돌려받기는 틀린 것 같다. 시장이 우리한테 수수께끼를 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단 말이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문제가 뭐였는데요?”

양치기는 딸에게 시장이 낸 문제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를 듣고 만카는 생각했습니다.

그까짓 거 뭐!’

만카는 아버지에게 답을 일러 주었습니다.

이튿날, 양치기가 시장 관사에 도착해 보니, 농부는 벌써 와서 자만심으로 가득 찬 웃음을 지으며 손을 비비고 있었습니다.

어제의 문제를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말한 다음, 시장은 농부에게 답을 말히 보라고 일렀습니다. 농부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거요? 그야 물론 우리 말이죠. 아직 길을 가면서 우리를 지나치는 다른 말은 보지 못했거든요. 가장 단 것이요? 그야 물론 우리 꿀벌 통에서 나온 꿀이죠. 가장 부유한 것이요? 금화가 가득 담긴 우리 집 금고보다 더 부유한 게 어디 있겠어요?”

농부는 어깨를 으쓱하며 승리(勝利)에 찬 미소를 지었습니다.

…….”

시장은 신음하듯 소리를 낸 후, 이번에는 양치기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당신은 어떤 대답을 준비해 왔소?”

양치기는 공손하게 절을 하고 대답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눈 깜짝할 사이에도 얼마든지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단 것은 잠이죠. 사람이 지치고 힘들 때 잠보다 더 단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것은 바로 땅이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땅에서 나오니까요.”

그러자 시장이 외쳤습니다.

맞아! 바로 그거요. 암소는 양치기 것이오.”

판결을 내리고, 잠시 뒤에 시장이 다시 양치기에게 물었습니다.

말해 보시오. 누가 이 대답을 가르쳐 준 거요? 분명 당신 머리로 생각한 것은 아닐 테고…….”

처음에 양치기는 말하지 않으려고 머뭇거렸지만, 시장이 계속하여 캐묻자 딸인 만카가 알려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시장은 만카의 영리함을 더 시험해 보고 싶어 달걀 열 개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시장은 달걀을 양치기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이 달걀을 만카에게 가져다 주고, 내일까지 부화시켜 내게 병아리 열 마리를 보내라고 전하시오.”

양치기는 달걀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만카에게 시장의 지시(指示)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만카는 웃을을 터뜨리더니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기장 한 줌을 가지고 시장에게 돌아가 전하세요. ‘제 딸이 이 기장을 보냈습니다. 딸애가 말하기를, 시장님이 이것을 심어 키워서 내일까지 기장을 수확하면 자기도 병아리 열 마리를 데려와 그 낟알을 먹일 수 있다고 하는군요.’라고 말이에요.”

 

양치기는 딸이 시키는 대로 시장에게 찾아가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대답을 듣고 시장은 기분 좋게 웃어 버렸습니다.

당신 딸은 정말 보통 지혜롭지 않군. 당신 딸이 그렇게 현명하다면 결혼하고 싶소. 가서 딸에게 나를 보러 오라고 전하시오. 하지만, 조건이 있소. 나한테 오긴 오되,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때에 무엇을 타거나 걸어도 안 되고, 옷을 입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벗어도 안 되오.”

 

양치기는 집으로 바로 돌아가 딸에게 시장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시장의 말을 들은 만카는 이튿날 새벽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때야말로 밤은 지나갔지만 아직 낮이 시작된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몸을 고기 잡은 어망으로 감싼 다음, 다리 한쪽은 염소의 등에 올려놓은 채 한쪽 다리로만 땅을 딛고 시장 집으로 갔습니다.

 

, 제가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 보죠. 만카가 옷을 입었을까요? 아니요, 입지 않았죠. 어망은 옷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벌거숭이일까요? 물론 그것도 아니죠. 어째든 어망을 걸쳤으니까요. 그리고 시장의 집에는 걸어서 간 것일까요? 아니죠, 안 다리를 염소의 등에 걸쳤으니 걸은 것이 아니죠. 그렇다고 염소를 타고 간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죠. 어쨌든 한 발로는 걷지 않았습니까?

 

시장의 집에 도착하자 만카는 소리쳤습니다.

시장님, 저 여기 왔어요!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때에, 걷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엇을 타고 온 것도 아니고,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벌거숭이도 아닌 모습으로 왔어요.”

, 만카는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한 바로 그대로입니다. 만카의 현명(賢明)함과 아름다움에 반한 시장은 당장 그 자리에서 청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결혼했답니다.

결혼할 때에 시장은 만카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만카, 내 말 잘 들어요. 당신이 현명하다고 해서 내 일에 참견하면 안 되오. 난 당신이 내가 심리하는 사건에 간섭하기를 원하지 않소. 만일, 당신이 나한테 판결해 달라고 오는 사람에게 군말을 하는 날엔 당신은 내 집에서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가게 될 줄 아시오.”

 

한동안은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집안 살림하느라 바빴던 만카는 시장이 맡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농부가 싸움을 해결해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이야기인즉, 한 농부가 새끼가 달린 나귀를 시장에서 샀는데, 그 나귀의 새끼가 다른 농부의 마차 아래서 뛰어놀자, 마차 주인이 나귀 새끼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동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시장은 무심코 판결을 내뱉었습니다.

물론, 마차 주인이 새끼 주인이지.”

 

나귀 임자는 황당하고 억울했습니다. 나귀 임자는 시장과 헤어져 나오다가 만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만카를 붙잡고 자신의 억울한 사정(事情)을 말했습니다. 만카는 남편의 어리석은 판단이 부끄러웠습니다. 할 수 없이 만카는 농부에게 해결책을 일러 주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다시 돌아와 어망을 저 땅 위에 펼쳐 놓으세요. 만일, 시장이 당신을 보게 되면 뭐 하는 짓이냐고 물을 거예요. 그럼 고기를 잡는 중이라고 말하세요. 그리고 시장이 맨땅에서 어떻게 고기를 잡느냐고 물으며, 맨땅에서 고지 잡는 일은 마차가 새끼 낳는 일보다 쉬운 일이라고 답하세요. 그럼 시장은 자기의 판결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새끼를 당신에게 돌려주라고 할 거예요. 하지마, 제가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고 말하면 절대로 안 돼요. 절대로…….”

 

그 날 오후, 우연히 창 밖을 내다보게 된 시장은 한 남자가 흙먼지 날리는 땅 위에 어망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물었습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보면 모르세요? 고기를 잡고 있죠.“

이렇게 맨 땅에서 고기를 잡는다고? 당신 미쳤소?“

제가 맨땅에서 고기를 잡는 것과 마차가 새끼를 낳았다고 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제야 그 사람이 진짜 노새 주인인 것을 알아본 시장은 그의 말이 옳다고 솔직히 시인했습니다.

물론, 그 새끼는 마차가 아닌 당신의 나귀에게 속한 것이니 당연히 당신에게 돌려줘야 맞지. 하지만, 대체 누가 당신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 주었지? 당신 혼자서는 절대 생각해내지 못했을 텐데.”

 

농부는 말을 안 하려고 했지만, 시장이 자꾸 캐묻자 만카가 알려 주었다고 사실대로 실토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시장은 당장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아내를 불렀습니다.

 

만카! 내 사건에 끼어들면 어떻게 될지 경고했던 거 벌써 잊었소? 어서 당장 친정으로 가 버려요. 변명은 듣지 않겠소. 이미 결정했소. 하지만, 당신에게 심하게 대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으니, 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만 가져가시오.”

 

만카는 울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좋아요, 여보.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만 가지고 아버지 집으로 가겠어요. 하지만, 저녁은 먹은 후에 쫓아 내세요. 그 동안 행복하게 지냈으니 마지막으로 당신과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어요.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늘 그랬던 것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당신과 친구로 기분 좋게 헤어지고 싶으니까요.”

 

시장이 허락하자, 만카는 남편(男便)이 특별히 좋아하는 요리로 저녁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남편도그가 가장 아끼는 포도주를 따서 만카와 이별주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또 먹었습니다. 식사와 함께 포도주도 계속 곁들였으므로 마침내 술에 취하여 의자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만카는 남편을 깨우지 않고, 그대로 마차에 태워 아버지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뜬 시장은 바로 양치기의 오두막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러자 만카가 상냥하게 대답했습니다.

 

여보,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당신, 저한테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를 집에서 가지고 나와도 된다고 하셨죠? 그래서 전 가장 좋아하는 당신을 데려온 것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어리둥절한 남편은 잠시 눈을 비볐습니다. 그리고 만카야말로 남편인 자기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습니다.

 

만카, 당신한테는 정말 못 당하겠구려. 내가 졌소. 집으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다시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시장은 다시는 아내를 나무라지 않고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늘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이 문제는 아내에게 물어 보는 게 좋겠소. 제 아내가 매우 현명한 여인이라는 것 다들 알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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