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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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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장소 : 덴마크

 

등장 인물

 

클로디어스 : 덴마크 왕

햄릿 : 선왕의 왕자, 현재 왕의 조카

폴로니어스 : 재상

호레이쇼 : 햄릿의 친구

레어티즈 : 플로니어스의 아들, 오필리어의 오빠

볼티먼드, 코닐리어스 : 노르웨이로 파견되는 사절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 햄릿의 동창

오즈릭 : 경박스러운 멋장이 귀족

신사

마셀러스, 바나도, 프란시스코 : 망을 보는 군인

사제

레날도 : 플로니어스의 하인

배우 몇 사람

광대 두 사람 : 무덤을 파는 인부

포틴브라스 : 노르웨이의 왕자

노르웨이 부대장

영국 사절들

거트루드 : 덴마크 왕비, 햄릿의 어머니

오필리어 : 플로니어스의 딸, 햄릿을 사랑함

그밖에 궁정 신하, 귀부인, 병사, 선원, 사자, 시종, 햄릿 아버지의 유령 등

제1막 제1장

 

- 유령의 등장

- 엘시노어 성 성벽 위. 좌우 양쪽에 작은 탑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별이 반짝이는 추운 밤. 보초병 프란시스코가 창을 들고 왔다 갔다 한다. 종이 자정을 알리자 다른 보초 바나도가 똑같은 무장을 하고 성에서 나온다. 그는 어둠 속에서 프란시스코의 발소리를 듣고 갑자기 멈춰선다.

 

바나도 : 거기 누구냐!

프란시스코 : 너는 누구냐. 거기 서라. 이름을 대라.

바나도 : 왕이 만수무강하시기를!

프란시스코 : 바나도 님?

바나도 : 그렇다네.

프란시스코 : 딱 제 시간에 맞춰 오시는군요.

바나도 : 지금 막 열 두 시를 쳤어. 이제 자넨 가서 자도록 해.

프란시스코 : 교대해주시니 정말 기쁩니다. 어찌나 추운지 가슴 속까지 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바나도 : 별 이상은 없었나?

프란시스코 :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바나도 : 그런가? 가서 자도록 하게. 오늘 밤 내 짝은 호레이쇼와 마셀러스야. 만나거든 빨리 오라고 전해 주게나.

-호레이쇼와 마셀러스가 온다.

프란시스코 : (발자국 소리를 듣고) 마침 오시나 봅니다. 거기 서라, 누구냐?

호레이쇼 : 이 나라 백성.

마셀러스 : 국왕의 신하.

프란시스코 : 그럼 부탁합니다.

마셀러스 : 아, 잘 가게. 자넨 아주 착실한 병사로군. 벌써 누가 교대를 해줬나?

프란시스코 : 바나도 장교님이십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프란시스코 퇴장)

마셀러스 : 어이, 바나도!

바나도 : 아, 호레이쇼도 같이 왔구먼.

호레이쇼 : (악수를 하며) 그래, 바로 내가 그 사람일세.

바나도 : 잘 왔네, 호레이쇼. 마셀러스, 자네도 반갑네.

호레이쇼 : 그래, 그것이 오늘 밤에도 나왔는가?

바나도 : 아니, 오늘은 아직 못봤어.

마셀러스 : 호레이쇼는 우리가 헛것을 본 것이라며 도무지 믿어주질 않는다네. 우리 눈 앞에 두 번씩이나 나타난 무서운 모습을 말일세. 그래서 오늘 밤은 꼭 우리와 함께 망을 보자고 그런 걸세. 그 망령이 오늘 밤에도 나타난다면 그때는 아마 우리 눈을 믿어주겠지. 그리고 그 유령한테 말을 건네어 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호레이쇼 : 쳇, 나오긴 뭐가 나온단 말이야?

바나도 : 어쨌든 거기 좀 앉아 보게. 우리가 이틀 밤이나 연속 눈으로 보고 나서 하는 말인데도 자네는 무작정 귀를 틀어막는구먼. 얘기를 한 번 더 들어보게.

호레이쇼 : 그럼, 좀 앉을까. 자, 바나도 그럼 그 얘길 해 보게.

바나도 : 어제 밤만 해도 그렇지... 서쪽 하늘에 북극성이 저기 저 별이 불타고 있는 저만큼 왔을 때야. 그 별이 하늘을 훤히 비춰주고 있었네... 마셀러스와 나는 그때 한 시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서...

 

-이때 유령이 나타난다. 갑옷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손에 사령관의 홀을 들고 있다.

 

마셀러스 : 쉿, 조용히 해. 저것 좀 봐, 또 나왔네.

바나도 : 돌아가신 선왕과 똑같은 모습 아닌가.

마셀러스 : 이봐 자네, 호레이쇼 학자님. 부탁이니 말을 좀 걸어 보라구.

호레이쇼 : 정말 똑같잖아. 아, 무서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바나도 : 말을 좀 걸어달라는 눈치 같지 않나?

마셀러스 : 이봐, 호레이쇼. 말 좀 걸어 보라구.

호레이쇼 : 너는 도대체 누구냐? 누구길래 선왕께서 전쟁터에 나가시던 그 늠름한 모습 그대로 이렇게 무엄하게 한밤중에 나타나는 거냐? 자, 명령이다, 어서 썩 말해라.

마셀러스 : 화가 난 모양이야.

바나도 : 저것 좀 봐. 그냥 가버리잖아.

호레이쇼 : 거기 서라. 말을 해라, 말을. 명령이다.(유령이 사라진다)

마셀러스 : 그냥 가버렸어. 말하기 싫은 모양이야.

바나도 : 아니 호레이쇼, 자네 떨고 있구먼. 얼굴도 창백하고. 어때, 우리가 헛것을 본 건 아니지?

호레이쇼 : 아, 나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어디 믿지 않을 도리가 있나?

마셀러스 : 선왕과 똑같은 모습이지?

호레이쇼 : 같다 뿐인가. 선왕께서 뱃속 검은 저 노르웨이 왕과 결투하실 때 입으셨던 갑옷이 바로 저런 모습이었지 않았는가. 찌푸린 저 얼굴 표정 또한 폴란드 놈들과 협상이 깨지고 썰매를 탄 그 놈들을 얼음 밭에서 쳐부실 때의 그때 그 표정 그대로일세. 정말 해괴한 일이로군.

마셀러스 :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네. 똑같은 이 자정 시간에 우리가 보초를 서는 옆을 의젓한 모습으로 지나갔다네.

제1막 제1장

 

- 왕국의 상황

호레이쇼 :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구먼.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게 우리나라에 무슨 변고가 일어날 징조가 아닐까 싶네.

 

마셀러스 : 자, 우리 모두 좀 앉도록 하세. 좀 물어볼 게 있어. 도대체 이렇게 매일 밤 엄중하게 보초를 세워 백성을 힘들게 하는 이유가 뭔가? 또 무엇 때문에 날마다 대포를 부어 만든다, 외국에서 무기를 사들인다 하는 것이야? 또 무엇 때문에 배 만드는 일꾼들을 징발해서 이렇게 밤낮없이 힘든 일을 시키는 걸까?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밤낮 땀을 흘리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누가 이유를 알면 좀 말해 보라구.

 

호레이쇼 : 내가 말해 주지. 적어도 소문은 이렇다네. 바로 아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선왕께서 도전을 받으신 걸세. 알다시피 상대는 야심이 무척 강한 노르웨이 왕 포틴브라스 아닌가. 하지만 우리의 용감하신 햄릿 왕은 적의 목을 베셨지. 이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구 말이야. 그래서 그놈은 목숨과 영토를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어.

 

그건 기사도의 법칙에 따라 정한 약속이었지. 물론 이쪽에서도 영토를 내걸었지. 포틴브라스가 이기게 되면, 그것도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조건이었지. 하지만 바로 그 약속에 따라 적의 영토는 이쪽으로 넘어오고 말았던 거야. 아, 그런데 요즘 포틴브라스의 풋내기 아들 녀석이 젊은 혈기로 나선 거야. 그 녀석은 요즘 노르웨이 변방 여기저기서 그저 배나 채우면 아무 일이나 할 부랑배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네. 완력과 수단을 동원해 모험을 꾸미고, 아비가 잃은 영토를 되찾겠다는 속셈이지. 물론 우리 조정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군사 준비를 서두르는 걸세. 우리가 이렇게 망을 서는 것도, 병졸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방방곡곡이 물 끓듯 시끄러운 것도 다 그것 때문이라고 하더구만.

바나도 : 그건 그럴 거야. 그밖에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우리가 망을 보는 앞에 나타난 이 불길한 그림자는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당사자인 셈이지. 별일이나 없으면 좋겠네만.

 

호레이쇼 : 바늘 끝 만한 먼지라도 눈에 들어가면 아프기 마련일세. 옛날 번영을 자랑하던 로마에서도 영웅 시저가 쓰러지기 직전에 무덤들이 텅 비고, 수의를 몸에 휘감은 시체들이 길거리를 소리지르며 다녔다고 하더군. 항상 숙명에 앞서 이런 흉조가 나타나 재앙의 서막을 보여주기 마련이지. 글쎄 우리 백성들 앞에도 그런 게 나타나지 않았나. 글쎄 얼마 전에는 별이 꼬리를 끌며 나타나고, 핏빛 이슬이 내리며, 태양이 빛을 잃었지 않았던가. 바다를 지배하는 달조차도 말세라는 걸 보여주듯이 병든 모습처럼 보이니 말일세. (유령이 다시 나타난다) 아, 쉿, 저것 보게나, 또 나타났어! 에이, 어디 한 번 가로막아봐야지. 이러다 급살을 맞아도 별 수 없다. (두 손을 벌리고 가로막는다) 허깨비야, 게 섰거라! 말을 할 수 있거든 어디 아무 소리라도 말을 해봐라. 너한테 약이 되고, 내게는 복이 될 만한 그런 좋은 얘기가 있거든 어서 말을 해 봐라. 조국의 재앙을 알고 있거든, 미리 말해서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전에 혹시 부당하게 얻은 재물을 땅 속에 파묻었둔 것이 있다면 그런 얘기도 좋다. 너희 영혼들은 그런 것에 미련이 있어 죽은 후에도 그렇게 헤매고 다닌다고 하더군. (닭이 운다) 가지 말고 말해 보란 말이야. 거기 서서 뭐라고 말 좀 해 봐. 이봐, 마셀러스 못 가게 좀 막아 보라구!

 

마셀러스 : 창으로 한 번 찔러 볼까?

호레이쇼 : 그래, 그렇게 해 봐. 정 서지 않거든.

바나도 : 옛다!

호레이쇼 : 이 놈!

마셀러스 : 가버렸어. (유령이 사라진다) 그래도 존엄한 혼령인데, 우리가 너무 난폭하게 대한 것 아닐까? 공중을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더군. 창과 칼도 소용이 없고, 쳐봤자 허탕이지 뭔가.

바나도 : 머뭇머뭇하는데 그만 닭이 울어버렸지 뭐야.

호레이쇼 : 닭이 우니까 마치 무서운 호출이라도 받은 것처럼, 죄인인 것처럼 깜짝 놀라더군. 닭은 새벽의 나팔수, 높은 목청으로 해님을 깨우지. 그 울음 소리를 들으면 여기저기 떠다니던 헛것들이 모두 자기 자리로 줄달음질쳐 갈 수밖에 없다지 않은가. 이제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군.

 

마셀러스 : 글쎄 닭이 우니까 사라졌어. 듣자니까 성탄절 축하 시즌이 되면 새벽을 알리는 닭이 밤새 노래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헛것들이 감히 밖에 나다니지를 못한다고 하네. 별의 힘도 땅에 미치지 못하고, 요정에게 홀릴 염려도 없어지며, 마녀들도 맥을 못 춘다는 거지. 그래서 그때엔 밤이 안전해진다는 거야. 정녕 맑고 조촐한, 복스러운 기운이 넘치는 그런 시기겠지.

 

호레이쇼 : 글쎄 그건 나도 들은 얘기네. 그럴 만도 하겠지. 자, 그런데 보게나. 여덟 가지 색깔 외투를 걸친 해님이 이슬을 밟으면서 저기 동쪽 산마루에 솟아오르는구먼. 자, 그만 망 보는 것은 그만두기로 하세. 그런데 내 생각엔 우리가 아까 본 것은 아무래도 햄릿 왕자 님께 아뢰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 망령이 우리에게는 끝끝내 입을 다물었지만, 왕자님께는 반드시 무슨 얘기를 할 것만 같네. 왕자님께 말씀 드리도록 하세. 우리의 정성이나 맡은 바 직책으로 봐서 그게 당연한 것 아닐까?

 

마셀러스 : 아무렴 그렇게 해야지. 마침 오늘 아침 왕자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내가 알고 있다네. (모두 퇴장)

 

새로운 왕

-성 안의 회의실. 나팔이 울린다. 덴마크 왕 클로디어스, 왕비 거트루드, 중신들, 폴로니어스와 그의 아들 레어티즈, 그리고 볼티먼드와 코닐리어스 등이 다들 정장을 차려 입고 대관식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제일 뒤에 검은 상복을 입은 햄릿 왕자가 아래를 보면서 등장한다. 왕과 왕비가 옥좌에 올라간다.

 

왕 : 친형인 햄릿 왕이 승하하신 기억이 생생한 지금, 모든 백성이 수심에 싸여 다같이 국상을 슬퍼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정신을 차려 인정을 극복해야 할 때라고 하겠소. 선왕을 깊이 추도하면서도 짐은 국왕이 된 체모를 잊지 않아야 했소. 그러므로 지난날의 형수를 왕비로 맞이했소. 이는 무예를 숭상하는 이 나라의 주권을 함께 갖는다는 의미. 이것은 일그러진 기쁨이라고나 해야 할까. 말하자면 한 눈으론 울고, 다른 한 눈으로는 웃으며, 장례식은 즐겁게, 결혼식은 슬프게, 기쁨과 슬픔을 똑같이 저울질하면서 왕비를 맞이한 셈이오. 짐은 이 일에 경들의 현명한 의견을 막지 아니하였고, 경들도 또한 모두들 짐의 의견에 동의하였소. 모두에 대해 가상하게 여기는 바이오. 다음 안건은 다들 알다시피 저 포틴브라스 2세에 관한 것이오. 이쪽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선왕의 승하로 인해 우리의 국가 질서가 풀리고 사기가 떨어졌다고 믿는 모양이오. 그 자는 꿈같이 헛된 기대를 품고, 기어이 사신을 보내 재촉하고 있소. 즉 제 아비가 계약대로 우리 영용하신 선왕께 빼앗겼던 영토를 반환하라는 것이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이쪽의 대책일 것이오. 오늘 회의를 갖는 목적도 바로 그것 때문. 여기 노르웨이 국왕에게 보내는 칙서가 있소. 왕은 포틴브라스의 숙부가 되는 분으로, 노쇠하여 계속 병석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아직 조카의 야심을 잘 모르는 것 같소. 이 칙서는 그 젊은 녀석이 왕의 백성을 마음대로 소집해서 군사를 조직하는 따위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르웨이 왕께서 잘 단속해 달라는 내용이오. 이제 그 사신으로는 코닐리어스 경과 볼티먼드 경을 임명하겠소. 노르웨이 왕과 교섭할 때 행사할 수 있는 개인적 권한은 이 서류에 명기되어 있소. 그 조항 이상은 허락하지 않으리다. 그럼 서두르기를.

코닐리어스, 볼티먼드 : 만사 분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다른 번역]

 

제1막 제2장 궁전의 정전

 

나팔 소리 덴마크 왕 클로디어스, 왕비 거트루드, 중신들, 폴로니어스와 그의 아들 레어티스, 그리고 볼티먼드와 코닐리어스 등이 다들 정장을 차려 입고 대관식을 마치고 나오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검은 상복을 입은 햄릿 왕자, 아래를 보면서 등장. 왕과 왕비가 옥좌에 올라선다.

 

왕 : 친형인 햄릿 왕이 승하하신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여 만백성은 모두 수심에 싸여 국상을 슬퍼하고 있음은 인정하오. 그러나 정신을 차려 극복하고, 선왕을 깊이 애도하면서도 짐은 국왕이 된 체모를 잊지 않았소. 그런고로 짐은 지난날의 형수를, 무예를 숭상하는 이 나라의 주권을 함께 나누는 왕비로서 맞이했는데, 이는 이즈러진 기쁨이라고나 할까요. 말하자면 한 눈으론 울고, 다른 한 눈으로는 웃으며, 장례식은 즐겁게, 결혼식은 슬프게, 희비는 똑같이 저울질하며 왕비를 맞이한 심정이오. 또한 이 일에 있어서 짐은 경들의 현명한 의견을 막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모두들 짐에게 찬성해 주었소. 다들 가상히 여기오. 다른 것들 다 알고 있다시피 저 포틴 브라스 2세에 관해서인데, 이쪽 실력을 과소 평가했는지, 혹은 선왕의 붕어로 인하여 국가 질서가 문란해지고 사기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는지, 꿈 같은 시리(時利)를 믿고 기어이 사신을 보내어 재촉하기를, 즉 자기 아비가 계약대로 우리 용맹하신 선왕께 잃은 영토를 다시 반환하라는 것이오. 그건 그렇고, 요는 이쪽의 대책인데, 오늘 회의를 갖는 것도 이것 때문이오. 여기에 노르웨이 왕께 보내는 칙서가 있소. 왕은 포틴브라스의 숙부가 되는 분으로 노쇠하여 쭉 병석에 누워 있기 때문에 조카의 야심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 젊은 녀석이 왕의 백성들을 소집해서 대군을 조직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오. 이에 그 사신으로서 코닐리어스 경과 볼티먼드 경을 임명하오. 노르웨이 왕과 교습할 개인적 권한은 여기에 그 조항이 명시되어 있으며, 그 이상은 엄금하오. 그러니 어서.

코닐리어스, 볼티먼드 : 만사 분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김재남 옮김)

 

왕 : 부탁하니 잘 다녀오시오. (두 사람 퇴장) 그런데 참 레어티즈, 너는 또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가? 무슨 청원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유만 대면 이 덴마크 왕이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 대체 네 바람이 무엇이냐? 네가 굳이 조르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알아서 들어줄 터이다. 이 덴마크 왕실과 네 조상들 사이는 뇌수와 심장보다 더 깊고 긴밀한 관계이다. 손이 입에 긴요한 것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 네 청원이 무엇이란 말인고?

레어티즈 : 황송하옵니다. 이제 소신을 프랑스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전하의 대관식에 참여하고자 돌연 귀국하였사오나 이제 그 사명도 끝나고 보니 마음은 이미 프랑스로 돌아가 있습니다. 황송하오나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왕 : 그대 부친의 허락은 받았던가? 폴로니어스 경,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폴로니어스 : 예, 자식놈이 어찌나 졸라대는지 본의는 아니지만 할 수 없이 허락해주었습니다. 이제 아비로서 전하께 바라옵나니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왕 : 그래, 가서 잘 지내도록 하라. 레어티즈야, 시간은 네 것이다. 마음대로, 그러나 아무쪼록 유익하게 쓰도록 하려무나. 그런데 참, 내 조카, 내 아들 햄릿 차례인데.

햄릿 : (옆을 보면서) 숙질 이상의 관계가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부자간 취급을 하는 것은 싫습니다.

왕 : 요즘 네 얼굴엔 늘 구름이 덮여 있구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햄릿 : 천만에요, 태양의 혜택이 너무 많다고 할 지경입니다.

왕비 : 이봐, 햄릿. 그 어두운 상복은 그만 벗어버리고, 덴마크 왕을 좀더 다정하게 바라보려무나. 넌 왜 그렇게 항상 아래만 쳐다보는 거냐. 앞으로도 계속 땅 속에 묻힌 아버님만 찾고 있을 것이냐? 너도 알지 않으냐. 생명 있는 자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란 것을. 누구나 다 한 번은 세상의 삶을 마치고 저승으로 가게 마련 아니냐.

햄릿 : 아무렴 그렇지요, 예.

왕비 : 그렇다면 어째서 너만 그렇게 유별나게 구는 것처럼 보이느냐?

햄릿 : 보이다뇨! 아니, 사실이 그런 겁니다. 그렇게 보이든 안 보이든, 그건 제가 알 바가 아구요. 어머님, 다만 이 새까만 외투나, 격식에 맞는 그럴 듯한 상복, 억지로 내쉬는 한숨. 이런 것들이 저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냇물처럼 흘리는 눈물, 비통한 표정, 비애를 나타내는 온갖 형식과 방법들, 그런 것들이 모두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죠. 하지만 그깟 연극쯤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이 가슴 속에 있는 것은 비애의 겉치레 옷차림과는 다릅니다.

왕 : 그토록 부친을 애도하는 네 태도는 참 아름답고 가상한 성품이다. 그러나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네 부친도 아버지를 여의셨고, 네 조부 또한 아버지를 여의셨다. 그래서 뒤에 남은 자는 어느 기간 동안 복상을 하기 마련이다. 바로 그게 자식 된 도리이기도 하고. 그러나 터무니없이 오래 비탄에 잠기는 것 역시 신을 모독하는 고집이며, 대장부답지 못한 행동이다. 하늘에 거역하는 불경스러운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신을 믿지 아니하는, 괴퍅하고 분별없는 태도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이 불가피하고 으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심술궂게 마음으로 반항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렇게는 안 된다. 그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요, 고인에게도 옳지 못한 행동이다. 또한 도리와 이치에도 어긋난다. 부친의 죽음은 가장 평범한 이치에서 생긴 일일 뿐이다. 인류가 처음 죽음을 맛보던 날부터 지금까지도 이것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소리쳐 말해주지 않으냐. 제발 그 쓸데없는 비애일랑 이제 땅에 내던지고, 이 왕을 친아버지처럼 생각해다오. 세상에 공포하지만, 너는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이다. 내가 친아버지 못지 않은 애정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너는 비텐베르크 대학에 돌아가고 싶다지만, 그건 나의 뜻과는 너무 다르다. 제발 이대로 머물러서 나의 중신, 그리고 나의 조카이자 아들로서 이 왕의 힘이 되어 주고 위안이 되어 다오.

왕 : 얘야, 네 어머니의 소원을 헛되지 않게 해 다오. 이렇게 간절히 당부한다. 제발 비텐베르크로 돌아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있어줄 수 없겠니?

햄릿 : 예, 아무쪼록 어머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왕 : 거 정말 기특한 대답이다. 정말 반갑다. 이 덴마크에서 짐과 함께 지내도록 하라. 여보, 거트루드, 햄릿이 이렇게 기꺼이 승낙하니 내 마음도 풀리는구려. 축하하는 의미에서 오늘 덴마크 왕이 축배를 들어야 하겠소. 즐거운 한 잔 한 잔마다 축포를 터뜨려 하늘에 알리도록 해야지. 그래야 하늘도 왕의 주연을 축하하고 지상의 즐거움에 화답할 것 아니오.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나팔 소리. 햄릿만 남기고 퇴장)

햄릿 : 아, 너무나 더러운 이 육체. 차라리 완전히 녹아버려 완전히 이슬이나 되어 버렸으면! 신은 왜 또 그렇게 자살을 금지하는 율법을 정하셨던가! 아, 아. 세상만사 다 귀찮다. 멋없고 진부하며 쓸데없구나. 에이 더러운 세상, 뜰에는 잡초만 마구 자라고, 온통 악취가 코를 찌르는구나. 이렇게 되고 말다니. 돌아가신 지 겨우 두 달, 아니 그렇지 두 달도 채 못된 것 아닌가. 너무 훌륭하신 임금님 아니었던가. 지금의 왕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 아닌가. 바깥 바람이 거세면 그걸 맞는 것조차 말리실 정도로 어머니를 아끼셨는데 제기럴, 그런 일까지 다 머리 속에 떠올려야 하나? 먹으면 먹을수록 욕심이 사나워지는 것처럼 늘 아버지께 매달리곤 하시던 어머니, 그러던 것이 채 한 달도 못돼서... 아예 생각을 말자. 여자란 어쩔 수 없어! 겨우 한 달. 니오베 여신처럼 온통 눈물에 잠겨 아버지의 상여를 따라가던 신발이 채 닳기도 전에, 아 어머니가, 세상에 우리 어머니가 저 숙부의 품에 안기다니. 사리를 분간 못하는 짐승이라도 이보다는 더 슬퍼했을 것 아닌가. 한 형제라곤 해도 나와 헤라클레스 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저런 자하고, 한 달도 채 못 가서 결혼을 하다니. 거짓 눈물을 흘린 그 소금 기운으로 아직 눈이 벌건 그대로 말이야. 야, 너무 빠르고, 너무 더럽구나. 어쩌면 그리도 잽싸게 그 더러운 이부자리로 달려간단 말이냐! 옳지 못해, 절대 옳지 못할 거다. 그러나 잠깐, 이 생각만은 이 가슴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입을 다물어야지.

 

- 호레이쇼, 마셀러스, 바나도 등장

 

호레이쇼 : 안녕하십니까!

햄릿 : 오, 잘 있었나. 호레이쇼 아닌가. 내가 원 정신이 없나?

호레이쇼 : 바로 그 호레이쇼, 왕자님의 변함 없는 종입니다.

햄릿 : 원, 이 친구, 나야말로 오히려 그렇게 말하고싶은 심정일세. (악수한다) 그래 호레이쇼, 비텐베르크에서 무슨 일로 돌아왔나? 아, 마셀러스도 있었구먼. (악수의 손을 내민다)

마셀러스 : 아, 왕자님!

햄릿 : 참 반갑네 (바나도에게) 아 자네도 별고 없었나. (호레이쇼에게) 그런데 자네 정말 무슨 일로 비텐베르크에서 돌아왔나?

호레이쇼 : 제가 원체 놀기를 좋아하는 놈 아닙니까.

햄릿 : 자네 적들이 그렇게 욕을 해도 곧이들을 내가 아니네. 하물며 자네 스스로 자기 욕을 하는 그 말을 내 귀가 믿을 줄 아나? 자넨 절대 게으름뱅이가 아니네. 대체 무슨 일로 이 엘시노어에 왔나? 다시 떠나기 전에 술고래가 되는 법이나 배우려고 그러나.

호레이쇼 : 실은 국상을 뵈오려 이렇게 왔습니다.

햄릿 : 제발 농담은 그만두게. 그보다도 우리 어머니 혼례식을 보러 온 것이겠지.

호레이쇼 : 그러고 보니 참, 잇달아서.

햄릿 : 여보게, 그게 다 경제적인 문제라네. 제사상 음식이 식을 만하면 잔칫상이 나온다 그 말일세. 이런 꼴을 볼 바에야 차라리 천당에서 원수를 만나는 게 낫겠어. 여보게 호레이쇼, 지금도 아버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네.

호레이쇼 : 어디서 말씀입니까?

햄릿 : 그저 내 마음의 눈 속에 말일세.

호레이쇼 : 저도 한 번 뵈온 적이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임금님이셨습니다.

햄릿 : 어느 모로 보아도 늠름한 대장부셨지. 이제 다시 또 그런 분을 뵈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

호레이쇼 : 실은 어제 밤에 뵈온 것 같습니다.

햄릿 : 뵈었다구? 누구 말인가?

호레이쇼 : 선왕 말씀입니다.

햄릿 : 선왕을?

호레이쇼 : 놀라움을 잠시 진정하시고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십시오. 좀 이상한 일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마셀러스와 바나도를 돌아다본다)

햄릿 : 제발 어서 얘기해주게.

호레이쇼 : 실은 마셀러스와 바나도가 이틀 밤 같이 망을 보다가 캄캄한 한밤중에 겪은 일이랍니다. 꼭 선왕의 모습을 한 형체가 머리 꼭대기부터 발 끝까지 완전히 무장을 하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앞을 엄숙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엄숙하게 지나가신 겁니다. 손에 쥔 단장이 닿을락 말락한 거리를 두고 겁에 질린 두 사람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갔답니다. 그 동안 이 두 사람은 어찌나 무섭던지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면서 벙어리처럼 멍하니 서서, 감히 말도 걸어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두 사람이 이 무서운 일을 저에게도 은밀히 얘기해 주기에 저도 사흘째 밤에는 같이 망을 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두 사람 말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형태로 그 혼령이 나타나더군요. 틀림없이 선왕님이셨습니다. 저의 이 두 손도 그렇게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햄릿 : 그게 어딘가?

마셀러스 : 저희들이 어제 망을 보았던 저 망대 위입니다.

햄릿 : 그래, 말을 걸어 보거나 하지는 않았나?

호레이쇼 : 왜요, 걸어 보았지요.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더군요. 다만 한 번 얼굴을 드시고, 머뭇머뭇 뭔가 말할 것처럼 그러더니만, 바로 그때 새벽 닭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리에 그만 질겁을 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햄릿 : 참 이상한 일이로군.

호레이쇼 : 절대 거짓말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들은 이 일을 왕자님께 아뢰는 것이 저희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햄릿 : 음,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이 무척 어지럽네. 오늘 밤에도 망을 보나?

모두 : 예, 봅니다.

햄릿 : 갑옷을 입었다고?

모두 : 네.

햄릿 :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라고 했으렸다?

모두 : 예, 그렇습니다.

햄릿 : 그럼 얼굴은 보지 못했던가?

호레이쇼 : 아, 예,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마침 투구 앞받침을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햄릿 : 어때, 성난 얼굴이던가?

호레이쇼 : 화가 났다기보다 슬픈 표정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햄릿 : 파랗던가, 빨갛던가?

호레이쇼 : 아주 파랗더군요.

햄릿 : 그래, 자네를 쏘아보던가?

호레이쇼 : 예, 아주 뚫어지게 쏘아보던데요.

햄릿 :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호레이쇼 : 계셨더라면 아마 무척 놀라셨을 겁니다.

햄릿 : 하긴 그랬을 테지. 그래 오래 머물러 있었나?

호레이쇼 : 다만 천천히 백을 셀 정도 동안만 머물러 계셨습니다.

마셀러서, 바나도 : 그보다는 더 오래일 겁니다. 더 오래에요.

호레이쇼 : 내가 봤을 때는 그렇게 오래 동안은 아니었어.

햄릿 : 수염은 희끗희끗하던가?

예, 생존시에 뵈었던 것처럼 까만 수염에 하얀 수염이 섞여 있더군요.

햄릿 : 오늘 밤에는 나도 함께 망을 서겠네. 혹시 또 나올지도 모르니.

호레이쇼 : 반드시 또 나올 겁니다.

햄릿 : 정말 선친 모습이라면 내가 한 번 말을 걸어 보겠어. 비록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고 내게 침묵을 명령하더라도 말이야. 다들 지금까지 이 일을 숨겨온 이상, 앞으로도 이 일은 침묵 속에 묻어 주게나. 그리고 오늘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저 알고만 있을 뿐 입 밖에 내지 말아주게. 그 호의엔 보답하겠네. 그럼 다들 잘 가게. 열 한 시와 열 두 시 사이에 망대에서 만나세.

모두 :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햄릿 : 아니, 피차 일반일세. 이건 우정이야. 그럼 다들 잘 가게. (모두 절을 하고 퇴장) 아버님 혼령이 갑옷을 입었다고! 이건 예사 일이 아니다. 무슨 흉계라도 있는 것만 같다. 밤이 기다려지는구나. 하지만 그 때까지는 꾹 참아야지. 악행은 대지가 숨긴다 해도 사람 눈에 의해 결국 드러나는 법이다. (퇴장)

1막 3장

 

- 폴로니어스 저택에서

-폴로니어스 저택의 어느 방. 레어티즈와 그의 누이동생 오필리어 등장.

 

레어티즈 : 이제 짐도 다 실었다. 그럼, 잘 있어라. 얘야, 그리고 순풍을 타고 오는 배편이 있거든 잠만 자지 말고 소식을 전해 줘야 한다.

오필리어 : 원, 오빤 별 걱정도...

레어티즈 : 햄릿 님이 네게 호의 같은 걸 보여오신 모양인데 그건 다 한 때의 기분, 청춘의 혈기에 불과한 거란다. 이른 봄에 피는 제비꽃이라고나 할까. 피기는 일찍 피어나지만 지는 것도 빠르고 향기롭긴 하나 오래 가지는 못하지. 덧없는 한 순간의 향기, 일시적인 위안, 그것일 뿐이야.

오필리어 : 정말 그럴까요?

레어티즈 : 그렇단다. 인간이란 자라면서 근육과 몸집만 커지는 것은 아니다. 이 육체가 성장하면 그 안에 있는 마음과 정신도 함께 성장하는 거란다. 지금은 햄릿 님도 너를 사랑하고 있겠지. 지금이야 오직 순정이 있을 뿐, 진심을 더럽히는 악의나 흉계 따위는 전혀 없을 거야. 그러나 그분은 지위가 지위니 만큼 자기 뜻도 자기 뜻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글쎄, 왕자라는 신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거야. 그러니 일반 백성들과 달라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단 말이야. 한 나라의 안위가 그분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지 않으냐. 그러다 보니 자신의 배필을 간택하는 것도 자기의 손과 발이라고 할 수 있는 백성 전체의 찬성과 반대에 의해 좌우된다는 얘기야. 그러니 그분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더라도 그저 특별한 지위에 계시는 분의 말씀으로 알아서 듣는 것이 현명하단 말이야. 그건 이 나라 백성들의 찬성이 필요한 문제라는 걸 알아야 해. 글쎄 그분의 노래에 솔깃해져서 정신을 잃고 무턱대고 조른다고 해서 보배 같은 정조를 내어주게 되면, 처녀의 몸으로 얼마나 큰 치욕을 당할 것인지 생각해 보려무나. 얘, 오필리어야. 부디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아무튼 애정의 뒤로 물러서서 정욕의 화살을 피해야 한다. 정숙한 처녀는 달님 앞에 얼굴을 내놓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그러지 않더냐. 정숙한 여인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이 세상의 험담이란다. 봄철의 새싹은 미처 피어나기도 전에 벌레한테 먹히며, 이슬 맺힌 청춘의 아침은 오히려 악랄한 해악의 피해를 입기 쉽다고 한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조심하는 게 상책이야. 청춘의 시절엔, 상대가 없어도 저절로 욕정이 생겨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오필리어 : 오빠의 좋은 말씀을 분명히 이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해 두겠어요. 하지만 오빠, 저 방탕한 목사들처럼 험한 가시밭길을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건 싫어요. 그들은 오만하고 냉정한 방탕아처럼 환락의 꽃밭을 걷고 있잖아요. 자기가 설교한 내용과는 딴 판으로 행동하잖아요.

레어티즈 : 내 걱정은 마라. 이거 너무 오래 시간을 끈 모양이군. (폴로니어스 등장) 아버님이시다. 축사가 거듭되면 그만큼 복도 더 받게 되겠지. 좋은 기회야. 다시 한 번 작별 인사를 드려야지. (무릎을 꿇는다)

폴로니어스 : 너 아직도 여기 있었구나. 서둘러 배를 타도록 해라. 어서. 돛이 바람을 가득 안고,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다. 자, 축복을 받으려무나. (아들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몇 마디 훈계를 들려줄 테니, 단단히 새겨들어야 한다, 알겠지? 마음 속 생각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며, 엉뚱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말아라. 친구를 사귀되, 잡스러워서는 안되고, 일단 사귄 친구라면 쇠사슬로 마음에 묶어 두어라. 하지만 새파란 풋내기들과 악수나 해대다가는 손바닥만 두꺼워질 거야. 싸움을 하지 말아라. 하지만 부득이하게 일단 싸우게 되면 상대방이 앞으로 너를 피할 정도로 철저하게 싸워라. 누구의 말에나 귀를 기울이되 네 의견을 말하는 것은 삼가라. 남의 의견을 들어주되 옳고 그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삼가란 얘기다. 옷을 입는 것에는 지갑이 허락하는 데까지 손을 써도 좋지만 괴상한 모습을 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 값지되 너무 화려해서는 안 된다. 옷이 날개라고 하는 말도 있지 않으냐. 프랑스에서는 상류 계급이나 세련된 명사들이 이런 방면의 안목이 탁월하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빚을 지지도 말고 주지도 말아라. 빚을 주면 돈과 사람을 다 잃게 되고, 빚을 지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뎌진다. 무엇보다도 네 스스로에게 충실해라. 그러면 밤이 낮을 자연스럽게 따르듯, 다른 사람에게도 충실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럼 잘 가거라. 자, 내 훈계가 네 마음 속에서 무르익기를 기도하마.

레어티즈 : 삼가 하직하겠습니다.

폴로니어스 : 시간이 없다. 어서 가 보아라. 지금 하인들이 기다리고 있구나.

레어티즈 : (일어서면서) 오필리어야, 그럼 잘 있거라. 내가 한 말은 절대 잊지 말고.

오필리어 : 이 가슴 속에 자물쇠를 잠갔으니, 열쇠는 오빠가 갖고 계셔요. (오누이가 서로 껴안는다)

레어티즈 : 안녕. (레어티즈 퇴장)

폴로니어스 : 얘, 오빠가 무슨 말을 했더냐?

오필리어 : 저, 사실은 햄릿 님의 얘기였어요.

폴로니어스 : 음, 그래. 요즘 듣자하니 햄릿 님이 아주 자주 너를 찾아 드나든다고 하더구나. 너는 또 너대로 선선히 그분을 만나 준다면서. 나를 보고 조심하라고 하면서 일러주신 분이 있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난 용납 못한다. 내 딸로서 체면을 알아야 할텐데, 넌 아직 분별이 없는 것 같구나. 도대체 요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사실대로 말해 봐라.

오필리어 : 저, 그 분은 요즘 여러 번 저에게 사랑을 고백하셨어요.

폴로니어스 : 사랑이라고! 허, 이런 참! 이런 험악한 시절에 철부기 풋내기 같은 말을 다 듣겠구나. 그래 그 말이 진짜처럼 들리더냐?

오필리어 : 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폴로니어스 : 음,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 주마. 부도 수표나 마찬가지인 그런 사랑을 현찰인 줄 알고 받는다면 넌 철부지 어린애나 다름없다. 좀더 값비싸게 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아비는 너 때문에 바보 취급을 받고 말 거다. 아니 이러다가는 내 숨이 끊어지고 말 거야.

오필리어 : 그분은 정말 진실한 태도로 사랑을 애원하셨어요.

폴로니어스 : 허, 모르는 소리. 정말 기가 막히는구나.

오필리어 : 신성한 맹세까지 하시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증하셨어요.

폴로니어스 : 그게 바로 새를 잡는 덫이라는 거다. 글쎄 젊은 피가 끓어오르는데 이것저것 맹세를 하지 않을 까닭이 있느냐. 얘야, 그런 불꽃은 열보다 광채를 더 많이 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참 맹세를 지껄이다 보면 어느새 열이며 광채 따위는 다 사라지고 만다. 불이라고 해서 다 불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너도 처녀답게,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무작정 명령하시니 그저 따른다는 식이 아니라, 좀 도도하게 굴란 말이다. 글쎄 햄릿 님은 나이도 젊고, 너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몸이 아니더냐. 그런 것쯤은 잘 알고 상대해야 한단 말이다.

요컨대 맹세 따위는 절대 믿지 말라는 얘기야. 남자의 맹세는 겉으로 보이는 빛깔과는 다르단다. 실상은 수치스러운 욕망을 채우려고 말만 그럴싸하게 신성한 체, 거룩한 체하는 거야. 여자에게 불륜을 권하는 뚜쟁이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러기에 여자들은 더 잘 속아넘어가게 된다는 말이야. 딱 부러지게 결론을 말하마. 앞으로는 절대, 잠시라도 왕자님과 얘기를 나눠서는 안 된다. 알았지? 이건 아버지의 명령이다. 자, 이제 들어가자꾸나.

오필리어 : 아버님 분부대로 하겠어요. (두 사람 퇴장)

1막 4장

 

- 망대 위의 햄릿

 

-망대 위. 햄릿, 호레이쇼, 마셀러스가 한쪽 작은 탑에서 등장한다.

 

햄릿 : 바람이 마치 살이라도 깎는 것처럼 무척 춥구나.

호레이쇼 : 정말 살을 떼어낼 것 같은 매운 바람입니다.

햄릿 : 지금 몇 시쯤이나 됐을까?

호레이쇼 : 아직 자정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셀러스 : 아닙니다. 방금 열두 시를 치더군요.

호레이쇼 : 그래? 난 듣지 못했네. 그렇다면 이제 그 유령이 나타날 시간이 가까워졌구먼. (궁궐 안에서 나팔을 부는 소리와 대포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저건 무슨 소립니까?

햄릿 : 국왕이 밤새 주연을 펼치고 있네. 부어라 마셔라 춤추어라 난장판이 벌어진 걸세. 왕이 포도주를 한 잔 들이킬 때마다 저렇게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서 왕의 건배를 백성들에게 알린다는 걸세.

호레이쇼 : 늘 저렇게 합니까?

햄릿 : 늘 저래 왔다네. 나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 나라 풍습에 젖어 있는 몸이지만, 이건 지키는 것보다 깨뜨리는 것이 도리어 명예스러운 일일 것 같네. 저렇게 술을 마셔대니까 외국인들이 우리더러 주정뱅이니 돼지니 하고 욕을 해대지 않던가. 사실 아무리 영광스러운 일을 한다 해도 저렇게 술을 마시면 명예의 진짜 알맹이는 다 빼놓고 놓치는 셈이지. 물론 어떤 개인의 경우에도 세상에 나올 때부터 타고나는 약점 같은 것이 있지. 인간의 탄생이 제 뜻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니 이거야 물론 당사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네. 하지만 어떤 성질이 좀 지나쳐서 이성의 울타리를 허물기도 하고, 혹은 어떤 습관이 너무 지나치면 세상 관습에 어긋나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곤 하지. 이렇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결점을 하나씩 짊어진 사람들은 아무리 순수한 미덕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그 특수한 약점 때문에 이 세상의 눈에는 몽땅 썩어빠진 존재처럼 보이는 걸세. 고귀한 성품의 인물도 티끌 만한 결점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세상의 악평을 불러오기 마련이지 않던가.

 

-갑자기 유령이 나타난다.

 

호레이쇼 : 햄릿 님, 저기 저것 좀 보십시오.

햄릿 : 하나님 우리를 보호해 주옵소서! 이봐, 그대는 천사냐, 악마냐? 천상의 신령이냐, 아니면 지옥의 독기더냐? 그대의 마음 속이 착한지 악한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인간의 모습을 쓰고 나타났으니 내가 물어봐야지. 내 그대를 덴마크 왕, 햄릿의 아버님이라고 부르겠소. 자, 대답해 보시오! 답답해서 이 가슴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구나. 죽어서 격식을 갖춰 땅 속에 묻힌 시체가 어찌하여 수의를 찢고 나타났다는 말이오? 그대를 편안히 모신 무덤이 어찌하여 그 무거운 대리석 입술을 벌려 시체를 뱉어 놓았단 말이오? 그래, 그대 시체가 이렇게 다시 완전 무장을 하고, 어스름한 달빛 아래 나타나서 이 밤을 이렇게 끔찍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이오? 아, 자연의 법칙에 묶여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인간의 지혜로는 풀지 못할 문제를 던지고,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곡절이 무엇이란 말이오? 어서 말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오? (유령이 햄릿에게 손짓을 한다)

호레이쇼 : 저렇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는군요. 아마 왕자님께만 할 무슨 비밀 얘기라도 있나 봅니다.

마셀러스 : 무척 정중한 태도로 다른 곳으로 가자고 손짓을 하는군요. 하지만 따라가지 마십시오.

호레이쇼 : 가시면 절대 안됩니다!

햄릿 : 하지만 여기선 뭔가 말을 할 것 같지 않아. 그러나 내가 따라가 봐야겠어.

호레이쇼 : 그건 안됩니다.

햄릿 : 왜? 도대체 뭐가 무섭단 말인가? 난 이 목숨을 바늘만큼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네. 내 영혼 역시 절대 없어지지 않는 영혼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피해를 입는단 말인가?

호레이쇼 : 그렇지 않습니다. 강이나 바다, 혹은 그런 데 불쑥 튀어나온 절벽 꼭대기나 그런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면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그러다가 느닷없이 무슨 괴물로 변해서 사람의 이성을 빼앗고 미치게 만들어 버리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란 절벽 위에서 저 아득한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며 울부짖는 파도 소리만 들어도 아무 이유도 없이 괜히 미칠 것 같고, 불안해지는 법입니다.

햄릿 : 지금도 계속 손짓을 하는구나. 자, 난 따라가 봐야겠어.

마셀러스 : 안됩니다, 햄릿 님.

햄릿 : 이것 놓아라.

호레이쇼 : 진정하십시오. 절대 못 가십니다.

햄릿 : 내 운명이 부르고 있어. 온몸의 핏줄이란 핏줄은 모두 기운이 솟구치네. 저 네메아 산중의 사자 힘줄처럼 이렇게 말일세. 봐, 저렇게 부르지 않는가. 이것 썩 놓게. (뿌리치고 칼을 빼든다) 방해하면 목을 벨 테야. 비켜라 비켜, 난 따라가고야 말겠다. (유령이 한쪽 작은 탑으로 사라진다. 햄릿이 그 뒤를 따라간다)

호레이쇼 : 헛것에 홀려서 넋이 나가신 모양이다.

마셀러스 : 따라가 봅시다. 명령이라고 해서 여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호레이쇼 : 당연히 따라가 봐야지. 그런데 도대체 이 일이 어떻게 되려는가?

마셀러스 : 이 나라 어딘가 썩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호레이쇼 :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마셀러스 : 아무튼 따라가 봅시다. (두 사람 햄릿의 뒤를 따라 퇴장)

 

- 유령이 말하는 진실

-성벽 아래 빈터. 성벽 문으로 유령이 나온다. 그 뒤를 따라 햄릿 등장. 햄릿은 칼을 빼 들고 빈 칼자루를 십자가 모양으로 들고 걸어온다.

 

햄릿 : 어디까지 가는 거요? 이제 말을 하시오. 더는 가지 않으리니.

유령 : (뒤를 돌아보면서) 내 말을 잘 들어 봐라.

햄릿 : 으음.

유령 : 유황불 이글거리는 지옥의 고통에 몸을 맡길 시각이 이제 가까워졌다.

햄릿 : 불쌍한지고!

유령 : 동정할 필요는 없다. 자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나 잘 들어봐라.

햄릿 : 말하시오, 들으리니.

유령 : 내 말을 들으면 원수를 갚을 수 있을까?

햄릿 : 뭐라구요?

유령 : 나는 네 아비의 혼령이다. 밤이 되면 잠깐 돌아다니다가, 낮에는 지옥에 갇혀 생전에 저지른 온갖 죄악이 불에 타서 씻길 때까지 견뎌야 하는 그런 운명이다. 저승의 비밀은 네게 말할 수 없다. 단 한 마디라도 말한다면 네 영혼은 고통에 시달리고 젊은 피조차도 얼어붙으리라. 두 눈알은 별똥처럼 눈에서 튀어나오고, 곱슬곱슬한 네 머리칼도 오라기마다 고슴도치의 털처럼 쭈삣 곤두서고야 말 것이다. 저승의 비밀을 인간의 귀에 들려줄 수는 없다. 다만 들어 봐라, 제발, 들어 보렴! 일찍이 네 아비를 한번이라도 사랑했다면 말이다.

햄릿 : 아, 하나님!

유령 : 비겁하기 짝이 없는 그 암살을 복수해다오.

햄릿 : 암살이라고!

유령 : 아무리 좋게 봐 주려 해도 암살은 비열한 짓이다. 그야말로 비열하고 잔인하고 참혹하기 짝이 없는 엄청난 죄악이다.

햄릿 : 어서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시오. 사랑의 생각처럼 재빨리 원수를 갚으러 날아가고야 말겠습니다.

유령 : 암, 그래야지. 내 얘기를 듣고도 떨쳐 일어서지 않는다면 저 저승에 흐르는 망각의 강변에서 자라나 그저 썩고 마는 잡초보다도 더 미련한 인간이렷다. 잘 들어보아라, 햄릿. 세상에는 내가 정원에서 잠을 자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나라 백성들은 지금 그 엉터리로 꾸민 말에 감쪽같이 속고 있다. 사실은 네 아비를 죽인 그 독사가 바로 지금 왕관을 쓰고 있느니라.

햄릿 : 아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더라니! 역시 숙부가!

유령 : 그렇다. 음탕하게 불륜을 일삼는 저 짐승만도 못한 그 놈이다! 마법사 같은 지혜와 간악한 재주를 부려 간사하게 부녀자를 농락한다. 그렇게도 정숙한 체하던 왕비의 마음을 꾀어 수치스러운 음란의 자리로 이끌고야 말았구나. 아, 이 무슨 배신이냐. 백년가약의 맹세대로 한결같이 사랑해온 남편의 사랑을 배신하고, 그 성품이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열한 위인과 배가 맞다니. 진정한 정조는 육체의 욕망이 천사를 가장하고 찾아와서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음탕한 여자는 천사처럼 빛나는 남자와 배필이 되어, 잠자리에서 하늘의 기쁨을 누린다 해도 한편에서는 썩은 고기를 탐내 아귀아귀 집어먹게 된다. 아, 벌써 새벽 바람이 불어오는 모양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마. 나는 그 날 오후에 늘 하던 버릇대로 왕궁 정원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놓고 자는 틈에 네 숙부가 독약 병을 들고 살금살금 내게 기어왔다. 살을 녹이는 그 흉악한 헤보나의 독약을 내 귀에 부어넣은 것이다. 이 독약은 사람의 피를 썩게 만드는 극약. 수은과 같이 삽시간에 사람의 전체 핏줄을 돌아, 우유 속에 식초가 한 방울 떨어진 것처럼 맑고 깨끗한 피를 순식간에 굳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피도 당장 그렇게 되어 깨끗하던 온몸에 징그러운 부스럼들이 문둥이처럼 솟아났다. 이렇게 나는 낮잠을 자다가 아우의 손에 생명과 왕관과 왕비를 한꺼번에 빼앗기고 말았다. 아직 내 죄과가 무성한 한창 때에 목숨이 꺾여 성찬식도 못하고, 신부의 위안도 받지 못했다. 임종의 기름조차 바르지 못하고, 주님 앞에서 참회도 하지 못했다. 결국 온갖 죄악으로 몸과 마음이 더렵혀진 상태로 지옥의 심판대에 끌려가고 만 것이다. 아, 정말 끔찍하다, 끔찍해! 너에게 조금이라도 효심이 있거든 그대로 참아선 안 된다. 덴마크 왕의 침상을 패륜과 치욕 속에 버려두지 말아라. 그러나 아무리 분노하더라도 네 어머니에 대해서는 도리에 어긋나게 해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라. 마음 속 가시에 찔리도록 차라리 버려 두어라. 그럼 잘 있거라. 반딧불이 희미해지는 것을 보니 날이 새는 모양이구나. 잘 있거라. 이 아비를 잊지 말아다오. (유령은 땅 속으로 사라지고, 햄릿은 미칠 듯이 무릎을 꿇는다)

햄릿 : 아, 하늘의 태양과 별들이여, 대지여! 그리고 또 무엇이 있나? 지옥까지 불러볼까? 아니, 정신을 차려야지, 정신을. 이 육체의 근육아, 그렇게 삽시간에 쇠약해지면 절대 안 된다. 나를 바짝 지탱해 주어야 한다. (일어선다) 잊지 말아 달라고? 가련한 아버지! 이 미칠 것 같은 머리에 기억력이 남아 있는 한 내가 어찌 잊을까 보냐. 잊지 말아달라고? 아무렴, 앞으로 내 기억의 여백에서 다른 하찮은 기억들일랑 모두 지워버리겠다. 책에서 읽은 격언이며, 젊은 시절에 살펴본 형상과 머리에 남아 있던 인상까지 싹 지워버리고 당신의 명령만을 이 두뇌의 수첩에 간직해 두고 다른 천박한 내용들과는 구별할 겁니다. 그렇고 말구요... 맹세합니다! 그건 그렇고, 정말 몹쓸 여자 아닌가! 아니 그 악당이야말로... 얼굴에는 태연하게 미소를 띄우고! (뭔가 적어 넣는다) 그래, 수첩에 적어 둬야지. 아무리 미소를 지어도 악당은 악당이다. 적어도 덴마크에서는 그럴 수 있지. 자, 숙부여, 이렇게 딱 적어 두마. 내 자신의 좌우명... '자, 그럼 아버지를 잊지 말아 다오' 이렇게 말이야. (무릎을 꿇고 칼자루에 손을 얹고 맹세한다) 이제 맹세까지 했다. (기도를 올린다)

 

- 맹세하라!

-호레이쇼와 마셀러스, 성문에서 나와 어둠 속에서 햄릿을 부른다.

 

호레이쇼 : 햄릿 님, 햄릿 님!

마셀러스 : 햄릿 님!

호레이쇼 : 하나님, 햄릿 님을 보살펴 주소서!

햄릿 : (일어선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마셀러스 : 야호, 훠이, 훠... 햄릿 님, 어디 계십니까?

햄릿 : 야호, 훠이, 훠, 훠... 여길세, 나 여기 있어! 이리 오게나! (두 사람이 햄릿을 발견한다)

마셀러스 : 어떠십니까?

호레이쇼 : 도대체 어떻게 됐습니까, 햄릿 님?

햄릿 : 참, 엄청난 일일세!

호레이쇼 : 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햄릿 : 아니, 안 되네. 말이 새나갈 테니까.

호레이쇼 : 제가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마셀러스 : 저도 물론 입을 다물 겁니다.

햄릿 :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인 것 같은가? 도대체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가 있을까? 그래 말을 퍼뜨리지는 않겠지?

두 사람 : 정말 맹세하겠습니다.

햄릿 : 덴마크의 악당들은 그냥 평범한 악당이 아닐세!

호레이쇼 : 겨우 그런 말을 하려고 유령이 일부러 무덤에서 나왔단 말입니까?

햄릿 : 글쎄, 그렇다네. 그러니까 이 이상 더 주절주절 말할 필요 없이 이제 서로 악수나 하고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으이. 자네들도 봐야 할 일, 해야 할 일들이 있을 테지. 누구나 나름대로 각자 볼 일과, 할 일이 있는 법이니 말일세. 이 시덥잖은 나도 역시 나대로 뭔가 일이... 자 이제 기도하러 가야 할 것 같네.

호레이쇼 : 아무리 말씀을 들어봐도 어딘지 허황한 것 같습니다.

햄릿 :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호레이쇼 : 기분이 나쁘다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햄릿 : (호레이쇼에게) 아냐, 좀 그럴 일이 있네. 정말일세. 사실 이건 정말 희한한 일일세. 아까 나온 그 유령 말일세, 나쁜 악귀는 아닌 모양이네. 그것만은 분명히 해 두지. 유령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그것만은 묻지 말아주게. (두 사람에게) 그런데 두 사람에게 좀 부탁이 있네. 친구로서, 그리고 학자와 군인으로서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나?

호레이쇼 : 무슨 부탁이신데요? 물론 기꺼이 들어드려야죠.

햄릿 : 오늘 밤 보고들은 이 사건을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게.

두 사람 : 절대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햄릿 : 지금 맹세해주게.

호레이쇼 : 맹세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셀러스 : 저도 맹세하겠습니다.

햄릿 : (칼을 빼들고) 이 칼에 대고 맹세하게.

마셀러스 : 이미 맹세를 했는데요.

햄릿 : 이 칼에 대고 다시 맹세해보게.

유령 : (지하에서) 맹세하라!

햄릿 : 허, 이 유령 좀 보라지! 말을 다 하네? 그래 거기 있어요? 자, 두 친구들... 땅 속에서 하는 소리 들었겠지? 어서 맹세를 하게나.

호레이쇼 : 맹세할 말을 불러 주십시오.

햄릿 : 오늘 밤 보고들은 이 사건을 절대로 퍼뜨리지 않는다고 이 칼에 대고 맹세를 하게. (두 사람이 칼자루에 손을 대고 맹세한다)

유령 : (지하에서) 맹세해라.

햄릿 : 허허, 이 귀신 좀 보게! 신출귀몰이란 말이 따로 없구먼! 그럼 이제 우리 자리를 옮기세. 둘 다 이리로 와서 내 칼자루에 손을 대게. 자네들이 들은 얘기를 절대 누설하지 않는다고 이 칼에 대고 맹세하게.

유령 : (지하에서) 그 칼에 대고 맹세해라.

햄릿 : 그래 잘한다, 두더지 영감! 그렇게 빠르게 땅 속을 뚫고 다니다니? 참 대단한 광부로구먼! 자, 한 번 더 이사를 가야겠구먼.

호레이쇼 : 거, 참 괴이한 일이로구나.

햄릿 : 그러니까, 이 귀신을 귀한 손님으로 취급해서 환영해주세. 이 사람아, 이 세상에는 우리의 철학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 허다하게 있다네. 그건 그렇고, 아까처럼 다시 한 번 맹세하게. 신의 보호를 받으려면 말일세. 글쎄 앞으로 필요하다면 내가 무척 망측스러운 행동을 할지도 모르네. 그럴 때 내 행동이 아무리 괴상망측하더라도 자네들은 뭔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척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일세. 이렇게 팔짱을 척 끼거나, 또는 이렇게 머리를 흔들어대면서 뭔가 까닭이 있다는 듯이 '우리도 조금은 알지'라거나 '물론 설명을 못할 것도 없지만'이랄지 '입밖에 내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야...'랄지 '정 그렇게 알고 싶다면...' 이런 식으로 어설픈 수작을 부리지 말라는 얘길세. 자 하나님의 보우하심을 두고 맹세를 하게!

유령 : (지하에서) 맹세해라!

햄릿 : 이제 걱정일랑 그만하고 진정하세요, 유령 영감님! (두 사람이 맹세한다) 그럼, 두 분 잘 부탁하네. 비록 무능력한 이 햄릿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장차 자네들의 그 소중한 우정에 보답할 수 있으리... 자, 이제 들어 가세나. 다시 한 번 신신당부하는 거지만, 항상 함구무언! 잊지 말게! (혼잣말처럼) 이 세상은 지금 나사가 풀려서 엉망진창이다. 이 무슨 더러운 운명이란 말이냐! 하필이면 내가 그걸 바로잡아야 할 운명을 지고 태어나다니! (두 사람에게) 자, 이제 들어가세나. (모두 성문으로 퇴장한다)

-몇 주일이 흘러간다.

2막 1장

 

- 추악한 늙은이

-폴로니어스 저택의 어느 방. 폴로니어스와 그 하인 레날도 등장.

 

폴로니어스 : 레날도, 너 이 돈을 가져다가 레어티즈에게 전해다오. 그리고 이 쪽지도 함께.

레날도 : 예, 영감 마님.

폴로니어스 : 레날도야, 가서 똑똑하게 처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레어티즈를 만나보기 전에 먼저 그 사람 요즘 지내는 사정을 먼저 조사해 보란 얘기다.

레날도 : 예, 마님. 저도 그렇잖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폴로니어스 : 음, 그래. 좋은 생각이야, 잘 생각한 거야. 우선 조사해둘 것은 지금 파리에 어떤 덴마크 사람들이 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인물들인지, 파리에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사귀고 있으며, 돈을 얼마나 어디다 쓰고 있는지 하는 것들이야. 먼저 간접적인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이 레어티즈를 안다고 하거든, 그때는 문제의 핵심을 직접 파고 들어가야 하겠지. 쓰잘 데 없는 질문을 피하고 말이다. 너도 슬쩍 그 아이를 아는 눈치를 보이는 게 좋겠지. 가령 '저도 그 분 아버지를 좀 알죠. 그분 친구들과도 친분이 있구요. 아니 그 분, 그러니까 그 분 본인과도 안면이 있구요...' 이런 식으로 하란 말이다. 어때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었겠지, 레날도?

레날도 : 알아들었다 뿐입니까, 영감님.

폴로니어스 : '그 분 본인과도 안면이 있구요, 하지만...' 이렇게 한 다음에는 또 이렇게 말을 이어가란 말이다. '뭐,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양반 본인은 사실 굉장한 바람둥이죠. 이러저러한 버릇으로 아주 유명하답니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그 행동에 대해서는 꾸며대란 말이다. 다만 그 애 체면을 지나치게 해칠 심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 점만은 절대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한다. 아, 그야 객지에서 홀아비 생활을 하는 젊은이에게 으레 따라 다니는 방탕이나 난잡한 행동 따위 실수쯤이야 상관없겠지...

레날도 : 이를테면 도박 같은 것 말씀이시죠, 영감 마님?

폴로니어스 : 그렇지! 또 술, 결투, 욕설, 싸움, 바람을 피우는 것... 이 정도 같으면 무방하겠지.

레날도 : 하지만 영감 마님... 바람을 피우는 것이야 좀 체면에 그렇잖습니까?

폴로니어스 : 아냐, 상관없어. 그거야 어떻게 말을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하지만 그 이상 심한 말을 덧붙여 지나치게 난봉꾼으로 알려지게 만들어선 안 된다. 그건 내 뜻이 아니야. 하여튼 그 애 험담을 하되 좀 교묘하게 할 필요가 있단 말이다. 집안 어른들의 눈에서 멀어져 혼자 지내는 청년이 왕성한 혈기 때문에 어쩌다가 버릇없이 구는 행동을 좀 했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젊을 때 하는 실수 이상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전달하란 얘기다.

레날도 : 하지만, 영감 마님 도대체...

폴로니어스 :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하느냐 그런 궁금증이겠지, 네가 묻고 싶은 건?

레날도 : 예,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폴로니어스 : 음, 내 본뜻은 이거야. 내 생각엔 무척 좋은 방안이라고 보는데... 내 아들을 좀 헐뜯어 보자는 거야. 그것도 어쩌다 잘못해 말이 튀어나온 것처럼 해서 말이지. 만약 네 얘기를 들은 그 상대방이 내 아들의 다른 나쁜 짓을 본 적이 있다면 아마 네 말에 맞장구를 치게 되겠지. 즉 '그렇지!'라거나, '노형도...'라거나 '당신 말을 듣고 보니...'하고 말이야. 물론 그 지방 말투나 상대방의 신분에 따라 어쨌든 표현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말이야.

레날도 : 예, 그럴 테지요.

폴로니어스 : 그렇게 되어서 그 상대방은 말이야... 에에, 그 사람은 말이지... 어, 그런데 내가 지금 어디까지 말했더라? 원, 내가 분명히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지?

레날도 : '맞장구를 치면서' '당신 말을 듣고 보니...' 한다는 데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폴로니어스 : '맞장구를 치면서'... 참, 그렇지! 상대방은 이렇게 말할 거란 말이야. '나도 그 사람을 좀 알죠. 어제도 만났죠. 그 전에도 만난 적이 있구요. 이러저러한 때에, 그런저런 사람과 함께 가더군요. 댁의 말마따나 노름을 하더군요. 술이 엉망으로 취했더군요. 테니스를 하다가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더군요' 이런 말을 해주겠지. 또는 '장사하는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랄지 이런 말도 분명히 들려주겠지. 뭐, 장사하는 집이야 사창가를 말하는 거다만, 아무튼 그딴 얘기를 네게 들려줄 거야. 이렇게 거짓 미끼를 던져서 진짜 대어를 낚는단 얘기란 말이다, 내 말인즉슨. 원래 이렇게 지혜와 선견지명을 갖춘 사람들은 으레 간접적인 사실과 옆으로 도는 방법으로 직접적인 진실을 알아내는 법이야. 이렇게 하면 내 아들이 파리에서 진짜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아낼 수 있으렷다. 어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 들었겠지, 응?

레날도 : 예, 소인 다 알아들었습니다.

폴로니어스 : 그럼, 무사히 잘 다녀 오거라.

레날도 : 예, 영감 마님. 평안히 계십시오.

폴로니어스 : 네 눈으로 직접 내 아들의 동향을 살피는 것도 잊지 말도록!

레날도 : 예, 염려 놓으십시오.

폴로니어스 : 실컷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방치한 채 살피란 말이야.

레날도 : 예, 잘 알겠습니다.

폴로니어스 : 그럼, 가봐라. (레날도는 퇴장하고, 오필리어가 허겁지겁 달려 들어온다) 얘, 오필리어야, 도대체 무슨 일이냐?

오필리어 : 아, 아버지. 큰일났어요. 무서워 죽을 지경이에요!

폴로니어스 :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느냐?

오필리어 : 글쎄, 제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햄릿 님이 느닷없이 제 앞에 나타나셨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라니! 윗도리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더러운 버선은 대님이 풀어져서 발목까지 흘러내렸지 뭐예요. 얼굴빛은 마치 그 셔츠 색깔마냥 창백하고, 두 무릎은 와들와들 떨고 있더군요. 그런 모습으로 제게 다가오는데...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에요! 마치 지옥에서 방금 풀려나와 내게 뭔가 무서운 얘기를 들려주려는 듯한 그런 모습이더군요.

폴로니어스 : 네게 대한 사랑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것 아닐까?

오필리어 : 모르겠어요. 아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폴로니어스 : 그래, 무슨 얘기를 하시더냐?

오필리어 : 글쎄, 제 손목을 잡더니 제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시는 거예요. 마치 제 초상화라도 그리려는 것처럼, 한 손으로는 이마를 가리시고, 한 팔쯤 뒤로 물러서서 말이에요. 한참 그러시더니 이번엔 제 팔을 흔들고, 자기 머리를 이렇게 세 번 끄덕끄덕하시더니 한숨을 푹 내쉬더군요. 어찌나 처량하고 한심하던지... 그 분의 온몸이 부숴지고, 숨이 끊기는 것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어요. 그러고 나서야 제 손목을 놓으시더군요. 그리고 저를 어깨 너머로 연방 보시면서 문 쪽으로 걸어 나가셨어요. 글쎄 눈으로 앞을 보지 않아도 앞이 잘 보인다는 듯, 끝까지 제 얼굴을 뚫어지게 보시면서 눈을 떼지 않으시더군요.

폴로니어스 : 자, 이제 나랑 함께 가자. 국왕 폐하께 이 사실을 아뢰어야겠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상사병의 증상 아니겠니? 이 증상이 심해지면 스스로 몸을 망치고 결국에 가서는 완전히 제 정신을 잃고 무슨 엄청난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단 말이다. 원래 인간의 심성을 못쓰게 만드는 온갖 열정이 다 그렇지만, 이 사랑이야말로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심한 거니까. 아무튼 가엾기 짝이 없도다. 그런데 너 요새 그분에게 너무 매몰차게 대한 것 아니냐?

오필리어 : 아뇨, 그런 적 없어요. 다만 아버님 분부대로 편지를 돌려드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라고 거절의 뜻을 전했을 뿐인 걸요.

폴로니어스 : 어쩐지... 과연 그랬구나. 틀림없이 그것 때문에 그렇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거겠지. 참, 안됐구나. 내가 좀더 자세히 주의해서 볼 것을 그랬다. 글쎄 그 분이 일시적인 열정으로 네 일신을 망치려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이런 결과가 되고 보니 내가 너무 의심만 앞세웠던 것 아닌지 걱정이구나. 참, 우리 늙은이들은 원래 이렇게 지나치게 걱정이 많아서 탈이란 말이야. 그러고 보면 요새 젊은이들이 너무 지각이 없다고 탓할 것만도 아니야. 자, 국왕 폐하께 어서 가자꾸나.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알릴 수밖에. 사실대로 아뢰면 진노하실지도 모르지만, 이 사실을 감췄다간 오히려 나중에 더 큰 화가 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자, 서두르자.

2막 2장

 

- 햄릿이 미쳤다고?

-성 안 알현실. 정면 입구 뒤쪽에 복도가 있고 입구 양쪽에는 휘장이 내려져 있다. 그 안쪽에 문이 있다. 나팔 소리가 울리고 왕과 왕비가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등 신하들을 거느리고 등장한다.

 

왕 :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오래 전부터 너희들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또한 이번에 너희들이 수고해야 할 일이 있어 이렇게 부른 것이다. 너희들도 어느 정도 얘기는 들었겠지. 글쎄 왕자가 완전히 사람이 바뀌고 말았다. 겉모습이나 정신 모두 -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된 것인지... 그렇게까지 정신이 이상해진 것은 아마 선친을 여읜 때문이겠지. 나로서는 다른 이유는 짐작조차 할 수 없구나. 그래서 너희들에게 좀 부탁이 있다. 너희들은 어려서부터 거의 왕자와 함께 자랐으니 젊은 왕자의 기질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잠깐 이 궁궐에 머물면서 왕자와 함께 동무를 해다오. 즐거운 놀이를 권하기도 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내게도 그 결과를 알려다오. 글쎄, 어쩌면 전혀 우리가 모르는 다른 고민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 원인을 알아내면 치료할 방도도 생기지 않겠느냐.

왕비 : 햄릿은 줄곧 두 사람 얘기만 하고 있다네. 두 사람처럼 햄릿이 간절히 그리워하는 친구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괜찮다면 잠시 이곳에서 지내면서 힘이 되어 주게나. 그럼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를 거야.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 준 데 대해서도 국왕께서 잊지 않고 마땅한 보상이 있을 터이니...

로젠크랜스 : 국왕 폐하께오서 크나크신 권한으로 마음에 두신 바를 명령하시는 것이 마땅하온데, 이렇게 부탁이시라니 황송하옵기 그지없사옵니다.

길덴스턴 : 소신들은 물론 분부하신 그대로 분골쇄신 충성을 다할 것을 아룁니다.

왕 : 정말, 고마운 얘기다.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정말 고맙다.

왕비 : 고맙네,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그러면 두 사람 모두 너무나 변해버린 햄릿을 좀 찾아가 주게. 누구 이 두 사람을 햄릿 왕자 계신 곳으로 모시도록 하라.

길덴스턴 : 저희들이 머물러 충성하는 것이 햄릿 님께 위로와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왕비 : 나도 그렇게 빌겠네!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절을 하고 퇴장)

-폴로니어스 등장, 왕에게 얘기를 꺼낸다.

폴로니어스 : 사신 일행이 노르웨이로부터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온 것으로 아뢰오.

왕 : 아, 경은 언제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이구려. 그러나 과연 그러하올지? 그거야 소신의 당연한 의무일 뿐입니다. 평상시에도 하나님이나 크나큰 은혜를 입은 왕실에 전심전력 충성을 다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소신이 대충 새로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혹시 저의 짐작이 틀렸다면 이것은 소신의 머리가 이제 늙어서 전처럼 국가의 방침을 제대로 냄새를 맡지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드디어 오늘 햄릿 님의 발작의 진짜 원인을 알아낸 것 같사옵니다.

왕 : 아, 그래? 어서 말해 보시오.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소.

폴로니어스 : 먼저 사신들의 배알을 허락하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소신의 정보는 그저 정식 식사 뒤의 입가심 정도로 들으심이 마땅할 터입니다.

왕 : 그럼 경이 친히 가서 사신들을 맞아 들이시오. (폴로니어스 퇴장) 여보 거트루드, 재상의 말이 햄릿이 실성한 진짜 원인을 알아냈다는구려.

왕비 : 알아냈다 하지만, 결국 선친의 승하와 우리의 갑작스러운 결혼... 그것 외에 다른 무슨 원인이 있겠어요?

왕 : 어쨌든 일단 들어봅시다 그려. (폴로니어스가 볼티먼드와 코닐리어스를 데리고 등장) 경들의 귀국을 환영하오. 그래 볼티먼드, 우방 노르웨이 왕의 회답은 받아왔소?

볼티먼드 : (두 사람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전하의 친서에 대하여 지극히 정중한 답변을 보냈습니다. 소신들의 첫째 제안에 대해 즉시 신하를 파견하여 조카 포틴브라스의 군사 모집을 중단시켰습니다. 원래 그 군사 모집에 대해서는 폴란드에 대한 원정군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사해본 결과 사실은 전하에 대한 음모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노르웨이 국왕께서는 자신이 노쇠하여 병상에 누워 기력이 없으신 것을 기화로 이렇게 감쪽같이 속았다고 하여 원통하고 분하게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중지 명령을 내리신 것에 대하여 포틴브라스는 즉각 복종, 군사 모집을 중지했습니다. 그리고 국왕으로부터 힐책을 당하고 결국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덴마크 왕가에 대해서 무력 행사를 시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숙부이신 국왕의 어전에서 맹세했습니다. 결국 늙으신 국왕은 극히 만족하여 연금 삼천 크라운에 해당하는 토지를 포틴브라스에게 봉하고, 이미 모집한 군사들은 폴란드 원정에 써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습니다. 이것과 함께 노르웨이 국왕께서는 한 가지 청탁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국서에 씌어 있습니다만(서류를 왕에게 바친다), 특별히 지장이 없다면 앞서 말한 군사들의 덴마크 영토 통과를 승인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토를 통과하는 데 있어서 이쪽의 치안과 그쪽의 행동 규율, 기타 조건에 대해서는 이 국서에 씌어 있습니다.

왕 : (서류를 받으면서) 참, 잘 되었소. 국서는 차후 적당한 기회에 면밀히 검토할 터. 신중하게 고려한 뒤에 회답을 하겠소. 경들의 뛰어난 활약을 치하하는 바이오. 이제 그만 물러가서 여독을 풀도록 하시오. 오늘 저녁에는 축하 잔치를 베풀어야 하겠소. 경들의 귀국을 진심으로 환영하오! (볼티먼드와 코닐리어스, 절을 하고 퇴장)

폴로니어스 : 이번 일은 정말 원만하게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국왕 폐하, 그리고 중전 마마, 무릇 국왕의 주권은 모름지기 어떤 것인지, 신하의 본분은 무엇인지, 어째서 밤은 밤이고 낮은 낮이어야 하는 것인지... 시간은 왜 있는 것인지 이따위 것을 따지는 것은 공연히 밤과 낮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무릇 간결한 것이 지혜의 본질이요, 장황함은 그 손발과 겉포장에 불과할 터... 그래서 소신도 간결하게 아뢰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햄릿 왕자께서는 지금 실성하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실성의 진짜 원인을 규명하고자 할진대, 결국 정말 미쳤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얘기 외에는 더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왕비 : 좀, 핵심만 짚어서 얘기하시오, 수다는 그만 떨고.

 

- 시험

 

폴로니어스 : 왕비 마마, 어찌 감히 어전에서 수다를 떨겠습니까? 왕자님의 실성!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란 것이 유감이며, 또 유감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말재주는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쓸데없는 수다를 피울 생각은 전혀 없사옵니다. 그런데 왕자님의 실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남은 문제는 이러한 결과의 원인, 아니 결함의 원인을 찾는 일이라 사료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함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남은 문제지요, 그런데 남은 문제란 바로 이런 것이옵니다. 깊이 통찰하소서. (윗도리에서 몇 장의 종이쪽지를 꺼낸다) 소신에겐 딸이 하나 있사온대 출가 전까지는 신의 딸인 것이 분명하지요... 얘의 딸애의 효심이 지극하와, 보시옵소서, 이런 걸 아비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들으시고 통찰하시옵소서. (읽는다)

천사와 같은 내 영혼의 우상, 더없이 미화(美化)된 오필리어여...

어설픈 표현이로군. 유치하기 짝이 없어요. '미화된'이라니... 졸렬한 취향이군요. 하여튼 그 다음을 들어 보시옵소서. 즉 이렇답니다.(읽는다)

당신의 미묘하고 순결한 가슴 속에 이 사연을 등등...

왕비 : 그런데, 이 편지를 햄릿이 오필리어에게 보냈다구요?

폴로니어스 : 왕비 마마, 잠시만 기다리시고 다음 글을 들어주십시오. 몽땅 다 읽을 테니 말입니다.(읽는다)

 

밤 하늘 별들이 타오르는 것

저 하늘에 움직이는 태양

설혹 진리를 거짓이라 의심할지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은 의심 마오.

 

오 사랑하는 오필리어여, 나는 이러한 운율에 서툴다오.

그래서 이 뜨거운 사모의 정을 시로 읊을 재간은 없소.

하지만 오직 그대를 사랑하는 것,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

그 마음만은 굳게 믿어 주오. 그럼 이만...

아리따운 여인이여, 이 생명 죽을 때까지 목숨처럼 사랑하는 그대여, 이 육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그대의 종이라오... 햄릿으로부터

 

이 편지를 딸년은 아비에게 순순히 내어 놨습니다. 뿐만 아니라 햄릿 왕자님께서 어느 때,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다정한 얘기를 속삭였는지도 죄다 이 아비에게 실토했사옵니다.

왕 : 그래, 오필리어는 그래서 어떻게 햄릿의 사랑을 대했던 거요?

폴로니어스: 폐하, 신을 어떻게 생각하시옵니까?

왕 : 물론 그대는 명예를 존중하는 결백한 충신이오.

폴로니어스: 신 또한 진실로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하오나 폐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소신이 이처럼 열렬한 사랑의 날개가 펄럭이는 걸 보았을 때... 실은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지만... 딸애가 일러주기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폐하, 그리고 왕비 마마, 만약 소신이 그 사랑을 강 건너 불 보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면 소신을 어떻게 생각하셨겠습니까? 마치 서랍에 넣어두는 물건, 수첩에 대충 적어놓듯이 그렇게 모르는 척 하거나, 벙어리나 귀머거리라도 된 것처럼 마음의 눈을 감아 버리는 행동 말입니다. 소신은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소신은 곧바로 손을 써 딸년을 매섭게 타일렀습니다... "햄릿 전하는 왕자의 신분이요, 너에겐 하늘의 별과도 같으신 분... 이 사랑은 허락할 수 없다." 그러고 나서는 딸년에게 집에 틀어박혀 앞으로는 햄릿 왕자님이 다니시는 곳을 피할 것, 심부름 온 사람도 들이지 말고 선물도 깨끗이 거절하라고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딸년은 제 훈계를 받아들여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하오나 이렇게 거절을 당하신 왕자님께선 간단히 사뢰자면, 비탄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시고 밤에는 잠도 못 주무시고, 육신이 허약해지시자 이젠 허탈증에 빠지시고, 이렇게 쇠잔해진 끝에 결국은 실성한 지경에 이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이제 다 같이 슬퍼하는 것처럼 저렇게 실성을 하시게 된 것이옵니다.

왕 : 왕비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왕비 : 글쎄, 아마도 그럴 법한 일인 것 같습니다.

폴로니어스 : 지금가지 소신이 이건 이렇습니다... 이렇게 단정을 지었을 때 사실이 그렇지 않았던 일이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진정 알고 싶습니다.

왕 : 아마 그런 일은 아직 없었던 것 같구려.

폴로니어스 : 소신이 말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면(자신의 머리와 어깨를 가리키며) 이것과 이것을 떼어 버리시옵소서. 그저 실마리만 잡히면 이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알아내겠습니다. 그것이 설령 지구 한가운데 숨겨 있다 해도 말입니다.

 

-이때 햄릿이 헙수룩한 옷차림으로 책을 읽으면서 뒤쪽 문에서 복도로 들어선다. 방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오자 잠깐 멈춰 섰다가 커튼 뒤로 몸을 숨긴다.

 

왕 :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방법이 없겠소?

폴로니어스 : 아시다시피 햄릿 왕자 님은 이따금 복도를 몇 시간씩 서성대곤 합니다.

왕비 : 참, 그렇지.

폴로니어스 : 그런 기회를 타서 신의 딸년을 거기다 내어놓겠습니다. 그런 다음 폐하와 소신이 커튼 뒤에 숨어서 두 사람이 만나는 모양을 지켜보는 겁니다. 만약 햄릿 왕자님이 소신의 딸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그것이 왕자님의 실성의 원인이 아니라면 소신은 국정 보필의 대임을 벗고, 시골에 가서 소나 말을 상대로 하여 농사나 지을 각오이옵니다.

왕 : 어쨌든 한 번 시험해 봅시다그려.

 

-햄릿 책을 읽으면서 걸어나온다.

 

왕비 : 아, 저걸 좀 보세요. 저 가엾은 왕자가 슬픈 표정으로 뭘 읽으며 오는군요.

폴로니어스 : 황공하오나 두 분은 어서 저리로 피하시기를. 소신은 지금 당장 왕자님을 시험해 보겠습니다.(왕과 왕비는 허둥지둥 자리를 뜬다) 햄릿 전하, 문안 드리옵니다.

햄릿 : 어, 안녕하시오?

폴로니어스 : 전하, 소신을 알아보시겠습니까?

햄릿 : 알다마다... 모를 리가 있나. 흥, 포주 양반 아닌가?

폴로니어스 : 원 당치도 않은 말씀을...

햄릿 : 아, 그래? 아니라면 포주만큼이라도 정직한 인간이 되어 보게나.

폴로니어스 : 전하, 정직한 인간이라뇨?

햄릿 : 암, 그렇다마다... 하긴 요즘 세상에 정직한 사람이 어디 만 명 가운데 하나라도 있을까?

폴로니어스 : 그러구 보니 맞는 말씀이십니다.

햄릿 : 햇볕이 따스하게 비쳐 개의 시체에다 구더기를 끓게 한다면... 이건 햇빛이 썩은 살에도 키스를 하는 셈이지 뭐야... 그런데 당신 딸이 있었던가?

폴로니어스 : 예 있사옵니다, 전하.

햄릿 : 햇볕을 너무 쬐지 않도록 하시오. 글쎄 지혜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배라도 불러오면 그건 큰일이니까 말이야. 그러니 조심해야 하네, 친구. (다시 책을 읽는다)

폴로니어스 : (방백) 도대체 무슨 말이람? 아무튼 여전히 내 딸 타령이로군. 그렇지만, 처음엔 날 전혀 몰라보고 포주라 하지 않았나? 아주 완전히 맛이 갔구먼... 그야 나도 젊을 때는 사랑에 빠져 상사병을 앓은 적도 있었지. 거의 저만큼 말이지... 그나저나 한 번 더 능청을 떨어볼까... 햄릿 전하, 지금 뭘 읽고 계십니까?

햄릿 : 말, 말, 말들일세.

폴로니어스 : 그게 무슨 내용이냔 말씀입니다.

햄릿 : 뭐, 누구와 누구의 내용이냐고?

폴로니어스 : 그게 아니고, 지금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의 내용 말입니다.

햄릿 : (폴로니어스에게 대들 듯한 자세. 폴로니어스는 엉거주춤 물러선다) 이건 욕을 하는 거야. 입이 걸은 친구가 여기에다 이렇게 썼네그려. 늙은이들은 수염이 잿빛이고, 얼굴은 주름 투성이인데다, 눈에는 누리끼리한 송진 같은 눈꼽이 끼고... 노망이 들어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무릎을 후들후들 떤다는 거야. 말인즉슨 다 지당하신 말씀이렷다. 하지만 이렇게 써놓으면 너무 점잖지 못하군 그래. 당신만 해도 나와 같은 나이가 될 것 아닌가, 만약 바닷가재처럼 뒤로 기어갈 수 있다면 말이야. (다시 책을 읽는다)

폴로니어스 : (방백) 확실히 돌기는 돌았는데... 말에는 그래도 조리가 있군. (큰 소리로) 전하, 바깥 공기는 해로우니 안으로 드시지요.

햄릿 : 내 무덤 안으로?

폴로니어스 : (방백)하긴 이 세상의 공기를 완전히 피하려면 그곳밖엔 없군. 뭔가 말 속에 뼈가 들어있어! 가끔 가다 이런 미치광이가 하는 말이 기가 막힐 정도로 의미심장할 경우가 있단 말씀이야!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도 어림없는 그런 기막한 얘기란 거지! 자, 그럼 이쯤해 두고, 내 딸년과 만나게 할 방법이나 궁리해 보자. 전하, 죄송하오나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햄릿 : 물러간다는데야 내가 뭐라겠어! 내가 허락할 것이라곤 그것 뿐이구먼. 이 목숨을 빼놓으면 말이야... 이 목숨만 빼고, 이 목숨 말이야!

폴로니어스 : 그럼 물러갑니다, 전하. (큰절을 한다)

햄릿 : 에이, 흉물스러운 늙은 너구리 같으니! (다시 책을 들여다본다)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등장.

- 옛 친구들의 방문

 

폴로니어스 : 햄릿 왕자님을 찾고 있나? 지금 저기 계신다네.

로젠크랜스 : (폴로니어스에게)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폴로니어스 퇴장)

길덴스턴 : 햄릿님, 문안을 드립니다.

로젠크랜스 : 정말 뵌 지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전하!

햄릿 : (쳐다본다) 이거, 정말 반가운 친구들이구먼!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나, 길덴스턴. (책을 덮는다) 아, 로젠크랜스 군도 왔구먼! 잘들 왔어, 두 사람 다 별고 없었겠지?

로젠크랜스 :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길덴스턴 : 지나치게 잘 지내는 것도 탈이라면 탈이겠지요. 그래서 저희들은 행운의 여신의 모자 깃하고는 꽤나 인연이 멀지요.

햄릿 : 그렇다구 여신의 발바닥 아래도 아니란 얘기렸다?

로젠크랜스 : 네, 그렇습니다.

햄릿 : 그렇다면 그 여신의 허리 쯤인가, 아니면 그 소중한 곳의 가운데 쯤인가?

길덴스턴 : 실은 여신의 은밀한 가운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햄릿 : 뭐? 그 여신의 행운의 골짜기라구? 하긴 그럴 거야. 그 여신은 진실로 음탕하니까... 그래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로젠크랜스 : 별다른 건 없습니다, 전하. 세상이 조금 정직해졌다고나 할까요?

햄릿 : 그럼 이제 말세가 가까워졌다는 징조로군. 그러나 자네 얘기는 믿기가 어렵군. 어디 한번 따져 보세나. 그래 도대체 자네들은 무슨 연유로 그 행운의 여신의 품에서 떨려나 이런 곳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단 말인가?

길덴스턴 : 감옥살이라뇨?

햄릿 : 덴마크는 감옥이야.

로젠크랜스 : 그렇다면 이 세계가 모두 감옥이겠지요.

햄릿 : 물론 훌륭한 감옥이지. 그 안에 독방도, 격리실도, 지하 감방도 다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덴마크만큼 지독한 감옥은 어디에도 없을 걸세.

로젠크랜스 :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하.

햄릿 : 적어도 자네들에겐 그렇지 않다 이 말이렸다? 하긴 원래 좋고 나쁜 게 따로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생각하기 나름이지. 하지만 이 햄릿에게는 덴마크가 감옥이란 말일세.

로젠크랜스 : 그거야 전하께서 원대한 꿈을 품고 계신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빛나는 꿈을 품으신 분께는 확실히 이 나라는 너무 좁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햄릿 :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나는 설혹 호두껍질 속에 갇혀 있어도 스스로를 무한한 우주의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일세! 내가 이렇게 고약한 꿈으로 괴롭지만 않다면 말이야.

길덴스턴 : 바로 그 꿈이 전하의 대망일 겁니다. 그 대망의 실체는 꿈의 그림자이니까요.

햄릿 : 아니, 꿈이야말로 바로 그림자 그 자체라네.

로젠크랜스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대망이라는 건 사실 공기처럼 실체가 없는 것! 결국은 그림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햄릿 : 그렇다면 거지야말로 실체요, 제왕들이랑 거들먹거리는 영웅들이야말로 거지의 그림자에 불과한 셈이지... 그건 그렇고 우리 이제 어전으로 가세. 사실 이 문제는 내 머리로 따질 수가 없으니까 말일세.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 저희들이 따라서 모시겠습니다.

햄릿 : 아냐, 천만에! 자네들을 하인 취급을 할 수야 없지. 솔직히 말해서 난 요즘 시중을 든답시고 따라 다니는 하인들 등쌀이 지긋지긋하다네... 그건 그렇고, 옛정을 생각해서 자네들을 믿고 묻네만, 속 시원히 대답해 주게. 도대체 엘시노에 왜 돌아왔나?

로젠크랜스 : 햄릿님을 뵈오러 온 것입니다. 다른 용건은 없습니다.

햄릿 : 난 지금 이렇게 거지꼴이라, 감사할 마음조차 바닥이 났다네. 하지만 아무튼 고맙네... 내가 고맙다고 해도 자네들에겐 반푼 어치 값어치도 없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자네들 누가 불러서 이렇게 온 것 아닌가? 자진해서 이렇게 돌아온 것인가? 그저 자유스러운 방문일까? 자, 자, 솔직하게 말해보게. 자아 탁 털어놓고 말해 보라구.

길덴스턴 : 글쎄, 뭐라구 아뢰어야 좋을지?

햄릿 : 아, 왜 요점만 빼놓고 얘기하면 될 걸... 굳이 이리저리 둘러댈 필요 없네. 보나마나 부름을 받고 온 것이겠지, 얼굴에 다 그렇게 쓰여 있는 걸. 자네들은 둘 다 그런 걸 감추고 딴전을 피울 만큼 교활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난 다 알고 있다네, 폐하와 왕비 전하의 부름을 받았으렸다?

로젠크랜스 : 불러서 오다니요? 도대체 뭣 때문에요?

 

- 배우들이 온다고?

 

햄릿 : 그걸 내가 묻는 게 아닌가. 제발 말해 주게, 부탁일세. 우린 친구가 아닌가. 함께 사이좋게 자라온 젊은이 아닌가, 변치 않은 우정을 맹세한 사이가 아닌가. 구변이 좋은 자라면 무슨 말이라도 좀더 할 수 있으련만. 숨김없이 터놓고 내게 말해 주게, 불러서 왔는지 아닌지 말야.

로젠크랜스 : (길든 스턴에게 방백) 어떻게 하면 좋을까?

햄릿 : (방백) 누가 속을 것 같나? 어림없지!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 걸. (큰 소리로)... 아니 우린 친구지간인데 왜 이리 쉬쉬하는 건가?

길덴스턴 : 전하, 실은 저희는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햄릿 : 그 이유는 내가 설명해주지. 이렇게 내가 앞질러 말해버리면 자네들이 국왕 폐하나 왕비 전하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누명을 쓰지 않을 테니 말일세. 난 요즘 무슨 까닭인지 나도 모르게 그만 우울증에 걸렸다네. 만사에 흥미를 잃고, 늘 해오던 운동에서도 손을 떼고 말았어. 이렇게 기분이 울적하다 보니 아름답고 웅장한 이 대지도 황량한 곶(岬으)처럼만 느껴져. 이 멋진 공기, 웅장한 하늘... 저것 보게 우리 머리 위에 펼쳐진 저 찬란한 궁창, 금빛으로 빛나는 별들이 아로새겨진 장엄한 저 하늘...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다만 음산하고 윰흉한 독기가 서린 골방 같이만 보인단 말일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인간들... 원래 인간은 참으로 이 우주의 기묘한 걸작 아니겠는가. 그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며, 그 능력은 또 얼마나 뛰어난가. 그 단정한 생김새와 뛰어난 움직임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지 않은가. 그 지혜는 천사와 같이 아름답고 흡사 신과도 닮은 꼴이야. 즉 물질 세계의 정수(精髓)요, 이 세상의 꽃이며, 만물의 영장... 하지만 지금 내겐 이 인간이 한갓 먼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네. 난 이제 인간의 꼴이 역겹다네. 아냐, 여자도 마찬가지야. 자네들 웃는 눈치를 보니 자네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군.

로젠크랜스 : 전하, 절대 그런 생각은 아닙니다.

햄릿 : 그럼 왜 그렇게 웃었나, 내가 '인간의 꼴이 역겹다'고 말할 때 말이야.

로젠크랜스 : 전하, 그렇게 인간이 역겨우시다면 배우들이 전하에게 어떤 대접을 받을지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웃었습니다. 실은 여기로 오는 길에 저희는 배우 일행을 만났습니다. 저희들이 그들을 앞질러 오긴 했습니다만, 그 배우들은 햄릿 왕자님께 연극을 보여 드릴 계획으로 이리 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햄릿 : 물론 대환영이지. 특히 국왕의 역을 하는 배우라면 더욱 환영일세. 용감한 기사 역에게는 칼과 방패를 실컷 휘두르게 하겠네. 연인 역의 탄식에 대해서도 상을 줘야지. 그리고 풍자 역을 하는 친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방해하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하도록 하겠어. 어릿광대는 웃기 좋아하는 사람들 허파를 터뜨리게 할 거고... 귀부인 역은 자유롭게 마음 속 생각을 뱉어놓게 해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연극 대사가 이어지지 못하고 흐름이 끊길 테니까... 그런데, 도대체 그 배우들은 어떤 친구들인가?

로젠크랜스 : 전에 전하께서 좋아하시던 그 도시의 비극단입니다.

햄릿 :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지방 순회 공연을 나왔을까? 도시에 있는 편이 명성이나 수입 어느 점에서나 훨씬 더 나을 텐데.

로젠크랜스 : 최근의 어떤 사건 때문에 요즘 도시에서는 연극을 금지한다는 새로운 규정이 생겼나 봅니다.

햄릿 : 지금도 옛날처럼 도시에서 인기가 여전한가? 그 때 보니 사람들이 법석을 피우면서 따라다니던데...

로젠크랜스 : 아뇨, 요즘은 전혀 예전 같지 않습니다.

햄릿 : 왜 그럴까? 벌써 재능에 녹이 슬었단 말인가?

로젠크랜스 :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전처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요즘 들어서 소년 배우들이 새로 나타나서 시비조로 고함을 꽥꽥 지르는 바람에 글쎄 굉장한 박수갈채를 받는다지 뭡니까. 요즘은 그런 게 유행이고, 예전의 연극에 대해서는 통속극이라고 악평을 하고 배척을 당합니다. 그래서 점잖게 칼을 찬 신사들도 비평가들의 악담이 두려워 극장엔 얼씬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햄릿 : 뭐라고? 소년 배우들? 그래, 그런 극단은 누가 운영하는데? 누가 재정 후원을 하지? 그 소년들은 변성기가 오기 전까지만 배우 노릇을 한단 말인가? 그 애들도 자라면 보통 배우가 될 수밖에 없을 텐데... 먹고 살 다른 직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말일세. 그렇다면 지금 그 애들은 자신의 장래를 자기 입으로 저주하는 셈 아닐까? 그렇게 되면 장차 자기들 장래를 망쳐 놨다고 극작가들을 원망할 것 아닌가?

로젠크랜스 :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양쪽은 모두 서로를 헐뜯고 야단입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은 좋아라고 이 싸움을 부채질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소년 극단의 극작가와 대중극단 배우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는 장면을 넣지 않으면 그 연극은 무대에 올리지도 못할 정도였답니다.

햄릿 :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담?

길덴스턴 : 하지만 사실입니다. 서로 엄청나게 험담들을 했다고 하더군요.

햄릿 : 그래서 결국 소년 극단들이 이겼다는 얘긴가?

로젠크랜스 : 예, 결국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 통속극 극장은 파리를 날릴 지경입니다.

햄릿 : 하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지, 내 숙부가 지금 덴마크 국왕 아닌가? 예전에 아버님이 시퍼렇게 생존하실 땐 숙부를 멸시하던 사람들까지도 이제 와서는 숙부의 조그마한 초상화 그림 한 장에 이십, 사십, 오십, 백 더컷을 내며 사겠다고 법석을 떠는 지경이니 말일세. 제기랄, 한심한 꼴일세. 이런 꼬락서니를 소위 철학자라는 사람들일지라도 설명할 재간이 있을까?

 

-안에서 요란한 나팔 소리가 들린다.

 

길덴스턴 : 이제 배우들이 도착했나 봅니다.

햄릿 : 어쨌든 자네들, 이 엘시노어에 잘 와 주었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자 손을 이리 주게... 환영에는 격식에 맞는 인사가 있어야지. 그러니 자 이렇게 악수를 하세. (두 사람과 악수한다) 내가 자네들보다 배우들을 더 환영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게. 그래서 미리 말해두지만...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친절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아무튼 자네들 정말 잘 왔네... 내 숙부 겸 아버지와 숙모 겸 어머니는 지금 속고 계시다네.

길덴스턴 : 속다뇨, 뭣을 말입니까, 전하?

햄릿 : 글쎄, 내 머리가 정신이 도는 건 북북서풍이 불 때뿐이라네. 남풍으로 바람이 바뀌면 나도 멀쩡해지지. 적어도 매와 왜가리쯤은 구별할 수 있지...

 

-폴로니어스 등장.

- 프리엄 왕의 최후 장면

 

폴로니어스 : 아 두 분, 아주 잘 오셨소!

햄릿 : (폴로니어스가 오는 것을 보고 두 사람에게) 여보게 길덴스턴, 그리고 자네도 이리 귀 좀 빌리세나. 잘 들어 두게... 저기 있는 저 늙은 갓난아기는 아마 아직도 사타구니에 기저귀를 차고 있을 걸세.

로젠크랜스 : 아마 두 번째로 기저귀를 찬 것이겠죠. 늙으면 다시 어린애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햄릿 : 어디 한 번 맞춰 볼까. 아마 틀림없이 배우들이 왔다고 얘기할 걸세. 두고 보게나. (큰소리로) 자네 말이 맞았어. 월요일 아침이었지, 틀림없다네.

폴로니어스 : 왕자님, 알려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햄릿 : 음 그래, 왕자님, 알려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거 옛날 로마에 로스키우스라는 명배우가 있었는데...

폴로니어스 : 배우들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햄릿 : 어떤가, 흥!

폴로니어스 : 이 말씀을 드리고자...

햄릿 : 그래, '그때 배우들이 각기 당나귀를 타고 왔도다' 이 말이렸다.

폴로니어스 : 지금 온 것은 천하의 명배우들입니다. 비극이나 희극, 역사극, 목가극은 물론이고 목가적 희극, 역사적 목가극, 비극적 역사극, 비극적 희극적 역사 극적 목가극, 기타 장소의 일치를 지키는 고전극, 그렇지 않은 낭만시극이든 모두 다 척척입죠. 세네카의 비극을 한답시고 너무 엄숙해지지도 않고 플라우투스의 희극이라 해서 경박하지도 않으며 대본 그대로 연기하는 것이나, 즉흥적으로 하는 연기 어느 것에나 만능인 천하의 명배우들이올시다.

햄릿 : 아, 이스라엘의 명 사사였던 입다*여... 딸을 제물로 바친 그대는 얼마나 훌륭한 보물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

 

(*역주 : 구약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 '입다'를 말한다. 입다는 이스라엘 주위 이방족인 암몬 족속과 싸울 때 여호와께 '적을 무찌르게 해주시면 돌아올 때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하는 것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그를 맞이한 것은 사랑하는 무남독녀였다. 입다는 여호와께 한 서원 때문에 그 딸을 제물로 바친다. 햄릿은 여기서 자신의 딸인 오필리어를 정략의 제물로 이용하려는 폴로니어스를 비꼬기 위해 입다의 얘기를 인용하고 있다.)

 

폴로니어스 : 보물을 갖고 있다뇨, 전하? 어떤 보물 말씀이십니까?

햄릿 : 그야 이런 노래도 있지 않소.

아리따운 딸 내 귀여운 외동딸

이 아비는 애지중지 사랑하였도다.

폴로니어스 : (방백) 여전히 내 딸 얘기로군.

햄릿 : 입다 영감, 왜 내 말이 틀렸소?

폴로니어스 : 신이 입다라뇨, 전하? 하기야 신에게도 애지중지 사랑하는 딸이 있긴 합니다만...

햄릿 : 틀렸어, 이 노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오.

폴로니어스 : 그럼 어떤 내용이옵니까, 전하?

햄릿 : 정녕 모르겠소?

'하나님만이 아시는 연분으로'

그리고 그 다음은 이렇게 나간다오.

'처녀들에게 흔히 생기는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도다...'

이 찬송가의 일 절을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거요. 그건 그렇고, 저기 한가한 패거리들이 오는구려.

 

-몇 명의 배우들 등장.

 

햄릿 : 다들 잘 왔네. 모두들 반가우이... 다들 아주 좋아 보이는군... 친구들... 오 옛 친구들! 얼굴에 턱수염이 더부룩하군. 전번엔 수염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 그 수염으로 나를 위압하려는 배짱으로 수염을 기르고 덴마크에 온 건가?... 이건 또 누구야? 젊은 아가씨 역할 아닌가! 지난번 봤을 때보다 무대화 뒤축만큼 머리가 하늘에 가까워졌구먼 그래. 그래 널 위해 기도를 드리마... 쓸모 없게 된 금화처럼 변성기 때 목소리가 고음을 못내는 일이 없도록 말이야... 그나저나 여러분들 참 반갑소. 이 지방 사람들은 프랑스의 매 사냥꾼들처럼 배우만 봤다 하면 무작정 달려든단 말일세. 그럼 어디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하나 해볼까? 대사 한 꼭지만 어디 읊어보게나. (배우에게) 자 장기를 좀 보여줘. 좀 비장한 것으로 말이야!

배우1 : 어떤 장면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전하?

햄릿 : 언젠가 한 번 내게 들려준 일이 있지 않은가... 아마 무대엔 올린 적이 없었을 텐데... 있었다 해도 한 번뿐이었을 거야. 내 기억으론 그 연극은 일반 관객에는 인기가 없었지. 일반 대중에게는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꼴이었단 말이지. 그러나 내 보기엔 그건 무척 훌륭한 대본이었어... 나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있어 나보다 훨씬 권위 있는 분들도 다 그렇게 얘길 했었지... 장면 구성이 잘됐고, 문구도 적절하고 교묘했어... 어떤 비평가의 말처럼 내용을 돋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대사에 양념을 치지도 않았고, 작가가 허세를 부리려고 단어로 유희를 한 것도 아니고... 그 대신 이 작품은 진실하고 재미가 있어. 인위적인 화려함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지. 특히 그 작품 가운데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었어. 아에네아스가 디도와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 말이야. 특히 프리엄 왕의 최후 대사가 아주 멋졌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군. 그러니 이 대목에서부터 시작해주게. 가만있자, 그게 어떻게 나가더라? 그렇지...

"호걸 피라스, 히리카니아의 맹호처럼..."

아니 이게 아니지, 피라스로 시작은 하지만...

"호걸 피라스, 검은 마음에 시커먼 갑옷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불길한 목마 가운데에 숨었도다

이제 그 검고 무서운 얼굴에 더욱

처참한 몰골이 되었구나.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비 어미 딸 아들들의

붉은 피로 물들이고

타오르는 불길에 시체는 엉키고 숯이 되도다

그 불빛은 지옥의 등불

그 살인마의 만행을 비춰 주는구나

치솟는 분노와 불길 가운데

피는 끈적이처럼 온 몸에 엉겨붙고

핏발 선 두 눈에는 살기가 등등

악마 같은 피라스는

트로이의 늙은 왕 프리엄을 찾아 나섰노라..."

자, 다음은 자네들이 계속하게나.

폴로니어스 : 참으로 잘하십니다. 억양도 좋으시고 내용도 썩 잘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배우1 : "이윽고 프리엄은

달려드는 그리스 군 물리치고자 보검을 휘둘렀건만

늙은 팔에 힘이 빠져 허공을 갈랐고

칼을 땅에 떨어뜨린다. 어찌 상대가 되리오!

피라스가 프리엄을 향해 분노의 칼을 내리친다

그러나 칼이 매섭게 허공을 치는 바람에

늙은 왕은 힘없이 쓰러졌도다

무심한 트로이 성이여, 그대도

이 공격을 당해 타오르는 불길 속에

하늘이 무너지듯 땅 위에 허물어져 피라스의 귀청을 때린다.

보라! 늙은 왕

프리엄의 백발 머리를 향하여

내리치던 칼은 허공에 얼어붙고

피라스는 그림에 그린 폭군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도다

폭풍이 오기 직전 하늘에는

고요가 깃들이고 구름도 멎고

광풍은 침묵하고 땅은 무덤처럼 고요한데

느닷없이 천둥이 터져 허공을 때리니

망설이던 피라스의 복수심도 잠을 깨어

전쟁의 신 마르스의 불멸의 투구

그 투구 단련하던 애꾸눈 거인

사이클롭스의 철퇴가 이랬을까

피라스의 붉은 피 흐르는 칼은 인정사정 없이

프리엄의 머리를 내리치도다

아서라, 역겹도다, 매춘부 같은 운명의 여신이여!

하늘의 신들이여!

의논을 모아 여신의 힘을 빼앗을지어다

여신이 조종하는 수레바퀴에서

살과 테를 부숴 버리고

둥근 바퀴통일랑 구천을 굴러

지옥의 밑바닥 마귀들에게 떨어지게 할지니

 

연극의 위력

폴로니어스 : 그건 너무 긴 것 같구먼...

햄릿 : 그럼 그 수염과 함께 좀 잘라버리지 그러시오. 그래, 계속해다오... 이 늙은이는 웃음거리나 음담패설 따위가 아니면 그냥 잠이 들어 버린다네... 자 이제 헤쿠베가 등장하는 대목을.

배우1 : "그러나 그때 아, 휘장으로 몸을 감싼 왕비는..."

햄릿 : 휘장으로 몸을 감싼 왕비라고?

폴로니어스 : 그거 멋있군. '휘장으로 몸을 감싼 왕비라'...거 멋지구먼.

배우1 : "맨발로 이리저리 허둥댄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눈물

불꽃조차 꺼저버릴 것 같도다

왕관이 얹혀져 있던 머리엔

오직 초라한 보자기 한 조각

치렁치렁하던 비단옷은 간 데가 없고

수많은 자식을 낳아 앙상한 허리엔

황망히 주워 걸친 누더기 담요만...

왕비의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면

누군들 오만한 운명의 여신에게

저주의 독설을 퍼붓지 않으랴.

그뿐이랴? 하늘의 신들이 이런 광경을 봤다면

그들 또한 인간 세상에 어찌 무심하랴?

보라, 피라스가 흉악한 칼을 휘둘러

늙은 왕의 사지를 저미는 만행을

늙은 왕비는 이 광경에 절규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도 눈시울 적시고"

 

폴로니어스 : 저런 저런, 안색이 창백해지고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 이제 그만하여라.

햄릿 : 잘했다, 이제 그만들 하게. 나머지 부분은 다음 기회에 듣기로 하지. 경이 배우들의 뒷바라지를 부탁하오. 융숭하게 대접을 해주시오. 자고로 배우들은 시대의 축도요, 짧은 연대기라고 할 수 있으니까. 죽은 후에 험악한 묘비명이 씌어지는 것보다도 살아 생전에 사람들로부터 구설을 듣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일 것이오.

폴로니어스 : 알겠습니다, 전하. 그들의 신분에 걸맞게 대접하겠습니다.

햄릿 : 거, 참! 그게 무슨 말씀이오, 그보다 더욱 융숭히 접대하시오. 신분에 맞게 대접한다면 이 세상에 회초리를 모면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러니 경도 경의 명예와 위엄에 어울리게 대접하라는 얘기요. 대접받는 사람의 가치가 적을수록 대접하는 사람의 선의는 더욱 빛날 것이오. 자, 안으로 안내하시오.

폴로니어스 : 여보게들, 이쪽으로 오게나. (문쪽으로 간다)

햄릿 : 친구들, 저 영감을 따라가게. 내일 연극 구경을 하기로 하세. (배우1을 가로막는다) 여보게, 부탁이 하나 있네. 자네, '곤자고의 암살'말일세, 그거 공연할 수 있나?

배우1 : 당연히 할 수 있습지요, 전하.

햄릿 : 그럼 내일 밤 그걸 공연해주면 좋겠다. 혹 내가 써주는 대사를 12행이나 16행쯤 더 살을 붙일 수도 있을까? 어때, 외워서 해줄 수 있겠나?

배우1 : 예, 문제없습니다. (폴로니어스와 배우들 퇴장)

햄릿 : 그럼 됐네. 저 영감을 따라가게, 하지만 저 영감태기를 너무 놀리지는 말도록. (배우1 퇴장.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을 향해) 아, 실례했네. 나의 옛 친구들, 우리 오늘밤에 다시 만나세. 하여튼 엘시노어에 잘 돌아왔네.

로젠크랜스 : 그럼 저흰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전하.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퇴장)

햄릿 : 아, 그럼 잘들 가게! 이제는 나 혼자구나. 아 난 어쩌면 이다지도 지지리 못나고 비령한 인간일까! 지금 여기 있던 그 배우를 생각해보라! 얼마나 놀라운가? 다만 시인의 꾸민 이야기, 가공의 정열에 불과한데도 스스로의 상상으로 그 영혼에 공감하지 않는가? 안생이 창백해지고, 눈에는 눈물, 미칠 듯한 고민의 표정, 목은 메고... 자기가 그리려는 걸 그대로 나타내지 않는가. 도대체 이 모든 것은 다 무엇 때문일까? 헤큐베 때문인가? 그럼 도대체 헤큐베는 누구이며 또 그 배우는 헤큐베에게 어떤 존재란 말인가? 그와 헤큐베 사이에 울고 엉켜야 할 무슨 이유가 있다고? 만약 나만큼 고민해야 할 원인이 있다면 저 배우는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무대를 눈물로 흥건히 적시고, 무시무시한 대사로 관객들의 귀청을 찢을 것 아닌가? 죄지은 자는 미치게 만들고, 죄 없는 자는 두려움, 무지한 자는 놀라움, 관객들의 넋을 빼앗고, 눈과 귀를 멀게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아둔하고 미련한 인간인 나는 거기에 비해 몽유병자처럼 서성대며, 큰일에는 야멸차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세월만 보내고 있지 않은가? 아, 선왕께서는 왕권과 소중한 목숨을 사악한 자에게 무참히 빼앗기지 않았던가? 나는 겁쟁이인가? 날 악당이라 부르는 자 누구냐? 골통을 때려 부수고 수염을 잡아 뽑아서 내 낯짝에 집어던질 자가 그 누구냐? 내 코를 비틀고, 날 허풍선이라고 소리쳐 가슴을 후려칠 자는 누구란 말이냐? 아, 그런 자가 있다면 어쩔 수 없지. 달게 받아들일 수밖에. 제기랄, 난 욕을 먹어 싸지. 난 비둘기 간처럼 약해빠졌어. 굴욕을 참지 못하고 사생결단할 배알이라도 있다면 벌써 난 그 비열한 악당의 고기로 하늘의 솔개 떼를 배불렸을 것 아닌가? 그 추잡하고 썩어빠진 악당! 잔인무도하고 음탕한 놈! 아아, 복수다! 아, 나는 얼마나 못난 자식이란 말이냐? 허허, 나란 놈은 거 참 장하기도 하지! 사랑하는 아버님이 무참하게 살해 당해 하늘과 지옥이 그 복수를 명령하는데도 나는 마치 창녀처럼 혀끝으로만 그저 입으로만 나불대며 저주를 옹알대고 있다니! 나는 남창 같은 자식이다. 흥! 이제 정신 좀 차리고 생각을 가다듬어라! 그래 나도 들은 적이 있다. 글쎄 죄를 저지른 어떤 악당이 연극을 구경하다가 그 진실한 장면에 감동해 그만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깡그리 털어놓은 일이 있다지 않던가?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원래 살인죄는 입이 없어도 스스로 그 죄를 실토한다고 하지 않던가? 음, 아까 저 배우들을 시켜 숙부 앞에서 아버지의 억울한 살해 장면과 비슷한 장면을 보여주도록 해야겠다. 그때 숙부의 안색을 지켜보며 그 급소를 한 번 찔러보리라. 그래서 그가 움찔한다면... 그땐 무얼 주저하겠는가.

전에 내게 나타난 혼령은 악마일지도 모른다. 악마는 자유자재로 형체를 바꿀 수 있다지 않던가. 어쩌면 내가 허전해지고 울화증이 생긴 틈을 타서 그 마수를 뻗치려는 수작인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런 경우에는 특히 마귀가 힘을 발휘한다고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에게는 망령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연극이 좋은 방법이다. 기어코 왕의 본심을 까발리고야 말리라. (퇴장)

-하루가 지나간다.

3막 1장

 

-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

-접견실 바깥의 복도. 벽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가운데에 탁자가 놓여 있고, 한쪽 구석에는 십자가가 달린 기도용 책상이 놓여 있다. 왕과 왕비가 등장하고, 그 뒤를 따라 폴로니어스, 로젠크랜스, 길덴스턴가 나타난다. 조금 뒤에 오필리어 등장.

 

왕 : 그래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서 캐물어도 결국 왜 햄릿이 그렇게 이리저리 휘저으며 소란하고 위험스런 미친 짓을 해서 조용한 날들을 시끄럽게 만드는지 그대들은 아무런 단서도 못 잡았다 그 말이오?

로젠크랜스 : 왕자님 자신도 스스로 이상이 생긴 것은 인정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계십니다.

길덴스턴 : 게다가 남들이 그런 걸 캐묻는 것도 싫어하시는 눈치입니다. 저희들이 뭔가 진상을 캐물어도 슬그머니 실성하신 척하시고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눈치입니다.

왕비 : 그래 그대들을 반갑게 대하기는 하던가?

로젠크랜스 : 아주 정중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길덴스턴 : 그러나 그 태도는 뭔가 억지로 꾸민 듯한 느낌입니다.

로젠크랜스 : 자진해서 뭔가 말씀하시고 싶은 눈치는 아니었지만, 묻는 말에는 그래도 퍽 선선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왕비 : 혹시 무슨 오락이라도 권해보지 그랬소?

로젠크랜스 : 왕비 마마, 실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배우 패거리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왕자님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무척 반가와하시더군요. 그 배우 일행은 지금 궁전에 와 있습니다. 아마 오늘밤 공연을 하라는 분부를 햄릿 왕자님께 이미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폴로니어스 : 그렇습니다. 그리고 국왕 폐하와 왕비 마마께서도 연극을 관람해 주시도록 여쭈라고 소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왕 : 그럼 기꺼이 보고 말고. 햄릿이 연극에 흥미를 느낀다니 아무튼 반가운 일이로다. 그대들도 앞으로 더욱 자주 권해서 햄릿이 이런 오락에 마음이 끌리도록 노력해 주오.

로젠크랜스 :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퇴장)

왕 : 여보 왕비,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들어가 있으시오. 사실은 은밀히 햄릿을 이리로 불렀다오. 햄릿이 여기서 우연인 것처럼 오필리어를 만나도록 꾸며 놓았다오. 오필리어의 부친과 같이 이곳에 숨어 두 사람이 만나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볼 참이오. 그래서 햄릿의 일거일동을 자세히 살펴보고 왕자가 실성한 이유가 과연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판단해봐야 할 것 같소.

왕비 :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필리어야, 햄릿이 실성한 것이 네 아름다움 때문이라면 오죽 다행이겠느냐. 그렇다면 네 고운 마음씨로 인해 햄릿이 멀쩡해질 수 있으련만... 그렇게 된다면 너희 두 사람을 위해서도 참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오필리어 : 왕비 마마, 소녀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왕비 퇴장)

폴로니어스 : 얘, 오필리어야. 여기서 좀 서성거리고 있으렴. 폐하, 황송하오나 폐하께서는 소신과 함께 이곳으로... (오필리어에게) 넌 이 책을 읽고 있어라. (기도용 책상에서 책을 집어서 오필리어에게 준다) 그렇게 책에 빠져 있는 것처럼 하면 네가 혼자 있어도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 거야. 이건 죄받을 짓인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흔히 있는 수작이다. 혹시 경건한 표정으로 가면을 쓰고 악마의 본성을 사탕발림으로 감추는 짓인지도 모르겠다만...

왕 : (방백) 과연 그렇도다. 저 한마디가 내 양심을 아프게 채찍질하는구나. 분을 처발라 단장한 창녀의 추악한 얼굴 바탕이라 한들 내 행실보다는 더럽지 않으리라. 그럴싸하게 꾸민 말 뒤에 숨어있는 나의 행실... 아, 이 엄청난 업보가 너무도 무겁구나!

폴로니어스 : 발소리가 납니다. 폐하, 저리 숨으시지요. (왕과 폴로니어스 커튼 뒤에 숨는다. 오필리어가 기도용 책상 앞에 무릎을 꿇는다.)

-햄릿 침통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햄릿 :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꽂힌 고통을 죽은 듯 참는 것이 과연 장한 일인가. 아니면 두 손으로 거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죽는 건 그저 잠드는 것일뿐... 그뿐 아닌가. 잠들면 우리 마음의 고통과 육체에 끊임없이 따라붙는 무수한 고통이 모두 끝난다.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열렬히 바라는 삶의 결말이 아닌가. 그러면 또 꿈도 꾸겠지. 아, 그게 괴로운 일이야. 이 세상의 번뇌를 벗어나 영원한 잠에 잠길 때, 우리에게 어떤 꿈이 나타날지 생각하면 다시 망설일 수밖에l... 글쎄 이런 주저 때문에 인생은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주저가 없다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모욕을 참겠는가. 폭군의 횡포와 권력자의 오만함, 좌절한 사랑의 고통, 엉터리 재판과 오만방자한 관리들... 소인배가 덕망 있는 사람을 모욕하는 그 비극을 도대체 누가 참아낸단 말이냐. 그저 칼 한 자루로도 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끝장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죽은 뒤의 세상에 대한 불안, 한번 나그네 길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미지의 나라가 사람의 결심을 망설이게 하는 것. 알지도 못하는 저 세상으로 달아나느니 차라리 이대로 이 세상의 고통을 참고 견디기 마련이지.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평생 괴로운 삶을 신음하며 견딘단 말인가? 이래서 결국 분별심은 우리를 모두 겁쟁이로 만들고 만다. 우리의 결심은 겉으로는 생생한 혈색을 가진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창백한 병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하여 뜨겁게 타오르던 큰 뜻도 마침내 방향을 잃고, 실천과는 멀어지고 마는 것... 가만 있자, 사랑스런 오필리어 아닌가... 그대 사랑스러운 숲의 여신이여,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를 하려거든 잊지 말고 나의 죄를 위해서도 빌어주오...

오필리어 : (일어서며) 왕자님, 오랜만입니다. 전하께선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햄릿 : 실로 고마운 말씀. 난 잘 있소. 아주, 아주 잘 있다오.

오필리어 : 전하, 그 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많은 선물들을 오래 전부터 돌려드리려 했습니다. 노여워 마시고 부디 받아주세요.

햄릿 : 아니, 난 받을 수 없소. 아무 것도 선물한 일이 없으니 말이오.

 

- 마음속에 도사린 것

 

오필리어 : 아이 참, 전하께선 잘 아시면서 딴전을 부리십니다. 그때 선물에다 다정한 말씀까지 보내주셔서 그 때문에 선물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향기도 사라졌으니 도로 받아주세요. 아무리 값진 선물이라도 보낸 사람의 마음이 변하면 그 선물도 초라해진다고 하더군요... 마음이 깨끗한 여자에게는 말이에요. 어서 가져가세요. (가슴에서 보석을 꺼내 햄릿 앞 탁자 위에 놓는다.)

햄릿 : (상대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하하! 그대는 정조가 굳은 여자요?

오필리어 : 네?

햄릿 : 그대, 얼굴은 아름다운가?

오필리어 : 전하, 무슨 말씀이신지?

햄릿 : 글쎄, 정조가 굳고 얼굴까지 아름답다면 말이오. 그 둘 사이가 너무 친하게 지나지 않도록 하시오.

오필리어 : 전하, 여자의 아름다움과 정조처럼 잘 어울리는 연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햄릿 : 천만의 말씀. 아름다움이 정절을 타락시켜 음란하게 만들기는 쉬운 쉬운 일이오. 하지만 정절이 아름다움이 정숙해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오. 전에는 이걸 그저 하나의 역설로 여겼지만, 요즘엔 그 말이 진리라는 실증이 있소. 나도 한때는 그대를 사랑했소만...

오필리어 : 네, 저도 한때 그렇게 믿었답니다.

햄릿 : 그대는 내 말을 믿지 않았어야 했소. 썩은 나무 밑바탕에 제아무리 미덕의 새 가지를 접목한들 원래 바탕은 아주 없어질 리야 있겠소? 그러니 난 사랑 따윈 하지 않았소.

오필리어 : 그렇다면 소녀는 더욱 속은 셈이네요.

햄릿 : (기도용 책상을 손가락질하면서) 수녀원으로 가시오. 왜 그대는 죄 많은 인간을 낳고자 하는 거요? 내 딴엔 그래도 내가 꽤나 성실한 인간으로 생각한다오. 하지만 그래도 내 어머니가 차라리 날 낳지 않았더라면 하고 한탄하곤 하오. 그만큼 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요. 나는 오만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야심 만만한 사람이오. 일일이 머릿속에서 생각을 다듬고 계획을 잡기도 전에, 나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죄, 상상 속에서 뚜렷한 형체를 그리기도 전에 저지르는 죄,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저지를 수 있는 그런 죄... 나는 또 무슨 죄를 저지를지 알 수 없는 그런 사람이오. 나 같은 인간이 이 천지를 기어다니며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겠소? 우리 인간은 모조리 엄청난 악당들이지. 아무도 믿지 마시오... 곧장 수녀원으로 가시오... 가라구! (갑자기)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오필리어 : 예, 집에 계십니다, 전하.

햄릿 : 그럼 문을 걸어 잠그고 단단히 가둬 두시오. 밖에 나와서까지 제 집도 아닌 곳에서 공연히 바보같은 짓일랑 못하게 말이오. 잘 가시오. (퇴장)

오필리어 :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아 하나님, 천사님들... 전하를 구원해 주소서!

햄릿 : (미친 듯한 태도로 다시 돌아온다.) 그대가 굳이 결혼한다면 나의 저주를 혼수 삼아 보내리다... 그대가 아무리 얼음처럼 정결하고 하얀 눈처럼 순결하게도 해도 이 세상의 구설을 피하지는 못할 거요. 어서 수녀원으로 가시오, 어서. 잘 있어요... (왔다갔다하면서) 그래도 굳이 결혼하려거든 바보와 하시오. 영리한 사람들은 아내를 얻으면 자기가 곧 괴물이 되고 만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글쎄 오쟁이를 지는 바람에 이마에 뿔이 돋고야 말 걸? 수녀원으로 가시오. 지금 당장 말이오. 잘 가시오. (후닥닥 뛰어나간다)

오필리어 : 하나님, 전하의 맑은 정신이 돌아오게 해주소서!

햄릿 : (다시 또 돌아온다) 난 너무 잘 알고 있지. 당신네 여자들이 덕지덕지 분을 처바른다는 걸 말이야. 하나님께서 주신 얼굴을 완전히 딴판으로 만들어버린단 말이야. 간드러지게 걷고, 짧은 혀로 나불대며 신의 창조물에 엉뚱한 별명이나 붙이고... 음탕한 짓을 하고도 모른 척 잡아떼기도 하지. 오 안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게 날 미치게 만들었어. 이제 이 세상 년놈들을 결혼하게 해선 안돼... 이미 결혼한 것들이야 딱 한 쌍만 빼놓고선 도리없이 살려 둬야지. 하지만 결혼 안한 작자들은 지금처럼 그냥 살아가는 게 좋을 거야. 어서 수녀원으로 가라구. (다시 퇴장)

오필리어 : 오, 그렇게도 고상하던 그 기품이 저렇게 무너지다니! 귀인의 수려함, 씩씩한 칼, 학자의 교양을 가졌던 분이었건만! 아름다운 이 나라의 꽃이고 풍속의 거울, 예절의 모범으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던 저 왕자님이 저렇게 되시다니! 오늘 이 오필리어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불쌍한 처지! 왕자님의 달콤한 사랑의 맹세를 빨아들였던 나의 귀가 저 고귀하고 반석같이 굳은 이성의 청아한 종소리가 이젠 금이 간 종처럼 시끄러운 소음만 내는 걸 들어야 하다니.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다운 청춘의 용모와 자태도 광란의 독기를 머금고 시들어 버리다니! 아 어쩌면 좋담? 옛날 그 아름다운 일을 보아 알고 있는 이 눈이 지금 저 모습을 보아야 하다니! (기도 드린다)

 

-왕과 폴로니어스 휘장 뒤에서 슬그머니 나타난다.

 

왕 : 사랑 때문이라고? 당치 않은 얘기! 그의 마음은 그리로 간 것이 아니오. 횡설수설 대중이 없긴 하지만 내뱉는 얘기가 미친 사람의 소리 같진 않소... 분명 마음 속에 뭔가 도사리고 있기에 저렇게 우울한 게 분명해. 그것이 터져 나오는 날이면 내게 위험이 닥치겠지. 그걸 막으려면 아무래도 선수를 쳐야지. 자, 이렇게 하면 어떨까? 왕자를 즉시 영국으로 파견하도록 하자. 밀린 조공도 재촉한다는 명분으로 말이야. 바다 건너 머나먼 다른 나라에 가서 색다른 타국 풍물을 구경하다 보면 왕자의 가슴속에 꽁꽁 뭉친 괴로움이 다소라도 풀릴지도 모르지. 밤낮 생각에만 골몰하니, 저렇게 실성할 수밖에. 경의 의견은 어떠하오? (오필리어가 다가온다)

폴로니어스 : 참으로 묘안이십니다. 그러나 소신의 생각으론 왕자님께서 수심에 빠지게 된 근원과 시초는 실연 때문이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그렇지, 오필리어? 햄릿 왕자님이 하신 말씀은 전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다 들었으니까. 폐하, 폐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지만 연극이 끝난 뒤에 왕비 마마께서 왕자님을 부르시어 자세한 곡절을 물어보시는 것이 어떠하올지요. 그리고 페하께서 허락하신다면 신이 몰래 숨어서 두 분의 말씀을 자세히 들어볼까 하옵니다. 그렇게 해서도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왕자님을 영국으로 보내시던가 또는 어디 적당한 곳에 감금하시던가 뜻대로 정하심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왕 : 경의 의견대로 하리다. 귀인의 실성을 그대로 방관해둘 수는 없는 일이오.

(모두 퇴장)

 

- 연극을 준비하다

-궁전의 홀. 무대 양쪽에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고, 뒤에는 막이 쳐진 연단이 있다. 막 뒤에는 다시 안쪽 무대가 있다. 햄릿과 배우 세 사람이 막 뒤에서 등장.

 

햄릿 : (배우1에게) 대사는 아까 내가 자네들에게 말한대로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만약 여느 배우들처럼 소리나 고래고래 지르며 신파조로 할 바에는

차라리 거리의 약장사를 데려다 시키겠어. 그리고 손을 움직일 땐 이렇게 허공을 휘젓지 말고 항상 부드럽게 해야지. 감정이 휘몰아친다던가, 정열이 회오리 바람처럼 일어날 때에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단 얘기야. 가발을 쓴 엉터리 배우가 나와서 혼자 격정에 사로잡혀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감격적인 장면을 망쳐놓으면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엉터리 무언극이나, 소리치지 않으면 대사가 잘 들리지도 않는 삼등석 관중을 상대로 하는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엉터리 연기자는 볼기짝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야. 난폭한 회교도의 터마간트나, 폭군 헤롯 왕보다 한 술 더 뜨는 수작이지.

배우1 :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햄릿 : 그렇다고 너무 활기가 없는 것도 곤란하지. 그러니 각자 신중히 생각하여 연기는 대사에, 대사는 연기에 조화시켜야 하겠지. 특히 명심해둘 건 자연의 절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점.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연극의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된다네.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거울에 비추어 보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네. 옳은 건 옳은 대로, 그런 건 그른 대로 고스란히 비추어, 그 시대의 양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요는 만사 지나치거나 또는 부족하거나 하면 어설픈 관객을 웃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목이 있는 관객은 불쾌감을 느낄 뿐이야. 이러한 관객은 비록 그 수는 적으나, 그들의 비난은 수많은 다른 관객들의 칭찬보다 몇 배 중요한 법이지. 참, 나도 본 일이 있는데... 정말 엉터리 배우가 하나 있었지. 남들은 칭찬, 그것도 아주 엄청나게 칭찬을 하더군... 좀 지나친 말일지 모르지만, 그 대사도 기독교다운 말씨가 아니었고, 걸음걸이도 기독교도 아니, 이교도도 아니고, 도대체 인간다운 점이란 흔적조차 없는 걸음걸이였지. 그 친구가 무대 위에서 어찌나 거들먹거리는지 고함이나 지르고, 이건 창조의 신이 무능한 견습공을 시켜 아무렇게나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더군. 그 패거리들의 인간 흉내란 참으로 추악하기 짝이 없었다네.

배우1 : 저희 극단은 그런 점을 꽤나 고친 셈입니다, 전하.

햄릿 : 아니, 더욱 철저히 고쳐야 해. 그리고 어릿광대 역도 대본에 없는 대사는 지껄이지 않도록 하게. 그 가운데는 얼마 안되는 멍청한 관객들을 웃기려고 자기가 먼저 웃어 보이는 녀석들도 있지. 그렇게 웃으면서 녀석들은 연극의 핵심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지. 아주 기가 막힐 노릇이지. 어릿광대가 그 따위 수작을 부리는 그 치사한 속셈이야 뻔히 들여다보이지... 자, 어서 가서들 준비하게. (배우들 막 뒤로 퇴장)

 

-폴로니어스,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등장.

 

햄릿 : 어떡해 되었소, 폴로니어스경? 폐하께서 연극을 보러 오시는 건가요?

폴로니어스 : 예, 왕비 마마도 곧 함께 행차하실 겁니다.

햄릿 : 그럼 가서 배우들보고 서두르라고 하시오. (폴로니어스 절을 하고 퇴장) 자네들도 가서 도와주게나.

로즈크랜츠 : 예, 잘 알겠습니다, 전하.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폴로니어스의 뒤를 따라 퇴장)

햄릿 : 거기 있나, 호레이쇼!

-호레이쇼 등장

호레이쇼 : 부르셨습니까, 전하?

햄릿 : 호레이쇼, 내가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자네같이 마음이 곧고 성실한 사람은 없었다네.

호레이쇼 :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전하...

햄릿 : 아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닐세. 먹고 입는 밑천이라고는 타고난 아름다운 성품밖에 없는 자네에게 내가 무슨 이득을 바라고 아첨을 하겠는가. 가난뱅이에게 누가 아첨을 하겠나? 아닐세. 세도가에게 아부하는 일은 달콤한 혓바닥을 가진 놈들에게 맡기고, 무릎 관절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놈들은 아첨으로 이득이 생기는 데 가서 무릎을 굽실거리라지... 여보게, 호레이쇼. 내 마음이 철들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사람의 품성을 분간할 수 있게 된 뒤부터 난 자넬 진정한 영혼의 벗으로 여겨왔다네. 자넨 인생의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을뿐더러 운명이 신이 안겨주는 고통이나 은총을 한결같이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네. 자네는 감정과 이성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운명의 여신의 손끝에 놀아나서 우둔한 소리를 울려 주는 패거리들하고는 본바탕부터 다르네. 난 참으로 자네가 부럽기 그지없네. 감정의 노예가 아닌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면 내 이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하고 싶네 그려. 자네가 바로 그런 사람일세. 내 말이 너무 장황했나 보군... 그건 그렇고, 오늘밤 어전에서 연극이 공연되네. 그 가운데 한 장면은 내가 언젠가 자네에게 얘기했던 선친의 살해 장면과 아주 비슷하다네. 연극이 시작되거든 자네는 신경을 바싹 곤두세워 숙부의 일거일동을 살펴봐 주게... 만약 연극 어느 대목에서도 숙부의 숨겨놓은 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전에 우리가 봤던 망령은 악귀인 것이 분명하고, 내 상상력도 불의 신 불카누스의 대장간처럼 지저분했던 셈이지. 숙부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 주게. 나도 물론 내 이 두 눈을 그 얼굴에서 떼지 않을 거네만. 연극이 끝난 후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을 모아 왕의 태도를 판단해보세.

호레이쇼 : 잘 알겠습니다, 전하. 연극 도중에 제가 잠시라도 한눈을 판다면, 그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안에서 나팔과 큰북 소리가 들려온다)

햄릿 : 드디어 연극을 보러 나타나시는 모양이군. 나도 이제 시치미를 떼고 있어야지. 자네도 자리에 앉게.

 

-왕과 왕비가 등장한다.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그 밖의 궁신들도 뒤를 이어 등장. 모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왕과 왕비, 폴로니어스는 같은 쪽에 앉고, 그 맞은 편에 오필리어, 호레이쇼와 그 밖의 사람들이 앉는다.

 

왕 :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 햄릿.

햄릿 : 아주 원기 왕성합니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거짓 약속으로 꽉 찬 공기만 마시구 있죠... 거세한 수탉인들 이렇게 기를 순 없을 테죠.

왕 :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햄릿. 그건 내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니잖느냐.

햄릿 : 네, 그렇다고 제 말도 아니지요. 이제는 입밖에 나와버린 말이니까요. (폴로니어스에게) 폴로니어스 경은 대학 시절에 연극을 하셨다면서요?

폴로니어스 : 그렇습니다, 햄릿 전하. 이래봬도 명배우라고 칭찬이 자자했답니다.

햄릿 : 그럼 무슨 역을 맡으셨소?

폴로니어스 : 줄리어스 시이저 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당에서 암살을 당했죠. 브루터스의 손에 말입니다.

햄릿 : 그 브루터스란 놈도 어지간히 잔인한 놈이군. 이런 어리석은 밥통을 죽이다니 말이야. 그런데 배우들은 준비가 다 됐나?

로젠크랜스 : 예 전하, 분부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연극을 시작하다

 

왕비 : 햄릿, 이리 와서 어미 곁에 앉으려무나.

햄릿 : 아뇨, 어머니. 이쪽에 더 강한 지남철이 있어서... (오필리어 쪽으로 간다)

폴로니어스 : (왕에게 방백) 하아! 지금 한 말을 들으셨습니까? (두 사람, 햄릿을 지켜보면서 속삭인다)

햄릿 : 아가씨, 그대 무릎에 누워도 되겠소?

오필리어 : 아니됩니다, 전하.

햄릿 : 그저 머리만 그대 무릎에 누이겠다는데, 그것도 싫소?

오필리어 : 예, 그럼 전하. (햄릿 그녀의 발치에 눕는다)

햄릿 : 내가 무슨 상스러운 짓이라도 할 줄 알았소?

오필리어 : 아닙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햄릿 : 처녀 가랑이 사이에 눕는다... 거 참 멋진 생각인데.

오필리어 : 무슨 말씀이신지요, 전하?

햄릿 : 아냐.

오필리어 : 퍽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전하.

햄릿 : 누가? 내가?

오필리어 : 그렇습니다, 전하.

햄릿 : 별수 없지. 나야 천하의 어릿광대니까. 인간으로서 모름지기 쾌활하지 않으면 어떡할 거야? 저것 좀 봐요, 우리 어머니의 저 행복한 얼굴을 좀 보라구.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두 시간도 채 안됐는데. (왕비가 얼굴을 돌려 왕과 폴로니어스에게 속삭인다)

오필리어 : 아닙니다, 두 달의 두 배는 지났을 겁니다.

햄릿 : 뭐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럼 상복은 악마에게나 물려주고 난 수달피 옷이라도 걸쳐야겠군. 정말 놀라워! 두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도 아직 잊지 않고 있다니. 이러다가는 위대한 사람의 기억이 죽은 지 반 년 동안 살아 있을 수도 있겠는걸. 아 참, 그러자면 교회라도 세워둬야지. 그러지 않으면 놀이터의 장난감 말처럼 금세 잊혀지고 말 테니까 말이야. 그래 그 말 무덤의 비명은 이거라오, '이려! 이려! 장난감 말은 잊혀졌네.'이거란 말이지.

 

-나팔 소리, 정면의 막이 좌우로 열리고 안 무대가 나타난다. 거기에서 무언극이 시작된다.

 

<무언극>

-왕과 왕비가 정답게 나타나 서로 포옹한다. 왕비는 무릎을 꿇고 왕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왕은 왕비를 일으켜 세우고 그의 머리를 왕비의 목에 기대고서 꽃이 만발한 언덕에 눕는다. 왕비는 왕이 잠든 것을 보고 자리를 떠난다. 곧 한 사나이가 등장, 왕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기고 왕관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왕의 귀에 독약을 붓고 나서 퇴장한다. 왕비가 돌아와서 왕이 죽은 것을 보고 엄청나게 슬픔에 잠긴다. 독살한 사나이는 서너 명의 부하를 데리고 다시 나타나서 왕비를 위로하는 척한다. 죽은 왕의 시체를 실어간다. 독살한 사나이는 예물을 들고 와 왕비에게 사랑을 구한다. 왕비는 처음엔 싫어하는 체하다가 결국 사랑을 받아들인다.

 

-무언극이 진행되는 동안 햄릿은 초초하게 이따금 왕과 왕비를 바라본다. 왕과 왕비는 계속 폴로니어스와 무언가를 소근거린다.

 

오필리어 : 이 연극은 무슨 뜻이옵니까, 전하?

햄릿 : 글쎄 아무것도 아니오. 그저 엉큼한 장난이라고나 할까.

오필리어 : 아마 이 무언극이 이 연극의 줄거리인 것 같사옵니다만.

막 앞에 배우 한 사람이 등장한다. 왕과 왕비는 배우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다.

햄릿 : 이 배우가 가르쳐 주겠지. 배우들이란 비밀을 숨기지 못하고 죄다 지껄여버리니까.

오필리어 : 그럼 그 무언극의 의미도 가르쳐 주겠군요?

햄릿 : (거친 어조로) 암 그뿐이겠소, 그대가 해 보이는 무언극도 해설해줄 거요... 그대가 창피스럽다고 생각지 않고 엉큼한 무언극을 해 보이면 저 배우들은 그 의미를 해설해줄 거요.

오필리어 : 망측한 말씀이십니다. 전 그저 연극이나 구경하겠습니다.

배우 : 저희 극단을 대표하여 여러분 앞에 간곡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무대에 올리는 비극을 끝까지 조용히 보아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퇴장)

햄릿 : 원 저게 극을 시작하는 말인가, 아님 반지에 새긴 글귀인가?

오필리어 : 정말 너무 짧군요.

햄릿 : 여인의 사랑처럼.

 

-두 배우 등장. 극중의 왕과 왕비다.

 

극중 왕 : 왕비여,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결혼의 신 하이멘이 우리의 손을 맞잡게 하여 성스러운 혼인 의식을 올린 날부터 태양의 꽃수레가 바다 신의 바다 길과 대지의 여신의 둥근 땅을 돌기를 꼬박 서른 번이오. 열두 번을 서른 곱해서 그 빛을 빌린 달님이 지구를 돌기를 서른 번의 열 두 갑절이었소.

극중 왕비 : 기나긴 여행의 길, 앞으로도 해와 달은 그만큼 돌아서 우리의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게 축원해 주소서! 하지만 요즘 저는 슬프답니다. 요새 폐하께서 병환이 잦으시어 웃음도 사라진 지 오래고 옛 모습을 찾을 바 없어 염려가 됩니다. 하오나 제가 이렇게 가슴 속에 근심을 지닌다 해서 언짢게는 생각지 마옵소서. 원래 여자의 근심과 애정은 함께 하는 법이오니, 애정이 없으면 근심도 없고 애정이 크면 근심도 그만큼 크답니다. 저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 동안 지내보셔서 아실 터이고, 애정이 큰 만큼 염려도 크답니다. 사랑이 커지면 사소한 염려도 근심 걱정이 되고 사소한 근심 걱정이 커지면 사랑도 더욱 깊어지는 법이옵니다.

극중 왕 : 사랑하는 왕비여, 당신을 버리고 가야 할 나의 운명, 그 운명이 그리 멀지 않았소. 심신이 나날이 쇠약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그 증거 아니겠소. 당신은 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아남아 백성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여생을 즐기시오. 그리고 다행히 나 못지 않은 배필을 만난다면...

극중 왕비 : 아, 그런 창피한 말씀 그만하세요! 그런 사랑은 제 가슴에는 오직 추악한 배반일 뿐입니다. 재혼을 하느니 차라리 저주를 받겠어요. 남편을 살해한 여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재혼을...

햄릿 : (방백) 쓰디쓰구나, 지금의 그 말.

 

- 도둑은 발이 저리겠지요

 

극중 왕비 : 재혼을 꿈꾸는 마음은 천한 욕정 때문일 뿐, 결코 애정이 아닙니다. 두 번째 남편에게 안겨 잠자리에서 입을 맞춘다면 고인이 된 남편을 두 번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극중 왕 : 왕비의 말씀이 진정임을 의심치 않소. 하지만 인간이란 아무리 결심을 해도 스스로 깨뜨리기 쉽소. 의지는 기억의 노예에 불과한 것. 태어날 때의 기세는 강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오. 글쎄 설익은 과실이나 마찬가지요. 지금 가지에 매달려 있지만 익으면 흔들지 않아도 땅에 떨어지게 마련이라오. 스스로 걸머진 빚은 갚는 것을 잊는 것이 인지상정. 열정으로 우리 스스로 약정한 것은 정열이 식으면 그 결심도 풀어지는 법이라오. 슬픔이든 기쁨이든 일단 그 격렬함이 사그라지면 실행할 힘도 없어지고 마는 것이오. 기쁨이 가장 미쳐 날뛰는 자리에서 슬픔도 가장 크게 한탄하는 법. 사소한 일 때문에 희비는 교차하기 마련이오.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니, 우리의 사랑도 운명과 더불어 변화한다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오. 과연 사랑이 운명을 이끄느냐, 아니면 운명이 사랑을 이끄느냐, 이는 아직도 해답을 얻지 못한 인생의 문제라오. 권력자가 몰락하면 기르는 수하의 무리도 떠나가고, 미천한 사람도 출세하면 어제의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되지 않소? 이는 사랑이 운명의 종이라는 증거일 것이오. 재물을 가진 사람은 친구가 부족한 일이 없지만 가난한 자는 성실치 못한 친구를 시험하려다 도리어 당장 원수를 만들고 마는 법. 자, 이제 우리 이야기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서 말을 맺읍시다. 우리의 의지와 운명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오. 그래서 우리의 의지는 항상 뒤집히고 마는 것이라오. 생각은 우리가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소. 그러니 지금은 재혼할 생각이 없겠지만, 첫 남편이 죽고 나면 왕비의 그런 생각도 따라서 죽고 말 것이오.

극중 왕비 : 아,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비록 대지가 양식을 베풀지 않고 하늘이 빛을 비추지 않고 낮의 즐거움과 밤의 휴식을 빼앗기고 믿음과 희망이 절망으로 변한다 해도, 설혹 옥에 갇혀 평생 고생을 한다 해도, 기쁨을 덮치는 온갖 재앙이 이 몸을 덮쳐 저의 소망을 부순다 해도, 영겁의 고뇌가 이승뿐 아니라 저승에서까지 내 뒤를 쫓는다 해도 폐하를 여윈 이 몸이 어찌 재혼을 할 수 있으리까!

햄릿 : 저렇게 굳은 맹세를 깨뜨리면 어쩔려구?

극중 왕 : 굳은 맹세 감사하오! 사랑하는 왕비여, 잠시 나를 혼자 있게 해주오. 몹시 어지럽구려. 한숨 자고 나면 지루한 이 하루의 기분도 씻은 듯 개운해질 것 같소. (잠이 든다)

극중 왕비 : 부디 피곤한 심기를 푸소서. 행여 재앙이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지 않기를! (퇴장)

햄릿 : 왕비 마마, 이 연극이 마음에 드십니까?

왕비 : 왕비 역할이 좀 경망스럽지 않니?

햄릿 : 하지만 맹세한 것은 지키겠죠.

왕 : 햄릿 왕자는 이 연극 줄거리를 알고 있겠지? 혹시 해괴한 장면을 없을 테지?

햄릿 : 아뇨, 전혀 없습니다. 이건 그저 장난일 뿐입니다. 장안으로 독살을 하지요. 해괴한 장면은 전혀 없습니다.

왕 : 연극의 제목은 무엇이더냐?

햄릿 : '쥐덫'입니다. 어째서 그런 제목을 붙였느냐구요?... 그야 물론 비유죠. 이 연극은 비엔나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겁니다. 왕의 이름은 곤자고, 왕비는 뱁티스라고 합니다. 이제 곧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단히 흉악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폐하와 저희처럼 양심이 깨끗한 사람들에겐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입니다... 도둑놈들은 제 발이 저려오겠지만, 우리의 잔등은 아무렇지도 않겠지요...

-이때 루시어너스로 분장한 배우1 등장. 까만 옷을 입고 손에는 독약 병을 들고 있다. 얼굴을 찡그리며 위협적인 태도로 잠자고 있는 왕 곁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햄릿 : 저건 왕의 조카인 루시어너스라는 사나이입니다.

오필리어 : 햄릿 전하께선 해설자처럼 내용을 퍽 잘 아시네요.

햄릿 : 난 인형극에서 꼭둑각시들이 시시덕거리는 수작만 보아도 그대와 애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지.

오필리어 : 전하, 너무 심하신 말씀이옵니다. 너무하십니다.

햄릿 : 화가 났나? 내 것이 화가 나면 그대는 아마 처녀성을 빼앗겨 앓는 소리를 내게 될 텐데...

오필리어 : 점점 더 심하시네요. 정말 너무하십니다.

햄릿 : 하지만 남편을 맞이하면 그럴 모르고 지낼 순 없지... (무대를 쳐다보면서) 자, 이제 시작해야지. 여, 살인자, 염병할 놈! 낯짝만 찌푸리고 있지 말고 어서 시작하라고! 자, '까마귀는 까악까악 복수를 부르짖는다'는 부분부터!

루시어너스 : 마음은 시커멓고, 손은 날렵하다. 약은 강하고, 때는 무르익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구나. 하늘이 나를 돕는다. (독약을 쳐든다) 한밤중에 약초를 캐다가 만든 너 흉악하고 저주스러운 혼합물이여. 마녀 헤커커티의 주문으로 세 번 말리고, 세 번 독기를 쐬어 만든 이 독약, 자연의 마력과 무서운 효력을 발휘하여 저 싱싱한 목숨을 당장 끊어다오. (독약을 왕의 귀에 붓는다)

햄릿 : 저게 바로 왕위를 빼앗기 위해 정원에 있는 왕을 독살하는 장면입니다. 왕의 이름은 곤자고, 이 얘긴 이탈리아 말로 써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실화이지요. 이제 곧 보시겠지만, 저 살인자 곤자고는 왕비의 사랑까지 얻게 된답니다.(왕이 창백해져 허청허청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필리어 : 아, 폐하께서 자리를 뜨시네요.

햄릿 : 이런, 공포(空砲) 소리에 그만 놀라셨나?

왕비 : 아, 어쩐 일이십니까, 폐하?

폴로니어스 : 연극을 중지하라, 연극을.

왕 : 등불을 가져오너라... 그만 가련다!(밖으로 뛰쳐나간다)

폴로니어스 : 등불, 등불, 등불을 가져오라! (햄릿과 호레이쇼만 남고 모두 퇴장)

햄릿 : (노래한다)

 

울어라 울어, 화살 맞은 사슴아

놀아라 춤추어라, 멀쩡한 암사슴아

밤을 새는 놈, 잠을 자는 놈,

세상만사 이러저러한 것

 

어때 이만하면 나도 극단에 낄 수 있겠지? 옷에 깃털 장식을 잔뜩 붙이고, 샌들 코에다는 큼지막한 장미꽃 리본이라도 두 개쯤 달고 나서면 말이야. 나중에 내 팔자가 기구해지면 말일세...

호레이쇼 : 글쎄 배우 반 사람 몫 급료는 받으실 것 같습니다.

햄릿 : 무슨 말인가, 한 사람 몫을 받아야지.(노래한다)

 

그대는 알겠지, 아 마귀여

이 나라는 주피터 신을 빼앗기고

이 땅을 다스리는 자는

여자에 미친... 공작 왕이로다

 

- 날 도대체 뭘로 아나?

 

호레이쇼 : 공작이란 호칭은 너무 과분합니다.

햄릿 : 아, 호레이쇼 어떤가? 이제 그 망령의 말에 천금을 걸 수도 있겠네... 자네도 보았겠지?

호레이쇼 : 예, 똑바로 보았습니다, 전하.

햄릿 : 그 독살에 관한 장면도?

호레이쇼 : 예, 자세히 봤습니다.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이 돌아온다.

 

햄릿 : 아하! (두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자아, 풍악을 울려라! 피리를 가져오라! 국왕 폐하는 희극이 싫으시단다. 그래서... 뭐 싫으면 싫으신 거겠지. 자, 풍악을 울려라!

길덴스턴 : 왕자님, 황송하오나 한 마디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햄릿 : 아무렴, 천 마디를 해도 괜찮네.

길덴스턴 : 왕자님, 국왕 폐하께서...

햄릿 : 그래, 폐하께서?

길덴스턴 : 연극을 보신 후 내실로 들어가시고, 몹시 언짢아하셨습니다.

햄릿 : 왜 지나치게 술을 드셨나?

길덴스턴 : 아니옵니다, 전하. 무척 진노하신 것 같습니다.

햄릿 : 그렇다면 전의(典醫)를 부르는 게 더 현명한 일 아닐까? 내가 섣불리 처방을 했다간 그 화병이 도지실지도 모를 일 아닌가.

길덴스턴 : 황송하오나 자꾸 엉뚱한 말씀만 하지 마시고... 제 말씀 좀 들어주십시오.

햄릿 : 그럼 자네 말을 경청하겠네... 어서 말해보게.

길덴스턴 : 실은 어머님이신 왕비마마께서 대단히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이렇게 보냈습니다.

햄릿 : 그럼, 아주 잘 오셨습니다.

길덴스턴 : 전하, 그런 인사 말씀은 지금 이 자리에 온당치 않습니다. 황공하오나 사리에 맞게 대답해주시면 지금 어머님의 분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시다면 저는 이만 실례하고 물러갈까 합니다. (절을 하고 돌아선다)

햄릿 : 그렇게 할 수는 없다네.

로젠크랜스 : 무슨 말씀이신지요?

햄릿 :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것 말일세... 나는 머리가 돌았잖은가. 하지만 할 수 있는 대답이라면 기꺼이 해주지. 자네 소원, 그리고 어머님 소원대로 말일세. 그러니 긴 소리 말고 용건을 말하게... 어머님이 어떻다는 건가?

로젠크랜스 : 그럼 어머님의 말씀을 아뢰겠습니다. 왕자님의 행동이 너무 당돌하셔서 왕비마마께서 몹시 놀라셨다 하옵니다.

햄릿 : 거 참 기특한 자식이로군. 어머니를 놀라게 하다니! 그래, 어머님이 그렇게 놀라셔서 어떻게 됐다는 건가? 어서 말해보게.

로젠크랜스 : 전하, 왕비마마께서 주무시기 전에 전하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햄릿 : 알았어, 그렇게 하지. 지금보다 열 곱절 정도 어머니다운 어머니라고 여기고 당연히 복종하겠네. 자, 그리고 또 무슨 용건이 있나, 어서 말하게.

로젠크랜스 : 예전에는 전하께서 저를 무척 사랑해주셨습니다.

햄릿 : 지금도 자넬 사랑하네. 이 손버릇 나쁜 두 손에 걸고 맹세하네.

로젠크랜스 : 전하, 부탁입니다. 요새 울적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옵소서. 친구에게조차 불쾌하신 속마음을 숨기시는 건 전하 스스로 자유를 버리고 방 속에 갇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햄릿 : 실은 내 청운의 꿈이 사그러들어서 그런다네.

로젠크랜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국왕 폐하께서도 전하를 덴마크 왕위 계승자로 책봉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햄릿 : 아, 그야 그렇지. 하지만 '풀이 자라기를 기다리다 말이 굶어죽고...' 하긴 이 속담도 케케묵은 거라서... (이때 배우들이 피리를 들고 등장.) 아, 피리가 나왔구먼, 나도 하나 주게. (피리를 받아들고 길덴스턴을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간다) 저리 좀 가세. 자넨 어쩌자고 자꾸 날 떠보고 그러나? 그래, 날 함정에 몰아넣어야 속이 시원하겠나?

길덴스턴 :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하는 일이 무엄했다면 그건 다 전하에 대한 충정 때문입니다.

햄릿 : 무슨 소릴 하는지 잘 모르겠군... 이 피리 좀 불어보겠나?

길덴스턴 : 전 피리는 전혀 부를줄 모릅니다.

햄릿 : 제발 한번 불어보게나.

길덴스턴 : 정말 불 줄 모릅니다.

햄릿 : 제발 부탁한다니까, 어서.

길른스턴 : 용서하십시오. 전 손도 대보지 않았습니다.

햄릿 : 뭘,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다네. 이렇게 구멍을 다섯 손가락으로 막고 입을 대고 입으로 바람만 불어넣으면 되는 거야. 아마 굉장한 음악이 흘러나올 테지... 여기를 봐. 이게 그 구멍들이야.

길덴스턴 : 글쎄 손을 잘 놀려야 조화로운 소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저는 전혀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햄릿 : 에끼 이 사람, 그렇다면 자넨 날 도대체 뭘로 알고 있나? 날 피리로 삼아 불어볼 속셈이었겠지? 구멍을 잘 아는 척, 내 마음속 비밀, 알맹이를 빼내려고 말이야. 높은 음, 낮은 음, 내 심금을 울려보려는 심사... 이 작은 악기 속에는 아름다운 가락과 절묘한 음악이 들어 있지. 그러면서 피리를 볼 줄 모른다... 그래 이 사람아, 날 다루기가 피리 불기보다 쉬울 줄 알았던가? 날 무슨 악기로 취급해도 상관없네만 그래도 무슨 소리가 나게 하지는 못할 걸세. 화를 내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폴로니어스 다시 등장

 

햄릿 : 아, 어인 일이시오?

폴로니어스 : 전하, 왕비마마께서 좀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속히 오시라는 분부입니다.

햄릿 : 저기 저 낙타처럼 생긴 구름 보이시오?

폴로니어스 : 그렇군요, 영락없는 낙타 모양이군요.

햄릿 : 아냐, 실은 족제비 같은데.

폴로니어스 : 그렇습니다. 등 생김새가 족제비 같습니다.

햄릿 : 가만, 그러고 보니 고래 같지 않소?

폴로니어스 : 아 참, 고래 같군요.

햄릿 : 그럼 곧 어머님을 가 뵙는다고 아뢰시오. (방백) 원 이것들이 사람을 조롱해도 정도가 있지... (큰 소리로) 그럼 곧 가 뵙는다고 아뢰시오.

폴로니어스 : 그렇게 아뢰겠습니다. (폴로니어스,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퇴장)

햄릿 : 곧 가 뵙는다... 말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지. 자, 그럼 다들 물러가거라. (햄릿만 남기고 모든 퇴장) 지금은 한밤중, 마녀들이 활개를 치는 시각... 무덤이 활짝 입을 벌리고, 지옥이 세상을 향해 독기를 내뿜는 시각이다. 지금이면 나도 능히 사람의 뜨거운 피를 흘리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낮에는 사지가 떨려 엄두도 못 낼 그런 무시무시한 행동도 저지를 수 있을 것. 하지만 가만, 우선 어머니에게 가 보자... 오 내 마음아, 천륜의 정을 잃지는 마라. 폭군 네로 같은 영혼 따위는 이 착한 가슴에 끌어들이지 말자. 심하게 대하더라도 모자의 정은 잊지 말자. 혀끝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찌를지언정 칼을 쥐어서는 안 된다. 이 일에 관해서만은 내 혀와 영혼이 서로 등을 돌리기를... 아무리 거친 말로 책망을 할지언정 나의 영혼이여, 절대로 그 말의 실행에는 응하지 말아다오.(퇴장)

 

-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라

-궁전 안 커다란 복도. 3막 1장처럼 기도용 책상이 놓여 있다. 복도 바깥쪽은 알현실이 있다. 왕,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등이 등장.

 

왕 : 난 이제 햄릿의 꼴도 보기 싫다. 우선 미치광이를 이렇게 그냥 버려두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일. 그러니 너희들은 곧 떠날 준비를 하라.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는 것과 관련해 너희의 임명장은 곧 만들 터이니 함께 곧 출발하라. 이래서야 국정이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왕자의 광증으로 인해 저렇게 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그냥 옆에 두고 있을 수는 없어.

길덴스턴 : 곧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성덕에 의지하여 목숨을 이어가는 모든 백성의 안위를 보살펴 주시고자 하는 참으로 거룩하시고 섬세한 배려이옵니다.

로젠크랜스 : 사사로운 개인의 생명도 위험을 피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이 나라 무수한 백성의 생명이 옥체의 안위에 달려 있는지라 더더욱 조심하심이 마땅할 줄 압니다. 폐하의 불행은 옥체 한 몸에 그치지 않습니다. 마치 소용돌이 같아서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들이고야 말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높은 산꼭대기에 놓인 거대한 수레바퀴와 같다고나 할까요. 그 커다란 바퀴살 하나 하나에 수많은 운명이 부속물처럼 매여 있습니다. 이 수레바퀴가 산꼭대기에서 굴러 떨어지는 날이면 거기 매달린 온갖 것들도 하나하나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질 것입니다. 지존의 탄식은 곧 만백성의 신음 소리일 것입니다.

왕 : 자 어서 준비하여 곧 떠나도록 하라. 위험한 것에는 족쇄를 채워야 하는 법. 여태껏 너무나 방임해왔구나.

로젠크랜스 : 예, 서두르겠습니다.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퇴장)

 

-폴로니어스 등장

 

폴로니어스 : 폐하, 햄릿 왕자님께서 왕비마마께 가시나 봅니다... 신은 커튼 뒤에 숨어서 주고받는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물론 왕비마마께서 엄하게 꾸중하실 것은 틀림이 없사옵니다. 하오나 폐하의 말씀도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라, 아무래도 왕미마마 외에 다른 사람이 엿듣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자간의 정이 있어서 아드님 생각에 치우치실 수도 있으니까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폐하께서 침전에 듭시기 전에 찾아 뵙고 결과를 아뢰겠습니다.

왕 : 수고하시오, 폴로니어스 경... (폴로니어스 퇴장. 왕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아, 이 죄악, 그 악취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형제를 죽여 인류 최초의 저주를 받은 카인의 범죄, 내가 그 저주를 받는구나! 기도 드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정작 기도를 드릴 수는 없다. 헛수고일 뿐이다. 죄책감이 이렇게 강하니 양다리를 걸친 사람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설이다 아무 것도 못하고 만다. 비록 내 손에 형의 피가 엉겨붙어 두꺼워졌다 할지라도 이 저주받은 손에 하나님이 자비로운 비를 억수같이 내려주셔서 눈처럼 희게 깨끗이 씻어줄 수는 없을까? 죄인을 구제해주지 못한다면 어찌 자비라 할 수 있는가? 죄를 미리서 막고, 또 저지른 죄악을 용서해주는 이중의 공덕이 있기에 바로 기도를 드리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도 희망을 갖고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으리라... 내 죄는 이미 저질러진 것. 그러나 어떤 기도를 드려야 알맞을까? '비열한 살인죄를 용서하소서'라고 할까? 안될 말이지. 글쎄 나는 살인의 결과 얻은 이득을 아직도 움켜쥐고 있지 않은가. 왕관와 야망, 그리고 왕비를 손아귀에 넣고 아직 흥청대고 있지 않은가? 죄로 얻은 소득을 어깨에 짊어진 채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 썩어빠진 세상에선 죄로 더럽혀진 손도 황금으로 덧칠하면 정의를 밀쳐낼 수 있으며 부정하게 긁어모은 바로 그 재물로 국법을 매수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하지만 천국에서는 그게 통할 수 없어. 기만은 통하지 않아. 하나님 앞에서 우리 행위는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우리는 자신의 죄와 마주 대하면서 모든 죄상을 일일이 실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 어떡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참회하자... 참회하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참회할 수도 없는 경우에는 어찌한다? 아, 이 비참한 심정! 오, 죽음같이 어두운 이 가슴 속! 덫에 걸린 새 같은 내 영혼이여! 덫에서 빠져 나오려고 파닥거릴수록 더욱 꼼짝도 할 수 없구나! 천사들이여, 날 도와주오! 그래, 어디 해보자. 자, 완고한 무릎이여 꿇을지어다. 강철같이 굳은 심장아, 갓난아기 근육처럼 부드러워지렴... 그저 모든 것이 다 잘 되어지기를... (무릎을 꿇는다)

 

-햄릿 알현실로 해서 등장. 왕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햄릿 : (복도 입구에 다가서면서) 기회는 지금이다. 마침 저 자가 기도 드리는 동안에... 자, 단칼에 해치우자. (칼을 빼든다) 그렇게 하면 저 자를 천당으로 보내고 나는 원수를 갚게 되지 않는가... 가만 있자, 이건 생각해볼 문제 아닌가. 저 악당이 나의 아버님을 살해했는데... 그 보답으로 외아들인 나는 복수랍시고 저 악당을 천국으로 보낸다? 아서라! 이건 복수는커녕 사례를 해주는 셈 아닌가... 저 자에게 나의 아버님이 살해당하셨을 때 아버님은 현세의 온갖 욕망을 그대로 짊어진 상태였다. 죄악이 마치 5월의 꽃처럼 활짝 피어있을 때 살해당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아버님이 저승에 가서 무슨 심판을 받을지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는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님이 중형을 면키는 어려웠을 것이야. 그런데 이제 저 자가 저렇게 기도하면서 영혼을 깨끗이 씻고 지금 천국에 갈 준비를 잘 하고 있는 판에 죽여 버린다?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복수란 말인가? 천만에 말씀.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칼을 칼집에 넣는다) 칼이여, 다시 네 돌아가라. 좀 더 끔찍한 그런 순간을 기다려라. 왕이 곤드레만드레 취해 잠들었거나, 혹은 노여움에 치를 떨 때, 이불 속에서 불륜의 쾌락을 탐닉할 때, 혹은 도박을 하거나 욕설을 퍼부을 때, 하여튼 전혀 구원받을 희망이 없는 그런 못된 짓을 하고 있을 때 행동하자. 그러면 저 자는 천당을 발뒤꿈치로 걷어차고, 깜깜한 지옥으로, 그 지옥만큼 영혼이 시커멓게 그을려 굴러 떨어질 것 아닌가. 어머니가 기다리시겠지... 네가 지금 기도하고 있지만, 그건 네 고통을 길게 끌 뿐이다... (그곳을 떠난다)

왕 : (일어서면서) 말은 하늘로 날아갔지만, 마음은 그대로 지상에 남아 있구나. 마음이 담기지 않은 빈 말이 어찌 하늘에 닿을 수 있으랴...(퇴장)

 

- 어머니 마음의 거울

-왕비의 침실. 한쪽 벽에 커튼이 늘어져 있고, 또 한쪽 벽에는 선왕과 현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의자 몇 개와 침대가 있다. 왕비와 폴로니어스 등장.

 

폴로니어스 : 햄릿 왕자님께서 오십니다. 왕비마마, 아주 따끔하게 타이르십시오. 장난이 너무 지나치면 참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입니다. 마마께서 중간에 끼여 폐하의 진노를 가라앉히느라 심려하셨다고 말씀하십시오. 신은 여기 숨어 듣겠습니다. 제발 아주 따끔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햄릿 : (밖에서)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

왕비 : 내 염려는 마시오. 어서 숨기나 해요. 왕자가 오는 소리가 들리오.(폴로니어스 휘장 뒤에 숨는다)

-햄릿 등장.

햄릿 : 어머님, 무슨 일이십니까?

왕비 : 햄릿, 너 때문에 아버님께서 무척 진노하셨다.

햄릿 : 제 아버님은 어머님 때문에 진노가 대단하시죠.

왕비 : 아니,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느냐?

햄릿 : 원, 그렇게 딱하신 반문만 하십니까?

왕비 :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햄릿?

햄릿 : 무슨 말이라뇨?

왕비 : 넌 이 어미조차 잊었단 말이냐?

햄릿 : 천만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두고 맹세하지요. 왕비마마이시고 시동생의 아내이시죠. 그리고 또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저의 어머니시지요.

왕비 : 네가 정 이렇게 나온다면 너를 제대로 꾸짖을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겠구나. (퇴장하려 한다)

햄릿 : (왕비를 붙들고) 자자, 이리 앉으십시오. 움직이지 마세요. 소자가 거울로 어머니 마음속을 환히 비춰서 보이게 해 드릴 테니까요. 그 때까진 한 발자국도 못 떠나십니다.

왕비 : 대체 어쩔 셈이냐? 날 죽일 작정이냐? 이봐라,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폴로니어스 : (휘장 뒤에서) 이크 큰일이구나, 누구 없느냐. 앗!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햄릿 : (칼을 빼들고) 이건 뭐야! 쥐새끼냐? 뒈져라, 콱 뒈져 버려. (휘장 속으로 칼을 찌른다)

폴로니어스 : (쓰러지면서) 아구구 나 죽는다!

왕비 : 어머나, 이게 무슨 짓이냐?

햄릿 :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겠어요. 왕인가요? (휘장을 들고 보니 폴로니어스가 죽어 있다)

왕비 : 아, 이 무슨 끔찍하고 잔인한 짓이냐!

햄릿 : 끔찍한 짓이라구요... 그렇지요 어머니, 왕을 죽이고 왕의 동생과 결혼한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지요.

왕비 : 왕을 죽이다니!

햄릿 : 예, 왕비마마, 그렇게 말했습니다. (폴로니어스의 시체를 가리키면서) 지지리 멍청한 인간 같으니... 덤벙대고 아무 데나 나서서 참견하더니 결국 이 꼴이구나. 잘 가거라! 나는 너가 더 높은 상전인 줄 알았다. 이것도 네 팔자소관, 이젠 잘 알았겠지. 너무 촐랑대면 위험하다는 걸. (휘장을 놓고 왕비를 향하여) 그렇게 손만 쥐어짜지 마세요. 고정하시고 자리에 앉으시지요. 소자가 그 가슴을 쥐어짜 드릴 테니까요. 설마 도리가 통하지 않을 만큼 무쇠덩어리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설마 더러운 습관에 젖어 인간의 감정이 뚫고 들어갈 수도 없게 무뎌지신 건 아니시겠죠.

왕비 : 이 어미가 도대체 무엇을 어쨌다고, 네가 감히 눈을 부릅뜨고 대드는 거냐?

햄릿 : 그럼 말씀드리죠. 여인의 정숙함을 짓밟고 정결한 부덕을 위선으로 부르게 하셨지요. 청순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마에서 장미꽃을 떼어버리고 그 대신 수치로 벌레 먹게 했고 결혼의 맹세를 도박꾼들의 약속 마냥 거짓되게 만드는 기막힌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 어머님은 부부의 약속에서 그 혼을 빼 버리고 신에게 맹세한 서약을 한낱 광대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행동에는 하늘도 격분해서 낯을 붉히고 이 반석같은 대지도 최후의 심판이 다가온 것처럼 수심에 잠겨 떨고 있지 않습니까.

왕비 : 아니 도대체 뭐가 어쨌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이냐?

햄릿 : (벽에 걸려 있는 두 초상화 쪽으로 왕비를 데리고 가서) 자, 이 그림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젠 또 이 그림을 보시구요. 두 형제를 그린 초상화입니다. 자, 이 이마에 서린 고귀한 기품을 보십시오. 아폴로같이 물결치는 머리카락, 주피터같은 이마, 주위를 위압하는 군신 마르스와 같은 눈빛, 전령의 신 머큐리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산봉우리에 막 내려선 것 같은 모습, 이런 미덕을 한몸에 갖추고 하늘의 신들이 진짜 남자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본보기로 만들었던 이 분이 바로 어머님의 전 남편이셨습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이 초상화를 보세요. 이 자가 현재의 남편입니다. 건강한 형을 병든 보리이삭처럼 말려 죽인 인간입니다. 눈이 있으면 한 번 보세요. 어머님은 아름다운 산, 먹이가 풍부한 숲을 버리고 이 수렁에 내려와서 눈을 붉히며 먹이를 찾으시다니... 흥! 과연 눈이 있기는 있으십니까? 설마 이걸 사랑이라 부르지는 마십시오. 어머니 연세쯤이면 불같은 욕정도 식어서 순해지며 분별심에 복종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 분별이 있다면 여기서 이리로 자리를 옮길 수 있겠어요? 욕정이 있는 걸 보니 감각도 있으실 텐데 그 감각이 이제 마비되어버린 겁니까? 어떤 미치광이라도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광증 때문에 감각이 무뎌진다 해도 이런 차이를 구분 못할 만큼 판단력을 잃진 않았을 거예요. 이처럼 어리석은 짓을 하시다니 대낮에 도깨비에게 홀려 눈 뜬 장님이라도 되셨나요? 촉각이 없으면 눈이 있을 거고, 시각이 없으면 촉각이라도 있을 거고, 손과 눈이 없어도 귀가 있구, 다른 아무 감각이 없다면 코라도 있을 것 아닙니까? 올바른 감각이 쇠잔해진다 해도 최소한의 부분만 남아 있으면 이렇듯 우둔한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아 수치심이여, 너의 부끄러운 마음은 어디로 갔느냐? 더러운 욕정아, 늙은 여체에도 반란의 불씨를 일으킬 수 있다면 피끓는 청춘들 가운데서 절개와 도덕 따위는 양초처럼 불에 녹아 없어지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느냐. 타오르는 젊음이 욕정의 불길 속에 뛰어들어 온 몸을 태워 없앤들 부끄럽다 할 것조차 없다. 차가운 서리까지도 불처럼 타오르고 이성이 정욕의 뚜쟁이 노릇을 하는 판이니 말이다.

왕비 : 오 햄릿, 그만해라. 네 말을 들으니 내 눈이 내 영혼을 굽어보게 되는구나.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는, 이 시커멓게 더렵혀진 내 영혼의 얼룩 말이다.

햄릿 : 지워질 수 없죠. 더럽고 역겨운 땀내가 범벅이 되고 기름이 번질거리는 이불 속에 들어가 더러운 돼지 같은 놈과 시시덕거리며 다정한 얘기를 주고받을 테니 말입니다.

 

- 참회하세요!

 

왕비 : 아 이제 그만, 제발 그만 하라니까. 네 말이 꼭 비수처럼 내 귀를 찌르는구나. 제발 그만. 그만해다오, 햄릿.

햄릿 : 살인자, 악당, 선왕의 발가락 때만도 못한 그 놈, 왕의 탈을 뒤집어쓴 어릿광대 자식, 나라의 영토와 왕위를 훔쳐간 낯두꺼운 도둑놈, 무엄하게도 선반 위에서 지엄한 왕관을 훔쳐서 제 호주머니에 처넣은 놈...

왕비 : 제발 그만.

햄릿 : 넝마를 두른 거지 왕초 같은...

 

-이때 유령이 잠옷 차림으로 나타난다.

 

햄릿 : (유령을 보며) 오, 하늘의 천사들이여, 나를 구해주시오, 나를 하늘의 날개로 덮어줍시사... (유령에게) 날더러 어쩌란 말이오?

왕비 : 아아, 드디어 왕자가 미쳐 버렸구나.

햄릿 : 아, 저를 꾸짖으러 오셨지요? 이 불초자식이 어물대며 때를 놓치고 꾸물댄다고 꾸짖으러 오셨군요. 때를 놓치고 감정도 식어지고 당신의 지엄한 명령을 곧바로 시행하지 못하는 이 불초한 자식 말입니다... 아, 그렇죠?

유령 : 잊지 마라! 이렇게 내가 찾아온 것은 무디어진 네 결심을 새롭게 해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봐라, 네 어미가 저렇게 겁을 먹고 떨고 있지 않으냐? 저 영혼의 번뇌를 속히 덜어 드려라... 심약할수록 고민은 더 강하게 작용하는 법. 자, 햄릿... 어머니께 말을 걸어드려라.

햄릿 : 왕비마마 좀 어떠십니까?

왕비 : 아아, 너야말로 괜찮으냐?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허공을 바라보며, 텅빈 공기와 얘길 하다니? 네 번득이는 눈에 미친 것 같은 마음이 비치는구나. 곱게 빗은 너의 머리칼이 마치 잠자다 놀라 깨어난 병사처럼 가닥가닥 곤두서고 있구나... 아 착한 내 아들 햄릿아, 진정해라. 열에 들뜬 네 마음에 인내심을 되찾아다오. 도대체 어딜 그렇게 쏘아보는 거냐?

햄릿 : 아 저기! 저기를 좀 보세요! 저렇게 창백한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지 않습니까? 저 모습, 가슴에 사무치는 저 원통한 사연을 들으면 목석도 아마 감동할 겁니다. 제발 절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그렇게 애처로운 표정을 보면 저의 굳은 결심도 꺾이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눈앞에 큰 일을 두고도 결행을 못하게 되고, 피를 흘려야 할 제가 대신 눈물을 흘리게 될 것만 같습니다.

왕비 : 도대체 누구를 보고 중얼대는 거냐?

햄릿 : 저기, 아무 것도 안 보이세요?

왕비 : 전혀,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뭐가 보인다고 그러느냐?

햄릿 : 그럼, 아무 소리도 안 들리십니까?

왕비 : 전혀, 우리 두 사람의 말소리 외에는.

햄릿 : 아, 저기를 보세요, 저기를요! 지금 소리도 없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아버님께서 생전에 입으시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저길 보세요, 지금 가십니다. 아 벌써 문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망령 퇴장)

왕비 : 그거야말로 네 머릿속의 망상일 뿐이야! 실성하게 되면 곧잘 그런 환상을 보게 되는 거야.

햄릿 : 실성이라구요? 소자의 맥박은 어머니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아주 힘차게 고르게 뛰고 있습니다. 제 말은 절대 미쳐서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시험해 보시렵니까? 조금 전에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해 보이죠. 미쳤다면 그대로는 못할 테니까요. 어머니, 제발 부탁합니다. 양심에다 그렇게 위안의 고약을 바르지 마세요. 자신의 죄를 잊고 소자의 광증 탓이라고 돌리지 마세요. 고약은 종기의 겉을 덮어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독기가 점점 살 속으로 번져 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썩고야 맙니다. 하나님 앞에 과거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세요. 과거를 뉘우치고 미래의 죄악을 피하세요. 죄악의 잡초에 비료를 뿌려 더 간악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이렇게 무엄하게 직언을 말씀드리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 하긴 요즘같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정의가 부정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 실정이죠. 뿐만 아니라 바른 말을 하는 데도 머리를 숙이고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판이기 때문에 이렇게 용서를 구하는 겁니다.

왕비 : 아 햄릿, 네가 내 심장을 둘로 쪼개버리는구나.

햄릿 : 아 그러시다면 나쁜 쪽의 심장은 도려내고 나머지 반쪽으로 좀더 깨끗하게 살아가세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하오나 숙부의 침실로 가진 마세요. 정절이 없거든 있는 척이라도 하세요. 습관이라고 하는 괴물은 악습을 집어삼키고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하지만, 또한 천사와 같은 일면도 있지 않습니까? 항상 점잖고 착하게 행동하면 처음에는 어색한 옷을 입은 것 같아도 어느새 쉽게 몸에 잘 어울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밤만 참아 보세요. 그러면 내일 밤엔 참는 것도 좀더 쉬워질 것이고, 모레 밤엔 더욱 쉬워질 겁니다. 이렇게 습관이란 인간의 천성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악마를 아주 눌러서 그를 우리의 정신 밖으로 내쫓을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안녕히 주무세요. 회개하여 신의 축복을 받으십시오. 원하시면 소자도 함께 어머님을 용서해주시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이 늙은이를 죽이다니, (폴로니어스를 가리키며) 불쌍한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게 하늘의 뜻입니다. 신은 소자로 하여금 이 늙은이를 죽이게 함으로써 이 노인을 처벌하시고, 또한 저에게도 벌을 내리셨습니다. 이 시체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 사람을 죽인 책임도 당연히 제가 지겠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안녕히 주무세요. 자식된 도리로 소자의 말씀이 너무 가혹한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건 나쁜 일의 시작일 뿐이고, 이제 더 나쁜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나가려다 다시 돌아서서) 한마디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왕비마마.

왕비 : 날더러 어떡하라는 거냐?

햄릿 : 방금 소자가 한 얘기는 모두 잊어버리세요. 비곗덩어리 같은 왕이 유혹하거든 다시 그 이불 속으로 들어가세요. 그래서 볼을 음탕하게 꼬집고 요 귀염둥이 생쥐라고 부르게 하세요. 그 냄새 나는 입을 갖다 대고 징그러운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애무해주거든 방금 이야기를 전부 일러바치세요. 햄릿은 정말 미친 게 아니고 미친 척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왕에게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게 유리할 거예요. 아무리 아름답고 덕스럽고 현명하신 왕비라 해도 이와 같은 중대사를 어떻게 숨길 수 있겠습니까? 상대는 마녀의 앞잡이인 두꺼비, 박쥐 서방, 수쾡이 같은 놈인데 말입니다. 어림도 없는 일이죠. 아니 분별이나 비밀 따위가 이 다 뭐하는 겁니까. 지붕 마루에 걸어둔 새장에서 새들을 모두 날려보내세요. 그리고 원숭이처럼 나도 한번 해본다고 새장 속에 들어가 뛰어내리다가 목뼈나 부러뜨리시지요.

왕비 : 염려 말아라. 사람의 말이 숨결에서 나오고, 숨결이 목숨에서 나온다면 네가 한 말을 입밖에 낼 목숨이 내겐 없단다.

햄릿 : 소자는 영국에 가게 됐습니다. 알고 계시지요?

왕비 : 아 참, 깜빡 잊고 있었구나. 그렇게 결정됐다고 하더구나.

햄릿 : 친서는 이미 봉인돼 있고, 독사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동창 친구 두 명이 어명을 받았다지 뭡니까. 이 녀석들이 길잡이가 되어 소자를 함정으로 몰고 갈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디 해보라지. 제 손으로 파묻은 지뢰가 터져서 몸이 산산조각 나서 공중에 날아오르는 꼴도 재미있겠지요. 두고 보세요. 소자는 그놈들이 묻는 지뢰보다 몇 자 더 밑을 파고들어서 터뜨려 그 놈들을 달나라까지 날려보낼 겁니다. 거 참, 신나겠군.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어머니 그럼 이제 정말 안녕히 주무세요. 이 영감을 이제 처리해야겠는데... 꿀 먹은 벙어리가 됐군요. 아주 조용하고, 아주 엄숙하시구먼. 살아 생전에는 어리석은 수다쟁이 악당이더니... 자 이리 오너라, 너하고의 일을 이제 끝내야지. 안녕히 주무세요, 어머니. (햄릿, 폴로니어스의 시체를 끌고 퇴장. 혼자 남은 왕비는 침대에 엎드려 흐느껴 운다)

4막 1장

 

- 미치광이를 멀리 보내야

-같은 장소. 잠시 후 왕이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을 거느리고 등장.

 

왕 : (왕비를 안아 일으키며) 그 한숨, 그 탄식... 필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보구려. 그 곡절을 얘기해 보시오. 과인도 알고 싶소. 그래 햄릿은 어디 있소?

왕비 : 잠깐 두 사람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오...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이 자리를 비킨다) 아 폐하, 오늘밤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왕 : 도대체 무슨 일이오? 햄릿이 어떻게 됐소?

왕비 : 완전히 실성을 해서, 바다와 바람이 맞붙어 누구 힘이 더 센지 겨루는 것처럼 광란을 하더니... 벽쪽 휘장 뒤에서 인기척을 듣고는 휙 칼을 빼들고 미친 사람처럼 "쥐새끼다, 쥐새끼!" 이렇게 외치면서 숨어 있던 노인을 찔러 죽였습니다.

왕 :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과인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봉변을 당할 뻔했군. 햄릿을 이대로 두었다간 정말 큰일 나겠소. 당신은 물론이요, 과인도 마찬가지요. 누구나 다 그렇단 말이오. 대체 이 참사에 대해 뭐라고 변명을 한단 말인가? 결국 세상은 나를 책망하게 될텐데... 이 젊은 미치광이를 미리 경계하여 감금하고 사람들 앞에 나다니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햄릿을 너무 사랑하다 보니 최선의 방책을 일부러 회피하고 말았구려. 고질병을 가진 것처럼 소문이 날까 봐 쉬쉬하다 도리어 자기 목숨을 줄인 꼴이지 뭐요. 그래 햄릿은 대관절 어딜 갔소?

왕비 : 자기가 죽인 시체를 치운다고 끌고 갔습니다. 글쎄 미치긴 미쳤어도 막돌 속에도 순금이 들어 있는 것처럼... 광란 중에도 한 줄기 맑은 정신이 남아 있는지... 자기가 저지른 일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더군요.

왕 : 자 왕비, 안으로 듭시다! 산에 먼동이 트는 대로 즉시 햄릿을 배에 태워 떠나 보내야겠소. 이번 불상사는 그저 과인의 권위와 계책으로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겠소. 여봐라! 길덴스턴!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이 돌아온다.

왕 : 너희 두 사람은 어서 가서 몇 사람 더 불러다가 도와줘야겠다. 햄릿이 미쳐 날뛰다가 그만 폴로니어스를 죽이고 말았구나. 지금 시체를 끌고 어디론가 간 모양인데... 가서 햄릿을 찾거든 잘 타일러서 시체를 성당으로 옮기도록 하라. 수고스럽지만 서둘러다오!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퇴장) 여보 거트루드, 어서 갑시다. 믿을만한 중신들을 불러들여 이 갑작스러운 불상사에 대해 알리고 대책을 얘기해야겠소. 세상의 독기 어린 비방의 화살은 대포알처럼 지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날아가는 법... 그러니 이렇게 미리 손을 써두어야 과인의 명성이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오. 자 들어갑시다! 지금 나는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한 생각뿐이오.(왕과 왕비 퇴장)

4막2장

 

- 해면 같은 인간들

-궁전 안의 다른 방. 햄릿 등장.

 

햄릿 : 이만하면 충분하지.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 (밖에서) 전하! 햄릿 전하!

햄릿 : 가만 있자, 저게 무슨 소리야? 누가 햄릿을 부르는 건가? 아, 저기들 또 함께 오시는군.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호위병을 데리고 허겁지겁 나타난다.

 

로젠크랜스 : 햄릿 님, 시체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햄릿 : 흙과 섞었다네. 둘은 서로 친척뻘이라서 말일세.

로젠크랜스 : 어디 두셨는지 알려 주십시오. 저희들이 시신을 찾아다가 예배당에 안치하겠습니다.

햄릿 : 믿지 말게나, 제발!

로젠크랜스 :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햄릿 : 내가 자네들 비밀은 지켜주고, 내 비밀은 자네들에게 다 털어놓을 거라고 말일세. 더구나 왕의 아들인 내가 해면 같은 족속들에게 질문을 받고 함부로 대답할 줄 알았던가? 어림없는 소리지.

로젠크랜스 : 해면 같은 족속들이라구요?

햄릿 : 암, 그렇고 말고. 임금의 총애를 해면처럼 빨아들이고 있지 않나. 왕이 주는 보상과 권세 말이야. 하긴 임금으로서도 자네들 같은 신하가 요긴할 테지. 마치 원숭이가 입 안에 사과 한 쪽을 물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다가 필요하면 꿀꺽 삼켜버리는 거야. 자네들에게 보상과 권세를 안겨 줬다가 왕은 필요할 때 다시 꾹 짜는 거야. 그럼 해면 같은 자네들은 다시 바삭바삭 말라 버리는 걸세.

로젠크랜스 : 전하,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햄릿 : 거 참, 반가운 얘길세... 아무리 심한 독설도 멍청이들에게 우이독경이지 않은가.

로젠크랜스 : 전하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시체를 어디에 두셨는지요? 그리고 함께 어전으로 가셔야 합니다.

햄릿 : 시체는 선왕의 어전에 가 있다네. 하지만 지금 왕은 시체와 함께 있지 않아. 왕은 시시한 물건이라...

길덴스턴 : 물건이라구요, 전하?

햄릿 : 별것 아니란 말일세. 자, 이제 날 어전으로 데려가게. 꼭꼭 숨어라, 찾으러 간다!

(햄릿이 달려간다. 두 사람이 호위병과 함께 햄릿의 뒤를 쫓아간다.)

4막 3장

- 영국 왕이여, 햄릿을 죽여라!

-궁전 안의 홀. 왕이 2, 3명의 중신들과 위쪽 탁자 앞에 마주 앉아 있다.

 

왕 : 아무튼 햄릿을 찾아서 그 시신을 찾도록 사람들에게 일러 놓았소.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풀어놓는 건 위험천만이오. 그렇다고 엄벌을 내릴 수도 없고. 그 아이는 어리석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이오. 도대체 대중들은 이성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다만 눈으로 보아서 좋고 옳음을 결정하고, 죄인이 저지른 죄는 생각지 않고 받는 형벌에만 동정하기 일쑤요. 그러니 일을 원만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햄릿을 급히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겠소. 물론 겉으로는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한 것처럼 꾸며야 할 것이오. 비상한 병은 비상한 처방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는 법. 달리 길이 없지 않겠소.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 그밖의 사람들 등장) 그래, 어떻게 되었느냐?

로젠크랜스 : 폐하, 시신을 감추어둔 장소를 물어 보아도 왕자님은 도무지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왕 : 그래 왕자는 어디에 있는가?

로젠크랜스 : 밖에 계십니다. 감시인을 붙여 두었습니다. 분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 : 이봐라, 왕자를 이리로 데리고 오너라.

로젠크랜스 : 이보게! 왕자님을 모셔오게.

-햄릿 병사들에게 호위되어 등장.

왕 : 그래 햄릿, 폴로니어스는 어디 있느냐?

햄릿 : 식사중입니다.

왕 : 식사중이라고? 어디서?

햄릿 : 먹고 있는 게 아니라 먹히고 있는 중이지요. 지금 구더기 같은 정치꾼들이 모여서 신나게 먹어대는 중입니다. 구더기는 먹는 일에는 제왕이지요. 우리 인간은 자신이 살찌려고 다른 동물을 살찌게 해서 잡아먹고, 우리는 스스로 살찌게 해서는 구더기에게 먹히죠. 살찐 왕이나 여윈 거지나 두 가지 요리가 맛은 다르지만 같은 구더기의 식탁에 오르는 두 가지 요리인 셈이죠... 그뿐입니다.

왕 : 원 참, 한심하구나!

햄릿 : 왕을 뜯어먹은 구더기를 미끼로 물고기를 낚고, 그 구더기를 먹고 살찐 물고기를 사람이 먹고... 이러는 거지요.

왕 :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햄릿 : 별 것 아닙니다. 그저 왕이라 해도 거지의 뱃속을 행차하실 수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왕 : 폴로니어스는 어디 있느냐?

햄릿 : 천당예요... 사람을 보내 알아보시지요. 거기서 찾지 못하거든 폐하께서 몸소 다른 곳을 찾아보시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이 달 안에 영 찾지 못하시면 폐하께서 복도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가실 때 거기서 그 냄새가 날 겁니다.

왕 : (시종들에게) 거기 가서 찾아보아라.

햄릿 : 서둘 필요는 없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야. (시종들 퇴장)

왕 : 햄릿, 이번 일은 몹시 유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 일이 이렇게 된 바에는 서둘러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다. 그러니 서둘러 준비하도록 하라. 배도 이미 준비됐고, 바람도 순조롭다. 함께 갈 부하들도 기다리고 있다. 영국으로 떠날 준비는 완전히 갖추어졌다.

햄릿 : 영국행이라구요?

왕 : 그렇다, 햄릿.

햄릿 : 좋습니다.

왕 : 암, 과인의 뜻을 알아준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햄릿 : 그 뜻을 훤이 아는 천사가 제 눈에도 보입니다. 자, 떠나자, 영국으로! (절을 하며) 안녕히 계십시오, 어머님.

왕 :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말해야지, 햄릿.

햄릿 : 어머님이면 됩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소위 남편과 아내, 남편과 아내는 일심동체, 그러니까 어머님이시지요. (호위병들을 돌아다보며) 자, 가자! 영국으로! (호위를 받으며 퇴장)

왕 :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에게) 어서 뒤를 따라가 곧바로 배에 태워라. 지체하지 말고 오늘 밤 안으로 떠나보내야 한다. 어서 떠나거라! 여기 필요한 절차는 모두 준비가 끝났다... 신신당부하노니, 서둘러 다오. (왕 이외의 사람들 모두 퇴장) 그런데, 영국 왕이여, 그대가 나의 호의를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그야 충분히 알고 있겠지... 덴마크 군대의 창과 칼이 휩쓸고 간 상처가 아직도 생생할 터인데, 또한 그대는 스스로 자진하여 내게 공경하는 뜻을 표해 왔으니까... 지금 나의 이 의뢰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친서에 길게 써서 충분히 설명했거니와, 햄릿이 그곳에 닿으면 즉각 죽여 없애는 거다. 이는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영국 왕이여! 그 자는 마치 열병처럼 내 핏속에서 발악을 하고 있나니... 이걸 치료할 역할을 그대가 해 주어야 한다. 이 일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어떤 행운이 온다 해도 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퇴장)

4막 4장

 

- 포틴브라스의 진군

-덴마크 어느 항구 근처의 평원. 포틴브라스와 군대를 이끌고 진군해온다.

 

포틴브라스 : 부대장, 어서 가서 덴마크 왕에게 나를 대신하여 문안을 드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 포틴브라스가 과거의 협정대로 지금 군대를 이끌고 덴마크왕국의 영토를 통과할 수 있도록 폐하의 윤허를 바란다고 전해주오. 그리고 나서 다시 만날 장소는 대장도 잘 알고 있겠지. 만약 덴마크 왕께서 직접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찾아 뵙고 배알하겠노라고 전해 주오.

부대장 :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부대장 일행이 작별하고 나간다)

포틴브라스 : (휘하 부대에게) 서서히 진군하라. (포틴브라스와 부대는 다른 길로 진군한다)

 

-부대장이 도중에 항구로 향하는 햄릿, 로젠크랜스, 길덴스턴, 호위병들을 만난다.

 

햄릿 : 장군, 저들은 어느 나라 군대인가?

부대장 : 노르웨이 군대입니다.

햄릿 : 대체 출정하는 목적이 어떤 것이오?

부대장 : 폴란드의 어떤 지역을 공격하기 위한 것입니다.

햄릿 : 지휘관은 누구요?

부대장 : 노르웨이 노대왕의 조카 포틴브라스 공이십니다.

햄릿 : 폴란드의 본토로 쳐들어가는 건가? 아니면 어느 국경 지역인가?

부대장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무 실속도 없는 명분 싸움일 뿐입니다. 손바닥만한 땅을 점령하러 가는 중입니다만 저 같으면 소작료를 5더컷만 더 내라고 해도, 그저 단돈 5더컷 말입니다, 돈 내고 붙여먹지 않을 그런 땅입니다. 실제로 노르웨이 왕이건 폴란드 왕이건 막상 그걸 팔려고 하면 그 이상 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햄릿 : 호, 그렇다면 폴란드 사람들도 구태여 그까짓 땅은 지키려고 하지도 않겠군.

부대장 : 웬걸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미 수비대를 보내 지키고 있답니다.

햄릿 : 2천명의 산 목숨과 2만 더컷의 돈을 퍼붓는다 해도 지푸라기만한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리라. 나라의 번영과 평화가 지나치면 이런 종기가 생기는 법, 밖으로는 아무 증세도 나타나지 않지만 안으로 곪아터져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생이 많소, 대장.

부대장 : 그럼 이만 실례합니다.(퇴장)

로젠크랜스 : 전하, 그만 가 보실까요?

햄릿 : 내 곧 뒤따라갈 터이니, 먼저들 가게나.(햄릿만 남기고 모두 퇴장) 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사사건건 나를 책망하며 무디어진 복수심을 채찍질하는구나!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하루하루가 단지 먹고 자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짐승과 다를 게 무엇인가? 신이 인간에게 이성의 크나큰 능력을 주셔서 미래와 과거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신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신이 주신 이성을 쓰지 않아 곰팡이가 스는 것은 분명 신의 뜻이 아니렷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떠한가? 짐승처럼 모든 것을 까먹은 것일까? 아니면 비겁한 망설임 때문에 일의 결과를 너무 소심하게 염려하는 탓일까... 글쎄 그놈의 생각이란 게 4분의 1만이 지혜이고 나머지 4분의 3은 비겁함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도대체 나도 모를 일. '이 일은 꼭 해야 한다'고 언제나 입으로는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허송세월만 하고 있으니. 나에게는 그 일을 실행할 대의명분도 의지도 힘도 수단도 모두 다 있지 아니한가... 대지와 같이 엄청난 실제 사례가 나를 채찍질하는구나. 저 군대를 좀 보라... 수많은 병력과 엄청난 비용을 들이지 않았는가. 게다가 부대를 통솔하는 사람은 가냘픈 젊은 귀공자 아닌가. 그러나 그의 정신은 원대한 야망에 부풀어 예견할 수 없는 미래 따위는 비웃으며 한 번 죽으면 그만인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운명과 죽음과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가. 그것도 기껏 달걀 껍데기만한 초라한 땅덩어리가 목표인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위대한 행위에는 당연히 그만큼 뚜렷한 명분도 있어야 하겠지. 하지만 남자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고 하면 한 오라기의 지푸라기를 위해서라도 죽음을 걸고 당당히 맞서 싸울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도대체 지금 나는 무슨 꼴인가? 아버님은 살해 당하고, 어머님은 더럽혀지고... 이만하면 복수를 위해 이성과 정열이 터져나와야 할 지경인데도 아직 결단을 못하고 여전히 잠꼬대같은 소리만 하고 있지 않은가? 보라, 창피하지도 않은가? 지금도 저 2만 명의 군사들이 죽음의 길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변덕스럽고 쓸모도 없는 명예 따위를 위해 마치 잠자리에라도 가듯이 무덤을 찾아가고 있다. 대군의 자웅을 겨루기에도 부족하고 전사자들을 묻을 묘지로도 모자랄 좁은 땅덩어리를 위하여 싸우러 가지 않는가? 자, 지금부터는 내 마음아, 잔인해져야 한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퇴장)

-몇 주일이 지나간다.

4막 5장

 

- 미쳐버린 오필리어

-엘시노어 궁전의 한 방. 왕비, 시녀들, 호레이쇼, 신사 한 명 등장.

 

왕비 : 지금은 오필리어를 만나고 싶지 않구나.

신사 : 하지만 기어이 뵙고 싶다고 조르고 있습니다. 정말 미쳐 버린 모양입니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왕비 :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거요?

신사 : 자꾸 부친의 말을 하곤 합니다. 세상에 별별 해괴한 일이 많다느니,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가슴을 치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버럭 내기도 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중얼거립니다. 말하는 내용이야 별거 아닙니다만 듣는 사람들은 불쌍하게 여기면서 그 뼈대 없는 말을 이어 붙여서 제멋대로 추측하고, 저마다 자신의 생각에 맞게 해석하는 거지요. 그 눈짓, 끄덕대는 고개짓, 몸짓 하나하나를 어림해 보면 비록 하는 말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뭔가 엄청 불행한 사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호레이쇼 : 아무튼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고 위험한 무리들의 마음에 억측의 씨를 뿌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왕비 : 그럼 들오오게 하시오. (신사 퇴장. 왕비 방백) 죄악의 본성이 원래 그렇겠지만 병든 내 마음에는 하찮은 일들 하나하나가 모조리 재앙의 징조처럼 느껴지는구나. 죄를 지은 마음은 두려움에 질려 떨고, 그래서 뭔가 감추려고 애를 쓸수록 그게 도리어 드러나고 마는 법이지.

 

-신사가 오필리어를 데리고 다시 등장. 오필리어는 실성해 있다. 머리는 풀어헤쳐 어깨까지 내려오고 손에는 류트(현악기의 일종 - 편집자 주*)를 들고 있다.

 

오필리어 : 덴마크의 아름다운 왕비 마마는 어디에 계셔요?

왕비 : 아, 오필리어, 이게 웬일이냐?

오필리어 : (노래한다)

사랑하는 내 님을 어떻게 알아낼까?

남의 님과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모자에 지팡이 그리고 미투리 신은

순례의 나그네가 우리 님이라오

왕비 : 가엾은 오필리어, 그 노래는 대체 무슨 뜻이지?

오필리어 : 뜻이라구요? 어쨌든 좀더 들어보세요. (노래한다)

님은 떠나갔어요 먼 나라로

님은 가셨어요 영영 하늘나라로

머리맡엔 푸른 잔디

발치에는 묘비석이 하나 서 있어요.

왕비 : 나 좀 보려므나, 오필리어...

오필리어 : 제발 가만히 더 좀 들어보세요.(노래한다)

수의는 산봉우리의 눈처럼 희고...

 

-왕이 들어온다.

 

왕비 : 가엾어라, 저 모습을 보세요, 폐하.

오필리어 : (노래한다)

예쁜 꽃 속에 파묻힌 내 님

저 세상 길을 떠난다네

사랑하는 연인은 눈물로 얼룩지고

왕 : 이게 웬일이냐, 귀여운 오필리어?

오필리어 : 네, 감사합니다. 남들이 그러는데요, 올빼미는 원래 빵집 딸이었대요, 정말이지 우리 인간들은 오늘 일은 알아도 내일 일엔 캄캄절벽이랍니다... 전하의 수라상에 신의 은총이!

왕 : 죽은 아버지 생각을 하는구나.

오필리어 : 제발 그 얘긴 그만두세요. 하지만 혹시라도 사람들이 까닭을 묻거든 이렇게 말하세요.(노래한다)

내일은 성 발렌타인 축제날

동녘 하늘이 밝아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이 처녀가 사랑하는 님 창 밑에 서서

그대를 기다릴 거에요.

내 님은 일어나 새 옷을 갈아입고

방문을 열어 주네요

들어달 때는 처녀였으나 나올 땐

처녀의 꽃잎이 떨어졌으리.

왕 : 가엾은 오필리어!

4막 5장

 

- 날뛰는 레어티즈

 

오필리어 : 아이 참, 내가 왜 이렇게 주책이람. 노래나 마저 마칠래요.(노래한다)

 

아 슬프고 억울함이

내 가슴을 후빈다네!

아무리 사내들 습성이라고 하지만

그건 너무나 얄미운 심사여라 그대.

자리에 쓰러뜨려 누일 때는

백년 해로를 약속하더니만

남자가 이제 와서 하는 말

그렇게 꼬리치지 않았던들

정말 부부가 될 생각이었대요

왕 : 저 애가 언제부터 저 꼴이 되었소?

 

오필리어 : 일이 다 잘 풀려갈 거예요. 그러니 모두들 꾹 참아야 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아빠를 차가운 땅속에 묻은 생각을 하면 울음이 터지는 걸요. 오라버니도 아시게 될 거예요. 다들 친절하게 충고하고 염려해주신 것 고마워요. 자 마차야, 가자! 안녕히 주무세요. 여러분, 안녕. 아름다운 부인들도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퇴장한다)

왕 : 곧 뒤를 따라가 봐라. 잠시도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말라. (호레이쇼와 신사, 오필리어를 따라 퇴장) 오, 저건 깊은 슬픔이 만들어낸 병이렷다. 이게 모두 제 아비 죽음 때문이지 뭐겠소... 저걸 좀 보시오! 아 왕비, 슬픔은 하나씩 하나씩 따로따로 오지 않고 무리를 지어 와서 덜미를 잡는구려. 먼저 저 애 아버지가 죽더니 다음엔 당신의 아들이 모습을 감추고, 하긴 그 애는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니 추방도 당연한 것. 그러나 이 나라 백성들은 선량한 폴로니어스의 죽음을 둘러싸고 억측과 소문이 파다하고 시비가 분분하오... 어쨌든 과인도 좀 경솔했던 것 같소. 시체를 그렇게 서둘러 묻어버렸으니... 저 오필리어는 그만 실성해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만 사람이지 몰골은 허깨비나 짐승이나 다를 바 없구려. 게다가 더욱 중요한 일이 남아 있소. 저 애 오라비가 프랑스에서 몰래 돌아왔다는데도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소. 아마 무언가 의심을 하고 있는 모양이오. 자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온갖 못된 소문을 그의 귀에 속삭이는 사람들이 오죽이나 많겠소? 진상이 애매할수록 과인을 비난하는 말도 이 귀에서 저 귀로 그렇게 금방 금방 전해지는 거야 당연하지 않겠소? 사랑하는 거투르드, 엽총이 날 겨누고 총탄을 퍼부어대는 꼴이오. 내 온몸은 앞으로 벌집이 되고 말 것만 같구려!(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왕비 : 아니! 저건 도대체 무슨 소린가요?

왕 : (큰 소리로) 여봐라!

 

-시종 한 사람 등장.

 

왕 : 호위병은 어디 있는가? 와서 입구를 지키라고 해라. 무슨 일이냐?

시종 : 폐하, 어서 자리를 피하시옵소서! 해일이 둑을 넘어 단숨에 육지를 삼켜버리는 것처럼 젊은 혈기로 들끓는 레어티즈가 폭도들을 거느리고 호위병들을 밀치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폭도들은 그 자를 왕이라 부르고 마치 새로운 세상이라도 시작되는 것처럼 날뛰고 있습니다. 폭도들은 모든 질서의 기본이자 기초인 전통이나 관습 따위는 모두 팽개치고 "우리가 레어티즈를 왕으로 뽑아서 모시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모자를 던지고 손뼉을 치며 "레어티즈를 왕으로, 레어티즈를 왕으로 모시자!"하고 떠드는 소리가 하늘이라도 찌를 것만 같습니다.(소란은 더욱 커진다)

왕비 : 신이 나서 짖어대는군, 도무지 냄새도 제대로 맡지 못하구서! 아, 얼빠진 덴마크의 사냥개들이여! 도대체 짖어야 할 방향조차 알지 못하는구나!

왕 : 놈들이 문을 부쉈구나.

 

-레어티즈가 무장을 하고 방으로 뛰어든다. 그 뒤에 덴마크의 백성들이 뒤따라 들어온다.

 

레어티즈 : 왕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은 밖에서 기다려 주시오.

군중 : 안됩니다. 우리도 함께 들어갑시다.

레어티즈 : 부탁입니다. 내게 맡겨주시오.

군중 : 좋소, 그럽시다. 기다리겠소.(군중들은 문 밖으로 물러간다)

레어티즈 : 고맙소, 여러분은 문을 지켜 주시오. 오 간악한 왕, 내 아버님을 내놓아라.

왕비 : 진정하거라, 레어티즈.

레어티즈 : 내게 진정할 수 있는 피가 한 방울이라도 남아 있다면 난 이미 아버님의 자식이 아닐 것이오. 아버님은 화냥년의 남편이 되고, 정숙했던 내 어머니의 순결한 이마에 창녀의 낙인을 찍는 꼴.(앞으로 뛰어온다. 왕비가 그를 가로막는다)

왕 :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레어티즈? 어째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모반을 일으키는 거냐? 왕비, 그의 손을 놓아주시오. 과인의 신상은 걱정하지 마시오. 한 나라의 왕에게는 하나님의 보살피사 보호하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법, 반역자가 그 울타리를 얼핏 넘볼 수는 있어도 감히 손끝 하나 대지 못하는 것이오. 말해 봐라 레어티즈, 무슨 이유로 이렇게 날뛰는 거냐... 왕비, 그를 놓아주시오... 어서 말해 봐라.

레어티즈 : 내 아버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오?

왕 : 그는 죽었다.

왕비 : 하지만 그건 폐하의 탓이 아니오!

왕 : 뭣이든 실컷 물어 보려므나.

 

- 아버지의 복수를 하리라!

 

레어티즈 : 어떻게 돌아가셨소? 날 속일 생각은 마시오. 이제 충성 따위는 관심도 없으니 말이오. 충성에 대해 한 맹세는 악마에게나 던져주라지. 양심도 의리도 지옥으로 팽개쳐 버릴 터! 저주도 두려워하지 않소. 여기서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거요. 현세나 내세 같은 것도 내겐 없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버님을 위해 복수하고야 말겠소.

왕 : 누가 그걸 말리겠나.

레어티즈 : 아무도 못 말리지, 온 세상 사람들이 가로막는다 해도 비록 내 힘은 미약하지만 갖은 수단 방법을 다 써서라도 어떻게든 끝장을 내고 말 테니까.

왕 : 레어티즈, 아버지가 죽은 그 진상부터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눈이 돌아버린 노름꾼이 승부에 관계없이 판돈을 움켜쥐는 것처럼 원수건 아니건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닥치는대로 해치우겠다는 거냐?

레어티즈 : 내 복수의 상대는 아버지의 원수뿐이오.

왕 : 그 원수가 누군지 알고 싶은가?

레어티즈 : 아버지 편이라면 이렇게 두 팔을 벌리고 얼마든지 환영하겠소. 자기 가슴의 피로 새끼를 기른다는 펠리컨 새처럼 내 피를 쥐어짜서라도 그에게 바치겠소.

왕 : 암, 당연히 그래야지. 이제야 착한 자식, 사나이 대장부다운 말을 하는구나. 나는 네 아버지의 죽음에 아무 책임도 없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태양이 네 눈에 비치듯이 네게 조금만 분별이 있다면 그런 사실을 곧 알게 될 거다.

군중 : (밖에서) 안으로 들여보내라.

레어티즈 : 무슨 소리지, 저 소동은?

 

-오필리어 손에 꽃을 들고 다시 등장.

 

레어티즈 : 아 뜨거운 불이여, 나의 머리속을 차라리 바짝 말려다오. 짜디짠 눈물이여, 내 눈의 감각과 시력을 태워 없애주렴! 맹세한다. 널 이렇게 실성케 한 원한은 내 뼈를 갉아서라도 갚아주마. 아 오월의 장미, 귀여운 처녀, 다정한 내 동생, 아름다운 오필리어! 오 신이시여, 젊은 처녀의 정신이 노인의 목숨처럼 저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순수해지는 법. 그 사랑이 지극하면 고귀한 넋을 바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뒤를 따른단 말인가.

오필리어 : (노래한다)

얼굴도 덮지 않고 관에 넣어 메고 갔지

헤이 난 나니, 나니, 헤이 나니

무덤에는 억수같은 눈물 쏟아지고...

그대여 안녕, 나의 님이여!

레어티즈 : 네가 멀쩡한 정신으로 복수를 조른대도 이처럼 내 가슴을 쥐어짜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필리어 : 노래 부르세요, '묘석은 젖어들고' 하는 노래 말이에요. 그분은 땅속에 묻혀버렸으니 말이에요. 오, 참 물레바퀴 장단이 잘도 맞네! 그는 나쁜 하인이었어요. 어쩌면 주인 집 딸을 도둑질하다니.

레어티즈 : 허황된 저 말이 내겐 더욱 뼈에 사무치는구나.

오필리어 : (레어티즈에게) 이것은 만수향, 영원히 잊지 말아달라는 뜻이에요... 내 사랑! 부디 잊지 마세요... 그리고 이것은 상사꽃, 날 생각해달라는 꽃이구요.

레어티즈 : 실성한 말 속에도 뼈가 있다. 제발 잊지 말라니... 꼭 맞는 말이다.

오필리어 : (왕에게) 당신에겐 이 회향꽃과 매발톱꽃을. (왕비에게) 당신에겐 지난날을 뉘우치는 이 헨루다 꽃을 드리죠... 저도 하나 가져야죠. 이 꽃은 안식일의 꽃이라고도 하죠 - 아 그러니 당신이 이 꽃을 달 때는 그렇게 불러선 안돼요. 이건 실국화, 당신에게는 제비꽃을 드릴까요. 그런데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죄다 시들어 버렸어요... 아버님은 편히 잠드셨대요... (노래한다)

귀여운 파랑새는 나의 사랑

레어티즈 : 수심과 번민, 고뇌와 심지어 지옥의 형벌까지도 저 아이는 곱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놓는구나.

오필리어 : (노래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으실까?

다시 돌아오지 않으실까?

아니 아니 죽도록 기다려도

영영 가버렸으니

다시는 못 돌아올 분

백설 같은 흰 수염 늘어뜨리고

하얀 백발 나부끼면서

이제는 말없이 가셨네 떠나시었네

뒤늦게 탄식한들 무엇하리오!

신이여 그분께 은총을 내리소서!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도 기도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퇴장)

레어티즈 : 똑똑히 보았소. 저 꼴을?

왕 : 레어티즈, 네 슬픔을 나와 함께 나누자꾸나.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기자. 누구든 좋으니. 네가 믿는 가장 똑똑한 친구 몇 명을 골라 너와 내 말을 듣고 판단을 내리도록 해보자꾸나. 어쨌든 내가 이번 일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나에게 티끌만큼이라도 혐의가 있다면 이 왕국이고 왕관이고 목숨이고 소위 과인의 소유물 전체를 그 보상으로 너에게 넘겨주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너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말대로 해라. 그러면 과인이 너와 합심하여 너의 원한이 시원히 풀리도록 나설 것이다.

레어티즈 : 좋습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아버님이 그렇게 돌아가신 연유며, 은밀하게 치른 장례식, 또 무덤에는 위패도, 칼도, 가문의 문장도 없을 뿐더러 마땅한 법이나 격식을 갖춘 장엄한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억울한 혼평이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이 땅 위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기어코 진상을 규명하고야 말겠습니다.

왕 : 물론 그래야지. 네 뜻을 이루어 주리라. 그리고 죄가 있는 곳에 마땅히 응징의 도끼를 내리쳐야지. 그럼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 (퇴장)

4막 6장

 

- 햄릿에게서 온 편지

-궁전의 다른 방. 호레이쇼와 그밖의 사람들 등장.

 

호레이쇼 : 내게 할 말이 있다는 사람들이 누구냐?

시종 : 선원들입니다. 편지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호레이쇼 : 들어오라고 해라. (시종 한 사람 퇴장) (방백) 나한테 편지라고? 햄릿 왕자님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 어디에도 나에게 편지 보낼 사람이 없는데…

 

-시종이 선원 몇 사람을 안내해 들어온다.

 

선원1 : 주님의 은총을!

호레이쇼 : 자네들에게도 은총을!

선원1 : 편지를 한 장 가져왔는뎁쇼. 영국에 가시는 사신한테서 온 겁니다. 나리님이 바로 호레이쇼님이시죠?

호레이쇼 : (슬쩍 받아서 편지를 읽는다)

'호레이쇼, 이 편지를 받아 보거든 선원들을 국왕께 안내해 주게. 국왕 앞으로 가는 편지이니 말일세… 우린 출항한 지 이틀만에 무장한 해적선의 추격을 받았다네. 우리 배가 너무 느려 미처 피하지 못하는 바람에 우리는 적과 싸우다가 난 적선에 타게 됐네. 내가 옮겨 타자마자 그 배는 우리편에서 떨어져 나갔고 나 한 사람만이 해적들의 포로가 되어 버렸네.

해적들은 지금 의적답게 나를 대우해주고 있네. 물론 뭔가 이득을 노리고 하는 수작이지. 나도 그들에게 보답을 해주어야 하니, 이 편지를 꼭 국왕에게 전달해주게. 그리고 나서 호랑이 입을 벗어난 사람만큼이나 잽싸게 이곳으로 달려와 주게. 조용히 할 말이 있네. 아마 이 얘기를 들으면 자네는 놀라 말문이 막힐 걸세. 그러나 편지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중대란 일일세. 이 선량한 사람들이 자네를 나 있는 곳으로 안내해줄 걸세. 로젠크랜스와 길덴스턴은 그냥 영국으로 계속 항해하는 중이고… 그들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다네. 그럼 이만. 자네의 마음으로부터의 친구인 햄릿으로부터.'

(선원들에게) 자네들이 가져온 이 편지는 국왕께 전하도록 하겠네. 그러고 나서 되도록 빨리 나를 이 편지의 주인에게 안내해주게나. (모두 퇴장)

4막7장

 

- 국왕과 레어티즈의 공모

-궁전의 다른 방. 왕과 레어티즈 등장.

 

왕 : 이제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를 너의 진정한 친구로 생각해야 하느니라. 넌 총명하니 잘 알아들었겠지만 훌륭하신 선친을 살해한 자가 실은 바로 내 목숨까지도 노리고 있느니라.

레어티즈 : 예,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사악한 행위를 즉각 처벌하지 않으셨습니까? 폐하의 안위를 위해서나, 폐하의 권위, 그밖에 사리 분별로 따지더라도 어느 모로나 그 대죄, 사형에 처해 마땅한 행위를 방치해 두실 수 없지 않습니까?

왕 : 거기엔 두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네가 보기엔 그 이유란 게 하찮게 느껴질지 모르나 과인에겐 매우 중대하다. 햄릿의 생모인 왕비는 햄릿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구나. 또 나 역시 이게 내 장점인지 아니면 화근인지는 알 수 없다만, 왕비는 내 생명이며 내 영혼과 도저히 뗄 수 없는 사이이다. 하늘의 별이 그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나도 왕비 없이는 살 수가 없구나. 또 하나 그를 공공연히 처벌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백성들이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곰보도 보조개로 보이는지 마치 나무를 돌로 변하게 만드는 그런 샘물인 것처럼 그놈에게 족쇄를 채워도 그게 오히려 몸치장으로 보이는 형편이다. 따라서 내가 화살을 쏘아도, 그게 워낙 가벼운 나무로 만든 것이라 거칠게 몰아치는 강풍에 휘날려 본래 겨냥했던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판이다.

레어티즈 : 그래서 저는 훌륭한 아버님을 잃고, 누이동생마저 비참하게 실성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칭찬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만, 누이동생의 인품은 어느 시대에나 칭찬을 받을 여성의 귀감이었습니다. 기어이 복수하고 말 것입니다.

왕 : 그렇다고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빠져들어선 안 된다. 나 역시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그냥 보고만 있을 그런 우둔한 위인은 아니다. 자세한 이야긴 차차 하기로 하자. 나는 네 부친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마치 내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하듯. 이쯤 말하면 대충 너도 대충 짐작이 가고 남으렷다... (이때 전령이 편지를 가지고 등장) 웬일이냐! 무슨 소식이 왔느냐?

전령 : 햄릿 왕자님의 편지입니다. 이것은 국왕 폐하께, 이것은 왕비마마께 올리는 것입니다.

왕 : 햄릿한테서! 누가 갖고 왔는가?

전령 : 선원들이라고 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소신은 그들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클로디어스가 소신에게 이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클로디어스는 선원들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합니다.

왕 : 레어티즈, 그럼 읽을 테니 들어보아라. 너는 물러가라. (전령 퇴장)

(읽는다)

지존하신 국왕 폐하께 삼가 아룁니다. 소자는 지금 맨몸으로 이 나라에 상륙했습니다. 바라옵건데 내일 배알의 영광을 얻고자 합니다. 그때 불시 귀국한 기이한 사유를 상세히 아뢰오자 하오니 부디 윤허해 주시옵소서. 햄릿 올림.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이냐? 다른 일행도 함께 돌아왔느냐? 아니면 이건 무슨 속임수가 아니더냐?

레어티즈 : 필적은 틀림없습니까?

왕 : 분명 햄릿의 필적이다... '맨몸'이라. 또 여기 추신에다가는 '단신 귀국'이라고 했겠다… 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짐작이 가느냐?

레어티즈 : 저도 통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폐하. 하지만 올 테면 오라죠! 이제 오히려 신이 납니다. 내가 살아서 살아서 복수할 것을 생각하니 응어리진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습니다. 정면으로 맞붙어서 "네놈이 그랬지?"하고 따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왕 : 만약 돌아온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었을까? 설마 허황된 거짓말은 아니겠지? 레어티즈, 너는 과인의 지시를 따르겠는가?

레어티즈 : 듣다 뿐이겠습니까, 그냥 평온하게 화해하라는 말씀만 아니라면.

왕 : 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다. 햄릿이 만약 항해를 중지하고 돌아와 다시 출발할 생각이 없다면 내게 진작부터 생각이 있다. 놈을 설득해서 권해보마. 여기 걸리면 놈도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 경우에는 놈의 죽음에 대해 나를 비난하는 소리도 잠재울 수 있다. 심지어 제 생모조차도 계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불의에 당한 참변으로 생각할 것이다.

레어티즈 : 알겠습니다. 폐하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특히 저를 그 계략의 도구로 이용해주신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왕 : 일이 착착 잘 들어맞는구나. 실은 네가 유학을 떠난 이후에도 너에게 출중한 재주가 있다고 해서 칭찬이 자자했다. 이 칭찬하는 말은 햄릿도 곁에서 들었느니라. 그런데 햄릿은 네가 익힌 수많은 재주 중에 특히 한 가지 재주를 시샘하는 모양이다. 과인이 보기에는 너에게 있는 재주 중에서 가장 하찮은 것처럼 보인다만.

레어티즈 : 어떤 재주 말씀입니까, 폐하?

왕 : 그건 젊은이의 모자를 장식하는 리본 같은 것에 불과하지만, 역시 그것도 필요하긴 할 테지. 글쎄 원래 젊은이들에게는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옷이 어울리고, 노인들에게는 관록과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검은 수달피 장옷이 어울리지 않으냐. 실은 두 달 전에 어떤 노르만디 사람이 이곳에 왔었다… 나도 지금까지 수많은 프랑스 사람들을 만났고 또 싸워보기도 해서, 그들이 승마술에 통달하고 있다는 것은 달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이야말로 승마술에는 정말 귀신 같더구나. 어찌나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지 말 그대로 안장에 뿌리를 내렸다고나 할까. 마치 말의 성질을 절반쯤은 물려받은 것같이 보이더라. 실로 상상도 못할 정도로 모습이 멋지고 재주가 뛰어나 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나도 믿지 못할 정도였느니라.

 

- 음모, 그리고 죽음

 

레어티즈 : 노르만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까?

왕 : 그래, 노르만디 사람이다.

레어티즈 : 그렇다면 저도 알 것 같습니다. 아마 라몬드일 겁니다.

왕 : 그래, 바로 그 사람이다.

레어티즈 : 그 사람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프랑스의 꽃이요, 보석입니다.

왕 : 그런데 그 사람도 네 솜씨를 무척 칭찬하더구나. 호신술의 이론과 실기에 있어선 널 당할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특히 검술에는 천하 무적이라고 하더구나. 만약 너와 겨룰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정말 멋있는 시합이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프랑스의 검객들도 너와 맞서면 몸놀림이나 방어 자세, 눈의 기운 등 무엇하나 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군. 그런데 햄릿이 그 사람의 말을 듣더니 무척 샘을 냈단다. 그래서 네가 하루 빨리 돌아와 한번 정식으로 겨뤄보고 싶다고 그랬다. 무척 그런 기회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레어티즈 :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폐하?

왕 : 레어티즈, 너는 진정으로 선친을 사랑했겠지? 그게 아니라면 네 슬픔이 그저 겉으로만 꾸민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

레어티즈 :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왕 : 나 역시 네가 부친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사랑에도 때가 있는 것이다. 불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에도 심지가 있어 언젠가는 그 불꽃을 약화시키게 마련이다. 무슨 일이든 항상 최고의 상태만 유지할 수는 없다. 좋은 일도 막바지로 치달으면 쉽게 기울어지는 법이다. 그러니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미루지 말고 당장 실행해야 한다. 글쎄 '하겠다'는 마음도 변하게 마련이니까. 더구나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대거나 손으로 방해를 하고 나서면 실행력이 약해지고 자꾸 미뤄지게 되느니라. 이 '한다'는 생각도 심장의 피를 말리는 탄식과 같은 것이다. 일시적 위안은 될지 모르지만 몸에는 해로운 법. 결국 요점은 이것이다. 이제 햄릿이 돌아온다. 이때 네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지. 자식된 자의 도리로서 말만 내세울 게 아니라 행동으로 몸소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레어티즈 : 설령 교회 안으로 피한다 해도 단칼에 목을 자를 것입니다.

왕 : 성전이라 해도 살인죄를 보호할 수는 없다. 그리고 복수는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이것 봐, 레어티즈. 복수를 하고 싶거든 일단 집안에서 꼭 참고 있거라. 햄릿이 돌아오면 너의 귀국을 알려 주리라. 그리고 과인은 사람들을 부추겨서 너의 솜씨를 칭찬케 하겠다. 그 프랑스인의 찬사에 한술 더 떠서 금빛으로 장식해야지.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이 맞붙게 해서 검술 시합으로 승부를 가리게 한다 그 말이다. 햄릿은 천성이 대범한 편이고, 조심성이 별로 없는 편이다. 순진하고 술책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시합용 칼을 조사해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미리서 손을 조금 써서 쉽게 진짜 예리한 칼을 골라잡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시합을 하다가 멋지게 한 번 푹 찌르면 선친의 원수를 갚게 된다.

레어티즈 :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왕 싸울 바에는 칼에 독을 칠하겠습니다. 사실은 어떤 도부 장수한테서 독약을 사둔 게 있습니다. 아주 지독한 독약이라 그 독약을 조금이라도 바른 칼끝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틀림없이 죽게 된다고 합니다. 달밤에 채취한 영험한 약이 있어도 목숨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걸 바른 내 칼로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놈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겁니다.

왕 : 그건 좀더 신중히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해야 우리의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시기와 방법을 잘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만약에 실패하여 우리의 계획이 탄로날 바에야 애당초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아니냐. 무엇보다도 이 계획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예비로 다른 2차의 수단을 마련해둬야 하겠다. 그래, 이렇게 하자. 과인이 쌍방의 솜씨에 공정한 내기를 건다고 하고… 그렇지!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몸에 열이 오르고 갈증이 날 테지. 또 그렇게 되도록 아주 격렬하게 시합해야 한다. 그러면 햄릿이 물을 청하겠지. 거기에 맞추어 미리 준비해둔 잔을 내주는 거야. 그렇게 되면 비록 햄릿이 독을 칠한 칼날을 요행 피한다 해도 우리의 목적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가만, 저건 무슨 소리냐?

 

-왕비 울면서 등장.

 

왕비 : 재앙이 자꾸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구나. 레어티즈, 네 동생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구나!

레어티즈 : 물에 빠져서 죽었다구요? 아, 어디입니까?

왕비 : 버드나무가 비스듬히 서 있는 시냇가. 하얀 잎새가 거울 같은 물위에 비치고 있는 곳이란다. 그 애가 그곳으로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실국화, 연자주색 난초 따위를 엮어서 이상한 화환을 만들었구나. 이 자주색 난초를 음탕한 목동들은 상스런 이름으로 부르지만 청순한 처녀들은 죽은 사람의 손가락이라고 부르지. 아무튼 그 애가 그 화관을 쓰고 와서 늘어진 버들가지에 올라가 그 화관을 걸려고 했을 때 심술궂은 은빛 가지가 갑자기 부러져서 오필리어는 화관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에 빠지고 말았어. 그러자 옷자락이 물위에 활짝 펴져 인어처럼 잠시 수면에 떠있었다는구나. 오필리어는 마치 인어처럼 늘 부르던 찬송가를 부르더래. 마치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란 사람처럼 절박한 불행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마침내 옷에 물이 스며들어 무거워지는 바람에 아름다운 노래도 끊어지고 그 가엾은 것이 시냇물 진흙바닥에 휘말려 들어가 죽고 말았다는구나.

레어티즈 : 정말 물에 빠져 죽었군요.

왕비 : 그래, 빠져 죽은 거야.

레어티즈 : 가엾은 오필리어, 이젠 물을 보기도 지겹겠구나. 그러니 나도 네 죽음에 더 이상 눈물을 쏟지 않으마.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감정… 쏟아지는 눈물을 어쩔 수 없구나. 남이야 뭐라 하든… 실컷 울고 나면 연약한 내 마음도 영영 끝장이다. 그럼 폐하,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말을 내뱉고 싶지만 지금은 어리석은 눈물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군요.(퇴장)

왕 : 자 왕비, 저 뒤를 따라가 봅시다. 저 애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아시오? 저래서는 또 다시 분노가 터져나올까 두렵소. 자, 뒤를 좇아가 봅시다. (왕과 왕비, 레어티즈를 좇아간다)

5막 1장

 

- 무덤가의 어릿광대들

-묘지. 갓 파놓은 무덤 주위에 삼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묘지 입구가 보인다. 두 명의 어릿광대(무덤 파는 일꾼과 젊은 조수)가 삽과 곡괭이를 들고 등장하여 파기 시작한다.

 

광대1 : 제멋대로 저승길로 떠난 여잔한테 이렇게 기독교식 장사를 치러주어도 된다는 말인가?

광대2 : 괜찮다니까 그래. 그러니까 어서 구덩이나 파라구. 검시관이 조사하고 나서 기독교식으로 매장해도 좋다고 그랬단 말이야.

광대1 : 어떻게 그럴 수 있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물에 풍덩 뛰어들었다면 또 몰라도.

광대2 : 아무튼 그렇다는 거야.

광대1 : 그렇다면 이건 '정당 폭행'이라고 불어야겠구먼. 암, 그게 틀림없지. 요점은 이렇다는 말씀이야. 가령 내가 일부러 풍덩했다 치면 이건 법적으로 '행위'라고 부르는 거야. 그런데 행위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첫째는 행동하는 것, 둘째는 실천하는 것, 셋째는 성취하는 것… 그러므로 그 여자는 일부러 풍덩한 거야.

광대2 : 글쎄 내 말 좀 들어보라구, 이 사람아.

광대1 : 아니, 가만. 내 말 좀 들어보라구. 여기 물이 있다고 생각하잔 말이야, 알았지? 여기 사람이 있구… 알겠어? 그 사람이 물가로 가서 말이야, 풍덩했다고 치잔 말이야. 그건 그 사람의 원래 의사와 무관하게 자발적인 행동이란 말이야. 안 그런가? 그러나 만약 물이 사람에게로 다가와 풍덩시켰다면 그건 풍덩한 것이 아니란 말씀이지… 그러므로 자살 죄를 범하지 않은 인간은 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다, 이 말일세.

광대2 : 그게 바로 법률이라는 것이겠지?

광대1 : 암 그렇지, 이걸 바로 검시관의 검시법이라고 부르는 거야.

광대2 : 내가 사실을 알려 줄까? 이 여자가 귀족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기독교식 장례는 아마 꿈도 꾸지 못했을 거야.

광대1 : 오호라, 이제 보니 제법 옳은 말도 할 줄 아는군 그래. 사실 알고 보면 이건 빌어먹을 이야기라구. 글쎄 귀족들이야 우리 같은 서민들보다 훨씬 편리한 세상이란 말일세. 물에 빠져 죽거나 목을 매달거나 관계없이 말이야… 그나저나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귀족 집안이란 것도 그 조상을 따져보면 아마 다 정원사, 도랑치기, 무덤파기 같은 작자들이지… 다 아담이 하던 일을 물려받았으니깐 말이야.

(파놓은 무덤 구멍으로 들어가본다)

광대2 : 아담도 귀족이었나?

광대1 : 암, 그 양반이야말로 인류 최초로 연장을 가졌던 분이지.

광대2 : 아닐세, 그때는 연장이고 뭐고 없었잖은가?

광대1 : 이거 왜 이래? 자넨 기독교도가 아니로군. 성경도 읽어보지 못했나? 성경 말씀에 아담이 땅을 팠다고 그랬잖아 그런데 연장도 없이 어떻게 땅을 팠겠어? 내 하나만 더 물어보지. 똑바로 대답을 못하겠거든 참회하고 죽어버려…

광대2 : 재수 없는 소리 그만둬.

광대1 : 이봐, 석수쟁이나, 조선공, 목수보다 더 튼튼한 물건을 만드는 직업이 뭔지나 아나?

광대2 : 그야, 교수대 만드는 놈이지. 천 명이 빌려 써도 끄떡없으니까 말일세.

광대1 : 호, 제법이로군. 교수대는 정말 근사한 물건이지. 그런데 뭐가 그렇게 근사한가? 악질들 목을 졸라 처치하는 데 좋다 이 말씀이야. 그런데 자네 말인즉슨 교수대가 교회보다 더 튼튼하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 그건 틀려먹었지… 그러니까 아무래도 자네는 교수대 맛을 톡톡히 봐야 한다구. 자 그러니 다시 한 번 대답해 봐.

광대2 : 석수쟁이나 조선공, 목수보다 더 튼튼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냐 그 말인가?

광대1 : 그래 그렇다니까. 대답해봐. 궁지에서 빠져나가고 싶으면 말이야.

광대2 : 글쎄, 그게 그러니까…

광대1 : 자, 얼른 대답해.

광대2 : 제길, 그래도 잘 모르는겠는 걸.

광대1 : 글쎄, 뭐 이젠 그만두세. 너무 해골 굴리지 말라구. 비루먹은 말에게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속도가 날 리 없으니까 말이야. 누가 다시 한 번 그런 질문을 하거든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하라구. 명심해. 바로 '무덤 파는 인부'라고 대답하란 말이야. 이 무덤 파는 인부가 만든 집은 최후의 심판 날까지도 견딜 테니 말일세. 자, 저기 존의 집에 가서 술이나 한 병 받아오라구. (광대2 퇴장)

 

-선원복을 입은 햄릿과 호세이쇼 등장.

 

광대1 : (무덤을 파며 노래한다)

사랑도 하고 바람도 피웠던 그 시절

젊은 시절엔 이 세상 즐겁고 달콤했지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고

철들고 보니 세상만사가 허망하기만 하네

 

- 그 장광설은 어디로 갔을까

 

햄릿 : 저 작자는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네. 세상에 무덤을 파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호레이쇼 : 늘 하던 일이라 숙달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햄릿 : 과연 그런 모앙이야. 자주 쓰지 않은 손일수록 부드럽고 예민한 법이지.

광대1 : (노래한다)

백발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모질게 내 몸을 휘어잡고

이제 눈물의 황천길을 걷는구나

옛날 일이 그저 꿈만 같구나

(해골 바가지 한 개를 밖으로 집어던진다)

햄릿 : 저 해골 속에도 한때 혀가 있어 노래를 불렀겠지! 그런데 지금은 저 녀석이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고 있으니…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 동생을 죽였을 때 쓴 나귀 턱뼈(성경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그 무기가 나귀 턱뼈라는 기록은 없다. 성경에 나귀 턱뼈를 무기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는 인물은 삼손이다. 이것이 작가의 단순한 착오인지, 의도적인 표현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 편집자 주*) 같구나! 어쩌면 권모술수에 능한 정상배의 해골인지도 모르지.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인간에게조차 푸대접을 받지만, 한때는 귀신도 곡할 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사꾼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을까?

호레이쇼 :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전하.

햄릿 : 아니면 어떤 관리의 해골인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대감마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요! 요새 평안하신지요, 대감마님." 이렇게 알랑거렸을 테지. 그렇잖으면 이런저런 대감이라고 불렸던 신분인지도 몰라. 다른 대감의 말이 탐이 나서 "그 말 참 잘 생겼수다" 이렇게 칭찬하던 대갈통일는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은가?

호레이쇼 : 그럴지도 모릅니다, 전하.

햄릿 : 그래 틀림없을 거야. 지금은 구더기 마님의 밥이 되고, 턱뼈는 없어진 채 저 무덤 파는 일꾼의 삽으로 대가릴 얻어맞고 있지만 말이야. 우리가 제대로 보지를 못해서 그렇지,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이건 정말 오묘한 변화일세! 이들 뼈다귀도 어려서 부모가 기를 땐 무척 공을 들였겠지. 하지만 이제는 다시 어린애들 노리개 감이 되는 거야! 이런 걸 생각하노라면 내 뼈도 지끈지끈 쑤실 수밖에…

광대 : (노래한다)

곡괭이와 삽 한 자루

송장에게 입힐 수의 한 벌

오호라, 흙 속에 구멍까지 파놓았구나

이 손님 모시기엔 안성마춤일세

(다른 해골 바가지 하나를 던져 올린다)

햄릿 : 또 나오는군, 그래. 이번엔 변호사의 해골 바가지일지도 모르네. 그 기름 바른 듯한 궤변이나 장광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소송은, 소유권은, 술수는 다 어디에 있는가? 저 무식한 녀석한테 흙투성이 삽으로 저렇게 골통을 얻어맞고도 왜 꼼짝 못할까? 어째서 폭행죄로 고소하겠다고 한마디도 떠들지 못할까? (해골을 가볍게 두드리며) 흠! 이 녀석은 생전에 부동산 문제 전문이었는지도 모르지. 담보 증서, 금전 차용 증서, 명의변경 소송, 이중 증인(二重證人), 토지양도 소송 등 별별 수단을 다 동원했겠지. 그런데 그런 소송의 판결 결과는 무엇인가? 토지 문제로 가득 찼던 대갈통 속에 그 대가로 흙이 가득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이 자의 증인, 이중 증인들도 무얼 할 수가 있겠나? 지금 이 자의 해골 그릇 속에는 기껏 할부계약서도 들어가기 힘들겠구나! (해골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더구나 그 토지의 소유자 본인도 결국은 이 해골 바가지 하나를 얻었을 뿐이잖은가!

호레이쇼 : 확실히 두개골뿐이군요.

 

- 여자의 무덤이란 말이냐?

 

햄릿 : 토지매도 문서는 양가죽으로 만들지 않던가?

호레이쇼 : 예, 송아지 가죽으로도 만들구요.

햄릿 : 그 따위 물건을 믿는 놈들은 양이나 송아지보다 못한 멍청이들일 수밖에 없지. 그런데 이 일꾼하고 얘기를 좀 해보고 싶구먼… (앞으로 나오며) 여보게, 이건 누구의 무덤인가?

광대1 : 제 무덤입니다요… (노래한다)

흙으로 돌아가서 흙 속에 잔다네

이 집이야말로 손님께 꼭 맞지요

햄릿 : 그야 물론 네 것이겠지. 네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걸 보니 말이야.

광대1 : 나리는 거기 밖에 계시니 나리의 것은 아닐 테죠. 하지만 제 말씀은 말입니다요, 소인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역시 제 것이란 말씀입죠.

햄릿 : 무덤 속에 있으니까 네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 말이렷다! 그러나 무덤이란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지, 산 사람이 들어가는 곳은 아니거든… 그러니 네 말은 거짓말일 수밖에!

광대1 :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야죠. 자, 이제 보십쇼! 나리가 대답이 궁해질 차례가 올 겁니다…

햄릿 : 그런데 도대체 어떤 사내를 묻을 무덤이지?

광대1 : 이건 사내를 묻을 구멍이 아닙니다요, 나리.

햄릿 : 그럼 여자의 무덤이란 말이냐?

광대1 : 그것도 아닙니다요.

햄릿 : 그럼 누굴 묻는다는 거냐?

광대1 : 전에는 여자였지만 나리, 지금은 그저 죽은 혼백이니까요.

햄릿 : 이거 정말 까다로운 녀석이로군! 정신 차리지 않고 어설프게 얘기했다가는 말 꼬투리를 잡혀 곤욕을 치르겠군. 사실 말이지 호레이쇼, 요사이 몇 년 동안 내가 유심히 살펴봤네만, 세상이 정말 갈수록 막가는 것 같으이. 농사꾼 발가락이 귀족들 발뒤꿈치를 밟는 건 예사고 아예 목숨까지 벗겨갈 형편이지… 그런데, 자넨 언제부터 무덤 파는 일을 해왔나?

광대1 : 언제부터였더라? 글쎄 곰곰이 돌이켜보니 선왕 햄릿 폐하께서 포틴브라스를 쳐부수던 바로 그날부터입니다.

햄릿 : 그게 몇 년 전 일이더라?

광대1 : 아니, 그것도 모르세요? 바보들도 다 아는 걸. 햄릿 왕자님이 태어나셨던 바로 그날 아닙니까? 글쎄 저 머리가 돌아서 영국으로 쫓겨가신 햄릿 왕자님 말입니다.

햄릿 : 그래 그 왕자는 왜 영국으로 쫓겨갔다던가?

광대1 : 왜라뇨? 그야 머리가 돌았으니까 보냈을 테죠. 거기 가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요. 하긴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아도 거기서는 전혀 상관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햄릿 : 왜?

광대1 : 그곳에서는 머리가 돌아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겁니다. 글쎄 그곳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돌았다고들 하니까요.

햄릿 : 그런데 왕자는 왜 머리가 돌았다던가?

광대1 : 그게 참 소문이 묘하더군요.

햄릿 : 어떻게 된 건데?

광대1 : 그야 물론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햄릿 : 그러니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거지…

광대1 : 어디는 어디겠어요? 물론 덴마크인 거죠. 이놈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쭉 30년 동안 여기서 무덤파기를 해왔다 그 말씀입니다요.

햄릿 : 무덤 속에서 얼마나 지나면 시체가 썩나?

 

- 누구의 장례식일까?

 

광대1 : 글쎄 어떤 놈은 죽기 전부터 썩는 고약한 경우도 있습니다요. 요즘은 매독에 걸려 죽은 놈이 많아서요. 그런 놈들은 미처 파묻을 겨를도 없이 썩어버리죠. 하지만 대개는 8, 9년 충분히 견딥니다. 가죽을 다루는 갓바치 같으면야 9년은 걸리죠.

햄릿 : 갓바치는 왜 그리 오래 가는 건가?

광대1 : 그야 직업 덕분에 피부가 무두질이 잘 돼 있으니까요. 한참 동안 물기가 스며들지 못하는 겁니다. 그 경칠 놈의 송장을 완전히 썩히는 데는 물이 지독하게 효과가 있다 이겁니다요. 이크, 또 하나 나오는 구먼. 이 해골은 땅속에 묻힌 지 스물하고도 세 해나 된 거죠.

햄릿 : 그건 누구의 것이냐?

광대1 : 어떤 빌어먹을 미친놈의 것입죠. 글쎄 누구 것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햄릿 : 글쎄 난 모르겠구나.

광대1 : 이 미친 자식! 염병에나 걸려 뒈질 녀석이었습죠! 글쎄 언젠가 이 자식이 내 머리에다 라이산 포도주를 한 병 몽땅 들이부었답니다. 바로 이 해골은 나리, 누군고 하니 임금님의 어릿광대였던 요릭이랍니다.

햄릿 : 이게?

광대1 : 틀림없다니까요.

햄릿 : 어디 이리 좀 보여다오. (해골을 받아든다) 아아 불쌍한 요릭! 호레이쇼, 나도 이 사람을 잘 안다네… 재담이라고 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지. 기막히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했었지. 나를 등에 업어준 것도 천 번쯤은 됐을 거야. 그런데 지금 이 꼴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끼치네 그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야… 여기쯤에 아마 입술이 달려 있었겠지? 그 입술에 내가 얼마나 자주 키스했는지 모르지… 그런데 이제 너의 그 익살, 너의 광대춤, 너의 그 노래, 좌중 모두를 배꼽이 빠지라고 웃게 만들었던 그 기막힌 재담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래 이제 이렇게 이빨을 드러낸 네 몰골을 네 자신이 비웃어야 하는 것 아닐까? 비웃고 싶어도 아래턱이 빠져서 그럴 수가 없나? 그래 요릭, 이제 그 꼴로 귀부인들의 방으로 달려가 가르쳐 줘야지. 아무리 분을 두껍게 발라 치장을 해도 결국 이 꼴을 면하지 못한다고 말일세. 그래서 그 여자들을 실컷 웃겨야지… 여보게 호레이쇼, 좀 물어 볼 말이 있네.

호레이쇼 : 무엇입니까, 전하?

햄릿 : 알렉산더 대왕도 흙 속에 파묻히면 결국 이런 몰골이 되었겠지?

호레이쇼 : 그럴 겁니다, 전하.

햄릿 : 이렇게 냄새도 나고? 에이 퉤! (해골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호레이쇼 : 그야 물론이죠.

햄릿 : 사람이 죽으면 무슨 천한 일에 쓰이게 될지 도대체 누가 알겠나, 호레이쇼! 알렉산더 대왕의 존엄한 유해라고 해도 나중에는 한 줌 흙으로 지금쯤은 아마 술단지 마개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일세.

호레이쇼 : 그것은 너무 지나친 상상이신 것 같습니다.

햄릿 : 아냐 조금도 지나치지 않네. 조금만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아도 그 정도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충분히 가능한 추리라고 할 수 있다네. 말하자면 이런 걸세… 알렉산더 대왕이 죽어 땅에 묻힌다, 그래서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 땅이야 결국 흙 아닌가? 흙에서 진흙이 생기는 걸세…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변해서 된 진흙이 결국 술통 마개가 될 수도 있다, 그 말일세.

황제 시이저도 죽어서 한 줌의 흙이 되면

바람벽 구멍을 막는 처지가 될 수 있으렷다

오, 온 천하를 뒤흔들던 저 흙덩어리

지금은 한겨울 찬 바람 막는 벽을 때우다니!

쉿, 잠깐만… 저기 왕이 오는구나! 왕비와 궁정 신하들과 함께.

 

-장례식 행렬이 묘지에 등장. 뚜껑 없는 관에 오팔리어의 유해가 들어 있다. 그 뒤를 레어티즈, 왕, 왕비, 신하들, 법의를 입은 신부가 따라오고 있다.

 

햄릿 : 도대체 누구의 장례식일까? 이렇게 초라한 장례식을 치르다니? 틀림없이 저 시체는 율법을 어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인 모양이군. 하지만 신분은 상당히 높은 사람이었던 모양이야. 잠시 숨어서 살펴보기로 하세. (호레이쇼와 함께 나무 밑에 쪼그려 숨는다)

 

- 내 사랑을 따라오지 못한다

 

레어티즈 : 의식은 다 끝난 겁니까?

햄릿 : 저건 레어티즈로군, 참 훌륭한 청년이지… 잘 지켜보게나.

레어티즈 : 의식은 정말 이것밖에 더 없습니까?

신부 : 이것도 교회의 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최대한 정중히 모시는 것입니다. 어명으로 관례를 양보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최후의 심판날까지 성스럽지 못한 무덤에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은 원인이 미심쩍기 때문입니다. 고별의 기도 대신 사금파리 조각이나 부싯돌, 자갈 따위를 던져 넣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녀에게 어울리는 꽃 장식에다 특별히 장례의 종까지 울리며 명복을 비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레어티즈 : 그럼 이 이상은 도저히 할 수 없단 말이오?

신부 : 더 이상은 도저히 안됩니다. 조용히 숨을 거둔 사람의 장례처럼 진혼가를 부르며 미사를 드리는 격식을 갖추면 오히려 장례식을 모독하는 결과가 됩니다.

레어티즈 : 좋다, 그럼 어서 묻어라. 아름답고 순결한 저 아이의 몸에서 제비꽃이라도 피게 해다오! (관이 무덤 속으로 내려진다) 내 말을 들어라, 이 무정한 신부 놈아, 네놈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으로 아우성칠 때 내 누이동생은 하늘의 천사가 되어 있을 거다.

햄릿 : 뭐? 그 아름다운 오필리어가!

왕비 : (꽃을 뿌리며) 예쁜 처녀에게 예쁜 꽃을! 잘 가거라! 널 햄릿의 아내로 삼고싶었다만… 아름다운 처녀야, 네 신방을 꾸미려던 이 꽃을 네 무덤에 뿌리게 될 줄이야.

레어티즈 : 아, 저주가 있으라, 이 재앙이 몇 십 배가 되어 그 저주스러운 놈의 머리에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라! 섬세한 너의 정신을 미쳐버리게 만든 그 자에게! 잠깐 기다려! 아직 흙을 덮지 말아라. 한 번만 더 내 품에 안아 보자꾸나. (무덤 속으로 뛰어든다) 자, 이제 흙을 덮어라.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위에 똑같이 산을 쌓아라. 저 펠리언 산봉우리보다 더 높이, 하늘을 찌르는 푸르른 올림푸스 산보다 더 높이.

햄릿 : (앞으로 나오며) 도대체 누가 그렇게 요란스럽게 한탄하는가? 그 울분에 찬 소리를 듣노라면 하늘을 떠도는 별들도 넋을 잃고 감동해서 발길을 멈출 것 같구나. 난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다. (레어티즈를 따라 무덤으로 뛰어든다)

레어티즈 : (햄릿을 틀어잡고) 이 지옥에 떨어질 놈 같으니!

햄릿 : 네 말이 무엄하구나. 냉큼 내 목에서 손을 떼지 못할까. 난 성미가 급하거나 난폭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다급해지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폭발하는 성미다.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이 손을 놔라.

왕 : 둘을 뜯어말려라.

왕비 : 햄릿, 햄릿!

모두들 : 자, 두 분!

호레이쇼 : 전하, 진정하십시오. (시종들이 두 사람을 뜯어말린다. 두 사람은 무덤에서 나온다)

햄릿 : 이 문제를 놓고는 끝까지 싸워보겠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저자와 싸우겠다.

왕비 : 햄릿, 도대체 무슨 문제 말이냐?

햄릿 : 나는 오필리어를 사랑했다. 오빠가 4만 명이나 된다고 해도, 그 사랑을 다 합쳐도 내 사랑에는 감히 따라오지 못할 거야… 너 따위가 도대체 오필리어에게 뭐란 말이냐?

왕 : 이건 미친 사람의 말이다, 레어티즈.

왕비 : 제발 좀 가만히 버려두세요.

햄릿 : 이 빌어먹을 놈, 그래 어떻게 할 테냐? 울 거냐? 싸울 거냐? 굶어 죽을 거야? 옷을 갈기갈기 찢기라도 할 건가? 식초를 실컷 마실 테냐? 악어라도 잡아먹을 거냐? 그까짓 것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래 너 여기에 눈물이나 찔금대려고 여길 온 거냐? 무덤 속에 뛰어들어 내 애정을 무시할 속셈이냐? 그래 네가 산 채로 오필리어와 함께 묻히겠다면 나도 그렇게 하마. 뭐 산을 쌓으라고? 그렇다면 온 세계의 산을 다 무너뜨려서 이곳으로 가져와라. 그 꼭대기가 마침내 타오르는 태양의 궤도에 닿을 때까지 높이 쌓아 올려라. 그 열에 옷사의 산봉우리가 타올라 사마귀로 보일 정도로! 그래, 네가 큰소리를 친다면 나도 얼마든지 마주 고함을 쳐주마.

왕비 : 이건 모두 실성한 탓이야. 광증이 일어나면 저렇게 난리법석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곧 조용해지곤 하지. 마치 암비둘기가 귀여운 황금색 새끼 두 마리를 까놓은 것처럼 온순하게 입을 다물고 조용해질 거야.

햄릿 : 이봐 레어티즈, 왜 그렇게 나에게 야단을 치는 거냐? 난 항상 널 좋아했다. 그러나 이젠 다 쓸데없는 소리다. 헤라클레스가 제아무리 용을 써봤자 고양이는 여전히 고양이, 개는 여전히 개일 수밖에 없으니까. (퇴장)

왕 : 호레이쇼, 부탁이다. 왕자의 뒤를 따라가 보아라… (호레이쇼 햄릿의 뒤를 따라간다. 왕은 레어티즈에게 방백) 꾹 참아야 한다. 어젯밤 과인이 한 얘기 잊지는 않았겠지? 이제 곧 그 계획에 착수할 테니 말이다… 왕비, 당신의 아들을 좀더 단단히 단속하시오. 그리고 이 무덤에는 기념비를 세우리라. 머지않아 평화로운 시대가 돌아오겠지. 그때까지 꾹 참고 일을 진행해야지. (퇴장)

 

(중략)

 

테이블 하나가 미리 준비돼 있고, 하인들이 관람용 의자와 쿠션을 운반해 온다. 드디어 나팔수, 고수, 궁신들의 왕과 왕비를 모시고 등장. 오즈릭과 또 한 사람의 궁신이 심판관이 되어 몇 자루의 시합용 검과 단검, 그리고 포도주 술잔들을 가지고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레어티즈, 시합 복장을 하고서 등장.

클로디어스 : 자, 햄릿. 여기 와서 손을 잡아라. (왕이 레어티즈의 손을 햄릿 손에 쥐어 주며 악수를 나누게 한다. 그러고는 왕비를 데리고 옥좌에 앉는다.)

햄 릿 : 용서해 주게, 내 잘못이었어. 신사답게 부디 용서해 주기 바라네. 이 곳에 참석하신 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그리고 자네도 들은 바 있겠지만, 나는 극심한 정신 착란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네. 내 행동이 자네의 효성과 명예, 그리고 자네의 감정에 깊은 상처를 입혔을 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광기 때문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네. 레어티즈를 모욕한 것이 햄릿이었던가 ? 아닐세 . 결코 햄릿이 아니었네. 만약 햄릿이 이성을 잃고 햄릿 아닌 또 다른 그가 레어티즈에게 해를 입혔다면, 그것은 햄릿의 과오가 아니네. 햄릿은 그것을 부인하네.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짓일까 ? 그의 광기가 저지른 짓이네. 그렇다면 햄릿도 피해자가 되는 셈이네. 그의 광기는 가엾은 햄릿 자신의 적이기도 한 것이네. 부탁이네. 여기 참석하신 여러분들 앞에서, 내가 자네에게 해를 끼치려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이 변명을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라네. 지붕 너머로 쏘아 올린 화살이 우연히 형제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라고 생각해 주지 않겠는가 ?

레어티즈 : 아들로서의 효심을 생각한다면 지금 복수심을 최고로 촉발시켜야 마땅할 계제이겠지만, 그 점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명예에 관해서 만큼은 냉정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또한, 결코 화해 같은 것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명예 높기로 이름난 어느 인생의 선배가 중간에 서서 화해해도 좋다는 의견과 그 선례를 제시하면서 나의 면목을 보장해 줄 때까지의 말입니다. 다만 그 때까지 전하가 보여 주시는 우정은 우정으로서 고맙게 받아들일 뿐이지 거역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햄 릿 : 그 말을 들으니 기쁘이. 형제처럼 정직하게 시합을 해 보세. 자, 내게 검을 달라.

레어티즈 : 자, 나에게도 한 자루를.

햄 릿 : 내 무딘 검은 네 들러리 상대가 되리라, 러에티즈. 미숙한 나에 비하면 자네 솜씨는 밤하늘의 별처럼 빝을 뿜을 것이네.

레어티즈 : 놀리지 마십시오.

햄 릿 : 아냐, 진정이네.

클로디어스 : 오즈릭, 검을 주어라.(오즈릭, 몇 자루의 시합용 검을 가지고 온다. 레어티즈가 그 가운데 한 자루를 집어 들어 휘둘러본다.) 햄릿, 내기를 걸었따는 건 알고 있느냐 ?

햄 릿 :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 물론 약한 쪽에 유리한 조건을 붙이셨겠지요?

클로디어스 : 걱정 마라. 나는 두 사람의 솜씨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레어티즈의 솜씨가 아주 늘었기 때문에 이쪽의 조건을 좀 유리하게 만들어 두었지.

레어티즈 : 이건 너무 무겁구나. 다른 것을 보여 다오.(테이블로 가서 칼끝이 뾰족한, 독이 칠해진 검을 골라 잡는다.)

햄 릿 : (오즈릭으로부터 검을 받아 들고) 나는 이게 마음에 든다. 어느 검도 길이는 똑같겠지?

오즈릭 : 그렇습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갈래 : 희곡. 비극. 성격 비극

성격 : 비극적

구성 : 5막 20장, 5단 구성(발단, 전개, 위기, 절정, 대단원)

배경 : 12세기 경의 덴마크

특징 : 인생에 대한 성찰이 시적 대사로 이루어짐. 등장 인물들에 대한 성격 창조가 탁월함

주제 :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이 빚어내는 갈등과 비극성, 왕권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이 빚어내는 갈등과 복수

의의 : 세계 희곡 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하며,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 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로, 봉건 왕조의 부패와 몰락의 징후를 묘사하고, 인간의 심리를 탐구한 성격 비극의 대표 작품임

줄거리 :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어느날 성의 망루에 나타난 부왕의 영혼으로부터 부왕의 죽음이 숙부(클로디어스 왕)에 의한 독살이었음을 듣게 된다. 햄릿은 미친 사람으로 가장하여 사건의 진실을 캐고 복수하고자 하나, 내성적 성격으로 괴로워하며 실천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유랑 극단이 방문하자, 햄릿은 부왕 독살을 암시한 장면을 넣어 연극을 공연한다. 이를 본 왕과 왕비(햄릿의 어머니)는 당황하게 된다. 햄릿은 영국으로 향하던 중 해적에게 잡혀 포로의 몸으로 귀환한다. 왕은 햄릿으로 하여금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스와 검술 경기를 벌이도록 유도한다. 경기도중 왕비는 왕이 햄릿을 독살하려고 마련한 독약을 마시고 숨진다. 이어 레어티스가 독검으로 햄릿에게 상처를 입히며, 햄릿 또한 검을 빼앗아 레어티스를 찌른다. 그리고는 음모를 꾸민 왕을 찔러 죽인다. 복수는 끝났지만, 햄릿 자신도 몸에 독이 퍼져 숨을 거둔다.

작품 개관 : ‘햄릿’은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와 함께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이다. 왕자 햄릿의 인간적인 고뇌를 주제로 한 비극으로, 전체 5막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햄릿의 고뇌와 비극적 결단, 그리고 죽음을 치밀한 심리 표현과 탁월한 시적 문체로 극화시킨 불후의 명작이다. ‘햄릿’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힐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많은 독자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제가 주는 감동 못지 않게, 희곡의 본질과 구성 원리는 충실하게 구현하여 희곡 문학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내용 연구

앞 부분 줄거리

12세기경 덴마크 왕국에서는 왕이 갑자기 죽고 왕의 동생인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른다. 왕자 햄릿은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숙부인 현왕과 결혼하자 크게 상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아버지의 영혼이 나타나 자신이 동생인 현왕 클로디어스에게 살해되었음을 알리고 복수를 명령한다. 민감한 성품의 햄릿은 충격과 분노로 마음의 안정을 잃는다. 그는 숙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미친 것으로 위장하고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으로 연인인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도 포기한다.

 

1막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숙부와 결혼하자 크게 상심하는데, 어느 날부왕의 영혼이 나타나 자신이 숙부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복수를 명한다.

성 안의 회의실. 나팔이 울린다. 덴마크 왕 클로디어스, 왕비 거트루드, 중신들, 폴로니어스와 그의 아들 레어티즈, 그리고 볼티먼드와 코닐리어스 등이 다들 정장을 차려 입고 대관식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제일 뒤에 검은 상복을 입은 햄릿 왕자가 아래를 보면서 등장한다.

 

(햄릿만이 아버지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고 있음이 암시된다. 다른 등장 인물은 모두 성장을 한 반면, 햄릿은 상복을 입고, 다른 인물의 시선은 왕과 왕비가 옥좌에 올라서는 것을 보기 위해 위로 향한 반면, 햄릿은 아래를 보고 있다. 이러한 시건의 배치도 햄릿의 슬픔을 암시한다.)

왕과 왕비가 옥좌에 올라간다.

 

클로디어스 : 친형인 햄릿 왕이 승하하신 기억이 생생한 지금, 모든 백성이 수심에 싸여 다같이 국상을 슬퍼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정신을 차려 인정을 극복해야 할 때라고 하겠소. 선왕을 깊이 추도하면서도 짐은 국왕이 된 체모를 잊지 않아야 했소. 그러므로 지난날의 형수를 왕비로 맞이했소. 이는 무예를 숭상하는 이 나라의 주권을 함께 갖는다는 의미. 이것은 일그러진 기쁨이라고나 해야 할까. 말하자면 한 눈으론 울고, 다른 한 눈으로는 웃으며, 장례식은 즐겁게, 결혼식은 슬프게, 기쁨과 슬픔을 똑같이 저울질하면서 왕비를 맞이한 셈이오. 짐은 이 일에 경들의 현명한 의견을 막지 아니하였고, 경들도 또한 모두들 짐의 의견에 동의하였소. 모두에 대해 가상하게 여기는 바이오. 다음 안건은 다들 알다시피 저 포틴브라스 2세에 관한 것이오. 이쪽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선왕의 승하로 인해 우리의 국가 질서가 풀리고 사기가 떨어졌다고 믿는 모양이오. 그 자는 꿈같이 헛된 기대를 품고, 기어이 사신을 보내 재촉하고 있소. 즉 제 아비가 계약대로 우리 영용하신 선왕께 빼앗겼던 영토를 반환하라는 것이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이쪽의 대책일 것이오. 오늘 회의를 갖는 목적도 바로 그것 때문. 여기 노르웨이 국왕에게 보내는 칙서가 있소. 왕은 포틴브라스의 숙부가 되는 분으로, 노쇠하여 계속 병석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아직 조카의 야심을 잘 모르는 것 같소. 이 칙서는 그 젊은 녀석이 왕의 백성을 마음대로 소집해서 군사를 조직하는 따위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르웨이 왕께서 잘 단속해 달라는 내용이오. 이제 그 사신으로는 코닐리어스 경과 볼티먼드 경을 임명하겠소. 노르웨이 왕과 교섭할 때 행사할 수 있는 개인적 권한은 이 서류에 명기되어 있소. 그 조항 이상은 허락하지 않으리다. 그럼 서두르기를.

코닐리어스, 볼티먼드 : 만사 분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왕 : 부탁하니 잘 다녀오시오. (두 사람 퇴장) 그런데 참 레어티즈, 너는 또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가? 무슨 청원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유만 대면 이 덴마크 왕이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 대체 네 바람이 무엇이냐? 네가 굳이 조르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알아서 들어줄 터이다. 이 덴마크 왕실과 네 조상들 사이는 뇌수와 심장보다 더 깊고 긴밀한 관계이다. 손이 입에 긴요한 것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 네 청원이 무엇이란 말인고?

레어티즈 : 황송하옵니다. 이제 소신을 프랑스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전하의 대관식에 참여하고자 돌연 귀국하였사오나 이제 그 사명도 끝나고 보니 마음은 이미 프랑스로 돌아가 있습니다. 황송하오나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왕 : 그대 부친의 허락은 받았던가? 폴로니어스 경,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앞의 문장은 왕과 레어티스의 대화이고, 뒤의 문장은 왕과 폴로니어스 경과의 대화이다. 실제 무대에서 대화의 상대에 따라 어조와 분위기의 변화가 뒤따른다는 점을 알아두자.)

폴로니어스 : 예, 자식놈이 어찌나 졸라대는지 본의는 아니지만 할 수 없이 허락해주었습니다. 이제 아비로서 전하께 바라옵나니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왕 : 그래, 가서 잘 지내도록 하라. 레어티즈야, 시간은 네 것이다. 마음대로, 그러나 아무쪼록 유익하게 쓰도록 하려무나. 그런데 참, 내 조카, 내 아들 햄릿 차례인데.

햄릿 : (방백, 옆을 보면서) 숙질 이상의 관계가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부자간 취급을 하는 것은 싫습니다.(햄릿의 심리 상태를 관객에게만 보여 주기 위해 '방백'이 사용되고 있다.)

왕 : 요즘 네 얼굴엔 늘 구름이 덮여 있구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햄릿 : 천만에요, 태양의 혜택이 너무 많다고 할 지경입니다.

왕비 : 이봐, 햄릿. 그 어두운 상복은 그만 벗어버리고, 덴마크 왕을 좀더 다정하게 바라보려무나. 넌 왜 그렇게 항상 아래만 쳐다보는 거냐. 앞으로도 계속 땅 속에 묻힌 아버님만 찾고 있을 것이냐? 너도 알지 않으냐. 생명 있는 자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란 것을. 누구나 다 한 번은 세상의 삶을 마치고 저승으로 가게 마련 아니냐.

햄릿 : 아무렴 그렇지요, 예.

왕비 : 그렇다면 어째서 너만 그렇게 유별나게 구는 것처럼 보이느냐?

햄릿 : 보이다뇨! 아니, 사실이 그런 겁니다. 그렇게 보이든 안 보이든, 그건 제가 알 바가 아구요. 어머님, 다만 이 새까만 외투나, 격식에 맞는 그럴 듯한 상복, 억지로 내쉬는 한숨. 이런 것들이 저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냇물처럼 흘리는 눈물, 비통한 표정, 비애를 나타내는 온갖 형식과 방법들, 그런 것들이 모두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죠. 하지만 그깟 연극쯤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이 가슴 속에 있는 것은 비애의 겉치레 옷차림과는 다릅니다.

왕 : 그토록 부친을 애도하는 네 태도는 참 아름답고 가상한 성품이다. 그러나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네 부친도 아버지를 여의셨고, 네 조부 또한 아버지를 여의셨다. 그래서 뒤에 남은 자는 어느 기간 동안 복상을 하기 마련이다. 바로 그게 자식 된 도리이기도 하고. 그러나 터무니없이 오래 비탄에 잠기는 것 역시 신을 모독하는 고집이며, 대장부답지 못한 행동이다. 하늘에 거역하는 불경스러운 일이 될 뿐만 아니라(왕이 햄릿에게 설득 반, 협박 반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마음 속에 신을 믿지 아니하는, 괴퍅하고 분별없는 태도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이 불가피하고 으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심술궂게 마음으로 반항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렇게는 안 된다. 그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요, 고인에게도 옳지 못한 행동이다. 또한 도리와 이치에도 어긋난다. 부친의 죽음은 가장 평범한 이치에서 생긴 일일 뿐이다. 인류가 처음 죽음을 맛보던 날부터 지금까지도 이것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소리쳐 말해주지 않으냐. 제발 그 쓸데없는 비애일랑 이제 땅에 내던지고, 이 왕을 친아버지처럼 생각해다오. 세상에 공포하지만, 너는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이다. 내가 친아버지 못지 않은 애정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너는 비텐베르크 대학에 돌아가고 싶다지만, 그건 나의 뜻과는 너무 다르다. 제발 이대로 머물러서 나의 중신, 그리고 나의 조카이자 아들로서 이 왕의 힘이 되어 주고 위안이 되어 다오.

왕 : 얘야, 네 어머니의 소원을 헛되지 않게 해 다오. 이렇게 간절히 당부한다. 제발 비텐베르크로 돌아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있어줄 수 없겠니?

햄릿 : 예, 아무쪼록 어머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왕 : 거 정말 기특한 대답이다. 정말 반갑다. 이 덴마크에서 짐과 함께 지내도록 하라. 여보, 거트루드, 햄릿이 이렇게 기꺼이 승낙하니 내 마음도 풀리는구려. 축하하는 의미에서 오늘 덴마크 왕이 축배를 들어야 하겠소. 즐거운 한 잔 한 잔마다 축포를 터뜨려 하늘에 알리도록 해야지. 그래야 하늘도 왕의 주연을 축하하고 지상의 즐거움에 화답할 것 아니오.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나팔 소리. 햄릿만 남기고 퇴장)

햄릿 : 아, 너무나 더러운 이 육체. 차라리 완전히 녹아버려 완전히 이슬이나 되어 버렸으면(햄릿의 괴로움이 처음 표현되는 대목이다.)! 신은 왜 또 그렇게 자살을 금지하는 율법을 정하셨던가! 아, 아. 세상만사 다 귀찮다. 멋없고 진부하며 쓸데없구나. 에이 더러운 세상, 뜰에는 잡초만 마구 자라고, 온통 악취가 코를 찌르는구나. 이렇게 되고 말다니. 돌아가신 지 겨우 두 달, 아니 그렇지 두 달도 채 못된 것 아닌가. 너무 훌륭하신 임금님 아니었던가. 지금의 왕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 아닌가. 바깥 바람이 거세면 그걸 맞는 것조차 말리실 정도로 어머니를 아끼셨는데 제기럴, 그런 일까지 다 머리 속에 떠올려야 하나? 먹으면 먹을수록 욕심이 사나워지는 것처럼 늘 아버지께 매달리곤 하시던 어머니, 그러던 것이 채 한 달도 못돼서... 아예 생각을 말자. 여자란 어쩔 수 없어! 겨우 한 달. 니오베 여신처럼 온통 눈물에 잠겨 아버지의 상여를 따라가던 신발이 채 닳기도 전에, 아 어머니가, 세상에 우리 어머니가 저 숙부의 품에 안기다니. 사리를 분간 못하는 짐승이라도 이보다는 더 슬퍼했을 것 아닌가. 한 형제라곤 해도 나와 헤라클레스 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저런 자하고, 한 달도 채 못 가서 결혼을 하다니. 거짓 눈물을 흘린 그 소금 기운으로 아직 눈이 벌건 그대로 말이야. 야, 너무 빠르고, 너무 더럽구나. 어쩌면 그리도 잽싸게 그 더러운 이부자리로 달려간단 말이냐! 옳지 못해, 절대 옳지 못할 거다. 그러나 잠깐, 이 생각만은 이 가슴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입을 다물어야지.

 

- 호레이쇼, 마셀러스, 바나도 등장

 

호레이쇼 : 안녕하십니까!

햄릿 : 오, 잘 있었나. 호레이쇼 아닌가. 내가 원 정신이 없나?

호레이쇼 : 바로 그 호레이쇼, 왕자님의 변함 없는 종입니다.

햄릿 : 원, 이 친구, 나야말로 오히려 그렇게 말하고싶은 심정일세. (악수한다) 그래 호레이쇼, 비텐베르크에서 무슨 일로 돌아왔나? 아, 마셀러스도 있었구먼. (악수의 손을 내민다)

마셀러스 : 아, 왕자님!

햄릿 : 참 반갑네 (바나도에게) 아 자네도 별고 없었나. (호레이쇼에게) 그런데 자네 정말 무슨 일로 비텐베르크에서 돌아왔나?

호레이쇼 : 제가 원체 놀기를 좋아하는 놈 아닙니까.

햄릿 : 자네 적들이 그렇게 욕을 해도 곧이들을 내가 아니네. 하물며 자네 스스로 자기 욕을 하는 그 말을 내 귀가 믿을 줄 아나? 자넨 절대 게으름뱅이가 아니네. 대체 무슨 일로 이 엘시노어에 왔나? 다시 떠나기 전에 술고래가 되는 법이나 배우려고 그러나.

호레이쇼 : 실은 국상을 뵈오려 이렇게 왔습니다.

햄릿 : 제발 농담은 그만두게. 그보다도 우리 어머니 혼례식을 보러 온 것이겠지.

호레이쇼 : 그러고 보니 참, 잇달아서.

햄릿 : 여보게, 그게 다 경제적인 문제라네(돈만 있으면 다 가능한 일이라네. 숙부가 장례식에 이어 혼인 잔치를 한 것을 빗대어 비꼬는 말). 제사상 음식이 식을 만하면 잔칫상이 나온다 그 말일세. 이런 꼴을 볼 바에야 차라리 천당에서 원수를 만나는 게 낫겠어. 여보게 호레이쇼, 지금도 아버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네.

 

(중략)

 

2막

 

햄릿은 충격과 분노로 마음의 평정을 잃고 숙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미친 것처럼 행세한다.

 

제3막 1장 엘시노어 성(城)

 

접견실로 이어지는 큰 복도 벽에 방장(房帳 : (겨울에 외풍을 막기 위해)방안에 치는 휘장.)이 걸려 있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있다. 한쪽에 십자가가 서 있는 기도대. 클로디어스 왕, 거트루드 왕비 등장, 이어서 폴로니어스, 로젠크랜츠, 길든스턴 등장. 조금 뒤에 오필리어 등장.

 

클로디어스 : 아무리 파헤쳐도 이유를 캐낼 수 없다는 거지?(겉으로는 햄릿의 정신 상태를 염려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선왕을 죽인 사실을 햄릿이 알고 있지나 않은지에 대한 의심과 불안감이 복선으로 깔려 있다.) 고요한 나날을 미친 척하면서 위험 천만한 광기(미친 증세)로 마냥 소란을 피우는 까닭을 알 수 없단 말인가?(햄릿을 염려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선왕을 죽인 사실을 햄릿이 알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로젠크랜츠 : 스스로 정신 착란((감정이나 사고 따위가) 뒤엉클어져 어지러움.)을 시인합니다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십니다.

길든스턴 :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어쩌다가 본심이 드러날 듯한 경지에까지 유도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막상 핵심에 이르면 미친 척하여 능숙하게 피하십니다.

거트루드 : 그네들을 반갑게 맞아 주시던가?

로젠크랜츠 : 네, 정중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길든스턴 :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는 듯했습니다.

로젠크랜츠 : 스스로 말문을 잘 열지 않으셨지만 이쪽에서 묻는 말은, 잘 대꾸해 주셨습니다.(햄릿이 정말 정말 미쳤는지, 미친 척하는 것인지 탐지하기 위하여 햄릿을 만나본 궁신들이 클로디어스 왕과 거트루드 왕비에게 그 결과를 보고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어느 쪽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트루드 : 놀이에 청해 보지 않았던가?

로젠크랜츠 : 왕비 폐하 ! 실은 배우 일행들이 이곳에 오는 길에 저희들과 노상에서 만났습니다만,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왕자님께선 기뻐하셨습니다. 배우 일행들은 지금쯤이면 도착해서 왕자님의 하명(명령을 내림, 윗사람이 내리는 명령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받들어 오늘 저녁쯤 한판 벌일 듯합니다.

폴로니어스 : 그렇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저보고 왕과 왕비님께 이 공연을 구경해 주십사고 청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배우들이 공연한 연극 내용에 대해 햄릿이 어떤 계략을 포함시켰음을 미리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햄릿은 유령이 말한 내용을 극으로 보여 주고, 왕과 왕비의 반응을 통해 그 사실 여부를 판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하'는 햄릿을, '두 폐하'는 왕과 왕비를 가리킨다.)

클로디어스 : 기꺼이 구경하겠다. 그런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니 반갑다. 그런 놀이에 더욱더 열을 올리도록 권유해 보게.

로젠크랜츠 : 네. (로젠크랜츠와 길든스턴 퇴장)

클로디어스 : 거트루드, 당신도 물러가시오, 실은 햄릿을 이곳에 오도록 은밀히 불렀소.(이 대목은 클로디어스를 위시한 여러 인물들이 모여 햄릿이 광기를 일으키고 있는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장면이다. 클로디어스는 자신이 선왕을 살해한 사실을 햄릿이 알아차리고 정신 착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플로니어스는 오필리아에 대한 상사병 때문에 햄릿이 광기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오필리아와 우연히 만나도록 일을 꾸며 놨소. 폴로니어스와 나는 적법(適法)한 탐정이 된 셈이요. 이곳에서 몸을 숨기고 살펴볼 참이요. 둘이 만나는 광경을 잘 관찰하여 햄릿의 고민이 상사병 때문인지 아닌지를 그의 거동으로 판단해 보고자 하오.

거트루드 :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필리아. 햄릿 왕자의 광증이 너의 아름다움 때문이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느냐. 그리고 너의 상냥한 마음이 햄릿의 마음을 정상으로 돌려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둘의 행운을 빌겠다.

오필리아 :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거트루드 퇴장)

폴로니어스 : 오필리아, 여기서 걷고 있어라. 폐하, 자리를 피하소서. 오필리아, 이 책을 읽고 있어라. (기도대에서 책을 들어 오필리아에게 준다.) 기도책을 읽고 있으면 혼자 있어도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 신앙심 깊은 표정을 짓고, 경건한 태도를 보이면서 악마의 본성에 사탕발림을 하는 일은 옳지 못한 짓이긴 해도 세상에는 흔히 있는 일이거든.

클로디어스 : (방백) 아, 참으로 옳은 말이로다. 그 말이 채찍처럼 내 양심을 치는구나. 분칠한 창부(몸을 파는 일을 업으로 삼는 여자)의 빰은 분보다는 더 추악한 법이지만, 분칠한 나의 말 뒤에서 저지르는 이 행위는 더욱더 추악하도다. 오 ! 죄악의 무거운 짐이여 !(셰익스피어 비극에 나오는 대사의 뛰어남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클로디어스 왕은 본심을 숨긴 채 오필리어를 이용하여 햄릿의 동태를 살피려는 자신의 추악한 양심을 '창부의 뺨'에 비유하고 있다.)

폴로니어스 : 이리로 오시는가 봅니다. 폐하, 숨으세요.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어스는 숨고, 오필리아는 기도대 앞에 무릎을 꿇는다. 햄릿 침울한 표정으로 등장)

햄릿 :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햄릿은 비극적 처지에 빠진 자신의 고뇌를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은 것'에 비유한다. 햄릿의 고뇌는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기인한다. 그는 부도덕한 세계에 맞서서 복수를 감행할 용기가 없을 뿐더러, '사후의 한 가닥 불안' 때문에 쉽사리 죽음을 택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햄릿의 독백은 인간 세계의 선악과 생사의 본질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며, 중요한 문제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뇌하는 햄릿형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하였다. 또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보여 준다. 사는 것은 모욕이고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므로 결단이 망설여진다는 의미의 말이다. 햄릿의 성격과 인간적 갈등을 보여 주는 너무나 유명한 말이다. 햄릿의 대사의 의미는 단순히 그의 내성적이고 사변적인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이란 선과 악이 뒤섞여 돌아가는 다양하고 복잡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눈 떠가는 감수성 예민한 한 젊은이의 인식 변화 과정과 관계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 속으로 참는 것이 장한 것이냐, 아니면 노도(怒濤)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없애는 것이 장한 것이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 일까. 남는 것은 오로지 잠자는 일뿐이라면 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일. 잠들면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잠들면서 수만 가지 인간의 숙명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극치로다. 죽는 일은 잠드는 일……. 아마, 꿈을 꾸겠지. 아, 그것이 괴롭다. 이 세상 온갖 번민으로부터 벗어나서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꿀 것인가 생각하면 망설여진다. 이 같은 망설임이 있기에 비참한 인생을 지루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의 채찍과 조롱을, 무도한 폭군의 거동을, 우쭐대는 꼴불견들의 치욕을, 버림받은 사랑의 아픔을, 재판의 지연을, 관리들의 불손을, 선의의 인간들이 불한당들로부터 받고 견디는 수많은 모욕을 어찌 참아 나갈 수 있단 말인가. 한 자루의 단검(短劍)으로 찌르기만 하면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진대, 어찌 참아 나가야 한단 말인가. 생활의 고통에 시달리며, 땀 범벅이 되어 신음하면서도, 사후(死後)의 한 가닥 불안 때문에, 그 미지(아직 알지 못하는)의 나라에 대한 불안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결심은 흐려지고, 이 세상을 떠나 또 다른 미지의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 남아서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려 한다. 사리 분별(事理分別)이 우리들을 겁쟁이로 만드는구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타고난 결단력이 망설임으로 창백해지고, 침울해진 탓으로 마냥 녹슬어 버린다. 의미 심장(말이나 글의 뜻이 매우 깊은)한 대사업도 이 때문에 옆길로 쏠리고, 실천의 힘을 잃게 된다. 쉿, 이것 보게. 오, 아름다운 오필리아. 기도하는 미녀여. 그대의 기도 속에서 나의 죄도 용서를 받게 하라.

오필리아 : 햄릿 왕자님.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햄릿 : 아 ! 고맙소. 무사 태평, 무사 태평, 무사 태평이오.

오필리아 : 왕자님, 저에게 보내 주신 선물을 간직하고 있습니다만, 꼭 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발 받아 주세요.

햄릿 : 안 되오. 아무것도 준 기억이 없어요.

오필리아 : 왕자님. 보내 주신 걸 잘 아실 텐데요. 선물이 더욱 빛나도록 향긋한 말씀(사랑의 말을 의미한다. 두 사람은 전에 사랑했었다.)까지 얹어 보내 주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향기가 사라졌으니 받아 주세요. 고귀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훌륭한 선물도 주는 이의 진정이 식어지면 볼품이 없어지죠. 왕자님, 여기 있습니다.

(가슴에서 목걸이를 끌러 햄릿 앞의 탁자 위에 놓는다.)

햄릿 : (음모를 눈치챈다) 하, 하! 당신은 정숙하오?

오필리아 : 네?

햄릿 : 당신은 아름답소

오필리아 : 왕자님, 무슨 뜻입니까?

햄릿 : 만약 당신이 정숙하고 아름답다면, 당신의 정숙과 당신의 아름다움이 서로 지나치게 친숙하지 않도록 조심하오.(이 말은 여자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어머니 거투르드가 개가한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렇게 정숙하고 아름다웠던 어머니였지만 시동생이자 남편의 원수인 지금의 왕 클로디어스의 아내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필리아 : 여자의 정절과 아름다움은 가장 잘 어울리는 상대가 아닐까요?

햄릿 : 맞아요. 아름다움은 정숙한 여인을 순식간에 매춘부로 바꿔놓을 수 있소(어머니가 숙부인 클로디어스의 아내가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정숙한 힘이 미인을 정숙한 여성으로 만드는 일보다 더 간단한 일입니다. 예전 같으면 역설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은 실례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소, 나도 한 때는 당신을 사랑했었소.

오필리아 : 왕자님,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햄릿 : 믿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미덕을 인간 본래의 바탕에 접붙여도 원래의 더러움은 사라지지 않소,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아무리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해도 본심이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자신이 오필리어에게 한 사랑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햄릿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햄릿은 오필리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뒤죽박죽 늘어 놓으며 그녀로 하여금 그녀에게 고백했던 햄릿의 사랑이 거짓이었다고 느끼게 만들고 있다.)

오필리아 : 그렇다면 제가 속았군요.

햄릿 : 수녀원으로 가, 무엇 때문에 죄 많은 인간을 낳고 싶어하는 거요? 내 딴엔 스스로 점잖은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어머니가 나를 낳아 주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죄악을 범하고 있소, 거만하고 복수심에 불타고, 야심 만만해서 어떤 죄를 또 범할 지 알 수 없는 인간이오. 그 모든 일을 차근차근히 생각해 낼 힘도 없고, 그것에 형태를 줄 만한 상상력도 없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만한 시간도 갖고 있지 않지만, 한없이 많은 죄악을 짊어지고 있소. 나 같은 녀석이 이 세상 천지간을 꿈틀거리며 기어다닌들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소? 우리 모두가 악당들이지요. 아무도 믿지 말아요. 제발 수녀원으로 가요. 아버지는 어디 계시오?

오필리아 : 집에 계십니다.

햄릿 : 집안에 가둬 두세요. 바깥 세상에 나와 미친 수작 못하게 말예요. 잘 있어요. 오필리아(퇴장)

오필리아 : (십자가 앞에 무릎을 끓는다.) 오, 하나님, 저 분을 구해 주소서.

햄릿 : (다시 돌아와서) 만약에 당신이 결혼한다면 지참금 대신에 이 저주를 당신께 보내리다. 비록 얼음같이 맑고, 눈송이처럼 결백하다 하더라도 이 세상 험담은 피할 길 없으니, 오필리아, 수녀원으로, 수녀원으로 가, 안녕........하지만 만약에 굳이 결혼을 해야 한다면 바보와 결혼하시오. 똑똑한 녀석들은 일단 당신과 결혼하면 어떤 멍청이들이 될 것인가 썩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수녀원으로, 수녀원으로 빨리 가야 해. 잘 있소. 오필리아(후다닥 뛰어나간다.)(햄릿이 완전히 미친 척하면서 내뱉은 대사이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라면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내용이고, 말의 앞뒤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으로 결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깔려 있음을 읽어 낼 수가 있다.)

오필리아 : 오 하나님, 저 분이 제 정신을 찾도록 해 주소서.

햄릿 : (다시 또 되돌아와서) 여자들이 화장을 한답시고 얼굴에 처바르는 것도 알고 있어. 하나님이 주신 얼굴을 제 손으로 딴 모양을 만들어 버리지. 경박한 발걸음, 멋을 부리는 걸음걸이, 어리광 섞인 말투,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 제멋대로 별명까지 붙이면서 방자한 일을 마냥하면서도 몰라서 한 짓이라고 발뺌을 하지. 빌어먹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미 결혼한 놈들은 한 사람만 빼놓고 살 게 내 버려 두겠다. 아직 미혼인 자들은 평생 홀아비로 남겨 둬야지. 수녀원으로 가!(퇴장) (이 횡설수설 속에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인 뼈 있는 말이 들어 있다. 그것은 '이미 결혼한 놈들은 한 사람만 빼놓고 살게 내버려 두겠다'라는 부분으로 이 말은 역으로 말하면 '이미 결혼한 남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반드시 죽이겠다'라는 말이 되고, 따라서, 그 한 사람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로디어스 왕'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필리아 : 아 그토록 고결하시던 분이 저토록 실성을 하시다니!(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횡설수설하는 햄릿을 보고 오필리어는 그가 완전히 미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귀족적인 눈매, 군인다운 기량, 학자다운 언변은 이 나라의 희망이요, 꽃이었는데(햄릿의 인물됨에 대한 묘사이다. 지난날의 햄릿은 왕자다운 준수한 외모에 뛰어난 무술 솜씨를 갖추고 있었고, 학문도 높았으며, 말솜씨도 빼어나서 온 나라의 꿈과 희망이었다는 말), 유행의 거울, 예절의 모범, 모든 사람들의 찬양의 표적(지난날은 햄릿이 다른 사람의 모범이었다는 말)이었던 그 분이 볼 수도 없게 무너져 버리셨다. 나는 이 세상에서 불행한 여자, 저 분의 달콤한 맹세의 꿀을 빨아 먹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눈으로, 그토록 고귀하셨던 지난날의 그 분이 금간 종소리처럼 마음의 음색이 변하여 거칠 게 울부짖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니. 활짝 핀 젊음의 아름다운 꽃잎이 광란의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 저토록 처참히 지고 말았구나! 과거를 보던 눈으로 현재를 봐야 하는 이 불행이여!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어스 휘장 뒤에서 슬그머니 나타난다.

 

클로디어스 : 사랑 때문이라고? 당치 않은 얘기! 그의 마음은 그리로 간 것이 아니오. 횡설수설 대중이 없긴 하지만 내뱉는 얘기가 미친 사람의 소리 같진 않소... 분명 마음 속에 뭔가 도사리고 있기에 저렇게 우울한 게 분명해(오필리어와 만나는 햄릿을 몰래 지켜 본 클로디어스 왕이 신변의 위험을 느껴 한 대사이다. 그는 햄릿이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그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대단히 위험한 사태가 생기리라고 염려하고 있다.). 그것이 터져 나오는 날이면 내게 위험이 닥치겠지. 그걸 막으려면 아무래도 선수를 쳐야지. 자, 이렇게 하면 어떨까?(위험을 느낀 클로디어스 왕이 햄릿을 제거할 음모를 꾸며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대사로 클로디어스가 교묘한 계책에 능한 교활한 인물임을 보여 주는 내용이다.) 왕자를 즉시 영국으로 파견하도록 하자. 밀린 조공도 재촉한다는 명분으로 말이야. 바다 건너 머나먼 다른 나라에 가서 색다른 타국 풍물을 구경하다 보면 왕자의 가슴속에 꽁꽁 뭉친 괴로움이 다소라도 풀릴지도 모르지. 밤낮 생각에만 골몰하니, 저렇게 실성할 수밖에. 경의 의견은 어떠하오? (오필리어가 다가온다)

폴로니어스 : 참으로 묘안이십니다. 그러나 소신의 생각으론 왕자님께서 수심에 빠지게 된 근원과 시초는 실연 때문이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그렇지, 오필리어? 햄릿 왕자님이 하신 말씀은 전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다 들었으니까. 폐하, 폐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지만 연극이 끝난 뒤에 왕비 마마께서 왕자님을 부르시어 자세한 곡절을 물어보시는 것이 어떠하올지요. 그리고 페하께서 허락하신다면 신이 몰래 숨어서 두 분의 말씀을 자세히 들어볼까 하옵니다. 그렇게 해서도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왕자님을 영국으로 보내시던가 또는 어디 적당한 곳에 감금하시던가 뜻대로 정하심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클로디어스 : 경의 의견대로 하리다. 귀인의 실성을 그대로 방관해둘 수는 없는 일이오(클로디어스 왕이 햄릿을 제거할 결심을 굳혔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대사이다.).

(모두 퇴장)

3막

햄릿은 클로디어스의 본심을 떠보기 위해 국왕 살해의 연극을 숙부 앞에서 상연하도록 하여 진상을 알아낸다. 그 후 햄릿은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숙부로 오인하여 죽이게 된다.

4막

오필리아는 실연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한다. 이 때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돌아온 레어티즈는 누이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햄릿에 대한 더 큰 증오심에 불탄다.

5막

레어티즈와 검술 시합을 한 햄릿은 레어티즈의 독을 바른 칼에 치명상을 입지만 클로디어스를 찔러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 거트루드는 클로디어스가 햄릿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독주를 마시고 죽고, 햄릿도 친구에게 세상에 진실을 알릴 것을 부탁하며 숨을 거둔다.

뒷부분의 줄거리

햄릿은 성을 방문한 순회 극단에게 숙부의 독살 행위와 똑같은 사건을 상연하게 한다. 왕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심증을 굳히지만 잘못하여 연인인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영국으로 추방된다. 오필리아는 실연과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살하고, 영국으로 쫓겨간 햄릿은 왕의 계락을 역이용하여 귀국한다. 위험을 느낀 왕은 레어티즈를 이용해 햄릿을 죽이려 한다. 레어티즈와 햄릿이 검술 시합을 하도록 마련한 왕은 독을 바른 칼과 독약이 든 술을 준비한다. 햄릿은 검술 시합에서 치명상을 입지만 클로디어스를 찔러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 거트루드는 독이든 술을 마시고 죽고 햄릿도 친구에게 세상에 진실을 알려 줄 것을 부탁하고 죽는다.

5막

테이블 하나가 미리 준비돼 있고, 하인들이 관람용 의자와 쿠션을 운반해 온다. 드디어 나팔수, 고수, 궁신들의 왕과 왕비를 모시고 등장. 오즈릭과 또 한 사람의 궁신이 심판관이 되어 몇 자루의 시합용 검과 단검, 그리고 포도주 술잔들을 가지고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레어티즈(햄릿은 레어티즈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를 죽인 사실이 있다. 왕비와 햄릿이 대화하는 것을 엿듣다가 햄릿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안 레어티즈는 복수하기 위해 귀국하였다.), 시합 복장을 하고서 등장.

클로디어스 : 자, 햄릿. 여기 와서 손을 잡아라. (왕이 레어티즈의 손을 햄릿 손에 쥐어 주며 악수를 나누게 한다. 그러고는 왕비를 데리고 옥좌에 앉는다.)

햄 릿 : 용서해 주게, 내 잘못이었어. 신사답게 부디 용서해 주기 바라네. 이 곳에 참석하신 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그리고 자네도 들은 바 있겠지만, 나는 극심한 정신 착란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네. 내 행동이 자네의 효성과 명예, 그리고 자네의 감정에 깊은 상처를 입혔을 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광기 때문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네. 레어티즈를 모욕한 것이 햄릿이었던가 ? 아닐세 . 결코 햄릿이 아니었네. 만약 햄릿이 이성을 잃고 햄릿 아닌 또 다른 그가 레어티즈에게 해를 입혔다면, 그것은 햄릿의 과오가 아니네. 햄릿은 그것을 부인하네.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짓일까 ? 그의 광기가 저지른 짓이네. 그렇다면 햄릿도 피해자가 되는 셈이네. 그의 광기는 가엾은 햄릿 자신의 적이기도 한 것이네(내가 이성을 잃고 광기에 빠져 저지른 것이지 나의 의도가 아니었다. 나 자신도 그 광기의 피해자이다. 햄릿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하면서 사려 깊은 성격을 잘 드러내는 대사이다. 그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큰 갈등을 겪고 있는지를 함축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의 대사는 시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참고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탁이네. 여기 참석하신 여러분들 앞에서, 내가 자네에게 해를 끼치려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이 변명을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라네. 지붕 너머로 쏘아 올린 화살이 우연히 형제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라고 생각해 주지 않겠는가 ?

레어티즈 : 아들로서의 효심을 생각한다면 지금 복수심을 최고로 촉발시켜야 마땅할 계제(일이 사닥다리 밟듯 차차 진행되는 순서)이겠지만, 그 점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명예에 관해서 만큼은 냉정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또한, 결코 화해 같은 것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명예 높기로 이름난 어느 인생의 선배가 중간에 서서 화해해도 좋다는 의견과 그 선례를 제시하면서 나의 면목을 보장해 줄 때까지의 말입니다(내가 당신과 결투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 폴로니우스를 죽인 햄릿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우리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나의 의지로 그만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명예와 권위를 갖춘 어떤 선배가 이러이러한 선례가 있으므로 화해를 해도 좋다고 할 정도가 되어야만 이 복수 결투를 중단할 수가 있다). 다만 그 때까지 전하가 보여 주시는 우정은 우정으로서 고맙게 받아들일 뿐이지 거역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오늘날의 연극이라면 이런 표현이 우수꽝스럽게 들릴 것이다. 이런 표현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고려가 필요하다. 하나는 고전적 어법이다. 서양에서도 낭만주의 이전에는 시는 물론 문학의 표현에서 일정한 격조가 요구되었다. 또 하나는 영어 표현의 문화적 특성이다. 말을 우회적으로 하는 것을 격조로 여기는 문화적 관습이 여기 담겨 있다.)

햄 릿 : 그 말을 들으니 기쁘이. 형제처럼 정직하게 시합을 해 보세. 자, 내게 검을 달라.

레어티즈 : 자, 나에게도 한 자루를.

햄 릿 : 내 무딘 검은 네 들러리 상대가 되리라, 레에티즈. 미숙한 나에 비하면 자네 솜씨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뿜을 것이네.

레어티즈 : 놀리지 마십시오.

햄 릿 : 아냐, 진정이네.

클로디어스 : 오즈릭, 검을 주어라.(오즈릭, 몇 자루의 시합용 검을 가지고 온다. 레어티즈가 그 가운데 한 자루를 집어 들어 휘둘러본다.) 햄릿, 내기를 걸었따는 건 알고 있느냐 ?

햄 릿 :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 물론 약한 쪽에 유리한 조건을 붙이셨겠지요(당신같이 사악한 사람은 정당한 보상보다 잔꾀를 써서 강한 사람보다 약한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했을 것이다. 햄릿이 숙부인 클로디어스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잘 나타내 준다)?

클로디어스 : 걱정 마라. 나는 두 사람의 솜씨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레어티즈의 솜씨가 아주 늘었기 때문에 이쪽의 조건을 좀 유리하게 만들어 두었지.

레어티즈 : 이건 너무 무겁구나(사건이 전개될 방향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는 복선이다). 다른 것을 보여 다오.(테이블로 가서 칼끝이 뾰족한, 독이 칠해진 검을 골라 잡는다.)

햄 릿 : (오즈릭으로부터 검을 받아 들고) 나는 이게 마음에 든다. 어느 검도 길이는 똑같겠지?

오즈릭 : 그렇습니다.

두 사람 시합 준비를 한다.

클로디어스 : 포도주 잔들을 테이블 위에 놓아라. 만약에 햄릿이 1 차전이나 2 차전에서 득점을 하거나 3 차전에서 만회하거든, 모든 성벽에서 축포를 터뜨려라. 그 때 짐은 햄릿의 건투를 위해 축배를 들겠다. 술잔에는 진주를 넣어 두겠다. 4 대째 덴마크 왕의 왕관을 장식했던 진주보다도 더 훌륭할 것이다. 술잔을 달라. 고수를 나팔수에게, 나팔수는 성 밖의 포수에게, 포성은 하늘을 향하여, 하늘은 지상에 대하여 알려라. "지금 왕이 햄릿을 위하여 축배를 든다."라고. 자, 시작하라. 너희 심판관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 봐라.(극적 아이러니는 햄릿에서 클로디어스의 흉계가 시사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등장인물이나 관객은 흉계를 모두 알고 있는데 주인공만 모르는 상황을 극적 아이러니라 한다. 그러나 극적 아이러니는 이러한 흥미를 조장하기 위해서보다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모두가 알고 있는 패배를 유독 주인공만 모르고서 운명에 도전하거나 투쟁해서 철저히 몰락하는 비극에서 이러한 아이러니는 강조된다. 그런 모습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왕 곁에 술잔이 놓인다. 한동안 나팔 소리. 햄릿과 레어티즈, 각자 자리를 잡는다.

햄릿 : 자, 간다.

레어티즈 : 좋습니다.

시합이 시작된다.

햄릿 : 한 대 -

레어티즈 : 심판, 판정하게.

오즈릭 : 한 대 먹이셨습니다. 아주 깨끗한 한 대였습니다.

북 소리, 나팔 소리, 축포가 취주악에 섞여 한 발 울린다.

레어티즈 : 자, 다시 시작합시다.

클로디어스 : 기다려, 술을 달라. 햄릿, 이 진주는 네 것이다. 자, 너를 위해 건배하자. 햄릿에게 잔을 주어라.(흉계의 실행을 촉진하려고 하고, 그것이 잘 성사되지 않는 데서 긴장이 고조된다.)

햄릿 : 시합을 한 차례 더 끝내고 들렵니다. 술잔을 잠시 놓아 두어라. 자, (다시 시작된다) 또 한 대 들어간다. 어떠냐?

레어티즈 : 스쳤소. 약간 스쳤습니다. 그건 사실이오.

클로디어스 : 우리 햄릿이 이길 것 같군.

거트르드 : 땀범벅이 되어 숨을 헐떡이고 있군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햄릿, 여기 손수건이 있다. 이마를 닦아라. (햄릿의 술잔을 들며) 햄릿, 너를 위해서 내가 건배하마.

햄릿 : 감사합니다. 어머니

클로디어스 : 거트루드, 마시면 안 되오.(예상 밖의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이를 계기를 사건은 급박하게 역전되기 시작한다.)

거트루드 : 마시겠어요. 허락해 주세요.(술을 마시고 햄릿에게 잔을 건넨다.)

클로디어스 : (방백) 그건 독이 든 잔이란 말이오! 때는 이미 늦었군.

햄릿 : 전 지금은 마실 수 없습니다. 어머니, 나중에 들지요.

거트루드 : 이리 오너라. 얼굴을 닦아 주마.

레어티즈 : 폐하, 이번만은 한 대 먹이겠습니다.

클로디어스 ; 글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레어티즈 : (방백) 양심에 가책이 되어 견딜 수가 없구나.

햄릿 : 덤벼라. 레어티즈, 3회전이다. 장난으로 하면 못써. 힘껏 찔러 봐. 나를 놀릴 셈이냐?

레어티즈 : 그러시다면 자, 한 대 받으시오. (싸운다)

오즈릭 : 무승부

레어티즈 : 이번만은 한 대 들어갑니다!

격투하는 동안 우연히 서로 검을 바꿔 쥔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는다.(우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의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을 서로 바꿔 쥠으로써 두 사람 모두 죽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대사 한 구절. 지문 하나에도 작가의 치밀한 의도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고 감상한다.)

클로디어스 : 뜯어 말려라. 둘 다 격해 있다.

햄릿 : 자, 오너라 …… 다시!

왕비 거투르드, 쓰러진다.

호레이쇼 : 두 분 다 피를 흘리시는군! 전하, 어떻게 된 겁니까?

오즈릭 : 레어티즈, 어찌 된 일입니까?

레어티즈 : 내가 쳐 놓은 덫에 스스로 걸리고 말았네. 오즈릭, 내가 꾸민 흉계에 내가 목숨을 잃게 되었어.(내가 클로디어스와 짜고 검에 독을 발라 놓았는데, 그것을 바꿔 쥐는 바람에 결국 내가 희생을 당하게 되었다.)

햄릿 : 왕비님은 어찌 되신 거냐?

클로디어스 : 피를 보고 기절하셨다.

거트루드 : 아니다, 아니다. 저 술, 저 술! 오, 햄릿! 저 술, 저 술! 독을 탔어(죽는다.)

햄릿 : 음모다! 여봐라, 문을 잠가라. 반역이다! 범인을 찾아라(레어티즈 쓰러진다)

레어티즈 : 범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햄릿, 햄릿 당신도 죽을 목숨입니다. 이 세상 어떤 묘약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의 목숨도 30분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 배반의 무기는 바로 당신 손에 쥐어져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 칼끝이 뾰족하고 독이 묻은 흉기. 저의 비열한 음모는 바로 제 자신에게 앙갚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이러한 배반이 초래된 것은 바로 당신이 지금 쥐고 있는 그 칼입니다. 저는 클로디어스 왕과 비열한 음모를 꾸며 당신을 해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여기, 이렇게 쓰러진 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어머니도 독살되어…… 아, 이제 더 말할 수조차 없군요 …… 왕이, 왕이 범인입니다.(우유부단한 햄릿으로 하여금 다음 행동을 결단토록 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대사이다. 모든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햄릿은 그토록 망설이던 복수를 함으로써 이 극의 대단원을 이루게 된다.)

햄릿 : 칼 끝에 독을 발랐다니! 그렇다면 독이여! 너의 역할을 다하라.(칼로 클로디어스를 찌른다.)(독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므로 너의 임무대로 이 사람을 죽게 하라.)

일동 : 반역이다! 반역이다!

클로디어스 : 여봐라, 어서 와서 날 좀 보호하라. 아직은 그저 상처만 입었을 뿐이니.

햄릿 : (독배 왕의 입에 강제로 가져다 대고) 자, 살인마. 저주받을 덴마크 왕이여, (술을 강제로 먹이며) 이 독주를 마셔라, 네 진주가 바로 이것이냐? 내 어머니의 뒤를 따르라.

클로디어스 왕 죽는다.(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레어티즈 : 천벌이다. 자기 손으로 조제한 독약을 마시게 되다니. 고결한 햄릿 전하. 우리 서로 용서합시다. 나의 죽음이나 아버지의 죽음이 당신의 죄가 되지 않도록(내가 죽는 것은 비열한 음모의 죄이며, 아버지의 죽음은 클로디어스에게 원인이 있으므로 햄릿이 그 죄를 뒤집어 쓰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음모에 의해 칼에 독을 바름으로써 당신이 죽게 된 것도 나의 죄가 되지 않도록 용서해 달라.) 비옵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 또한 저의 죄가 되지 않도록!(죽는다)

햄릿 : 하늘이 죄를 용서하도록 빌겠다! 나도 너의 뒤를 따르겠다. 호레이쇼, 나도 이젠 끝장이다. 가련한 왕비님, 고이 가십시오. 모두들 창백한 얼굴로 떨고 있구나. 너희들은 이 연극 속에서 침묵을 지키는 배우 역들인가. 아니면 구경꾼들인가.(이 모든 것이 클로디어스가 햄릿을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민 일이라는 뜻이다.) 나에게 시간이 있으면……아, 죽음이라고 하는 저 잔인한 병사가 끈질기게 뒤따라오지만 않는다면……너희들에게 말해 줄 수 있으련만. 그러나 속수 무책이구나. 호레이쇼, 나는 죽어 가지만 너는 살아서 내 얘기, 내 입장을 올바로 전하라.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호레이쇼 : 제가 살아 남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덴마크 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고대 로마 인이 되고 싶습니다(나는 덴마크인이지만 차라리 고대 로마 인들처럼 충직과 의리를 지켜 당신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아직도 술이 남아 있습니다. (독배를 들어 올린다.)

햄릿 : (일어나며) 네가 대장부라면 그 잔을 나에게 달라. 어서 놓게, 놓으라니까! (호레이쇼가 든 잔을 떨어뜨린 뒤 쓰러진다.) 아, 호레이쇼. 이 사건의 자초지종(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동안. 또, 그 사실)이 설명되지 않는다면 나는 죽은 다음에도 상처투성이의 오명을 뒤집어써야 한다. 네가 진심으로 나를 위한다면, 잠시 천국의 행복을 멀리하고,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이 험한 세상에 남아서 내 얘기를 전해 다오(이 사건의 모든 사실이 사람들에게 설명되지 않으면 나는 죽은 다음에도 많은 오해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 호레이쇼, 네가 나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나를 따라 죽는 것을 잠시 멈추고 이승에 남아서 나의 이 사연과 곡절을 설명해 다오.)……. (멀리서 군대의 진군 소리. 포성이 들린다.) 저 떠들썩한 소리는 무엇인가? (오즈릭 등장)

오즈릭 : 포틴브라스께서 폴란드를 정복하고 개선하는 도중, 영구 대사가 도착했기에 우렁찬 축포(영국에 보낸 밀사들의 활동 결과를 말함)를 터뜨린 것입니다.

햄릿 : 아, 호레이쇼. 나는 죽는다 ! 독기가 무섭게 정신을 마비시키는구나. 영국으로부터의 소식도 듣지 못하게 됐구나. 하지만, 예언하건대 왕으로 선출될 사람은 포틴브라스 밖에 없다. 죽음이 임박한 이 자리에서 나는 그를 추대하고 싶다. 그에게 내 뜻을 전하여라. 이렇게 된 여러 사정 얘기도 빼놓지 말고 전하라. 이젠 침묵뿐이로구나. (숨을 거둔다.)

호레이쇼 : 이제 고귀한 영혼이 깨어져 버렸구나. 왕자님이여, 고요히 잠드소서. (안에서 행군 소리) 어질던 햄릿 왕자님, 천사들의 노래에 싸여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가소서. 다가오는 이 북 소리는 무엇인가?

고수, 기수, 수행원들과 함께 포틴브라스와 영국 사절들 등장

포틴브라스 : 참변이 일어난 곳이 어디냐?

호레이쇼 : 무엇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이 이상 더 슬프고 놀라운 일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포틴브라스 : 시체더미는 무참한 살육을 말하고 있구나. 오, 교만한 죽음이여! 어떤 향연이 너의 영원한 어두운 처소에서 준비되고 있기에 이토록 많은 귀인들을 한칼에 무참히 죽였단 말이냐!(여기 쌓인 시체더미를 보니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음흉한 음모와 피비린내 나는 흉계가 있었기에 이렇게 많은 귀한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말인가)

사신1 : 가슴 저미는 광경입니다. 영국으로부터의 소식도 너무 늦게 도달된 듯합니다. 그 소식을 들어야 할 귀는 지금 목숨을 잃고 감각이 없습니다. 분부하신 대로 사형이 집행되어 로즌크랜츠와 길든스턴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한들 누구에게 치사의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즌크랜츠와 길든스턴은 본디 햄릿의 친구였으나, 클로디어스왕이 햄릿을 제거하기 위해 영국으로 보내면서 두 사람으로 하여금 햄릿을 호송하게 한다. 햄릿은 이런 흉계를 알고 왕의 칙서를 변조하여 영국에 도착하는 대로 두 사람을 처형하도록 고친다. 두 사람의 죽음은 그 결과다.)

호레이쇼 : 폐하로부터는 치하의 말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목숨이 붙어 있어 그의 입으로 치사를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여하튼, 이 같은 참극이 행해지고 있을 때 마침 당신은 폴란드의 싸움터로부터, 또 당신은 영국으로부터 이 곳에 도착하셨으니, 부디 이 유해들을 높은 단 위에 안치하도록 명령을 내리셔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제 얘기를 듣고 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곳에서 행하여진 여러 가지 음탕하고 잔인하고 퇴폐적인 행위를, 우발적인 판단, 뜻밖의 살인, 강요당한 채 할 수 없이 행해진 교묘한 처형, 간계가 빗나가서 최후에 가서는 모사꾼들의 머리 위에 재난이 떨어지게 된 사정 등 모든 것을 제가 사실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포틴브라스 : 당장 들어 봅시다. 중신 귀족들을 소집하여 들려줍시다. 나로서는 슬픔을 금할 수 없지만, 행운의 왕관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듯하오. 이 나라에 대해서는 나에게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특권이 있으니, 이 기회에 나는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자 하오.(포틴브라스는 노르웨이 왕의 조카이다. 그의 아버지는 죽은 햄릿과 일대 일의 싸움에서 살해된 바 있는데, 젊은 포틴브라스 왕자는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개선하는 길에 덴마크의 왕위를 주장하고 있다.)

호레이쇼 : 이 일에 대해서는 저도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이 의견은 대다수의 지지를 받으실 왕자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하지만 방금 말씀하신 일부터 처리하시는 것이 지당한 줄 압니다. 인심이 소란한 이 때에 불상사나 혼란이 야기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포틴브라스 : 햄릿 전하를 무인답게 네 사람의 장교가 단상으로 운구하라.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분은 훌륭한 왕이 되셨을 게다. 자, 전하의 서거를 애도하는 군악을 연주하고 조포를 쏘아 전하의 유덕을 널리 알리자. 유해를 들어 올려라. 이러한 광경은 전쟁터에서나 어울리는 법, 정말 여기서는 격에 맞지 않는구나(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이 궁전에서 벌어지고 말았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자, 가서 병사들에게 조포를 쏘게 하라.(병사들, 시체를 운구해 간다. 장송 행진곡이 들려 오고 조포가 울린다.) (비극의 가치는 관객을 높은 도덕적 가치의 세계로 끌어올리는데 있는데, 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현세의 것은 모두 파멸할 수밖에 없다. 햄릿의 죽음은 새로운 도덕적 가치 체계의 수립을 위한 희생의 의미로 해석된다.)(이태주 옮김)

1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라는 햄릿의 독백을 다시 읽고, 다음 활동을 해보자.

(1) 햄릿의 독백에 담긴 고뇌의 내용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라는 햄릿의 독백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 대사는 햄릿이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번민하고 고뇌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의미가 보편화되어 '과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이 대사가 가지는 의미를 햄릿 개인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이를 다시 인간의 보편적 측면에 적용하여 생각함으로써, 이 대사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이 대사는 햄릿이 부왕의 죽음에 관해 숨겨진 진실을 확인하고도 복수를 단행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햄릿은 자신의 운명을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은 것'에 비유하고, 이에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물러설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러한 고뇌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부왕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구차하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원수를 갚고 장렬하게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햄릿은 부도덕한 세계에 맞서 복수를 감행할 용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에 쉽사리 죽음을 택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햄릿의 독백은 인간 세계의 선악(善惡)과 생사(生死)의 본질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 준다. 즉 인간 세계는 정의보다는 오히려 불의가 지배하며, 인간은 이러한 부조리를 알면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기를 망설인다는 것이다. 햄릿의 고뇌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햄릿의 독백은 이러한 인간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오늘날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이 대사는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여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할 때 흔히 인용된다.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할 때에 오히려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햄릿의 태도는 인간의 나약한 내면과 인간적 갈등을 잘 표현하여 '햄릿형 인간'이라는 인물의 전형성을 창조하였다.

(2) 햄릿의 독백은 시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을 희곡의 대사로 사용하는 이유를 말해보자.

 

이끌어주기 :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라는 독백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라는 유명한 대사와 더불어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왜 이러한 대사가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로 이 활동을 시작하여 학생들의 관심과 주목을 끄는 것도 효과적인 지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활동의 답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특징과 관련하여 찾아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대체로 궁중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며, 등장인물도 대부분 왕이나 귀족 계층으로 한정된다. 희곡의 현장감과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이들이 구사하는 대사는 상류층의 신분에 어울리는 교양과 품위를 갖춘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당대 귀족들의 언어 관습이 화려한 수사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희곡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설명으로는 희곡의 대사가 시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답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풀이의 단서를 희곡의 갈래적 특징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시적 표현과 일상적 진술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활동도 병행하도록 한다.

 

예시 답안 :

희곡은 소설이나 시에 비해 제약이 많다. 희곡은 인물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사건이 진행되며, 서술자가 없으므로 관객들은 인물의 행동과 대사에 의존하여 정보를 얻는다. 또한 희곡은 제한된 시·공간 내에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야 하므로, 뚜렷한 갈등을 제시하고, 사건을 긴밀하고 극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희곡에 사용되는 언어도 희곡의 제약성 극복과 관련이 있다. 희곡에 사용되는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함축성과 상징성을 지니며,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잘 조직된 말이어야 한다. 이러한 언어 용법은 시적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어가 일상적 진술에 비해 간결하고, 리듬감이 있으며, 의미의 함축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희곡의 언어와 여러모로 통한다. 이러한 점에서 희곡의 대사는 일상 생활에서의 실제 대화가 아니라, 의미가 분명히 전달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편집된 말이며, 청각적 인상이 귀에 남을 수 있도록 풍부한 미적 요소를 갖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독백이나 방백을 자주 사용하여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도 서술자가 존재하지 않은 희곡의 제약성과 관계가 깊다.

2. 다음은 이 작품에 이어지는 줄거리이다. 읽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햄릿이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이어지는 2-(2)와 관련된다. (1)은 비극의 원리와 유형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며,(2)는 이를 적용하여 비극의 효과를 이해하는 활동이다. 활동의 편의나 학습 효과를 위해 두 활동을 묶어서 지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극은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비극은 주인공이 운명이나 성격, 사회적 상황 등에 의해 패배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비극의 원인에 따라 운명 비극, 성격비극, 상황 비극으로 나뉜다. '운명 비극'은 뛰어난 자질을 지닌 영웅이 비극적 운명으로 인하여 파멸을 겪는 이야기로,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 비극이 대표적이다. '성격 비극'은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에 비극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햄릿'을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이에 속한다. '리어왕'은 오만한 성격, '오셀로'는 질투와 의심, '맥베스'는 부도덕한 의심, '햄릿'은 우유부단한 성격이 비극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회 비극'은 사회적 상황에 의해 개인이 패배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입센의 '인형의 집', 유치진의 '토막' 등이 이에 속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햄릿'은 성격 비극의 범주에 속하며, 비극의 원인은 햄릿의 성격적 결함에 있다. 이러한 결론을 미리 제시하지 말고, 학생들이 스스로 활동하여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활동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발문에 따라 순차적으로 답을 마련해 보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햄릿이 숙부를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로 인한 결과는 무엇인가?

이러한 유형의 희곡은 어떤 범주에 속하며 같은 범주에 속하는 다른 작품은 무엇인가?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여 학생 스스로 답을 해 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

햄릿은 숙부를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죽음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도덕한 세계에 맞서 복수를 감행할 용기가 없는 자신의 우유 부단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는 비극을 '성격 비극'이라고 한다. 햄릿의 고뇌하는 인간형은 돈 키호테의 인간형과 대조되며, 오늘날에는 고뇌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2) 이러한 비극을 감상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비극의 원리와 관련하여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의 취지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비극의 원리를 적용하여 작품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극의 효과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희곡 작품에 대한 안목과 감상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이 활동은 희곡에 대한 원리 학습이 선행되어야 쉽게 답할 수 있다. 발문이 다분히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희곡에 대한 개념적 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활동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흥미나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발문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학습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 좋은 방안이 된다.

 

① 이 작품의 주인공은 평범한 인물인가 아닌가?

② 비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③ 주인공이 고뇌하고 있는 문제는 어떤 문제인가?

④ 관객은 주인공의 입장에 동조하는가 거리감을 느끼는가?

⑤ 극의 내용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주인공의 처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가?

⑥ 이 작품이 오늘날에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⑥ 이 작품이 오늘날에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활동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앞의 활동 결과를 확인하고 정리하여, 희곡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비극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고상하고 우월한 인물들의 세계를 다룬다.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왕이나 귀족 계층이라는 점은 이를 잘 말해 준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인 문제에 매달리는 데 비해 인간의 삶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비극의 주인공들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비극적인 결함을 가진다. 햄릿의 경우 그것은 성격적인 결함으로 나타난다. 관객들은 햄릿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가운데 그가 겪는 고뇌와 죽음을 지켜보면서 연민을 느끼는 한편, 그러한 일이 자기 자신에게는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공포스러운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지속되던 공포와 연민의 감정은 극이 끝나면서 해소되며, 관객들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때 관객은 극이 시작할 때보다 한층 고양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이 상황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정서적 반응을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요컨대 비극은 고상한 인물이 겪는 고뇌와 좌절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참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의 비극은 인간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약점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3)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감동을 준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지금까지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주는 감동 요인을 알아 보는 활동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다룰 범위는 '햄릿'으로 한정하여, 작품이 주는 감동 요인을 먼저 확인해 보도록 하고,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에 관해서는 모둠별 과제로 부여하고 이를 발표하도록 하는 방안이 적절할 것이다.

 

'햄릿'은 사랑과 오해, 복수와 죽음이라는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을 발문으로 제시하여 활동을 시작하게 하는 것도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 유발에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햄릿'을 대상으로 작품이 주는 감동 요인을 분석해 보도록 한다. 인물의 전형성, 대사의 특징, 구조상의 특징, 주제의 보편성 등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 과정을 정리하여 고전은 시대나 지역을 뛰어넘어 널리 읽히는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깊은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

 

예시답안 :

‘햄릿’이 사랑과 오해, 복수와 죽음이라는 흔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햄릿’의 인물들은 개성적이면서도 전형성을 지니고 있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왕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햄릿마저도 죽여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욕망의 화신 클로디어스, 한때는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햄릿 때문에 비참하게 죽고마는 비련의 여인 오필리어,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어머니를 미워해야 하는 인간적 고뇌를 지닌 햄릿 등은 뚜렷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성격화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단을 내려야 할 중요한 순간에 오히려 망설임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파멸로 이끄는 ‘고뇌하는 인간상’을 창조해 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햄릿형 인간’이라는 전형적인 인물 유형은 돈 키호테의 ‘행동형 인간’과 대비되면서, 서구 문학이 거둔 최고의 문학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햄릿’은 구성 면에서도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길을 나선 햄릿이 다시 복수의 대상이 되는 극적 반전(反轉)과 모든 인물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비극적인 결말은 관객들에게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극에 몰두하도록 한다.

 

‘햄릿’의 대사 또한 희곡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 심리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 고뇌에 찬 햄릿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독백 부분, 자신의 추악함을 스스로 폭로하는 클로디어스의 방백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햄릿의 독백에 담긴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과 약점을 제시한다.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고뇌하는 존재’라는 인간의 보편적 측면을 적절히 형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현대인의 삶이 고뇌와 번민으로 가득 찬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와 감상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 인용된 부분은 햄릿의 갈등이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햄릿은, 자신이 처한 세계가 악행과 배신이 거침없이 저질러지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햄릿은 가혹한 고통을 겪으면서 자기 삶의 질서를 회복할 방법으로 자살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죽음조차도 영원한 안식을 약속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회의한다.

 

'사느냐, 죽느냐……"라는 햄릿의 독백은 인간의 선악과 생사의 본질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며, 복수 행위를 과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수행해 내기 힘겨워하는 한 인간의 고뇌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절망과 고뇌는 부도덕한 세계에 맞서서 복수를 감행할 용기가 없는 자신의 우유부단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성격적 결함으로 인한 비극적인 결말은 관객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이때 관객들이 느끼는 정서적 반응을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하며, 비극은 이런 죽음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보도록 하는 극 양식이다.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독백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햄릿형 인간'이라는 고뇌하는 인간상을 창조하여, 중요한 문제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말할 때 인용된다.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고뇌하는 존재'라는 인간의 보편적 측면을 적절히 형상화했을 뿐아니라, 그만큼 현대인의 삶이 고뇌와 번민으로 가득한 것이기 때문이다.(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이해와 감상2

 

'햄릿' 은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 본문에 인용된 부분은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라는 독백으로 유명한 제3막 1장이다. 햄릿은 가혹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기 삶의 질서를 회복할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그 삶의 전망이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심적 갈등을 가져오리라는 생각에 죽음까지도 생각한다. 햄릿의 갈등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어머니를 미워해야 하는 점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삶의 어려움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햄릿의 이러한 망설임은 그를 우유부단한 인간의 전형으로 인식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갈등의 심각함을 나타내기도 한다.이밖에 이 작품에는 연인인 햄릿의 변심 때문에 절망하는 오필리아와 권력을 쥐기 위해 형을 죽이는 탐욕의 화신 클로디어스 등이 등장하여 작품의 흥미를 돋운다.

 

이 작품이 복수와 사랑이라는 흔히 쓰이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구성과 성격 묘사의 탁월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궁의 타락한 욕망 등을 통해서 위기에 놓인 중세적 질서, 봉건제의 와해 상태를 표현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햄릿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죽음의 파국을 맞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성격적 결함이라는 설과 인생을 비관한 탓이라는 설, 개인적 복수보다는 위기에 놓인 왕국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부왕에 대한 질투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3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인간의 음모와 모순성을 토로하는 한편, 순결한 영혼을 가진 인물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쳐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무너져 가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널리 공연될 정도로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비극의 한 형태로서 유행했던 복수극의 토머스 키드의 "스페인의 비극"을 소재로 하여 쓴 희곡이다. 셰익스피어가 어떤 원형을 소재로 해서 썼다고 해도 문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단순히 복수극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높고 깊은 의식에 충격을 주고, 그것과 사상적 반응을 일으키게끔 해 준 독창성에 있다. 셰익스피어가 판에 박은 듯한 복수극의 형태로 쓰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높은 예술적 감각이 찬란한 언어와 성격 창조의 상상력을 통하여 인간의 근원적 양상을 탐구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간 구명(究明)의 과정이 그의 작품 속에서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기 때문에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만인의 셰익스피어'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비극의 가치는 관객을 높은 도덕적 세계로 끌어올리는 데 있는데, 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현세의 것은 모두 파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햄릿의 파멸과 죽음은 새로운 도덕적 가치 체계의 수립을 위한 희생의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는 햄릿의 파멸에서 인간의 비극적 조건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에 도달한다.

 

이 작품에 나와 있는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독백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햄릿형 인간'을 창조하여, 중요한 문제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말할 때 인용된다. 햄릿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선악과 생사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데서 나오는 것이며 그의 죽음은 인간이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선(善)임을 말해 준다.

 

본문의 내용은 햄릿이 현재의 왕인 숙부가 자기 부왕(父王)을 죽이고 어머니를 가로챈 원수임을 전해 듣고는 고민에 싸여 실성한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부분을 옮긴 것이다. 햄릿은 인간에 대한 환멸과 원수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면서도,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고통을 겪는다. 이 때문에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햄릿은 극단의 모순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순결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이해와 감상4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애독되고 잇는 '햄릿'은 대중적 흥미가 높기 때문에 자주 상연되지만 셰익스피어 연구가들에게는 가장 어렵게 여겨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복수극으로 끝나기 쉽고 신중히 처리한다 해도 일종의 윤리극이 될 수 있는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셰익스피어는 복잡하고 신비스러운 인생의 비밀을 파헤쳐 그 진상을 제시하려 했는데 그 비밀을 해명하는 열쇠로 햄릿의 성격을 창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햄릿을 통하여 인생의 영원한 비밀인 삶, 사랑, 번뇌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햄릿이 지니는 성격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인간 행위의 근저에 깔려있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느끼는 기쁨을 알 수 있다. 햄릿의 성격에 대해서는 정신병설, 의지 박약설, 우울증설, 양심설, 구국 사명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작가의 의도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그것은 햄릿의 복잡한 성격의 일면을 설명하지만 그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괴테는 햄릿을 통하여 "훌륭하고 숭고한 가장 도덕적인 인간이지만 영웅적인 기력이 부족하여 스스로 짊어지지도 못하고 던져버리지도 못하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거꾸러지고 만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가 인간의 성격을 햄릿 형, 돈키호테 형으로 비유하여 나눌 정도로 셰익스피어는 '햄릿'으로 성격의 전형을 창조한 것이다.

이해와 감상5

 

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햄릿'이라는 주인공의 성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햄릿의 성격은 '돈키호테(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성격과 함께 인간이 지니고 있는 전형적 성격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돈키호테가 저돌적이고 행동을 앞세우는 형이라면, 햄릿은 우유 부단하고 고뇌가 많은 형이다. 그의 대사 가운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구절은 번민이 많은 현대인들의 내면 세계를 잘 나타내 주는 말이라 하여 널리 인용되고 있다.

 

작품 전체로 볼 때 이 부분은 뒤얽혔던 모든 사건이 해결을 향해 달려가는 대목이다. 햄릿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아내이자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를 아내로 삼은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숙부이다. 그는 모든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으로서 이 부분에서 응징된다. 또, 햄릿을 따르던 오필리어의 아버지인 플로니어스는 햄릿의 오해로 인해 살해되었고, 그 딸이자 레어티즈의 누이인 오필리어는 햄릿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집안의 당사자인 레어티즈는 클로디어스와 흉계를 꾸며 칼에 독을 발라 두었으나 결국은 그 칼에 자기가 죽는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햄릿도 죽는 것으로 이 극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모든 죽음의 원인은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에 이 작품의 비극적 주제가 있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운명, 그 앞에서 단호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햄릿의 성격적 특징이 이 모든 비극을 자초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친 회의와 번민이 탁월한 능력과 신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죽음의 길로 몰아 간 것이다. 비극은 이런 죽음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보도록 하는 극 양식이다. 여기에 이 작품의 참 뜻이 있다. (출처 : 김대행·김동환 저 교학사 문학)

이해와 감상6

 

비극은 원래 평범한 인물보다는 좀더 고상하고 능력이 우월한 사람들의 세계를 다룬다. '햄릿'은 유혹에 약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극의 기본적인 갈등도 숙부가 형인 국왕의 권력을 탐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숙부는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이 극의 주인공인 햄릿의 갈등은 보다 복합 적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숙부, 숙부와 결혼한 어머니, 그 숙부에게 충성을 다하는 애인의 아버지, 자신을 오해한 친구 속에 파묻힌 햄릿은 많은 고민에 싸여 있다.

 

결단을 내려 행동해야 할 때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햄릿'의 인물 성격은 우유 부단한 인물의 전형이라고 평가된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고민을 무대 위에서 표현해 보이는 일은 매우 어렵다. 더욱이 그 고민을 관객들에게 설명할 방법도 없다. 햄릿이 자주 독백을 사용하거나, 친구에게 방백을 하는 것은 햄릿의 고민을 관객에게 전달해 주기 위한 방편이다.

심화 자료

뛰어난 문학성

이 작품은 부왕의 원수를 갚아 국가 질서의 회복을 꾀하려는 햄릿 왕자의 고뇌를 주제로 한 비극이다. 토머스 키드의 ‘원형 햄릿’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유행한 복수 비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작품이 단순한 복수극의 범주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까지고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양상에 대한 탁월한 성찰과 뛰어난 상상력으로 ‘햄릿형 인간형’ 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의 창조, 복수하려는 입장이 오히려 복수 당하는 입장이 된 위기와 반정의 절묘한 구성, 시적 문체를 연상시키는 찬란한 언어 등의 이유 때문이다.

‘햄릿형 인간’의 의미

교과서에 제시된 부분은 햄릿의 고뇌가 절정에 달하는 부분으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라는 유명한 독백이 포함된 부분이기도 하다. 이 독백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햄릿형 인간‘ 이라는 고뇌하는 인간상을 창조하여, 중요한 문제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인용된다.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고뇌하는 존재‘ 라는 인간의 보편적 측면을 적절히 형상화했을 뿐 아니라, 그만큼 현대인의 삶이 고뇌와 번민으로 가득 찬 것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햄릿 이야기는 아득한 옛날 바이킹 시대의 덴마크에서 시작된 것이다. 구전된 전설이 12세기에 이르러 활자화되었고, 1582년경 프랑스 어로 번역되어 이후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무대에서 공연되었다. 이 ‘원형 햄릿’ 판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얀 코드(Jan Kott)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햄릿’을 완벽하게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약 여섯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어떤 ‘햄릿’공연도 셰익스피어 시대의 ‘햄릿’보다는 축소된, 불완전한 ‘햄릿’ 공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때문에 ‘햄릿’ 공연은 제각기 시대와 나라에 따라 개성의 빛과 의미를 지니게 되어 동시대적 ‘햄릿’이 성립된다.”

 

‘햄릿’은 얀 코트가 말한 대로 ‘거울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햄릿’ 공연은 셰익스피어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현대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즉 ‘햄릿’ 공연 무대 속에 얼마나 진실한 셰익스피어가 있고, 얼마나 정확한 우리들 자신이 표현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햄릿’의 주제는 실로 다양하다. 정치·폭력·도덕·복수·효도·사랑·우정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 인생의 목적 등이 그것인데, 우리들은 이 모든 주제들을 몇 가지만 선택하거나 전체를 종합 연관시켜 읽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준과 이유다. ‘햄릿’을 성격 비극의 대표적인 예로 꼽는 까닭은 왕자 햄릿의 비극적 성격을 통해 이미 지적한 숱한 주제들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햄릿’에 있어서 가장 크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는, 어째서 햄릿은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과감히 실천하지 못하고 종국적인 죽음의 파국을 맞이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선 그의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못했다는 성격적 무능설, 인생을 지나치게 비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행동이 불가능했다는 비관론설, 개인적 복수보다는 혼란과 파탄 속에 빠져 있는 덴마크를 먼저 구했다는 구국 사명설, 부왕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부왕의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 등 갖가지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 필자는 이 모든 이유가 종합된 복합적 원인 때문에 복수를 지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절충설을 믿고 싶다. 복수를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만을 따진다면 키드 류(類)의 복수극과 큰 차이가 없겠는데, 유의해야 할 점은, 복수 행위를 과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수행해 내기 힘겨워하는 한 인간의 정신이 더듬는 고뇌의 역정과, 그 과제에 대한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의식적 반응 등인 것이다. ‘햄릿’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 살아 있는 햄릿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이런 각도에서 이 작품을 읽었을 때다.(출처 : W. 셰익스피어,이태주 옮김,'셰익스피어 4대 비극')

아이러니 (irony)

원래는 초기 그리스 희극의 전형적 인물인 에이런(eiron)의 말과 행동 양식에 적용되었던 용어이다. 그의 상대역으로는 또 다른 전형적 인물인 허풍선이 알라존(alazon)이 있는데, 그는 허풍을 떨면서 상대방을 속여 그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패배자로 등장하는 에이런은 약하고 왜소하며 교활하고 약삭빠르다. 그는 그의 힘과 지식을 숨기고 천진함을 가장함으로써 점차 알라존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 아이러니는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원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사이의 괴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의 두 가지 근본적인 유형에는 언어의 아이러니와 상황의 아이러니가 있다. 전자는 비유의 일종으로 말하는 사람이 뜻한 숨겨진 의미가 겉으로 드러내는 의미와 다른 경우에, 후자는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자신도 똑같은 불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떠들썩하게 웃어댈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 외에 극적 아이러니는 비극적 아이러니라고도 불리는 것으로서, 등장 인물이 작중의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운명과 반대의 것을 기대할 때, 등장 인물의 무지와 관객의 인지 사이에 대립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오이디푸스 왕'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이상이나 김유정 등이 이 기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특히 극적 아이러니는 햄릿에서 클로디어스의 흉계가 시사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등장인물이나 관객은 흉계를 모두 알고 있는데 주인공만 모르는 상황을 극적 아이러니라 한다. 그러나 극적 아이러니는 이러한 흥미를 조장하기 위해서보다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모두가 알고 있는 패배를 유독 주인공만 모르고서 운명에 도전하거나 투쟁해서 철저히 몰락하는 비극에서 이러한 아이러니는 강조된다. 그런 모습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비극의 주인공

극 양식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비극에서는 그 주인공의 비중이 대단히 크다. 그의 비극적 삶 자체가 극의 줄거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타고난 운명이나 성격적 결함, 적대자들의 모함으로 인해 비극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중에서 주인공 자신의 성격적 결합이 주된 원인이 되어 비극에 이르는 경우를 가장 전형적인 것으로 본다. 한번 의문을 가지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든가, 자신의 일에 늘 완벽하려고 한다든가 하는 성격 때문에 자신의 삶을 그르치고 마는 것이 비극 주인공의 일반적인 유형이다. 그런데 이 성격적 결함은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그의 장점이 되었을 성질의 것이어서 관객들은 주인공의 비극적 삶에 대해서 동정과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이 때 관중들이 느끼는 정서적 반응을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카타르시스 (catharsis)

비평 용어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Poetica'의 6장에서 진정한 비극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은유로 '시학(Poetias)'에서 `비극은 어떤 행위를 모방한 것인데… 애련과 공포에 의하여 이러한 정서 특유의 정화(카타르시스)를 한다'라고 비극을 정의한 데서 이 용어가 처음 사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이런 감정들을 정화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비극이 그리는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에 의해서 관중의 마음에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격렬하게 유발되고, 그 과정에서 이들 인간적 정념이 어떠한 형태론가 순화된다고 하는 일종의 정신적 승화작용(昇華作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에 대한 그 해석은 구구하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독일의 극작가이자 문학비평가인 고트홀트 레싱(1729~81)은 카타르시스가 지나친 감정을 고결한 기질로 바꾸어준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비평가들은 비극을 도덕적 교훈으로 간주하고, 비극 주인공의 운명이 불러일으킨 공포와 연민은 관객들에게 비극의 주인공처럼 신의 뜻을 거역하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해석은 관객이 통제된 상황에서 주인공과 똑같은 공포를 경험하고 있다고 느낌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외부로 발산하고, 비극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해 공감함으로써 통찰력과 시야를 넓힌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극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건전하고 교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좀더 부언하면 하나는 정화(淨化, purification)요, 다른 하나는 배설(purgation)의 의미로 해석한다. 전자는 종교상의 의식에 있어서 죄의 더러움을 씻고 심신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 전용되어 감정에서 불순한 부분을 씻어 없앤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후자는 의학상의 배설이라는 의미의 은유로 해석된다. 즉, 연민과 공포는 인성(人性)의 본연적 경향이지만, 비극적 흥분은 관객의 심리에 쌓이는 이러한 정서를 배출해 감정의 중압에서 해방과 경감의 쾌감을 일으킨다. 한편 정신 분석에서는 마음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밖으로 발산시켜 치료하는 정신 요법의 일종을 가리킨다.

작품의 다향한 해석

전통적 접근 방법을 통한 해석

문학작품의 의미파악을 위해 작품의 배경을 연구하는 데 역점을 두는 전통적 비평방법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비평방법이었는데, 이 비평방법은 대개 원문연구라는 선행과정을 거 쳐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전기적 관련정보을 찾아내어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이 비평방법에 따라 [햄릿]을 접근해 본다.

1) 원문 연구

비평하려는 작품 <햄릿>의 판본이 원작인지, 수정본인지부터 가리기 위한 작업이 선행되 고, 그렇게 하여 확인된 원문 중 언어의 정밀한 의미를 가려야 작품해석의 정확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불분명한 의미의 말을 언어적으로 풀어낸다. 이를테면 햄릿이 오필 리어에게 "수녀원(nunnery)으로 가라"라고 하는 대목에서 'nunnery' 가 당대에 '창녀집'이란 쌍스런 의미를 가졌다든가, 그녀의 그런 행동을 부추기는 폴로니어스를 '생선장수 (fishmonger)'라 칭한 대목에서 'fishmonger'가 당대에는 '뚜장이'라는 의미를 내포했다는 등의 언어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작품의 피상적 해석에서 맴돌지 않고, 불륜에 대한 햄릿의 복잡 한 심리상태가 파악된다.

2) 역사 및 전기적 고찰

1603년에 발표된 [햄릿]의 창작시기는 그 보다 2-3년 전이었다고 보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만년에 병약하여 영국 왕실의 불안한 상태를 이 작품에서 그려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역 사적 고찰을 한 연구가 더러 있다. 당시 여왕의 총애를 받다가 판단이 흐린 여왕의 심기를 건드려 처형된 에섹스 백작에 대한 백성들의 흠모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3막 1장에서 오 필리어가 햄릿을 두고 "풍속의 거울이며 예절의 모범인 / 만인이 우러러 보던 그 분"이라는 묘사라든가, 4막 8장에서 클러디어스가 헴릿의 신세를 두고 "그가 정신 빠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라는 연민의 말을 한 것 등으로 보아 당시 영국 왕실의 불안상을 빗대어 표현 한 것이라 주장한다.

 

또 [햄릿]의 중요 작중 인물들은 당시 엘리자베스여왕을 둘러싼 판박이 인물들을 본따서 창조되었다고 보는 측도 있다. 이르테면 궁정내 사랑의 인물로 오필리어, 진정한 친구로 호 레이쇼, 행동의 인물로 레이터스와 포틴브라스, 아첨의 인물로 로젠크렌츠와 길텐스턴 등이 다. 당시 영국의 왕실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보이면서도 왕실의 장자인 햄릿이 부왕이 죽은 후에 왕권을 자동승계하지 않은 이유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 그건 이 작품의 원천은 11세 기 덴마크의 역사에서 따 왔으므로 장자승계제도 보다 선거제로 되어 있는 중세 덴마크 왕 위계승제도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햄릿이 시의적절한 행동으로 풀릴 수 있는 계기를 계속 놓치게 하면서 무서운 복수극으 로 치닫게 한 데는 당대 엘리자베스 시대 관객들의 기대감 충족을 위한 배려가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에는 복수를 훌륭한 예술로 보는 대중심리가 있었고, 에술적 묘미가 있는 복수에는 일정한 예절과 의식이 따라야 한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햄릿]은 복수극의 기교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교묘히 짜여져 해석의 모호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3) 도덕 및 철학적 고찰

햄릿은 당대의 도덕률을 이상적 가치로 믿은 이상주의자로 그 도덕률을 어긴 자들에 대한 증오와 배신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과감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더 큰 비극을 불러온 이야기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우유부단이 바로 도덕적 복잡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된다. 당시 영국의 기사도 정신은 부정에 대한 과감한 징벌을 요구하는 데 반해, 무르익은 지성으로 내장한 철학과 용서와 화해를 가르치는 기독교교리가 강하게 그의 행동을 규제하므로 내부적인 갈등으로 일관한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보면 햄릿의 고민 은 중세에서 근세로 바뀌는 과도기에서 겪는 과도기적 가치관의 혼란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 되기도 한다.

형식주의적 접근 방법을 통한 해석

문학은 예술이므로 배경적 지식으로 의미파악을 하기보다 어떻게 예술적으로 표현되었는 가를 우선적 관심사로 삼고, 작품자체의 분석을 통해 표현된 방식을 고찰하면 미적 효과 뿐 아니라 작품의 의미도 저절로 밝혀진다는 주장하에 대두된 비평방법이 형식주의 비평이고, 전통적 비평에 대한 반기를 들고 1930년대부터 대두되었다하여 신비평이라고도 한다. [햄 릿]을 형식주의 비평방법으로 분석해보기 위해서는 어떤 예술적 기교를 썼는가가 관심사가 우선 관심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덫의 은유

내가 두가지 일에 매어 있는 사람처럼

내가 처음 시작한 곳에서 멈추어서

결국 두 가지를 못하고 만다.

햄릿의 삼촌 클로디어스가 왕위와 왕비를 다 쟁취하려는 거사를 한 후 용서를 비는 이 기도의 말에서 덫에 걸린 처지가 표현되었는데, 이런 덫의 은유가 반복 나온다. 1막 3장에 "도요새를 잡기 위한 덫", 3막 2 장에 "쥐덫", 3막 3장에 "영혼은 벗어나려 몸부림칠수록 더욱 옥죄인다." 등, 인간이 자신의 욕심, 자신의 성격적 결함 등이 친 덫에 걸려 파국을 맞 는다는 은유가 스토리의 장식이면서 마디가 된다. 덫이라는 은유의 기교를 통해 예술품으로 서의 미적 효과를 높히면서 인간 자신들의 운명적 결함 때문에 파멸하는 이야기의 의미를 내보인다.

2) 내면성찰의 과정

이 작품에서는 "안다" "본다" "깨닫는다" 등의 표현이 무수히 나오기도 하고, 햄릿의 오랜 주저는 육체적 행동은 없어도 내적 성찰은 게속된 과정이었으니, 작품 전체에서 긴 발견의 과정이었음을 드러낸다. 그 과정을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 어머니의 재혼과 숙부의 독살혐의를 알고부터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발견하고 더 깊이 인간성을 성찰하는 태도로 변한다.

* 칼빈, 마키아벨리 등의 철학에서 주장된 인간의 암흑적 본성을 현실에서 재확인한 다.

* 왕이 된 숙부에 대한 비판적 관찰로 부정적 시각이 예리해져 실체파악에 몰두한 다.

* 어머니에 대한 관찰에서 정숙을 가장한 여인의 사랑이 거짓임을 확인한다.

* 클라우디우스 왕이 내세우는 정의와 질서가 거짓임을 확인한다.

* 신하 폴로니우스의 성실성과 충성이 거짓임을 확인한다.

*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 간의 우정과 신의도 거짓임을 확인한다.

3) 구 성

이 작품은 비극의 일반적인 구성인 발단-전개-위기-반위기-결말이라는 외형적 구조 외에 주제와 관련된 구성이 엿보인다. 비극의 발단에서 파국에 이르기까지 질서라는 개념과 연관 되어 있음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어머니가 윤리질서를 깨뜨려 가정질서가 파괴되고, 아들의 삶의 질서가 깨뜨려진다.

* 숙부가 궁중질서를 깨뜨리면서 나라의 질서가 깨뜨려진다.

* 클로디우스와 폴로니우스의 간계로 오필리어의 순결질서가 흔들린다.

* 작은 질서의 파괴가 큰 질서의 파괴로 이어져 끝내 영계에까지 파급되어 혼령이 나 타나고 초자연적인 현상이 인다.

심리주의적 접근 방법을 통한 해석

심리중의 비평방법은 문학작품을 해석함에 있어 어떤 행동이나 말의 동인을 인간내면에 숨긴 심리를 파헤쳐내어 이해하려는 비평법이다. 주로 20세기에 대두된 프로이드의 이론에 의존하는데, 인간행동을 유발시키는 동인은 본인도 의식못하는 깊숙한 무의식의 경지가 있 다고 보는데, 이 무의식의 경지는 동물적 원동력인 이드가 지배하고, 이런 원초적 힘을 제어 하여 힘으로 현재보다 더 나은 쪽으로 되고져하는 상향의지를 인간만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 느데 이를 초자아라 한다. 이 두 힘 사이에서 순간 순간에 나타나는 모습이 자아라고 가정 한다. 문학작품도 대개 이런 이론에 바탕을 두고 행동의 동인을 분석하는데, [햄릿]을 이 방 법으로 비평해 본다.

 

인간을 이성과 영혼을 소유한 만물의 영장으로 보고 그 행동을 윤리나 철학의 잣대로 평 가하려는 전통적 방법과는 달리 인간 내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동물적인 힘 이드와 이를 제 압하는 초자아간의 갈등과정으로 보는 심리주의 비평방법으로 <햄릿>을 다시 보면 전혀 다 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햄릿이 복수의 당위성을 여러모로 부여받고도 결행을 미룬 것은 부 왕에 대한 애증의 이중심리가 병존하여 심적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버지에 대 한 증오의 감정은 어머니를 사이에 둔 동성간의 애정경쟁자였다는 주장이다. 이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 즉 이드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계속 행동의 동인이 된다. 3 막 4장의 대사에서 그 일면을 볼 수가 있다.

 

남자의 보증으로 내세우기 위해서,

모든 신이 도장을 찍은 것 같은 분,

이 분이 당신의 남편이이었읍니다.

 

아버지의 당당했던 모습에 대한 경외심과 그 권위에 눌려 어머니에게 마음껏 접근할 수 없게 되었던 적개심을 동시에 풍기는 말이다. 내면적으로 이런 원초적인 동인이 바탕을 이 루어 행동을 미루고 있으면서 그 바깥에 장치한 지성과 도덕률은 초자아의 형태로 주저의 타당성을 제공해주어 우유부단한 자아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신화 및 원형적 비평 방법을 통한 해석

병아리가 까마귀를 보면 반사적 행동으로 몸을 숨기고, 아기가 뱀을 보면 움찔하듯 개인 차원이 아닌 집단차원의 반응을 보이는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이런 반 응을 일으키는 원형적 요인을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여 신화비평, 원형비평이라 한다. 물에 대한 인류 공통의 심적 반응이 있고, 녹색이라면 공통적으로 오는 느낌이 있듯, 그 감 정을 일으키는 원형을 추적하여 문학해석의 실마리를 찾자는 이 비평방법으로 [햄릿]을 분 석해 본다.

 

햄릿의 비극은 자신의 성격적 결함이 초래했다고 보는 견해와는 달리 신화비평에서는 인 류 고래의 의식에서 그 근원을 찾으려한다. 비극의 불씨는 사실상 핼릿이 어찌할 수 없는 때에 뿌려졌고 이미 그 불길로 불바다가 되어가는 때에 햄릿의 힘으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 은 없었다고 본다. 천재지변과 맞먹는 대 재난으로 황폐한 대지에서 취할 수 있는 고래의 방법은 피로써 사죄하는 길 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햄릿은 대 재난에서 구조를 희구하는 인간들의 속죄양의 역을 맡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이 극의 근원을 전설에서 따왔다는 것이 이 주장의 타당성을 더해준다. 극의 발단에서 부터 악이 덴마크를 삼키면서 질병과 부패가 만연되어가는 이미지가 계속 흐르고 있어 황폐와 파괴가 극에 달하면 재생의 계기를 맞기 위해 뭔가 극적인 일이 벌어져야함을 암시한다. 이런 재생의 전기를 마련할 속죄양은 순진하고 죄 없는 자라야 하고, 또 그 동기 를 드높히기 위해서는 희생 당사자에게는 비참하지만 길고 힘든 정신적 성숙을 위한 수난이 수반되어야 하기에 속된 눈으로 보면 우유부단해 보일 정도의 행동양상을 나타냈다고 한다.

(출처 : http://asan3.sch.ac.kr/~mrshax/html/햄릿세번째.htm)

교과서

작품지도안

1. 내용구성

갈래 : 비극, 장막극

주제 :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으로 인한 갈등과 그 비극

구성 :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왕의 태도가 드러남. - 왕의 연설

햄릿이 왕비의 처신을 은근히 비난함. - 왕과 왕비, 햄릿의 대화

왕과 왕비의 부도덕함을 비난하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함. - 햄릿의 독백

햄릿은 선친의 혼령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 보기로 결심함. - 호레이쇼와 햄릿의 대화. (전체 구성 단계상 전개에 속함)

2. 이해와 활동의 길잡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애독되고 잇는 '햄릿'은 대중적 흥미가 높기 때문에 자주 상연되지만 셰익스피어 연구가들에게는 가장 어렵게 여겨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복수극으로 끝나기 쉽고 신중히 처리한다 해도 일종의 윤리극이 될 수 있는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셰익스피어는 복잡하고 신비스러운 인생의 비밀을 파헤쳐 그 진상을 제시하려 했는데 그 비밀을 해명하는 열쇠로 햄릿의 성격을 창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햄릿을 통하여 인생의 영원한 비밀인 삶, 사랑, 번뇌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햄릿이 지니는 성격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인간 행위의 근저에 깔려있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느끼는 기쁨을 알 수 있다. 햄릿의 성격에 대해서는 정신병설, 의지 박약설, 우울증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그것은 햄릿의 복잡한 성격의 일면을 설명하지만 그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괴테는 햄릿을 통하여 "훌륭하고 숭고한 가장 도덕적인 인간이지만 영웅적인 기력이 부족하여 스스로 짊어지지도 못하고 던져버리지도 못하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거꾸러지고 만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가 인간의 성격을 햄릿 형, 돈키호테 형으로 비유하여 나눌 정도로 셰익스피어는 '햄릿'으로 성격의 전형을 창조한 것이다.

3. 작가사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Shakespeare는 Shakspere라고도 씀. 필명은 Bard of Avon, Swan of Avon. 1564. 4. 26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세례받음~1616. 4. 23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영국의 시인·극작가.

영국이 낳은 국민시인이며 현재까지 가장 뛰어난 극작가로 손꼽힌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에 씌어진 그의 희곡은 작은 레퍼토리 극단에서 공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토록 자주 작품이 공연되는 작가는 없다. 동료 극작가 벤 존슨은 셰익스피어를 일컬어 "한 시대가 아닌 만세를 위한" 작가라고 말했다. 뛰어난 시적 상상력, 인간성의 안팎을 넓고 깊게 꿰뚫어보는 통찰력, 놀랄 만큼 풍부한 언어의 구사, 매우 다양한 무대형상화 솜씨 등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

생애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출생·결혼·사망·유언 등 기본적 사실을 확인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가활동에 직접·간접으로 언급한 여러 문헌자료가 있어 일부 호사가들이 주장해온 의문은 고려할 여지가 없는 것들이다.

 

잉글랜드 중부 소읍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교구기록에는 그가 1564년 4월 26일 세례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날짜를 기준으로 당시 관습을 참조하여 2, 3일 앞선 4월 23일을 생일로 본다. 또한 그의 사망일이 공교롭게도 4월 23일이다. 아버지 존은 이 고을 유지로서 상공업에 종사했으며 1568년에는 읍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어머니인 메리 아든은 인근 마을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이며 약간의 농토까지 상속했다고 하므로 존에게는 신분상승을 이룩한 결혼이기도 했다. 그러나 1577년경부터 가세가 기울어 그의 교육은 그래머 스쿨로 끝나고 대학 진학의 기회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스트랫퍼드의 그래머 스쿨은 훌륭한 교육을 제공했고 그 내용은 주로 라틴어 문학과 고전문헌 연구였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대학진학의 기회는 갖지 못했지만 셰익스피어의 학식과 교양이 크게 뒤떨어진다고 볼 수 없으며 그가 시인·극작가로서 성공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8세에 결혼했다. 장소와 날짜는 분명하지 않으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스트랫퍼드 거주의 앤 해서웨이 사이의 결혼을 공고하는 1582년 11월 28일자 보증인 연서의 문서가 남아 있어 그가 8세 위인 앤과 결혼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기록으로는 딸 수재나의 출생(1583), 쌍둥이 남매 햄릿과 주디스의 세례(1585) 등이 문서로 남아 있다. 결혼 후 런던의 연극계 기록에 이름이 나타날 때까지 8년간 그의 행적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인근에 사는 귀족 토머스 루시의 정원에서 사슴을 훔치려다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든가, 시골학교의 선생이었다든가, 런던에 나가 처음에는 극장에서 손님이 타고온 말을 돌보는 막심부름꾼을 했다든가, 어느 귀족의 부하가 되어 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에서 졸병노릇을 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 사실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1592년 비로소 런던 문학계에 그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 나타난다. 극작가 로버트 그린이 죽음의 병석에서 쓴 소책자 가운데 명백히 그를 두고 비방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있다. 그린이 죽은 후 이 책이 출판되자 서문을 쓴 사람이 사과하는 내용을 담아놓은 것을 보면 오히려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인·극작가로서 각별한 주목을 받았고, 유력한 문학적 후원자이며 그가 2권의 시집을 출판하며 헌정한 바 있는 사우샘프턴 백작과 이미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연극계 경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594년경부터 극단 ' 체임벌린스 멘' (제임스 1세 즉위 이후로는 '킹스멘'으로 개칭)의 주요단원이 되었으며 그 관계는 은퇴할 때까지 꾸준히 계속되었다. 당대 영국 연극을 대표하던 이 극단은 으뜸가는 배우 리처드 버비지, 최고의 글로브 극장, 가장 뛰어난 극작가 셰익스피어 등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는 20년 이상을 전속작가일 뿐만 아니라 극단의 공동경영자로 있으면서, 또 틈틈이 배우까지 하면서 40편에 이르는 희곡과 시집을 펴냈다. 그의 사생활을 말해주는 기록은 극히 드물다. 다만 1596년에 아버지 존이 가문(家紋) 사용의 허가를 관계당국에서 얻었는데 신분상승을 말해주는 이 일은 틀림없이 셰익스피어의 도움으로 가능했을 것이며 다음해 고향의 대저택 뉴플레이스를 구입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이런 일들은 그가 세속적으로도 성공한 일면을 나타내주며, 견실한 생활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도 현존하는 약간의 재산 취득에 관계된 서류 대부분이 고향 스트랫퍼드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런던 극계 은퇴 후의 고향생활을 항상 염두에 두었고 자녀를 위해서도 그곳을 본거지로 삼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서류들은 쌍둥이 아들 햄릿의 죽음(1596), 아버지 존의 죽음(1601), 총애하던 딸 수재나의 결혼(1607) 등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죽기 훨씬 전에 그는 고향에 돌아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남아 있는 유서는 비교적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중 아내와의 소원한 관계를 추측하게 하는 대목도 있으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사후 7년 뒤인 1623년 극단동료인 존 헤밍과 헨리 코델이 편집을 담당해서 희곡 전집이 발간되었다. 전지(全紙) 2절 판의 대형본인 당당한 규모는 생전의 명성과 인기를 말해준다. 책머리에 실린 동판화 초상은 그가 묻힌 스트랫퍼드 교회 안의 흉상과 더불어 많은 그의 초상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작품세계

지적 배경

그가 살았던 시기는 중세의 사상과 사회조직의 영향이 남아 있었던 때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상에 군림하는 신의 대리자요 그 아래서 귀족과 서민은 응분의 사회신분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기존 질서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무신론은 아직도 대다수 사람들의 신앙 및 생활방식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미 하나로 뭉쳐 있지 않았다. 로마 교회의 권위는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에 의해 위협받았고 영국국교회에 의해서도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국왕의 특권에 대한 의회의 제동, 자본주의의 대두, 헨리 8세 때의 수도원 토지 몰수와 재분배, 교육의 보급, 신대륙 발견에 따른 새로운 부의 유입 등으로 사회적·경제적 질서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신·구 사상의 교차는 이 시대의 특징이다. 공적 설교가 사람들에게 순종을 당부하는가 하면 한편으로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새롭고 현실적인 정치철학을 옹호했다. 당시 영국인은 이것을 이탈리아식 마키아벨리적 악덕이라고 두려워했으나 이로 인해 행동의 당위성이 아닌 현실적 행동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작품 〈햄릿 Hamlet〉에는 인간, 신조, 부패한 국가, 뒤죽박죽이 된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탐구와 논의가 나오는데 이것은 이러한 시대적 불안과 회의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1603~06년에 씌어진 그의 작품들은 어김없이 제임스 왕조의 새로운 불신풍조를 반영하고 있다. 의회와 대립하여 하원과는 빈번히 싸웠지만 그의 무기력은 '새로운 인간'의 힘이 커진 데 따른 정부의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문학관습과 연극 전통

로마 시대 극작가 풀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의 라틴 희극은 각급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 번안한 것이 학생극으로 상연되기도 했다. 같은 로마 시대 작가 세네카가 쓴 수사적·선정적 내용의 비극도 번역되어 극 구성방법과 수사적 문체가 모방되었다. 한편 중세의 연극 전통 역시 강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런 토착 연극은 주로 프랑스식 소극(farce), 교회 설교조의 도덕극(morality play), 광대와 배우의 재치연기를 이용한 막간극(interlude) 등을 동화·흡수한 것이다. 그의 직접적인 선배 극작가는 대부분 ' 대학재사'(university wits)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이 쓴 극은 그 구성이 옥스퍼드대학교·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배웠던 그대로 짜여 있기 보다는 토착적·대중적 이야기 형식을 이용해 발전시킨 것이었다.

언어의 변화

이 시기는 영어가 발달하면서 많은 변화를 보인 때였다.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가 옛말을 되살리는 데 앞장섰으며 교사, 시인, 세련된 궁정인, 해외여행자 등이 프랑스·이탈리아 문학과 로마 고전에서 많은 것을 도입했다. 또한 인쇄본 책의 보급에 힘입어 문법과 어휘면에서 표준화가 진행되었다. 셰익스피어는 해외 여행을 다녀온 흔적이 없지만, 초기작품을 살펴보면 극작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어왔는가를 알 수 있다. 〈실수연발 The Comedy of Errors〉은 플라우투스의 충실한 번안극이다.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Titus Andronicus〉 는 언어의 수사적 표현과 사건을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와 비극작가 세네카에게서 빌려왔으며 〈헨리 6세 Henry Ⅵ〉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여읜 아들이 슬퍼하는 장면을 중세 도덕극에서 차용했다. 또한 〈리처드 3세 Richard Ⅲ〉·〈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은 극의 정서와 인물의 성격묘사를 선배 말로에게서, 〈말괄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는 성격묘사와 연극양식을 이탈리아 서민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도입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강점은 이러한 영향을 다방면으로 적극 받아들이되 그것을 잘 소화하여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는 데 있었다. 그 점에서 그는 천재였다.

극장조건

그가 관여했던 극단이 운영한 글로브 극장은 당시의 시중극장이 다 그렇듯 청교도를 제외한 모든 계층의 시민이 오후의 구경거리를 위해 찾아왔던 매우 대중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의 극단은 궁정에 들어가 왕과 귀족 앞에서 공연하는 일도 있었고, 여름이면 지방순회를 하거나 때로는 대학, 사법연수원, 큰 저택 등에서도 공연했다. 연극에 대한 인기가 커서 새 작품에 대한 요청이 많아 끊임없이 레퍼토리를 개발해야 했으므로 극작가는 바쁜 직업이었다. 한 예로 1613년초 그가 소속한 극단은 14편의 극을 번갈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일반극장뿐만 아니라 더욱 세련된 관객을 위한 실내공연장이 있어 별도로 운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극장은 시중 일반극장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면 지붕이 뚫린 반옥외극장의 형태를 취하고 무대는 개방형이어서 앞면의 막이 없으며 장치·조명 등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기자에게는 각자 맡은 부분의 대사밖에 주지 않았으며 여성 역은 모두 변성기 이전의 소년 배우가 했다. 이런 여러 가지 무대조건은 그의 극형식이나 내용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실천적 극작가로서 소속극단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기 때문에 그는 무대조건과 배우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작품을 쓴 사람이기도 했다.

작품 창작연도

많은 학문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창작연도를 확정짓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작품의 연도순서를 정하는 데는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셰익스피어는 마지막 3, 4년을 빼놓고 매년 2편씩 꾸준히 써나간 극작가였다. 극작만을 위해 헌신한 일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작 외에도 3편의 시집이 남아 있는데 그중 이야기체 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Venus and Adonis〉·〈루크리스의 겁탈 The Rape of Lucrece〉은 각기 1592년과 1593~94년, 즉 역병 때문에 런던에서 공연이 중단된 시기에 나온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시집 〈소네트집 Sonnets〉은 출판이 1609년에 이루어졌을 뿐 총 154편의 이 14행의 연시(소네트)가 어느 시기에 씌어졌는지 분명하지 않다. 넓게 잡아 1593~1600년 사이라는 것이 대체적 추정이다.

초기 시집과 소네트집

〈비너스와 아도니스〉·〈루크리스의 겁탈〉은 셰익스피어가 시인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로마 고전설화에서 소재를 얻어와 젊은 시인의 숨은 자질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였고 독자의 인기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가 1602년까지 7판, 1640년까지 16판을 거듭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 시집은 당시의 문학 취향인 수사적 언어표현과 소재가 갖는 농밀한 관능성이 싱싱한 시적 상상력의 힘을 얻어 성공했다. 〈루크리스의 겁탈〉은 전작과 대조적으로 진지함과 중후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지나친 수사적 언어사용이 주제의 심각성을 잘 지탱하지 못해 전작만큼 인기는 얻지 못했다. 〈소네트집〉은 창작연도, 수록된 14행시의 배열순서, 개작·가필 여부 등 많은 논란이 있는 작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 담긴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시인 자신의 자전적 성격을 띤 것인지 가공의 이야기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수수께끼를 던져준다. 이 때문에 희곡을 포함한 모든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작가의 사생활에 관한 실마리를 찾고자 많은 학자와 연구가들이 이 시집 연구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시인과 그의 후원자인 젊은 귀족(사우샘프턴 백작으로 추정) 및 '흑발의 여인'이라 불리는 미모의 여성, 이 세 사람 사이의 우정·사랑·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 이 시집은 실의·불안·소원·자책·좌절 등의 인간적 경험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시간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짙게 깔려 있으며 거기에 맞서 시의 영원성이 강조된다. 19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면서 이 시집은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초기극

첫 작품 성과로서 기록되는 〈헨리 6세〉 3부작은 중세 후기의 영국 왕조사 중 가장 파란많았던 요크와 랭커스터 두 가문 사이의 흔히 ' 장미전쟁'이라 불리는 처참한 왕위쟁탈전을 극화한 사극이다. 유일한 3부작이고 산만한 구성, 거친 표현, 극적 구심점의 결여 등 초심자의 서투름이 눈에 띄지만 신인 극작가의 참신한 출현을 알리기에는 충분하다. 이 작품과 바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담은 〈리처드 3세〉는 전작과 달리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어 계략·음모·반역·살인 등에 신들린 듯한 극악무도한 인물상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극이다. 주목할 것은 이 악인의 성격과 행동에 희극적 여운을 남긴 점인데 젊은 작가의 성장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역사극과 더불어 초기극의 큰 몫은 희극이 차지한다. 그 첫번째 〈실수연발〉은 로마극을 번안한 '사람 잘못 알기 희극'으로서, 따로 떨어져 자라나 서로를 모르는 쌍둥이 형제를 둘러싼 희극적 혼란을 다룬 작품이다. 원작에 없는 쌍둥이 하인을 배치함으로써 의외성은 더해지고 사건이 복잡해지지만 구성 자체는 단순하고 성격의 내면화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유쾌한 희극이다. 활달한 남성 페트루키오가 고집센 여자 카타리나를 뒤쫓아다니다 결혼에 성공하나 그 즉시 아내를 멋지게 길들여버린다는 본 줄거리에다 루첸티오라는 사나이가 가정교사로 변장하여 카타리나의 여동생 비안카에 접근한 끝에 경쟁자를 물리치고 결혼에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전형적 이탈리아식 희극으로서 사랑·계략·결혼으로 이어지는 그의 상당수 희극의 기원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극중극(劇中劇)의 형식을 마련해놓은 것이 이 극의 특징이다. 영국의 시골뜨기 땜장이가 길에서 만취된 채 끌려가 자기도 모르게 즉석귀족이 되어 어느 큰 저택에서 연극을 구경하게 된다. 거기서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연극이 시작된다는 극중극 형식은 이 작가가 앞으로 여러 작품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게 되는 매우 흥미있는 수법의 하나이다.

〈베로나의 두 신사〉 역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랑·우정, 그것을 짓밟는 계략·음모가 줄거리의 전개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결말은 화해와 축복으로 끝난다는 이 시기 희극의 정석을 밟고 있다. 두 청년 발렌타인과 푸로티어스,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두 여인 실비아와 줄리아, 이들 사이에는 적절한 대비가 성립된다. 발렌타인이 친구에게 갖는 '이상적' 우정의 관계는 이 극을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으로 만들고 있으나 결말부분에 가서 이루어지는 갑작스런 화해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러나 뒤에 나타나는 낭만희극의 여러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극은 주목할 만하다.

〈사랑의 헛수고〉는 4명의 젊은이(왕과 신하들)가 학문의 길을 닦고자 여자를 멀리하기로 맹세하지만 그곳을 찾아온 프랑스의 공주와 시녀(역시 4명)를 보는 순간 그 맹세를 저버리고 구혼한다는 내용이다. 이 큰 줄거리 주변에 과장된 희극기질의 인물을 여러 명 배치함으로써 정통희극의 재미를 보태준다. 그러나 지나친 수사적 문체 때문에 작위적인 분위기가 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초기 작품에는 이밖에도 2편의 비극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티투스 안드로니쿠스〉는 당시 크게 유행한 '복수비극'에 속하는 작품이다. 옛 로마의 이야기를 소재로 복수비극의 원조인 세네카의 비극을 모방했다는 이 극은 살인·잔학·광란·복수 등을 주된 구성요소로 한다. 극의 잔인함에 대해 도덕적 빈축이 가해졌으나 그것이 당시 관객의 취향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의 초기극 중 기념비적 작품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숨은 자질과 잠재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로미오(16세)와 줄리엣(14세)의 순수한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지만 한 가지 강조해둘 점은 '비련'이 주제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랑에 못지않게 미움(두 집안 사이의 이유없는 해묵은 반목)이 강조되며 주인공들의 죽음(거의 우발적인 듯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담보로 해서 비로소 양가의 화해, 나아가 그 지역 전체의 평온을 되찾는다는 주제를 무시할 수 없다. 이 극에서는 젊음에 대립되는 죽음이 빛과 어둠의 대조처럼 선명한 윤곽으로 드러나 있다. 늙음(증오·대립·어둠)과 짝지어져야 할 죽음이 오히려 젊음을 언제나 단짝으로 삼는다는 것은 커다란 비극적 아이러니이다. 뒤의 4대 비극과 달리 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색은 짙은 서정성이다. 그 서정성에 힘입어 사랑이 미움보다, 정열이 현실적 계산보다 더 순수하고 값어치가 있다는 인간본성에 대한 작가의 통찰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기 희극

1596~1602년에 씌어진 6편의 희극은 여러 모로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가상'의 나라를 무대로 하고 있다. 〈한여름밤의 꿈〉은 아테네, 〈베니스의 상인〉은 벨몬트, 〈헛소동〉은 메시나, 〈뜻대로 하세요〉는 아든의 숲, 〈십이야〉는 일리리아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작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곳을 무대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 역시 상상과 가공의 베일을 덮어쓰고 있다. 사랑의 중병을 앓거나 변장한 인물, 흉칙한 계략을 꾸미는 인물, 똑똑한 어릿광대, 아름다움과 진실성을 겸비한 연인, 이런 등장인물들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래서 이 시기 희곡을 묶어 '낭만희극'이라고 부른다.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은 당시의 영국을 무대로 한 현실적 작품이란 점과 사극 〈헨리 4세〉에 나오는 유쾌한 기사 폴스탑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특수성으로 예외에 속한다. 〈한여름밤의 꿈〉은 창작시기, 작품내용으로 보아 초기극을 중기극으로 잇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극에서 작가는 각기 다른 세 그룹(아테네의 귀족, 초자연적 요정, 촌뜨기 장인들)의 인물을 아테네의 숲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통해 구성의 통일뿐 아니라 주제의 일관성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 극은 사랑의 어리석음, 방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정열, 그 정열과 사물의 질서 사이의 갈등을 다루었다. 더 일반화시켜 말하면 환각과 현실 또는 예술과 상상력 사이의 관계를 말해주는 은유, 삶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심미적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춤처럼 우아하고 서양장기판처럼 질서정연하게 엮여 있는 작품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사랑과 우정에 관한 낭만희극적 요소가 짙은 작품이다. 3쌍의 남녀가 달밤에 정원에서 결혼의 즐거움을 피력하는 장면으로 끝맺게 되지만 작가의 뛰어난 솜씨로 창조된 유대 상인 샤일록이 등장해서 희극세계가 붕괴될 듯한 위기를 맞는다. 악역을 맡은 이 특대형 인물은 무대에 나타날 때 부당하게 박해받는 인간의 대변자로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제목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을 지칭하지 않으며 인육재판에서 그가 패배하여 퇴장하는 4막에서 극은 끝나지 않는다. 〈헛소동〉은 큐피드(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사랑을 관장하는 심부름꾼)의 화살이 빗나가 사랑하는 당사자들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속임수·변장, 사람 잘못 알기 등 이 시기 희극에 공통된 수법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작품이다. 그런 뜻에서 이 극은 〈뜻대로 하세요〉·〈십이야〉 등과 공통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주된 줄거리의 효과는 잘 살리지 못한 대신 곁줄거리를 이루는 두 남녀(베네딕과 비어트리스) 사이의 불꽃튀기는 기지문답과 사랑의 결실이 〈헛소동〉의 더 큰 매력이 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뜻대로 하세요〉의 여주인공 로잘린드는 훨씬 더 매력있는 인물이다. 일찍이 아우의 계략으로 영토를 빼앗기고 쫓겨난 공작의 딸인 그녀가 궁정을 떠나 아든의 숲을 찾아가는 데서 시작되는 이 극은 각기 다른 4쌍의 사랑과 결합, 얽히고 설키는 과정, 놀이로서 연극행위, 변장과 사람 잘못 알기 등 즐거움의 요소를 두루 담고 있다. 이야기 줄거리로 볼 때 느슨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전체적 통일에는 성공한 작품이다. 여기서는 궁정(음모·술수)과 전원(평화·이상), 운명과 자연 사이의 대립을 읽을 수 있고 사랑 구하기 놀이를 통해 기존 낭만극에 대한 풍자도 찾아낼 수 있다. 재치있는 어릿광대 터치스턴과 특히 우울한 회의주의자 재이큐스의 등장은 이채롭다.

〈십이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낭만희극의 집대성이라는 평을 받는다. 오시노 공작은 올리비아를, 올리비아는 남장한 바이올라를, 바이올라는 그녀가 섬기는 오시노 공작을 사랑하는 술래잡기식 순환구조가 낭만희극적 골격을 형성하고, 거기에다 바이올라의 쌍둥이 오빠를 설정하는 등 이 작품 역시 변장, 사람 잘못 알기, 속임수와 같은 수법을 두루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낱 외면적 이야기 전개의 재미로만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의 자기기만(내면화된 속임수)과 그것을 치유해주는 사랑의 진실성을 통해 깊이와 설득력있는 끝마무리를 이루고 있다. 이 극을 한층 더 살찌워주는 것으로서 올리비아 집안의 여러 인물이 벌이는 곁줄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희극세계를 다양하게 수놓으면서 동시에 극 전체의 주제적 통일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매우 균형잡힌 희극이다. 여기서 불협화음을 내는 사람인 집사 말볼리오는 그 희극성과 비희극성의 혼합으로 해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영국 사극

영국사에서 소재를 얻어온 역사극을 별도로 묶는 관습은 이미 그의 작품전집 초판 때 시작된 것이다. 홀린즈헤드의 〈연대기 Chronicles〉(1587)에 주로 의거한 영국 사극은 그중 8편을 2편의 4부연작으로 나눌 수 있다. '장미전쟁'을 소재로 한 4편의 기존 초기극뿐만 아니라 그 직전의 역사 이야기를 극화한 〈리처드 2세〉, 〈헨리 4세〉 1·2부, 〈헨리 5세〉 역시 한데 묶어 4부연작으로 간주된다. 이 작품들은 필력이 왕성한 1595년 이후의 시기에 씌어진 것들이어서 그의 상위작품군에 속한다. 이밖에 〈존 왕〉·〈헨리 8세〉가 있으나 높은 평가는 받지 못한다.

 

영국 사극에 일관된 그의 입장은 전통적·보수적 역사관이다. 홀린즈헤드 원작의 영향도 크지만 그 점은 당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이자 작가의 기본입장이었다. 그는 왕권은 신이 베풀어준 것이며, 국가의 통합과 질서의 존중은 절대적이고 반역과 불화는 악이요, 혈연의 유대는 강해야 하고, 전쟁의 비참함·잔학성은 마땅히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하느님의 가호를 얻어 순종하는 자는 보호받을 것이로되 악은 반드시 벌받을 수밖에 없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영국은 튜더 왕조(엘리자베스 시대)의 정치적 안정을 최상으로 여겨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 사극이 무미건조한 교훈극이나 계몽극이 아니라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리처드 2세〉는 귀족들의 불화와 반목을 다스리는 데 실패한 우유부단한 주인공 왕의 비참한 몰락과 그를 대신해서 들어선 유능한 볼링브룩(뒤의 헨리 4세)의 이야기를 무대화한 것이지만 초기작 〈리처드 3세〉와 비교해볼 때 극적 처리의 유연함이나 인물의 내면화에서 많은 진전을 엿볼 수 있다.

 

볼링브룩은 선왕에 비하여 유능한 군주이지만 왕위 찬탈자임을 부인할 도리가 없다. 낙인이 찍힌 채 통치자가 된 그에게 다시금 모반하는 귀족세력이 대두한다. 그래서 〈헨리 4세〉 1·2부 역시 역모와 내란을 다룬 극이지만 그중 특히 제1부가 뛰어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왕과 귀족들의 다툼보다 왕자 핼(뒤의 헨리 5세)이 시중의 무뢰한 폴스타프와 벌이는 난장판이 훨씬 돋보이기 때문이다. 비곗덩어리·주정뱅이·허풍선이인 늙은 기사 폴스타프는 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 중 으뜸가는 인물이다. 능청맞기 한량없는 재치와 해학도 일품이려니와 그 활력은 마치 삶의 에너지의 고도의 합성체 같고 모순은 순치(馴致)되지 않은 인간성의 발로처럼 느껴진다. 그가 고대·중세를 꾸준히 이어온 희극적 인간형의 집대성이라는 점도 지적할 만하지만, 이 극에서 폴스타프의 성격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다. 주제면에서 볼 때 그와 왕자를 둘러싼 이야기가 왕권과 모반, 용맹과 비겁, 명예와 현실주의 등 극 전체 주제의 뛰어난 패러디로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왕자 핼에게는 아버지 왕이 가졌던 왕위를 찬탈했다는 죄의식이 없다. 따라서 그를 주인공으로 한 〈헨리 5세〉에서 작가는 마음놓고 이 젊고 용맹한 군주를 '명군'으로 받들 수 있었다. 그는 왕위를 계승하는 즉시 젊을 때 방탕의 상대였던 폴스타프와 그 일당을 물리치는 현실적 결단을 보여주며 외세(프랑스)를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하는 '영웅적' 면모를 보여준다. 튜더 사관(史觀)의 충실한 신봉자인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 그려온 부정적 통치자와 달리 그는 이상적 군주였다. 이 점에서 〈헨리 5세〉만큼 '애국적'인 극도 드물다.

로마 사극

역사적 사실을 다루었지만 로마사에서 소재를 얻어온 3편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코리올라누스〉는 영국 사극과는 별도로 다루어진다. 소재뿐 아니라 창작시기가 4대비극을 쓴 때와 이어져 있어 작품 성격도 뚜렷이 구분된다. 이 장르에서 작가가 의존한 원전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Bioi paralleloi〉(1579, 영역 〈그리스·로마 영웅전 The Lives of the noble Grecians and Romans〉)으로서 당시 널리 읽힌 고전 명작이고 그 번역문체도 격조높은 것으로 유명했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와 그를 시해하는 공화주의자 브루투스의 대립은 명쾌하기 짝이 없다. 대립의 구도는 극 중간에서 시저가 사라진 뒤에도 안토니와의 대결로 이어진다. 로마 시대의 고전 조각을 방불케 하는 명쾌함이다. 그러나 이상주의(브루투스)와 현실주의(안토니, 캐시우스)의 대립이 선명도를 더해가는 만큼 브루투스의 비극성은 깊이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로마 사극이지만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뉘앙스를 많이 달리한다. 사용된 문체만 하더라도 여기서는 훨씬 더 역동적, 육감적이며 상상력에 차 있다. 두 주인공이 권력과 사랑의 주제에 관해서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온세계를 뒤덮는 듯하여 정치·군사 면에서 현실적 패배조차 그들을 왜소화시키기에 무력할 정도이다. 〈코리올라누스〉는 명성높은 장군이지만 비극의 주인공으로서는 자격이 모자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권력에 대한 의지와 그것이 빚어내는 힘의 충돌에 극의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줄리어스 시저〉식 대립구도(자유 대 압제)는 찾기 힘들고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 넘쳐흐르는 시적 풍요로움도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스스로를 정치적 패배의 구렁텅이로 몰고간 외톨이 '영웅'의 일그러진 모습뿐이다. 이 시기에 작가는 이미 비극세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4대 비극

1600~06년에 씌어진 4편의 비극이 그의 최고걸작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며 이 4편의 작품이 각기 완성된 독자적 비극세계를 간직하고 있다.

〈햄릿〉은 그의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연극으로서 불후의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이 문학사상 드물게 신화적 존재가 되어버린 드문 경우에 속한다. 20세기의 부정적인 비평가들의 입장을 따른다 하더라도 극의 발생과 유래로 보아 조잡함이 가시지 못한 그 복수비극식 플롯에서 〈햄릿〉의 심리극적 일관성을 찾는다는 것은 위험하고 무의미한 작업이다. 그대신 작가가 추구한 것으로 평가되는 점은 훨씬 더 다양하다. 주인공이 어버이왕을 몰래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숙부인 현왕을 대하는 데 있어 작가는 단순한 복수의 차원을 넘어선 보편적 드라마로 승격시켰고 복수를 축으로 하되 상황 전체를 정서적 긴장으로 가득 메웠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 부여에서도 타고난 정신의 유연성을 시대적 회의정신과 결합시켜 사색과 행동 사이에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솜씨를 과시하고 있다. 거기에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대하는 인물에 따라 수시로 변신할 줄 아는 주인공의 '배우적' 능력까지 합쳐서 다른 어느 작품에서도 찾기 어려운 이 극만의 매력이 부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슴 쓰린 온갖 심뇌와 육체가 받는 오만 가지 고통"(제3독백), 즉 실존적 삶의 조건에 대한 작가의 비극적 통찰에서 우리는 이 작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오셀로〉를 흔히 질투의 극이라고 하지만, 이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용병대장인 무어인(북아프리카의 흑인) 장군 오셀로가 부하인 이아고의 간계에 넘어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한 베네치아 귀족 출신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는 큰 줄거리에는 분명히 아내가 부하 캐시오와 정을 통했다고 믿는 데서 오는 질투의 감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주인공을 가슴 깊이 움직이는 힘이 인간적·도덕적 가치(사랑·신의·순결 등)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신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또한 작품 전체에 흐르는 고양된 낭만적 정서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극적 긴장이 주인공의 거의 무방비상태라 할 영혼의 순수함과 악의 동기가 복잡하고 모호한 이아고 사이의 대립에서 빚어진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리어 왕〉처럼 인간이 선과 악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작품도 별로 없다. 주인공은 자기 왕국을 분배하면서 아무런 심사숙고 없이 악한 두 딸에게 나라를 양분해주고 선한 막내딸은 추방해버린다. 이런 우화적 시작은 이 극을 매우 단순한 내용으로 착각하도록 오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 전개될 주인공 리어의 극심한 고통과 수난, 그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새로운 인간을 위한 작가의 사려깊은 전략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극이 지니는 정신적 무게를 알게 된다. 어리석은 판단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 미쳐버린 리어 왕, 미친 인간으로 가장한 에드가, 미친 상태가 정상인 어릿광대 등의 광기만이 터득할 수 있는 삶의 숨겨진 진실, 현실(일상)의 눈을 빼앗김으로써 얻어지는 올바른 시력(비극적 비전)의 회복 등은 이 극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큰 가르침이다. 여기에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의 숙명적 존재성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깔려 있다. 거의 절망적인 극의 결말을 포함해서 이 작품의 세계는 묵시록적 공포를 일으킨다. 이 극이 20세기 후반의 현대인에게 크게 호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맥베스〉는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짧은 작품이다. 군더더기없는 탄탄한 짜임새와 전편에 일관되게 흐르는 긴장은 다른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특색이다. 용맹한 장군이자 야심가인 주인공이 아내의 사주를 받아 자기가 섬기는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다는 이야기는 정치극·역사극의 틀에도 합당한 것이다. 초점을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에 맞추어 내면화시켜 놓은 점이 매우 다르다. 이 극에서 언제나 제기되는 문제는 맥베스와 같은 극악무도한 인간을 어떻게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푸는 데 작가는 다음과 같은 배려를 해놓고 있다. 첫째, 주인공 맥베스를 인간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을 야심과 욕망을 실천에 옮기는 능력에 못지않게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치열한 상상력의 소유자로 만들어놓았다. 이 공포와 파멸의 상상력은 그를 끔찍한 살인자(가해자)이자 동시에 자신에 의한 '피해자'이게 한다. 역설적으로 그는 왕을 시해하고자 했을 때 이미 운명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둘째, 이 극이 지닌 시의 특질이다. 간결하기 이를 데 없으나 고도로 응축된 시적 표현은 일체의 수사를 거부하면서 이 끔찍스런 영혼의 내면을 비춰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어두운 희극

비극과 겹치는 시기에 쓴 3편의 희극은 그 이전의 낭만희극과 성격을 매우 달리한다. 그래서 흔히 어두운 희극(dark comedies) 또는 문제희극이라고 부른다.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는 당시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극이다. 공격하는 그리스군과 방어하는 트로이측의 유명한 장수들이 여러 명 등장하고 싸움의 경과에 관한 장면도 있으나 극의 중심은 오히려 트로이 왕자 트로일루스와 미녀 크레시다 사이의 사랑에 있다. 그러나 다루는 방식은 결합과 화해가 아니라 불화·좌절·계략·배반 쪽으로 중심을 옮겨놓고 있다. 크레시다는 트로일루스에게 사랑의 맹세를 다하다가도 사정이 바뀌어 그리스 측에 건너가자 그를 쉽게 배반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부정한 여자인가? 그리고 그리스군의 군사작전이 현실적 계산(이성)에 바탕을 둔 데 반하여 트로이측은 명예(이상)를 존중한다. 결과는 트로이의 패배로 돌아가지만 작가는 과연 어느 쪽에 동조한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이 이 극의 특징이다. 희극이라지만 전체를 지배하는 주조는 냉소적 풍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는 아내를 피해 달아나는 남편과 그를 잡으려고 온갖 노력과 계략을 펴는 아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마지막을 두 사람의 재결합으로 매듭짓고 있으나 그 과정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약간 황당무계한 줄거리와 고르지 못한 문체로 낭만성이 결여된 사랑의 희극이 되고 말았다.

〈법에는 법으로〉는 제목을 성서에서 따왔다. 그래서 당연히 인간의 행동에 대한 법적·도덕적 판단의 문제를 내포한다. 자리를 떠난 공작을 대신해 엄격한 법과 질서를 표방하고 나선 집권자 안젤로와 그에게 처형될 운명에 놓인 클로디오, 그 클로디오를 구하는 대가로서 안젤로에게 정조를 바칠 것을 강요당하는 누이 이자벨라, 그 과정을 몰래 살피다가 결국 변장을 벗고 수습에 나서는 공작 등이 등장하는데 결말은 희극답게 사필귀정으로 끝나는 듯이 보이나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은 작품이다. 이 극에는 정의와 자비, 도덕적 문란과 법의 남용, 자기 중심적 교만(위선)과 도덕성(순결) 등 대립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나 편의적인 결말 처리와 더불어 많은 모호함이 풀리지 않고 있다.

후기극

1608~12년에 씌어진 작품은 〈페리클레스〉·〈심벨린〉·〈겨울 이야기〉·〈템페스트〉·〈헨리 8세〉 등 5편이지만 끝작품(아마 다른 극작가와 합작)을 뺀 4편은 그 희비극 형식에 견주어 ' 로맨스'라 불리기도 한다. 공통된 특색으로서 일상을 크게 벗어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며, 극적 상황이 비극적·애상적 정서를 많이 담고 있으나, 결국은 여러 어려움을 갑자기 해소함으로써 화해(또는 참회)와 용서로 끝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색은 과거에 생겨난 상처를 사랑으로 씻어주는 젊은 세대(희망의 소생)에 대한 작가의 믿음이다.

 

〈페리클레스〉는 바로 앞선 작품 〈코리올라누스〉와는 달리 느슨하게 구성된 극으로 짜임새가 없으며 고대의 이야기를 다루되 플루타르코스와 같은 역사가의 눈이 아니라 그리스 후기 로맨스 문학을 연상하게 하는 허구성을 추구하고 있다.

〈심벨린〉의 주된 설화, 즉 아내의 정조에 대해 남편이 내기를 건다는 이야기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얻어온 것이다. 극의 장소를 옛 영국으로 바꾸어놓았지만 여기서도 그리스도교 이전의 로마 세계가 바닥에 깔려 있다. 플롯을 비롯하여 극의 시간·장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그 모든 것(24가지)이 마지막 장면에서 한꺼번에 풀리고 만다.

 

〈겨울 이야기〉 역시 이야기 진행에서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극 중간에서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경과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질투심 많은 남편이 아내를 의심한 나머지 그녀를 슬픔과 '죽음'으로 몰고간 끝에 결국 쓰라린 회개를 하게 된다. 그러나 끝장면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내의 조각상이 산 사람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연극적 구경거리마저 준비되어 있는 가운데 용서와 화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소개될 뿐 플롯 전체에 대한 관객의 정서적 몰입이 차단되어 있는 것은 이 극이 마치 옛 이야기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템페스트〉는 이 작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걸작이다. 당시 새롭게 유행한 가면가무극 요소를 다양하게 도입하고, 초자연적 현상을 무대의 구경거리로서 보여주며 소극에 가까운 희극 장면이 등장하나 기본적으로 진지한 연극이다. 외계와 차단된 외딴 섬을 무대로 마법으로 그곳을 지배하는 늙은 주인공 프로스페로를 중심으로 극은 진행되지만 주된 관심사는 먼 과거에 일어났던 섬 바깥의 이야기(정치적 모략, 배반, 권력의 찬탈)이다. 자신이 통치하던 나라를 빼앗은 그때의 악당 일행을 태운 배가 주인공의 마법에 의해 이 섬 가까이에서 난파하자 복수의 기회는 다가온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용서하는 그의 관용, 거기 얽힌 젊은 남녀의 사랑을 통한 화해, 주인공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요정(선)과 미개인(악)의 해방 등을 통해 이 극은 로맨스의 세계를 완결짓고 현실로 돌아오는 듯이 보인다. "이 하찮은 인생이란 시작과 끝남이 모두 잠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프로스페로의 토로는 다채로운 예술적 마법(시적 상상력, 창조정신)과 작별하고 막 은퇴하려는 작가의 심경으로 바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명성과 영향

셰익스피어가 문학적 명성과 무대에서 인기를 얻게 되기까지는 시대적 기복이 많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말 신고전주의 문학이론이 주종을 이루던 시기에는 드라이든이나 존슨 박사 같은 당대 최고 문인에게 찬사를 받았지만 작품의 진가가 충분히 인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극단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곧잘 개작·번안되어 인기있는 극작가였으나 올바르게 이해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가 신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초 낭만주의 문학이 대두되면서부터이다. 이미 18세기말 독일에서는 괴테·실러·슐레겔 등 최고의 문인·비평가들에게 깊이있는 평가를 받은 바 있고 영국은 그 뒤를 좇은 셈이었다. 어쨌든 그의 진가가 올바르게 인식되고 극단적인 셰익스피어 숭배(bardolatry)에까지 치달은 것이 이때부터이다. 대체로 작품의 시적 우수성이 찬양된 반면 극장쪽에서는 배우예술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 샀다. 따라서 시인·극작가로서 양면이 제대로 이해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학문·비평·연극 등 다방면의 이해가 골고루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그 성과는 전에 없이 풍성했고 학자·비평가·연극관계자(연출가·배우) 사이의 교류도 빈번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동시대적 안목으로 셰익스피어를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져 제1차 세계대전 이전과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셰익스피어 이해에는 많은 차이를 볼 수 있다. 이 점은 비평동향과 공연방식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와 같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화' 경향과 함께 그에 대한 세계화 추세도 만만치 않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그의 작품은 번역·연구·공연되며 그 숫자 또한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에서 셰익스피어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20년대 초였다. 문학편집자이자 연극인인 현철(玄哲)이 번역한 〈햄릿〉(1923)이 그 효시였으나, 그뒤 8·15해방 때까지 그의 작품 번역과 공연은 저조했다. 해방 후 번역과 공연이 점차 활발해져서 한국 최초로 극단 신협(新協)이 〈햄릿〉을 상연(1951)한 후 1964년 그의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셰익스피어 축제까지 열리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에 한국 최초로 셰익스피어 전집이 번역 출판되었는데, 하나는 1963년에 결성된 한국 셰익스피어 협회가 중심이 되어 편찬한 것(정음사 간행)이고 또 하나는 김재남(金在枏)이 개인 전역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구업적과 공연실적은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Macropaedia| 呂石基 참조집필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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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찾을 거리

셰익스피어, '오셀로'

줄거리 :

베니스 공국의 원로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는 흑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게 되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사이프러스 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자, 오셀로는 이 섬의 수비를 위하여 처와 함께 사이프러스로 떠난다. 오셀로의 기수(旗手) 이아고는 갈망하던 부관의 자리를 캐시오에게 빼앗긴 데에 앙심을 품고 두 사람에게 복수할 것을 계획한다.

 

사이프러스에 도착한 날 밤 이아고는 주벽이 있는 캐시오에게 일부러 술을 먹여 소동을 일으키게 하고, 오셀로에게 부관의 자리를 파면당하자 이번에는 데스데모나를 통하여 복직 운동을 하도록 권장한다. 그렇게 해 놓고 오셀로에게는 캐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밀통(密通)하고 있다고 넌지시 비추고, 오셀로가 그녀에게 주었던 귀중한 손수건을 자기 처인 에밀이라에게 명하여 훔쳐내서 캐시오의 방에 떨어 뜨려 놓아 가짜 증거를 만든다. 경솔하게도 그를 믿었던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눌러 죽인다. 그런데 모든 것이 폭로되자 오셀로는 슬픔과 회한으로 자살하고 이아고는 가장 잔혹한 처형을 받는다.

 

작품 해제 :

1604년경의 작품이며, 1622년 간행되었다. 이탈리아의 소설에서 취재한 것으로 정식 제명은 '베니스의 무어 인 오셀로의 비극'이다. 다른 비극에 비하여 사실적이며 가정 비극의 색채가 짙다. 인간의 사랑과 질투를 선명하고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콜리지가 '무동기(無動機)의 악' 이라고 부른 이아고의 악의 추구는 무시무시할 만큼 박력이 있다.

 

셰익스피어, '리어왕'

줄거리 :

리어 왕에게는 고네릴?리건?코델리아라는 3명의 딸이 있었는데, 리어 왕이 너무 늙어 딸들에게 국토를 나누어 주기로 결정하고 딸들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물어본다. 고네릴과 리건은 그들의 사랑을 과장하여 표현하였으나 성실한 코델리아는 자식으로서 효성(孝誠)을 다할 뿐이라고 덤덤하게 대답하였다. 이에 노한 국왕은 코델리아를 추방하고 국토를 두 딸에게만 나누어 준다.

 

그러나 국토를 물려 받은 두 딸의 냉대(冷待)를 참지 못한 리어 왕은 충신 켄트와 어릿광대를 데리고 궁전을 나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매면서 불효한 두 딸을 저주하며 광란(狂亂)한다. 이윽고 리어 왕은 왕도 한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은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프랑스의 왕비가 된 코델리아는 부왕(父王)의 참상을 전해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진격하였으나 싸움에 지고, 아버지와 함께 포로가 되어 코델리아는 병사의 손에 교살된다. 리어 왕은 죽은 딸의 시체를 안고 슬픔에 못이겨 절명한다.

 

작품해제 :

5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1605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1608년 간행되었다. 리어 왕은 영국의 전설적인 국왕으로 16세기의 영국 문학에서도 가끔 등장하는데, 셰익스피어는 그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다루었다.

 

셰익스피어, '맥베스'

줄거리

스코틀랜드의 무장(武將)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에 현혹되어 기승을 부리는 부인과 공모하여 자기의 거성(居城)을 방문한 국왕 던컨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그 자손이 장차 왕자가 된다는 예언을 믿고, 친구 뱅코 부자(父子)의 암살을 계획하지만 그의 아들은 도망친다. 맥베스의 폭정을 저주하는 소리가 전국에 퍼지고 반란이 일어나자 맥베스는 다시 마녀를 찾아가 예언해 줄 것을 요구한다. 마녀는 버넘의 숲이 그의 성을 공격하지 않는 한 안전하며, 여성으로부터 출생한 사람은 결코 그를 패망시킬 수 없다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던컨왕의 유아(遺兒) 맬컴을 추대한 맥더프가 인솔한 군대는 버넘 숲속의 나뭇가지를 베어들고 몸을 감추면서 맥베스의 성(城)을 공격한다. 이때 부인이 미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망하던 맥베스는 최후의 용기를 내어 싸우지만 맥더프가 어머니의 배를 절개하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자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대결 끝에 맥더프에게 살해된다.

 

작품해제 :

5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창작 연대와 초연 시기는 일반적으로 1605∼1606년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가 홀린셰드의 '스코들랜드 연대기'에서 취재하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 중에서 가장 짧으며 진행의 템포도 빠르다. 이 비극을 소재로 한 오페라로는 베르디 작곡의 4막 가극이 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곡의 교향시(작품23)등이 있다.

4. 참고자료

 

비극(悲劇, tragedy)

 

(1) 개념

① 운명, 성격, 상황 등으로 인하여 패배하는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는 희곡이다. 대체로 비범한 개인의 주동 인물이 투쟁하다가 비극적으로 좌절되는 내용이다.

② 고대 희랍의 연극에서 출발한 것 중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유형으로, 엄숙하고 진지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결말은 주인공의 파멸로 이어진다.

③ 위대한 주인공이 비극적 결함으로 패배하거나 몰락할 때 , 관객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에 이른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효과를 설명했다.

 

(2) 특징

① 주인공은 대개 선의 상징이거나 위대한 인물로 설정되지만 비극적 결함 때문에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진다.

② 비극은 비범한 개인을 주로 다루며, 모든 비극은 인간 사이의 감정, 사고방식의 갈등이나 인간의 환경 간의 갈등과 충돌을 그린다.

③ 관객의 감정이나 심리를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3) 비극의 분류

① 운명비극 : 주인공이 운명에 의해 몰락하는 비극으로, 고대 비극의 일반적 양상이다.

② 성격비극 : 주인공이 그 성격에 의해 몰락하는 비극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 '리어왕' 등이 그 예이다.

③ 상황비극 : 주인공이 외부 상황에 의해 몰락하는 비극으로 이를 사회비극이라고도 한다. 입센의 '인형의 집', 유치진의 '토막'등이 이에 속한다.

 

참고문헌

신정옥 역, <햄릿> (전예원, 1989)

문상득 외, <영미 희곡 연구> (민음사, 1994)

여석기, <햄릿과의 여행, 리어와의 만남> (생각의 나무, 2001)

이해하기

1. 왕과 왕비와 햄릿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왕과 왕비에 대한 햄릿의 태도를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방법 :

등장 인물의 말, 행동, 표정, 의상 등을 통해 다른 인물에 대한 태도를 파악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작중 상황을 정리한 후에 인물의 태도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한다.

 

예시 학생활동 :

햄릿은 왕이 된 숙부와 숙부의 품에 안긴 왕비의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방백과 홀로 남은 상태에서 하는 독백을 통해 왕과 왕비에 대한 적대감과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볼 때, 햄릿은 겉으로는 왕과 왕비에 대해 복종하는 듯하지만, 내심으로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자신이 햄릿 역을 맡은 배우라고 가정하고, 적절한 표정과 어조로 햄릿의 대사를 읽어보자.

교수·학습방법 :

인물의 심리와 성격을 대사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배역을 정하여 교실 앞에서 입체 낭독을 하도록 한다. 햄릿의 대사는 방백, 대화, 독백에 걸쳐 있고, 대관식 직후와 친구들의 등장 이후의 상황도 판이하다. 이러한 점에 유의해서 적절한 표정과 어조로써 햄릿의 대사를 처리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활동 : (생략)

2. 햄릿이 때때로 독백을 하는 이유를 무대라는 물리적 조건과 관련지어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방법 :

독백이라는 대사 처리 방식이 희곡의 공간적 제약과 관련지어 어떠한 효과를 발휘하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부분에 나타난 햄릿의 독백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이를 무대라는 물리적 조건과 연결짓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활동 :

교과서에 수록된 햄릿의 독백은 왕과 왕비에 대한 햄릿의 속내와 그의 내면적인 고뇌를 관객에게 드러내는 한편, 지금의 왕과 큰 차이가 있는 부왕의 훌륭함, 어머니와 부왕의 관계, 숙부와 어머니의 재혼 등의 과거의 사건을 햄릿이 관객들에게 요약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사건은 공간적인 제약을 받는 희곡의 무대에서 모두 직접 보여줄 수 없으므로 햄릿은 과거의 사건을 관객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서 독백을 하는 것이다.

3. 이 작품을 공연할 때 햄릿이 망대에서 부왕의 혼령과 만나는 장면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처리 할 것인지에 대해서 토의해 보자.

 

교수·학습방법

'햄릿'을 무대에 올릴 때, 죽은 자의 혼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활동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자의 혼령과 만나는 대목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양한 연출 방식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예시 학생활동 :

학생 1 : 살아있는 사람은 육신이 있지만, 죽은 자의 혼령은 육신이 없으므로 부왕의 혼령은 소리로만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학생 2 : 그러면 너무 단조로울 것 같아, 그러니 죽은 사람의 모습을 직접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 같아. 그게 훨씬 더 큰 충격을 던져줄 것으로 생각돼.

학생 3 : 죽은 사람이 산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인다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적어도 의상만큼은 죽은 자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준비해야 돼.

4. 햄릿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숙부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지만 그를 죽이지 않는다. 작품 전체를 읽고 햄릿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대한의 견해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보자.

 

교수·학습방법 :

학생들에게 작품 전체를 미리 읽게 한 연후에 수행해야 할 활동이다. 모둠을 지어 학생들 각각의 견해의 설득력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논거를 작품 속에서 찾게 하는 활동을 하도록 과제를 부여하도록 한다. 정답이 없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자유로운 활동을 하게 하되 논리적인 정합성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시 학생활동 :

제시된 견해 중에서 한두 개의 견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 다음과 같다.

 

1. 성격적 무능설은 햄릿의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것, 즉 햄릿 같은 귀공자는 결심도 단단하지 못하고 실천력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독백에 나타난 그의 의지는 강하다. 복수라는 목적을 위해 순진무구한 오필리어의 사랑을 제물로 삼는다. 그는 폴로니우스에게 생명을 내줄 수 있다는 각오를 보여준다.

2.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은 아들이 어머니에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사모, 즉 오이디프스 콤플렉스가 햄릿에게 있다는 거시다. 즉 햄릿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을 이룬 숙부를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숙부의 목숨을 뺏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경우에 천륜을 어긴 숙부를 응징하려는 햄릿 자신의 반인륜적 흑심은 숙부의 죄악보다 더 크게 된다. 햄릿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효성이 지극한 인물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어기지 않는다.

확장하기

1. 만화 영화 '라이온 킹'과 '햄릿'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해보자.

 

교수·학습방법 :

희곡을 소재로 한 만화 영화를 원작과 비교, 대조하라는 활동이다. 활동에 앞서서 고전이 후대에 여러 갈래로 수용된다는 점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인터넷 등을 통해 만화 영화 '라이온 킹'의 줄거리를 파악하게 하고, 이를 '햄릿'의 줄거리와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하게 한다.

 

공통점

차이점

햄릿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숙부에게 복수하는 줄거리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는 결말

*우유부단한 주인공

*복합적인 구성 등

라이온 킹

*해피 엔딩의 결말

*결단력이 있는 주인공

*단순한 구성 등

참고

만화 영화 '라이온 킹'의 줄거리

아프리카 밀림의 왕인 사자 무파사의 아들 심바가 태어난다. 어린 심바는 극진한 아버지의 사랑과 주위의 보살핌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날 밀림을 차지하려는 삼촌 스카가 나타나 아버지를 해치고 심바는 사막으로 쫓겨난다. 외톨이가 된 심바는 사막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어른으로 굳세게 성장한다. 다부진 청년 사자로 자란 심바는 포악한 삼촌의 폭정을 견디다 못한 어릴 적 친구인 닐라의 부탁으로 밀림으로 돌아온다. 심바는 밀림의 친구들과 힘을 합쳐 삼촌 스카를 내쫓고 밀림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어 평화로운 밀림을 만들어 나간다.

예시 학생활동

2. 이 작품은 1948년에는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 1990년에는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1997년에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에 의해 여러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다.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교수·학습방법 :

문학 작품의 영화화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활동이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에게 이 활동을 요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 몇에게 이 활동을 부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로렌스 올리비에감독의 '햄릿'은 비디오를 구하기 어렵기에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햄릿'과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햄릿' 중의 하나를 빌려보게 한 후에 활동 결과를 발표하도록 한다. 위에 제시된 영화들을 감상한 후, 매체의 변화로 말미암아 원작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영화에서 받은 느낌과 감동이 원작을 읽었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해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햄릿을 토대로 답안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원작에서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햄릿 역을 폭력 영화의 우상 멜 깁슨이 맡은 사실부터 놀라왔다.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단순한 원작으로 하고 사건 순서와 인물 해석이 전혀 다른 햄릿을 창조해 냈다. 시대 배경에도 변화를 주어 원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서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14세기가 배경이 된다. 또 햄릿과 그이 모친 거투루드 왕비와의 관계도 단순한 모자가 아닌 오필리어가 햄릿이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랑으로 희생당한다는 얘기로 탈바꿈시켰다.

2. 영화와 원작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

 

예시 학생 활동 :

1997년에 케네스 브래너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된 햄릿을 중심으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공통점 : 영화와 원작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숙부에게 복수하는 비극이다.

차이점 :

1.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적다. 대신에 배우의 대사를 삽입 장면이나 회상장면을 통해 보여 준다.

2.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그려진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햄릿이 에너지에 넘치고 생기발랄하다

3. 원작은 덴마크를 배경으로 하는데, 영화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희곡 :

인생은 흔히 연극에 비유된다. 이는 연극이 바로 인생의 거울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생의 정리된 틀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의 이러한 본질은 영화에도 해당한다. 이 단원에서는 연극과 영화의 대본인 희곡과 시나리오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연극과 영화를 감상하는 안목을 기르도록 한다.

(1) 희곡의 개념과 특성

1. 희곡의 개념

인간이 자신의 열정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하고, 다른 사람과 갈등하는 모습을 배우의 행동과 말을 통해 직접 관객의 눈앞에 재현시키는 문학. 연극의 대본

2. 희곡의 특성

①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문학

(1)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문학이기 때문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2) 시간과 공간의 제약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의 수에도 제한을 받는다.

② 행동의 문학

(1) 인간의 행동(배우의 연기)을 통해 표현되며 극작가의 묘사나 해설은 개입될 수 없다.

(2) 행동은 압축과 생략, 집중과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③ 대사의 문학

(1) 사건의 전개가 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압축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2) 대사를 통하여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며, 주제가 형성화된다.

④ 현재화된 인생 표현

(1) 무대 위에서 인생의 모습을 직접 표현하는 특성 때문에 모든 이야기를 현재화한다.

(2) 현재 시제를 사용한다.

※ 희곡과 연극의 관계

희곡

 

 

연극

 

작가의 상상력

연출가의 해석

무대 장치가의 무대 예술

배우의 연기

관객의 참여

 

 

 

 

※ 희곡과 소설의 차이점

 

희곡

소설

서 술 자

서술자의 개입이 없음.

서술자의 개입이 있음.

시 제

현재형

과거형

등장 인물

등장 인물 수의 제약

제약 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함.

시간·공간

제약을 받음.

제약을 받지 않음.

전달 과정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함

읽는 것을 전제로 함.

표 현

대사로 이루어짐.

대화와 지문으로 이루어짐.

인물의 심리

대사와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됨

세세한 심리분석, 내면 탐구가 가능함.

(2) 희곡의 구성

1. 내적 구성 요소

① 해설 : 시간·공간 배경, 등장인물, 무대장치 등을 설명한 글

② 지시문 : 인물의 동작, 표정, 말투, 입·퇴장, 조명, 심리 등을 지시한 글

③ 대사

(1) 대사의 기능

① 사건을 진행시킨다.

② 인물의 생각, 성격, 사건의 상황을 드러낸다.

(2) 대사의 종류

① 대화 : 2인 이상의 등장 인물이 주고받는 말

② 독백 : 등장 인물이 혼자서 하는 말

③ 방백 : 무대 위의 다른 인물은 듣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등장 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하는 말

(3) 대사의 요건

① 압축성(경제성)

㉠ 불필요하게 말을 늘어 놓지 않고 간결한 말로써 여러 가지 사실과 의미가 효과적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압축된 표현을 써야 한다.

㉡ 표현의 경제성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② 적절성

㉠ 말하는 인물의 신분, 성격, 심리 상태, 처지에 적합한 대사를 써야 한다.

㉡ 이를 어기면 인물과 대사가 어울리지 않아 부자연스럽게 되고, 작품의 현실감이 상실된다.

③ 알맞은 속도감

㉠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장황하게 늘어지지 않고 극적 진행의 속도감을 살릴수 있도록 대사가 구성되어야 한다.

㉡ 관객의 상상적 이해를 촉진하고 사건 전개에 대한 관심이 높일 수 있다.

④ 참신성

㉠ 케케묵은 표현이나 상투적인 말을 피하고 선명한 인상을 주는 표현을 구사해야 한다.

㉡ 대사에 날카로운 재치와 관찰의 신선함이 담겨야 한다.

예문

(가) 무대 어느 갈림길에 자리하는 주막집. 말이 주막이지 방 두칸, 마루 하나의 일자집이다. 안방에는 무대 앞쪽으로 기역자로 꺾어서 이어지느 허술한 술청이 겨우 주막집임을 나타내 준다. 술청에 막걸리 항아리, 술상, 수저통, 술사발, 뚝배기 등속이 놓여 있다. 집 앞마당은 바로 한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술청 우편은 흙벽이며, 정면과 좌편은 그대로 툭 트이어있다. 때는 나른한 봄 오후, 뒷산에서 나무하는 총각들의 구성진 육자배기 가락이 흘러나온다.

(나) 가 악보 : 어무이! 어무이 어디 나갔는가? (부엌으로 가서)은살아! 어디 갔느냐?

(집에 아무도 없는 기미를 알자, 그는 술청마루 긑에 주저앉는다.)

나 악보 : 도둑이 들어와서 몽땅 털어 가도 모르겠다. 젠장! 오살놈의 날씨는……

(적삼 앞섶을 풀어 헤치며) 단오절도 안 지났는데 왜 이리 덥다냐! 아주 시루에 찔 참인감. 어이구 더워라.

차범석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이다. 위의 예문에서 (가)는 해설이고, (나)의 ()안은 지시문이며 나머지는 대사((나)의 가는 대화, 나는 독백)이다. 희곡은 문학성과 함께 연극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 세 개의 요소를 필연적으로 지니게 된다.

2. 외적 구성 요소

① 장

(1) 희곡은 기본 단위로서, 막의 하위 단위이다.

(2) 배경이 바뀌고, 인물의 등장이나 퇴장으로 구별된다.

② 막

(1) 몇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2) 무대의 막이 올랐다가 다시 내릴 때까지의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3) 막은 휘장을 올리고 내리는 것에서 연유되었으며 극의 길이와 행동의 구분이다.

(3) 희곡의 구성

1. 3단 구성

'제시(발단)→ 분규(전개)→결말로 이루어지는 구성.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립한 '처음-중간-끝'에서 비롯되었다.

2. 5단 구성

'발단→상승(전개)→정점(절정)→하강(반전)→대단원(결말)'으로 이루어 구성. 현대 희곡이 취하는 일반적으로 취하는 구성'

① 발단 : 시간·공간·인물이 제시되고, 극적 행동이 일어나는 준비 단계. 갈등·분규의 실마리 마련

② 상승 :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점점 상승되는 단계

③ 정점 : 긴장과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되는 단계

④ 하강 : 대립되었던 두 힘의 균형이 깨어지고, 해결의 국면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지는 단계

⑤ 대단원 : 사건과 갈등이 종결되고 주인공의 운명이 결정되는 단계

희곡의 갈래

1. 길이에 따른 분류

1. 단막극

⑴1막으로 된 희곡(연극)

⑵하나의 무대 공간 안에서 갈등 구조가 명료하며 단일한 사건이 전개된다.

⑶소설에 견주면 단편 소설에 해당하는 양식이라 할 수 있다.

2. 장막극

⑴2막 이상으로 된 희곡(연극)

⑵막의 변화에 따른 무대 장치와 공간도 바뀌는 것이 보통이다.

⑶사건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단막극보다 넓게 사용해서 복잡한 갈등의 흐름을 제시한 다. 그러나 공연상의 제약으로 인해 시간을 무한정하게 쓸 수는 없으므로 대개 2∼3시간 정도의 길이가 된다.

2.내용 및 표현상의 특질에 따른 분류

1. 비극

⑴ 보통 이상의 주인공이 실패와 좌절을 겪고 불행한 상태로 전락하는 결말을 지닌 극

⑵ 중심 인물이 힘겨운 장애와 맞부딫쳐서 싸우다가 패배해 가는 모습을 통해 심각하고 진지한 갈등을 제시하고, 관중의 정서를 고조시켜서 비극적 감동을 조성한다.

비극의 효과 : 카타르시스

① 연민의 정을 일으키고 공포를 지니게 함으로써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하는 것이 비극적 효과다.

② 선하고 위대한 주역이 비극적 결함으로 인해 패배하거나 몰락할 때, 관객은 공포와 연 민의 감정을 일으켜 감정을 순화시키며 정화한다.

⑶ 비극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운명 비극, 성격 비극, 상황 비극 등으로 세분된다.

① 운명 비극 : 주인공의 불행이 운명의 작용에 의한 비극

② 성격 비극 : 인물과 그 성격에 의해서 몰락이 이루어지는 비극

③ 상황 비극 : 주인공의 몰락의 주도니 원인이 사회적 상황에 있는 비극

2. 희극

⑴ 보통 혹은 보통 이하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인간의 성격과 행위에 내재해 있는 어리석 음과 모순 등을 드러냄으로써 골계미를 조성하는 극

⑵ 경쾌한 분위기와 웃음이 주가 되며, 행복한 결말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3. 비희극

⑴비극과 희극이 혼합된 형태의 극

⑵불행한 사건이 전개되다가 나중에는 상황이 전환되어 행복한 결말을 얻게 되는 구성 방식을 가진다.

4. 소극

⑴ 희극보다 과장되고 강렬한 방법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극

⑵ 때로는 희극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희극에 비해 강렬한 골계성과 과장된 인물 표현 및 효과를 강조하는 상황 설정 등을 특징으로 한다.

⑶ 우리나라의 가면극에도 이러한 소극의 요소 및 표현 방법이 쓰이 부분이 많다.

5. 격정극

⑴인생의 깊은 의미보다는 사건 전개의 흥미와 감정의 자극 및 흥분에 치중하는 통속적 연극

⑵개화기의 신파극이 대표적인 예이다.

희곡의 인물

희곡의 주제는 등장 인물의 대사와 행동으로 표현된다. 이 글은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 인물의 대사, 그리고 행동의 조건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 글이다.

⑴등장인물

① 집중화되고 압축된 인물

희곡은 인생의 현실을 무대 위에서 상연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그 인생의 모습은 정선되고 집중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은 집중적인 인간이어야만 희곡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희곡의 등장 인물 수는 제한을 받으며 몇 사람만을 집중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② 개성적이면서도 전형적 인물

희곡은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야 하고, 소위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어야 하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인물이 여럿이 나올 필요가 없다. 즉 드라마의 등장 인물은 사회적 계층과 직능과 교양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어야 하는 것이다.

③ 갈등과 의지의 투쟁을 보여 주는 인물

희곡의 인물을 플롯의 진행에 따라서 성격의 갈등 대결을 일으키고, 대내외의 사건에 부딪쳐서 의지의 투쟁을 일으키는 인물이어야 한다. 따라서 희곡은 이러한 등장인물이 극적인 상황 속에서 극적인 행동을 해 가는 가운데 소위 극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④ 대화와 플롯에 의한 인물 설정

희곡에서는 순전히 극중 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을 통해 서 간접적으로 심리와 성격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희곡 속의 인물은 언제나 현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극적 행동을 떠나서는 인물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희곡의 등장 인물은 행동과 분리해서 생각할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대화나 독백은 물론 다른 인물의 언급 등 대사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인물의 성격이 나타난다.

⑵ 등장 인물의 대사

희곡은 행동의 문학임과 동시에 대사의 문학이다. 희곡의 형태를 보면 간단한 무대 지시 외에는 전부 인물들의 대사로만 구성된다. 따라서 희곡에서 차지하는 대사의 비중은 극적 행동과 마찬가지로 대화로써 이루어지며, 독백이나 방백 등도 포함된다.

성격을 나타내고 플롯은 진행시키는 대화

희곡의 대화는 성격을 나타내고 플롯을 진행시킨다. 희곡에서 대화가 차지하는 역할은 첫째로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요, 둘째로는 극의 행동과 직접적인 관련하에 플롯을 진행시킨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대화는 사건을 설명해 주고 행동을 유발하며 플롯의 진행에 관여한다.

그럴 듯하고 자연스러운 대화

희곡의 대화는 그럴 듯해야 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희곡에서 대화는 우선 그럴듯한 것이 되어야하고 그렇게 해서 자연스러움이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음성이라든지 리듬, 속도, 숙어의사용, 몸짓의 동반 등 극적인 효과를 높일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집중화되고 간략한 대화

희곡에서 대화는 극적 분위기를 지속해가고 긴장과 박력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치우치는 것도 피하고, 너무 과장에 젖어 있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⑶ 등장 인물의 행동

① 극적 행동

극적 행동은 극의 갈등과 긴장을 일으키는 생략·압축·농축·통일성이 있는 행동이어야 한다. 소설의 경우에는 산만한 행동도 나오고 자유롭기 이를 데 없지만, 희곡에서의 행동은 앞뒤가 꼭 맞는 선택된 행동이어야 하고, 통일된 행동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희곡의 행동은 인물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어야 하고, 대화도 곧장 들어맞아야 한다.

② 극적 효과

희곡의 의지의 투쟁과 긴장감을 일으키는 위기의 설정 및 주동과 반동의 대립이 있음으로써 극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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