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햄릿 / 세익스피어 / 줄거리 및 해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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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Hamlet:1600-1601) / 세익스피어 / 줄거리 및 해설

  해설
  셰익스피어는 37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애독되고 있는 "햄릿"은 대중적 흥미가
높기 때문에 자주 상연되지만 셰익스피어 연구가들에게는 가장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복수극으로 끝나기 쉽고 신중히 처리한다 해도 일종의 윤리극이 될 수 있는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셰익스피어는 복잡하고 신비스러운 인생의 비밀을 파헤쳐 그 진상을
제시하려 했는데 그 비밀을 해명하는 열쇠로 햄릿의 성격을 창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햄릿을 통하여 인생의 영원한 비밀인 삶, 사랑, 번뇌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햄릿이 지니는 성격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인긴 행위의 근저에 깔려 있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느끼는 기쁨을 알 수 있다. 햄릿의 성격에
대해서는 정신병설 의지 박약설 우울증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그것은 햄릿의 복잡한 
성격의 일면을 설명하지만 그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실로 "햄릿"은 인류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인간의 감정에 감동을 주며 생각을 새롭고 깊게 해 줄 것이다. 


  괴테는 햄릿을 통하여 "훌륭하고 숭고한 가장 도덕적인 인간이지만 영웅적인 기력이
부족하여 스스로 짊어지지도 못하고 던져 버리지도 못하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거꾸러지고 
만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반성적이고 외향적이며 환경에 순응하는 유형의
성격자는 햄릿의 생활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가 인간의 성격을 햄릿 형 돈 키호테 형으로 비유하여 나눌 
정도로 셰익스피어는 "햄릿"으로 성격의 전형을 창조한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4대 비극에는 "햄릿"외에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가 있다

  작가 약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중부 잉글랜드의 스트래트포드 안 에이번에서 태어나 1616년
  4월 52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고 전하고 있다.


  그의 가정은 빈곤으로 겨우 국민학교 정도의 교육을 마치고 20세 때에 런던으로 나왔다. 
일정한 직업 없이 전전하다가 어느 극장에서 배우 겸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26세 경에는
완전한 극작가가 되었다. 그 후로 약 23년 간 문필 생활을 하였다. 장시 2편 소네트 154편 
희비극 37편을 창작하였다.


  그의 작품은 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나서야 진가를 인정받아 그 위대함이 연구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의 시인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그의
관찰력은 넓고 파악력은 강하다. 음악과 색채의 아름다움 재미있는 말씨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의 전개 성격이 뚜렷한 인간의 동작 싱싱한 서정시의 맛 터져나오는 웃음 가슴이 
뜨거워지는 슬픔 등 예술이 다룰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춘 것이 그의 극이다.


  줄거리 


  -제1막-
  자정이 지난 시각 덴마크 엘시노어 궁성 앞의 말루에서 버나드는 마셀러스 호레이쇼와
괴이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정이 지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이틀을 계속 두 달
전 죽은 선왕의 혼령이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누군들 보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으랴. 버나드의 보고를 들은 호레이쇼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망루에
나타났다. 앞은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이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성벽의 모퉁이에 정말
혼령이 나타났다. 선왕의 모습이 틀림없었다. 혼령은 생전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찌푸린 표정엔 위엄과 고통이 서려 있다. 아무리 보아도 선왕 그대로의 모습이다. 
놀란 호레이쇼는 공포에 와들와들 떨면서도 멀어져 가는 혼령에게 소리친다
  "너는 누구냐? 누구이기에 한밤중에 덴마크의 선왕께서 행차하시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냐? 어서 말해라!"
  호레이쇼는 질려 있었다. 이것은 덴마크에 괴변이 일어날 징조가 아닌가? 평소 불평이 많은 
마셀러스는 이 징조를 두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듯 엄중한 말을 세워 백성들을 매일처럼 못살게 대포를 만든다 외국에서 
무기를 사들인다 배를 만든다 하며 백성들을 괴롭히는가? 자네들 가운데 아는 바가 있으면 
속시원하게 말 좀 해 주게!"
  호레이쇼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왕께서 그의 생전에 노르웨이 국왕과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조약에 따라 노르웨이 국왕의 소유지를 바로 선왕이 빼앗았다는 것이다. 최근 
선왕이 돌아가시자 노르웨이 국왕의 아들이 이를 보복하기 위해 잡병을 모아 덴마크 국경을 
노리고 있으니 선왕의 혼령은 이와 관계있는 징조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 다시 혼령이 나타났다. 호레이쇼는 조금 전보다 침착해져 혼령을 향해 말을 걸었다
  "섰거라! 나에게 말을 해라 만일 네게 원한이 있다면 내가 너의 원을 풀어 주어 내게도 
복이 될 일을 할 것이니 말해 다오. 무엇이건 말해다오. 이 나라의 화근의 비밀을 알거든
말해 다오. 생전에 남에게 빼앗은 재물을 땅속에 묻어 둔 채 죽은 탓으로 그것을 못잊어
나타났느냐? 어서 말을 하라"


  그러나 첫닭 우는 소리와 함께 혼령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동녘 하늘엔 붉은 햇살이 
뻗치고 있었다. 호레이쇼는 이 사실을 햄릿에게 보고함이 신하로서의 의무이며 친구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왕은 두 달 전 술을 마시고 잔디밭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독사에 물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선왕의 죽음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의 아들인 햄릿이었다. 부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자라난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깊은 회의와 절망에 빠져
괴로워했다. 선왕의 후임으로 햄릿의 숙부가 왕좌에 앉았으며 더욱 햄릿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선왕이 죽은 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그의 어머니가 숙부와 재혼한 데 있었다. 무엇을 
믿으란 말인가? 선왕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덴마크 영지에서 이제 햄릿 
외엔 없는 것이다.


  오늘도 왕비를 옆에 거느리고 그 옛날 형이 자리잡았던 옥좌에 거만스럽게 버티고 앉은
클로디어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집정 소감을 연설하고 있었다.


  "햄릿 선왕께서 승하하신 지가 두 달 전이라 만백성이 수심과 슬픔의 도가니 속에서
선왕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마음은 인정과 도리이되 언제까지나 비탄의 눈물을 흘린다고 죽은 
넋이 되돌아올 리 없고 험악해진 국경 지대의 형세는 일각의 지체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기쁨과 슬픔을 저울질하면서 나는 지난 날의 형수를 정궁으로 모셨노라 또한 이 문제에 대
해서는 경들이 협조하였기에 짐도 그 월등한 지혜를 굳이 막지 않았노라"
  클로디어스의 언변은 유창하고도 의젓하여 모든 신하들을 위압했다. 침통한 표정의 햄릿을 
바라본 왕비는 아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사랑하는 왕자 그 어두운 얼굴빛을 던져 버리고 좀더 다정스러운 눈으로 왕을 우러러
보오. 항상 그렇게 눈을 내려 덮고 떠나신 아버님을 땅 속에서 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소?
죽음이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요. 현세에서 영원의 생명으로 지나가는 것을"
  클로디어스 왕도 햄릿의 마음을 달래느라 무척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햄릿의 마음 
속에는 슬픔과 의아심과 분노가 타오를 뿐이었다. 그는 숙부인 클로디어스보다 어머니로부터 
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 추하고 더러운 몸뚱어리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겨우 한 달! 거친 바람이 어머니의 
뺨을 스쳐가는 것도 못 마땅히 여기시던 끔직한 사랑이었건만 그런 사랑을 주던 왕의 시체가 
썩기도 전에 이 지경이 되고 말다니... 생각을 말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 
염치도 체면도 없는 조급한 마음 어쩌면 그렇게도 재빠르게 음탕의 자리로 달려간단
말인가? 저리도 곱고 우아한 왕비의 속이 매춘부의 그것과 무엇아 다르랴 그러나 가슴이
터져도 입을 다물어야 해!'
  이 때 호레이쇼 마셀러스 버나드가 햄릿을 찾아와 간밤의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듣는 
햄릿은 긴장하여 심상치 않게 생각한다.


  "설령 지옥이 입을 벌려 침묵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해도 나는 기어코 그 혼령에게 말을 걸
어 보겠다. 그리고 자네들은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는
말게 나는 혼령이 선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기어코 말을 걸어 보겠다. 오늘 밤엔 나도 
말루에 가 보겠네 비밀을 지키게"
  세 사람은 햄릿에게 맹세를 하였다.
  '아버지의 혼령이 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심상치 않은데! 무슨 흉계가 있나보다. 어서
밤이 됐으면! 그 때까지만 참자 서두르지 말고 온 세상이 덮어 둔다 해도 나쁜 일이란
머리를 쳐들고 사람들 눈앞에 나타나지 말지니' 
  클로디어스 왕의 심복인 폴로니어스에게는 레아티즈와 오필리아 남매가 있었다. 아버지에
비해 레아티즈는 장부답고 오필리아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더구나 오필리아의 끝없이
청초한 미모는 일찍부터 햄릿의 가슴 속에 사랑의 불꽃을 심었다. 레아티즈는 프랑스 유학 도
중 클로디어스 왕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귀국하였다가 다시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햄릿과의 교제는 삼가하라는 충고를 한다.


  "햄릿이 너에게 호의를 표시한다지만 그건 다 한때의 기분이니 조심하여라 방춘 가절의 한 
떨기 꽃이라 오래가지 못하면 향기가 달콤하나 계속되지 못한다. 왕자의 지위니 만큼
지금은 너를 사랑할지 모르지만 그가 누구를 배필로 정하느냐는 덴마크 국민이 정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그의 고백을 너무 귀담아 듣거나 매혹되어서는 안 된다. 알겠니? 오필리아
사랑하는 동생 내 말을 명심하겠지?"
  "오라버니 말씀은 제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잠갔으니 열쇠는 오라버니께서 맡으세요"
  아들을 떠나보낸 폴로니어스도 역시 오필리아에게 햄릿을 조심하라고 훈계했다. 순종과
정숙의 미덕을 간직한 오필리아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려 하면서도
햄릿의 사랑이 결코 허위가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성 위의 망루는 바람이 세고 참을 수 없는 한기가 들었다. 햄릿과 호레이쇼
그리고 마셀러스는 혼령이 나타나기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궁성 안에서는 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주연이 한창이라 밤새 가무의 환성이 그치질 않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 혼령이 나타났다. 햄릿은 무서움도 잊고 혼령을 향해 소리쳤다
  "그대가 천당에서 내려왔건 지옥에서 솟았건 나는 그대를 나의 왕 나의 아버님이라
부르리라 당신을 격식에 따라 땅 속에 묻은 것을 이 눈으로 보았건만 당신은 무엇 때문에
수의를 찢고 나타났습니까? 어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죽어 시체가 된 당신이 또다시 무장을 
하고 그믐달도 어스름한 이 밤을 찾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따라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전하에게 따로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 눈치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따라가야지!"
  "안됩니다. 만일 저것이 전하를 바닷가로 꾀어내든가 무서운 낭떠러지 위로 이끌면 
어쩌겠습니까? 안됩니다"
  호레이쇼는 혼령을 따르려는 햄릿을 잡고 말렸다
  "나의 운명이 나를 부른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전신의 힘줄이 사자처럼 솟아오르는구나!
나를 막는 자는 목을 베어 혼귀로 만들 테다. 썩 물러나라!"
  햄릿은 날쌔게 혼령이 손짓하는 대로 따라갔다
  혼령은 성벽 아래까지 갔다
  "어디까지 가실 작정입니까? 말씀을 하십시오"
  "이제는 내 시간이 거의 다됐다. 다시 지옥의 유황 고열의 업화 속에 시달릴 때가
왔다..."
  "가엾기도 해라..."
  "너는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말고 이제부터 하려는 얘기를 명심하여 반드시 내 원수를
갚아야 하리라. 나는 너의 애비의 혼령이다.만일 네가 죽은 애비를 공경한다면, 인륜을
짓밟은 암살에 대하여 복수할 것을 잊지 말아라" 
  "암살?"
  "그렇다.사람들은 내가 정원에서 낮잠을 자는 동안 독사에게 물려 죽은 줄로 믿고 있는 모
양이니 그것은 거짓말이다.네 애비의 목숨을 빼앗아 간 독사는 지금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
는 바로 그 자니라!"
  "아! 아버님, 저의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군요"
  "그렇다. 그뿐이랴? 그 놈은 왕비의 지조까지 정욕의 노예로 삼았다. 새벽 냄새가 풍겨 오
는 것 같으니 간단히 이야기하겠다. 나는 그 날도 예전과 같이 정원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 네 숙부는 무서운 힘을 가진 독약을 나의 귀에 부었다. 그 독약은 삽시간에
내 육체를 수은이 돌 듯 돌았지 그것은 마치 젖에 초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맑고
고요한 나의 피를 두부처럼 굳게 하니 나의 육체는 문둥이처럼 전신에 종기가 솟았고
보기에도 흉측스런 시체로 변하였다. 이리하여 생명도 왕관도 왕비도 친동생에게 빼앗기고
말았구나 네가 나의 아들이라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게다. 그러나 아들아 네가 어떠한 
수단으로 어머니는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고 가슴 속에 양심의 가책을 받게끔 내버려 두라 
날이 새니 나는 가야 한다. 잘 있거라 부디 이 아비를 잊지 말기를..."

 


  -제2막-


  며칠이 지난 후 폴로니어스의 저택이다
  누구의 입에서 시작되었는지 햄릿 왕자의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는 풍문이 성안에 쫙
퍼졌다
  오필리아는 황망히 아버지의 방문을 밀치며 뛰어들었다
  "아버지! 큰일났어요. 무서워요..."
  아직도 불안에 사로잡혀 초조히 서 있는 오필리아는 방금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방금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노라니까 햄릿 왕자님께서 앞가슴을 풀어 헤치고 모자는 
벗은 채 백지장 같은 얼굴로 제 방으로 들어오시잖겠어요? 그러더니 제 손목을 덥석 잡으시고
는 언제까지나 제 얼굴을 바라보시는 거에요. 왕자님은 긴 한숨을 내쉬었지요..."
  "음... 그거야말로 틀림없는 사랑병이다. 그래 뭐라고 말씀하시더냐?"
  "아니오.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한참을 그 자세로 있으시다. 저의 팔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거리시더니 밖으로 나가셨어요. 저의 얼굴을 보시면서 뒷걸음으로 나가셨읍니다"
  "알았다. 그래서 정신이 이상해진 거야. 이건 지체 말고 왕께 아뢰어야지. 그것은 바로
상사병이라는 것이다. 오필리아 너 요즘 왕자에게 박정하게 한 적은 없었느냐?"
  "아뇨 다만 아버님 분부대로 왕자님이 보내 오신 편지를 돌려 보내고 만나자는 것을
거절 했을 뿐이에요"
  "내가 좀더 주의해서 살펴 볼 것을 ...이 아비는 네 몸을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서 왕자에 대해 지나친 의심을 했구나. 어서 가자. 왕께 이 사실을 아뢰자꾸나"
  폴로니어스의 보고를 들은 왕과 왕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햄릿의 병의 원인이
선왕의 죽음과 자기들의 결혼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의 열병에서라니 일단 안심은 되면서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왕자께서는 이 복도를 몇 시간이고
거니는 습관이 있으십니다. 그 때에 소신의 딸을 왕자와 만나게 하고 폐하께서는 소신과
함께 휘장 뒤에서 두 사람의 언행을 엿보면 사실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때마침 햄릿은 헝클어진 차림새로 책을 읽으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나 햄릿의 발광은 사실이 아니었다. 혼령을 만난 후부터 가슴 속에 자기 대로의
계획과 각오가 자리잡게 되었다. 햄릿은 그것을 남들이 알게 되면 숙부가 그의 복수를
눈치챌 것이 우려돼 일부러 정신병자의 행동으로 가장하였던 것이다. 
  햄릿은 학식이 풍부하며 문예도 능하여 귀족 자제들과 백성들의 우상이었다. 그는 명민한 
머리로 복수를 계획하고 적절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복수의 계획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여 비록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번민은 끊이지 않았다
  햄릿을 위로하기 위해 극단의 연극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햄릿은 상연작품을 햄릿 
자신이 윤색한 "곤자고의 살해"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한 사람도 햄릿의 계획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배우 외에는 그 작품 내용을 미리 눈치채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을 돌려 보낸 다음 햄릿은 복수의 일념에 몸부림쳤다. 
  '아 복수다. 내가 얼이 빠졌어 사랑하는 아버지가 참살 당한 아들이 천지가 원수를
갚으라고 재촉하는데 나는 뭐지? 복수하라는 엄명을 받고도 창부처럼 가슴 속에 말만
늘어놓고 막상 원수를 만나면 입 속에서는 욕설을 중얼거리면서도 매춘부처럼 가랭이를
벌리는 꼴이 참으로 장하다. 아 이게 무슨 꼴인가? 분기하라 살인의 죄는 입이 없어도
스스로 실토하기 마련이라거늘 이제 저 배우들에게 숙부의 앞에서 아버지 살해의 장면과
비슷한 연극을 하게 하리라 그리하여 숙부의 안색을 살펴 그 급소를 찔러 보리라 그래서 
깜짝 놀라면 앞으로 할 일은 뻔하다!'
  햄릿은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제3막-


  궁중의 어떤 방이다
  간악한 클로디어스 왕은 갖은 수단을 써서 햄릿의 광증의 원인을 캐내려고 했으나 뜻대로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은 햄릿이 잘 드나드는 방에서 오필리아와 만나게 하고 그 
현장을 엿보기로 하였다. 왕과 폴로니어스는 오필리아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휘장 뒤로 숨어 
버렸다.


  오필리아는 마음이 아프도록 괴로웠다. 왕자가 자기 때문에 그렇게 변했다면 자기에게도 
왕자를 소생시킬 책임이 있으며 의무가 있다는 들었다. 그리고 자기의 진심을 속이면서까지 
왕자를 대해야 하는 자신이 부질없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햄릿 왕자는 역시 헝클어진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중얼거리고
있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받고 참는
것이 장한 정신인가? 아니면 조수처럼 밀려드는 환난을 두 손으로 막아 그를 없애는 것이
올바른 정신인가? 죽음이란 잠자는 것 그뿐이다. 한 자루의 단도만 있다면 그 자신을 깨끗이
청산할 수 있거늘 압박자의 억울한 짓과 권세가의 무례 멸시받은 사랑의 쓰라림 법률의 태만 
관리들의 오만과 덕있는 사람이 가치없는 자에게서 참고 받아야만 하는 발길질 그 모든 것을 
누가 참겠느냐?"
  햄릿은 경건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오필리아를 보자 미친 사람처럼 다가갔다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도 버려야 한다.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인가?
  "오필리아! 그대는 정절한가?"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름답고 정숙한 여인이여 아름다움은 당신이 타락할 수 있는 표시.
조심하시오, 여인이라면. 나는 한때 그대를 사랑했지"
  "저도 그렇게 믿었죠"
  "당신은 나를 믿지 않았어야 했소. 무엇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과 함께 죄인들을 더
만들어 내려는 게요. 나는 꽤 복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나 차라리 어머니가 
나를 낳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할 만큼 가지가지의 죄를 생각하고 있소. 나는 오만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야심이 많은 인간이라 나의 머릿속에 사상의 옷을 입히고 형체를 입히고 
숱한 죄악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소. 나같이 못된 인간이 벌레처럼 기어다니며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이오. 모두 모두 다 극악하기만 한 존재들이오. 사람이란 그렇소. 수녀원으로
가시오. 왜 사내와 사귀어 죄 많은 인간을 낳겠다는 거요! 아무도 믿지 말고 어서
수녀원으로 가시오. 아버지는 어디 있지?" 
  "집에요"
  "그럼 문 밖에서 어릿광대 노릇을 그만두라고 하시오. 집 안에 박혀 있으라고 하란 말이야 
잘 있어요"
  "하느님 이분을 보호해 주옵소서!"
  "만약 결혼하려거든 바보와 하시오! 영리한 사람들이 당신과 결혼하면 머리에서 뿔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자 어서 수도원으로 가요. 잘 있어요"
  햄릿은 사라져 버렸다. 혼자 남게 된 오필리아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아아 그토록 고귀하던 분이 어쩌다 저 꼴이 되었는가? 궁중의 안목이요, 학자의
달변이요, 군인의 검이요, 국민의 기대요, 나라의 꽃이시던 높으신 정신이 마침내
땅에 떨어지고 말았구나. 기약의 꿀만 빨아먹고 살아 온 나는 지금 모든 여성
중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었어. 아름답게 울리는 종소리처럼 거룩하고
장하신 이상의 조화는 간 곳 없구나 아아 몹쓸 내 팔자 옛날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아련한데 지금 이 꼴을 보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오필리아는 비통을 참지 못하여 흐느껴 울었다.


  햄릿과 오필리아의 만남을 몰래 엿듣고 있던 클로디어스 왕은 햄릿이 사랑으로 인해
미쳤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미친 행동 속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진실이
느껴지자 왕은 오히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덴마크에 조공을 바쳐 오던
잉글랜드로 햄릿을 사절로 파견하기로 하였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색다른 환경에서 기분 
전환 겸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햄릿을 추방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그 날 밤, 궁성 안에서는 연극 공연의 준비에 분주하였다. 햄릿은 직접 배우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연극을 지도할 때 햄릿은 생기가 있었고 열성적이었다. 햄릿의 절친한 친구이자
부관인 호레이쇼에게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숙부의 표정의 변화를 살피라고 하며 햄릿은
복수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마침내 왕과 왕비를 위시한 문무 백관이 장내에 모여들었다. 햄릿은 오필리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희롱한다. 
  "무릎 사이에 들어가도 될까?"
  "아이 참 왕자님도..."
  "아니 무릎을 좀 베자는 거야"
  "그건 괜찮아요 "
  "내가 무슨 상스러운 짓이라도 할 줄 알았어?"
  "오늘 밤은 퍽 쾌활하시네요"
  "천만에 저기 앉으신 우리 어머니의 희색 만면한 모습을 보시오.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두 시간도 못 되는데!"
  "아니에요. 두 달의 갑절은 되어요"
  "벌써 그렇게? 그렇다면 이제 나는 상복을 악마에게 물려 주고 수달의 털가죽옷이라도
입어야겠군!"
  "드디어 연극의 막이 오른다
  연극은 무언극으로 시작한다. 햄릿은 왕과 왕비의 표정을 훔쳐 본다. 다음, 극중의 왕과
왕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는 왕 왕과 왕비에게 자신에 대한 변심을
우려하자 왕비가 말한다. 
  "당치도 않을 말씀을... 이 몸이 재가할 바엔 차라리 지옥으로 가지요. 전 남편을
죽인 여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두 번 째 남편을 맞이할 수 있으리오? 두 번째 남편이
침실에서 저에게 입을 맞출 때는 저는 전 남편을 두 번씩이나 죽인 셈인 됩니다"
  이 대사는 햄릿이 삽입한 것이었다. 극이 진전됨에 따라 왕비의 얼굴엔 동요의 빛이
지나갔음을 햄릿은 놓치지 않았다. 극은 바야흐로 절정에 달하여 조카가 왕의귀에
독얀을 부어 넣었다. 이 때 햄릿이 말하였다. 


  "저 놈은 왕위를 빼앗으려고 정원에서 왕을 독살하는 거야. 저자는 머지않아 곤자고의
왕비를 농락할 것이다!" 
  이 말이 장내에 울려 퍼지자 클로디어스 왕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났다. 폴로니어스는
연극을 중지하라고 고함을 친다. 왕은 몸이 좋지 않다는 구실로 왕비와 궁성 안으로
들어가자 장내는 수라장이 되었다.


  햄릿은 혼령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확인했다. 햄릿은 앞으로의 복수에 대해 한층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 폴로니어스가 황급히 나타났다
  "전하 왕비께서 드옵시라는 분부입니다"
  한편 자기 방에 돌아온 클로니어스 왕은 분노와 공포를 억제하지 못하여 햄릿을
잉글랜드로 추방하라고 신하들에게 호령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신하에겐 잉글랜드
왕에게 보낼 서신을 주고 내일이라도 즉시 출발하라고 명령하였다. 
  신하들이 물러가고 혼자 남게 된 왕은 참회와 침울한 심정으로 괴로워했다
  "아, 나의 몹쓸 죄상! 그 악취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기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심정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죄의 결과를 지니고 있으면서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아! 처참한 신세로고... 나의 가슴은 죽음처럼 시꺼멓구나 천사들이여 나를 도와
주소서! 힘을 주소서!" 
  비로소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듯 왕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어머니
방으로 건너가려던 햄릿은 왕의 뒷모습을 발견하자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 단도를 손에 쥐어
한 발 두 발 가까이 갔다. 
  '기회는 바로 이때다. 지금은 손쉽게 해치울 수 있어 하지만 저렇게 기도하는 순간에
죽는다면 숙부는 천당으로 갈 것이니 그것은 복수가 될 수 없다. 칼이여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리자'
  들었던 칼을 다시 칼집에 넣고서 햄릿은 어머니의 거실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햄릿을 본 왕비는 엄격한 어조로 아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햄릿 그대는 아버님께 매우 불손했다"
  "어머니는 저의 아버님께 매우 불손하셨소"
  "너는 제 어미도 몰라보는구나?"
  "천만에요. 당신은 왕비이며 당신 남편 동생의 아내이십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나의
어머니이시죠?"
  "대체 이 어미가 어떻게 했기에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냐? 정 그렇다면 누구를
부를 테다" 
  공포와 분노를 떨며 왕비가 일어나려 하자 햄릿은 재빠르게 왕비의 손을 끌어
당겨 자리에 앉혔다. 
  "꼼짝 말고 계세요. 그 마음 속을 거울에 환히 비춰 보일 테니. 그 때까지 못
나가십니다"
  "나를 어쩌자는 거냐? 나를 죽이려는 게로구나? 사람 살려라! 사람 살려!"
  왕비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자 휘장이 흔들리며 인기척이 들려 왔다. 
  "이건 또 뭐냐? 쥐새끼냐? 죽어라 죽어!"
  햄릿은 칼을 빼들고 휘장 안을 찔렀다. 그 때까지 햄릿은 휘장 뒤에 숨은 자는 왕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진 것은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였다
  "햄릿! 이 무슨 잔인한 짓이냐!"
  "잔인한 짓? 그렇죠 어머니 왕을 죽이고 그 왕의 아우와 사는 것은 참혹하고 잔인한
짓이 아니겠지요"
  왕비는 부들부들 떨며 잠시 동안 굳어 있었다. 햄릿은 어머니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투로 화살을 쏘았다. 악몽에서 깨어나는 듯 왕비는 자책과 참회의 눈물로 하염없이 흘렸다
  바로 그 때 선왕의 혼령이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오! 하늘의 수호신이시여! 이 몸을 지켜 주소서 이 곳까지 이렇게 나타나심은 무슨
이유이십니까? 혹시 불초 자식이 때를 놓치어 복수를 소홀히 할까보아 꾸짖으러
오셨습니까?"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번에 찾아온 것은 네 결심의 칼날이 무디어질까 두려워
재촉하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보아라. 네 어머니는 정신이 산란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구나 네 어머니를 도와 주어라 심약한 처지에는 같은 말도 크게 울리는 것이니 자 말을 
주어라"
  그러나 왕비는 이 혼령과의 대화를 듣지 못한다. 왕비는 햄릿이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도대체 그렇게 허공을 응시하고 누구에게 말하는 거냐?"
  "안 보이세요? 저기..."
  "아무 것도 무엇이 있단 말이냐?"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까?"
  "우리들의 말소리 밖에는"
  "앗! 저기를 보십시오. 아버님이 사라져 갑니다. 살아 계셨을 때와 똑같은 차림으로 이제 
문을 열고... 아!"
  왕비는 햄릿이 이제는 구원받을 수 없는 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으로 슬퍼하였다. 

  -제4막-


  클로디어스 왕은 햄릿을 한시 바삐 잉글랜드로 추방하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고 믿어
이튿날 아침 배에 태워 출발시켰다. 폴로니어스의 시체는 아무도 모르게 매장해 버렸다
  그러나 가엾은 희생자가 나타났다. 오필리아가 미치고 만 것이었다. 오필리아에게는
하늘같이 자비로운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죽었으니 그것이 오필리아를 미치게 하였던 것이다
솜털처럼 보드랍고 샛별처럼 맑은 처녀의 마음은 너무나도 크고 처참한 충격에 미쳐 버렸다. 
그토록 아름답고 우아했던 오필리아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궁성 안을 이리저리 방황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애절한 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아티즈가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급보를 받고
프랑스에서 돌아왔다. 성격이 곧고 정의감이 강한 레아티즈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그대로 둘 까닭이 없으리라 
  젊은 레아티즈가 폭도들을 거느리고 성문을 부수며 쳐들어온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마침내 레아티즈는 클로디어스 앞에 나섰다. 혈기에만 맡긴다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만큼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왕비는 조용하기는 하나 위엄 있게 말하였다
  "레아티즈 좀 진정하라"
  "진정할 수 있는 피가 제 몸에 있다면 그것은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것이오. 저의 아버지는 어디 있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게 된 연유가 무엇이냐 말이오? 저를 속일 수는 없소.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버님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소!"
  "이 사람아 자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확실한 사정을 알고 싶다면 가르쳐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친구와 원수를 분간하지 못하면서 정작 원수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때 오필리아가 노래를 부르며 나타나자 레아티즈의 심장은 찢어질 듯하였다
  "아, 이 가슴의 불꽃이여! 나의 뇌수를 태워 없애다오. 눈물이 피가 되어 앞도 못 보게
해다오. 나는 기어코 너를 미치게 한 원수를 갚고야 말 테다. 오 아름다운 오필리아!
5월의 장미 귀여운 내 동생! 인간이란 사랑의 극치에 달할 때 사랑하는 어버이를 쫓아 그
귀중한 정성을 사랑의 표적으로 떠나보낸단 말인가!"
  그러나 오필리아는 오빠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다시는 오시지 못할 것인가?
  어찌 돌아오리오, 한 번 가신 몸
  차라리 이내 몸을 버릴까 보다

  백설 같은 흰 수염, 삼베 머리에
  이제는 영영 가고 못 오실 사람 
  탄식이 무슨 소용, 도리 없구나
  저승에서 부디부디 잘 계시옵소서"

  오필리아는 노래를 부르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레아티즈는 그것을 보자 한층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왕은 레아티즈에게 그 복수를 위해 조력을 하겠으니 자기를 따르라고 말하며
레아티즈를 데리고 갔다.


  잉글랜드로 떠난 햄릿은 클로디어스 왕이 잉글랜드 왕에게 보내는 서신을 몰래 뜯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끔직한 사연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햄릿 왕자가 잉글랜드에 상륙하는 
즉시 사형에 처하라는 것이었다. 햄릿은 편지의 사연을 자기를 따라간 두 사람의 부하를
처형하라는 내용으로 고쳤다
  이리하여 죽음을 면한 햄릿 앞에 또 하나의 장애가 나타났다. 햄릿은 해적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된 것이다. 해적들은 햄릿이 덴마크의 왕자임을 알게 되자 그를 인질로 많은 보상금을 
타먹기 위해 극진히 대우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을 시켜 덴마크 왕 앞으로 햄릿의 사연을
편지로 보냈다. 햄릿이 무사히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자 간악한 클로디어스 왕은 모든 책임을 
햄릿에게 돌려 버리기 위한 계략을 꾸몄다.


  햄릿과 레아티즈는 검술에 탁월한 무사들이었다. 왕은 햄릿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두
사람이 결투를 하도록 음모를 꾸몄다. 레아티즈가 차지할 칼끝에는 독약을 칠하여 조금만
상처를 입어도 삽시간에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햄릿을 없애 버리기
위해 레아티즈의 힘을 빌리되 국민들의 의아심을 잠재우기 위한 간계였던 것이다. 
  "좀 더 생각을 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의 계획이 서툴러 탄로 나면 안 되니까 만일의
경우를 위해 다음 방법을 준비해야지"
  "어떻게요?"
  "두 사람은 정식으로 내기를 하고... 옳지! 좋은 수가 있지. 두 사람이 결투를 하면 
목이 마르게 될 거야. 그럴 때 그 자는 물을 청할 테니까 그 때 미리 준비해 둔 독을 탄
술잔을 내 주면 된단 말이야. 결투에서 칼을 모면했다 할지라도 그 술 한 모금만 마시면
만사는 뜻대로 이루어지는 거지"
  이렇게 두 사람이 모의를 하고 있을 때 왕비가 뛰어들어 왔다
  "재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드는군요. 레아티즈! 그대의 동생이 물에 빠져
죽었어요!"
  "오필리아가? 어디서요?"
  "개울가에 비스듬히 누운 버드나뭇가에서 오필리아는 그 가지에다 미나리아재비와
딸기풀과 실국화를 꺾어서 꽃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꽃 목걸이를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나뭇가지가 꺾이면서 그만 시냇물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꽃송이처럼 활짝 핀 치맛자락은 물 위에 수를 놓은 듯 오필리아를 싣고서 흘러
가더니 마침내 거센 물결이 삼켜 버렸다는군요"
  여동생의 최후를 듣고 난 레아티즈는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불쌍한 누이여!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 그러나 하염없이 솟구치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구나. 비웃을 놈은 비웃어라. 실컷 울고 나면 여자같이 약한 마음도 가실테지... 
전하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이 마음 어리석은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복받쳐 오르는 눈물에 말끝을 맺지 못하는 레아티즈는 쏟살같이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5막-


  냉기와 이상한 기운이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묘지였다. 두 사람의 어릿광대가 또
하나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하여 무덤을 파고 있었다.
  덴마크에 돌아온 햄릿은 이 묘지를 지나가고 있었다. 땅 속에서 파낸 해골이
햄릿의 발 앞에 떨어지자 햄릿은 무심코 해골을 주워 바라보았다
  "이 해골도 한때는 혀가 박혀 있어 노래를 불렀을 테지. 살인의 원조인 카인은 형을
죽이는 데 말의 턱뼈를 썼다지만 이건 그 턱뼈나 되는 것처럼 마구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군 
지금 저 바보가 삽으로 파 올리는 해골도 그 옛날엔 어떤 지도자의 지혜를 돕는 사람의
해골이었는지도 모를 텐데!"
  옆에 서 있던 호레이쇼는 햄릿의 넋두리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구더기 마나님 신세를 지게 되고 참으로 기가 막힌 변화로구나.
우리가 볼 줄 아는 눈만 있다면 더 재미있는 것을... 기를 때에는 많은 공을
들였건만 이제는 노리개가 되고 말았으니 생각하면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구나!"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며 무덤을 파고 있는 광대에게 햄릿은 물었다
  "어느 사내의 무덤이냐?"
  "사내 것이 아니오"
  "그럼 여자 것이냐?"
  "여자도 아닙죠 살아서는 여자였지만 가엾게도 지금은 죽은 사람입죠"
  "그놈 참 까다롭기도 하지... 그래 너는 언제부터 무덤을 파서 살아 왔느냐?"
  "햄릿 왕자님이 세상에 나시던 날부터죠 그분도 지금은 미쳐서 잉글랜드
땅으로 쫓겨 갔지만..."
  햄릿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가 쑥스러워서 시치미를 떼고 말을 계속하였다
  "왕자는 왜 미치게 됐나?"
  "풍문에 들은 즉 그게 이상하다는 뎁죠"
  "어떻게?"
  "글쎄 정신이 돌았으니까 그렇습죠"
  "사람은 무덤 속에서 몇 해면 썩지?"
  "글쎄올시다. 가죽을 다루는 갖바치는 9년 갑니다만..."
  "그건 또 왜?"
  "그야 장사가 장사니 만큼 살가죽이 무두질이 되어서 오래 갑죠"
  이 때 저만치 숲 사이로 장례식에 오르는 행렬이 보였다. 햄릿은 호레이쇼를 재촉하여
나무 그늘에 숨어 엿보았다
  그 행렬 속에는 왕 왕비 그리고 레아티즈도 함께 있었다. 그것은 오필리아의
장례식이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레아티즈는 사제에게 보다 정중한 장례식을 요구하여 
관은 땅 속에 묻히게 되었다
  레아티즈는 슬픈 소리로 곡하였다. 나무 그늘에서 듣고 있던 햄릿도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왕비도 꽃을 관 위에 뿌리면서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처녀에게는 아름다운 꽃을... 잘 가거라. 햄릿과 백년 해로하기를
바랐건만... 이 꽃을 너의 성스러운 결혼식 자리에 뿌려 줄 날을 기다렸건만
이렇게 너의 무덤에 뿌릴 줄이야..."
  참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끓여 오는 격정을 억제하던 레아티즈는 사랑하는
여동생과 함께 묻어 달라고 외치며 무덤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넋을 잃고 서 있던 햄릿은 이 광경을 보자 다음 순간 미칠 듯이 오필리아의
무덤 속으로 뛰어갔다. 햄릿을 발견한 레아티즈는 햄릿에게 욕을 퍼부어대며 덤벼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격투가 벌어졌다
  "왕자님 진정하십시오!"
  호레이쇼는 햄릿을 뜯어말렸다
  "나는 오필리아를 사랑해 왔다. 수 만명의 오라버니의 사랑을 다 끌어 모아
보아라! 감히 따라올 것 같으냐! 오필리아를 위해 대체 뭘 하겠다는 거냐"
  레아티즈가 다시 덤벼들려 하자, 이 때 왕은 정신 이상이 생긴 햄릿을 상대하지 말라고
말렸다. 그리고 어제 이야기한 것을 명심하고 잠시 참으라고 타일렀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잉글랜드에서 다시 살아나올 때까지의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으로 사건의 전모를 듣고 있던 호레이쇼도 새삼스럽게 왕의 흉계를 알았다는 듯이
분함과 의기에 몸을 떨었다
  이 때 클로디어스 왕의 종인 오스릭이 햄릿을 찾아와 왕의 분부를 전했다
  "왕자님, 마침 레아티즈께서 귀국하셨는데, 검술이 뛰어나다고 하시고 인품이
온유하시어 문자 그대로 완전한 신사이시어 만인이 경모할 분이라 하옵니다"
  "그래서 어떻단 말이냐?"
  "전하께서 왕자님과 레아티즈가 12회에 걸친 시합을 하라시는 명이십니다. 그래서 
석 점은 놔주고 나머지 아홉 점으로 결승하는 데 전하께서는 왕자님이 다섯 점 득점으로
결국 이길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응답해 주신다면 곧 시합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싫다고 한다면?"
  "아닙니다. 시합장에서 직접 응답하시랍니다"
  "처분대로 하시오. 전하와 레아티즈가 모두 원한다면 칼을 가져오게 하라. 되도록이면
폐하를 위해 이기고 싶지만 시합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 소득은 망신과 놓아 주는
석 점 뿐이겠지!"
  "그럼 전하께 바로 그대로 아뢰겠습니다"
  검술 시합은 궁성 안 넓은 마루에서 시작되었다. 장내에는 문무 백관이 꽉 들어찼고 왕과 
왕비도 나와 있었다. 
  호레이쇼는 끝까지 햄릿에게 이 시합을 만류하였다
  "왕자님 조금이라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면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소인이 가서..."
  "나는 예감 같은 것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겠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늘의 
섭리가 있는 법. 죽음이 이제 오면 장래에는 아니 올 터이고, 장래에 아니 오면 이제
올 터이고, 평소의 각오가 제일이야. 어차피 우리가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갖고 가지 못하는 
이상 젊어서 죽는다고 슬퍼할 거야 있나? 만사는 될대로 되는 거지!"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왕은 햄릿을 가까이 오게 하여 레아티즈와 서로 손을 쥐어 주었다
  햄릿은 레아티즈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하였다.


  "레아티즈 용서하게. 요전에는 실례가 많았었네. 그러나 레아티즈에게 폭언한 것은 결코 
햄릿이 한 짓은 아니었네. 그럼 누가 했을까? 그것은 나의 광증이 했네. 내가 고의로 한
짓이 아니었음을 이 대중 가운데서 맹세하네. 그리고 내가 한 짓은 마치 내 집 지붕을 향해 
쏜 화살이 내 형제를 맞춘 격이라고 너그럽게 생각하게"
  "그 말씀을 듣자니 저의 마음도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명예에 한해서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전하의 우정은 우정으로 간직할 뿐 절대 타협할 수 없습니다"
  "좋아. 그럼 형제 사이처럼 이 시합을 깨끗이 겨루어 보자. 칼을 다오"
  네댓 자루의 칼이 나왔다
  햄릿은 별 생각없이 한 자루의 칼을 집어 들었다. 레아티즈는 이것저것 고르던 끝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칼을 재빠르게 들었다
  우렁찬 나팔 소리가 성안과 성밖에 울려 퍼지며 시합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시합은 햄릿이 이겼다. 왕은 독을 탄 포도주를 햄릿에게 권하였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햄릿의 칼 솜씨를 칭찬하며 어서 포도주를 마시라고 하자 햄릿은 술잔을 그대로
탁자 위에 놓고는 시합을 계속하였다. 
  시합은 차츰 절정으로 접어들었고 햄릿의 이마에는 땀이 비오듯 하였다.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던 왕비는 손수건을 햄릿에게 주며 땀을 씻으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갈증이 심해지자 
햄릿이 마시려다 놓은 술잔을 무심코 들었다
  이 광경을 본 클로디어스 왕은 깜짝 놀라 마시지 말라고 말렸으나 이미 술은 왕비의
입 안에서 목구멍으로 흘러내릴 때였다
  왕은 극도로 당황하여 혼란에 빠졌다. 시합은 세 번째로 접어들었다. 햄릿이 피로를
풀기 위해 잠깐 쉬는 순간 레아티즈는 그 틈에 햄릿에게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 상대방의
비겁한 처사에 격분한 햄릿은 레아티즈와 맞잡고 엎치락거리다가 두 사람은 칼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주은 칼은 바뀌어진 채로 두 사람의 손에 쥐어졌다
  바로 이 때 왕비는 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한 듯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것은 햄릿의 
칼끝이 레아티즈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햄릿도 상처를 입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침내 왕비는 바닥에 쓰러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아. 이 술에는 독약이 들어 있어! 독약이!"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햄릿이었다
  "음모다! 문을 잠가라! 역적이다! 범인을 찾아내라!"
  신하들은 사방 문을 지켜 섰다. 그러자 레아티즈는 가빠지는 숨결을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왕자님 역적은 이 안에 있소이다. 왕자도 이제 죽을 것입니다. 어떠한 약을 써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반 시간 안에... 칼끝에 칠한 독약이 전신에 돌고
있으니까... 저는 제 함정에 빠졌습니다. 모두가 저 왕이 꾸민 짓이오. 왕비 전하께서도 
독을..."
  "천하에 둘도 없는 살인 강간자! 너도 독맛을 보아라!"
  햄릿은 불타오르는 분노로 독 묻은 칼로 왕의 가슴을 찔렀다
  왕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햄릿은 술잔에 남아 있는 독주를 왕의 입에
부어 넣었다
  숨이 꺼져가는 레아티즈는 햄릿에게 말했다
  "왕자님 서로의 죄를 용서합시다. 저와 저의 아버지의 죽음도 당신 탓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당신의 죽음도 이 놈의 탓이 아니기를 바라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레아티즈는 숨을 거두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햄릿뿐이었다. 그러나 그도 30분 후면 죽어야 할 운명이다
  "레아티즈 그대를 하늘도 용서할 걸세. 호레이쇼, 이제는 나도 다 살았다. 가엾은 어머니 
잘 가시오! 하고 싶은 말은 적지 않지만 죽음이 나를 재촉하니 도리가 없군. 호레이쇼
자네만은 살아야 하네. 살아서 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일의 시비를 잘 가려
주게나"
  "왕자님 몸은 비록 덴마크서 태어났지만 정신은 옛 로마 사람과 다를 바 없구나.
내가 지금 살아 무엇하리. 마침 독주가 남아 있군"
  "장부답지 못한 노릇! 그 잔을 이리 주게. 자손을 두어 내게 어떤 누명이 남을지도
모를 일. 그러니 자네가 나를 아껴 준다면 잠시 하늘의 은혜를 멀리하더라도 이 욕된 세상에 
남아 괴로움을 참고 햄릿의 이야기를 전해 주게"
  마침내 햄릿은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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