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항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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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함부르크에서 런던으로 항해했다. 승객은 둘이었다.
나와 그리고 조그만 원숭이로, 그 원숭이는 함부르크의 장사치가 영국인 친구에게
선물로 부친 비단원숭이 종류의 암컷이었다.


원숭이는 갑판 위의 벤치 가운데 하나에 가느다란 쇠사슬로 매어져
몸부림치며 애처롭게 캑캑 울고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매양 원숭이는 나에게로 그 검고 차디찬 손을 내밀고
우울한, 흡사 사람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자 원숭이는 캑캑 울고 몸부림치고 하기를 그쳤다.
아주 잔잔한 항해였다.


바다는 둥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남빛의 책상보처럼 펼쳐져 있었다.
길게 그리고 원숭이의 울음소리 못지않게 애처로이 식당의 조그만 종이 울렸다.
이따금 바다 표범이 떠올랐다가가는 갑자기 곤두박질을 하여 출렁거릴 듯 말 듯한
미끄러운 해면 밑으로 사라지곤 했다.


말수가 적고 햇볕에 그은 어두운 얼굴의 사내인 선장은 짤따란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노엽게 응결한 듯한 바다에다 침을 뱉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물어도 그는 더듬더듬 볼멘 소리로 대꾸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내 유일한 동행자인 원숭이한테도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원숭이 옆에 앉았다. 원숭이는 캑캑하고 울기를 멎고 또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개가 자욱이 끼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축축한 습기가 우리 둘을 졸리게 했다.


우리들은 똑같이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우리들은 서로 피를 나눈 사이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지금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그때 나의 가슴 속에는 다른 감정이 일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한 어머니의 아들들인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가련한 짐승이 그처럼
쉽사리 믿고 얌전해져 피를 나눈 일가붙이에게라도
대하듯이 나에게 기대고 있었던 것이 아주 기쁘게 느껴졌던 것이다.

 

L. N.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인생독본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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