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閑情)- 김용범
by 송화은율한정(閑情) - 김용범
작가 : 김용범(1954- )
서울 출생. 한양대 국문과․동대학원 졸업. 1974년 『심상』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문예진흥원 문화발전연구소 부장.
비약이 심한 상상력과 차갑고 예리한 감각으로 현대인의 꿈과 갈등을 분석하는 독특한 이미지즘을 창출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겨울의 꿈』(고려원, 1980), 『잠언집』(민족문학사, 1983), 『비옷을 입은 천사』(열음사, 1986), 『겨울비와 나무』(1989), 『평화만들기』(문학 아카데미, 1989),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고려원, 1992) 등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시인은 짤막한 옛날 이야기로 시의 문을 연다. 주인공은 어떤 `한아(閑雅)한 선비' 곧 `아름다운 옛 시인'이다. 그는 갈대의 흰 술로 이불을 만들어 덮고, 들꽃을 말려 베개를 만들어 베는 사람이다. 그 너그럽고 아름다운, 시를 짓는 선비는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을 거두어 의미 있게 쓰는 사람의 상징이다. 시인은 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행했던 아름다운 일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풍자하고자 한다.
이제 남은 시행에서 현재의 모든 것들은 헛되이 떠돌 뿐이다. 가을은 변함없이 찾아오건만 살아 있던 것들의 뜻을 기억해 소중히 제 자리를 찾아주는 이는 이미 세상에 없는 것이다. 오늘의 갈대와 들꽃은 그들의 `희디흰 육신'을 아무렇게나 떠돌게 하고 한 구석에서 쓸쓸히 쌓여갈 뿐이다. 이제 그들은 아름다운 시인의 이불과 베개가 되지 못한다. 시인은 결구에 이르러 아무에게도 의미 있는 무엇이 되지 못하는 오늘의 갈대와 들꽃의 존재를 시인인 자신의 처지에 비유한다. `육신을 버리고 절망하면서도 단 한 사람의 영혼도 맑게 해주지 못하는 내 시 한 편의 막막한 분산'이라는 마지막의 구절에서 시인이 의도하는 이 시의 주제는 자명하다. 그래서 결국 오늘의 세상에 대한 풍자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향한 것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어떤가. 그는 헛됨과 아쉬움에 함몰되지 않고, 남을 위해 `육신을 버리고 절망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시인은 `단 한 사람의 영혼도 맑게 해 주지 못'함을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시가 다른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해주어야 한다는 포부를 놓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의 시는 오랜 꿈을 이룰 날이 있을 것이다. [해설: 이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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