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한용운 시집113 / 의심하지 마셔요

by 송화은율
반응형

의심하지 마셔요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과 떨어져 있는 나에게 조금도 의심을 두지 마셔요. 

의심을 둔대야 나에게는 별로 관계가 없으나 부질없이 당신에게 고통의 숫자만 더할 뿐입니다. 

나는 당신의 첫사랑의 팔에 안길 때에 온갖 거짓의 옷을 다 벗고 세상에 나온 그대로의 발가벗은 몸을 당신앞에 놓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신의 앞에는 그 대에 놓아 둔 몸을 그대로 받들고 있습니다. 

만일 인위(人爲)가 있다면 <어찌 하여야 처음 마음을 변치 않고 끝끝내 거짓 없는 몸을 님에게 바칠꼬>하는 마음 뿐입니다. 

당신의 명령이라면 생명의 옷까지도 벗겠습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의 <슬픔>입니다. 

당신이 가실 때에 나의 입술에 수없이 입맞추고「부디 나에게 대하여 슬퍼하지 말고 잘 있으라」고 한 당신의 간절한 부탁에 위반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용서하여 주셔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슬픔은 곧 나의 생명인 까닭입니다. 

만일 용서하지 아니하면 후일에 그에 대한 벌(罰)을 풍우(風雨)의 봄 새벽의 낙화(落花)의 수(數)만치라도 받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동아줄에 휘감기는 체형(體型)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혹법(酷法) 아래에 일반 가지로 복종하는 자유형(自由刑)도 받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의심을 두시면 당신의 의심의 허물과 나의 슬픔의 죄를 맞비기고 말겠습니다. 

당신에게 떨어져 있는 나에게 의심을 두지 마셔요. 부질없이 당신에게 고통의 숫자를 더하지 마셔요.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