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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시집102 / 버리지 아니하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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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아니하면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 자다가 깨고 자다가 깨다가 잘 때에, 

외로운 등잔불은 각근(恪勤)한 파수꾼처럼 온 밤을 지킵니다.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는 일생의 등잔불이 되어서 

당신의 백년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여러가지 글을 볼 때에, 내가 요구만 하면, 

글을 좋은 이야기도 하고, 맑은 노래도 부르고, 엄숙한 교훈도 줍니다.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는 복종의 백과 전서가 되어서 당신의 요구를 수응하겠습니다. 

나는 거울에 대하여 당신의 키스를 기다리는 입술을 볼 때에, 속임이 없는 거울은 내가 웃으면 거울도 웃고, 내가 찡그리면 거울도 찡그립니다.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는 마음의 거울이 되어서, 

속임없는 당신의 고락을 같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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