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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아 셰 한숨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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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아 셰 한숨아

 

한숨아 세(가느다란) 한숨아, 네 어느 틈으로 들어오느냐?

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이상 문의 종류) 암돌쩌귀,

숫돌쩌귀,(문 다는데 필요한 도구들) 배목걸새(문고리 거는 쇠) 뚝딱 박고, 크나큰 자물쇠로 깊숙이 채웠는데, 병풍처럼 덜컥 접고

족자처럼 데굴데굴 마느냐? 네 어느 틈으로 들어오느냐?

어찌된 일인지 네가 오는 날이면 잠을 들지 못하는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미상

갈래 : 사설시조

성격 : 수심가(愁心歌), 해학적(諧謔的)

제재 : 시름, 한숨

주제 : 그칠 줄 모르는 삶의 시름으로 인한 고뇌 / 삶의 시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

표현 : 열거법, 의문법, 무형(한숨)의 대상을 유형적인(너로 의인화) 것으로 인식하여 표현한 것으로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한 것임

출전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내용 연구

 

한숨아 세(가느다란) 한숨아, 네[한숨을 의인화하여 표현] 어느 틈으로 들어오느냐?

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이상 문의 종류) 암돌쩌귀,

숫돌쩌귀,(문을 다는데 필요한 각종 장치와 도구들) 배목걸새(문고리 거는 쇠) 뚝딱 박고, 크나큰 자물쇠로 깊숙이 채웠는데[문을 단속하는 상황을 야단스럽고 장황하게 서술함 - 해학적 표현], 병풍처럼 덜컥 접고

족자처럼 데굴데굴 마느냐? 네 어느 틈으로 들어오느냐?[비슷한 구절의 반복을 통해 주제를 강조함 / 삶의 고뇌에서 오는 '한숨'을 의인화하여 한숨이라는 대상과 대화하는 듯이 표현한 발상이 참신하며, 또한 의문문을 사용하여 표현한 기교가 돋보인다]

어인인 일진(어찌된 일인지) 네가 오는 날이면 잠을 들지 못하는구나.[한숨을 쉬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 / 전전반측]

 

낫바 : 나빠. '싫어', '미워서'의 뜻

벽 : 부엌

고모장지, - 어느 틈으로 들어오느냐? : 삶의 고뇌에서 오는 '한숨'을 의인화하여 한숨이라는 대상과 대화하는 듯이 표현한 발상이 참신하며, 또한 의문문을 사용하여 표현한 기교가 돋보인다.

이해와 감상

 

이 시조는 '그칠 줄 모르는 시름'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해학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슬픔을 웃음으로 해소하는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철저한 문단속에도 불구하고 한숨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는 표현을 통해 삶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자의 심리적 고뇌를 한숨으로 구체화하고, 다시 그 한숨을 의인화하여 대화하는 형식으로 풀어가는 표현 수법이 매우 참신한 인상을 준다. 특히 중장에서는 화자의 삶의 고뇌를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민중 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끊임없는 당쟁과 외세의 침범 등 어지럽고 혼란한 현실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최일선에서 짊어지면서 고달픈 삶을 살아야만 했던 조선 후기 민중들의 삶의 고뇌가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를 '크나큰 자물쇠로 깊숙이 채웠는데'라는 표현 속에서 엿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현실적 고난에도 체념하지 않고, 시름을 막아 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시름에 잠길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을 웃음으로 극복하려는 민중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심화 자료

사설시조에 대하여

 

산문 정신과 서민 의식을 배경으로 탄생한 사설시조는 시조가 지닌 3장체의 형태적 특성을 살리면서 낡은 허울을 깨뜨리는 데 공헌했다. 지난 날의 영탄이나 서경의 경지를 완전히 탈피하여, 폭로적인 묘사와 상징적인 암유(暗喩)로써 그 표현 기교를 바꾸어서 애정, 거래(去來), 수탈, 패륜(悖倫), 육감(肉感)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면서 지난 시대의 충의에 집착되 주제를 뒤덮었다.

형식면에서는

① 사설조로 길어지고,

② 가사투, 민요풍이 혼입(混入)하며,

③ 대화가 많이 쓰이고,

④ 새로운 종장 문구(文句)를 개척하였다.

내용면에서는

① 구체적, 서민적인 소재와 비유가 도입되고,

② 강렬한 애정과 육욕(肉慾)이 표현되며,

③ 어희(語戱), 재담(才談), 욕설이 삽입되고,

④ 거리낌없는 자기 폭로, 사회 비판 등이 다루어졌다.

사설시조의 작자층

 

사설시조는 그 형식이나 주제는 물론이고, 작자층에서도 평시조와 구별된다. 평시조의 작자층이 양반 사대부 중심이었던 데 비해, 사설시조는 가객들을 비롯한 중간층 부류의 작자들이 지은 작품이 많으며, 그 내용이나 어법상 서민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어지고 향유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도 여러 편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대부들이 주로 즐긴 평시조의 세계에 비하여 시정(市井)의 현실적 삶을 주로 표현했다.

또 골계미와 해학미를 통하여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으며, 시정(市井) 생활의 건강함과 발랄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양반 사대부들 또한 사설시조 창작에 나서서, 현전하는 사설시조 가운데는 작자가 사대부로 명시된 작품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 시적 화자가 여성으로 설정된 작품이 꽤 많다는 것도 주목되는 점이다. 그러나 사설시조를 지을 정도의 수준을 보일 수 있는 작자층은 적어도 글을 아는 식자층, 즉 주로 중인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사설시조의 미의식

 

사설시조는 우아한 기품과 균형을 강조하는 평시조와는 달리 거칠면서도 활기찬 삶의 역동성을 담고 있다.

사설시조를 지배하는 원리는 웃음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 중세적 고정 관념을 거리낌없이 추락시키는 풍자, 고달픈 생활에 대한 해학 등이 그 주요 내용을 이룬다. 아울러, 남녀 간의 애정과 기다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대개는 직선적인 언어를 통해 강렬하게 표현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종래의 관습화된 미의식을 넘어서서 인간의 세속적 모습과 갈등을 시의 세계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사설시조는 문학의 관심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미의식은 조선 후기의 변모된 세계관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후 우리 근대 문학의 바탕을 이루기도 한다.

미의 영역

 

미 또는 아름다움이 차차 선과 의와 그 뿌리를 같이하는 것으로 의식되는 동시에, ‘대상이(또는 대상에서) 저 곧, 각자〔私〕와 같을 때(또는 발견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가능해지는 현상 영역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과 인생 그리고 예술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자연미는 자연의 경관만이 아니라, 온갖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하고 하찮은 유기물이나 무기물에 이르기까지 제 나름대로 모든 자연의 소산 가운데 편재하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농경 생활이 중심이 되어온 우리 나라의 경우, 자연에 대한 예찬은 일일이 그 예를 들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편재하고 있다.

유의할 것은 기후와 토질을 의미하는 풍토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그 속에서 가꾸고 변화하는 자연,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는 자연이라는 사실이다.

즉, 풍토는 정태적인 자연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사유와 행동 양식을 낳는 문화적 거점으로서 동태적 환경이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태도는 그 자체로서 머무르지 않고 인생과 예술에 대한 태도에도 깊숙한 영향을 미친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한국의 기후는 혹심한 더위와 추위 그리고 집중적 강우로 번갈아 사람들을 짓누른다. 이로써 이 변덕스러운 자연의 위력에 대항하기보다도 구름과 바람의 미묘한 움직임에도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감수성만을 기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이처럼 수용적인 응전의 자세는 쌀 농사 위주의 한국의 농업 구조에서 비롯되는 수해·한해(旱害) 다음에 찾아오는 기근에 대한 공포와도 결부되어 있었다. 거기에다가 외부 세력에 의한 빈번한 침입, 외적에 의한 지배, 민중에 대한 학정의 역사가 이중 삼중으로 얽힌 이 땅은 무릇 대적할 수 없는 강한 힘에 대해서는 그것이 제풀에 시드는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한국민에게 터득시켰다.”

이는 기다림의 지혜가 소극적으로 보면 무기력한 체념으로 변질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보면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유연한 달관을 내포한다. 그러면서 농경민의 생활 속에서 다듬어진 의식의 산물로 자연주의를 낳게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자연과 역사가 예술을 가능하게 한 어머니였다는 사고는 물론 서양에서도 일찍부터 주장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의 관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에 대한 이른바 ‘무관심적 태도’이다.

이는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한갓 상찬의 대상으로 보는 것과 직결된 태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미를 운위함에 있어 공통되는 특징을 이룬다. 단지,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자연을 대하면서 거기에서 인생과 예술을 위한 모범을 찾으려는 경향이 보다 지속적이고 중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자연미를 독립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 서양과 비교할 때 대조를 이룬다. 서양의 이러한 경향은 자연을 과학적으로 탐구한 결과이다. 즉, 탐구의 결과로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자연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됐을 때에 탄생한 접근 방식이다.

인생이라는 표현은 인간과 그의 생활 전반을 요약한 것이다. 인생미란 따라서 인간 자체와 인간이 영위하는 생활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자연주의적 경향이 강할 경우 자연에서 발견되는 조화 등의 특징을 인간과 인간 생활에서도 발견해 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예컨대, 아름다운 사람이란 신체의 외모를 지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미란 ‘사람다운 사람’의 인륜적 선에 그 바탕을 두고서야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의 경우 18세기에 이르러 순수 예술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고, 그 의의가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하여 독특한 쾌(快)를 산출해 내는 인간 활동”으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개념의 정의는 그 뒤 널리 파급되어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통용되었다. 그러나 독자적인 해석을 찾는 노력도 없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은 대개 주대(周代)의 육예(六藝)를 근거로 삼는다.

 

예(藝)는 토괴(土塊 : 廊)에다가 초목〔敏〕을 심는 인력〔丸〕의 작용〔云〕이라는 기능을 뜻한다. 주대에는 육예를 교육하였다. 예(禮)는 예의의 기능이요, 악(樂)은 음악의 기능이요, 사(射)는 궁도(弓道)의 기술이요, 어(御)는 기도(騎道)의 기술이요, 서(書)는 사자(寫字)의 능술(能術)이요, 수(數)는 계산의 능술이라 하였다.

즉, 육예의 예는 농사로 치자면 수확을 얻기 위하여 곡식 낟알을 심듯이, 장차 사대부가 되려는 인물의 인간적 결실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 교양의 씨앗을 뿌리고 인격의 꽃을 피게 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결국 인격 도야의 의의가 있다고 보면서 예술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여기에 깃들여 있다.

 

이미 서양의 경우에도 자유 과목(liberalium artium)이라 하여 오랫동안 이와 비슷한 교육이 실시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이 18세기의 순수 예술 개념을 확립하는 데에 적지 않게 기여한 바 있는 만큼, 육예에서 오늘날에 통용되는 예술 개념의 연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아주 헛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온갖 활동 역시 역사적인 만큼 미 또는 아름다움이 현상 영역에 따라 어떻게 그 유형을 달리하는가도 역사의 맥락 속에서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 그 가운데 자연과 인생에서의 아름다움을 독립해서 규명하여 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자연미나 인생미(인간미)가 집중적으로 본격화되는 현상 영역은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예술미인 까닭에 앞으로의 검토에서는 주로 예술미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미적 범주

미의 유형을 다루는 연구 방법에 속하는 미적 범주론은 금세기 초까지 주로 독일 미학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그 연원은 18세기 영국 미학, 특히 버크(Burke.E.)의 〈숭고와 미에 대한 우리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1756년)라는 논문이 효시를 이룬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두 종류로 나누어 고통 또는 위험의 관념과 결부된 인간의 자기 보존의 감정과, 인간의 사회성에 큰 몫을 하는 쾌의 감정으로 구분한 뒤, 전자에서 숭고를, 후자에서 미를 도출하였다.

칸트(Kant.I.)가 미와 독립된 숭고의 분석을 꾀할 때, 실상 그는 버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칸트는 미와 숭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① 미가 대상의 형식에 관여하는 반면, 숭고는 몰형식(沒形式)의 대상에 관여한다.

② 미가 한정되지 않는 오성 개념(悟性槪念)의 표현인 반면, 숭고는 한정되지 않는 이성 개념의 표현이다.

③ 미가 질(質)의 표상과 결부된 반면, 숭고는 양(量)의 표상과 결부되어 있다.

④ 미가 직접적인 삶의 촉진 감정인 반면, 숭고는 간접적으로 일어나는 쾌감 내지 일시적으로 멈추었다가 다시 거세게 범람하는 감정이다.

⑤ 미가 유희적 상상력과 결부된 반면, 숭고는 유희가 아니라 진지한 것이다.

그 뒤 피셔(Vischer.F.)는 미와 숭고 외에 희극적인 것을 첨가하여 미의식(美意識)의 3분법을 적용하였다. 졸거(Solger.K.)는 미와 대립되는 추(醜)를 언급하면서 추는 악과 같이 관념의 부정으로만 표시되지만, 미의 위치 안에 설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 형태를 가정하는 하나의 부정으로 표시된다고 보았다.

현대에 이르러 데스와르(Dessoir,M.)는 ≪미학 및 일반예술학≫(1906년)에서 미적 기본 형태를 미적 정취의 기본 형식으로 분석하여 미·숭고·비극미·추·희극미 등으로 표시하였다.

이상의 기본적 유형과 아울러 거기에서 파생되는 미적 유형들도 거론된다. 이 여러 미적 범주들이 서로 미묘하게 혼성되어 여러 가지 특유한 미의 성격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대체로 숭고미의 변형으로 비극미가, 희극미의 변형으로 우아미가 파생되는 것이다. 이 네 개는 단순미·추와 더불어 중요한 미적 범주로서 다루어진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미는 그중 단순미만을 가리킨다. 그것은 순정미(純正美)라고도 표기된다. 조화성·완결성·쾌감성 등의 여러 특질이 가장 순수하고 선명하고 완전하게 구현되는 것으로 용인된다. 그러나 이는 넓은 의미의 ‘미적인 것’의 하나로서 추 역시 이 넓은 의미의 ‘미적인 것’의 하나가 된다.

이러한 앞선 연구로부터 영향받으면서 이른바 한국적 미의식에 대한 관심이 정리된다. 그중에는 예컨대 미적 범주를 문학의 장르와 연결시키는 설명도 있다. 이에 따르면 미적 범주는 숭고·우아·비장(悲壯)·골계(滑稽)의 네 가지를 기본 범주로 삼는다.

우선 숭고는 이념이나 목표 등 ‘있어야 할 것’이 현실 자체인 ‘있는 것’보다 더욱 소중한 가치로서 숭상되는 상태이다. 그리고 동시에 있어야 할 가치와 있는 가치가 서로 융합되어 있는 상태로 설명된다.

신화에서 크게 나타나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사라진 이 숭고에 비하여, 우아는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이 서로 융합하고 있으면서도 ‘있는 것’을 더욱 아름답게 여기는 미의식으로 설명된다.

민담(民譚)에서의 현실 긍정적 세계관이 우아미의 시원이라고 간주된다. 이는 후대의 송(頌)·악부(樂府) 등에서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아미는 이처럼 현실과 화합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칭송·찬양하고자 하는 동기를 바탕으로 삼는다.

다른 한편, 비장은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 중에서 전자의 가치를 더욱 높이 다룬다. 그리고 숭고와는 달리 두 가치가 조화되지 못하고 상반되고 있을 때 해당되는 미의식으로 설명된다.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순교자의 순교 행위나 영웅 전설에서 보이는 영웅의 패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된다. 말하자면, 현실 비판적 기능이 말해질 수 있겠다. 서구와는 달리 국문학에서는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골계는 ‘있어야 할 것’보다 ‘있는 것’을 더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두 가치 사이의 상반을 제시한다고 설명된다.

이는 국문학의 지속적인 미의식으로서, 특히 조선 후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미의식이라고 지적된다. 이 골계는 익살스러운 해학과 날카로운 비판을 지닌 풍자로 나누어 고려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미를 단순히 조화나 균형 혹은 비례 등과 연관시켜 좁게 해석하는 태도를 벗어나서(외래적인 미 가치 기준의 수용과 우리의 미의식 자체의 시대적 변용으로 인하여) 깨끗하고, 밝고, 예쁘고, 날씬한 것은 물론, 그 반대인 칙칙하고, 어둡고, 무디고, 일그러진 것도 아름다움의 내용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발생한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서양 미학으로부터의 영향 관계를 엿보게 된다. 즉, 우리의 미의식이 정통미인 우아미뿐 아니라, 추악한 것까지도 미의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서양 근대 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이는 특히 ‘멋’에 대한 설명에서 두드러진다. 아름다움의 보다 특수적이고 한국적인 개념으로 ‘고움’과 ‘멋’이 거론되고, 특히 그중에서도 ‘멋’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바로 미적 범주론의 한국적 전개이다. 멋은 맛과의 유비 관계를 통하여 그 특징이 찾아지기도 한다. 이에 관한 견해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① 멋이라는 말은 맛이라는 말의 의미와 어감이 변형된 말이다. 맛은 미각의 뜻에서 ‘재미’ 또는 ‘흥취’라는 뜻으로 바뀌어 ‘멋’이라는 뜻에 이른다.

② 멋의 바탕은 재미·흥미·흥취에 있다.

③ 멋의 바탕은 조화에 있다.

④ 멋은 치장과 솜씨와 행동의 변화·숙달·세련의 뜻이 있다.

⑤ 멋의 단계의 표현은 멋들다→멋있다→멋지다→멋 떨어지다의 순으로 상승한다.

⑥ 멋의 구경(究竟)은 자유 방종이 격에 맞는 열락(悅樂)이다. 즉, 멋은 멋이 떨어진, 멋없는 멋이 최고 경지이니, 그것은 ‘멋대로’ 해서 격에 맞는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경지라는 말이다.

멋의 미적 내용은 이와 같은 설명을 바탕으로 ① 형태미로서의 멋, ② 표현미로서의 멋, ③ 정신미로서의 멋이라는 관점에서 계속해서 논의된다.

멋의 형태적 특질로서는 비정제성(非整除性)·다양성·율동성·곡선성이 지적된다. 그리고 멋의 표현적 특질로서는 초규격성(超規格性)·왜형성(歪形性)·완롱성(玩弄性)이 지적된다. 나아가 멋의 정신적 특질로서 무실용성(無實用性)·화동성(和同性)·중절성(中節性)·낙천성(樂天性)이 지적된다.

이러한 미적 범주의 연구는 자칫 미를 정태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 우려가 있다. 예컨대, 앞에서 살핀 연구는 “멋은 민족 미의식의 집단적·역사적 동일 취향성에 말미암은 것으로, 원시 이래로 지금에 관류하는 하나의 전통이다.”라고 하여, 자칫 그것이 불변의 속성인 듯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멋이 예술에서 가장 발현되고 꽃핀 것은 조선시대이고, 멋이라는 말이 성립된 것은 아무래도 조선 말엽 만근(輓近) 백년 이내의 일이요, 이것이 단편적으로나마 논의된 것은 24, 25년 내의 일이다.”라고 함으로써 그것이 지닌 역사적 성격을 다행히도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24, 25년 내란 곧 1940년대 이후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고유섭(高裕燮)이 독일 미학의 영향이 강하던 당시의 교육 상황에서 미학을 전공한 뒤 우리 나라의 조형 예술 연구에 몰두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는 한국적 미의식에 대한 관심이 독일 미학의 미적 범주론 연구성과에 힘입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도 된다.

하지만 여하간 무기교의 기교를 우리 나라 미술의 특징으로 내세운 그의 견해는 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 등 시대마다 특징이 있다는 스스로의 주장과도 모순을 일으킨다는 후대의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지적은 “시대를 각 시기별로 잘게 나누고 분야를 세분해서 각 시기의 각 분야 미술의 특징을 과학적으로 분석, 검토하여 그 특징을 정확히 가려내고 이를 재분류, 정리하여 체계화시켜야 한다.”라든가, “이제는 우리 나라 미술의 특징이나 그에 내재하는, 그리고 그것을 창출한 다양한 미의식을 일괄해서 보기보다는 어느 특정한 시대나 분야 또는 작가마다의 경우에 따라서 그 특징과 미의식을 뜯어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과학 시대의 성과를 예술미의 규명에 적용시켜 보려는 그 나름대로 의의 있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각 시대를 특징짓는 기본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보강한 것처럼 들린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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