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론 - 70년대 의식의 청산을 위해
by 송화은율
70년대 의식의 청산을 위해 /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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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수산에게도 <70년대의 작가>라는 관형어가 붙어 있다. 문단활동의 첫 단계에 속하는 특정의 시대가 그의 이름 앞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 시대의 징후를 특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문제적인 지시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작가 자신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는 수식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할 수 있는데, 하나는 <70년대 작가>라는 말이 문학 활동의 긍정적인 가치 평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부정적 요소를 들춰내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작가의 문학 세계가 특정의 시대적 상황에만 예속되어 있는 것처럼 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수산에게 있어서 <70년대>는 그의 문학활동의 출발기에 해당된다. 그는 장편 『부초(浮草)』를 통해 <오늘의 작가상>을 받기 이전 이미 문단에 들어서 있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단편소설 「4월의 끝」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것이 1972년 1월이며, 그 다음해에 장편소설 『해빙기(解氷期)의 아침』이 한국일보의 현상모집에 입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가적 역량은 『부초(浮草)』(1976)로 확인되었고, 이 작품은 기록적인 판매 부수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에게 <70년대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이며, 그가 『밤의 찬가(讚歌)』(1977,조선일보)와 『달이 뜨면 가리라』(1979, 동아일보)와 등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더욱 독자층과 가까워졌을 때는 <상업주의 문학>이라는 또 하나의 야유적인 명칭이 그의 뒤에 따라 붙게 되었다. 물론 작가 한수산은 이러한 질타에 대해 전혀 아무런 변명도 늘어 놓지 않았다. 현실에 대한 신념의 문제가 작가의식의 치열성과 관려노디어 도덕적 심판대에 올려질 수 밖에 없었던 70년대 후반기의 시대적 상황을 그는 용케도 견디어 내었다. 자신의 생활 근거지를 제주도로 옮기고, 그는 그 자신이 겪었던 격동의70년대를 스스로 정리하기 시작하였으며, 한 시대가 남겨 놓은 정신적 상처를 스스로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70년대라는 시대적 공간은 우리들의 삶의 전체적인 과정 속에서, 특이한 단계로 기록될 수 있다. 흔히 대중사회로의 변화를 논의하기도 하고 산업사회로의 돌입을 지적하기도 했던 70년대적 징후는 문학과 예술 전반에 걸쳐 두 가지의 위협으로 나타났다. 그 하나는 예술의 진지성 또는 도덕적 상상력의 결핍과 함께 통속적인 문학예술이 급격히 팽배해졌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문학예술이 소비적인 물질주의의 추세에 따라 그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산업화 과정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제시하는 작품들이 진실한 문학의 정신을 지탱해 오긴 했지만, 대중들의 기호에 따라 선택되는 통속적인 작품들이 신문의 광고란에 다양한 모습으로 선전되었다. 문학의 소비시대를 우려했던 어떤 비평가는 이러한 상황 자체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퇴폐적인 의식 성향을 더욱 크게 개탄하였다. 삶의 현실에 대한 참다운 깨달음을 제시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고, 문제를 처리하도록 의식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상업주의 문학>을 비난했던 사람도 있었다.
한수산은 바로 이러한 비난의 대상에 속했다. 그의 소설과 그의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대중화의 추세를 순조롭게 타고 있을 때 그는 이미 70년대라는 한 시대의 와중에 빠져들어 있었으며, <70년대 작가>라는 한정어가 그의 작품 세계에 붙게 되었다. 한수산은 그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간에 한 시대의 삶의 양상을 나름대로 보여주고 있었으나, 상업주의라는 선입관에 그 실상이 잘못 드러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의 문학이 진지함을 지탱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대의 사회 자체가 진지함을 지탱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이라고 그를 변명해 줄 수도 있다. 그의 문학이 도덕적인 타락과 퇴폐적인 정신을 담고 있다면, 그것이 그려내고 있는 사회 자체가 또한 그러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지을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문학이란 언제나 진실하게 살아 있는 정신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엄숙주의가 존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학이란 언제나 진실한 삶의 상상적 환시(幻視)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신념처럼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70년대의 한수산이 보여준 문학적 과정은 소설가 한수산의 한계일 수 없다. 70년대라는 당대적 상황과 그 사회 구조가 함께 문제시되어야만 하는 커다란 혼동을 작가 한수산은 매우 깊이있게 되돌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수산의 신작소설을 읽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70년대를 보내면서 그가 발표한 소설 「달」을 비롯하여 『선사의 꿈』, 「문(門)」,『모래 위의 집』 그리고 최근의 『회선(回船)』등은 모두 <상실의 고통>을 담고 있다. 70년대를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들을 잃어버렸다. 한수산은 대중적인 독자들의 성원을 얻었으나, 70년대를 풍요로운 시절로 기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삶의 참다운 의미를 잃어버리고, 꿈마저도 놓쳐버린 시절--바로 그것이 한수산이 그려 놓고 있는 70년대의 모습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대하면서 우리는 우리들이 살았던 한 시대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 70년대를 어떠하든지간에 자신의 한 모습으로 살았던 작가 한수산에게는 이제 그에게 붙여진, 결코 명예롭지만은 않은 <70년대 작가>라는 투어를 떼어버릴 때가 온 것이다. 그가 발표한 근작들이 모두 70년대 의식의 청산을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면서, 우리는 그의 뛰어난 감성이 펼쳐내는 이야기의 세계에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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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시대라는 말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문제시되든, 부정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되든, 우리는 70년대의 사회적 변화를 <산업화>라는 말로 집약하여 표현할 수 있다. 산업화시대의 긍정적 측면은 경제 개발에 뒤이은 물질적인 성장이 지적된다. 공업화의 추진과 수출에 대한 의욕이 경제발전 단계에 있어서 수치상의 고도성장을 누려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적 변동에 기인하는 여러 문제들이 간단치 않은 갈등의 요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경제 발전의 경이로운 성과를 앞에 두고 가난을 숙명으로 알았던 과거의 체념적 태도를 일단 깨뜨릴 수는 있었지만, 오히려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불만이 적지 않게 표출되었다. 농촌은 근대화 시책에서 외면당한 채 도시화의 물결을 진통으로 앓고 있었고 농촌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을 낳기도 하였다. 도시 노동자 계층이 지니게 된 집단적인 불만은 소득의 불균형이라는 개인적인 문제에서 사회 구조 자체의 모순을 지적하는 비판적인 행동으로 확대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적 긴장은 쉽게 문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로 부각되었다. 삶의 뿌리를 제대로 지니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의 비참한 모습은 문학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될 수 있었으며, 그러한 구조적 모순을 담고 있는 현실의 어둠이 또한 문제시되었다.
한수산의 단편 「달」은 상황적 긴장이 어느 정도 이완되어 있긴 하지만, 고향을 잃어버린 농촌 태생의 도시근로자의 심정적 고통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나>라는 일인칭 화자의 고백적인 진술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노동 현장의 체험을 그려내고 있지는 않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밀려들어와 봉제공장의 미싱사로 취직해 있는 <나>는 추석을 맞아 갑작스럽게 고향을 찾게 된다. 5년 이상을 집을 나와 뜨내기로 살아온 <나>의 귀향 동기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남들이 다 간다 간다 하니까 나도 어디를 가야 하겠는데, 나는 갈 데가 없드라 그겁니다. 나도 물론 고향이야 있습죠. 그러나 거기엔 부모도 형제도 없다 이겁니다. 아버지 황달 걸려서 고생하고, 형은 울산 가서 일하다가 손가락 왕창 나가서 돌아오고, 그러다가 땅 마지기나 있는 거 팔아족치고서 고향 뜬 게 바로 내가 다림질 시작하던 해니까. 가봤자 고향에는 아무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남들이 고향엘 간다 하니까 갑자기 서울이 미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 시골 집 떠나와서 이 우라질 서울한테 내가 얼마나 서러움을 당했나 싶데요. 아무리 객지 바람이 뼈에 시리다 해도 말입니다. 저 높은 빌딩, 저 많은 자가용들, 늘씬늘씬하게 빠진 저 많은 계집애들, 저것들이 날 얼마나 구박했으며, 또 얼마나 사람 대접 안하고 이리 치고 저리 쳤던가 싶은 게……아 정말 이빨 갈리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나>는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 없는 고향엘 내려가지만, <내 사정 알아 주고, 내 편이 되어 주고, 무엇보다도 오야 미싱사가 된 내 출세를 장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라고 믿었던 고향의 놀라운 변모에 아연하게 된다. 고향은 <나>의 머릿속에 남은 옛 모습을 아직도 더러는 지니고 있으나,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으로 <나>와 대면한다. 경운기를 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낙네들의 술타령과 마을 상점 앞에 놓인 <쮸쮸바 통>, 휘황한 영문 글자를 새겨 넣은 T셔츠를 입고 있는 동네 청년, 농약으로 키운 채소 등이 모두 <나>의 마음을 뒤집어 놓고 있는 것이다. <제 자리에 앉을 것이 앉을 때 비로소 뭐가 돼도 된다>는 새삼스런 이치를 놓고, <나>는 현실로 직면한 고향의 변모를 하나의 아이러니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새 가을이라고 풀벌레가 아우성치며 울어대는 산소에 멍청히 앉아 달빛 가득한 마을을 내려다보자니 그냥 눈물이 비실비실 새어나오지 뭡니까. 붉은 슬레이트 지붕도 쮸쮸바 박스가 나앉은 가게도 딸딸이 소리고 들리지 않고 마을은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어느 집에선지 개가 우엉우엉 짖어대더군요. 그때 나는 보았던 겁니다. 농약 안 뿌린 김치를 먹으면서 ULCA 마크가 선명한 T셔츠 입고 쮸쮸바를 든 거대한 사내가, 불알을 깐 한 거대한 사내가 말입니다. 나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는걸 나는 보았던 것입니다. 이 마을을 떠나 저 도회의 그늘에서 빨빨 기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울어댔던 내 비명소리도 아랑곳없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그 거대한 사내를 말입니다.
결국 그렇게 된 겁니다. 이제 다시는 고향 따윈 생각 안 하게 되고, 추석에 집에 가는 녀석들의 가방에 든 정종병 부러워하지 않게 된 나를, 글쎄요 잘된 것이라고 말해야 할는지. 아니면 이제 비로소 나도 서울내기가 되어가기 시작하는 건지.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고향을 떠나올 때는 <나>의 가족이 모두 고향을 버렸지만, 이제는 그 고향이 <나>를 거부한다.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로 고향은 그 풋풋한 감정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고향만은 거기 그대로 남아 있어 주길 기대하는 <나>의 심정이 파탄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허탈감가 거기에 비롯되는 상실의 비애가 이 소설의 어조에 짙게 드러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설 「달」이 단순히 고향의 상실이라는 정서적 영역만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농촌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온 <나>의 경우와 또 다른 일면에서 농촌은 근대화의 겉치레를 치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의 소비적 풍조가 자리잡고, 순박한 농촌사람들이 이해와 타산에 더욱 밝아지게 되자. 결국은 농촌 사회 자체가 도시의 세태와 다름없는 타락의 과정에 들어서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작품에서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수산의 지적은 비단 농촌의 현실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가 또 다른 측면에서 진단하고 있는 도시 생활의 병폐는 『선사(先史)의 꿈』에서 깊이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부동산 투기의 분을 조성하게 했던 아파트 분양과 그 추첨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비리와 모순을 풍자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지나간 한 시대의 광란하던 한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된다. 소설의 내용은 <틀이>에 대한 투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물질 만능주의를 신봉하고 있던 당대의 현실문제 그 자체라고 할 만하다.
작가 한수산은 세태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직접적인 현장의 재현을 의도하지 않고, 일단 우회적 접근법을 활용한다. <틀이>의 유행과 그것에 대한 투기는 하나의 우화적인 구도에 불과하다. 이 우화적 구도를 통해 작가는 비정의 시선을 현실에 내던지고 있으며, 그 시선에 맞부딪치는 대상은 비리의 모습 그대로, 모순의 덩어리 그 자체로 소설 속에 드러나고 있다.
소설 「문(門)」의 경우에도 새로 세워진 아파트촌의 모습과 기존의 마을을 대조함으로써 이 사회의 극단적인 양면을 소설 속에 함께 포괄하고 있다. 갈등과 대립의 장면들에 대한 해학과 풍자를 어린이의 시선을 통해 구현하는 재치가 또한 이채롭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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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의 세태와 뿌리뽑힌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한수산의 소설 가운데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또 하나의 작품은 『모래 위의 집』이다.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사막>, <살>, <부드러운 죽음>, <밤에서 밤으로>라는 소제목으로 나누어진 한 작품은 한 가정의 가족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상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와 딸 삼형제에 연결되는 이야기가 그 전부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특이한 면은 철저하게 남성(男性)이 제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부성(父性)의 상실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는 이러한 현상은 한 가족의 구성원 사이에 연결되는 중요한 끈이 모두 끊어져 있다는 사실과도 연결되고 있다. 어머니는 언제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린다. 남편의 부재, 한 가정의 가장의 부재가 가족 구성원 전체의 삶을 불균형 속으로 몰아간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살고 있는 어머니의 곁에는 <나 늦을 거야>라는 말을 건네면서 집을 나가는 둘째딸 경미와 <엄마, 나 돈>하고 손을 벌리는 막내딸 경혜가 있다. 가끔 <별일 없수?>하고 나타나는 시집간 맏딸 경순이가 이들 사이의 긴장을 끊어 놓기도 한다. 『모래 위의 집』이라는 제목 자체가 암시하고 있듯이, 참다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근거를 잃어버린 생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삶의 태도는 체념과 허탈감으로 가득차 있다. 어머니는 삶의 의욕도 없고 어떤 새로운 지향도 지니고 있지 않다. 물론 가족 전체의 정신적인 중심을 이룰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지 않다.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는 아버지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막내딸 경혜는 고등학생이지만, 순결을 잃어버렸고, 낙태 수술까지 받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무런 정신적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도덕적 윤리의식의 파탄을 우리는 경혜의 행동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비뚤어진 젊음의 한 모습이 경혜를 통해 부각된다. 둘째인 경미는 이념의 날개를 잃어버린다. 현실의 모순에 직면하여 행동으로 저항하던 남자의 곁에서 경미는 이념과 현실의 엄청난 격차를 실감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제 그러한 문제를 더 이상 가슴에 안을 수 있는 힘이 없다. 맏딸 경순은 이미 결혼한 여자이지만, 집안 살림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밖으로 나도는 유한부인이다. 적당한 시간과 적당한 돈을 그녀는 가지고 있지만,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도 정신적 갈증을 견디지 못한다. 일상 생활의 테두리에 한없이 권태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관심을 갖는 일은 화투장이거나 부동한뿐이다.
이러한 네 식구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상황적 조건에 얽혀 있다. 삶의 의미를 되찾고 그 진실한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가장 소중한 인간의 모습을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한 가정에 한정시킬 경우 이와 같은 상황은 <모래 위의 집>의 위태로움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쉽게 사회적 현실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다. 올바른 가치관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진실한 삶이 거부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인간은 인간 관계의 의미있는 요소들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이념이 오도되고, 정신이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윤리와 도덕이 파탄될 때 인간의 삶은 허망한 제스처로 남는다.
지나간 70년대의 삶이 결국은 <모래 위의 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모래 위의 집>에 살고 있는 식구들로 남아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전망적인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우리들이 살았던 지나간 삶의 모습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자가 한수산은 그의 최근작 『회선(回船)』에서 다시 한번 비슷한 주제를 시험하고 있다. 『회선(回船)』에 대해서는 필자 자신이 사신의 형태로 그 감상을 적었던 경우가 있기에 일부를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한형, 형의 소설 『회선(回船)』을 읽었습니다. 최근 장편소설 『유민(流民)』이 간행된 것을 보고, 형이 제주도에 이사하여 몇 년 동안을 소문없이 창작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회선(回船)』을 읽으면서 육지를 벗어나 섬에 자신의 몸을 가두어버린 형의 용단이 어떤 의미를 지미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바다라는 열려 있는 세계를 원했고, 그것이 <자유였고 침묵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바다가 <하나의 한계>로 다가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하나의 고립 그리고 단절>로서 바다가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간단히 육지에서의 바다와 섬에서의 바다가 주는 느낌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굳이 이런 느낌이 바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바다를 생각하던 육지와 바다를 건너다 보는 섬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라고 고집하고 싶습니다.
바다가 <자유>였던 때의 육지는 닫혀진 공간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자유>였던 바다가 <하나의 한계>로 다가오고 있다면, 형은 다시 어디에서 그 <자유>와 <침묵>을 구할 것입니까?
소설 『회선(回船)』은 한 시대의 마지막 장면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형이 부딪치고 있는 생각의 벽을 더듬어 보기 위해 이 작품을 자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품 속의 화자인 <나>라는 인물이 방학을 이용하여 별다른 목적없이 떠나는 여행길이 스토리의 내면적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나>의 정서적 불균형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라도>라는 섬을 향해 떠나는 여객선에 몸을 싣게 된 <나>와 선실의 승객들이 어색하게 부딪치는 만남에서부터 이들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모두 한 시대의 작은 풍속도가 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형은 어두운 바다를 요동치며 떠가는 여객선의 선실 안에 인간의 삶의 현장을 한 장면씩 그대로 옮겨 놓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회선(回船)』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 육지에서의 생활에 지쳐버렸거나 실패한 사람들뿐입니다. 더 이상 육지의 생활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을 떨쳐버리고자 합니다. <아라도>라는 섬이 그들이 도달해야 하는 마지막 희망처럼 보입니다. 술 때문에 육지에서 섬으로 근무지를 쫓겨가는 최선생, 근대화 바람에 밀려 농사터를 잃어버리고 공사판의 막일꾼으로 전전하다가, 관광지개발로 새로운 공사판이 터졌다느 <아라도>를 찾는 김씨, 관광기생을 거느리고 술장사를 하다가 망해버렸지만, <아라도>에 가서 다시 술집을 차려 돈을 모으겠다고 벼르는 송씨, 떠돌이로 정처없이 술집을 굴러다니다가 배를 탄 윤자라는 아가씨, 개발붐을 타고 강변의 배추밭을 팔아 돈을 챙겨 은행에 넣어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다가 자기 삶의 무기력에서 뛰쳐나와 <아라도>를 찾게 된 정사장--. 이들 모두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을 상실한 인간들이기에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다시 채워줄 수 있는 마지막 꿈을 <아라도>에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짙은 안개 때문에 섬에 도달하기 전에 배는 다시 항구로 돌아오게 됩니다. 소설의 제목 『회선(回船)』의 의미가 비로소 여기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단순한 뱃머리의 선회를 의미한다기보다 자신들이 살아온 일상의 현실에 등을 돌릴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아라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 아니라 이들 모두의 침묵과 실패와 꿈이 뒤엉켜 가슴에 와 박힌 환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형, 이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간들은 끝없이 <아라도>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아라도>에 귀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일상의 생활 속에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그것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는지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소설이란 어차피 삶의 환시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구태여 그 해답을 형에게서 구하고자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직도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소설 속의 <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입니다. 삶의 철저한 인식과 그 새로운 지향을 방해하고 있는 장막처럼 안개는 뱃머리를 돌리게 하였습니다. <아라도>를 찾는 것보다 육지를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상황이 문제이듯이, 뱃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이 만드는 안개가 또한 문제입니다. 안개 속의 항로가 제거될 때 섬도 육지도 결국은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점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습니다.
감각의 작가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한형이 이제는 현실에 대한 인식의 방법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이 값지게 느껴집니다. 형의 시계(視界)가 확 트이는 날, 우리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모두의 꿈인 <아라도>를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한 시대의 문학은 언제나 그 시대의 삶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바쳐진다. 작가는 <그때>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지금> <여기>에 서 있으면서, 당대의 현실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70년대 작가>로서 한수산은 <그때 그 자리>에 남아 있길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그려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수산은 그에게 던져진 모멸의 어투인 <70년대의 작가>라는 칭호를 70년대를 넘기면서 벗어버리고 있다. 그는 이제 70년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80년대에 서 있으며, 한 특정 시대의 작가로 남아 있지 않고 동시대의 작가로 언제나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문체와 수사의 뛰어난 감각성을 기교적이라고만 탓할 수 없다. 언어의 지고한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문학인의 임무 중의 하나라면, 그는 이 시대의 스타일리스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소설이 지니는 유연성을 작가의식의 불철저와 연결시키는 논리의 비약도 용납하기 어렵다. 그것은 문학적 기질에 속하는 것이며, 작가로서 한수산이 지니고 있는 개성의 영역인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적 감수성을 퇴폐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의 세련된 감수성은 70년대 문화의 한 측면에 해당되었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한 가지 시대적 과도기를 정리하는 한수산의 소설 작업이 진지성을 잃지 않고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독자의 이름으로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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