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한문 장끼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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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장끼전


건곤(乾坤)이 배판할제, 만물이 번성하여 귀할손 인생이요, 천할손 즘생이라. 날즘생도 삼백이요, 길즘생도 삼백이라, 꿩의 화상(畵像) 볼작시면 의관(衣冠)은 오색(五色)이요, 별호(別號)는 화충이라, 산금야수 천성(山禽野獸天性) 으로 사람을 멀리하여 울림 벽계상(鬱林碧溪上)에 낙낙장송(落落長松) 정자 삼고, 상하평전(上下坪田)들 가운데 펴진 곡식 주어 먹어 임자없이 생긴 몸이 관포수(官砲手)와 사냥개에 걸핏하면 잡혀가서 삼태육경(三台六卿-형조병조예조공저판서들 말함 삼태는 영의정 좌우의정 육경은 이조호)수령방백(守令方伯)다방골 제갈동지 싫도록 장복하고 좋은 것 골라 내어 사령기(使令旗)의 살대 치레와 전방(廛房)의 몬지채며, 온가지로 두루 쓰니 공덕인들 적을소냐.

평생숨은 자최 좋은 경치 보려하고 백운상상봉(白雲上上峯)에 허위허위 올라가니 몸가뷔운 보라매는 예서 떨렁 제서 떨렁, 몽치든 모리꾼은 예서 위여, 제서 위여, 냄새잘 맡는 사냥개는 이리 꿀꿀, 저리 꿀꿀, 윅새포기 떡갈잎을 뒤적뒤적 찾아드니 살아날 길 바이 없네, 사잇길로 가자 하니 부지기여수포수들이 총을 메고 둘러 섰네, 엄동설한(嚴冬雪寒) 주린 몸이 어데로 가자말가. 종일 청산(終日靑山) 더운 볕에 상하 평전 너른 들에 콩낱 혹시 있겠으니 주으려 가자세라.

이때 장끼 치장(治粧) 볼작시면 당홍대단(唐紅大緞) 곁마기(여자의 예복으로 입는 저고리의 일종)에 초록궁초(草綠宮 )깃을 달어 백능(白綾) 동정 시켜 입고 주먹벼살 옥관자(玉貫子-옥으로 만든 마건 관자)에 열두 장목 만신풍체(滿身風采) 장부기상 좋을시고, 가토리 치장 볼작시면 잔 누비속 저고리 폭폭(幅幅)이 잘게 누벼 상하의복(上下衣服) 갖추 입고, 아홉아들 열두 딸년 앞세우고 어서 가자, 바삐 가자 평원 광야 너른 들에 줄줄이 펴져가며 널랑 저골줍고, 우릴랑 이 골 줍자, 알알이 두태(팥과콩)를 주을세면 사람의 공양(供養)은 부러 워 무엇하리. 천생만물(天生萬物) 제마다 녹(祿)이 있으니 일포식(一飽食)도 재수라고 점점 주어 들어갈재, 난데 없는 붉은 콩 한낱 덩그렇게 놓였거늘, 장끼란 놈 하는 말이,

"어화 그 콩 소담하다. 하늘이 주신 복을 내어이 마다하리. 내복이니 먹어 보자"

까투리 하는 말이,

 

"아직 그콩 먹지 마소, 설상(雪上)에 유인적(有人迹)하니 수상한 자최로다. 다시금 살펴보니 입으로 훌훌 붉도 비로 싹싹 쓴 자최 심히 고이하매 제발 덕분 그 콩 먹지 마소."

 

장끼란 놈 하는 말이 "네 말이 미련하다. 이 때를 의논컨데 동지섣달 설한(雪寒)이라, 첩첩이 쌓인 눈이 곳곳에 덮었으니, 천산(千山)에 나는 새 그쳐있고, 만경(萬逕)에 발길이 막혔거늘 사람 자최 있을소냐."

까토리 하는 말이,

"사기(事機)는 그러할 듯하나 간 밤에 꿈을 꾸니 대불길(大不吉)하온지라 자량처사(自量處事)하옵시오."

장끼란 놈 하는 말이

 

"내 간 밤에 일몽(一夢)을 얻으니 황학을 빗기타고 하늘에 올라가 옥황(玉皇)께 문안하니 산림처사(山林處士)봉(封)하시고 만석고(萬石庫)의 콩 한 섬을 상급(賞給)하셨으니 오늘 이 콩 하나 아니 반가울가. 옛글에 일으기를, 주린 자 달게 먹고 목마른 자 수이 마신다 하였으니 주린양을 채여 보자."

까토리 하는 말이,

"그대 꿈 그러하나 이내 꿈 해몽(解夢)하면 무비(無非)다 흉몽이라. 이경초(二更初)에 첫 잠들어 꿈을 꾸니 북망산(北邙山) 음지짝에 궂은 비 훌뿌리며, 청천에 쌍무지개 홀지(忽地)에 칼이되어 자네 머리 뎅겅 베이 나리치니 그대 죽을 흉몽이라. 제발 그콩 먹지 마소."

 

장끼란 놈 하는 말이, "그 꿈 염려 마라. 춘당대 알성과(春塘臺 謁聖科)에 문관(文官) 장원(壯元) 참례하여 어사화(御史花) 두 가지를 머리위에 숙여 꽂고 장안(長安)대도상(大道上)에 왕래할 꿈이로다. 과거나 힘써 보세"

까토리 또 하는 말이,

"삼경야(三更夜)에 꿈을 꾸니 천근(千斤)드리 무쇠 가마 자네 머리 흠뻑 씨고 만경창파 깊은 물에 아조퐁당 빠졌거늘, 나 혼자 그 물가에서 대성통곡(大聲痛哭)하여 뵈니 그대 죽을 흉몽이라. 부대 그 콩 먹지마소."

장끼란 놈 이른 말이,

 

"그 꿈은 더욱 좋다. 대명(大明)이 중흥(中興)할제 구원병(求援兵)청하거든 이내 몸이 대장(大將)되어 머리 위에 투구 쓰고 압록강 건너 가서 중원(中原)을 평정하고 승전대장(勝戰大將) 되올 꿈이로다."

까토리 하는 말이,

"그는 그렇다 하려니와 사경(四更)에 꿈을 꾸니, 노인당상(老人堂上)하고 소년이 잔치할제 스물 두폭 구름 차일(遮日) 바쳤든 서발 장대 우지끈 뚝딱 붙어지며 우리 둘의 머리에 아조 흠뻑 덮여뵈니 답답한일 볼 꿈이요. 오경(五更) 초에 꿈을 꾸니 낙낙장송 만정(滿庭)한대, 삼태성(三台星), 태을성(太乙星)이 은하수를 둘렀는데 그 중에 일점성(一點星)이 뚝 떨어져ㅕ 그대 앞에 내려져 뵈니 그대 장성(將星)이 그리된 듯, 삼국(三國)적 제갈무후(諸葛武侯) 오장원(五丈原)에 운명(殞命)할 제 장성이 떨어졌다 하더이다."

장끼란 놈 하는 말이,

"그 꿈 염려말라. 차일 덮여 보인 것은 일모청산(日暮靑山)오늘밤에 화초병풍 잔디장판에 등걸로 벼개 삼고 칡잎으로 요를 깔고, 갈잎으로 이불 삼아 너와 나와 추겨덮고 이리저리 궁굴 꿈이요. 별 떨어져 보인 것은 옛날 헌원씨(軒轅氏) 대부인이 북두칠성 정기타서 제일 생남 하여있고, 견우 직녀성(牽牛織女星)은 칠월칠석 상봉(相逢)이라. 네몸에 태기(胎氣) 있어 귀자(貴子) 낳을 꿈이로다. 그런 꿈만 많이 꾸어라."

까토리 하는 말이,

"계명시(鷄鳴時)에 꿈을 꾸니 색저고리 색치마를 이내 몸에 단장(丹粧)하고 청산녹수(靑山錄水) 노니다가 난데없는 청삽사리 입살을 악물고 와락뛰어 달려들어 발톱으로 허위치니 경황실색(驚惶失色) 갈데 없이 삼밭으로 달아날제, 잔 삼대 쓸어지고 굵은 삼대 춤을 추며, 자른허리 가는 몸에 휘휘친친 감겨 뵈니 이내 몸 과부되어 상복(喪服)입을 꿈이오니 제발 덕분 먹지마소. 부대 그콩 먹지마소."

장끼란 놈 대노(大怒)하여 두 발로 이리 차고 저리 차며 하는 말이,

"화용 월태(花容月態) 저 간나윗 년 기둥서방 마다하고 타인 남자 질기다가 참바 올바 주황사(朱黃 )로 뒤죽지 결박(結縛)하여 이 거리 저 거리로 북치며 조리 돌리고 삼모장과 치도곤(治盜棍)으로 난장(亂杖) 맞일 꿈이로다. 그런 꿈말 다시 마라. 앞 정갱이 꺾어 놀라."

가토리 하는 말이, "기러기 북국에 울며 널 제 갈대를 물어 나름은 장부의 조심이요. 봉(鳳)이 천길을 떠오르되 좁쌀은 찍어먹지 아니함은 군자의 염치(廉恥)로다. 그대 비록 미물(微物)이나 군자의 본(本)을 받아 염치를 알것이니 백이숙제(伯夷叔薺) 충열염치 주속(周粟)을 아니 먹고 장자방(張子房)의 지혜염치(知慧廉恥) 사병벽곡(謝病 穀) 하였으니 그대로 이런 것을 본을 받아 조심을 하려 하면 부대 그 콩먹지 마소."

장끼란 놈 이른 말이,

"네 말이 무식하다. 예절을 모르거든 염치를 내 알소냐. 안자(顔子)님 도학(道學)님 염치로도 삼십 밖에 더 못살고 백이숙제의 충절 염치로도 수양산(首陽山)에 굶어죽고 장량(張良)의 사병벽곡으로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갔으니 염치도 부질 없고 먹는 것이 으뜸이라. 호타하 보리밥을 문숙(文淑)이 달게 먹고 중흥 천자(中興天子)되어 있고 표모의 식은 밥을 한신 이 달게 먹고 한국대장(漢國大將) 되었으니 나도 이 콩 먹고 크게 될줄 뉘 알소냐."

까토리 하는 말이,

"그 콩 먹고 잘 된다 말은 내 먼저 말 하오리다. 잔디 찰방 수망 (察訪首望)으로 황천부사(黃泉府使) 제수(除授)하여 청산을 영이별(永離別) 하오리니 내 월망은 부대마소. 고서(古書)를 볼량이면 고집불통 과하다가 패가망신(敗家亡身) 몇몇인고. 천고 진시황의 몹쓸 고집 부소(扶蘇)의 말 듣지 않고 민심소동(民心騷動) 사십년에 이세(二世) 이 때에 실국(失國)하고 초패왕(楚覇王)의 어린 고집 범증(范增)의 말 듣지 않다가 팔천제자(八千弟子)다 죽이고 무면도강동(無面渡江東)하여 자문이사(自刎而死)하여 있고 굴삼려(屈三閭)의 옳은 말도 고집불청하다가 진무관(秦武關)에 굳이 갇혀 가련공산(可憐公山) 삼혼(三魂)되어 강상에 우는 새 어복충혼(魚腹忠魂) 부끄럽다. 그대 고집 오신명(誤身命) 하오리다."

장끼란 놈 하는 말이,

"콩 먹고 다 죽을가, 고서들 볼작시면 콩태(太) 자 든이 마다 오래 살고 귀히 되니라. 태고(太古) 적 천황씨(天皇氏)는 일만 팔천세를 같이 살아있고,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는 난 풍성이 상승하여 십오대를 전해 있고, 한태조(漢太祖), 당태종(唐太宗)은 풍진세계(風塵世界) 창업지주(創業之主) 되었으니 오곡백곡(五穀百穀) 잡곡(雜穀) 중에 콩태자가 제일이라. 궁팔십(窮八十) 강태공(姜太公)은 달팔십(達八十) 살아 있고,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은 기경상천(驥鯨上天) 하여있고, 북방의 태을성(太乙星)은 별중에 으뜸이라. 나도 이 콩 달게먹고 태공 같이 오래 살고, 태백 같이 상천(上天)하여 태을선관(太乙仙官) 되오리라."

까토리 홀로 경황(驚惶)없이 물러서니, 장끼란 놈 거동 보소, 콩 먹으러 들어갈제, 열두 장목 펼쳐들고 구벅구벅 고개 조아 조츰조츰 들어가서 반달같은 혀뿌리로 드립더중 꽉 찍으니 두 고패 둥글어지며 머리 위에 치난 소래 박랑사중(博浪沙中)에 저격시황(狙擊始皇) 하다가 버금 수레 마치는 듯 와지끈 뚝딱 푸드득 변통없이 치었구나. 가토리 하는 말이,

"저런 광경 당할 줄 몰랐던가, 남자라고 여자의 말 잘 들어도 패가(敗家)하고, 기집의 말 안 들어도 망신(亡身)하네."

까토리 거동 볼작시면, 상하평전 자갈 밭에 자락머리 풀어놓고 당굴당굴 궁글면서 가슴치고 일어 앉아 잔디풀을 쥐어뜯어 애통하며 두발로 땅땅 굴으면서 붕성지통 극진하니, 아홉 아들 열 두 딸과 친구 벗님네들도 불상타 의논하며 조문 애곡하니 가련 공산 낙목천에 울음소래 뿐이로다.

까토리 슬픈 중에 하는 말이,

"공산 야월 두견성은 슬픈 회포 더욱 설다. 통감에 이르기를, 독약이 고구나 이어병이요, 충언이 역이나 이어행이라, 하였으니 자네도 내 말 들었으면 저런 변 당할손가 답답하고 불상하다. 우리 양주 좋은 금실 눌더러 말할소냐. 슬피 서서 통곡하니 눈물은 못이 되고 한심은 풍우된다. 가슴에 불이 불네 이내 평생 어이 할고."

장끼 거동 볼작시면 차위밑에 업대어서,

"예라 이년 요란하다. 후환을 미리 알면 산에 갈이 뉘 있으리. 선 미련 후 실기라. 죽은 놈이 탈 없이 죽으랴. 사람도 죽기를 맥으로 안다하니 나도 죽지 않겠나 맥이나 짚어보소."

까토리 대답하고 이른 말이,

 

"비위맥은 끊어지고 간맥은 서늘하고, 태충맥은 걷어가고 명맥은 떨어지네. 애고 이게 웬일이요. 원수로다,원수로다. 고집불통원수로다."

장끼란 놈 하는 말이,

"맥은 그러하나 눈청을 살펴보소. 동자 부처 은전 한가."

까토리 한숨 쉬고 살펴 보며 하는 말이,

"인제는 속절 없네 저 편 눈에 동자 부처 첫 새벽에 떠나가고 이 편 눈에 동자부처 지금에 ㄸ 나려고 파랑보에 봇짐 싸고 곰방대 붙여물고 길목버선 감발하네. 애고애고 이 내 팔자 이대지 기박한가. 상부도 자주한다. 첫째 낭군 얻었다가 보라매에 채어가고, 둘째 낭군 얻었다가 사냥개에 물려가고 셋째 낭군 얻었다가 살림도 채 못하고, 포수에게 맞어죽고, 이번 낭군 얻었다가 서는 금실도 좋거니와 아홉 아들 열두 딸을 낳아놓고 남흔여가 채 못하여 구복이 원소로 콩 하나 먹으려다 저 차위에 덜컥 치었으니 솔적없이 영 이별하겠고나. 도화살을 가졌는가, 이내 팔자 험악하다. 불상토다 우리 낭군, 나이 많아 죽었는가, 병이 들어 죽었는가, 망신살을 가졌든가, 고집살을 가졌든가, 어찌하면 살려낼고, 앞 뒤에 섰는 자녀 뉘라서 흔취하며, 복중에 든 유복자는 해산구원 뉘라 할까, 운림초당 너른 뜰에 백년 초를 심어두고 백년해로 하겠더니 삼년이 못지나서 영결종천 이별초가 되었구나. 저렇듯이 좋은 풍신 언제 다시 만나 볼까.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 한을 마라. 너는 명년 봄이 되면 또 다시 오기 어려워라. 미망일세, 미망일세, 이 몸이 미망일세."

한참 통곡하니 장끼란 놈 반눈 뜨고,

"자네 너무 설워마소. 상부 자진 네 가분에 장가가기 내 실수라. 이 말 저 말 마라. 사자는불가부생이라 다시보기 어려우니 나를 굳이 보려거든 명일조반 일즉 먹고 차위 임자 따라가면 김천장에 걸렸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감영도나 병영도나 수령도의 관청고에 걸리든지 봉물 집에 앉혔든지 사또 밥상 오르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혼인 집 폐백 건치 되리로다. 내 얼굴 못보아 설워말고 자네 몸 수절하여 정열부인 되압소서. 불상하다 이내 신세 우지마라, 우지마라, 내 가토리 우지마라. 장부간장 다녹는다. 네 아무리 설워하나 죽는 나만 불상하다."

장끼란 놈 기를 쓴다. 아래 곱패 벋디디고 위곱패 당기면서 버럭버럭 기를 쓰나 살길이 전혀없고 털만 쏙쏙 다 빠지네.

이 때 차 위 임자 탁 첨지는 망보다가 만선드리서피 휘양우그려 쓰고 집팡 막대 걷어집고 허휘허휘 달려들어 장끼를 빼어 들고 희희낙락 춤을 추며,

 

"지화자 좋을시고 안남산 벽계수에 물먹으려 네 왔더냐 밧남산 작작도화 화류차로 네 왔더냐, 탐식몰신 모르고서 식욕이 과하기로 콩 하나 먹으려다가 녹수청산 놀든 너를 내 손으로 잡았구나. 산신께 치성하여 네 구족을 다 잡으리라."

장끼의 빗문 혀를 빼어 내어 바위 위에 얹어놓고 합장하여 비는 말이,

"아까 놓은 저 차 위의 까토리마저 치이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꾸벅꾸벅 절하고 탁첨지 내려간다.

까토리 뒤미쳐 밟어가서 바위에 얹힌 털을 울며불며 찾어다가 칡잎으로 소렴하고 댕댕이로 매장하고 원추리로 명정써서 애송목에 걸어놓고 밭머리사태 난데 금정없이 산역하여 하관하고 산신제와 불신제 지내고 제물을 차릴적에 가랑잎에 이슬받아 제주 글밤 딱지로 점심삼어 도초리 잔삼아 담아놓고 속샛대로 수저삼아 친가유무 형세대로 그렁저렁 차려놓고 호상 소임으로 집사를 분정하여 누구누구 들었든고. 의관 좋은 두루미는 초헌관이 되어있고 몸 가뷔연 날랜 제비는 접빈객 되어있고, 말 잘하는 앵무새는 진설을 맡았구나, 따오기 꿇어앉아 축문을 낭독하니 그 축문에 하였으되,

유세차 모년모월 미망 까토리 감소고우 헌벽 장끼 학생부군 형귀둔석 신반실당 신주기성 복유전령 사구종신라 하였더라.

이 때 철상 할듯말 듯 주저할제 소리개 하나 떠 오다가 주린 중에 굽어보고,

"어느 놈이 맏상제냐. 내 한 놈 데려가리라."

하고 주루룩 달려들어 두 발로 꿩새끼 하나 툭 차가지고 공중에 높이떠서 층암절벽 상상봉에 너울너울 덤벅 올라 앉아 이리뒤적 저리뒤적 하는 말이,

 

"감기로 불평하여 연십일 주리기로 오늘이야 인간 제일미를 얻었구나. 문어, 전복, 해삼찜은 재상의 제일미요, 전초자반 송엽주는 수재 중에 제일미요, 십년일경 해궁도는 서왕모의 제일미요, 일년 장춘 약산주는 상산사호 제일미요, 절로 죽은 강아지와 공지 안 난 병아리는 연장군의 제일미라. 굵으나 자나 꿩의 새끼 하나 생겼으니 주린 김에 먹어보자."

하며 너울너울 춤추다가 아차하고 돌아보니 바위아래 떨어져서 자최없이 숨었구나.

속절없이 물러앉어 허희 탄식하는 말이,

 

"삼국명장 관운장도 화용도 좁은 길에 잡은 조조(曹操)놓았으니 이는 대의(大義)를 생각함이요. 첨악(添惡)한 연장군(연장군)도 꿩의 새끼 놓았으니 그도 또한 선심(善心)이라 자손 창성(昌盛)하리로다. 태백산 갈가마귀 북악(北岳)을 구경하고 노중(路中)에 허기 만나 요기(療飢) 차(次)로 까토리께 조상(조상)하고 과실 노나 먹은 후에 탄식하여 이른 말이.

그 천수 풍신 좋고 심덕(心德)좋아 장수(長壽)할 줄 알았더니 붉은 콩 하나 못 참아서 비명횡사(非命橫死)하단 말가. 가련하고 불상하다. 우리야 그런 콩 보기로 먹을 소냐. 까토리 마누라님 들어보소. 오늘 고담(古談)에 이르기를 장사나면 용마(龍馬)나고 문장나면 명필 난다 하였으니 그대 심부하자 내 오늘 여기와서 삼물조화(三物調和) 맞았으니 꽃본 나비 불을 세아리며 물 본 기러기 어옹(漁翁)을 두려 할까 그 형세와 내 가문 그대 알터이니 우리 둘이서 자수성가(自手成家)할 심 잡고 백년동락(百年同樂) 어떠한가."

하니, 까토리 한심 짖고 하는 말이,

"아모리 미물(微物)인들 삼년상도 못마치고 개가(改嫁)하여 가는 법은 뉘 예문(禮文)에 모았는가. 고담에 이른 말이 운종용(雲從龍)하고 풍종호(風從虎)하며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하였으니 임마다 따라갈까."

가마귀 대로하여 가로되,

 

"네 말이 가소(可笑)롭다. 시전개풍장(詩傳凱風章)에 이르기를 유자칠인(有子七人)하대 막위모심(莫違母心)이라 하였으니 사랑도 일곱 아들 두고 개가(改嫁)하여 갈제 찬식한 말이라 하니 하물며 너 같은 미물이 수절이 당한 말가. 자고(自古)로 까토리 열녀정문(烈女旌門) 못보았네."

이 때 부엉이 들어와 조문후에 가마귀를 돌아보고 이른 말이,

"몸둥이도 검거니와 부리도 고이하다. 어른이 울작시면 기거(起居)도 아니하고 은연히 앉었느냐."

가마귀 노하여 ,

 

완만(頑漫)한 부엉아 눈은 우묵하고 귀가 쫑긋하면 어른이냐, 내몸 검다 웃지 마라, 거죽은 거으려니와 속조차 검을가, 우연비과산음(偶然飛過山陰)타가 이내 몸이 검었노라. 나의 부리 웃지마라, 남월왕(南越王) 구천(句踐)이도 내 입과 방울하나 삼시로 정복하고 십년을 칼갈이 부악을 돌아 들어 제후왕이 되었세라. 옛글을 몰랐으니 어른은 무슨 어른이냐. 저 놈을 그저 못 두리라. 명일 식후에 통문 노아 대동에 별 붙이고 양안에 제명하리로다."

하며 한참 이리 다툴 적에 청천에 외기러기 운간에 떠돌다가 우연히 내려와서 몸을 길게 느리고서 좌우를 대책하여 가로되,

"너이 무삼 어른이뇨. 한나라 소자경이 복해상에 십구년을 갇혔을 때 고국소식 모르기로 일장 서간 말어다가 한천자게 내 손으로 바쳤으니 이런 일을 불량이면 내가 먼저 어른이다. 너는 무슨 어른이냐"

 

앞 연당 물오리란 놈 일곱 번 상처하고 남녀간 혈육없이 후처를 구하더니 까토리 상부한 소식을 듣고 통혼도 아니하고 혼인길을 차릴 적에 옹옹(기러기의 울음소리) 명안 기러기로 안부장을 삼아 두고 관관 저구로 진경이로 함진 아비 삼아두고 키활(기운과 활기) 좋은 황새로 후생을 삼아 두고 맵시 있는 호반새로 전갈하인 삼았구나. 이날 호반새 들어와서 이른 말이

"까토리 신부 계신가. 오리 신랑 들어가네."

까토리 하는 울다 하는 말이

"아무리 과부가 만만한들 궁합(宮合)도 아니보고 억혼을 하려 하오."

오리 하는 말이

 

"과부 홀아비 만나난데 예절 보고 사주볼까. 신부 신랑 둘이 자면 궁합되나니라. 택일이나 하여 보자. 일상생기 이중천의 삼하절체 사중유혼 오상화해 육중복덕일이요. 천덕일덕이 합였으니 오늘 밤이 으뜸이라. 이성지합은 백복지원이니 잔말 말고 조금자세."

까토리 웃고 대답하되,

"자네는 남자라고 음흉한 말 제법하네."

오리란 하는 말이

 

"이내 호강 들어 보소. 영주봉래 너른 물에 흥로백빈 집을 삼아 오락가락 노닐면서 은릭옥척 좋은 생선 식량대로 장복하니 천지간에 좋은 생애 물밖에 또 있는가."

까토리 하는 말이

 

"물 생애 좋다한들 육지생애 같을소냐. 우리 생애 들어 보소. 평원광야 너른 들에 오락가락 노닐다가 층암절벽 높은 봉에 허위허위 올라가서 사해팔방 구경하고 춘삼월 늦인게 황금같은 꾀꼬리는 양유간에 왕래하고 춘풍도리 화개야에 촉혼조에 슬피 울어 불여귀하는 소래 초목금수라도 심회산란하니 그도 또한 경이로다. 추팔월 황국 시절 만만실과 주어다가 앞뒤로 노적하고 치장군의 좋은 복색 춘치자명 우는 소래 고금에 무쌍이라. 수궁생애 좋다한들 육지 생애 당할소냐."

하니 오래 묵묵히 앉았으니 그 곁에 조상왔던 장끼란 놈 썩 나서며 하는 말이

"이내 한거(閑居)한지 삼년이 되었으되 마땅한 혼처없더니 오늘 그대 과부 되자 내 조상와서 청정배필을 천우신조(天佑神助)하였으니 우리들이 짝을 지어 유자무녀하고 남혼여가시키어 백년해로(百年偕老)하리로다."

까투리 하는 말이

 

"죽은 낭군 생각하면 개가하기 박절하나 네 나이를 꼽아 보면 불로불소중 늙은이라. 숫맛알고 마음 전혀 없고 음난지심 발동하네. 허한한 홀아비가 예서 제서 통혼하나 왕손만이 각지러니 옛말에 이르기를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하였으니 까토리가 장끼 신랑따라감이 의당당한 상사로다. 아모커나 살아보세."

장끼란 꺽꺽 푸드득하더니 벌써 이성지합되었으니 통혼하던 가마귀, 부엉이, 오리, 무안(無顔)에 취하여 훨훨 날아갈제, 각색 소임(所任)다 날아간다. 감정새 호로록, 호반새 주루룩, 방울새 딸랑, 앵무, 공작, 기러기, 왜가리, 황새, 뱁새 다 돌아 가니라.

 

이때 까토리 새낭군 앞세우고 아홉 아들 열두 딸년 뒤세우고 백설풍 무릅쓰고 운림벽계로 돌아가서 명년 삼월 봄이 되어 남혼가여 다 여이고 자웅이 쌍을 지어 명산대천 노닐다가 시월이라 십오일에 양주부처 내외자웅가시버시(부부) 큰 물에 들어가 조개되었으니 치입대수위합이라. 세상 사람들이 이르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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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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