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문학의 흐름 / 조남현(曺南鉉)
by 송화은율한국 현대 문학의 흐름 / 조남현(曺南鉉)
머리말
한국 문학은 개화기를 분기점으로 하여 현대 문학과 고전 문학으로 나누어진다. 역사에서 근대와 현대가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문학 또한 근대 문학과 현대 문학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현대 문학을, 근대 문학을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로 한다.
한국 현대 문학은 불행히도 일제 강점 아래서 형성되어 전개되었다. 광복 이전 한국 문학의 특질을 올바르게 밝히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으로부터 벗어나려 한 문인들의 노력과 그들의 문학 성과를 살펴봐야 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서양 문학을 수용해 자기화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수준을 높인 문인들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한다.
1945년 이전의 문학이 조국의 독립과 근대화를 기원한 문학이라면, 1945년 이후의 문학은 6․25 전쟁과 남북 분단이 빚어낸 비극적 현실을 담은 동시에 통일을 지향한 문학이다. 광복 이후 우리 국민은 남북 분단, 전쟁, 가난, 혁명, 근대화, 독재정치, 민주화 운동 등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건들을 겪었다. 한국 현대 문학은 이러한 사건들의 실상을 그려 내고 의미를 밝히는 데 힘써 왔다. 그러면서 발전된 한국 사회의 모습과 질적으로 향상된 개인의 삶을 그려 내기도 했다.
시의 흐름
개화기에는 고전 시가 양식과 근대시 양식이 공존했다. 시조, 가사, 한시 등과 같은 고전 시가 양식은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선각지들이 국민 계몽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다시 말해, 선각자들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고전 시가 양식을 빌려 와 국민 계몽의 효과를 높이려 하였다. 수백 편의 개화 가사, 개화기 시조 등은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는데, 애국, 개화 사상, 현실비판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그런가 하면, 한국 근대 최초의 신문인 ‘독립 신문’에는 충군, 애국, 진보 사상, 대동단결 등을 노래한 창가가 십여 편 실렸다. 창가는 찬송가와 같은 서양음악의 가사를 적어 놓은 것으로, 4․4조의 정형성을 보여 주었다.
창가의 뒤를 이어 새로운 시가 양식인 신체시가 나타났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그 대표적인 작품인데, 새 시대와 문명을 향한 포부를 노래했다. 고전 시가 양식이 현실 비판과 애국 사상을 주요 내용으로 삼은 것에 비해, 신체시는 계몽 사상을 담고자 했으며, 전통시가 양식과 근대시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여러 신문과 문예지가 발간됨에 따라 한국 현대 시문학은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1920년대 초에는 백조, 페허와 같은 동인지를 무대로 하여 주요한, 홍사용 등과 같은 시인은 허무, 병, 꿈, 눈물 등의 어두운 이미지를 담은 시를 써내었다.
1920년대 중반,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나라 잃은 슬픔을 적극적인 저항 정신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김동환은 서사시집 ‘국경의 밤’을 발표했다. 최남선, 이은상, 이병기 등은 시조 부흥 운동을 일으켜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와 사상을 지키고자 했다.
이 시기에 독자적인 시 세계를 펼치며 활동한 중요한 시인으로 한용운과 김소월이 있었다. 한용운은 시집 ‘임의 침묵’에서, 임을 상실한 슬픔을 기다림의 의지로 승화시켜 독특한 사상시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김소월은 시집 ‘진달래꽃’에서 민요적 율격에 우리 민족 고유의 서정을 잘 담아 내어 서정시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
1920년대 중반에는 경향시가 등장한다. 경향시는 후에 선동시로 빠지기는 했으나, 시인 의식을 적극적인 정치 투쟁 의지에까지 연결시켜 시의 기능을 확대했다.
1930년대에 오면, 우리 시는 한결 더 성숙한 표현 방법과 다양한 정신 세계를 보여 주게 된다. ‘시문학’이라는 잡지를 무대로 하여 박용철, 김영랑은 순수시를 내세우면서 언어와 리듬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내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대표적인 순수시로, 1920년대 시가 보여 준 감상성과 이념성을 거부하고 순수 서정의 세계를 열어 보였다.
1930년대 시는 곧 모더니즘 시라고 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김광균은 시집 ‘와사등’에서 대상을 주로 시각적 이미지와 감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즘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상은 ‘오감도’ 연작시에서처럼 내면 세계를 초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파헤치는 시를 썼다. 정지용은 서구 시의 시각과 표현 방식을 수용하는 데서 출발하였으나, 나중에 가서는 카톨릭주의, 동양적 세계, 자연시 쪽으로 접어든다.
1930년대 후반, 흔히 ‘생명파’로 불리는 서정주와 유치환은 주로 인간과 생명의 탐구에 주력했다. 서정주는 ‘화사’와 ‘자화상’ 등의 시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주로 본능과 무의식을 탐구했다. 유치환은 ‘깃발’과 ‘생명의 서’ 등과 같은 시에서 인간의 의지와 사유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무렵, 일본의 탄압이 더욱 심해져 많은 문인들이 절필했으나,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을 시에 담아 낸 시인들도 있었다. 윤동주는 ‘서시’, ‘쉽게 씌어진 시’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부끄러움을 강조하면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성찰을 보여 주었다. ‘광야’, ‘절정’ 등의 시를 통해 조국 독립에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이육사는 이상화, 윤동주와 함께 저항시의 범주를 형성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의 합동 시집 ‘청록집’, 운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되었다.
6․25 전쟁은 시인과 시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는데, 이 무렵에는 전쟁시와 애국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조지훈의 시집 ‘역사 앞에서’, 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는 종군 체험이 낳은 대표적인 시집이다. 한편으로는 ‘후반기’ 동인이 결성되면서 박인환, 김수영, 전봉건 등을 중심으로 하여 모더니즘이 전개되었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전후의 허무감을 잘 드러내었다.
1960년대는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현실 참여시가 많이 창작되었으며, 대표 시인에는 김수영, 신동엽, 고은 김지하 등이 있다. 1970년대에 들어 현실 참여시는 더욱 암담해진 정치 상황에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면서 ‘민중시’ 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소설의 흐름
개화기 소설은 고전 소설과 현대 소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는데, 대부분 작품은 을사조약에서 경술국치 직후 사이에 발표되었다. 이인직의 ‘혈의 누’, 이해조의 ‘자유종’ 등의 신소설은 개화 사상, 교육 입국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권장하면서 소설 양식의 사회적 기능을 확대시켰다. 그러나 국권 상실 이후 정치적 성격은 줄어들고, 가정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두면서 흥미 위주로 변질되었다.
개화기 소설과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1920년대 소설 사이에 이광수의 ‘무정’이 있다. 이광수는 ‘무정’에서 동학과 기독교, 정절 중심의 고전적 관념과 자유 연애 사상을 대립시키면서 후자의 삶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1920년대에는 가난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이러한 작품에는 일제 강점 아래서의 한국인의 비참한 삶을 그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염상섭의 ‘만세전’, 농민의 굶주린 모습을 그린 이기영의 ‘가난한 사람들’, 도시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린 주요섭의 ‘인력거꾼’ 등이 있다. 1920년대 중반, 조명희, 최학송 등이 중심이 된 경향 소설이 등장하였다. 이 소설은 노동자가 주인공인 소설과 농민이 주인공인 소설을 포괄한다. 1920년대 전반기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 후반기는 급진적 태도로 억압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작품이 많이 나왔다.
1920년대 소설이 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과는 달리, 1930년대 소설은 리얼리즘 경향과 모더니즘 경향이 비슷한 힘으로 양분된다. 이기영, 김남천 등과 같은 작가는 두 차례에 걸친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고자 했다. 모더니즘 소설에는 인간 내면의 분열을 그리는데 치중한 이상의 ‘날개’, 도시인의 삶을 그리는 데 힘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이 있다.
1930년대 소설이 보여 준 또 하나의 큰 특징으로 역사 소설, 가족사 소설, 농촌 소설 등 다양한 소설 유형이 나타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역사 소설에는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현진건의 ‘무영탑’ 등이 있는데, 작가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눈과 창작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압축되어 나타나는 가족사 소설에는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태평 천하’ 등과 같은 명작이 있다. ‘삼대’는 할아버지 세대의 봉건적 사고와 탐욕, 아버지 세대의 좌절과 타락을 딛고 새로운 세대과 취해야 할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농촌 소설을 쓴 대표적인 작가로 ‘상록수’의 심훈, ‘고향’의 이기영, ‘만무방’의 김유정이 있다. ‘상록수’는 일제 강점기 한국 농촌의 비참하고도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리는 데 멈추지 않고, 야학, 문맹 퇴치, 이상촌 건설 등과 같은 적극적인 현실 타개책까지 제시한다.
광복 직후 소설에는 일제의 포악함과 당시 한국인의 참혹한 삶의 실상을 드러낸 작품,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처럼 일제 강점기 때 자신의 친일 행위를 비판한 작품, 염상섭의 ‘효풍’ 등과 같이 38선이 그어진 현실의 불안감과 단절감을 표현한 작품등이 있었다.
1950년대 소설은 전시 소설(1950~1953)과 전후 소설(1954~1959)로 나누어진다. 전시 소설은 보고 문학의 형식을 통해 적개심 표출, 반공주의 등의 내용을 주로 다루었으나, 황순원의 ‘학’은 이념보다 우정을 강조하였다. 전후 소설에는 1954년 북한의 토지 개혁 시기를 배경으로 젊은 지주의 위기와 사랑을 다룬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이념 대립보다는 인간과 사랑이 더욱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선우휘의 ‘불꽃’ 등이 있으며, 이범선의 ‘오발탄’처럼 전쟁이 끝난 후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병적인 심리 상태와 행동을 보이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려 낸 작품도 있다. 1950년대 문제작들이 그려 낸 것은 가난, 부조리, 병, 불신 등이었다.
전후 소설이 내보인 상처, 한, 죄의식, 허무감 등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작가들이 계속 다루었다. 그러면서도 작가들은 한편으로는 휴머니즘이라든가 윤리 의식으로 우리 사회의 회복을 꾀하였다.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최인훈의 ‘광장’은 전후 소설의 완결편이면서 한과 이념으러부터 자유로워진 소설의 출현을 알리는 작품이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참전했던 젊은이들의 파탄과 방황을 감동적으로 그려 내었고, ‘광장’은 남과 북의 갈등, 이념의 대립을 날카롭게 그리면서 남북 모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1960년대 전반기에 나온 잔광용의 ‘꺼삐딴 리’,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등은 한국인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를 던진 전쟁의 의미를 묻고 있으며, 개인의 파괴와 몰락을 그렸다. 1960년대 후반,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는 새로운 감성과 시각으로 한국인의 삶은 그렸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오랫동안 다룬 작가들은 전쟁이 한국인이게 가져다 준 상처, 한, 공포심, 죄의식 등을 깊이 있게 파헤쳐내었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희곡의 경우, 개화기 이후로 서양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였다. 1920년대에는 김우진이 ‘이영녀’, ‘산돼지’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근대 희곡을 확립하였다. 1930년대에는 우치진이 ‘토막’과 같은 리얼리즘 희곡을 썼고, 광복 이후에는 ‘자명고’와 같은 역사극으로 방향을 돌렸다. 6․25 전쟁 후에는 차범석, 이근삼 등이 풍자극과 고발극을 썼다.
수필의 경우, 광복 이전에는 김진섭 등이 주목할 만한 작품을 써내었고, 1945년 이후에는 이희승, 김소운 이어령, 법정 등이 값진 작품을 남겼다.
맺음 말
한국 현대 문학은 험난한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전개되었다. 일제 강점 아래서도, 6․25 전쟁의 와중에서도, 독재 정치 아래서도 한국의 시인들과 소설가들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고 건강하고 가지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시인과 작가들은 글을 통해 이러한 생각과 의지를 펼쳤는가 하면 직접 일제에 저항하고, 전쟁에 뛰어들면서 어두운 정치 현실에 맞서 싸웠다. 한국 현대 문학의 전개 과정을 보면 문학의 힘이 참으로 큰 것임을, 또 한국 문인들이 문학의 기능을 크게 행사하였음을 알게 된다. 한국 현대 문학은, 문학이 작게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크게는 현실 개혁까지 꾀할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해 주었다. 동시에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것임도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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