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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론의 전개 / 잉여적 존재들의 역사철학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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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론의 전개 /잉여적 존재들의 歷史哲學

박동환 <연세대  한국철학>

 

[1]

1945년 우리나라는 일본인들의 식민주의적 지배를 벗어나 하나의 신생 독립국으로 정치사회체제를 갖추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사상과 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할 만한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제는 왜왕의 군주주의 시대가 물러가고 서구의 민주주의의 시대가 오기 때문에 서구식의 교육과 문화, 그리고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서구 세계의 제도와 사상을 배우고 추종한 지 3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는 정치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상의 방면에서도 착실한 발전을 이루어왔다는 자신감보다는 지난날에 대한 회의와 반성의 정신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그 때 우리에게는 자신의 역사적 사회적 여건을 냉철하게 자각하고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여유와 자신감이 없었고 다만 서구식의 정치 사회 교육 등의 제도와 사상을 받아들여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목표만이 있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를 잘 검토해보려고 하기보다는 경멸하였고 외국의 문화와 사조를 비판하는 정신없이 피상적으로 모방하는 데 급했다.

 

이렇게 해서 어떤 발전의 계기도 이루어지지 않자 이러한 自蔑과 모방의 사조에 대항해서 일부의 반성하는 학자와 지도층의 사람들이 이를 식민주의 史觀에서 나온 事大主義라고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망각된 민족정통의 사관을 찾아야 할 때라고 외치게 되었다. 이렇게 외래문화와 외래사조의 식민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민족사관 찾기운동은, 때마침 이루어진 70년대의 한국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해서, 다시 한번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에로 향하는 긍지를 찾도록 만들었다.이에 따라서 우리들 사이에서 때로는 외래 문물과 사상에 대한 배타주의가 일어나는 것도 보아 왔다. 사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자유세계의 책임자로서의 미국의 대외정책이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실망은 이러한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식 민주주의와 문화를 이식하려던 그들의 노력이 역사적 문화적 여건 때문에 거의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은 충격적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외래문화와 사조에 대항해서 우리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우리 자신의 正體가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주체성의 회복 운동은 지난 10년 동안에 정부와 학자와 학생들이 일치해서 이룬 우리나라 정신사에 대한 기여라고 볼 수 있다.

 

발전 도상국에 있어서 이러한 운동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혼란을 자각하면서도 이제 우리 지식인들은 적어도 한 나라의 정치 사회체제보다는 문화와 사상의 전통이 얼마나 바꾸기 어려운 깊은 뿌리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여기서 보다 개방적 마음을 가지고 반성하는 오늘의 지식인들은 근대화를 향한 이상과 뿌리 깊은 역사적 현실 사이에서 우리의 사회와 교육과 철학의 갈 길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은 동서와 남북으로부터 밀려오는 여러 가지 흐름들이 서로 부딪쳐서 일어나는 혼란의 소용돌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바로 여기서 동서의 서로 다른 문화 사상이 교차하고 남북의 이질적 사회체제가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교차와 대결의 마당에서 몇 백년 몇 천년을 끊임없이 이어져 오던 역사는 斷絶되고 이제 전통이나 관례로써는 뚫을 수 없는 새로운 시대 앞에서 우리 민족 전체가 몸부림치고 있다.

 

이 단절과 갈등의 역사적 상황이 자아내는 특수성은 우리의 정통적 史觀으로 보거나 세계사적 主流에서 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剩餘的 현상들에 속하는 것이다. 만약 오늘 우리의 역사적 상황을 재래의 정통사나 세계사적 주류의 단순한 延長이라고 생각할 때 이 단절의 특수성과 잉여성의 상황은 다만 역사로부터의 소외라고 하는 체험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어째서 우리는 이 단절과 소외의 체험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의 약진과 새로운 역사적 운명 개척의 계기로 삼을 수 없는가. 오늘 우리 민족이 체험하는 단절과 소외, 특수성과 잉여성은 과연 새로운 역사적 운명의 개척과 세계사적 주류에 참여하기 위한 약진의 계기로서 인식되고 있는가. 이 역사적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2]

이와 같이, 오늘의 한국인의 처지와 정체를 단순히 재래의 정통사관이나 세계사적 주류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단절과 갈등의 상황에 참여하는 복합적 요소들로부터 만들어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인의 정체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는 오늘의 역사적 현실에서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인이 지닌 정체의 바탕을 찾으려면 한 부분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과거에서 한 부분은 사적 주류에서 또 한 부분은 우리 민족 특유의 분단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혼합과 갈등 가운데서 방황하는 오늘의 우리 정체는, 첫째로 근세조선의 전통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어느 누구도 오늘 한국인의 현실 체험과 사상이 근세조선의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불교나 유교나 도교나 그 밖의 어떤 사상도 이제는 우리 사회 경제 문화 교육을 주름잡는 근본원리는 아니다. 지금 아무리 전통과 주체성의 회복을 강조하더라도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 경제 문화 교육의 제도와 사상이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로 우리의 정체는 서양문명이 이끄는 세계사적 조류의 급작스런 침입으로부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세계의 문명과 그 사조를 본질적으로가 아니라 피상적으로 흡수하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과학기술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전통적 도덕과 정신은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순 속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기술의 깊은 바탕에 깔려 있는 사고방식이 우리의 전통적 도덕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과학기술의 성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세 가지 원칙 또는 정신을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원자화(atomization)의 경향이다. 서구 사람들은 중세시대 말기부터 물체는 원자들로써 사회는 개인들로써 이루어진다는 생각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사상을 발전시켜 왔다. 개인주의와 개성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사회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이러한 원자론적 분석 방법의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개성의 발휘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사상은 개인의 주관과 개성의 恣意性을 제거하려는 과학의 방법과 쌍벽을 이룬다. 말하자면, 이것이 객관화(objectivization)의 경향이다.여기에 주관적인 사변과 독단보다는 실험적 조작과 객관적 사실에 의한 증거와 증명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과학기술이 인간을 기계화하고 소외시키며 물질주의를 낳는다고 하는 단편적 생각은 과학문명이 지닌 근본 방법과 정신,즉 단순한 주관과 독단의 세계를 탈피하고 초월하려는 비판정신, 따라서 인간소외와 물질주의를 극복하는 자유정신의 바탕을 보지 못하는 데서 온다.한국인이 오늘처럼 서양의 과학문명을 물질문명으로 이해하고 규탄하는 것은 그 문명의 본질이 아닌 皮相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의 문화와 정신 자체가 물질주의의 강력한 도전에 대응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사실 광복 이후에 팽배해 온 한국인의 물질주의, 황금 만능주의가 결코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에서 오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가지 사회학적 관찰로써도 분명해질 수 있다.

위의 객관화의 경향은 또한 사실판단의 대상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혼합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내포한다. 말하자면, 가치판단과 가치관이 동원될 때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non-cognitivism).서양의 과학탐구와 사회활동의 영역에서 토론이 극단적 감정의 대립을 가져오지 않고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가능한 한 구분하려는 과학방법의 사상에 그 바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위 서구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토론과 비판에 근거해 있고 극단적 감정의 대립을 가져오지 않는 토론과 비판은 오랜 과학적 사고의 전통에 근거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 한국인의 정체를 찾기 어려운 것은 위와 같은 서양사적 조류를 우리들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흡수하였는가를 정확히 결정할 수 없는 데에 있다.그러나 한국인이 오늘의 역사적 여건 때문에 위의 방법과 사상을 이해 못 한다면 그만큼 우리는 세계사적 조류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인의 정체를 결정하는 세째의 요소는 우리민족 특유의 分斷조건에서 유래한다. 민족의 남북 분열이 우리의 모든 존재 또는 생존의 근거를 좌우하며 사회, 문화, 교육, 사상의 자연스런 발전을 중단시키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고유한 전통으로부터 세계사적 조류에로의 자연스런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들이 이렇게 단절과 갈등, 특수성과 잉여성의 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남북의 단절은 우리 민족 전체가 세계사적 조류로부터 단절되게 하는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우리는 아직도 한국인의 정체를, 수백년 거슬러 올라가는 문화적 사상적 전통에서 찾기 위하여  현실적 탐구를 계속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우리의 정체는 이미 그러한 전통의 단순한 延長이 아니다. 사실, 오늘 우리의 정체는 전통으로부터, 현대문명의 근본사조로부터, 그리고 민족전체의 구체적 현실로부터 단절되어 있고, 이 단절된 부분적 요소들의 무질서한 혼합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이제부터 우리의 정체 또는 自我의 발견은 이 단절의 역사적 현실에서 출발해야 하리라.우리는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이러한 단절의 충격을 받으면서도 이 단절의 체험이 우리의 사상과 의식 또는 민족자아의 깊은 뿌리로서 받아들여지고 극복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한국인은 그 동안 불안정한 국제적 민족내적 상황에 놓여 싸우고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이 단절의 충격을 깊은 사상과 의식 속에 받아들이고 심화할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사상과 의식은 심화되기 어려웠고, 우리의 정체와 자아는 다만 임기응변적으로 표류해 왔을 뿐이다.이리하여 오늘 한국인의 정체와 자아에서 일관성을 찾기 어렵고 思想化되지 않은 단절과 분열, 그리고 원칙 없는 혼합과 절충의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역사적 상황이 처해 있는 단절과 분열, 특수성과 주변성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단절과 갈등 그리고 특수성과 주변성의 논리적 존재론적 구조는 어떠한 것인가. 전통이나 관례는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적 개념이나 기준에 의해서 체계화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계에 속한다. 말하자면, 공약수적 개념이나 기준들에 있는 세계에 속한다. 말하자면, 공약수적 개념이나 기준들에 의해서 구성되는 세계(the commensurable world)이다. 이 공약수적 개념이나 기준들에 의해서 자연과 사회와 역사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것이 인간 지성의 경향이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가 명석 판명한 단순관념에서 출발하여 세계에 관한 진리의 체계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상과 질료로써 자연계의 운동을 설명한다든지 막스 베버가 합리화의 개념을 가지고 서구 사회의 발전을 이해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만약 旣存의 공약수적 개념과 기준으로써 一貫할 수 없는 사건이나 형상 또는 주장과 체계에 부닥칠 때 우리는 단절과 갈등의 충격을 받게 된다. 오늘의 한국인이 세 가지 측면에서 단절과 충격을 겪고 있다는 것은 그 정체와 자아가 처해 있는 현실과 생각이 우리의 역사적 전통과 현대 문명의 조류와 남북대결의 상대방과 함께 가지는 어떤 공약수적 개념과 기준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우리의 정체와 자아는 우리의 문화적 사상적 전통으로부터 단절되어 있고 세계사적 주류에서 소외되어 주변 또는 잉여세계(the peripheral/marginal world)에 처해 있고 남북 대결에서 상대방과 함께 자아내는 각각의 특수성 때문에 구체적 통일적 사유에서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3으로 밀어닥친 단절과 분열, 특수성과 주변성의 충격은 유례없이 복합적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오늘 우리에게만 있는 문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의 본질은 우리의 전통과 관례, 말하자면 기존의 공약수적 개념과 기준으로써 一貫할 수 없는 현대 과학문명의 조류 그리고 남북대결의 현실에 우리가 부딪쳐 있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공약수적 개념과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the incommensurable world)에 부딪쳐 있다.

 

그러나, 공약수적 개념과 기준이 적용되는(commensurable) 세계와 적용되지 않는(incommensurable) 세계 사이의 단절은 세계 문화사 또는 사상사에서 자주 일어났었던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목적에 의한 자연관을 갈릴레오의 기계적 자연관이 어떻게 代置하며 그것이 다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설에 의해서 어떻게 止揚되었는가. 또 뉴튼의 결정론적 역학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에 의해서 어떻게 지양되었는가. 그리고 조르다노 브르노의 죽음으로 시작된 과학과 기독교 교리와의 싸움이 오늘의 우주 및 생명기원설에 이르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가. 이는 모두 전통 및 관례의 세계와 그것으로써 일관할 수 없는 세계 사이의 단절에 부딪쳐서 그 대상의 특수성과 잉여성을 지양시켜 온 생생한 역사적 실례들이다.

 

[4]

이제 문제는 오늘의 한국인이 이러한 단절의 체험 또는 그 대상의 특수성과 잉여성을 어떻게 극복하며 지양시키려고 하는가 하는 태도와 방법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단절의 체험과 그 대상의 특수성과 잉여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가능한 다음 세가지를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原型保存적 전개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이나 관례에 내포된 공약수적 개념과 기준에서 벗어나는 특수적 잉여적 현실이 다가올 때 이를 무의미한 것으로 배격하는 것이다. 또는 전통이나 관례에 이미 주어진 원형적 개념과 기준으로써 어떤 사상적 현실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태도이다. 아직도 우리들 사이에는 동양적 고전사상 가운데서 현대 과학문명 또는 현대 산업사회가 일으키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오늘의 한국인이 지녀야 할 주체성과 자아도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유산 또는 전통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우리는 청소년들의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가르쳤던가. 영세 불후의 성현의 말씀 또는 스승과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행동하고 생각하며 자아를 형성해 가도록 하였다. 옛날 성현들은 완전한 모범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르침을 능가해서 一家見을 펴거나 독자적 개성을 발휘하는 태도는 강조되지 않았다. 과거에 세워진 사상의 模型的 개념과 기준이 뒤에 오는 사람들의 체험과 개성에 의해서 끊임없이 바뀌고 변형될 수 있다는 태도와 방법이 그들의 사상사 전개에 있어서 줄거리를 이루지 못하였다.

 

도대체 이들에게는 시초에 완전한 模型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를 탈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시초에 주어진 모형이 언제나 역사 전개의 중심적 역할을 하여왔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세계에서 중국이 中心에 강자로 군림하여 있어서 약자인 周邊國들은 그들 자신의 독자적 문화 사상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이렇게 중국 문화 사상사 자체의 전개과정을 보거나 동아시아 전체의 문화 사상사의 전개과정을 바라볼 때 다 같이 중심 유도적 체계(the center-derivative system)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漢文문화와 그 사상을 탈피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처지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1446년에 한글을 만들어 퍼뜨린 이후에도 우리 민족의 독자적 한글 문화와 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우리의 정신적 자세는 어디에 얽매여 있었던 것인가. 한 나라의 독자적 말과 글을 떠나서는 그 나라 고유의 사상과 문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오늘의 상식에서 볼 때 과연 우리의 과거 사상사가 정말로 우리의 것이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것은 폭 넓은 민중의 체험에 바탕을 둔 말도 사상도 아니었다.

 

단절의 충격에 대한 둘째의 반응은 대치해 있는 兩者를 혼합, 절충, 종합하려는 태도이다. 어느 한편에도 극단으로 치우치기를 꺼리는 調和사상의 소유자로서 가지는 당연한 태도인 것 같다. 중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 세계의 사람들은 옛날부터  의 논리를 존중하여 왔다. 자연질서 및 인간문명의 사상으로서 周易과 노자의 도덕경과 유가의 중용은 다 같이  ()극에서 ()극으로 다시 이 극에서 저 극에로 돌아가는 반복의 운동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어떤 극단으로도 지나치지 않은 가운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최고의 지혜는 時中과의 조화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역시 極端이나 周邊을 발전적 계기로 인식하지 못한 中心誘導的 체계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발상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양문명으로부터 도전이 왔을 때 中體西用 또는 東道西器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을 피하고 의 자리를 취한다는 것은 흔히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본질을 철저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편을 절충하여 큰 실수를 면하자는 적당주의 태도일 수도 있다. 동양의 정신문명은 뼈대이므로 그대로 간직하고 서양의 과학문명은 응용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절충론은 다음과 같은 모순을 안고 있다. 그 하나는 서양의 과학문명이 물질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관과 독단의 일상 세계를 탈피하고 초월하려는 정신(객관정신, 자유정신)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러한 과학의 정신이 아니라 그것이 응용되어 만들어진 실제적 기술과 그 산물이라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현실주의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조성된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 한편으로, 근본이 되는 것(도덕정신)과 응용된 것(과학기술)을 이렇게 각각 東西문명의 전체적 틀에서 분리시켜 결합할 수 있다고 하는 오늘날 흔히 떠도는 발상자체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지 못하고 다만 문화적 사상적 혼돈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원형보존적 전개방식이나 혼합과 절충의 방식은 다 같이 단절에서 오는 특수성과 잉여성 또는 극단과 주변을 발전적 계기로서 인식하지 못한 데서 성립한 중심유도적 체계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주변 유도체계 (the periphery-derivative system)에 대하여 거론하려고 한다. 우리 민족이 다만 수백년 또는 수천년 동안 답습하여 온 과거라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우리 자신의 처지가 반영된 뚜렷한 주체성과 자아의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앞에서 논하였다. 중국을 가운데로 한 동아시아 세계는 중심유도적 체계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주변에 속한 나라와 백성들이 자기들의 특수적 잉여적 처지를 가지고 중심의 체계를 바꿈으로써 문화 사상사 전체에 뚜렷한 공헌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우리들이 다시 또 다른 외래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역시 과거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의 생존과 사고방식을 지배하여 온 중심유도적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변적 특수적 처지를 뚜렷이 반영하는 독자적 문화와 사상을 오늘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전통으로의 복귀 또는 혼합이나 절충 또는 배타주의와 같은 창조적이 아닌 역사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서양으로부터 온 과학과 철학을 연구한다고 하면서도 과거에 漢文문화와 사상에 얽매이듯이 다만 거기에 예속되어 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오늘까지 계속되는 문화 사상적 신민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이 오래된 중심 유도적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프랑스·영국·독일은 비록 그 문화적 원천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와 히브리에 두면서도 각각 그들 자신의 특수적 상황과 체험에서 우러난 말을 가지고 독자적 사상사를 만들어 내었다. 이와 같이 주변 유도 체계로써 이끌어져 온 서구 문화권에서는 예외자와 잉여적 존재들이 모든 방면의 역사발전과 변혁에 중요한 공헌을 하여 왔다.

 

[5]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 전통과 현대문명의 조류와 민족분열이 교차하는 삼중의 단절 속에 놓여 있다. 이 단절의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극히 피상적이어서 우리의 정체와 자아가 때로는 전통에로의 복귀, 때로는 혼합과 절충, 때로는 임기응변으로 표류하고 있다. 이렇게 표류한다면 우리 민족의 정체와 자아는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어 자라날 수 없을 것이다.

 

공약수적 개념이 적용되는 세계 (기존의 전통 및 관례의 체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사이의 단절은 반드시 오늘 우리 민족의 체험 가운데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옛날 그리스 철학자들의 추상적 사유의 체계(수학의 개념과 형이상학의 범주) 밖에는 언제나 특수적 개체들이 널려 있었다. 어떤 공약수적 개념을 가지고 세워진 체계는 추상적이어서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그 밖의 세계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그 밖의 (특수적, 잉여적) 세계는 언제나 이미 세워진 공약수적 개념의 체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때로는 공약수적 개념을 확장하거나 때로는 공약수적 개념 자체를 바꾸어서라도 그 밖의 세계를  공약수적 체계에 포함시키려는 운동이 진행된다. 한 공약수적 체계와 그 밖의 세계 사이의 단절의 경계선은 언제나 긴장되어 있고 유동적이다. 한 공약수적 체계의 확장 또는 변혁은 그 밖의 잉여 세계로부터 제기되는 문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추상적 사유와 존재양식을 벗어날 수 없는 세계에서 잉여적 존재들은 언제나 확장 또는 변혁되는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한 공약수적 체계가 그 밖의 세계(잉여적 존재)에 의해서 어떻게 확장 또는 변혁 되는가로써 주변 유도 체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공약수적 체계를 확장 또는 변혁시키는 契機가 되는 잉여적 상황들 사이에는 어떤 連繫的 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한 체계의 확장 또는 변혁의 역사는 상황 하나 하나에서 제 멋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실용주의자들의 상황주의 세계관이 잉여적 또는 문제적 상황들의 契機 連繫性에 대한 위와 같은 분석에 도달하지 못한 천박성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의 역사적 상황은 어떤 전환적 결단을 요청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불교이념에서 이조시대의 유교이념에로 넘어왔듯이 이제 또 하나의 그럴듯한 代案, 말하자면 어떤 현대철학의 체계를 대입하는 그러한 단순한 전환적 사유로서는 대응할 수 없는 시대 전환점, 곧 심각한 단절의 시대에 우리는 부딪쳐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재래의 한국사 전개의 방법, 즉 중심 유도체계로서는 적응할 수 없는 세계사적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오늘의 세계사적 상황에서 우리의 특수한 처지를 고려할 때 요청되는 생존과 사유의 태도는 주변 유도 체계라고 생각된다. 주변 유도 체계에 의해서만 비로소 잉여적 존재로서의 우리 민족의 불우한 처지에서 세계사의 발전과 변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月刊朝鮮 통권 10 198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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