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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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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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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정리

지은이 : 권호문

연대 : 조선 전기

갈래 : 전 19수의 연시조, 평시조

성격 : 유교적, 교훈적, 은일적, 전원적

표현 : 대구법, 대조법, 설의법, 과장법, 열거법

제재 : 제 7수 - 출처(出處), 제 8수 - 빈천거(貧賤居)

구성 : 작품 전체가 현실세계로부터 일탈하여 강호자연 속으로 침잠(沈潛)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적 계기에 의하여 단계적·논리적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제 1연에서는 작자의 마음이 현실세계에 이끌려(충효관념으로 나타남.) 마음의 방황을 거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 작자의 마음을 “평생에 원하느니 다만 충효(忠孝)뿐이로다 이 두일 말면 금수(禽獸)ㅣ나 다르리야 마음에 하고자 하여 십재황항(十載遑遑)하노라”라고 표현하였다.

 

제4·5연을 전후하여 현실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강호생활을 즐기자는 마음 사이의 갈등을 겪고 있음이 드러난다.

제9∼15연에 이르러서는 자연 속에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삶을 노래하였다. 이어서 자연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확고히 한다.

 

그후에, 마지막 제19연에서 “강간(江干)애 누어셔 강수(江水)보   든 서자여사(逝者如斯)�니 백세(百歲)인  멷근이료 십 년 전(十年前) 진세일념(塵世一念)이 어  녹듯 �다.”라고 끝맺는다. 즉 첫연에서의 현세에 대한 미련의 감정이 '얼음 녹듯' 해소되었음을 적고 있는 것이다.

주제 : 유교적인 깨달음의 실천과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소망

특징 : 한자 표현이 많으나, 단아하고 우아한 풍취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강호한정을 노래하고 있으면서도 맹사성이나 윤선도의 작품과는 다른 기품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 자체를 노래한다기보다는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심회가 드러나 있으나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고 자연의 감상을 통해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의의 : 퇴계 이황의 영남 학풍을 계승, 강호가도의 맥을 잇고 있고, 인간적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실감나게 제시됨

출전 : 송암집

 

 

내용 연구

 

 

평생에 원하느니 다만 충효(忠孝)뿐이로다

이 두일 말면 금수(禽獸) 나 다르리야

마음에 하고자 하여 십재황항(十載遑遑 : 10년 동안 마음이 급해 허둥지둥함)하노라 - 충효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의 노래

 

 

계교(計巧) 이렇더니[남과(서로 글재주만) 견주다 보니] 공명이 늦었세라

부급동남(負?東南 : 책을 지고 스승을 찾아 이러저리 다녀도)하여 여공불급(如恐不及 : 펴보기 어려운 뜻)하는 뜻을

세월이 물 흐르듯 하니 못 이룰까 하여라. - 등용의 좌절과 안타까움

 

 

비록 못 이뤄도 임천(林泉 : 자연의 대유)이 좋으니라

무심어조(無心魚鳥 : 공명에 욕심이 없는 물고기와 새)는 자한한(自閑閑) 하였느니

조만(早晩)에 세사(世事) 잊고 너를 좇으려 하노라 - 속세를 잊고 자연 속에 거하고자 함

 

 

강호에 놀자하니 임금를 버려야 하고

임금을 섬기자 하니 너가 즐기는 것을 어겨야 하네

혼자 갈림길(岐路)에 서서 갈 데 몰라 하노라 - 벼슬에 대한 욕망과 자연 사이에서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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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자 그만두자 하되 이 일 그만두기 어렵다

이 일 그만두면 내 몸이 한가하다

어쩌랴 엊그제 하던 일이 다 그른 줄 알겠네.

 

 

벼슬길에 나아가면 임금을 섬기며 백성에게 은덕이 미치게 하고, 들어오면 달빛 아래 고기 낚고 구름 속에서 밭을 간다네.

총명하고 밝은 군자는 이럴수록 (자연을 벗 삼는 것을) 즐기나니

하물며 부귀는 위태하니 가난한 삶을 살아가리라

 

 

청산이 시냇가에 있고, 시내 위에 안개 낀 마을이라

초당의 마음을 백구인들 제 알랴

대나무 창 고요한 밤 달 밝은데 거문고가 있구나 - 촌락의 풍경

 

 

빈궁 영달 뜬구름같이 보아 세상사 잊어두고

좋은 산 아름다운 물가에 노는 뜻을

원학[원숭이와 학은 예전에 정원에서 기르던 동물로 풍요롭고 부귀한 생활의 상징]이 내 벗 아니거늘 어느 분이 아실까 - 안분지족의 삶의 자세

 

 

바람은 절로 맑고 달은 절로 밝다

대나무 정원 솔기둥에 먼지 한 점 없으니

거문고 만 권의 책이 더욱 소쇄(맑고 깨끗하여 속되지 않은 상태)하여라 -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즐거움과 청빈한 은사의 삶

 

 

비 갠 후 밝은 달이 구름을 뚫고 소나무 끝에 날아 올라

가득한 청광이 시냇물 중에 비치거늘

어디선가 무리 잃은 갈매기 나를 좇아 오는가 - 비 갠 밤에 자연과 즐기는 물아일체의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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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과 냇물 소리 뒤섞여 빈정자로 오거늘

달빛은 눈으로 보고 물소리는 귀로 들어

들으며 보며 온 세상이 청명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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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의 가신 길이 만고에 한가지라

은(隱)커나 현(見)커나 도(道)? 어찌 다르리

일도(一道)?요 다르지 아니커니 아무 덴들 어떠리 - 어느 곳에 거하든지 도를 추구하겠다는 다짐

 

 

낚시터에 비개거늘 푸른 이끼 돛을 삼아

고기 헤아리며 낚을 뜻을 어이 하리

초승달 은낚시 되어 벽계심에 잠겼어라 - 달밤에 낚시하는 흥취

 

 

강가에 누워 저 강물 보는 뜻은

가는 것이 저(이 물과)와 같으니 백 년인들 길겠느냐

십 년 전 속세의 집착했던 마음이 얼음 녹듯 하는구나 - 속세의 집착에서 벗어남

이해와 감상

 

조선 선조 때 권호문(權好文)이 지은 연시조로 모두 19수로, 그의 문집 '송암별집 松巖別集'에 수록되어 있다. 각 연은 독자적인 주제를 개별적으로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의미상의 맥락을 가지고 구조적으로 짜여 있어 시상과 주제의 전개 및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벼슬길과 은거생활의 갈등에서부터, 속세에 미련을 갖지 않고 강호의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는 담담한 심회를 적어 내려간다. 이어서 현실세계의 티끌을 초월한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 1수에 덧보태어 끝맺었다.

작품 전체가 현실세계로부터 일탈하여 강호자연 속으로 침잠(沈潛)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적 계기에 의하여 단계적·논리적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제 1연에서는 작자의 마음이 현실세계에 이끌려(충효관념으로 나타남.) 마음의 방황을 거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 작자의 마음을 “평생에 원하느니 다만 충효(忠孝)뿐이로다 이 두일 말면 금수(禽獸)ㅣ나 다르리야 마음에 하고자 하여 십재황항(十載遑遑)하노라”라고 표현하였다.

제4·5연을 전후하여 현실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강호생활을 즐기자는 마음 사이의 갈등을 겪고 있음이 드러난다.

제9∼15연에 이르러서는 자연 속에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삶을 노래하였다. 이어서 자연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확고히 한다.

그후에, 마지막 제19연에서 “강간(江干)애 누어셔 강수(江水)보   든 서자여사(逝者如斯)�니 백세(百歲)인  멷근이료 십 년 전(十年前) 진세일념(塵世一念)이 어  녹듯 �다.”라고 끝맺는다. 즉 첫연에서의 현세에 대한 미련의 감정이 '얼음 녹듯' 해소되었음을 적고 있는 것이다.

작자는 이렇게 강호자연에 침잠하는 삶을 통해 현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해소한 듯이 선언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현실과의 끈끈한 맥에서 출발하여 현실과의 관련성에서 끝맺는 구조를 취하고 있음은, 작자의 본심이 강호에 있음이 아니라 현세에 있음을 반증한다.

즉, 현실의 근심을 잊기 위하여 처사적(處士的) 삶을 선택하지만, 무위자연의 노장적(老莊的) 삶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념으로 허구화된 자연의 공간 속에서 현세의 불평과 시름을 치유하고자 할 뿐이다.

그것은 현실이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사대부적인 은일 자세 때문이다. 제8연에 “출(出)悧면 치군택민(致君澤民) 처(處)悧면 조월경운(釣月耕雲)”이라 노래한 것에서도 이 점은 확인된다.

이러한 현세 긍정의 끈끈한 맥은 다음과 같은 심적 갈등의 내면표출이라는 문학성을 낳는다. “강호에 놀자하니 성주(聖主)를 바리례고 성주를 섬기자 하니 소락(所樂)에 어귀예라

호온자 기로(岐路)에 서서 갈 데 몰라 하노라”(제4연).

실제로 작자는 현실에 대한 불평을 바탕으로 하여 노래를 지었음을 밝힌 바 있다.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 살았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은둔하는 자세는 취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노래는 강호가도(江湖歌道)의 후기 모습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서, 자연이라는 공간을 문학 속으로 끌어들여 작자의 실존적 모습을 제시한 작품으로 문학사적 의미를 가진다. ≪참고문헌≫ 松巖別集, 閑居十八曲小考(尹榮玉, 國語國文學硏究 16, 嶺南大學校, 197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권호문(權好文)

 

1532(중종 27)∼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 안주교수(安州敎授) 규(淚)의 아들이다. 1549년(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그곳에 은거하였다.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내시교관(內侍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56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묘지는 안동부 서쪽 마감산(麻甘山)에 있다.

안동의 송암서원(松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그는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이황은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하였고, 벗 유성룡도 강호고사(江湖高士)라 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의 변형형식인 〈독락팔곡 獨樂八曲〉과 연시조인 〈한거십팔곡 閑居十八曲〉이 ≪송암집≫에 전한다. ≪참고문헌≫ 松巖集, 朝鮮詩歌史綱(趙潤濟, 博文出版社, 1937).(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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