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草蟲)
by 송화은율풀벌레 (草蟲)
베짱이는 울고 메뚜기는 뛰노는데
님을 못 뵈오니 애타는 이 내 마음
뵙게만 된다면 만나게만 된다면
이 마음 놓이련만.
저 건너 남산에 올라가 고사리나 캐어 볼까.
님을 못 뵈오니 애타는 이 내 마음
뵙게만 된다면 만나게만 된다면
이 마음 기쁘련만.
저 건너 남산에 올라 고비나 캐어 볼까.
님을 못 뵈오니 애타는 이 내 마음
뵙게만 된다면 만나게만 된다면
이 마음 편해지련만.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갈래 : 3연으로 이루어진 사언 고시 (四言古時)
성격 : 서정적, 개인적, 민요적
어조 : 소박하고 진솔하며 애상적(哀傷的) 어조
심상 : 서술적, 감각적 심상
구성 :
1연 : 풀벌레와 나의 처지 비교
2, 3연 : 임과의 만남에 대한 열망
형식면 |
시경의 대부분이 4, 6, 8구의 짝수로 구성되는 것에 비해 이 시는 7구를 하나의 연으로 구성함. |
표현면 |
시적 화자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첩어의 사용, 동일한 구절의 반복과 변조를 통해 음악적 효과와 주제를 강화함 예) 이 마음 놓이련만 - 이 마음 기쁘련만 - 이 마음 편해지련만 / 남산에 올라가 고사리나 캐어볼까 - 남산에 올라 고비나 캐어 볼까 |
내용면 |
'고사리 캐기'와 '고비 캐기' 등에서 고대 중국인의 생활상이 드러나고, 부역이나 전란으로 인한 가족 간의 이별과 슬픔이 드러남 |
제재 : 풀벌레 울음소리
주제 :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애타는 심정, 멀리 있는 임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
특징 : 진솔한 표현과 반복과 변조를 통해 주제를 강조하였다.
출전 : <시경(詩經)>
내용 연구
베짱이는 울고 메뚜기는 뛰노는데[시간적 배경이 '봄']
님을 못 뵈오니 애타는 이 내 마음[해가 바뀌어 봄이 돌아오니 풀벌레들도 즐거이 노래하는데, 멀리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니 근심을 견딜 수 없다. 서정적 자아의 심리를 풀벌레의 처지와 비교하여 읊은 대목이다.]
뵙게만 된다면 만나게만 된다면
이 마음 놓이련만[시적 화자의 솔직한 감정을 노래함 / 남편이 돌아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면, 아니 남편의 안부라도 들을 수가 있다면 남편에 대한 근심을 다소라도 떨칠 수 있겠다는, 평범한 아낙네의 소박하고 진솔한 감정이 애절하게 드러나 있다.]. - 풀벌레 소리에 남편이 그리워짐
저 건너 남산[임을 기다리는 곳 / 망부석의 이미지]에 올라가 고사리나 캐어 볼까[민중의 생활상이 반영됨 / 행여나 임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라는 속뜻이 담겨 있음].
님을 못 뵈오니 애타는 이 내 마음
뵙게만 된다면 만나게만 된다면
이 마음 기쁘련만. - 고사리를 뜯으며 남편을 기다림
저 건너 남산에 올라 고비나 캐어 볼까.[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시름을 견딜 수 없어 남산에 올라 나물을 캐며 남편이 있는 곳을 바라보려는 아내의 소박한 필체로 나타내고 있다. 여인은 남편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고사리를 캐려 함'으로 포장함으로써 오히려 소박하고 순수한 정서를 더욱 짙게 나타내고 있다.]
님을 못 뵈오니 애타는 이 내 마음
뵙게만 된다면 만나게만 된다면
이 마음 편해지련만. - 고비를 뜯으며 남편을 만나기를 고대함
참고 사항
'시경'의 대부분의 시는 감정을 직서적(상상·감상 등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함)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문학적 특징이라고 하는 상징과 비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시는 '님을 못 뵈오니 마음이 탄다. 임을 만나면 얼마나 기쁠까'라는 직서적인 의미 내용을 제 2연의 2~4행에서 변주하고 있다. 제2행은 종결 어미를 쓰지 않고 명사구인 '내 마음'으로 끝맺음으로써 여운을 느끼게 하였으며, 제 3행에서는 '만나면'을 '뵙게만 된다면, 만나게만 된다면'이라고 함으로써 반복과 변화를 통해 감정의 고조를 드러내었다. 제4행에서도 종결어미를 쓰지 않고 '이 마음 기쁘련만'이라고 함으로써 직서(상상·감상 등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함)의 거친 표현을 순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간절한 기다림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어미를 생략한다는 것은 언어의 표현상 여운을 주는 효과가 있고, 이 여운은 거친 표현을 부드럽게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풀벌레'와 '정읍사'의 비교
풀벌레 |
부역이나 전란으로 남편을 떠나 보낸 아내 |
멀리 떠나 있는 남편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
정읍사 |
행상인의 아내 |
행상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소망함 |
군자(君子) : ①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군자는 덕을 가져서 이기는 것이요, 소인은 강포한 힘으로 이겨 보려 하는 것인데….≪박종화, 임진왜란≫/소인은 재물을 주고받고 군자는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는다고 했다.≪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②예전에, 높은 벼슬에 있던 사람을 이르던 말. ③예전에, 아내가 자기 남편을 이르던 말. 군자도 시속을 따른다 어떤 사람이라도 시대적 풍습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 군자 말년에 배추 씨 장사 ①평생을 두고 남을 위하여 어질게 살아온 사람이 말년(末年)에 가서는 매우 어렵게 사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한때 떵떵거리고 잘살다가 늘그막에 가서는 망하여 볼품없이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요요 : 풀벌레 울음 소리를 가리킴
적적 : 벌레가 뛰는 모습
阜 (부종) : 날개가 채 돋지 않은 새끼 메뚜기
충충 : 불안하여 근심하는 모양
亦(역) : '만약'의 뜻으로 쓰임, 若의 뜻으로 쓰임.
구 : 만나다
항 : 가라앉다. 마음이 침착해지다.
철철 : 근심하는 모습
說(열) : 기쁘다
夷(이) : 평평하다. 여기서는 '마음이 편안함'을 말함
이해와 감상
'시경'의 '소남(召南)' 편에 실려 있는 이 작품은 외지(外地)에 나가 있는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근심에 찬 마음을 그린 시로, 평범한 민중(民衆)의 연가적(戀歌的)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이 글은 부인이 멀리 떠나가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아마도 남편은 전쟁터나 부역(賦役)에 나갔을 것이고, 세월이 가고 해가 바뀌어 봄이 오고 풀벌레들도 즐거이 노래하는데 남편은 돌아오지 않으니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남산에 올라 나물을 캐며 임 계신 곳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을 진솔하게 그렸다.
제 1연에서는 해가 바뀌어도 봄이 돌아와니 한갓 미물(微物)인 풀벌레조차도 짝을 찾아 즐거이 노래하는데, 멀리 떠난 남편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시름을 떨칠 수 없어 애태우는 아내의 심정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노래하고 있다. 봄의 풀벌레에 의해 촉발된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선경(先景) 후정(後情)의 구도를 보이고 있다. 제 2연과 제 3연은 표현 기법상 반복법을 사용하였다. 남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고자 하나 정작 목적은 나물을 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간절한 그리움을 감추고자 하는 소박하고 순수한 여성으로서의 핑계며 수단인 것이다. 그 본래의 의도는 남산에 올라 멀리서나마 남편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여인의 애틋한 소망과 기대에 있다.
이 시는 서정적 자아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그렸는데 이러한 표현법을 시경에서는 `賦(부)'라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백성들의 솔직한 감정이 들어 있는 노래 등을 패관이라는 관리가 수집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파악하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정치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소남편에 실려 있다.
<시경>의 대다수의 시들이 4구(句)를 주로 하여 6구, 8구 등 짝수 구로 구성된 작품들인 반면, 이 시는 7구를 하나의 연(聯)으로 구성하여 자유로움을 시도한, 다소 변형된 시형이다.
남송(南宋)의 성리학자인 주희(朱憙)는 <시전집(詩全集)>에서 이 시를 평하여, '남국(南國)의 사람들이 문왕의 교화를 입어 제후나 대부가 외지(外地)로 나가 있을 때 그 아내가 집에 있으면서 시물(時物)의 변화를 느끼고 남편이 그리워 읊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시의 작자를 반드시 제후나 대부의 부인이라고 못박아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남편을 객지로 떠나보낸 평범한 아낙네의 진솔한 애정의 노래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처럼 외지에 있는 남편을 그리는, 여성적이고 서민적인 정서는 이백의 오언고시(五言古詩)인 "자야오가(子夜吳歌)"나 우리 나라 삼국 시대의 백제 가요인 "정읍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심화 자료
부(賦)
《시경》의 시를 수사상(修辭上) 분류한 것인데, 서정적(抒情的)인 것도 있으나 직서묘사(直敍描寫)의 서사(敍事)를 주로 하였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서 시작된 이래 하나의 형식으로 고정되어 내려왔는데, 한대(漢代)에는 대표적 미문(美文)의 형식으로 확립되었으며, 이후 육조(六朝:5∼6세기)에 이르는 동안 성행하였다. 《문선(文選)》에서는 부를 주제별로 분류하여 경도(京都) ·교사(郊祀) ·경적(耕籍) ·전렵(懋獵) ·기행(紀行) ·유람(遊覽) ·궁전(宮殿) ·강해(江海) ·물색(物色) ·조수(鳥獸) ·지(志) ·애상(哀傷) ·논문(論文) ·음악(音樂) ·정(情)의 15종류로 나누고, 초사를 따로 소(騷)라 하였다. 시대적으로는 굴원 ·송옥(宋玉) 등의 부를 소부(騷賦)라 하여 앞에 서(序)가 있고, 뒤에 난사(亂辭)가 있다. 《순자(荀子)》 부편(賦篇)은 부의 시초로 대구(對句)를 근간(根幹)으로 하고, 혜(兮) ·이(而) 등의 조사(助詞)를 많이 붙이는 운문(韻文)으로 원래 읊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한부(漢賦)는 궁정(宮廷)문학으로서 사물(事物)을 화려하고 장대하게 직사(直寫)해서 국사(國事)를 찬송하여 읊었는데 이런 종류의 부를 사부(辭賦), 또는 고부(古賦)라 하였다. 위진(魏晉) 시대의 부는 개성적 ·서정적으로 변하여 음악과 같이 무형(無形)의 것도 소재(素材)로 삼았다. 남조(南朝)시대의 부는 묘사가 세밀해져서 귀족적 ·유희적(遊戱的)으로 변하여 신선미가 없어졌다. 육조시대(六朝時代)의 부는 사구(辭句)를 장식하여 거의 대구에 사용하였는데, 이를 변부, 또는 배부(俳賦)라 하였다.
수(隋) 및 당(唐) 초기의 부는 성률(聲律)의 규정이 엄격하고 압운(押韻)의 제한을 가한 율부(律賦)가 생기고 과거(科擧)에까지 부를 시험보게 되었으나 문학적 위치는 시(詩)에 뒤지고 말았는데, 이 시대의 부를 율부라 한다. 송대(宋代) 이후는 산문화(散文化)하여 문부(文賦)라 하는데, 청대(淸代) 강남(江南) 출신 문인들이 위진의 부풍(賦風)을 한때 재흥(再興)시키기도 하였다. 한국에도 일찍이 한학(漢學)의 발달로 부가 전래하여 고려시대부터 과거의 시험과목으로 지정되었으며, 문인들은 거의 부를 지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부(賦)
시와 산문의 요소들을 결합한 한문 문체의 하나.
'부'는 굴원(屈原:BC 343경~289경)의 〈이소 離騷〉에서부터 발달한 형식인데, 한대(BC 206~AD 220)에 와서 보다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소'(騷)와는 대조적으로 묘사와 해설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 운율은 소에 비해 자유롭고 운(韻)의 양식은 덜 제한적이었다. 긴 행, 중간 휴지(休止), 균형잡힌 대구(對句)의 요소들을 갖는다. 운의 사용은 부를 순수산문 영역에서 제외시키고 시와 산문의 중간에 놓는 요소이다.
부 형식은 한대에 사소하고 진부한 묘사를 목적으로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일부 작가들이 이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기도 했지만, 생소한 낱말이나 미사여구를 남발하고 필요없는 군더더기 말을 많이 쓴 것이 대부분이었다. 수백 년이 지나 송대(960~1279)의 구양수(歐陽修:1007~72)와 소동파(蘇東坡:1036~1101)에 이르러 그 수준이 현격히 높아졌다. 이들은 부를 시보다 산문 쪽에 더 가깝게 했으며, 철학적 관심사를 표현하는 데 이용했다.
한국의 경우는 최치원의 〈영효부 詠曉賦〉가 가장 처음 나타난 작품이며, 〈동문선〉에는 김부식의 〈아계부 啞鷄賦〉를 필두로 이규보·이인로·최자·이색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조선시대에도 부는 별다른 발전을 보지 못했다. 예외적으로 이행이 66수의 풍작을 보였고, 강희맹·김종직·박상·박은·백광홍·최립·이산해·장유·이정구·김창협 등의 작품이 간혹 보이나, 내용에 있어서 천편일률적인 진부함을 보일 뿐이었다. 영·정조 이후에는 고부(古賦)의 변형인 과부(科賦)가 과거에 출제되면서 부가 성행하게 되었다. 과부는 옛 시문 중의 한 구절을 따서 부제를 삼아 1구 6언으로 30구나 60구를 채우되, 운을 달지 않고 매 구절 넷째 글자마다 허자(虛字)를 넣어 짓는 것이다. 그러나 과부 역시 형식에 치중하여 내용이 빈약하기 쉬웠고, 사부로써 인재를 등용하는 것에 비판이 일어 큰 발전을 보지는 못했다. 과부가 필요없게 된 한말에 몇 편의 고부가 다시 등장했다가 사라졌는데 김택영·이건창·이중균·조긍섭·변영만 등의 작품이 남아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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