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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이란 무엇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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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현상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모던'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러한 표현은 조각가나 예술가뿐만 아니라 철학자들과 심지어 정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프랑스의 철학자인 리오타르(Jean Paul Ryotard) 어린이들을 위한 포스트모더니즘 해설이란 책을 쓴 적이 있다. 만약 어린이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걸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보고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고, 혹은 포스트모던 경향이 있다고 부른다.

 

'포스트(post)'란 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후에'란 뜻이다. 리오타르 자신은 어린이들을 위한 포스트모더니즘 해설에서 "'포스트'라는 말은 일종의 전환점을 말하는 것이며, 앞선 현상 뒤에 나타나는 새로운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포스트모던보다 앞선 시기를 '모던(modern)'이라는 말로 규정된다. 우리는 현대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현대의 역사 속에서 현대식 주택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현대식 의복을 입고 있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이러한 것들이 이미 지나간 시대의 것이라는 것이다. 즉 모더니즘은 한물간 유행이며 그 매력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예술 비평가인 이합 하산으로서, 그는 1970년대 중반에 현대 예술에 관한 여러 논문을 썼다. 저술을 통하여 그는 전후 예술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포스트모던'이란 단어를 만들어 냈다. 특히 도시화라든가, 대중 문화, 고도의 기술주의 등과 같은 현상들이 그가 이름 붙인 '포스트모던 예술'의 출현을 야기 시킨 근본 원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히 다양한 생활 형태를 창조해 내었다고 한 것은 그의 옳은 지적이었다. 그의 책은 발간되자 특히 미국에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을 '포스트모던'이라고 분류하기 시작했다.

 

특히 조각 분야에서는 포스트모던 건축물의 정확한 특징들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챨스 쟁크스는 그의 책에서 포스트모던 조각의 주요 특징을 '부조화의 조화'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표현으로 그가 의미하고자 했던 것은 과거에는 다양한 단계를 거쳐 발생했던 서로 다른 양식들이, 하나의 주도적인 원리나 지배적인 사상도 없이 각각 분열된 형태로서 서로 결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건축물들은 미관상 좋고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지 예술의 영역에만 적용된다면 그것에 대한 이런 분석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1980년대의 서구인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의 특징들을 잘 말해 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

 

'포스트모던(Post Modern)'이란 용어를 단번에 정확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만화경(Kaleidoscope)을 통해 바깥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다른 이들은 '햄버거와 스파게티를 함께 먹는 것'과 비교하기도 하고, 또는 '그리이스 양식의 기둥과 로마 양식의 아치, 그리고 현대식의 거울벽을 갖춘 건물을 관찰하는 것'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묘사는 '미소 띤 허무주의(Nihilism w7ith a smile)'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용어는 분명히 이전의 '모던'이라고 지칭되었던 이상과는 날카롭게 대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서부터 출발점을 잡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하버마스(Habermas)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개인적으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의 책 포스트모던 문화라는 책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일컬어 '모더니즘의 열매는 간직하면서도 모더니즘의 근원은 거부하는 사상'이라고 정의한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형성된 모더니즘 계획을 객관적인 과학, 보편적인 도덕성, 자율적인 예술 등을 그것들의 내재적 논리에 따라 발전시키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목표에 지나친 기대를 하였다. 즉 머지 않아 인간이 자연의 힘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인류가 무지와 가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리라는 기대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우며 실제로 해방되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세상이 기다린다고 기대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모더니즘의 이상들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 모든 이상들은 깨졌으며 그것들은 거의가 단지 유토피아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는 그러한 모든 기대를 일소시켰던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계몽주의의 이상향에 대한 환상을 떠나서는 전반적인 포스트모던 세계관의 어떠한 기원도 파악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과거보다 더욱 해방된 세계라고는 볼 수 없다. 3세계에서는 빈곤이 증가하고, 서방 세계에서는 대규모 실업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단지 불길한 예감과 임박한 위험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만큼 이렇게 이데올로기가 세계 전역에서 비참한 실의를 맛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와 종교에 의하여 방황하거나 구속되어 왔던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형무소들과 강제수용소들이 계속 지어지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그러한 사고 방식의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즉 모든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 강제수용소를 낳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리오타르는 그러기에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진리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엄청난 공포가 우리 세계에 존재해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체와 유일(whole and the one)'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가리켜 '신의 죽음에 대한 추도식(a mourning-process after death of God)'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제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은 일종의 심각한 비관주의적 세계관이 아닌가? 그것은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표현처럼 우리를 '절망의 선' 너머로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는 비관주의보다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는 기쁨이 존재한다. 그러나 더 이상 보편적인 진리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항상 웃으면서 인생을 즐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마도 철학자들보다는 예술가들이 더욱 상세하게 표현할 것이다. 짐 쟈무쉬(Jim Jarmusch)의 영화 <법에 의한 추락(Down by Law)>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모르는 세 명의 죄수들이 등장한다. 그 영화는 아무런 논리도 없으며, 또한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도 없다. 그러나 삶이 비록 무의미한 것으로 그려졌음에도 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세 사람은 그들의 삶을 무척 즐겁고 유쾌하게 누리고 있는 모습으로 이 영화를 끝맺는다.

 

그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미소 띤 허무주의'이다. 포스트모던은 우리 문명이 이룩해 놓은 업적들을 계속해서 누릴 것이나, 하버마스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문명의 근원은 거부할 것이다. 과거의 모든 찬란한 업적들을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치장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문화의 가치와 이상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eric Jameson)은 이와 같은 포스트모던 예술 형태를 '모방과 정신 분열(pastiche and schizofrenia)'이라는 두 단어로 규정한다(Post Modern Culture ). 이것이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며 그 주요 특징은 논리성의 상실이다. 궁극적인 목적도 없으며 보편적인 의미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슬픔이나 '절망의 선' 아래로 함몰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짐을 훌훌 벗어버린다는 기쁨이 존재한다. 지금의 현재를 즐기는 것이 미래에도 얻지 못할 목표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진리(통합적 시각)의 상실(The lose of truth), 둘째 진정한 자유와 인간성 추구(The search for true freedom & humanity), 셋째, 다원성의 진정한 위치 요구(A legitimate place for plurality)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1) 모더니즘과의 단절

 

모더니즘의 특징은 인간의 합리적 이성, 기술 문명이 역사 발전과 진보의 원동력이라 믿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연의 노예 상태에 놓인 인간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고도의 산업 사회는 그런 인본 철학을 조롱하고, 테크놀로지 발전은 거꾸로 인간을 생산라인의 부속픔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의 단절로 볼 수 있다.

 

2) 현대 서구 철학 사상의 지배적 경향

 

후기구조주의나 정신분석학, 맑스주의적인 문화이론 비판으로서 여기에 기호학이 한데 어울려 현대의 사회 문화 예술의 현상과 그 의미를 밝히려는 철학 사상 문예 이론을 통칭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서 후기구조주의란 모든 사회문화예술 현상을 구조들 간의 상대적 관계로 풀이하는 철학으로서 특히 정신분석학과 언어학을 도입하여, 예술 작품 속의 인간 무의식을 집중 조명하는 철학이다.

 

3) 전지구적 문화 현상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나 미국의 산물, 사조가 아니다. 3세계,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 전 지구촌에 팽배하는 공통적인 문화 현상이다. 따라서 중심부 문화와 변두리 문화가 상호 침투하여 국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진 게 포스트모던한 문화 현상이다. 여기에 각국의 전통 지배 문화와 대중 문화가 양념으로 추가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 또는 서구 제국주의의 문화 이론이 결코 아니다.

 

4) 모든 정치 사회(대중)문화 현상에 적용

 

문화, 건축, 미술, 음악, 영화, 사진, 대중 매체 등 다방면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적용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좌파, 우파의 어느 쪽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즉 비판이나 순응의 어느 쪽도 아니며, 단지 유용한 정치적 전략을 모순의 파라독스에서 찾는다는 특징이 있다.

 

5) 정신분석학적 언어학에 토대를 둔 인간 이해

 

인간은 언어 습득 행위로 비로소 하나의 주체로 성립된다고 하는데, 즉 나, 엄마 등의 단어를 처음 말하는 때를 주체 형성의 초기 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그 까닭은 그런 행위가 자기(/I)와 상대방(/YOU)사이에 관계의 차이가 존재함을 인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결국 주체 형성(혹은 자아 Self의 확립) 과정은 자기 이외의 '타자(The Other, 엄마/아빠 등 상대방)와의 상대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빠뜨릴 수 없는 사실은 기호가 갖는 상징적 질서(예를 들어 어른한테 존칭을 해야 하듯)에 개인이 편입된다는 것이다. 모든 기호 체계(언어/음악/그림/건축/영화 등)는 두 가지 요소로 쪼개진다. 즉 표현 형식(언어에선 글자) '기표'(시니피앙)와 그 의미 내용인 '기의'(시니피에)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기표는 '나무'라는 한글 문자이고, 기의는 그 '나무'라는 낱말의 뜻, 또는 상징(푸르다, 식물, 어떤 나무?)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모든 실재 대상(Real, 나무, 볼펜 등)은 기표들 간의 '차이'(Difference)로 대체된다는 점이다. '소나무'와 은행 나무,' '' '엄마,' '볼펜' '만년필'등의 기표상의 '차이'가 서로를 '타자'로 성립시킨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6)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존재

 

TV와 영화는 가장 촉망받는 포스트모던한 매체이다. 현실 세계는 이들이 투사하는 이미지로 구성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기술로 복제된 거짓, 비현실의 이미지로서, 수용자는 무차별하게 난사된 이미지의 리얼리티 또는 의미를 캐묻지 않게 된다. 단지 서로 다른 이미지의 '차이'를 깨닫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던한 문화 현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환영(Simulation)이 지배하는 세계, 따라서 현실보다 더욱 실감 나는 이미지를 구성하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복제, 모사, 변용, 차용 등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한다. 여기서 환영(Simulation)이라는 것은 실제하는 존재도, 원본도 없는 상태이다. 모든 것이 복제되어 그 이미지 자체만이 리얼리티로 인정된다. 모든 사물 대상이 외양 표피로 환원되며 내부적인 본질은 무시된다. 오직 어떻게 보여지는가 만이 가치를 지니는 세상이다.

 

7) 메타 내러티브 부정

 

편처럼 쪼개진 문화가 포스트모던의 진면목이다. 그래서 홍길동이나 바보 같은 영웅의 탄생, 신밧드의 모험 여행, 자아 성, 신의 승리, 누구랑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식의 이야기 투는 폐기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 공식도 구닥다리로 폐품처리된다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선 VS ,  VS 인간, 남자 VS 여자, 탄생 VS 죽음, 인간 VS 기계, 악마 VS 천사 기타 등의 이분법적인 대립 관계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제 서로 다르다는 차이, 즉 다르게 보이면 그 뿐이다. <토탈리콜>의 퀘이드, <가위손>의 에드워드를 생각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메타 내러티브(Meta Narrative)란 거대 설화 또는 큰 이야기로서, 전설이나 설화, 동화 같은 전통적인 이야기 방식을 말한다.

 

8)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은 상업적 팝문화의 결과

 

모든 문화는 이제 상품으로 팔린다. 상업주의 문화가 다양한 문화의 법칙을 조종한다. 고급/저속, 대중/순수, 전통/현대 문화의 구분은 옛날 얘기다. 대중 문화 혹은 메스 미디어 문화도 상업적 팝문화의 들러리에 머물고 만다. 각각의 팝문화는 저마다의 이미지 수사학으로 포장되어, 팔리고 보여지길 기다린다. 그들의 유일한 이미지 상품 판매 전략은 한 가지이다. 즉 이미지가 서로 다르다는 차이, 즉 다른 상품을 '타자'로 내몰아 버리고 자기의 주체성은 그 타자와의 차별/구별로 획득할 수 있다는 게 포스트 모던한 팝문화의 지배 논리이다. 당연히 각 문화 장르에서 위계 질서는 무시된다. 예를 들면,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음악회와 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는 고급/저급의 구분이 아니라 장르의 차이로 파악하는 것이다.

 

9)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움은 백과 사전식이 아닌 복사기식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식적인 새로움은 반드시 독창적인 형식은 필요 없다는 데서부터 새로워진다. 기술 복제 시대에 걸맞게 기존의 이미지/형식/코드/표상들을 복제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의 모든 예술 형식들은 낱낱이 분해 조립 재구성되어, 포스트모더니즘 이미지 수사학의 참고 자료로서만 사용할 수 있다. 이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과거와 전적으로 다른 이미지 소비패턴 형성의 촉매제이다. 왜냐면 각각의 예술 형식(예를 들어 인상주의 자연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유파 또는 상이한 시각적 형식의 영화 스타일도 마찬가지)의 고유한 코드가 갖고 있는 형식의 심오성이 모두 한데 섞여서 거꾸로 그런 다종다기한 코드의 복잡성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즉 과거 형식은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 탄생의 제물로 바쳐졌다. 그 전술을 차용(빌어옴)과 패스티쉬(Pastiche, 혼성모방 : 여러 특징을 교묘하게 섞어서 어떤 대상을 모자이크 식으로 모방)이다.

 

앤디워홀의 마릴린 몬로 포토그램 칼라복제 이미지, 모나리자의 중성적 미소 컴퓨터 프린팅, 인공셋트 위에 부활시킨 갱스터 만화의 패스티쉬 <딕트레이시>, <배트맨>등 이외에 수도 없이 많다. 하다 못해 뮤직 비디오나 TV CF의 지배적인 시각패턴 이미지 변용으로 쓰이는 흑백 모노크롬 이미지 또한 예외가 아니다.

 

10)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오락 행위이다

 

TV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완전 무전 무결한 초월적 존재이다. 인간은 테크노 미디어의 단말기이자 또 다른 수상기로 전락했다. 단지 이들이 난사하는 탄환 이미지의 목표물일 뿐이다. 그냥 눈만 뜨고 무기력하게 이미지를 소비하고 산다. 이미지에 대한 사상적 면역성은 거세되어 버렸다. 사고 패턴, 지식의 습득 행위도 달라졌다. 읽고 쓰던 앎의 행위는 보고 누르는 단순 동작으로 퇴화했다. 세기말적 현상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표현은 다른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바이러스성 미디어에 감염된 대중의 정신적 무기력, 정치적 무의식을 꼬집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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