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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 의식 - 근대성 비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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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 의식 - 근대성 비판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어떠한 사상 내용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정치, 사회, 철학적인 함의는 무엇인가? 그러한 경향성은 과거의 모든 사상 내용을 해체하는 광기 어린 춤사위에 불과한가, 아니면 또 하나의 새로운 이념적인 실험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들은 오늘날 문예 비평, 예술, 건축, 음악, 역사뿐만 아니라 철학에서도 중요한 시대적 담론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를 새 상품의 하나로 수입하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그 전위적 유행성이나 모든 사회 규범과 의식의 전통을 무조건적으로 해체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극단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맹목적으로 이를 추종하는 유행의 사상으로 받아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원주의 사회로 변해 가는 우리의 삶 속에 알게 모르게 깊이 침투되어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유행성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 침착하게 철학적인 논의를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모든 논의들이 니체에게 거대한 사상적인 빚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성계에서는 니체에 대한 원전적 논의를 진행시킨 바가 없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가 얼마나 거품적인 유행 사조에 민감한가를 진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포스트(post)' '모더니즘(modernism)'의 결합사에서 보듯이, 현대성에 대한 논쟁을 염두에 두고 '후기 현대(),' '탈현대,' 혹은 이성 중심주의에서 정립한 진리와 의미를 해체한다는 의미로 '해체주의,' 혹은 구조주의와의 연관성 때문에 '후기 구조주의,' 혹은 '탈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등 다양한 언어로 불리운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 등은 그 사상적 내용과 철학자들의 사상(문제의식)의 변천 과정과 연관해 한가지 뜻으로 규정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푸코(M.Foucault)는 스스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자라 불리워지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라캉(J.Lacan)의 철학은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 문제 의식의 경계선을 왕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상적 내용물을 검색하면서 몇 가지 유사한 흐름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표제하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917년 판비츠(R.Pannwitz)가 유럽의 위기를 진단하며 니체와 연관해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지만, 오늘날의 철학적 사조와 연관해 이를 하나의 사조로 만든 이는 리오타르(J.F.Lyotard)였다. 그는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에서 현대의 서양 문화의 위기 가운데 지식의 조건을 자리매김 하고, 모든 지식의 사변적 통일과 인간 해방의 이념이 근대 이후의 '거대 신화'라 표현하며, 과학의 진보, 보편 역사에 대한 근대적 담론에 회의와 불신을 보낸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하버마스는 그 다음 해인 1980년에 이에 응수하여 서양의 (계몽주의적)근대적 기획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서, 서양의 근대성(혹은 현대성)에 대한 논의가 사상계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다.

 

이들의 논의의 중심에 위치하는 '근대성(현대성)'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평소 '합리성,' '합리화,' '근대성,' '근대화'라는 용어를 '산업화,' '자본주의화,' '서구화'라는 용어와 더불어 많이 들어왔다. 이러한 용어들은 근대성의 이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서양의 근대성의 이념으로 첫째,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들 수 있다. 데카르트가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회의하는 존재'로 규정하면서 인간은 중세의 신 중심주의로부터 탈출하여 이제 인간 중심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인간의 삶과 행위의 규정 근거가 인간의 선험적 인식 능력으로서의 이성에 있다는 합리주의, 혹은 초월 철학적인 규정은 모든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선천적인 권리와 자율성을 보장하게 한다.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시민 사회 속의 개인의 자존권이 보장된다.

 

둘째는, 주객의 분리로 인해 자기 동일적인 이성적 자아가 확보된다. 이성적인 자아는 개인주의의 토대가 되며, 보편적인 인간 해방 사상의 토대가 되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정치적 경제적 이기주의의 출현을 야기한다.

 

셋째, 인간과 대립되는 자연은 이성의 힘(자연법칙을 아는방법)에 의해 지배받는 객관적인 대상으로 드러나고, 이에 따라 자연 과학이 발전한다. 그러나 산업 혁명과 과학 지상주의의 원동력이 되었던 기계적인 자연관은 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정신적인 뿌리로 지적되고 있다.

 

넷째는, 이성의 계몽, 혹은 자연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나오는 물질적인 생산력의 발전은 역사가 목적론적으로 발전한다는 역사 낙관주의를 낳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근대성의 기획이 하나의 허구이며, 단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화 또는 '거대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는 이성 중심주의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철학(형이상학)의 종언, 주체의 죽음,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다. 우리 시대는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듯 무덤과 종착역이라는 부정적이거나 종말론적인 기호 위에 떠있는 것일까?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 의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음의 몇 가지로 그 논의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는 이성 중심주의(logocentrisme)에 대한, 의미(진리) 또는 철학에 대한 비판이다. 존재, 본질, 실체, 진리, 시원, 목적 등의 어휘로 보편성, 전체성, 통일성, 조직성, 체계성이라는 진리 추구의 이성 중심주의의 공간을 데리다(J.Derrida)는 또한 현전 중심주의, 음성 중심주의, 남근 중심주의라고 표현한다. 음성 언어의 직접성은 문자 언어보다 오염되지 않은 기원적 사유에 가깝고, 한 집안의 가장이 아버지가 되듯이 논리적 동일성으로 진리라고 하는 하나의 중심 공간에 의미를 기록하는 정주적 사유방식을 해체하며, 그는 시공의 복합체에서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인생, 자연, 사회, 역사, 우주)는 텍스트의 저자와 독자의 상호 관계에서 다양한 해독법이 존재하듯이 의미와 무의미가 그렇게 흩어져버리는 은유의 공간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탈의미의 텍스트 이론은 지금까지 이성에 의해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해왔던 사유 뒤에 비결정의 다른 사유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형이상학, 동일성, 인과성, 확실한 진리, 최종적 의미 혹은 궁극적 목적이라는 근대의 인식론적인 가치관은 해체의 문자학으로 대체된다.

 

둘째는 인간 주체에 대한 비판적 해체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는 존재한다"라는 회의적 사유의 마지막 결론으로 인간의 자아를 의식적, 자기 인식적 자아로 표현한 바 있다. '주체'란 의식의 산물이자, 이성의 자기 반성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이렇게 이성적인 존재자인가? 푸코는 인간이 권력의 우연적인 사회 역사적인 구성물이라고 보면서, 즉 지식과 권력의 규율 장치들(시대적 담론)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면서, 이성과 해방, 진보의 동일시를 거부한다. 그는 감옥, 병원, 공장, 학교, 광기, 처벌, 신체, 성 등 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모든 담론 체계를 문제시하며, 이성의 배타성(예를 들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사회 구조 안의 생산적 그물망으로서의 권력의 기능을 미시물리학적으로 제시하며, 인간의 주체는 선험적, 혹은 초월적 형이상학의 구성물이 아닌 문화적 무의식적으로 의미화하는 활동의 산물임을 밝힌다. 라캉 역시 의식을 탈중심화하며,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나는 생각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곳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통해, 니체와 프로이트를 이어 인간이 무의식적 존재이며, 우리는 나의 생각과 나의 존재가 갈등을 일으키는 쪼개진 존재로 살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의식의 우월성에 의해 특권적 지위를 누리던 인간의 주체는 이제 무의식이라는 타자의 기호에 의해 자율성을 박탈당한 불투명 속에 타자적 진술로 타자적 욕망을 낯설게 기호화하며 살고 있다. 나는 하나의 타자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균열과 침식 속에,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욕망과 결핍 속에서 존재의 입벌림을 강요당하며 살게 된다. 형이상학적 주체의 해체, 의식적 자아의 해체는 역사, 사회, 문화, 권력, 지식, 무의식이라는 다양한 타자적 코드에 의해 작동된다.

 

셋째는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역사에 일반적인 법칙이 있다는 사유, 또는 현재의 사회가 과거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서양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서양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푸코는 진보의 개념 없이도 역사를 기술할 수 있으며, 데리다는 역사의 궁극적인 종점을 부정한다. 진보와 발전에 의해 기술되던 기독교적 묵시론적 역사관이 하나의 신화적 이야기였음을 밝히며, 다른 방식의 역사 읽기를 제시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호학적 기표와 기의의 차연 현상, 욕망의 정치학, 육체의 텍스트 등 다양한 문제 의식을 주제화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 진리, 의식적 자아, 역사주의가 근대적 담론이라고 상대화하며, 다원주의 속에서 리좀(수선화 뿌리)적 사유로 유동할 것을, 즉 다양한 문화 사회 제도를, 개인에 상대적 자율성을 허용하고 부분적, 파편적, 지엽적, 이질적인 것에 의미를 줌으로써 개인과 개체성, 부분 체계들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확장시켜 놓았다. 그러나 균질화, 표준화되는 소비 사회, 대중 사회 속에서 개체의 자유로운 유영(遊永)은 개체의 영적 성숙의 몫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 의식은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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