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파 ~ 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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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적 기법(panorama) : 대단히 넓은 물리적 배경이나 시간적으로 장시간에 걸친 사건들을 단일한 구절로 선택하고 압축하여 요약하는 서술 기법의 하나로서, 극적 기법이 단편 소설이나 추리 소설, 의식의 흐름 수법을 보이는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파노라마적 기법은 장편 소설, 가족사 소설, 역사 소설들에서 주요하게 사용되는 기법이다.

 


 

패러디(parody) : 일반적으로 패러디란 한 작가의 스타일이나 습관을 흉내 내어 원작을 우스꽝스럽게 개작했거나 변형시킨 작품을 가리킨다. 본질적으로 패러디는 풍자와 위트,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고, 또 이런 기법들 속에는 전대의 혹은 당대의 지배적인 신념체계 속에 내포된 억압적 특성이나 허위 의식을 폴로하려는 예술가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우리의 현대 소설 중에서 이 수법을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는 최인훈의 '구운몽', '서유기',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대한 최인훈의 동명 소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대한 전진우의 '서울,1986 여름'등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들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패턴(pattern) : 일정한 사건이나 행동, 모티프, 심리적 독백 등과 같은 소설적 요소들이 한 작품의 내부에서 '연속'되거나 '반복'될 때 그 반복되는 요소나 혹은 반복적 기교 그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때의 반복은 단순한 기계적 나열이 아니라 결정적인 하나의 계기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연쇄적이며 상승적인 반복, 즉 '의미 있는' 반복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좀더 넓게 이 용어의 개념을 확장하면, 그 자체로는 서로 다른 사건과 소설적 요소라 할지라도 플롯상의 기능이 동일할 때에는 '패턴'으로 간주된다.

 


 

페이소스(pathos) : 사전적 어의로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 또는 애상감(애상감), 비애감의 뜻을 가지는 그리스어이다. 특정한 시대.지역.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적 원칙이나 도덕적 규범을 지칭하는 에토스(ethos)와 대립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통해 파토스가 가지는 내포는 좀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정서적인 호소력'이라고 규정할 때 이 말이 지니는 예술적.문화적 현상과의 관련성이 가장 분명하게 밝혀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문학 작품이나 문학적 현상과의 관련성이 가장 분명하게 밝혀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문학 작품이나 문학적 표현에 대해 독자가 '페이소스가 있다', '페이소스가 강렬하다'라고 반응하는 것은 그 문학 작품이나 문학적 표현이 정서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이다. 다만, 파토스 또는 페이소스를 유발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는 한두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포스트 모더니즘 ( Post Modernism ) :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들은 작품의 유기적 통일성을 부정한다. 그들은 통일성이나 일관성보다는 오히려 편리성이나 임의성 또는 유희성을 더욱 설득력 있는 예술적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작품은 '잘 빚어진 항아리'가 아니라 오히려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항아리'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거들의 복귀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매우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가부장적인 모더니즘의 권위 아래에서 주변적인 위치밖에는 차지하지 못하면서 억압되었거나 무시되어 온 것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인정 받으면서 부상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무엇보다도 주변적인 것들의 부상이라는 점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

 

기성 문화에 반기를 드는 청년 문화를 비롯한 반 문화, 고답적이고 엘리트적인 고급 문화에 대항하는 대중문화, 제1 세계나 제2 세계의 문학에 도전하는 제3 세계의 문학, 가부장적 남성중심주의에 항거하는 페미니즘 문학 등이 바로 그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두 탈중심화 脫中心化 나 탈정전화脫正典化 현상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현상은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한마디로 말해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논리적인 연장이며 계승인 동시에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단절이다.

 

한편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을 포함한 모더니즘의 기본 원리를 논리적으로 계승하여 극단적으로 발전 시킨다.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모더니즘에서 발견되거나, 또는 그동안 모더니즘에서 거의 무시되거나 소홀히 간주되어 오다시피 한 것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핵심적인 지배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모더니즘에서는 핵심적인 지배소로서 기능을 담당해 온 것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주변적인 위치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 핵심적인 지배소로서는 네 가지가 있는데, *상호 텍스트성 *탈 장르화 혹은 장르 확산 *자기 반영성 *대중 문화에 대한 관심등이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그동안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선을 넘는' 작업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에도 적지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사실상 포스트 모더니즘이 처음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대중 문화와의 관련성에서 였으며, 지금까지도 그것은 여전히 대중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점 중의 하나는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 놓여 있던 커다란 장벽을 허물어 버렸다는 데에 있다. 힐튼 크레머가 말하는 이른바 '속물들의 복수' 현상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 하였다. 이러한 '억압된 것의 복귀' 현상은 문화 영역의 경우 그 동안 무시되어 왔거나 소홀히 취급받아 온 장르들이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는 데서 가장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난해한 엘리트 예술보다는 더욱 대중적인 팝 아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이고 문학에서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한마디로 점잖은 전통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며, 가식적이지 않은 인간성에의 희구이며, 자연인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의 운동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적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 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고, J.라컨,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 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고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 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간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토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 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나,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현대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 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 멀 아트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 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한다. 무용에서는 토슈즈를 신었던 19세기 발레에서 맨발의 자유로움과 기법을 중시한 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운동화를 신는 포스트모던 댄스로 대중성과 개성이 중시된다. 서사(narrative), 기호학 등 비평이론의 경계와해는 공연예술에서 탈 장르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기능주의 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밋밋한 건축에서 장식과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분산적이며 옛것에 현대를 접합시킨 패러디가 유행한다.

 

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 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 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정치현상은 한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술·건축·무용·연극에서는 실험과 저항이 맞물려왔고 80년대 말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현은 한국 문학과 예술에도 포스트모던 바람을 일게 하였다. 근대나 현대는 서유럽에 비하여 짧고 급속히 이루어졌기에 시민의식과 기술산업사회가 균형을 이룰 수 없었다. 서유럽과 한국사회를 똑같이 볼 수 없는 여러 상황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서구에 존재하는 하나의 시대정신(Zeitgeist), 인식소(Episteme), 또는 패러다임(Paradime)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론적 지주로 알려지고 있는 이합 핫산(Ihab Hassan)은 1987년에 발행한 '포스트 모던한 전망 속의 다원주의'라는 저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정리한다.

 

① 불확실성(Indeterminacy)

경제학자 갈브레드가 2차 대전 이후의 서구세계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지은 것처럼 과학분야에서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의 「불확실성의 원리」, 토마스 쿤(Thomas S. Khun)의 「패러다임」, 폴회이에르 벤드의 「과학의 다다이즘」등이 대두되면서 사회 각분야에서 상대주의적이고 불확정적인 세계관이 주류를 이루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 사업이자 무정부주의는 법과 질서의 대안보다 훨씬 인도적이며 발전을 고무시켜 준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변화와 실험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영역에서조차도 즐거운 실험을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신 다다이스트"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유파가 아니라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조의 견해, 그리고 문학과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개방성, 해체, 반항, 변용, 다원성, 이단의 정신 등의 불확정적인 이론들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단편화(Fragmentation)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적, 인식론적 종합을 거부하고 총체성을 오명으로 여긴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는 유명한 글의 결론 부분에서 "총체성에 선전 포고를 하자. 제시할 수 없는 것에 증인이 되자, 차이를 활성화하여 차이의 명예를 구해내자"고 주장한다.

 

확신, 차이, 변증의 시대가 되며 몽따지 수법, 꼴라쥬 등의 기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은유와 환유가 중요시되고 역설, 배리, 병렬결합이 자주 등장하는 정신분석적 시대가 도래한다.

 

③ 탈 경전화(Decanonization)

리오타르는 현대사회를 지배담론(Masternarrative)의 탈 권위와 붕괴의 시대라고 지적하며 그 대신 소수의 담화이며 언어게임의 이질성을 보존하는 소설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 체계인 진리, 주체, 초월적 이성 등을 거부하고 규범과 경전에 대한 도전은 엘리트주의, 남성우선주의를 부인할 뿐 아니라 대중의 참여와 비평을 유도하며, 대중문화, 여성문화, 민중미술, 제3세계의 예술, 소수민족 예술, 노동자 예술, 이방인의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의 대중 예술이 주류를 이루게 한다.

 

④ 재현 불가능성(Unrepresentability)

장르가 붕괴되고 혼합되는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모방을 거부하고 예술의 한계를 추구하며 소모를 즐기고 침묵 속에 존재하면서 예술고유의 재현(Representation)양식을 문제시하여 반리얼리즘의 성격을 가른다. 리오타르는 동시의 상황은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변증법적인 종합적 분석대신 구대 불가사이를 인정한 칸트의 '숭고미(Sublime)'의 개념을 증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대 기술 문화의 무형태성, 공해, 절대 등의 본질은 본질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해 가는 것이며 좋은 형식들이 주는 위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재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⑤ 혼성모방(Hybridization)

풍자적, 조롱적 모방, 우스운 모방을 포함하는 것으로 장르의식의 붕괴와 혼합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은 다원적이고 확산적이며 논리를 무시하는 유동적인 현상황에 맞추기 위한 전략으로 문학에서는 '뉴 리얼리즘', '논픽션 소설'등으로 나타나서 허구와 사실이 두드러지게 배합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에 대한 다른 개념을 보완하다. 지속과 단절, 고급 문화와 저급문화가 혼합되고 현재 속에서 과거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확장시키게 된다. 다원적인 현재 속에서 모든 형식들은 현재와 현재가 아닌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작용하여 현재와 과거의 동시성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공간 상호성 즉 병렬적, 수평적, 평등적 공간의 확산을 통한 공동체 의식도 얻게 된다.

 

⑥ 대중주의(Populism)

고급문화와 본격 모더니즘에 대한 적대감이 역력히 드러나며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마르쉘 뒤상의 기성풍 이론은 예술의 기존 관념을 깬 것으로 '이미 만들어진' 즉 주변의 흔한 대상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창조하였고 앤디워홀은 스프깡통, 브릴로 상자, 슈퍼맨 만화 등 대중적인 사물을 이용하여 혼합 모방기법을 연출하였다. 또한 화가인 라우센버그에게서 재미있는 것은 도시의 상업적인 추함에 영원성과 자연의 불변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는 도시 일상의 재료들을 즐겁게, 그리고 전적으로 수용한다. 그에게는 도시의 추한 면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⑦ 행위(Performance)와 참여(Participation)

포스트모더니즘은 직접 행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며 행위로 연출되기를 기대한다. 예술은 행위를 통하여 시간, 공간, 또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완성된다.

 

요즈음은 예술의 여러 가지 경향을 관통하는 인식들은 '놀이'라는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엄격한 통제와 인간관계의 틀을 버리고 우연의 작용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술에서도 구도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 되었고 존재하고 의미하기보다는 작용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⑧ 보편내재성(Immensity)

앞서 지적한 불확실성의 분산은 거대한 확산을 이룬다. 보편 재재성의 경향은 율동, 상호작용, 의사소통, 상호의존, 상호침투 등의 잡다한 개념들에 의해 드러나는데 이러한 개념들 속에서 가치관의 세계화, 보편화 경향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이미 아놀드 토인비의 영혼화, 어비 다드로즈의 개념화, 빅 인스트홀러의 무상화, 칼 마르크스의 역사화 한 자연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와 같이 상징을 통해 인간의 정신자체를 일반화하려는 정신적인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인간은 새로운 통신수단과 전자매체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의식과 정신의 끊임없는 확장을 경험한다.

최초에 발행된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에서 마이클 뉴만(Michael∼Newman)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창조방법을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로 분류한다.

 

트랜스아방가르드, 저자의 죽음, 알레고리, 도취와 불가사의, 모조, 패러디, 브리콜라주(Bricolage)등 또한 어떤 학자들은 패러디(린다 허치언), 모조 (보드리야르), 차용 (레오 스타인보그), 그리고 혼성모방 (프레드릭 제임슨)등을 주요 창조방법이나 특성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조전략을 정리하면 재현, 패러디, 이중 코드, 전도된 아방가르드 등으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① 재현(representation)

포스트 모던 세계에서는 삶이 재현에 의해 완전히 매개되어 있다. 근.현대를 지나면서 세계는 인공위성, 컴퓨터 출현으로 벤야민이 말한 '기계적 복제의 시대' 를 훨씬 앞지를 만큼 고도로 발전되어 왔다. 이에 대해 현대문화가 내재적으로 재현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정도로 재현의 위기상태에 놓여 있다는 논의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데리다의 재현으로부터의 '도피 불가능성'과 푸코의 인식론 속에 밀착되어 있는 전통적 재현에 관한 비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재현은 불가피하다고 보여진다.

 

포스트모던의 재현은 리얼리즘처럼 소박하고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얼리티는 어떻게 의미될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문제시한다. 즉 그것은 리얼리즘을 말소시키거나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식적으로 재현의 존재의미를 일깨우는 것, 다시 말해 리얼리즘을 분해하여 재창조하는 것이지 리얼리즘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전략들은 매체를 투명명료성과 언어와 세계간의 혹은 기호와 관련 물과의 자연적이고 직접적 결합을 추구하는 리얼리즘적 재현을 비판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물론 이 같은 전략은 모더니즘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경우, 매체의 능력과 의미체계의 자기충족성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지시대상에 치명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목적하는 바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양자의 힘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리얼리즘의 투명성과 모더니즘의 반성적 반응을 비본성화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재현의 불협화음적 책략이 된다.

 

이처럼 리얼리즘의 현실반영, 모더니즘의 자율성을 문제시하고 '비교조화(dedoxifing)'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재현은 예술과 세계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한다. 터부시 되어오던 전략들을 소환하면서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재현의 패러디와 재차용(reaappropriation)을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재현의 역사 자체를 예술의 담론과 세계의 담론 사이에 놓인 경계선이 포스트모던 이론과 실천 속에서는 상호 침범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② 패러디(parody)

패러디(때로는 아이러닉한 인용, 혼성, 모방, 차용 또는 상호 텍스트성)는 포스트모던의 지지자나 반대자를 가릴 것 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요체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은 패러디에 관심을 기울여 재현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방식으로 과거의 이미지들을 발굴해 내는 행위에 주력해왔다. 솔로몬 거더우(Solomon Godeau)의 표현처럼, 뒤샹의 모더니즘적 'ready-made' 는 이제 포스트모던의 'already-made'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예술을 패러디화하는 것은 '향수'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현재의 표상들이 과거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지속성과 차이를 함께 지닌 이념적인 결과로서 유래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패러디는 또한 예술적 독창성과 유일무이성 그리고 자본주의의 소유권, 재산권에 관한 개념들 같은 인본주의적 관점을 검증한다. 패러디(어떤 복제의 형식과 더불어)에 의해 희소성이 있고 유일하며, (상업적으로)가치 있는 진품성은 여지없이 의문시된다. 이것은 예술이 이제 그 자체의 의미나 가치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패러디 작품은 '재현의 정치학' 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포스트모던 패러디에서 공인된 관점은 아니다. 지배적인 해석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과거 형식들을 자유롭고, 장식적이며, 반역사적인 방식으로 인용할 수 있게 만들뿐만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각종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현사회의 가장 적절한 문화적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패러디를 '재현의 정치학'이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핼 포스터(Hal Foster)에 따르면, 혼성모방 (pastiche) 은 신보수주의적 포스트모던의 '전형적 기호'가 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맥락과 연속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상호 모순적인 '예술작품과 생산양식'을 허황되게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린다허치언은 포스트모던 패러디는 그것이 인용하는 과거 재현물의 맥락을 부정하지 않으며, 우리가 오늘날 불가피하게 과거와 유리되어 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 아이러니를 사용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현재는 과거의 지속이며 다만 거기에는 역사가 빚어낸 아이러닉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던 패러디에는 모순적 형식들을 일거에 해결하지 못하지만, 그러한 모순을 밝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모순은 재현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일깨워주는 작품 속에서 발견된다. 다시 말해 허치언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반대하는 리얼리즘 관습에 의존하여 재현의 복합성과 그 밑에 깔린 정치성을 나타내는 것을 포스트모던 패러디라 말하면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현의 정치학'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③ 이중 코드(plural coding)

이중 코드는 주로 건축분야에서 사용되는 전략적 특성이긴 하지만 그 일반적인 원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보다 구체적으로 부각시키므로 그것이 어떠한 전략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포스트모던 건축에서는 다원적인 상징적 차원들을 재 도입하고 부호체계를 혼합시키며, 지방 특유의 언어들과 지역 전통을 도용하는 행위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젠크스(Charles Jencks)는 건축가들에게 두 방향, 즉 '서서히 변화하는 전통적인 부호체계와 한 이웃이 갖고 있는 특수한 민족적 의미라는 방향 하나와 빠르게 변화하는 건축상의 유행과 전문주의의 부호체계라는 또 다른 방향을 향하여' 동시에 바라볼 것을 제시한다. 즉 젠크스는 민족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 의미와 유행,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의 괴리를 좁힐 수 있는 예술의 방식을 모색했던 것이다.

 

포스트모던 건축에서 가장 뚜렷하고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다원주의 형식은 과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모더니즘 예술이 고전적인 것을 추방하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는 데 고무되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은 역사적 스타일과 기법을 복원하고 재창조하는 새로운 의지를 보여준다. 젠크스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건축언어의 상대성에서 진일보한 결과라고 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서 주목을 끌어왔던 다양한 형식의 부활주의 속에서, 우리는 건축의 동시적 맥락뿐만 아니라 일시적이며 동시적 맥락을 충족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젠크스는 현대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 기능적인 것과 장식적인 것, 가시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의 조화를 기대하면서 그가 말한 '진보적 절충주의'의 시대를 보다 낙관적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진보적 절충주의'속에는 "다른 종류의 의미들이 정신과 육체 같은 상반된 기능을 추구하면서 상호 관계하고 상호 교호할 수 있도록"하는 다가치성이 내포된다고 설명하였다.

 

이중코드는 맥락에의 관심과 역사에의 관심을 의미심장하게 엇물리게 한다. 젠크스의 이중코드가 역사적 이원성을 일원화시킨다면, 케네스 프램턴 (Kenneth Frampton)은 맥락의 이원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케내스 프램턴은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라는 글 속에서 문화적 차이가 국제적인 건축문법의 획일성으로 사라지는 경향을 저지하는 건축을 구상한다. 프램턴에 따르면 '비판적 지역주의'란 모던 건축 빌딩 형식에 반대하거나 그 속에서 지역적 특수성을 발전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프램턴은 이런 지역주의 형식을 산업 사회 이전의 모델이나 빌딩 설계 방법으로 회귀시키는 단순한 과거에의 동경 행위와 조심스럽게 구별짓는다. 그에 따르면 이 지역주의는 '비판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것과 전통적인 것을 새롭게 결합시키는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특수한 지역성의 언어는 모더니즘 속에서 일찌기 발견된 것이라 할지라도 지역 전통은 물론이고 지역의 풍토나 지질에 관한 문제를 감안한 새로운 것과 전통적인 것의 이중 코드를 나타냄으로써 생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젠크스와 마찬가지로 프램턴은 현대예술의 추상을 전통적으로 서구 합리성 인식론적 규율과 결합되었던 시각의미의 야만적 지배를 가져다준 결과로 파악한다. 그리하여 그는 '읽히는' 빌딩을 확산시키고, 빛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의 세기를 조절하는 등 의미의 범위를 넓히는 '저항의 건축'을 강조했던 것이다.

 

④ 전도된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아방가르드에 대한 포스트 모던적 태도는 상반되게 나타난다. 하나는 철저하게 아방가르드를 거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아방가르드의 전략과 이상을 실질적으로 재포착하고 고도화시키려는 입장이다.

 

본래 아방가르드의 개념은 모더니즘의 핵심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에 관한 많은 설명들은 아방가르드의 초점의 범위를 미리 앞질러 가버렸다.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은 미적 형식에서 이념적 물질적 계기를 발전시켰고 미술에 있어 창조를 "제조"로 작가를 "생산자"로 대체하는 개념과 기능의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아방가르는 점차로 미학과 정치적 영역의 분리, 즉 초기의 아방가르드의 정치적인 도전들이 예술가 개인의 형식적 실험의 제한된 탐구로 떨어져 분리의 입장으로 후퇴했다. 이 같은 정치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의 의도된 분리의 정당화는 키치, 대중문화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양식으로 전개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양상을 비판하며 아방가르드가 경멸해온 대중문화에 대해 귀족적으로 거리를 유지해온 태도를 가차없이 버린다. 이것은 귀치와 대중문화의 수용을 의미한다.

 

앤디워홀과 로이 리히텐스타인 같은 팝작품이 그 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아방가르드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전략적으로 수용된다. 19세기 후반구의 예술적, 사회적 편견에 대해 구체적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태도가 문화적으로 점차 보편화되면서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혁신적 의도를 지닌 예술 조류를 지칭하는 의미가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loi)는「아방가르드의 이론」이란 저서에서 아방가르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적극적 행동주의(Activism) - 행동, 다이너미즘, 전진, 탐험정신

둘째, 대립의식(Antagonism) - 역사적 사회적 기본질서에 대한 대립의식, 반전통주의

셋째, 허무주의(Nihilism) - 파괴성, 유치함, 극단적 행동

넷째, 불안(Agonism) - 낭만적 불안, 긴장, 희생, 정신적 패배주의

다섯째, 미래주의(Futurism) - 미래의 예술에 대한 예견이나 예고

 

위의 특성들 중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의 특성들과 공통적으로 보인다. 특히 대립의식은 모더니즘에 저항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상당부분 공통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아방가드로와 숭고미의 결합을 요구한 리오타르 역시 모더니즘 에너지의 개개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종국의 모더니즘이 아니라 발생기의 상태에 있는 모더니즘이며 이러한 상태는 지속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잔 피카소,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말게비치, 뒤샹과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에 의해 고양론 모더니즘의 원리에 대해 탐구하면서 "아방가르드의 실제적 진행은 모더니티의 가정들을 파고드는 탐색의 길고, 완고하고, 고도로 책임 있는 노동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다원화되고 있고 대중문화는 그러한 사회에서 커다란 위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는 대중문화를 인위적인 입장에서 거부하는 식의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때이다. 대중 매체에 의해 문화가 형성되고 소멸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아방가르드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하게 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리얼리즘과 재현성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는 점에서 또한 모더니즘과 매우 유사한 입장을 갖는다. 리얼리즘의 여러 특징 가운데서도 특히 모방이론에 근거하는 재현성은 모더니즘을 리얼리즘과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이다. 낭만주의 전통에 입각한 작품을 가리켜 '아름다운 거짓말'로 간주하던 리얼리즘의 작가들은 객관적으로 모방하거나 반영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예술적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재현성에 대한 회의는 모더니즘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 한결 더 첨예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리얼리스트들과는 달리 자연이나 우주 또는 삶의 실재에 대하여 그렇게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다.

 

실제 세계보다는 오히려 창조된 세계를 더 중시하는 그들은 실제가 예술적 창조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포스트 모더니즘이 보여주는 반리얼리즘적 입장과 비재현성에 대한 강조는 무엇 보다도 자기 반영성,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메타 픽션에서 잘 나타난다. 흔히 포스트 모더니스트 들로 범주화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러한 자기 반영적 메타픽션을 매우 중요한 쟝르로 간주한다. 그러나 자기 반영적 실험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칭찬보다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다. 로버트 올터는 [부분적인 마술]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극도의 실험성을 가리켜 '자유'가 아니라 '방종'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스트들이라는 거인에서 태어난 난쟁이 후예들로서 삶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자신의 예술을 통한 일종의 예술적 자위 행위의 희열에 탐닉해 있다"고 주장한다.

 

기성 전통과 인습에 대한 심각한 도전과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은 권위나 중심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20세기 현대에 만연되어 있는 혼돈과 무질서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권위나 중심에 의존 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모더니즘은 형식이나 기교면에서는 매우 급진적이고 때로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내용이나 주제면에서는 여전히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성격이다.

 

모더니즘의 경우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장르는 마치 군대의 계급이나 천사의 계급 조직처럼 서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 이러한 장르에 놓여 있던 높은 장벽이 무너지고 각각의 장르가 서로 혼합되고 결합되기 시작 하였다. 레슬리 피들러가 말하는 이른바 '경계선을 넘고 간격을 좁히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탈장르화' 또는 '장르확산'으로 잘 알려진 현상이다.

 

고급 예술이 지향하는 진지성과 엘리트주의적인 특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동안 구체적인 일상적 삶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던 예술을 삶 속에 끌어들이고자 한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들은 '예술을 삶 속에 통합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심미적 목표로 삼았다. 특히 맨 선두에 서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는 일종의 예술적 게릴라에 해당되는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아방가르드의 특성과 같다. 그래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네오 아방가르드 '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논리적 계승이며 발전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단절이고, 야누스처럼 두 개의 상이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문지방에 선'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19세기를 마감하는 분수령에서 매슈 아놀드가 느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한 세계는 이미 사멸되고 다른 세계는 아직 새로이 태어나기에는 무력한 두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정치현상은 우리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출처 : http://myhome.shinbiro.com/~jmjh/wah-postmodernism.html)


표상(emblem) : 성격 창조(characterization)를 위해 사용되는 특수한 장치. 예컨대, 표상은 그 인물에 속하는 물건, 옷 입고 말하는 방법, 이름,표정,인물이 살고 있는 장소 등등 인물의 신원과 자질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성격 묘사의 일종이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 소리에 허 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 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중략)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 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했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어둑서니 같이 어둡던 허 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 졌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이 글은 인물들의 신원을 확인시키는 표상이 잘 나타난 사례이다. 장돌뱅이이면서 왼손잡이인 허 생원은 삶의 중심에서 떠밀려 나가 겉도는 인물, 왼손잡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까지도 수모를 겼는 인물로 부각된다. 또 한편으로, 같은 왼손잡이로서의 동이와의 연대감은 이들 두 인물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독자들의 추측을 강하게 유발시켜 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의 왼손잡이 표상은, 두 인물들의 신원상의 유대성을 확인시켜 주는 상징적인 장치인 셈이다. 이범선은 '오발탄'에 나오는 "가자!"나, 윤흥길의 '장마'에서 보이는 "나사 암시랑토 않다."고 중얼거리는 외할머니의 독백도 일종의 언어 표상이다. 이러한 표상들은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면서 소설의 특출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 되기도 한다.

 


 

풍자 : 풍자는 특히 사회가 이원적 구조를 이루고 있을 때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구사회의 도덕이나 조직이 권위를 잃지 않고 잔존할 때 신사회의 도덕이나 조직이 거센 반발과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풍자가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해학과 유사하지만, 익살이 아닌 웃음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풍자는 또한 열등한 도덕적, 지적 대상과 상태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기지와 유머, 아이러니 등과 다르다. 풍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정과 개량을 위해서 대상을 비판하도 공격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이 대표적인 경우이고, 조지 오웰의 '1984'년도 이에 해당된다.

 


 

풍자문학(諷刺文學)

〔정의〕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에 관하여 조롱·멸시·분노·증오 등의 여러 정서상태를 통하여 독자를 감동시켜 이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회적 문학양식.

 

풍자는 어리석음의 폭로, 사악함에 대한 징벌을 주축으로 하는 기지(機智, wit)·조롱(嘲弄, ridicule)·반어(反語, irony)·비꼼(sarcasm)·냉소(冷笑, cynicism)·조소(嘲笑, sardonic)·욕설(辱說, invective) 등의 어조를 포괄한다.

 

따라서 문학의 어느 갈래에서나 작가가 전개하는 논의나 교훈이 선행하게 된다. 풍자문학은 유개념의 갈래에 포괄되는 하위개념의 갈래이다. 한국 문학에서는 가전체소설(假傳體小說)·천군류소설(天君類小說)이나 의인화소설·몽유록소설(夢遊錄小說), 실학파의 소설에 풍자가 행해진다.

 

그리고 일부 사대부층의 한시, 위항인의 한시와 시조, 탈춤·판소리·인형극, 하층민의 민요 등의 영역에도 나타났던 두드러진 내용적 특질이다. 흔히, 풍자는 해학과 결부시켜 설명되는데, 풍자의 웃음이 공격성을 띠는 데에 반하여 해학의 웃음은 연민을 유발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풍자문학〕 한국 문학에서의 풍자소설의 효시는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설총(薛聰)의 〈화왕계 花王戒〉와 불경을 통하여 전래된 인도의 ≪육도집경 六度集經≫ 권4의 〈원숭이와 자라이야기〉가 〈자라와 토끼〉로 정착되었다고 하는 〈귀토설화 龜兎說話〉이다.

 

〈화왕계〉는 이로써 신문왕에게 풍간(諷諫)하였다는 일화가 있어서 ≪동문선≫에는 〈풍왕서 諷王書〉라고 수록되어 있다. 이 〈화왕계〉는 조선시대에 와서 이이순(李蓬淳)의 〈화왕전 花王傳〉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귀토설화〉는 본격적인 풍자소설의 정착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짐작된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무신의 집권으로 몰락한 문인들이 심심풀이로 당(唐)·송(宋)을 전후하여 성행한 중국의 풍자소설을 애독하고, 그것을 모방하여 현실에 대하여 신랄한 풍자를 가하게 되어 풍자소설의 정착이 본궤도에 올랐다. 이것이 곧 고려시대의 가전체소설이며 의인전기체소설(擬人傳記體小說)이라고도 한다.

 

가전체소설은 의인화된 소재를 통하여 당시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의 모순 및 불합리를 계도하였다.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관념과 인간 생활에 대한 합리적 의식을 표현한 가전체문학은 경기체가(景幾體歌)와 함께 당대 사대부의 의식을 대변한 것이며, ‘傳(전)’의 형태를 취한 사실의 기록과 사물을 가탁(假託)한 허구를 결합함으로써 소설형식에 접근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임춘(林椿)의 술을 의인화하여 도피적이고 향락적인 생활과 정치적 풍토를 비판한 〈국순전 麴醇傳〉과 엽전으로 당시의 경제상을 풍자한 〈공방전 孔方傳〉, 이규보(李奎報)의 술을 의인화한 〈국선생전 麴先生傳〉, 거북을 통하여 실속 없는 인간형의 한 양상을 풍자한 〈청강사자현부전 淸江使者玄夫傳〉 등이 있다.

 

그리고 이곡(李穀)의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올바른 정치상을 희구한 〈죽부인전 竹夫人傳〉, 이첨(李詹)의 종이를 의인화한 〈저생전 楮生傳〉, 석식영암(釋息影庵)의 올챙이를 통하여 부패한 승려들의 각성을 추구한 〈정시자전 丁侍者傳〉 등이 있다.

 

조선사회에서는 소설이 도(道)에 어긋나고 덕(德)을 어지럽힌다 하여 배격하였는데, 음담패설이나 남녀상열(男女相悅)의 소재 대신 유교사상을 소재로 한 천군류와 의인류는 당대의 사회체제 및 인식에 부합하였으므로 더욱 성행하였다.

 

인간의 심성을 의인화한 천군류에는 임제(林梯)의 〈수성지 愁城誌〉를 비롯하여 정태제(鄭泰齊)의 〈천군연의 天君演義〉, 임영(林泳)의 〈의승기 義勝記〉, 정기화(鄭琦和)의 〈천군본기 天君本記(일명 心史)〉, 정창익(鄭昌翼)의 〈천군실록 天君實錄〉, 이옥(李鈺)의 〈남령전 南靈傳〉, 김우옹(金宇裵)의 〈천군전 天君傳〉이 있다.

 

마음을 의인화한 천군(天君)과, 충신형과 간신형의 인물유형을 중심으로 천군의 나라를 배경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천군소설은 뛰어난 풍자로 소설사에서 주목되는 차원 높은 작품들이다.

 

소재의 현실성이나 적극적인 시대성의 반영, 소설구성의 요건 구비 등을 갖추게 된 조선시대의 풍자소설은 사물의 의인화에서도 소재를 다양화시켰다.

 

꽃을 의인화한 남성중(南聖重)의 〈화사 花史〉와 이이순의 〈화왕전〉, 권필(權億)의 술을 의인화한 〈주사장인전 酒肆丈人傳〉과 게를 의인화한 〈곽색전 郭索傳〉, 여인의 화장용구를 의인화한 안정복(安鼎福)의 〈여용국전 女容國傳〉 등이 있으며, 동물을 의인화한 〈장끼전〉·〈별주부전 鼈注簿傳〉·〈두껍전 蟾同知傳〉·〈쥐전 鼠同知傳〉 등이 있다.

 

이들은 특히 숙종을 전후로 한 귀족문학에서 평민문학으로의 전환과 관련하여 임진·병자 두 난 동안 지배계급의 무능력을 실감하게 된 서민층의 풍자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물의 의인화는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과 같은 개화기의 소설에까지 계승된다.

 

고발이라는 풍자의 노골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몽유(夢遊)의 기법은 한국 고전문학에서 간접적인 풍자양상으로 소설의 한 유형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꿈의 형태를 빌려 자신의 불만을 마음껏 토로한 것이 몽유류소설이다.

 

김시습(金時習)의 〈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를 위시한 임제의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 심의(沈義)의 〈대관재몽유록 大觀齋夢遊錄〉, 윤계선(尹繼善)의 〈달천몽유록 達川夢遊錄〉·〈피생몽유록 皮生夢遊錄〉·〈강도몽유록 江都夢遊錄〉, 〈운영전 雲英傳〉 또는 〈유영전 柳永傳〉으로도 불리는 〈수성궁몽유록 壽聖宮夢遊錄〉, 〈금화사몽유록 金華寺夢遊錄〉·〈사수몽유록 泗水夢遊錄〉이 있다. 이 몽유류는 항시 사적 현실에 밀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따라서 작자의식도 문제시된다.

풍자문학은 기존의 권리나 윤리의 허위를 폭로하고 진실을 깨우치는 것으로부터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데까지 이르는 생생한 삶의 모습을 표상하는 문학에서는 어느 시대에나 늘 있어온 문학양식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어디까지나 제한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임에 비하여, 사회의 격변기였던 조선 후기에 와서는 사대부·위항인·하층민들의 여러 계층의 문학에서 두루 나타나는 현상으로 증폭되었다는 특질을 지닌다.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金炳淵)의 육담풍월(肉談風月)과 언문풍월(諺文風月),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는 〈토끼전〉이나 〈두껍전〉과 같은 우화소설을 필두로 〈흥부전〉이나 〈춘향전〉·〈적벽가〉 등의 판소리, 〈봉산탈춤〉의 양반춤과장이나 〈양주별산대놀이〉의 샌님과장, 유랑광대의 공연물인 인형극 제9장의 평양 감사가 꿩사냥을 나갔다가 개미한테 물려 죽는 장면 등이 모두 풍자에 해당한다.

 

이는 양반사회의 실상을 야유하고 당대 현실의 허위를 공격함으로써 지배층인 양반계층을 풍자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박지원(朴趾源)의 소설은 풍자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사대부층 주인공이 하향적으로 사회악을 풍자하는 〈양반전 兩班傳〉·〈호질 虎叱〉·〈허생전 許生傳〉 등과 하층민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상향적 풍자를 하는 〈예덕선생전 穢德先生傳〉·〈광문자전 廣文者傳〉·〈마장전 馬痺傳〉 등 두 갈래로 크게 나누어진다.

 

이들은 모두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사회체제 및 가치체계의 붕괴를 풍자를 통하여 다루었다. 자서(自序) 및 그의 아들이 쓴 〈과정록 過庭錄〉에는 박지원이 세상의 교우관계가 권세와 이익을 따르는 정태를 증오하여 〈방경각외전 放揭閣外傳〉으로 구전(九傳)을 엮어 풍자하였다고 밝혀져 있다.

 

조선 말기의 풍자소설에서는 계급의식이 무너져 평민들이 변질된 봉건사회의 내막을 투시하게 되면서 골계와 해학이 두드러지게 되고 호색풍자(好色諷刺)와 같은 대담한 소재도 다루어졌다. 〈배비장전 裵裨將傳〉·〈오유란전 烏有蘭傳〉·〈이춘풍전 李春風傳〉·〈옹고집전 雍固執傳〉·〈변강쇠전〉 등이 이에 속한다.

 

개화기에 와서는 이해조(李海朝)의 〈자유종 自由鐘〉에서 명명된 토론체소설이 다수 창작되면서 우화의 형식을 빌린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김필수(金弼秀)의 〈경세종 警世鐘〉, 몽유록의 형식을 빌린 유원표(劉元杓)의 〈몽견제갈량 夢見諸葛亮〉, 박은식(朴殷植)의 〈몽배금태조 夢拜金太祖〉, 이보다 앞선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거부오해 車夫誤解〉·〈향로방문의생 鄕老訪問醫生〉 등의 작품이 풍자문학이다.

 

이는 민족적 자각을 촉구하는 계몽적 목표에 풍자와 해학을 가미시켜 시대상을 비판하는 정치토론의 문학으로 당시 크게 유행하였다. 이들은 대화체형식과 극적 요소로 된 현실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으로서의 풍자라는 점에서 소설형식이나 소설미학의 관점에서는 미흡한 점은 있다.

 

그러나 교술적 성격의 몽유록이나 우화소설의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신체시·신소설·신파극에 이르는 평민 지식인들의 정치비판과 사회풍자를 목적으로 문학형식이 널리 차용되었다.

 

1930년대에는 식민지체제의 사회·경제적 탄압이 빚는 모순과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방법으로서 풍자적인 수법이 등장하였다. 김유정(金裕貞)의 〈소낙비〉·〈만무방〉·〈총각과 맹꽁이〉·〈가을〉과 같은 일련의 농촌사회의 궁핍화의 고통을 웃음으로 치환시켜 형상화한 현실인식의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채만식(蔡萬植)의 〈레디메이드 인생(人生)〉·〈인테리와 빈대떡〉·〈치숙 痴叔〉 등 식민지치하의 도시 속에서 경제적 고통과 지적 갈등을 그린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 작품들은 지식인이 자기풍자의 자조적인 눈으로 본 현실을 그리고 있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을 칭찬하고 칭찬 받아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가치전도(價値顚倒)는 공격성을 지닌 풍자의 단계를 넘어서는 연민을 유발시키는 비극적 아이러니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현진건(玄鎭健)의 〈빈처 貧妻〉·〈B사감(舍監)과 러브레터〉·〈운수좋은 날〉 등의 작품은 비극적 아이러니로의 전환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이 시대에는 김기림(金起林) 등의 모더니즘 시에서도 시적 자아가 도시사회의 인간소외나 현대문명의 비인간성을 풍자, 비판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 최재서(崔載瑞)의 〈풍자문학론〉과 같은 풍자문학에 대한 이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후의 문학에서는 과거에 대한 회고적 성격이나 현실체제에 대한 불만을 관찰자적 수법으로 표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 내지 미래에 대한 조망을 예시하는 불씨로서 풍자의 수법이 발전하였다. 인간의 구원 및 존재가치의 문제를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일련의 전후 문학작품들에서 풍자적 요소가 나타난다.

 

이는 도시산업화의 비인간화나 경제발전의 음영, 경직된 사회체제의 모순 등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문학이다. 이른바 도시산업화시대의 문학에서의 자아동질성 회복을 다루는 작품들이다.

 

일률적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공격을 간접화하는 우회통로로서 우화형식을 빌려오고 풍자의 본령인 웃음이 퇴화되어 있다는 특질을 보여준다.

 

풍자문학은 웃음의 쾌미가 암시하는 강력한 경계와 고발로 하여 다른 양식의 문학에 비하여 의미 부여가 강하므로 문학사에서는 한 시대의 특질을 표상하는 문학작품으로 평가한다.

 

≪참고문헌≫ 韓國文學史(趙潤濟, 深求堂, 1968), 韓國開化期小說硏究(李在銑, 一潮閣, 1972), 韓國文學史(金允植·김현, 民音社, 1973), 韓國古典小說硏究(金起東, 敎學社, 1981), 古小說通論(蘇在英, 二友出版社, 1983), 韓國近代小說史論(崔元植, 創作社, 1986), 한국모더니즘문학연구(徐俊燮, 一志社, 1988), 19세기 한국문학의 성격(徐鍾文, 19世紀韓國傳統社會의 變貌와 民衆意識,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2).(출처 : 한국민족문학대백과사전)

 


 

프로파간다 소설(propaganda novel) : 직역하면 선동(煽動) 소설이 되는데, 이는 문학의 현실적 효용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소설 유형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대체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일遁에 기초한 소설들이 이 부류에 속하게 되는데, 이 소설의 특징은 무엇보다 먼저 문학의 자립성과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로파간다 소설은 한 사회 계급, 한 유형의 삶, 혹은 특정한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에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이가를 명백하게 강요하는 성명서와 같아서, 정치나 종교, 사상 등의 선전물로 전략하기 쉬우며 문학의 심미적 기능은 외면되거나 무시된다.

 


 

플롯(plot) : 흔히 구성 또는 얽어짜기로 번역되는데, 소설 작품에서의 '사건의 틀'로 사건이 짜여져서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일컫는다. 스토리는 이야기 줄거리 자체로서 사건의 전개만을 의미하지만, 플롯은 사건이 전개되거나 반전되는 양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한 줄거리는 아니며 오히려 인과 관계의 완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에서 플롯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다섯 단계를 지니며, 현대 소설에 오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분류법은 실제로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피카레스크 소설(picaresque novel) : 악한 소설(惡漢小說) 또는 건달소설(乾達小說)이라고도 하고, 소설의 초기 형태로 보통 1인칭 서술체로, 악한이나 태생이 천한 투기꾼(스페인어로 'pícaro')이 생존을 위해 무작정 떠돌아다니고 되는 대로 살아가면서 겪는 모험을 다룬다. 악한소설은 중세의 지루하고 산만한 기사도 로맨스에 최초의 짝을 이루며, 일화적 구성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기사도 로맨스와 비슷하다. 그러나 기사도 로맨스의 주인공인 이상주의적으로 의협심이 강한 인물과는 달리 피카로는 조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명예로운 일보다는 재치로 살아보려 하는 냉소적이고 도덕관념이 없는 악한이다. 피카로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모든 사회계층, 온갖 직업의 사람들 속에서 모험을 하며, 때로는 독특한 거짓말과 사기 및 도둑질로 간신히 처벌을 모면한다. 그는 전반적인 사회규범과 관습에 대해 아무런 마음의 구속을 느끼지 않으며 어떤 사회계층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될 때에만 규범이나 관습에 따르는 척한다. 그러므로 피카로의 이야기는 사회의 위선과 부패에 대한 반어적이거나 풍자적인 표현으로, 독자에게 천하거나 신분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 관해 풍부한 관찰을 제공해준다.

 

악한소설은 스페인에서〈토르메스의 라자리요 Lazarillo de Tormes〉(1554, 불확실하지만 디에고 우르타도 데 멘도사의 작품으로 추정됨)를 계기로 시작되었는데, 가난한 소년 라자리요가 위선의 뒤에 수상쩍은 성격을 숨기고 있는 7명의 평신도와 성직자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내용으로 한 작품인데, 거리낌없는 재치로 인해 당대에 가장 널리 읽힌 책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다음에 출판된 악한소설인 마테오 알레만의 〈 알파라체의 구스만 Guzmán de Alfarache〉(1599)은 이 장르의 진정한 원형이 되었으며, 스페인 소설에서 사실주의가 주요한 경향으로 자리잡는 데 이바지했다. 제노바의 파산한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가상적 자서전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창의성과 일화의 다양성 및 인물묘사에 있어 〈토르메스의 라자리요〉보다 한층 풍부한 것으로, 역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알파라체의 구스만〉의 뒤를 이어 나온 많은 작품들 중에는 세르반테스가 피카레스크 양식으로 쓴 단편들도 있으며, 〈Rinconete y Cortadillo〉(1613)·〈개들의 대화 El Coloquio de los perros〉(1613)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프란시스코 로페스 데 우베다의 〈버릇 없는 후스티나 La picara Justina〉(1605)는 피카로가 주인들을 속이듯이 애인들을 속이는 여자 피카로의 이야기이다. 프란시스코 고메스 데 케베도의 〈 건달의 생애 Vida del Buscón〉(1626)는 이 장르의 걸작으로, 여기에서는 좀도둑과 사기꾼에 관한 심오한 심리적 묘사 밑에 도덕적 가치에 대한 깊은 관심이 깔려 있다. 〈건달의 생애〉 이후 스페인의 악한소설은 점차 모험소설로 기울어졌다.

 

한편 16세기 후반에 〈토르메스의 라자리요〉가 프랑스어·네덜란드어·영어로 번역되면서, 피카로는 다른 유럽 문학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영국의 첫 악한소설은 토머스 내시의 〈불운한 여행자:잭 윌턴의 생애 Unfortunate Traveller, or, the Life of Jacke Wilton〉(1594)였다. 독일에서 피카로는 H. J. 폰 그림멜스하우젠의 〈짐플리치시무스 Simplicissimus〉(1669)로 재현되었다. D. 디포의 〈몰 플란더스 Moll Flanders〉(1722)는 다시금 여자 피카로를 등장시켰고, 헨리 필딩의 〈조너선 와일드 Jonathan Wild〉(1725)·〈조지프 앤드루스 Joseph Andrews〉(1742)·〈톰 존스 Tom Jones〉(1749) 및 토비아스 스몰렛의 〈로더릭 랜덤 Roderick Random〉(1748)·〈방랑하는 피클 Peregrine Pickle〉(1751)·〈패덤 페르디난드 백작 Ferdinand, Count Fathom〉(1753) 등에서도 피카레스크적 요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악한소설로는 알랭 르네 르라주의 〈질 블라스 Gil Blas〉(1715~35)가 있는데, 이 작품은 스페인의 배경을 유지하면서 스페인의 잊혀진 소설들에서 사건들을 가져오고 있지만 좀더 점잖고 인간적인 피카로를 그리고 있다.

 

18세기 중반에는 좀더 엄밀하고 정교한 플롯과 좀더 세련된 인물묘사를 갖춘 사실주의 소설이 발전함에 따라, 악한소설은 예술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한소설이 온갖 계층의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얻어지는 풍자의 가능성, 여러 가지 산업 및 직업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 사실적인 언어 및 세부묘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습과 도덕에 대한 냉소적이고 초연한 탐사 등은 사실주의 소설을 풍부하게 하고 18, 19세기에 사실주의 소설이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고유한 악한소설의 요소들은 니콜라이 고골리가 쓴 〈죽은 혼 Myortvye dushi〉(1842~52),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 Huckleberry Finn〉(1884), 토마스 만의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Bekenntnisse des Hochataplers Felix Krull〉(1954) 등의 성숙한 사실주의 소설들에서 다시 등장했다.(출처 :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하드보일드 문체(Hard boiled style) : 현대의 작가들이 즐겨 구사하는 문체 양상의 한 가지이다. 흔히 헤밍웨이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하는 이 문체는, 사건을 냉정하고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유효하다. 이런 문체에 의존하는 이야기에서 화자의 개입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행동과 사건들을 주로 대화와 묘사에 의해서만 제시된다. 작가 자신의 역할을 피사체를 포착하는 카메라의 눈으로 제한시킨다는 원칙이 따른다.

 


 

해피 엔딩(happy ending) : 서사 문학에서 이야기가 우여 곡절과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행복하게 끝맺음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전근대적인 서사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현대 소설에서는 통속 소설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해피 엔딩은 사필귀정(事必歸正), 권선 징악(勸善懲惡)의 효과를 기대하는 작가의 의도된 결말 처리 방식이다.

 


 

핵 사건 : 소설에서 이야기의 주요한 흐름을 이끌어 가는 서사적 계기들을 일컫는다. 핵 사건들은 하두 가지, 혹은 여러 가지의 가능한 방향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서사적 흐름을 이끌어 나가는 분기점으로서 서사적 구조 안의 마디나 관절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핵 사건을 보조하는 작은 부분들은 주변 사건이라 한다. 핵 사건은 소설의 진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소설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플롯상에 주요하게 배치된 일련의 인물들의 행동 양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형상화(形象化) : 문학과 관련되어 사용될 때 이 용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넓은 의미로는 일정한 작가 의도의 전달이나 문학 목적의 수행을 위해 작가가 선택한 재료에 예술적 형태를 부여하는 모든 과정을 지칭한다. 좀더 좁은 의미로는 소설 내의 요소들이 획득하는 구체적이고 실감 있는 표현, 특히 그것들이 묘사나 대화 등의 극적 기법을 쭷해 제시되는 것을 지칭한다. 어떤 의미로 사용되든 이 용어는 작품 외적 요소들이 작품 내에 표현되어 있다는, 즉 소설 내에 실현된 서술은 그것이 작가의 머릿 속에 들어 있는 관념이든, 인물이나 배경과 같은 사물적 요소가 되든, 어떤 세계의 반영이라는 모방론적 문학관에서 발생한 것이다.

 


 

화자(話者) : 모든 이야기 문학에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화자는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소설 속에서 화자는 이야기의 양상과 이야기의 본질이 결정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화자의 위치에 따라서 시점이 결정되는데, 일반적으로 시점은 가장 핵심이 되는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나뉘어진다. 화자가 '나'인 경우는 1인친 시점으로, 화자가 '그', '그녀'인 경우 3인칭 시점으로, 특별한 화자를 지칭하지 않고 작가가 작품의 바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엔 전지적 시점이 된다. 화자는 '목소리'라고 불리기도 하며, 현대 소설에서는 화자의 뒤쪽에 진짜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숨어 있다고 보고 그것을 '내포된 작가'로 분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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