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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람밤부리 / 에센바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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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람밤부리 / 에센바흐


인간이라면 누구나,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대상이 있다. 그 종류는 다양하다. 그러나 애정, 그것도 정말 거짓 없는 애정이라면, 이것은 일생 동안 단 한 번밖에 경험할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것은 늙은 수렵장지기 호프 씨의 의견이었다. 이때까지 그는 여러 마리의 개를 기르고 또 그것들을 귀여워했지만, 정말 아끼고 사랑한, 아니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너무 사랑해서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개는 그에게 있어서 단 한 마리 - 크람밤부리 뿐이었다.

그는 이 개를 바샤우의 술집 '사자집'에서 견습 산지기 출신의 한 떠돌이에게서 샀다. 아니 샀다기 보다 물물 교환으로 손에 넣은 것이다. 개를 처음 본 순간 그는 벌써 개에 대한 애착에 사로잡혔고, 이 애정은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 훌륭한 개의 주인은 빈 브랜디 잔을 앞에 놓고 테이블에 붙어 앉아 술집 주인이 두 번째 잔을 공짜로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개의 주인은 눈초리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떠돌이 건달이었다. 키가 작은 사나이로 아직 나이는 젊지만 고목처럼 어두운 얼굴빛에 머리칼이 노랗고 드문드문 자란 노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입고 있는 사냥 옷은 아마 한 때 그가 했던 일의 영광을 추억하는 것이겠지만, 이제 길섶의 축축한 구덩이에서 밤을 샌 흔적이 나타나 있었다.

이 따위 천한 무리들과 접촉하는 것을 호프 씨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젊은이 옆에 자리를 잡고 말을 걸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이 험악한 사나이가 엽총과 사냥 주머니를 이미 술집 주인에게 술값 대신 잡혀 버렸고 이번에는 개를 술값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욕심 많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술집 주인은 먹이를 주어야 하는 저당물 따위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호프 씨는 개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처음엔 입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 즈음 사자집 주인이 가게에 갖다 놓은 단치히산 체리 브랜디를 한 병 가져오게 해 이 실직자에게 연거푸 따라 주었다. 이렇게 한 시간쯤 지나자 만사는 척척 해결됐다.

흥정의 미끼가 된 이 술을, 사냥꾼은 열 두 병이나 사 주었다. 부랑자는 그 대신 개를 주었다. 이 사나이의 명예를 위하여 변명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밧줄을 목에 걸 때는 그의 손이 몹시 떨려서 그 손놀림을 도저히 해낼 것 같지 않았다. 호프 씨는 끈기 있게 기다리며, 훌륭한 이 개를 마음 속으로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겨우 두 살 정도 되었을까, 털 빛은 이 개를 양도한 건달과 비슷했으나 조금 더 검은 편이었다. 이마 위에 한 줄 흰 반점이 있고 이것이 날카로운 전나무 잎처럼 좌우로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달리고 있다. 눈은 크고 까맣게 빛났으며 눈 가장자리는 아침 이슬같이 밝은 담황색 테두리가 있었다. 길고 빳빳하게 선 귀와 가늘게 내리선 콧날까지, 머리부터 발 끝까지 개의 온 몸은 어디 하나 나무랄 것이 없었다.

힘이 가득 넘치는 의연한 자태, 어떤 찬탄의 말도 미치지 못할 조각과도 견줄만한 사지였다. 기둥 같은 네 개의 발은 사슴의 몸뚱아리를 받칠 정도로 튼튼했으나 그러면서도 토끼 다리에 비해 그다지 굵지 않았다. 신에게 맹세해서 좋지만, 이 개는 어엿한 혈통을 지닌 것이 틀림없다. 기사단 소속의 독일 기사처럼 오래되고 순수한 핏줄을 이어 받았음에 틀림없다.

자신이 성사시킨 이 희한한 흥정으로 사냥꾼의 마음은 춤이라도 출 것 같았다. 그는 일어나서 실업자가 겨우 붙들어맨 밧줄을 손에 쥐고 이렇게 물었다.

"이 개 이름이 뭐지?"

"당신이 이제 이 놈 값을 치렀으니, 바로 크람밤부리라고 하죠."

"좋아, 좋아 크람밤부리! 자, 이리와. 가자, 앞으로." 그러나 아무리 부르고 휘파람을 불어도 또 끌어당겨 봐도 개는 아직 자기 주인이라고 여기는 허름한 사나이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사나이가 "자, 가라!"하고 소리치며 세차게 걷어차도 짖기만 할 뿐 몇 번이고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격렬한 다툼 끝에 호프 씨는 겨우 개를 다룰 수 있었다. 밧줄에 묶고 재갈을 채우고 나중에는 자루에 넣어 어깨에 메고 마냥 몇 시간을 걸어 자기 집으로 운반해야 했다.

거의 죽을 지경으로 얻어맞고 또 도망치려 할 때마다 가시가 달린 목걸이나 쇠사슬에 매여, 만 2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크람밤부리는 자기가 지금의 누구의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일단 완전히 복종한 다음에는 또 더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개였다. 임무 수행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부지런한 머슴, 좋은 동료, 충실한 친구 겸 문지기로서 이 개의 훌륭한 품성은 도저히 사람의 입으로 표현할 수 없고, 어떤 말이나 글로도 나타낼 수 없는 것이었다.

"저건 말만 못할 뿐이다"라는 말은 영리한 개에게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그러나 크람밤부리에게는 이 말도 들어맞지 않았다. 적어도 그 주인은 여러 가지로 이 개와 긴 얘기를 주고 받았다.

수렵장지기의 아내는 자기가 '부울리'라고 낮추어 부르는 이 개에게 짜증을 냈다. 이 여자는 곧잘 남편을 나무랐다. 늙은 아내는 하루 종일 설겆이나 세탁 또는 음식을 만들지 않으면 말 없이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다시 뜨개질을 할 즈음이면 뭐든지 지껄이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은 당연했다.

"항상 부울리하고만 말하지, 나하곤 할 말도 없느냔 말이예요, 호프? 개하고만 말하다 보니 사람과 말하는 법을 잊었나 보군요."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수렵장지기도 마음 속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아내와 무슨 얘기를 한단 말인가. 어린 아이는 아예 태어나지 않았고, 소를 기르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데다 사냥꾼이란 사람이 가축에 흥미를 가질 리도 없었다. 살아있는 가축에는 전혀 흥미가 없고 구운 고기를 식탁에 놓아도 그리 마음에 당기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영유림의 일이라든가 사냥 이야기는 아내 쪽에서 흥미가 없었다. 나중에 호프는 이 딜레마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 냈다. 크람밤부리와 얘기하는 대신 크람밤부리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한 것이다. 가는 곳마다 그가 이 개와 기쁨을 같이 한 승리, 이 개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선망, 이 개의 대가로 주겠다는 것을 그가 코웃음치며 거절한 거액의 돈, 이런 얘기들을 들려 주었던 것이다.

2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 그가 일하는 백작 댁의 안주인인 백작 부인이 사냥꾼 집에 나타났다. 그는 이 방문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 서글서글한 성품의 미모의 부인이 "호프, 내일은 백작의 생일인데..."라고 말을 꺼내자 그는 침착하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래서 마나님께서는 백작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다른 무엇보다 크람밤부리를 드리는 것이 가장 명예롭다고 여기시는군요."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호프" 백작부인은 이처럼 친절하게 뜻을 받아들이는 말을 듣고 만족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면서 감사의 말을 거듭하고 개의 값을 얼마나 주어야 할 것인지 물었다. 늙은 너구리같이 교활한 수렵장지기는 그러나 돌연 웃음을 거두고 공손하게 거리낌없이 말했다.

"마님! 만약 이 개가 성에 머문다면, 온갖 줄을 물어뜯지 않고, 사슬도 끊지 않고, 혹은 줄도 사슬도 끊지 못하고 그냥 목을 매어 죽기라도 한다면 그 때 이 개는 공짜로 마님 것입니다. 그 때는 이 개는 이미 나에게는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요."

그 개가 물어 뜯으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목매어 죽은 아니었다. 그 전에 백작 편에서 이 고집이 센 개에게 넌덜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애정으로 따르게 하려 해도 소용이 없고, 준엄하게 다루어 길들이려 해도 헛수고였다. 개는 가까이 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물려고 덤비고, 밥에는 전혀 입도 대지 않고 본래 별로 살이 붙어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더욱 야위었다.

몇 주일 후 호프는 그의 똥개를 데려가도 괜찮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가 재빨리 백작댁으로 가서 개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엄청나게 환희에 찬 재회의 장면이 연출됐다. 크람밤부리는 미친 듯 짖어대며 주인에게 뛰어들고 앞발을 주인의 가슴에 대고 노인의 눈에 흐르는 환희의 눈물을 혀로 핥았던 것이다.

이 행복한 날 밤, 주인과 개는 함께 술집으로 갔다. 사냥꾼은 의사와 관리인을 상대로 카드 놀이를 하고 크람밤부리는 주인 뒤 구석에서 졸고 있었다. 이따금 그 주인이 개 쪽을 돌아보면 아무리 깊이 잠든 듯 하다가도 개는 금방 꼬리로 마루를 두들기며 마치 "여기 대령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호프가 저도 모르게 승리의 노래라도 부르듯 "기분이 어때, 크람밤부리?"라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면, 개는 위엄과 경의에 차서 몸을 일으키고 그 밝은 눈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기운이 팔팔합니다!"

이 무렵, 백작 소유의 삼림 근처 일대에 밀렵꾼 패거리가 나타나 방약무인하게 휘저으며 숲을 마구 망가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 두목은 방탕으로 몸을 망친 사나이라는 소문이었다. 소문이 좋지 않은 어느 수상한 술집에서 브랜디를 마시는 이 사나이를 만난 나무꾼들도, 이 사나이의 뒤를 밟았지만 한 번도 붙들지 못한 삼림 감독관들도 이 두목을 가리켜 '노란 사나이'라고 불렀다. 불량배들 가운데 그를 위해 스파이 짓을 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이 패들도 역시 그를 노란 사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여태껏 착실한 사냥꾼들에게 시비를 건 녀석들 중에서도 가장 후안무치한 부류였다. 그 자신도 원래는 사냥꾼 출신이었음에 틀림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정확하게 짐승을 찾아내고, 그토록 교묘하게 자기에게 던져진 올가미들을 피할 리가 없었다.

짐승과 숲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삼림을 지키던 관계자들은 모두 격분했다. 이렇게 되자 숲에서 하찮은 잘못을 저지르고 현장에서 잡힌 사람들이 여느 때보다 혹독한 처벌을 받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난처한 것은 이런 처벌이 종종 적정선을 넘어서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동네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원성이 자자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 원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삼림 감독주임에게는 선의의 경고가 쏟아져 들어왔다. 밀렵꾼들이 기회만 있으면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맹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담하고 성질이 괄괄한 삼림 감독주임은 그런 소문을 한 귀로 흘려버렸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하게 부하들에게 잘못을 엄격하게 처벌할 것, 그로 인해 생기는 만일의 불상사는 전적으로 자기 혼자 책임을 지겠다고 공포했다.

삼림 감독주임은 특히 수렵장지기 호프에 대해 거듭거듭 직무를 엄격히 할 것을 지시하고 때로는 단호하지 못하다고 호프를 나무라기도 했다. 그러나 노인은 그 말을 듣고도 다만 웃기만 했다. 이럴 때 그가 위에서 내려다 보며 눈을 찔끔하면 크람밤부리는 커다랗게 마치 멸시하듯 하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도 그 주인도 삼림 감독주임을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삼림 감독주임은 호프에게 기품있는 사냥 기술을 가르쳐 준, 잊지 못할 사람의 아들이었다.또 호프 자신도 이 삼림 감독 주임이 어린 소년이었을 때 마찬가지로 사냥을 가르쳐 주었다. 이 소년 때문에 무척 애를 먹기도 했지만, 그는 그 노고를 지금도 기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자기가 가르친 아이가 잘 자란 것이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때문에 삼림 감독주임이 딴 사람들과 똑같이 그를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6월의 어느 아침, 그는 숲속에서 삼림 감독주임이 형벌을 가하고 있는 현장을 마주쳤다.

그곳은 잘 가꾼 보리수 숲이었다. 이 둥그런 숲은 백작 소유림 근처였고, 삼림 감독주임이 무척 아끼던 곳이었다. 꽃이 한창인 보리수 숲에 어린 소년들이 열명 씩 꽃에 덤벼든 것이다. 아이들은 마치 다람쥐처럼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타고 돌며 잡히는 가지란 가지는 몽땅 꺾어 땅에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 둘이 재빨리 이 가지를 주워 받아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삼림 감독주임이 현장에 갔을 때 바구니는 이미 반 이상 향기 그윽한 약탈품으로 채워 있었다. 삼림 감독주임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부하 삼림 감독관들에게 명령, 소년들이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마구 흔들어대 땅에 떨어지게 했다.

아이들은 얼굴이 벗겨지고, 팔뼈가 빠지거나 혹은 다리뼈가 부러져 신음하고 울면서 산림 감독주임 발 밑을 기어다녔다. 그 와중에 감독주임은 직접 바구니를 든 두 여자를 두들겨 팼다. 그 중 한 여자는 노란 사나이의 정부로 무척 방자한 여자라는 소문을 호프는 들어 알고 있었다. 산림 감독주임이 호프에게 여자들의 바구니와 머릿수건, 소년들의 모자를 증거물로 재판소에 가져가도록 지시했을 때 그의 마음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서 울어대는 죄인들 가운데 서서 삼림 감독주임이 악마 같이 광포하게 외친 그 명령은, 수렵장지기가 그에게서 들은 마지막 명령이 되고 말았다. 1주일 후 그는 또 다시 보리수 숲에서 삼림 감독주임을 만났으나 그가 만난 것은 이미 죽은 시체였다.

시체의 상태로 짐작컨대 삼림 감독주임은 죽은 후 늪과 자갈이 많은 곳을 질질 끌려와 이 장소에 버려진 것 같았다. 시체는 부러진 가지 위에 눕혀 있고 이마에 보리수 꽃을 엮은 화환이 얹혀 있었다. 가죽 멜빵은 사라지고 싸구려 끈이 가슴에 감겨 있었다. 모자는 그 옆에 놓여 있었지만 거기에도 보리수 꽃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냥 주머니는 그대로 놓고 갔지만 탄약은 모두 빼가고 그 대신 보리수 꽃을 넣어 놓았다.

삼림 감독주임의 최신형 고급 라이플이 보이지 않고 오죽잖은 헌 총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중에 피해자의 가슴에서 발견한 탄환은 감독주임의 어깨에 걸쳐 있는 이 헌 총의 총신에 꼭 들어맞는 것이었다. 호프는 이처럼 무참하게 죽은 시체를 눈 앞에 두고 경악해서 멍청하게 서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머릿속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는 다만 눈을 멀뚱하게 떠서 바라보며 처음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얼마 뒤 겨우 상황을 관찰하고 그는 말 없이 속으로 물었다. "도대체 개는 뭘 하고 있었담?"

크람밤부리는 시체의 냄새를 맡고 코를 땅에 댄 채 미친 듯 주위를 뛰어 다녔다. 캥캥 우는가 하면 소리높이 환희의 소리를 짖어대면서 두 세 번 뛰었다간 짖어대는 것이, 마치 훨씬 옛날에 사라져버린 회상을 되찾는 것 같았다...

"가자." 호프는 불렀다. "자, 가는 거야!" 크람밤부리는 그 명령에 복종했지만 무척 흥분한 표정으로 주인을 바라보며 - 이 사냥꾼이 언제나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주인님, 도대체 이게 안 보입니까? 이 냄새를 맡지 못합니까? 제발 주인님, 보세요! 자 여기로 오세요. 여기예요!" 그리고 콧등을 사냥꾼의 무릎에 대며 "따라오시겠어요?"라고 묻는 것처럼 자주 뒤를 돌아보며 시체 있는 곳으로 기어가는 것이었다. 무거운 총을 들어올려 입에 물어가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사냥꾼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별의별 억측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꼬치꼬치 캐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또 그가 당장 취해야 할 조치도 사냥개의 태도에 대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차라리 그가 발견한 그 무참한 시신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곧바로 관청에 가서 알리는 일이 시급했다. 그는 여하튼 그가 해야 할 조치를 했다.

관청에 가서 법률로 정해진 틀에 박힌 수속을 마치고, 그날 하루와 밤을 그 때문에 허비한 뒤 호프는 자기 전에 다시 개를 불러 타일렀다.

"이 봐" 그는 말했다. "지금은 벌써 경찰이 출동해 수색을 시작했어. 우리 감독 주임을 쏴 죽인 악당을 이 세상에서 잡아 없애야 하는데, 그래 이 일을 딴 사람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니... 넌 그 비열한 부랑배를 알고 있어. 놈을 알고 있단 말이야! 그러나 이건 누구한테도 알릴 수 없지. 그런 건 난 말하지 않았다. 이 내가, 바보같이... 내가 너를 사건에 휩쓸리게 하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그는 자기의 무릎 사이에 앉아 있는 크람밤부리 위에 몸을 굽혀 볼을 개의 머리에 대고 개의 고마워하는 애무의 몸짓을 받아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잠들 때까지 연방 "기분이 어때, 크람밤부리?"하고 노래를 불렀다.

범죄자들은 대개 자기의 범행 장소로 되돌아가려는 충동을 받곤 한다. 심리학자들도 그 비밀스러운 충동을 해명하려고 시도하지만 호프가 이렇게 자세한 학문적인 내용을 알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프는 개를 데리고 줄기차게 보리수 숲 근처를 뒤지고 다녔다.

삼림 감독주임이 죽은 지 열흘째 되던 날 그는 처음으로 몇 시간 동안 복수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백작의 숲에서 다음 벌채 때 베어낼 나무를 표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을 끝낸 다음 그는 다시 총을 어깨에 메고 제일 가까운 길을 택해서 숲을 가로질러 보리수 숲 근처에 있는 영유림을 향해 가려고 했다. 벚나무 울타리 옆으로 뻗어있는 산길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잎 사이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후는 다시 깊은 고요가, 한없이 깊은 고요가 주위에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별 것 아니려니 생각했으나 그래도 개가 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털을 곤두세우고 고개를 쑥 빼곤 꼬리를 곧게 세우고 울타리 한 곳을 보고 있는 것이다. 흥, 요것 봐라, 요 놈 바로 너구나! 호프는 이렇게 생각하며 나무 뒤에 몸을 감추고 노리쇠를 당겼다.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여느 때도 숨이 가빴지만 지금은 아예 숨이 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돌연 이 때 이게 무슨 기적일까! 울타리를 헤치고 노란 사나이가 보도로 나타났다. 사냥 주머니에 두 마리 어린 토끼를 매달고 어깨에는 기억에도 생생한 러시아 가죽 멜빵에 삼림 감독주임의 그 최신형 라이플을 메고 있었다. 호프는 숨은 장소에서 안전하게 이 부랑배를 쏘아 쓰러뜨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사냥꾼 호프가 아무 경고도 없이 발사할 수는 없다. 그는 날쌔게 나무 뒤에서 길로 뛰어 나오며 "손 들어, 이 나쁜 놈!"하고 외쳤다. 그리고 밀렵꾼이 대답 대신 어깨에서 총을 내리는 것을 보자 사냥꾼은 방아쇠를 당겼다. 만세, 이게 안 맞을 리 없다. 그러나 총은 탕 하는 소리 대신 찰칵 하는 소리를 내었다. 뇌관을 단 채 너무 오랫동안 축축한 숲 속 나무에 걸어놓았던 것이 문제였다. 뇌관이 젖어 점화되지 않은 것이다.

이제 그만이다, 마지막 때가 왔군... 노인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총소리가 울렸지만 그의 모자만 총탄에 구멍이 뚫려 풀숲으로 날아갔다.

상대방도 운이 나빴다. 그것이 그의 총에 장전된 마지막 총알이었다. 다음 사격을 위해서는 탄약을 꺼내야 했다.

"덤벼라!" 호프는 목이 쉬어서 그의 개에게 지시했다. "덤벼라!" 그런데 저쪽에서 "이리 와, 나에게 와! 이리 와, 크람밤부리!"하고 부드럽고 애정에 찬 소리로, 옛날에 친근했던 그 목소리로 꼬이는 것이었다.

개는 그러나 -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순식간이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크람밤부리는 첫 주인을 알아보자 재빨리 뛰어갔다. 길의 한가운데까지. 그러나 호프가 휘파람을 불자 개는 돌아 서고, 노란 사나이가 휘파람을 불자 다시 되돌아 섰다. 사냥꾼과 밀렵꾼 한 가운데서 절망에 몸부림치며, 양자를 똑 같은 거리에 둔 채 무한히 끌리면서도 동시에 그 자리에 묶여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이 가엾은 개는 절망적이고 쓸데없는 투쟁을 포기하고, 그 혼란을 깨뜨리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고뇌는 그대로 계속됐다. 짖어대고 신음하며 배를 땅에 대고 몸을 활 시위처럼 당기면서 하늘을 우러러 그의 영혼의 고통을 증언해주기를 바라듯 머리를 높이 든 채 첫 주인에게 기어가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호프는 피에 굶주리듯 잔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떨리는 손으로 새로 뇌관을 채우자, 침착하고 확실한 동작으로 다시 조준했다. 노란 사나이 또한 총구를 그에게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결판이 난다. 서로 겨누고 있는 두 사람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마음 속에 무엇이 있건 지금 서로 상대방을 겨냥하고 있는 두 사람은 그림 속 한 쌍의 저격병처럼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사냥꾼의 총알이 맞았고, 밀렵꾼의 총알은 빗나갔다.

개가 폭풍우 같은 애무의 행동으로 밀렵꾼에게 기어올라 방아쇠를 당긴 그 순간 몸이 흔들렸던 것이다. "이 개새끼!" 밀렵꾼은 중얼거리며 벌렁 나자빠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심판을 내린 사나이는 천천히 밀렵꾼에게 다가갔다. 벌써 죽었겠지, 너깐 놈 죽이는 데는 산탄 한 알도 아깝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총을 땅에 세우고는 다시 탄환을 장전했다. 개는 그 앞에 똑바로 앉아 혀를 늘어뜨린 채 헐떡이면서 그의 동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꾼이 총알을 재우고 총을 다시 손에 쥐면서 그들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죽은 사람 대신 산 사람이 있었다 해도 이 얘기만은 어떤 증인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탄환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는가?"

"짐작합니다."

"배신자, 비열한 놈, 의무와 충성을 잊은 놈!"

"예, 주인 어른 그렇습니다."

"네는 내 기쁨이었다. 허나,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나는 이제 너한테서 아무 기쁨도 느끼지 않아!"

"당연한 말씀입니다, 주인 어른." 크람밤부리는 몸을 굽히고 뻗은 앞다리 위에 머리를 대고 꼼짝 않고 사냥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저주 받은 개가 이렇게 꼼짝 않고 그의 얼굴만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그는 빨리 결말을 지었을 것이고 자기나 개나 고통을 덜 받고 모든 것이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렇게 사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생물을 누가 쏘아 넘어뜨릴 수 있으랴. 호프 씨는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한 마디씩 강도를 높여 저주의 말을 반 다스나 퍼붓고 다시 총을 어깨에 메고 밀렵꾼의 시체에서 어린 토끼를 빼앗은 다음 그 자리를 떠났다.

개는 그의 모습이 나무들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뼈에 사무치는듯한 비탄의 울부짖음으로 숲 속을 울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두 세 번 빙빙 돌고는 다시 죽은 자 곁에 앉았다. 관청의 검사원들이 왔을 때도 개는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검사원들은 밀렵꾼의 시체를 검사하고 뒷처리를 하고자 호프의 안내를 받아 해가 저물 무렵 나타난 것이었다. 크람밤부리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자 두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검사원 한 사람이 호프에게 말했다.

"이건 당신 개 아닙니까?"

"시체를 지키라고 여기 남겨 두었지요." 호프는 대답했지만 사실을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진실은 감출 수 없었다. 시체가 차에 실려 운반돼 가자 크람밤부리는 목을 떨구고 꼬리를 꼬면서 어슬렁 어슬렁 그 뒤를 따라간 것이다. 노란 사나이가 누워 있는 시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음 날도 이 개가 서성거리는 것을 관리인이 발견했다.

그는 개를 한 대 걷어차고 "집에 가라"고 소리쳤다. 크람밤부리는 이 사나이에게 이를 드러내 보이고 도망쳐 갔다. 사나이가 보기에 개는 호프의 집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크람밤부리는 집으로 가지 않고 처량한 똥개 생활을 보냈다.

들개처럼 초라해지고 해골같이 야위어서 때로 그는 마을 근처 소작인들이 사는 가난한 집들 주위를 기웃거렸다. 어느날 그는 돌연 제일 외떨어진 낡은 집 앞에 서 있는 어린아이에게 덤벼들어 그 어린 아이가 뜯고 있던 굳은 빵을 와락 낚아챘다. 어린 아이는 놀라서 꼼짝을 못했으나 조그만 스피츠가 집에서 튀어나와 이 도둑에게 덤벼들었다. 그는 곧 빵을 놓고 도망쳤다.

바로 그 날 밤, 호프는 자기 전에 창가에 서서 어스름이 비치는 여름 밤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때 목장 저편의 숲가에 개가 앉아있는 것이 눈에 띈 것 같았다. 기왕에 그의 행복이었던 그 장소를 꼼짝하지 않고 그리운 듯이 보면서 - 이 세상에 가장 충실한 개가 지금은 길러주는 임자도 없다니!

사냥꾼은 덧문을 닫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일어나서 다시 창가로 갔다. 개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다시 잠자려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그도 참을 수 없었다. 여하튼 그 개 없이는 견딜 수 없었다. 그 놈을 도로 데려오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결심하니 마치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밤이 샐 무렵, 그는 옷을 챙겨 입고 점심 때 자기를 기다리지 말라고 늙은 아내에게 말하고 급히 문을 나섰다. 그러나 집에서 나온 순간, 그 발이 뭔가에 부딪혔다. 그가 멀리 가서 찾으려고 했던 바로 그 당사자였다. 크람밤부리가 마지막 숨을 쉬며 누워서 차마 넘어설 용기가 없었던 문지방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사냥꾼은 끝내 이 개를 체념할 수는 없었다. 개를 잃었다는 것을 잊고 있는 순간이 그로서는 가장 행복한 때였다. 그런 때는 흐뭇한 생각에 잠기면서 그의 유명한 습관 "기분이 어때, 크람밤부리..."를 노래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는 섬찟 놀라서 노래를 그치고 머리를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아까웠지, 그 개는..."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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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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