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
by 송화은율춘원 이광수
호 춘원(春園). 1892년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 1902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동학(東學)에 들어가 서기(書記)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1904년 상경하였다.
이듬해 친일 단체 일진회(一進會)의 추천으로 도일, 메이지[明治]학원에 편입하여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 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오산학교(五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재차 도일, 와세다[早稻田]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여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였다. 1919년 도쿄[東京]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1년 4월 귀국하여 허영숙(許英肅)과 결혼,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많은 작품을 썼다.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滿浦)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밖의 작품에 윤광호(尹光浩) 등의 단편과 이차돈(異次頓)의 사(死), 사랑, 원효대사, 유정 등 장편, 그리고 수많은 논문과 시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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