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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우성(秋日偶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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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우성(秋日偶成)

閑來無事復從容 한래무사부종용

睡覺東窓日已紅 수각동창일이홍

萬物靜觀皆自得 만물정관개자득

四時佳興與人同 사시가흥여인동

道通天地有形外 도통천지유형외

思入風雲變態中 사인풍운변태중

富貴不淫貧賤樂 부귀불음빈천락

男兒到此是豪雄 남아도차시호응

 

한가로이 하는 일 없고 다시 조용하니,

잠에서 깨면 동창에 해 이미 붉음이라.

만물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두 스스로 득의해 함이요,

사시의 아름다운 흥취는 남들과 더불어 한가지이다.

도는 천지의 형체 가진 것 밖으로 통하고,

사색은 바람과 구름이 변하는 가운데로 들어감이라.

부귀에 빠지지지 않고 빈천을 즐기나니,

남아가 이에 이르면 바로 영웅호걸임이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정호

형식 : 칠언율시

운자 : 용, 홍, 동, 중, 웅

시간적 배경 : 가을

주제 : 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즐거움

내용 연구

한래 : 한가로이, '래'는 뜻이 없는 허자

종용 : '조용'의 원말

자득 : 스스로 만족스러워지다.

이해와 감상

작가가 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즐거움을 가을날에 읊은 것임

심화 자료

정호 (1032-1085)

중국 북송 중기 유학자로 자 백순(伯淳). 호 명도(明道). 시호 순(純).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출생. 존칭으로 명도선생이라 불리고, 동생 정이(程燎:伊川)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로 알려졌다. 아버지 정향(程珦)이 남안(南安:江西省 大庾縣)의 판관이었을 때 주돈이(周敦燎:濂溪)를 한번 보고 아들 형제를 그의 제자로 입문시켰다고 한다. 26세 때 진사가 되고, 산시성[陝西省] 후셴현[且縣]의 주부(主簿)로 출발하여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그가 택주(澤州:山西省) 진청현[晉城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는 ‘視民如傷’이라는 네 글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큰 치적을 올렸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부모처럼 따랐다. 신종(神宗)의 부름을 받아 저작좌랑(著作佐郞)이 되었으나, 왕안석(王安石)과 뜻이 맞지 않았으므로 자청하여 지방관이 되었다. 철종(哲宗)이 즉위하고 사마광(司馬光)이 재상이 되자, 조정에 등용될 뻔하였으나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병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학문적 태도는 만물일체관(萬物一體觀)에 입각하여 혼일적(渾一的)으로 천지의 생의(生意)를 체험하는 데 있었다. 그는 제자(諸子)·노장(老莊)·불교도 공부하였으나, 결국 유학으로 복귀하여 자신의 학설을 확립하였다. 그는 다양한 자연현상을 질서지우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이(理)’라 부르고, 사람은 모름지기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순응하여야 한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성즉이설(性則理說)’을 주창하였는데, 그의 사상은 동생 정이를 거쳐 주자(朱子)에게 큰 영향을 주어 송나라 새 유학의 기초가 되었고, 정주학(程朱學)의 중핵을 이루었다. 저서에 《정성서(定性書)》 《식인편(識仁篇)》, 시에 《추일우성(秋日偶成)》 등이 있다. 그의 전기는 주자의 《이락연원록(伊落淵源錄)》에서, 유저(遺著)는 서필달(徐必達)의 《이정전서(二程全書)》에서 볼 수 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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