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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내 뜻이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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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내 뜻이오

 

 

푸른 산은 나의 뜻이요, 푸른 시냇물은 님의 정이니

푸른 시냇물은 흘러흘러 가지만 푸른 산은 (녹수처럼) 변하겠는가

푸른 시냇물도 푸른 산을 못 잊어(잊지 못하여) 울면서 흘러 가는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황진이(黃眞伊)

연대 : 조선 중기

갈래 : 평시조

성격 : 연정적, 감상적, 대조적, 은유적, 상징적

표현 : 대구법, 은유법, 대조법

제재 : 청산, 녹수

주제 : 임을 향한 변함 없는 사랑, 일편단심(一片丹心)

출전 : 대동풍아

내용 연구

푸른 산[자연의 불편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상향이나 조선 선비들이 지향하는 탈속의 세계가 아니다.]은 나의 뜻이요, 푸른 시냇물[가변성으로 쉽게 변하는 임의 태도를 흐르는 물로 상징]은 님의 정이니 : 은유적 표현 기법이 사용된 구절로 '청산'과 '녹수'는 각각 '나'와 '임'의 보조 관념이다. 여기서 임은 나의 의지나 내면 심리와는 상관 없이 변화되는 존재 즉 유동적인 존재나 부재의 존재로 '나'에게 심리적인 갈등과 상실감을 안겨 주는 역할을 한다.

푸른 시냇물은 흘러흘러 가지만 푸른 산은 변하겠는가 : 녹수의 가변성에 주목하고 '청산'의 불변성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면서 '임'의 가변성적인 태도가 있다고 한들 황진이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이 담겨 있다.

푸른 시냇물도 푸른 산을 못 잊어 울면서 흘러 가는구나 : 황진이의 일편단심이 중장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임은 떠나더라도 자기 자신이 일편단심(一片丹心)하는 것처럼 '임' 역시 나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다.

내 뜻이오 : 나의 뜻이오. '뜻'은 '마음'을 가리킴

흘러간들 : 속뜻은 변한들

變(변)할손가 : 변하겠는가(변하지 않는다는 의미)

예어 : 지속하며

이해와 감상

 

현재 황진이 시조로 전해지는 것은 모두 6수로 알려 지고 있다. 황진이 시조는 대개 현세적 삶에 대한 애착과 쾌락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시 의식을 보인다고 하거나,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대립을 통해 변하는 것으로서의 인간 존재가 지닌 고민을 문제 삼았다고 평가한다. 물론 기녀로서의 신분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신분적 고민에 관련된 심각한 시가 있었을 법하지만 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황진이의 시조가 지닌 애정 표현의 진솔성으로 미루어 볼 때 신분에 대한 고민을 했을 법하다는 말이다.

이 작품은 초장에서 대구의 형식을 통하여 '산'과 '수'의 대립, 변하지 않는 것(가변성)과 변하는 것(불가변성)의 대립을 표상하고 있는데, 불변하는 '청산'은 '나'와 동일시되고 변화하는 '녹수'는 '임'과 동일시된다. 중장에서는 이들 가운데 물에 대해 부연함으로써 '녹수(임)'가 흘러 가도 '청산(나)'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노래하였다. 종장에서도 한 번 더, 임과 내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할 공간인 '여기'를 떠나가는 임에 대해 비관적인 어조로 질문을 던진다. 종장에서 ' - 도'를 사용한 것은 실상 '청산은 녹수를 못 잊어 운다'는 자신의 마음을 녹수에 투사(投射)한 것인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녹수'를 가변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었다는 점인데, 이는 일반 사대부들의 '녹수'에 대한 생각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녹수'의 끊임없이 흐르는 성질에 주목하여, '항존성'과 '불변'을 읽어내고 그것을 충의(忠義)정신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진이는 녹수의 '흘러가서 제 자리에 있지 않음'에 주목하고 있다. 즉 황진이는 '녹수의 흘러감'이라는 유한성에 주목함으로써 사대부들의 당위론적인 자연 인식과는 다른 이미지를 창출해낸 것이고, 황진이의 시조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사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한 황진이의 시조 작가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심화 자료

황진이(黃眞伊)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명기(名妓). 본명은 진(眞),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전기에 대하여 상고할 수 있는 직접사료는 없다. 따라서 간접사료인 야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계통의 자료는 비교적 많은 반면에 각양각색으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신비화시킨 흔적이 많아서 그 허실을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

황진이의 출생에 관하여는 황진사(黃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다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었다고도 전하는데, 황진사의 서녀로 다룬 기록이 숫자적으로는 우세하지만 기생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맹인의 딸로 태어났다는 설이 오히려 유력시되고 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된 동기는 15세경에 이웃 총각이 혼자 황진이를 연모하다 병으로 죽자 서둘러서 기계(妓界)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용모가 출중하며 뛰어난 총명과 민감한 예술적 재능을 갖추어 그에 대한 일화가 많이 전하고 있다.

또한, 미모와 가창 뿐만 아니라 서사(書史)에도 정통하고 시가에도 능하였다. 당대의 석학 서경덕(徐敬德)을 사숙(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음.)하여 거문고와 주효(酒肴)를 가지고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여 당시(唐詩)를 정공(精工 : 정교하게 공작함)하였다고 한다.

황진이는 자존심도 강하여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기도 하였다.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에 사제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박연폭포(朴淵瀑布)·서경덕·황진이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였다고 한다.

황진이가 지은 한시에는 〈박연 朴淵〉·〈영반월 詠半月〉·〈등만월대회고 登滿月臺懷古〉·〈여소양곡 與蘇陽谷〉 등이 전하고 있다. 시조 작품으로는 6수가 전한다.

이 중에 〈청산리 벽계수야〉·〈동짓달 기나긴 밤을〉·〈내언제 신이없어〉·〈산은 옛산이로되〉·〈어져 내일이여〉의 5수는 진본 (珍本)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의 각 이본들을 비롯하여 후대의 많은 시조집에 전하고 있다.

〈청산은 내뜻이요〉는 황진이의 작품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근화악부 槿花樂府≫와 ≪대동풍아 大東風雅≫의 두 가집에만 전하며, 작가도 ≪근화악부≫에는 무명씨로 되어 있고, ≪대동풍아≫에서만 황진이로 되어 있다. 그리고 두 가집에 전하는 내용이 완전 일치하지도 않는다.

특히 초장은 ≪근화악부≫에서 “내 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다.”라 되어 있다. ≪대동풍아≫에서는 “청산은 내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라고 바뀌어 그 맛이 훨씬 달라졌다. ≪대동풍아≫는 1908년에 편집된 책이고 작가의 표기도 정확성이 별로 없는 가집이라는 점에서 그 기록이 의문시되고 있다.

황진이의 작품은 주로 연석(宴席)이나 풍류장(風流場)에서 지어졌다. 그리고 기생의 작품이라는 제약 때문에 후세에 많이 전해지지 못하고 인멸(湮滅 : 자취도 없이 모두 없어짐)된 것이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전하는 작품은 5, 6수에 지나지 않으나 기발한 이미지와 알맞은 형식과 세련된 언어구사를 남김없이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참고문헌≫ 燃藜室記述, 錦溪筆談, 松都紀異, 於于野譚, 李朝女流文學 및 宮中風俗의 硏究(金用淑, 淑明女子大學校出版部, 1970), 歷代時調全書(沈載完, 世宗文化社, 1972), 黃眞伊와 許蘭雪軒(金東旭, 現代文學 9, 1955), 黃眞伊의 詩와 韓國詩의 本質(趙雲濟, 月刊文學 32, 1971).(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동풍아(大東風雅)

 

1908년 기교헌(奇喬軒)이 편찬한 가집(歌集). 상·하 2권 1책. 활자본. 총 321수(상권 184수, 하권 137수)의 시조와 〈상嗜별곡〉·〈춘면곡 春眠曲〉·〈처사가 處士歌〉·〈죽지嗜 竹枝詞〉·〈황계嗜 黃鷄詞〉등 이른바 ‘12가사’에 속하는 가창가사(歌唱歌詞) 5편이 하권에 실려 있다.

편차는 권두에 이보상(李輔相)의 서문이 있고 목록 상·하가 차례로 있다. 목록상에는 우조초중대엽(羽調初中大葉)으로부터 삼뢰(三雷)에 이르기까지 12항목의 곡조명이, 목록 하에는 우평조장삭대엽(羽平調長數大葉)으로부터 〈황계嗜〉에 이르기까지, 곡조명에 이어 작품명이 27항목에 걸쳐 나열되어 있다.

목록에서 알 수 있듯이 대체로 곡조에 따라 분류, 배열하였고, 이름이 밝혀진 작가의 경우 연대순을 따랐다. 상권에만 작가가 밝혀진 경우 약력을 덧붙였다. 수록작품의 연대적 범위는 신라 설총(薛聰)으로부터 정조조 김영(金鍈)에 이르고, 작가의 신분적 범위는 왕으로부터 명공석사(名公碩士)·기녀·실명씨(失名氏)·무명씨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어 있다.

한글 위주로 적고 한자어는 한자를 병기하였다. 이름이 밝혀진 작가는 84명으로 114수의 작품이 실려 있고, 실명씨의 작품이 43수, 무명씨의 작품이 6수, 나머지 158수는 아무 표시가 없다. ‘3대가집(三大歌集)’ 이후로 편자가 알려진 유일의 가집이다.

다른 가집에는 없고, 이 책에만 보이는 10수의 작품이 있다. 1960년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국어국문학자료총서 제5집으로 발간한 프린트판 ≪시조집성≫ 속에 이 책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時調의 文獻的硏究(沈載完, 世宗文化社, 197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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