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천승세 - 토속 세계와 민중 언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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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토속 세계와 민중 언어
白樂晴

 

 

1958년 단편 <점례와 소>가 신춘 문예에 당선됨으로써 작가 천승세는 문단에 첫선을 보였다. 그로부터 근 30년이 지난 오늘《감루연습》(1971)《황구(黃狗)의 비명》(1977) 등 세 권의 작품집에 실린 중·단편과 희곡들만으로도 우리 문단의 가장 독창적이고 무게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 위치를 굳혀 놓았다. 그밖에도 이 작가는 몇 편의 장편과 아직 책으로 모이지 않은 수많은 단편들을 써냈고 또 계속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결코 글을 쉽게 써내는 유형의 작가도 아니요, 잡념 없이 창작에만 몰두할 만큼 유복한 생활 환경도 못 되었음에도 이만한 업적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무던히도 고집스러운 외길만으로 정진해 왔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작가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보다도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중요한 것이니만큼, 여기서는 천승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몇 마디 풀이를 꾀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흔히들 천승세 문학의 본령은 어촌의 토속적 생활 현실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희곡 <만선(滿船)>과 중편 <낙월도(落月島)> 및 <신궁(神弓)>이 유달리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로 보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천승세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유의할 점을 그가 어촌 이외의 다양한 소재들을 훌륭히 요리하고 있으며 흔히 토속 문학의 일부로 여겨지지는 투박함과도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데뷔작 <점례와 소> 이래로 <화당리(花塘里) 솟례> <불> 등을 거쳐 근년의 <종돈(種豚)>에 이르는 농촌 소설들은 크게 보아 어촌 문학과 같은 테두리에 드는 것이지만, 초기작인 <견족(犬族)>(1959)에서 이미 그는 70년대 한국 문학의 주요 테마의 하나인 '변두리 현실'을 다루기 시작하여 만해 문학상 수상작인 <황구의 비명>과 최근의 <실향(失鄕)> 연작과 같은 뜻깊은 수확을 거두었으며 <포대령(砲大領)> <삭풍(朔風)> 등에서는 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도시인의 자의식과 분석 취향을 보여 주는 작품들도 허다하다. 또한 <방울소리>나 <혜자의 눈꽃> 같은 작품에서는 사실주의의 기율을 어기지 않은 채, 마치 꿈속의 정경인 듯한 신비스럽고 탐미적인 순간들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어촌을 배경으로 한 천 승세의 걸작들이 그처럼 큰 감동을 주는 것도 결국은 토속적 어촌이라는 소재가 이 작작가의 폭넓고 철저히 근대적인 작가 정신과 특히 걸맞기 때문일 터인데, 이러한 걸맞음의 깊은 까닭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는 천 승세의 작가적 성취를 밑받침해 주는 몇 가지 기초적 조건에 눈 돌릴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감명 깊은 줄거리를 꾸며내는 기술이다. 현대 서구의 일부 소설론에서는 뚜렷한 줄거리가 없는 소설일수록 고급 작품으로 우대받는 경향도 없지 않으나 소설의 흥미와 팽팽한 긴장을 보장해 주기로는 잘 짜여진 줄거리(플롯)를 따를 것이 없다. 플롯은 독자 대중을 가장 직접적으로 사로잡는 요소일 뿐더러 소재에 대한 작가의 지성적 통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천승세의 성공적인 작품들은 모두 소설의 이러한 기본기(基本技)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극작가로서의 수련을 쌓았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여하튼 그는 독자의 궁금증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식의 충격을 안겨 주고 끝맺는 플롯의 조절에 능하다. <신궁>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백중날> 같은 작품에서 사건의 결말로부터 시작하되 농촌 소설의 분위기를 훼손함이 없이 지나치게 날씬한 기법상의 조작으로 사연을 풀어나가는 솜씨는 놀라운 것이다. 소재의 성격은 다르나 <의봉 외숙(義峯外叔)>의 성공도 현시점의 진행과 과거 사연의 배합에 세심한 신경을 쓴 결과이다. <폭염> 같은 단편은 마치 교과서의 세계명작을 읽는 듯한 인상이 오히려 흠으로 잡힐 정도이지만, <황구의 비명> <삭풍> 등과 더불어 이 작가의 플롯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훌륭한 플롯과 밀접하게 관련된 또 하나의 작가적 미덕은 생략과 함축의 묘미를 살리는 능력이다. 이것은 특히 단편 소설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단편이 짧은 중에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 그 함축성 때문이거니와, 한걸음 나아가 바로 그 짧은 맛으로 읽는 것이 단편 소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천 승세의 단편으로도 그중 짧은 편에 드는 <의봉 외숙>이나 <뙷불> 같은 작품은 단편소설적 압축의 표본이라 일컬을 만하다. 물론 천승세 자신도, 특히 장편과 중편에서는,언제나 생략의 미덕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컨대 <백중날>에서 ―<뙷불>과 <종돈>에서도 그렇지만 ―수많은 설명을 꿈자리 한 대목으로 압축해 버리는 수법은 소설에서 구성의 묘와 함축의 묘가 불가분의 것임을 확인해 준다. 단단한 뼈대가 받치고 있기에 온갖 군더더기를 아낌없이 쳐낼 수 있는 것이요, 불필요한 디테일을  제거함으로써만 훌륭한 플롯의 제 값이 드러나는 것이다.

 소설가로서의 이러한 기초적 훈련과 더불어 우리는 이 작가의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 온갖 살아 있는 것과 함께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능력의 남 다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농어촌을 무대로 한 소설에서 김유정(金裕貞)을 연상케 하는 짙은 토속적 정취는 물론이요, 변두리의 너절한 삶 속에서도 <견족>의 소년들과 같은 생명력의 약동이 느껴지며, 그것은 곶 <화당리 솟례>의 곱추 여종이나 <황구의 비명>, <원석(原石)> 등의 양공주처럼 가장 짓밟히고 따돌림받는 인생과의 뼈아픈 동류 의식으로 이어진다. 사실 천승세의 많은 인물들은 심지어 <불>의 용배나 <사비선생(斜鼻先生)>의 노인처럼 겉보기에 고집 불통의 인간들조차도 알고 보면 더없이 여린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이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의 바탕에도 바로 그러한 여리고 고운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천승세의 작품 세계가 더러는 과다한 자의식을 노출시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천 승세를 투박한 토속 문학가로나 알던 사람에게는 뜻밖의 일이겠으나, 위에 열거한 그의 작가적 미덕을 인정할 경우 그에 따른 일종의 부산물로 쉽사리 이해된다. 남다른 감수성과 첨예한 의식은 곧 자신의 감수성과 의식에 대한 의식을 낳게 되며, 더구나 그것이 타락한 세계와 맞서서 상처입은 한 작가의 정당한 긍지의 일부를 이룰 때 그것은 건강한 자기 인식과 구별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아니, 현대 소설의 일각에서는 끝없는 자의식에의 탐닉을 바로 현대성의 징표인 양 내세우는 경향조차 있다. 하지만 자의식의 유희는 결국 감수성을 메마르게 하고 지성의 방향 감각을 둔화시킨다. 현대 서구의 많은 전위 소설들의 불모성도 거기서 연유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천승세 소설의 성공은 그러한 자의식을 그때마다 이겨 내는 데서 이룩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 예술적 긴장의 결과인가를 우리는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자신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창조적 긴장이 느슨해진 경우에 더욱 실감하게 된다. 자의식의 메마름을 정면으로 다룬 단편 <감루 연습>은 그 자체가 자의식의 유희에 빠지는 듯하다가 재치 있는 결말로 주인공의 눈물도 건지고 작품도 건지는 특이한 예지만, <독탕행(獨湯行)>은 자의식과 요설의 악순환에 함몰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장편 <사계(四季)의 후조(候鳥)>는 물론 <독탕행>과는 다른 차원의 업적으로서 70년대의 도시 생활을 소재로 하여 한국적 피카레스크 소설의 한 가능성을 열어 보인 작품이나, 주인공과 작가 자신의 빈번한 사설에서 우리는 자의식의 흔적을 엿보게 된다. 연민이나 찬탄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사비선생>처럼 대체로 성공적인 단편에서도 느껴지는 것인데, 이러한 자의식이 <신궁> 같은 작품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기 때문에―아니, 그러한 자의식 자체가 작품의 유기적 일부로 승화되어 버리기 때문에―천 승세 소설의 본령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일반적인 평가를 낳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고질인 자의식을 천승세가 유독 그의 농어촌 소설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작가 자신의 인생 경험이라든가 성격, 재능, 취향 이런 온갖 요인으로 셜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품만 두고 보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농어촌 소설에서의 자의식의 극복은 문자 그대로 극복이지 현대 이전의 덜 깨인 의식이나 정서로의 복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에 수록된 <낙월도>도 토속에 흠뻑 젖은 작품이면서도 동시에 세련된 현대적 지성으로 다듬어진 예술품이다. 토속적 짙은 문학이 창작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작가의 현대 예술가적 자의식은 실재하는 민중 문화·민중 언어의 풍성한 아름다움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그것은 되살리는 떳떳한 노동으로 전환되고, 개인적 울분과 소외 의식은 민중 생활을 침해하는 온갖 압제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굽힐 줄 모르는 저항 정신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농어촌을 다룬 천 승세의 작품이 탁월한 현대적 저항 문학이 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동시에 그것이 단순한 르포르타지적 고발 문학과는 다른 이유도 분명해진다. 사실 <낙월도>는 그 사실주의적 박진감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의 현장 보고라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새마을운동이 벌어지고 도시의 독점 자본이 벽촌까지 진출한 오늘의 농어촌을 묘사한 소설들은 아닌 것이다. 그런 소설의 예로서는 이문구(李文求)의 <우리 동네> 연작이나 황석영(黃晳暎)의<종노(種奴)> 같은 작품이 최근의 수확이 되겠거니와, 천 승세의 경우는 현대 세계와 토속 세계에 아울러 내재하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토속적 언어가 갖는 시적(詩的) 감동력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다른 차원의 현재성을 획득하고 있다. 예컨대 <낙월도>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지역의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평면적 기록에 그친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그 의의는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흉어철을 만난 낙월섬 사람들의 기막힌 고난은 어디까지나 귀덕이, 팥례, 종천이 들과 몇몇 선주 겸 지주들과의 관계, 그리고 이 섬과 '삼출목 물살' 저 너머의 세계와의 관계에서 파악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작가의 언어는 일체의 관념적 분석을 배제함으로써 이야기의 보편적 호소력을 더욱 높여 주고 있다(<낙월도>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분석으로는 필자의 졸고 <민족 문학의 현단계>, 《창작과 비평》1975년 봄호, 63∼65면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

 1977년에 발표된 중편 <신궁>은 아마도 천승세 문학의 여러 장점들을 가장 훌륭히 집약한 작품일 것이다.  같은 어촌 문학인 <낙월도>보다 훨씬 짧지만 중편 소설의 풍성함은 충분히 간직한 채, 단편 <뙷불>과 같은 압축의 묘와 행동적 의지를 살린 작품이 <신궁>인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왕년이 역시 헤어나기 어려운 역경 속에 몰려 있다. 흉어철에다가 자신의 대를 이은 며느리의 무당 벌이가 끊긴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곤경이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농간이요 사회의 됨됨이 탓임이 다른 작품에서보다 더욱 분명하다. 선주이자 객주인 판수가 오랫동안 음양으로 안겨 준 피해의 결과이며,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한이 맺혀 굿손을 놓은 당골례(무당) 왕년이를 다시 부려먹으려는 압력 수단의 일환인 것이다. 한편 왕년이는 배도 뺏기고 남편도 뺏긴 설움과 더불어, 무당인 자기와 고장의 어민들이 함께 번성하던 한창 시절에 대한 자랑스러운 기억―특히 그들 부부가 힘들여 마련한 어선 해룡환이 첫 항차를 할 때 온통 꽃덤불이던 찬란한 기억― 이 판수의 핍박 앞에서 그를 지탱해 준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굿손을 잡기로 한 왕년이는, 복숭아나무 화살 대신에 대못을 지른 살을 신궁에 먹여, 살풀이를 기대하며 바가지를 쓰고 앉은 판수를 향해 날리는 것이다.

 진기한 민속 자료의 전시장을 겸한 이 작품의 매력은 독자가 직접 읽고 음미하기 전에는 제대로 전달할 길이 없다. 다만 그 섬세하고 치밀한 예술적 조직의 일단을 보여 주는 예로, 작품을 통해 빈번히 나오는 꽃맡과 꽃덤불의 이미지들이 끝장에 화살을 맞고 쓰러진 판수의 바가지 위로 '꽃뱀 기듯 핏줄이 흘렀다'는 한마디를 빛내 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또한 <신궁>에서는 생생한 시각적 영상들과 더불어 '대못질 소리' '물갈퀴 소리' 등 청각적 효과의 반복이 작품의 통일성을 다져 주고 있는데, '물갈퀴 소리가 죽었다'라는 그 마지막 문장은 왕년이의 맺힌 한이 드디어 풀렸음을 알리면서 어쨌건 꽃덤불 같았던 한 시대의 종언이 선포된 순간의 침묵을 경험하게 해 준다.

 어촌 소설 중에서도 특히 <신궁>의 경우가 천 승세의 작가적 능력을 한껏 동원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짐작컨대, 주인공 왕년이가 민중 세계의 일원이자 토속의 세계에서도 가장 철저히 토속적인 민간 신앙을 대표하는 인물인 동시에, 그 스스로가 말하자면 하나의 탁월한 예술가요 민중의 원한을 가로맡아 풀어주는 영웅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이 작가의 상상력을 송두리째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승세 문학에 이제 새로운 도전이 주어진 셈이다. 즉 무당이라든가 사투리, 곁말 들 현대 세계의 독자 대중들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고 자칫하면 엽기 취향을 북돋아 줄 위험이 있는 소재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신궁>에서와 같은 높은 예술성과 민중적, 민족적 공감을 성취하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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