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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리 머나먼 길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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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리 머나먼 길에

 

 

천 리 만 리 머나먼 곳(영월)에다 고운 임(단종)을 이별하고 (돌아와)

나의 슬픈 마음을 붙일 데가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흘러가는) 저 냇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며 밤길을 흐르는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왕방연(王邦衍, 연대 미상)

갈래 : 평시조, 단시조,

형식 : 연군가, 절의가

성격 : 감상적, 연군적, 애상적, 절의적

표현 : 의인법, 감정이입, 자연물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드러냄

제재 : 단종의 유배(流配)

주제 : 단종과의 이별 슬픔, 임금(유배된 단종)을 이별한 애절한 마음

출전 : 가곡원류(歌曲源流)

내용 연구

 

천 리 만 리 머나먼 곳[임을 여읜 슬픔과 깊이의 심리적 거리감 / 시적 화자는 원하지 않았지만 강원도 영월인 유배지에 어린 단종을 산간 벽지에 두고 떠나 오는 길에서 어린 단종과 이별한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에다 고운 임(단종)을 이별하고 - 유배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린 단종과 이별한 슬픔의 깊이를 '천만 리'라는 어구로 극대화하고 있다.

 

나의 슬픈 마음[원하지도 않는 호송을 한 심정 / 단종과 이별한 심정 / 죄책감 / 충절과 연군의 정]을 붙일 데가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임과 이별한 슬픔으로 달랠 길 없는 나의 처연한 마음을 어디에다 둘 곳이 없어 시냇가에 앉아 있으니]

 

(흘러가는) 저 냇물[감정이입의 대상]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면서[주체 - 물 / 의인법] 밤길을 흘러가는구나.[자연물을 인격화시켜 시적 화자의 감정을 이입하여 어린 단종을 산간 벽지(강원도 영월)에 두고 떠나는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직유법 / 청각적 이미지]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뒤 느끼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세조의 왕위 찬탈로 단종이 폐위되었을 때 금부도사로 알려져 있는, 이 시조의 지은이인 왕방연이 영월로 귀양 가는 단종의 압송 책임을 맡았다. 바로 그 당시 어린 임금을 유배지인 두메 산골 강원도 영월에 두고 돌아오면서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읊은 노래가 이 작품이다.

어쩔 수 없이 어린 그 가슴 아픈 마음을 둘 곳 없어 하는 슬픈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어린 임금을 두메 산골인 영월 유배지에 남기고 되돌아 와야만 했던 죄책감과 가련한 심정을 냇물에 의탁하여 표현하고 있다. 나중에 사약을 받드는 역할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에는 불의의 희생이 된 단종에 대하여 신하로서의 최대의 공경의 뜻을 표하는 마음이 잘 담겨 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 이개의 시조가 있다.

방 안에 켜 있는 촛불은 누구와 이별을 하였기에

겉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속이 타 들어가는 줄을 모르는가?

저 촛불도 나와 같아서 (슬퍼 눈물만 흘릴 뿐) 속이 타는 줄을 모르는구나.

심화 자료

왕방연(王邦衍)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충신.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단종복위사건이 사전에 발각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중인 노산군(魯山君 : 단종)에게 1457년 사약이 내려질 때 그 책임을 맡은 의금부도사였다.

그는 영월에 이르러 사약을 받들고 노산군 앞으로 나아가려 하였으나 감히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렸다.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진다고 재촉하자 하는 수없이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이때 단종을 항상 곁에서 모시던 공생(貢生 : 관가나 향교에서 심부름하던 통인과 같은 사람)이 이 일을 담당하였다. 이때의 괴로운 심정을 읊은 시가 전한다.

≪장릉지 莊陵誌≫에는 금부도사(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가 밤에 굽이치는 여울의 언덕 위에 앉아 슬퍼하면서 노래를 지었는데, 그뒤 1617년에 김지남(金止男)이 금강에 이르러 여자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한문으로 단가를 지었다고 전한다.≪참고문헌≫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莊陵誌.(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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