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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설(借馬說) / 이규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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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설(借馬說) / 이규보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 혹 빌려서 타는데, 여위고 둔하여 걸음이 느린 말이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하여 곧 넘어질 것같이 여기다가, 개울이나 구렁을 만나면 내려서 걸어가므로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준마로서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타면 의기양양하게 마음대로 채찍질하여 고삐를 놓으면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아!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고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남의 물건을 빌려서 하루 아침 소용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거든, 하물며 참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랴.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을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또한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외톨이가 되고, 백승(百乘)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하물며 그보다 더 미약한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맹자가 일컫기를 "남의 것을 오랫동안 빌려 쓰고 있으면서 돌려 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닌 줄 알겠는가?" 하였다.

 

 내가 여기에 느낀 바가 있어서 차마설을 지어 그 뜻을 넓히노라.

 

원문 :

 余(여)는 家貧無馬(가빈무마)하여 或借以乘之(혹차이승지)한데 得駑且 者(득노차유자)면 事雖急(사수급)이라도 不敢加策(불감가책)하고 兢兢然(긍긍연)하여 若將蹶 (약장궐질)하다가 値溝塹(치구참)이면 則下(즉하)라. 故鮮有悔(고선유회)하나 得蹄高耳銳駿且 者(득제고이예준차사자)면 陽陽然(양양연)하여 肆志着鞭(자지착편)하여 縱 (종피)면 平時稜谷(평시능곡)하니 甚可快也(심가쾌야)라. 然(연)이나 或未免危墮之患(혹미면위추지환)이라. 噫(희)라, 人情之移易(인정지이역)이 一至此邪(일지차사)아. 借物以備一朝之用(차물이비일조지용)이 尙猶如此(상유여차)어든 況其眞有者乎(황기진유자호)아. 然(연)이나 人之所有(인지소유)가 孰爲不借者(숙위불차자)리오. 君(군)은 借力於民而尊富(차력어민이존부)하고 臣(신)은 借勢於君(차세어군)하여 而寵貴(이총귀)라. 子之於父(자지어부)하고 婦之於夫(부지어부)하며 婢僕之於主(비복지어주)라 其所借亦深且多(기소차역심차다)하여 率以爲己有(솔이위기유)하고 而終莫之省(이종막지성)하니 豈非惑也(기비혹야)리오. 苟或須臾之頃(구혹수유지경)이라도 還其所借(환기소차)면 則萬邦之君(만방지군)이라도 爲獨夫(위독부)요 百乘之家(백승지가)라도 爲孤臣(위고신)이리니 況微者邪(황미자사)아. 孟子曰(맹자왈), 久假而不歸(구가이불귀)하면 惡知其非有也(오지기비유야)인저. 余(여)가 於此有感焉(어차유감언)이라 作借馬說(작차마설)하여 以廣其意云(이광기의운)이라.

가정집 (稼亭集)


요점 정리

 작자 : 이곡(李穀) 김규성(金奎聲) 옮김

 연대: 고려시대

 형식 : 수필. 설

 성격 : 교훈적, 철학적, 체험적, 우의적

 문체 : 역어체, 만연체

 제재 : 차마 즉 말을 빌린 경험

 주제 : 모든 소유는 빌린 것에 불과하니 사람은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 소유에 근거한 인간 심리의 허망함, 소유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

 구성 : 2 단구성(사실(경험)의 제시와 의견의 개진) = 주관적인 사실(경험) - 보편적인 의견

1 문단 (1-12행) 말을 타고 가면서 지은이가 느낀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주 화제로 삼고 있다. (소유물에 대한 견해를 얻음)
  기(起) (1-9행) 글 전체의 도입부
사실 승(承) (10-12행) 기(起)에서 얻은 내용의 전개 - 자신의 소유물로 바꿔 해석.
2 문단 (13-끝) 1 문단에서 얻은 견해에 근거하여 인간 사회에 적용하고 있다. 권력을 빌렸다는 생각과 겸허한 자세가 없는 당대인들을 비판.
  전(轉) (13-23행) 소유와 관계된 인간 세상의 본질
의견 결(結) (24행) 마무리 및 강조 - 겸허한 자세

 특징 : 사실 - 의견의 2단 구성 방식을 취하고, 권위있는 사람의 말을 논거로 사용하고, 유추의 방식을 통해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일반화함

 의의 : 말을 타고 느낀 바를 토대로 삼아, 권력과 소유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서술하고 있는 교훈적 수필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소유한 것이 많고 적음이나 좋고 나쁨에 좌우되어, 높은 벼슬에 있으면 그것을 마구 휘두르게 되고 낮은 위치에 있으면 의기소침하게 되나, 사실은 진정한 소유란 없으므로 너무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서 휘둘리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출전: 가정집

내용 연구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말을 빌려 타게 된 계기] 혹 빌려서 타는데, 여위고 둔하여 걸음이 느린 말이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하여 곧 넘어질 것같이 여기다가[말이 기운이 없어 못마땅함], 개울이나 구렁을 만나면 내려서 걸어가므로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말에서 떨어져 다칠 위험이 적으므로]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준마로서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타면 의기양양하게 마음대로 채찍질하여 고삐를 놓으면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 외물에 따른 심리 변화

 아!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고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남의 물건을 빌려서 하루 아침 소용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거든, 하물며 참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랴.[자기가 소유한 것에 대해서도 마음의 변화가 심함] - 자기 소유일 때의 심리 변화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소유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주제문)].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을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또한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외톨이가 되고, 백승(百乘 : 백 대의 수레, 높은 지위를 비유)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하물며 그보다 더 미약한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소유의 허망함을 깨달을 것이다.]

 

 맹자가 일컫기를 "남의 것을 오랫동안 빌려 쓰고 있으면서 돌려 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닌 줄 알겠는가?" 하였다.

 

 내가 여기에 느낀 바가 있어서 차마설을 지어 그 뜻을 넓히노라[다른 사람에게도 그 뜻을 널리 알리고 싶다]. - 말을 빌려 탄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소유에 대한 깨달음 제시함 - 잘못된 소유 관념에 대한 반성

이해와 감상

 형식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로 본다면 이 글은 도입부에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어 친숙함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지만, '서두-중간-결말'의 3단 구성과 비교해 볼 때, 이 글은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 다르다. 사실로부터 의견(깨우침)에 이르는 과정이 3단 논법과 같은 논리적 전개 과정을 취하지 않고 직관적 통찰에 의해 바로 이루어지고 있어 3단 구성의 논리적인 구성에 비해 논리적인 구성은 뒤떨어진다. 이것은 논리적 설득보다는 사물에 대한 깨우침을 전하는 데 적절하며, 체계적이고 복합적이며 다층적인 내용보다는 제한된 내용이기는 하나 본질적인 내용을 압축적으로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적절하다.

 

 이 글의 내용은 말을 빌려 탄 경험으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보편적 삶의 자세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글쓴이가 체험과 상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깨달은 바는 '소유'의 문제이다.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잇는 것은 그 누구에게서인가 잠시 빌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므로, 글쓴이는 이러한 우매함을 경계하고 있는 글로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쓴 글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고 우리는 인생에 있어 삶의 지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고 우리 주변을 살펴 볼 수 있다. 사실 '소유욕'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의 하나로 자리잡아 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글이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은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고 보다 체계적으로 자크 라캉은 욕망이론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유욕'이라고 하는 것인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쓰여진 시대와 그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이러한 글들을 통해서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다각적인 견해를 접할 때 우리는 또한 삶의 조그마한 빛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화 자료

 2단 구성과 3단 구성의 차이점

 2단계 구성은 비록 3단계 구성(예를 들어 논설문의 서론-본론-결론이나 설명문의 처음-중간-끝 등)에 비해서 그 논리적 구조성과 연결성이 부족하다. 그러나 각 화제간의 관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2단 구성은 주로 신문의 칼럼이나 사설 등의 글에 주로 사용되는 방식이다.

 설(說)의 양식상 특징

 설(說)은 한문 양식상의 한 갈래이다. 한문학에서 산문 문학에는 크게 논변류(論辯類), 서발류(序跋類), 잡기류(雜記類)가 있는데, 그 중 오늘의 수필에 가장 가까운 것이 잡기류이고, 논변류와 서발류도 수필적 성격이 다분하다.

① 논변류(論辯類) : 사물과 사상의 이치를 밝히고 논하는 글
② 서발류(序跋類) : 저술의 경위, 논평 등을 서술하여 책의 앞이나 뒤에 붙이는 글
③ 잡기류(雜記類) : 광범한 제재와 사건의 시작과 끝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서술한 글
 이 중에서 설(說)은 교훈적인 성격이 강한 논법류의 하나로, 대개 비유를 통해서 설득하는 방법을 쓰므로 설화(說話)적인 흥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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