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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방석 내지 마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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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방석 내지 마라

 

짚방석을 내지 말아라. 낙엽엔들 앉지 못하겠느냐

관솔불을 켜지 말아라. 어제 진 달이 다시 떠오른다.

아이야! 변변치 않은 술과 나물일지라도 좋으니 없다 말고 내오너라.

 

요점 정리

 

지은이 : 한호

갈래 : 평시조, 단시조, 전원한정가

성격 : 풍류적, 자연 친화적, 한정적

제재 : 산촌 생활

주제 : 산촌 생활의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자족의 삶 / 자연 속의 소박한 풍류

특징 : 대조되는 소재를 통해 화자의 내면 정서를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물을 활용하여 화자가 지향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의 가치가 잘 드러냈고, 동일한 통사 구조의 반복으로 화자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으며, 설의적 표현으로 화자의 태도를 담고 있다.

출전 : 병와가곡집

-제3구의 ‘城(성)’ : 제4구의 ‘石(바위)[분위기가 제시되어 있는 공간]

-제3구의 ‘空(텅 빔)’ : 제4구의 ‘老(늙음)’ [퇴락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속성]

-제3구의 ‘一(한 조각)’ : 제4구의 ‘千(천년)’ [쓸쓸한 환경과 면면한 자연의 모습]

-제5구의 ‘麟馬(기린마)’ : 제6구의 ‘天孫(천손) [몰락한 고구려의 시조와 관련됨]

-제5구의 ‘(가서 돌아오지 않음)’ : 제6

내용 연구

 

집 方席(방석)[짚으로 만든 방석 / 세속, 인위적인 것] 내지 마라 落葉(낙엽)[탈속, 자연적인 것]엔들 못 안즈랴.[설의법(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짐짓 의문 형식으로 제시하여 독자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하는 표현법) / 초장과 중장은 대구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의미는 아래 표를 참고 하시라.]

 

솔불[관솔에다 붙인 불] 혀지[켜지] 마라 어제 진 달(달을 단지 풍류의 대상으로만 국한시키는 종래의 상투적 수법과는 달리 어둠을 비추는 광명의 존재로 표현하여 탈속의 경지를 심화시키고 있다.) 도다 온다.(돋아온다)

아이야[불특정한 대상임], 薄酒山采[박주산채 : 변변치 않은 술과 산나물의 대유법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무욕의 정신적 경지와 안빈낙도의 삶의 여유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박주산채'는 작가가 지향하는 청빈한 삶을 대변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또한, '박주산채'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자연에서의 여유로운 삶이 잘 나타나 있다. 대조적인 말로 美酒佳肴(미주가효)]ㄹ망정 업다 말고 내어라.[안빈낙도의 태도와 자족의 삶]

속(俗)

탈속(脫俗)

짚방석

낙엽

솔불

인위적(人爲的) 가치

자연적(自然的) 가치

합일(合一)과 자연 친화적 삶 - 화자의 지향점

주제 - 박주산채(薄酒山采) -- 안빈낙도(安貧樂道)

(1) 이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문한 작품의 가치를 추출해 보고, 그것을 현실 상황에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가를 판단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낙엽, 달, 박주산채 등의 소재를 통해서 형상화하려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특히 대조되고 있는 소재인 짚방석이나 솔불도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연상시킨다는 점에 착안하도록 유도한다.

풀이 : 안빈낙도(安貧樂道)

도우미 : 집方席(방석) 내지 마라~ 이작품은 한석봉으로 잘 알려진 한호의 시조로 안빈낙도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집방석과 낙엽, 솔불과 달과 같이, 인공물과 자연물을 대비시키면서, 자연을 벗삼는 삶의 즐거움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 현대적 관점에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가치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옛 작품 속에 담긴 가치가 현실 상황에서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판단해 보기위한 활동이다. 가급적 학급을 몇 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공동 협의 과정을 거쳐 과제를 해결해 가도록 유도한다. 모둠별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인지,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하도록 한 다음, 각각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를 반드시 제시하여 평가 하도록 지도한다.

 

예시 답안 : 저는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 있는 안빈낙도의 가치관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는 현대 사회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구태여 돈을 배척하고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맹목적으로 돈을 추구하는 이런 경향에서 한 발 물러나 자연을 벗삼아 비록 조금 부족하더라도 주어진 분수에 만족하며 사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자연 속에 파묻혀 살면서 세속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꺼려 하는 화자의 안빈낙도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대구와 대조를 적절히 구사하여 탈속(脫俗)의 여유를 잘 드러내고 있다. 낙엽에 앉아서 달빛에 비치어 한 잔의 술을 마시는 화자의 풍류에서 자연과 인간의 합일(合一) 또는 주객일체를 느낄 수 있으며 우리 선조들의 소박하면서도 운치 있는 풍류(風流)를 느낄 수 있다.

 

심화 자료

 

한호(韓濩)

 

1543(중종 38)∼1605(선조38). 조선 중기의 서예가. 본관은 삼화(三和). 자는 경홍(景洪), 호는 석봉(石峯)·청사(淸沙). 군수 대기(大基)의 5대 손으로, 정랑 세관(世寬)의 손자이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83년(선조 16) 와서(瓦署) 별제(別提)에 제수되었다.

글씨로 출세하여 사자관(寫字官)으로 국가의 여러 문서와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아 썼고, 중국에 사절이 갈 때도 서사관(書寫官)으로 파견되었다. 벼슬은 흡곡 현령(縕谷縣令)과 가평 군수(加平郡守)를

그의 묘갈(墓碣:묘비)에 의하면, “송도(松都)에서 났으며, 점(占)보는 사람이 말하기를 ‘옥토끼가 동쪽에 났으니 낙양(洛陽)의 종이 값이 높아지리라.

이 아이는 반드시 글씨를 잘 써서 이름이 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라면서 글씨 쓰기에 힘썼고, 꿈에 왕희지(王羲之)에게서 글씨를 받아, 이로부터 마음속으로 자부(自負)하고 법첩(法帖:잘 쓴 글씨로 만든 서첩)을 대할 때마다 신(神)이 돕는 것 같아 마침내 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에 그 묘(妙)를 다하지 아니함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의 서법(書法)은 조선 초기부터 성행하던 조맹부(趙孟琅)의 서체를 따르지 않고 왕희지를 배웠다.

그러나 그가 배운 것은 진위(眞僞)가 문제되는 악의론(樂毅論)·동방삭찬(東方朔贊)·황정경(黃庭經) 등의 소해(小楷:작은 본보기)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조법(趙法)보다 뒤떨어져서 진당인(晉唐人)의 높고 굳센 기운(氣韻)이 모자라는 저속한 구렁으로 떨어졌다.

또한, 한미(寒微:생활 수준이 낮고 신분이 변변하지 못함)한 출신으로 오랫동안 사자관(寫字官:문서를 베끼던 일을 맡은 벼슬)으로 있었기 때문에 예술적인 천분(天分:타고난 재질)을 발휘하지 못하고 틀에 맞추려는 노력이 앞섰다.

그러나 워낙 많이 썼으므로 공(工)과 힘(筆力)이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뒤엎는다 하여도 동기창(董其昌)에게 미치지 못하니, 이러한 경지는 알지 못하는 자들과는 더불어 말할 수 없다고 김정희 (金正喜)는 말하였다.

이로부터 국가의 문서를 다루는 사자관의 특유한 서체가 창출될 만큼 그의 영향은 컸으며 또 이로부터 사자관제도가

양주에 있는 김광계비(金光啓碑)·황주서대수비(黃注書大受碑)·이윤식비(李允湜碑)·이별제공즙비(李別提公楫碑), 고양에 있는 권도원수대첩비전면(權都元帥大捷碑前面)·기응세비(奇應世碑), 장단(長湍) 윤감정변묘표액(尹監正豆墓表額), 과천(果川) 유용비(柳容碑)·허초당엽묘표음(許草堂曄墓表陰), 포천(抱川) 이판서몽량비(李判書夢亮碑), 남양(南陽) 홍영상섬비(洪領相暹碑), 용인 정의흥희린갈(鄭義興姬紐碣)·정대헌유비(鄭大憲裕碑), 개성 서화담경덕비(徐花潭敬德碑), 합천 박사간소갈(朴司諫紹碣), 평양 기자묘비(箕子廟碑) 등을 썼다.

≪동국금석평 東國金石評≫에는 모든 글씨체에 숙달되기는 하였으나 속되다고 평하였다. 그로 부터 비롯되어 사자관체(寫字官體)라는 서체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서체를 중국에서는 간록체(干祿體)라 한다. ≪참고문헌≫ 月沙集, 阮堂集, 槿域書怜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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