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함의 중요성 / 해설 /오스카 와일드
by 송화은율오스카 와일드 '진지함의 중요성'
〈손동호 외국어대 영어과 교수>
보통 예술가는 세계를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래서 흔히 예술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이와 달리 오스카 와일드는 「거짓말하는 풍조의 쇠퇴」라는 글에서 모든 것의 출발점은 세상이 아니라 아름다운 거짓인 예술이고,예술이 인생을 모방하기보다는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주장한다.런던에 안개가 많은 것은 바로 화가가 안개를 그리고 난 후의 일이라는 것이다.모든 것이 상상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그에게 문명의 근본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다.한 사람의 천재가 남겨놓은 심오한 이론이나 사상이 세월이 흘러서야 제대로 이해되고 평가받는 것을 보면 와일드의 지적에 일리가 있다.그는 인류의 문화가 갈수록 쇠퇴하는 것은 메마른 사실주의와 실증주의적 태도가 상상의 날개를 꺾기 때문이라고 말한다.플라톤은 시인을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추방하겠다고 말한다.격한 언어로 젊은이들을 흥분시키고,잘못된 길로 인도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반면 와일드는 자신의 이상국가에는 시인들만 살게 하겠다고 한다.시인들의 상상력만이 이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지함의 중요성」은 와일드의 예술론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이 극의 인물들은 꿈을 꾼다.그들의 꿈은 시간이 지나면 현실이 된다.알저논과 잭은 보수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늘 현실에서 벗어나 젊음을 즐기고 싶어하는 청년들이다.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진지함」이다.그러나 그들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내면이 아니라 겉치레의 진지함이다.속은 그렇지 않을지언정 가면을 쓰고 진지한 체 할 줄 알면 된다.그래서 이 작품의 인물들은 남녀 모두 영어 단어 「진지한」(Earnest)과 같은 발음의 어네스트(Ernest)라는 이름에 집착한다.잭은 자기에게 어네스트라는 문제아 동생이 있는데,그가 일으키는 문제 때문에 가봐야 한다는 구실로 런던에 자주 간다.그리고 런던에서 그 자신이 어네스트라는 가명을 쓰며 행세한다.그웬돌렌이 그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그의 이름이 어네스트라는 점때문이다.런던에 사는 알저논은 시골에 잭이 후견인으로 돌봐주는 아가씨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몰래 찾아와 세실리와 만나는데,그 때 다름 아닌 잭의 동생 어네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세실리는 즉시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물론 그의 이름이 어네스트였기 때문이다.심지어 그녀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그와 사랑하여 교제하고 있었고 약혼까지 한 상태라고 말함으로써 알저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웬돌렌과 세실리는 만나자마자 금세 자매처럼 친해진다.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 사람 모두 어네스트라는 사람과 약혼했음을 알게 된다.남자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자 둘은 순식간에 경쟁자로 돌변한다.그들은 서로 자기가 어네스트와 먼저 약혼했다고 주장하며 말다툼한다.잠시 후 잭과 알저논이 나타나자 그들이 그동안 잘못된 꿈을 꾸고 있었음이 드러난다.그웬돌렌이 어네스트라고 믿고 있는 청년을 세실리는 잭 아저씨라 부르고,세실리가 어네스트로 알고 있는 청년을 그웬돌렌은 사촌 알저논이라고 부른다.감쪽같이 속은 사실을 알고 두 처녀는 화가 나서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다.새 이름이 시급하게 필요한 두 청년은 동네의 목사님에게 다시 세례를 받겠다고 요청한다.
청년들의 열정에 감동한 두 처녀는 그들을 용서해주기로 합의한다.그러나 두 쌍의 결혼이 완전히 성사된 것은 아니다.그웬돌렌의 어머니는 세실리와 알저논의 결혼을 승낙했지만 잭은 세실리의 후견인으로서 그 혼인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그 이유는 브래크넬 부인이 그와 그웬돌렌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잭은 재산은 충분히 있는데 부모가 없었다.가방에 담긴 채 한 기차역의 물품보관소에 버려진 것을 어떤 독지가가 데려다 길렀다.브래크넬 부인은 기차역 물품보관소와 사돈을 맺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는가 싶을 때 목사님이 세례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말한다.그런데 대화도중 우연히 그가 꺼낸 프리즘 양이라는 이름이 사건을 급진전시킨다.브래클넬 부인은 무슨 연유인지 프리즘 양을 데려오라고 재촉한다.곧이어 들어온 프리즘 양과 브래크넬 부인은 서로 보고 놀란다.부인은 그녀에게 아기를 어떻게 했느냐고 다그친다.사연인즉,프리즘 양은 이십여년 전 브래크넬 부인의 여동생 집 가정교사였는데 어느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 영영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브래크넬 부인의 질문에 쩔쩔매던 그녀는 아기를 손가방에 넣은 채 어느 기차역 물품보관소에 맡겨 놓았다는 대답을 한다.아기와 가방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잭은 즉시 자기 방에 가서 가방 하나를 가져온다.그 가방은 과연 프리즘 양의 것으로 확인되고 그때 그 가방 안의 아기였던 잭은 바로 브래크넬 부인의 조카로 밝혀진다.그리고 그 아기의 이름은,놀라지 마시라,어네스트였다.지금까지 잭의 행동은 본인에게조차 꿈이며 거짓처럼 보였다.그런데 결국 그는 어네스트였고 늘 진실만을 말한 것으로 판명된다.알저논은 잭의 동생인 척한다.그런데,그게 사실이었다.거짓말이 정말이 된 것이다.또,인생이 예술을 모방한 셈이다.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와일드의 예술론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버나드 쇼는 이 연극이 실없이 웃기기만 할 뿐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하루 저녁을 낭비했다고 비판했다.사실 이 작품을 극장에 팔 때 와일드는 이 작품이 우습고 경박한 희극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전했다.사실 희극 사상 이처럼 우스운 작품은 만나기 어렵다.그러나 그건 표면일 뿐이다.작품명이 무슨 도덕강연의 제목 같다고 느끼는 관객은 시종일관 웃은 다음 이 작품이 아무 내용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할는지 모른다.그러나 작가는 웃음의 가면 뒤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를 준엄하게 꾸짖는다.와일드가 이 작품을 출판하면서 한 친구에게 이 작품이 총처럼 발사되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작가의 이런 진지함을 포착한 관객이라야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다.「진지함의 중요성」은 이 작품의 제목으로 실로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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