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정한숙 - 끈질긴 탐구정신(探求精神)의 소산(所産)

by 송화은율
반응형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끈질긴 탐구정신(探求精神)의 소산(所産)
오탁번

  

 

일오(一悟) 정한숙의 문학적 특징을 말하기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그만큼 그는 부단한 실험 의식과 탐구 정신으로 한국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왔다는 말도 된다. 1948년 대학 재학 시절에 단편 <흉가(凶家)>를 발표한 것부터 기산하면 올해로 그는 36년 동안 소설에만 정진해 왔다. 이 36년이라는 시간의 폭 안에는 우리 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갈등과 굴곡이 들어 있으며, 이것은 인간 정한숙에게만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대 소설이 성장 발전해 온 하나의 동인적(動因的) 요소가 들어 있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해방 후부터의 이와 같은 근 40년은 일제 36년과 맞먹는 혹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대 문학이 출범하고 나서 겨우 20년 동안에 그 초기의 문학적 결산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춘원(春園)에서 일제말까지는 겨우 20여 년에 불과한 시기였던 것이다. 우리의 현대 문학은 그 사적(史的)전개 과정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늘 해방 이전의 문학에만 치중되어 논의해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해방 이후의 40년이 더 큰 비중을 지니는 의미가 될지 모른다.

  정한숙은 해방이 되고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자 문학적 자유를 찾아 월남하였고 그가 목숨을 걸고 쟁취한 이러한 자유는 그와 함께 월남한 다른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상당한 기간 동안 온갖 좌절에 부딪치며 상흔투성이가 된다. 그가 48년에 데뷔했으면서도 그 후 6.25사변과 후퇴의 격변 때문에 그가 찾은 문학적 자유는 발붙일 곳이 없어져서 그 후 다시 사변을 겪으면서 <ADAM의 행로(行路)>(1952·新生公論) <광녀(狂女)>(1952·週刊國際)를 발표하였고, 1953년 조선 일보 현상 문예에 중편 <배신>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정한숙의 문학적 자유는 여기에서 그 터전을 완전히 잡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오늘날까지 여러 스타일의 작품을 쓰는 왕성한 탐구 정신을 보이는 것과, 데뷔 과정에서 보는 바와 같은 상황은 안주(安住)하지 않은 그의 정신의 소산이며 또한 그가 월남하면서부터 품었던 문학적 자유에 대한 보다 완전한 획득을 의도한 데서 오는 결과라 할 수 있다. 1955년 한국 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 <전황당 인보기>가 다시 입선되는 것은 위에서 말한 그러한 의도가 낳은 다른 하나의 결과이지만 그때의 황무지 같았던 문학 풍토로 보아서 그것은 데뷔 수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작품 발표 행위의 하나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정한숙의 문학은 사실상 <전황당 인보기>에서 그의 문학적 출발이 굳게 약속되고 있었다. 같은 해에 그는 장편 <황진이(黃眞伊)>를 한국일보에 연재한 것만 보아도 그의 문학적 수준이 이미 신인(新人)을 벗어나 바로 중견 작가의 대열에 올라서고 있다는 세평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55년에는 위의 작품말고도 단편 <닭>(사상계), <금당 벽화>(사상계), <묘안묘심(猫眼猫心)>(문학예술), <허허허(噓噓噓)>(현대문학) 등을 발표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 나갔다. 이듬해에는 장편 <애정 지대>를 평화신문에 연재하고, <바위> <고가(古家)> <예성강곡> 등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왕성한 작품 활동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특히 1958년 그가 37세 되던 해에는 장편 <절영도(絶影島)>(부산일보), <처용랑>(경향신문), <시몬의 회상>(신문예) 등을 연재하고 장편 <암흑이 계절>로 제1회 내성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출세작인 <전황당 인보기>는 우정의 미묘함과 사라져 가는 전통의 미풍을 전아(典雅)한 문체로 그린 작품으로 정한숙 문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질의 하나인 전통의 현대적 파악이라는 점을 잘 증명하고 있다. 절친한 친구가 벼슬을 하자 정표(情表)로 전황석으로 새긴 도장을 선물하지만 이미 그 친구는 속된 가치관에 물들어서 그렇게도 귀중한 도장을 한낱 망측한 돌덩어리로밖에는 보지 않는다. 속세의 부귀 영화에 눈이 어두운 사람과 문방사우(文房四友)로 만지며 사는 깨끗한 선비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선비의 눈에 비쳐 보인 이 작품은 전통적인 단편의 구조를 지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독자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현대인의 방황과 애정 심리의 일단을 파헤친 <묘안묘심>은 <전황당 인보기>와는 상당히 다른 각도에서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 <전황당 인보기>가 한 폭의 산수화라면 <묘안묘심>은 현대적인 모자이크 풍의 수법으로 의처증이 있는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냉혹하게 파헤친다. 또한 이 작품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고양이 울음을 내게 하는 데서 현대 문명 사회를 풍자하려는 의도도 엿볼 수 있다. 서로 불신하고 미워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부부간 애정 문제에 결부시켜 첨예화(尖銳化)시켜서, 의처증 환자의 변태적인 애정 심리를 그리면서 현대인에 만연된 불신 풍조를 극화하고 있다.

 <고가(古家)>는 장편 <끊어진 다리>(1962)와 더불어 민족사의 비극적 갈등과 좌절을 다룬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장동 김씨(壯東金氏) 가문의 씨족적(氏族的) 비극을 다룬 것이지만 그것이 6.25라는 민족 전체의 비극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봉건적 사상과 현대적 사상의 대립을 넘어서서 민족사의 비극적 조명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재'와 '태식'과 '길녀'와 구세대의 인습이 맞부딪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6.25라는 절대 비극과 합산되어 전통적인 가문의 종가(宗家)가 어떻게 붕괴되어 가는가를 그려 주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배경과 인물을 등시적(等時的)으로 내세워서 플롯의 발단을 삼고 있는데, 그는 그의 <소설 기술론(小說技術論)에서 다음과 같이 <고가>의 구조를 스스로 말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장동 김씨 종가(宗家)의 비극을 소설화하는 데 있어서 그 지방의 지형(地形)을 작품의 맨 처음에 단 두 문장(文章)으로 그린 것은 지리적인 약도를 독자에게 가르쳐 주려는 친절한 뜻에서가 아니다.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지세(地勢)를 첫 줄에 내세운 것은 이 작품의 주제와 인물, 성격이 연관을 지니도록 하려는 의도에서이다. 봉건주의적인 가족 제도의 인습(因襲)과 여기서 싹트는 비극을 표출하고 6.25사변이라는 돌발적인 사건에 의해서 전통적인 어느 종가의 파탄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소백산맥의 맥이 끊기듯 장동 김씨의 종가도 파탄이 오고 마는 플롯의 암시로서 저자는 이와 같은 발단을 설정했던 것이다.

  독자가 이와 같은 작가의 기술적인 의도를 알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작가는 이러한 치밀하고도 유기적인 연관성을 생각하여 플롯의 발단을 고도로 암시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윗글에서 보듯 작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얼마나 치밀한 의도를 지녔었는가를 알 수 있다. 정한숙을 가리켜 흔히들 실험 정신이 왕성하여 작풍(作風)이 다양한 작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작품의 완결성의 결여하는 말과도 통하는 일이 많으나, 정한숙은 <고가>에서 보듯 상당히 치밀성을 가지고 작품을 쓴다. 더욱 작가가 <고가>의 집필 동기를 말하는 자리에서 하룻밤 사이에 탈고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이 이러한 지적(知的)인 치밀성이 단순한 조심성에는 오는 게 아니라 선천적인 재분과 부단한 탐구 정신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고가>는 단편 소설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건 전개와 구조로써 이룩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작품 효과도 팽창되어 있다. 짤막한 이야기와 단순한 효과로 끝나는 단편의 성격을 벗어나서 서사 문학의 본령(本領)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60년 그가 39세 되던 해는 정한숙 문학에 있어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선보인다. <IYEU도(島)>(자유문학)가 그것이다. <IYEU도>는 제주도 전설에서 취재한 작품으로 중편소설의 규모로 씌어진 것으로 그의 이상(理想)을 남김없이 표출시키고 있다.

     이여도사 이여도사

    나의 사랑 그대는 이여도에 갔는가. 이여도사.

    이여도사 이여도사

    돛을 단 저 배는 이여도로 가는 밴가. 이여도사.

  이여도사는 제주도 어부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유토피아의 섬이다. '순복' '상운' '나'의 세 어린 주인공은 이상도(理想島)를 찾아서 노를 저어 가다가 표류하게 된다. 그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을 찾아서, 무한대의 자유를 찾아서 항해하지만 결국 이여도를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여도는 현실적인 의미로 살아 있는 섬이 아니라, 언제나 부재(不在)이기 때문에 그립고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되는 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IYEU도>의 상징이 비로소 이해된다. 이여도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꿈이요, 현실 극복, 현실 부정의 표상이다. 해도(海圖)에 없는 섬이라는 것을 어부들도 알고 있지만, 그러나 망망한 바다 어딘가에는 태풍도 불지 않고, 조난도 없고 가난이나 불신이 없는 영원한 나라, 이여도가 있다고 믿는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섬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그립다. 이것은 제주도 어부들의 전설에서 취재를 했지만 단순히 제주도의 현장 소설(現場小說)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과 현실, 현실과 이상, 타락과 순수, 좌절과 도전, 미움과 사랑이라는 대위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녀는 나와 같은 반의 동갑이었지만 거리에 산 탓인지 나보다 조숙하게 느껴지곤 했다

    "이여도가 바다에 있다고 전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의 눈동자는 별빛보다도 빛나 있었고 말소리는 열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묻고 나는 그녀의 시선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바로 여기가 이여도가 아닐까요.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디딤바위가 서 있는 언덕"

    나는 그녀의 말에 무어라고 대답 할 수가 없어 그녀를 나의 품속에 껴안았던 것이다.

  부재의 이상향 이여도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가식을 떨쳐 내고 순수하게 믿고 동화(同化)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찾을 수 잇다. 그러한 순간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자유를 가리킨다. 이여도의 스토리 전개는 이러한 무한의 자유, 절대의 순수를 향하여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부재(不在)의 미학(美學)은 그것이 인간 정신의 옹호로서 표출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은 이와 같은 인간애의 모습이 단적으로 암시돼 있다고 하겠다.

  "이여도는 저 수평선 끝에서 더 멀리 있단다."

  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내가 가리킨 수평선 끝을 바라보고 있는 길남의 얼굴은 흥분과 긴장에 얽혀 있었다.

  "아저씨, 오늘 이여도란 섬에 가 봐요."

  "못 간다, 오늘은. 길남이가 어서 자라지 않으면 못 가."

  순복이가 길자와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자살한 후 그의 아들 길남이와 '나'가 주고받는 말이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이상도에 대한 경험을 그대로 전수시키는 이 장면에서 현실에 좌절하고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지탱해 나가는 인간애의 끝없는 확인을 볼 수 있어서, 이 작품이 의도한 상징이 상당히 근원적인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은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근원적이라는 말은 인간 본연의 운명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데 정한숙의 중량감 있는 작품에는 이러한 주제가 늘 상징적인 수법으로 쓰이는 일이 많다.

  장편<끊어진 다리>도 여기에 속한다. 이 작품에서 '다리'는 leg와 bridge의 복합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주인공 '연이'의 육체적인 불구와 조국의 비극이 합치되어 다리는 복합 상징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의지가 좌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늘 이상을 향하여 출발하는 또 다른 상황을 암시해 주는데 여기서 주제가 선명하게 나타나곤 한다.

 "어떻게 하다니......미혜의 보이지 않는 눈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 아닌가?"

 나는 그때 의족을 풀어 놓았다.

 "이 다리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경제적인 실정이고......"

 죤은 그제서야 내 한쪽 다리가 없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나는 죤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죤, 신경 없는 이 고무다리도, 보이지 않는 미혜의 눈도, 결국은 내 의지로써 볼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야. 인간의 의지가 곧 운명이란 말이 있지 않나. 말하자면 운명이란 의지의 결정 같은 것이니까......"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작중 인물의 상황이 곧 시대와 민족의 상황으로 확산 변용된다. 이러한 변용의 형상화가 완벽한가에 대한 평가는 우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나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끊어진 다리>는 단순한 비극이나 전쟁이나 연애가 주제가 아니다. 주인공의 처절한 비극을 다루면서도 온후한 인간애의 정신이 서정적인 어법에 담겨 전달되는데, 주제에 비해서 어조나 분위기가 참으로 서정적인 것이 놀랍다.

  대체적으로 보아서 정한숙의 작품 세계는 장편의 경우에는 역사물이 많아서 <황진이> <처용랑> <이성계> <격랑> <논개> 등이 여기에 속하지만 단편 소설의 경우에는 현대인의 방황과 좌절을 그린 것(<묘안묘심> <닭장 관리>등)과 사라져 가는 전통미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것(<전황당 인보기> <백자 도공 최 술>등)과 고전 내지 역사를 현대화시킨 우의적인 것 (<쌍화점> <누항곡>등)과 민족사의 현장을 정면으로 다룬 것(<고가> <끊어진 다리> <조용한 아침>등)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어느 부류의 작품이나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은 인간 옹호의 정신이며 좌절을 극복하려는 의지라고 하겠다. 아주 좌절에 버리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한 좌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의지 설정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다루는 제재(製材)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것을 작품으로 만드는 작가 정신은 늘 한결같다. 그러니까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정신이 제재의 다양성에 비추어 의외로 한결같다는 말이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한숙은 꾸준히 많은 작품을 써 왔다. 그의 문학이 지닌 전반적인 성과, 그가 단신으로 월남하면서 꿈꾸었던 문학적 승리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리가 되겠지만, 지금 현 단계에서 볼 때, 한국 문학사에서 보기 힘든 가장 탐구 정신이 강하고 끈질긴 작가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1973년에서부터 작가 정한숙은 그 동안 축적되었던 학문적인 노력의 결과를 비로소 세상에 내어놓기 시작하였다. 소설의 창작과 평가에 대한 자세한 이론은 전개한 <소설 기술론(小說技術論)>과 <소설 문장론(小說文章論)>을 간행하였고 1976년을 전후하여 다시 <현대한국 작가론(現代韓國作家論)>과 <현대 한국 소설론(現代韓國(小說論)>등 무게 있는 논저를 내어놓아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동안 그는 문단의 정치적인 집단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작품을 쓰고 연구 생활에만 몰두해 왔다는 말이 된다.

  그는 물론 후세에 학자로서보다는 작가로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상업주의나 명예주의에 물들지 않고 초연하게 대학을 지키고 제자를 키우며 외곬으로 문학만을 걷고 있는 그는 대학 교수인 작가로서 그 특징이 규정될 것이다. 작업량으로 본다면 소설 창작이 압도적이지만, 권위주의를 배격하는 그의 아카데미즘은 대학의 교육자로서도 존중되리라 믿는다.

  1977년 전작 장편<조용한 아침>으로 '흙의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이러한 양면적인 신분이 잘 반영되어 있어서 이 시대의 조건을 살아가는 50대 지식인이 보고 느끼고 또 회상하는 것들이 아무런 꾸밈없이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서정적인 문체로 나타나 있다. 사랑-이것이 작가 정한숙이 숙명적으로 추구하는 영원한 주제이다. 그 대상이 한 여인일 수도 있고, 스승, 동료, 제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소론도 어차피 미완성의 글일 수밖에 없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