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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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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鄭芝溶, 1903- ?)

 

· 1927년 [조선지광]에 <향수>발표. KAPF와 대립.

· 향토적인 순수 서정시 발표.

· 이후 도시적인 소재로 시를 써 모더니즘적 경향을 보임.

· 구인회의 일원으로도 활동.

· 작품 : <그의 반>, <유리창1>, <향수> 등

 

· 문학 시기 구분

- 제1기 :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비관적 현실인식에 대한 비애의 정조

( <향수>, <고향>, 그외 동시류의 초기시 )

- 제2기 : 바다의 이미지와 도시의 이미지를 추구한 모더니즘(modernism)

- 제3기 : 카톨리시즘(천주교)의 신앙시와 지성, 극기, 절제의 동양적 세계관의 형이상학적 계열들의 시 ( <산> 등)

---  시 <구성동>, <향수>, <고향>, <그의 반>, <비>, <유리창I>

 

󰏐 정지용 문학 비평

정지용의 문학은 한국 현대시사의 전개에 있어 실로 중대한 의미로 작용해왔다. 이제 광복 43주년이 된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그동안 캄캄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지용의 시세계를 활짝 개방하여 다시금 독자와 만나게 한 것은 거의 시대적 요청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용은 한낱 시인이 아니다. 우리 현대시가 그 차체다. 1925년에 나온 소월의 [진달래꽃]과 만해의 [님의 침묵]은 전자가 <율조(律調)>로서 한국 현대시의 넓이에 기여하고, 후자가 <어조(語調)>로서 그 깊이에 기여했다면, 지용은 30, 40년대의 암흑과 혼란을 거쳐 민족 분단과 전쟁, 그리고 오늘까지의 시 전개에 있어서 표면적 혹은 이면적으로 한국 현대시의 높이를 <언어의 비유>로서 지탱한 시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1935년에 나온 [정지용시집]과 1941년의 [백록담(白鹿潭)]은 다 함께 중대한 문학사적 의의를 띤다. 그는 30년대 모더니즘의 영향권 아래에서 출발했으나 오히려 그 영향의 테두리 밖을 지향하여 동양의 고전과 우리의 전통문학과 만난다. 그의 청신한 이미지는 단순한 서양시의 역어적(譯語的) 차원에서 온 것이 아니라 보다 동양적인 흐름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같은 성격이 현대시사상 그를 가장 탁월한 시인이게 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지용은 초기에서부터 시의 공간성을 확대시켜 나갔다. 즉 시각적인 이미지가 도처에 번득이고 있다. 다만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뿐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감각으로 시를 만들어 냈다. 지용 이후의 시인 또는 동연배의 시인조차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 의해 한국시가 비로소 한 장르를 형성하게 되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6.25이후 이 땅의 현대시인임을 자임했던 청마, 두진, 목월, 지훈 등의 정신적 배후에서 항상 대부 노릇을 수행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정지용 생가(生家) 완전 복원

한국 시문학의 거장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생가가 1996년 8월 8일 완전히 복원됐다. 鄭시인의 생가는 충북 옥천군이 시인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2억 5천 7백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의 1 > 부지 6백여평방m에 건물면적 73평방m 규모로 복원했다.

 

복원된 생가는 돌과 흙으로 쌓은 담장이 목조 한옥으로 된 본채와 부속 건물을 감싸고 있으며 북쪽과 서쪽 담장에 싸릿문이 나 있다. 옥천군은 지난해 3월 부지를 매입, 전문가의 고증을 받아 복원했으며 지난 5월18일 '제9회 지용제'에서 상량식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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