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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자전(丁侍者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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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자전(丁侍者傳)

입동(立冬)날 새벽, 식영암은 암자 안에서 벽에 기대앉은 채 졸고 있었다. 이 때 밖에서 누군가가 뜰에 대고 절을 하면서 말하였다.

"새로온 정시자가 문안 여쭙니다."

식영암은 이상히 여기며 밖을 내다 보았다. 거기에는 사람 하나가 서 있는데, 몸이 몹시 가늘고 키는 크며 색이 검고 빛났다. 붉은 뿔은 우뚝하고 뾰쪽하여 마치 싸우는 소의 뿔과도 같았다. 새까만 눈망울은 툭 튀어나와서 마치 부릅뜬 눈과 같았다. 이 사람은 기우뚱거리면서 걸어 들어오더니 식영암 앞에 우뚝 섰다.

식영암은 처음엔 놀랐으나 천천히 글 불러 말하였다.

"이리 가까이 오게. 자네에게 우선 물어 볼 것이 있네. 왜 자네의 성은 정(丁)인가? 또 어디서 왔으며 무엇하러 왔는가? 더구나 나는 평소의 자네 얼굴도 모르는데, 시자(侍者)라고 하니 그건 또 어찌 된 연유인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시자는 깡충깡충 뛰어 더 앞으로 나오더니 공손한 태도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옛날 성인에 소의 머리를 한 분이 있어 포희씨라 했는데, 그 분이 바로 제 아버지이십니다. 또 여와는 뱀의 몸을 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제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아서 숲 속에 버리고 기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리를 맞고 우박을 맞으며 얼고 말라서 거의 죽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따스한 바람과 비를 만나 다시 살아나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추위와 더위를 천백 번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라나 인재가 되었습니다. 여러 대를 지나서 진나라 세상에 이르러 저는 범씨의 가신이 되었습니다. 이 때 비로소 몸에 옻칠을 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당나라 시대에 와서는 조로의 문인이 되었고, 또 철취라는 호를 받았습니다. 그 뒤에 저는 정도 땅에서 놀았습니다. 이 때 정삼랑을 길에서 만났지요. 그는 저를 한참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생김새를 보니 위로는 가로 그어졌고, 아래로는 내리 그어졌으니 내 성 정자와 똑같이 생겼네. 내 성을 자네에게 주겠네.' 저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말이 좋아서 성을 정으로 하고 고치지 않으려 합니다. 저의 직책은 사람들의 옆에서 붙들어 도와주는 데 있습니다. 자연 모든 사람들이 저를 부리기만 해서 제 몸은 항상 천하고 고달프기만 합니다. 하지만 제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히 저를 부리지 못합니다. 때문에 제가 진심으로 붙들어 모시는 분은 몇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제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이제 저는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토우인에게 비웃음을 당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하온데 어제 하느님이 저의 기구한 운명을 불쌍히 여겼던지 저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를 화산(花山)의 시자로 삼가서 섬길지어다.' 이에 저는 하느님의 명을 받들고 기뻐서 외다리로 뛰어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장로께서는 용납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식영암이 말했다.

"아! 후덕스러운 일이로구나. 정상좌는 옛성인이 남겨준 사람이로다. 몸의 뿔이 허물어지지 않은 것은 씩씩함이요, 눈이 없어지지 않은 것은 용맹스러움이로다. 몸에 옻칠을 하고 은혜와 원수를 생각한 것은 믿음과 의리가 있는 것이로다. 쇠주둥이를 가지고 재치있게 묻고 대답하는 것은 지혜가 있는 것이요, 변론을 잘 하는 것이로다. 사람을 붙들어 모시는 것을 직책으로 삼는 것은 어진 것이요, 예의가 있는 것이며, 돌아가서 의지할 곳을 택하는 것은 바름이요, 밝은 것이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아름다운 덕을 보아서 길이 오래 살고, 조금도 늙거나 또 죽지도 않으니, 이것은 성인이 아니면 신이로다. 그중에 나는 하나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러니 너의 친구가 될 수 없는데 하물며 너의 스승이 될 수가 있겠느냐? 화도에 화라는 산이 하나 있다. 이 산 속에 각암이라는 늙은 화상이 지금 2년 동안 머물고 있다. 산 이름은 비록 같지만 사람의 덕은 같지 않으니, 하늘이 그대에게 명하여 가라고 한 곳은 여기가 아니고 바로 그곳일 것이다. 그대는 그곳으로 가도록 하라."

말을 마치고 식영암은 노래를 부르면서 그를 보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정(丁)이여! 어서 빨리 각암이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하라. 나는 여기서 박과 외처럼 매여 사는 몸이니, 그대만 못한가 하노라."

출전 : 동문선(東文選)

요점 정리

작자 : 석식영암. 혹은 미상

연대 : 고려말

갈래 : 가전

성격 : 교훈적, 불교적, 풍자적, 우화적

구성 :

도입 : 주인공의 신분과 가계를 서술 - 식영암의 질문 - 이름의 유래, 방문 목적, 직분

전개 : 주인공의 성품과 행적을 서술 - 정시자의 대답 - 고귀한 출신, 의탁할 것을 부탁,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

평설 : 작자 자신이 주인공에 대하여 평가 - 식영암의 답변 - 정시자의 후덕한 인품 칭찬, 자신은 정시자의 스승이 될 사람이 못 됨. 각암을 소개함

주제 : 인재를 알아볼 줄 모른 세태 풍자(불교 포교와 지도층의 겸허를 권유한 것으로, 선문답(禪問答) 같은 내용을 지닌 파격적인 작품) / 자신을 깨닫고 도를 지킬 것을 경계

특징 : 도입부와 논평부가 없는 가전의 일반적 구성의 변형으로 서술이나 설명이 아닌 대화체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음.

줄거리 : 고려 말엽의 승려 석식영암(釋息影庵)이 지은 가전체(假傳體) 설화. 내용은 정시자(지팡이)를 의인화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설화이다. 즉, 입동(立冬) 날 새벽에 식영암이 졸고 있는데 정시자가 찾아와 나가 보니 섬장(纖長)한 모습에 가므스레한 눈매를 하고 붉은 뿔이 돋은 인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복희씨(伏羲氏)가 자기 아버지이고, 여와(女:상고시대의 제왕)가 자기 어머니인데, 자신을 수풀 사이에 낳아 둔 채 돌보지 않았으나 풍우의 은혜로 자라나 중이 되었다고 말하고 석식영암을 사사(師事)하러 왔노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의의 : 정시자전을 주인공의 일대기를 쓴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하루에 일어난 한시적 상황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가전 중에서도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이런 까닭에 '화왕계'와 같은 의인체 문학으로 보기도 하고, 대상을 의인화하여 당시의 사회상과 배불 사상을 비판함

출전 : 동문선

내용 연구

 

입동(立冬)날[겨울이 시작되는 절기의 하나] 새벽, 식영암(息影庵 : 고려 때의 승려로 작가 자신)은 암자 안에서 벽에 기대 앉은 채 졸고 있었다[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을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내용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있음]. 이 때, 밖에서 누군가가 뜰에 대고 절을 하며 말했다.

“새로 온 정시자(丁侍者 : 정이란 지팡이를 가리키는 말이고, 시자란 귀한 사람을 모시는 사람을 뜻함 / 지팡이를 의인화함)가 문안드립니다.”

식영암은 이상히 여기고 밖을 내다보았다. 거기에 사람이 서 있는데, 몸은 가늘고 키는 크며, 색이 검고 빛났다. 붉은 뿔은 우뚝하고 뾰족하여 마치 싸우는 소의 뿔과 같았다. 새까만 눈망울은 툭 튀어 나와서, 마치 부릅뜬 눈과 같았다. 그 사람은 기우뚱거리며 걸어오더니 우뚝 섰다.[정시자의 외양 모습 - 고목으로 만든 지팡이의 모습]

식영암은 처음엔 놀랐으나 천천히 그를 불러 말했다.

“이리 가까이 오게. 물어 볼 것이 있네. 자네는 왜 이름을 정(丁)이라 하는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하러 왔는가? 나는 평소 자네 얼굴도 모르는데 스스로 시자(侍者)라고 하니, 그건 또 어찌해서인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丁)은 깡충깡충 뛰어 앞으로 왔다. 그리고 공손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 성인에 소의 머리를 한 분을 포희씨(包犧氏)[복희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제왕(帝王) 또는 신(神)으로 복희(伏遠:伏犧)·복희(宓羲)· 포희(押犧)복희(필犧)·포희(怏犧) 등으로 쓰기도 한다. 진(陳)에 도읍을 정하고 150년 동안 제왕의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몸은 뱀과 같고 머리는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어서 해 ·달과 같은 큰 성덕을 베풀었다 하여 대호(大昊:끝이 없이 넓고 큰 하늘과 같다는 뜻), 또는 대공(大空)이라고도 한다. 복희 황제는 3황 5제(三皇五帝) 중 수위에 있어 중국 최고의 제왕으로 친다. ‘복희’라는 이름은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 속에 나오는, 복희가 8괘(八卦)를 처음 만들고, 그물을 발명하여 어획 ·수렵(狩獵)의 방법을 가르쳤다고 전하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대(漢代)의 '위서(緯書)'에는 복희의 모친인 화서(華胥)가 뇌택(雷澤:山東省 복현 남동쪽에 있는 연못)에서 기인(奇人)의 발자국을 밟은 후 수태하여 복희를 낳았다고 하므로, 오래된 전승(傳承)에 기인한 설화같이도 보이나, 후세에 억지로 덧붙인 설화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낳고 있다.]라 하는데 그가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또, 뱀의 몸을 한 분을 여와(女와)[중국 천지 창조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사람의 얼굴과 뱀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함, 복희씨의 누이동생 또는 아내라는 설이 있음]라고 하는데, 그가 곧 저의 어머니입니다. 저를 낳아서 숲 속에 버리고 기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리와 우박을 맞을 때 마치 말라서 죽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바람을 만나면 다시 살아나는 듯하였습니다. 이처럼 한서(寒暑)[추위와 더위로 여기서는 '세월'을 뜻함]를 천백 번 겪은 뒤 자라서 성인(成人)이 되었습니다[씩씩함과 용맹함을 갖춘 정시자]. 여러 대를 지나 진(晉)나라 세상에 이르러 범씨(范氏)의 가신(家臣)[정승의 집안일을 맡아 보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때, 비로소 칠신지술(漆身之術)[몸에 옻칠을 하는 방법 : 전국 시대 진나라 지씨의 신하 예양이, 자기 주인이 남에게 망한 것을 보고 그 원수를 갚으려고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 행세를 한 고사를 말함. 원문 중의 범씨는 지씨를 잘못 쓴 것으로 추측됨]을 배웠습니다. 당(唐)나라 시대에 와서는 조노(趙老 : 당나라 때의 유명한 승려 조주를 말함, 그는 말을 잘 하여 쇠주둥이라 불리었음)의 문인[문하생. 문하에서 배우는 제자]이 되어 거기에서 철취(鐵嘴)[철로된 입부리. 화술이 능한 사람. 말이 영험하여 사리에 어그러지지 않음]라는 호를 받았습니다[지혜롭고 변론을 잘 하는 정시자]. 그 뒤 저는 정도(定陶)[중국 산동성 하택현 남쪽땅] 땅에서 놀았습니다. 이 때, 정 삼랑(丁三郞)[정씨 성을 가진 삼랑 벼슬을 하는 사람]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한참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생김새를 보니 위로는 가로 그어져 있고, 아래로는 내리 그어져 있으니, 내 성(姓) 정(丁)자와 꼭 같이 생겼네, 내 성을 자네에게 주겠네.’[지팡이의 모양을 본따서 丁씨 성을 얻음] 저는 이 말을 듣고 성을 정이라 하였는데, 앞으로도 고치지 않으려 합니다.

저의 직책은 남들을 모시고 도와 주는 데에 있습니다[어질고 예의를 갖춘 정시자]. 모든 사람들은 저를 부리기만 해서 항상 천하고 고달프기만 합니다. 그러나 저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히 저를 부리지 못합니다[바르고 밝은 정시자]. 그러므로 제가 진심으로 붙들어 모시는 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제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이제 저는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나라 안을 돌아다니면서 토우인(土偶人 :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전국 시대 웅변가 소대가 한 말로, 목우(나무로 만든 인형)가 토우에게 말하기를 "비가 오면 너는 풀어져서 없어질 것이다." 하니 토우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흙으로 된 것이라 풀어져야 고향인 흙으로 가지만, 비가 와서 물이 많이 나면 너는 물에 떠서 어디로 갈지를 모를 것이다."라고 목우를 비웃었다고 함./ '토우'가 정시자를 비웃는다는 것은 임금이 인품이 있는 정시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토우와 같은 현실적이지 못한 대상만 섬기고 있는 상황을 비유한 것임]. 하온데 어제 하느님이 저의 기구한[팔자가 사나운] 운명을 불쌍히 여겼던지 저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를 화산(花山)의 시자(侍者)로 삼을 것이니, 이제 그 곳으로 가서 직책을 받들고 스승을 오직 삼가서 섬길지어다.’ 이에 저는 하느님의 명을 받들고 기뻐서 외다리로 뛰어온 것입니다. 원컨대, 장로(長老 : 나이가 지긋하고 덕이 많은 사람 / 식영암)께서는 용납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식영암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아, 후덕스런 일이로구나. 정 상좌(丁上座 : 상좌란 절의 주지, 강사, 선사, 원로들이 앉는 자리로, 여기서는 덕이 많은 정시자를 높여 부른 말)는 옛 성인이 남겨 준 사람이로다. 몸의 뿔이 허물어지지 않은 것은 씩씩함이요, 눈이 없어지지 않은 것은 용맹스러움[용(勇)]이로다. 몸에 옻칠을 하고 은혜와 원수를 생각한 것은 믿음[신(信)]과 의리[의(義)]가 있는 것이로다. 쇠주둥이를 가지고 재치있게 묻고 대답하는 것은 지혜[지(智)]가 있는 것이요, 변론[변(辯)]을 잘 하는 것이로다. 사람을 붙들어 모시는 것을 직책으로 삼는 것은 어질고 예의가 있는 것이며, 돌아가서 바름을 의지할 곳을 택하는 것은 바르고 밝은 것이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아름다운 덕을 보아서 길이 오래 살고, 조금도 늙거나 또 죽지도 않으니, 이것은 성인(聖人)이 아니면 신(神)이로다. 그러니 너를 내가 어찌 부릴 수 있단 말이냐.[식영암은 자신이 정시자의 스승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함]

이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일[정시자가 갖춘 仁인義의禮예智지信신勇용正정明명壯장變변] 중에 나는 하나도 가진 것이 없다[식영암이 정시자의 청을 거절한 이유]. 그러니 너의 친구가 될 수도 없는데 하물며 네 스승이 될 수 있겠느냐. 화도(華都)에는 화(花)라는 이름의 산이 하나 더 있다. 그 산 속에 각암이라는 늙은 화상[수행을 많이 한 승려, 또는 승려의 경칭]이 지금 2년 동안 머물고 있다.

 

산 이름은 비록 같지만 사람의 덕은 같지 않으니 하늘이 그대에게 명하여 가라고 한 곳은 여기가 아니고 바로 그 곳일 것이다. 그대는 그 곳으로 가도록 하라.”

 

말을 마치고 식영암은 노래를 부르면서 그를 보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정(丁)이여! 어서 빨리 각암이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하라. 나는 여기서 박과 외[오이]처럼 매여 사는 몸이니 그대만 못한가 하노라.”

이해와 감상

고려 때의 승려 식영암이 지팡이를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체 작품, 이 작품은 '일체중생 실개성불'한다는 '자력구제적 무한궁리 속에서 풍부한 상상력과 불교적 바탕 위에 씌어졌다. 주인공인 '지팡이'는 석장과 같이 허식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장생불사하고 벽곡노찬(곡식은 안 먹고, 솔잎, 대추, 밤 따위를 조금씩 먹고 살거나, 길가면서 조금씩 요기하는 것)하는 탄망적 신선술을 상징하는 청려장류와는 매우 거리가 있는 지팡이다. '단이수식 위귀'라고 하였으니 손잡이는 丁(정)자형으로 쥐기에 편하고 짧아서, 가지기에 가볍고 힘주어 짚기에 편리하게 생긴 것이며, '필유일어삼달존언연후내감장'이라 하였으니, 곧 연세가 높거나 덕망이 높거나 벼슬이 높아야만 짚는 것이지 함부로 짚으면 오히려 사람의 품위를 잃게 된다는 특이한 존재이다.

인세의 덕(德 : 인, 의, 예, 충, 효)을 경계하는 당시 사회를 직접 비판, 분석할 수 없기 때문에 식영암은 의인화의 기법을 동원하여 당시의 사회상과 배불사상을 비판하였고, 사람을 부시(의지하고 믿는)하는 시자를 통하여 중생을 인도한다는 크나큰 사명감을 가지는 승려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고려말 불교의 전횡과 그 사회적 혼란을 그린 내용은 부패한 불교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고 승려와 지도층에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는 일종의 우화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무엇보다도 천하를 편력하면서 성인이 되어 (壯·勇·信·義·仁·禮·正·命) 인간에게 교훈을 주는 데에 있으며, 종교적,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도 노장사상을 배격하고 유불사상의 장점을 혼용, 완성하여 성불로 나아가려는 작자의 종교관이 잘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다른 가전체 작품에 비하여 길이가 아주 짧은 것이 특징이고, 가전의 형식적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눈여겨 볼만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대화체적인 방식을 택했는데 이러한 것은 고려 때의 이규보의 수필 '경설'이나 '슬견설' 등에서 볼 수 있다.

심화 자료

정시자전

고려 후기 식영암(息影庵)이 지은 가전체 작품.

〔내 용〕

≪동문선≫ 권101에 전하고 있으며, 지팡이를 의인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의 여타 가전들과는 좀 다른 파격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두에서 성명과 가계를 얘기하지만, 본전에서는 작가가 입동(立冬)날 새벽에 졸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정시자) 찾아왔다고 하면서 그 형상을 기이하게 묘사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올챙이라고 했으나, 자세히 보면 지팡이임을 알 수가 있다. 이어 작가가 묻고 정시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줄거리를 전개하고 있다.

먼저 작자가 성(姓)의 유래와 찾아온 목적, 시자(侍者)라고 부르는 이유 등을 물은 데 대해, 정시자가 자기의 부모와 생애 그리고 찾아온 연유 등을 차례로 대답한다. 아비는 포희씨(包犧氏), 어미는 여와(女蕃)인데 수풀 사이에 버려졌으나 풍수의 은혜로 성장하여 진(晋)나라 때에 범씨(范氏)의 가신이 되어 몸에 옻칠하는 기술을 배웠고, 당(唐)나라 때에는 조주(趙洲)의 문인이 되어 철취(鐵脾:쇠주둥이)라는 호를 얻었으며, 후에 정도(定陶) 땅에 놀면서 정삼랑(丁三郞)을 만나 성을 받았다고 하였다.

단 그의 직책은 사람을 부축해서 모시는 것인데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해 천하를 떠돌아 다니다가, 하늘이 그의 기구한 운명을 불쌍히 여겨 화산(花山)에 가서 스승을 받들어라 하므로 찾아왔다고 하였다. 받아달라는 청에 대해 작자는 정시자의 여러 미덕을 들어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고 거절하고 다른 화산으로 가라고 하며, 자신은 박이나 오이처럼 여기에 매인 몸이어서 정시자만 못하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특 징〕

이 작품은 작자가 수도(修道) 과정에서 느끼는 갈등을 지팡이의 속성을 통해 표출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즉 여러 미덕(壯·勇·信·義·智·辨·仁·禮·正·明)을 갖추고 길이 살아 늙거나 죽지 아니하는 정시자의 인물됨을 기리는 한편, 작자 자신도 정시자와 같이 되고자 하는 염원을 보인 것이다.

또한 당시의 사회상과 관련하여 사람을 부시(扶侍)하는 시자를 통하여 중생을 인도한다는 크나큰 사명감을 가지는 승려를 비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부패한 불교사회의 단면을 고발하고 승려와 지도층에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서두부의 파격, 꿈을 가설(假說)한 몽유록(夢遊錄)의 형식, 사건의 기술보다도 대화 위주의 전개방식, 평결부의 사신왈(史臣曰) 대신 불교의 게송식(偈頌式)의 노래 등은 고려시대의 다른 가전에서 한 걸음 진전된 형식적 특징이다.

≪참고문헌≫ 東文選, 益齋亂藁, 異苔同岑抄(梁柱東, 思想界, 1958.9.), 假傳體文學論에 대한 批判(李相翊, 국어교육 14, 1968), 韓國小說發達史 上(閔丙秀, 한국문화사대계 Ⅴ, 1968), 釋息影菴考察(曺素鶴, 高麗時代의 言語와 文學, 螢雪出版社, 1975), 高麗時代의 傳硏究(高敬植, 檀國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81), 韓國假傳文學硏究(安秉烈, 高麗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86), 釋息影菴의 정체와 그의 문학(金鉉龍, 韓國古典文學의 原典批評, 새문사, 199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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