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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 나믄 흥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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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 나믄 흥을

 

 

전원을 (완상하고) 남은 흥을 (다리를 저는) 나귀에 모두 싣고

계곡을 낀 산 속 익숙한 길로 흥겨워하며 돌아와서

아이야 거문고와 책을 다스려라. 나는 남은 시간을 흥겹게 보내리라.

요점 정리

작가 : 김천택(金天澤)

갈래 : 평시조

표현 : 중의법

어조 : 한가로움

제재 : 전원의 흥취

주제 : 자연 속에서 누리는 풍류. 전원에서 느끼는 흥취.

해제 : 초장에서 '전원의 흥(興)을 전나귀에 모두 실었다는 것은 나귀에 올라 전원의 멋을 흠뻑 즐기는 낭만적인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중장에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과 정겨운 산, 자주 다녀 익숙한 길이기에 나귀의 고삐를 놓아도 스스로 갈 만큼 자연스럽기 그지 없고 흥겨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내면서 종장에서는 거문고와 책을 벗삼아 남은 생애 동안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출전 : <진본 청구영언(珍本靑丘永言)>

내용 연구

 

전원을 (완상하고) 남은 흥을 전나귀[(다리를 저는, 작자의 분신 왜냐하면 가난하고 보잘것없음)]에 모두 싣고

계곡을 낀 산 속 익숙한 길로 흥겨워하며 돌아와서[중장에 나타난 시적 화자의 심정은 물아 일체(物我一體), 유유자적(悠悠自適), 무아지경(無我之境), 흥겨움]

아이야 거문고와 책을 다스려라. 나는 남은 시간[중의법, 하루 중 '나머지 시간' 또는 '여생(餘生)'의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을 흥겹게 보내리라.

 

전원(田園) : 논밭과 동산. 시골 교외.

전나귀 : 발을 저는 나귀., 작자의 분신으로도 볼 수 있음

계산(溪山) : 계곡을 낀 산.

니근 길 : 자주 다녀 익숙해진 길.

흥치며 : 흥겨워하며.

아해 : 얘야. '아 야'의 '야'가 탈락된 것.

금서(琴書) : 거문고와 책.

다스려라 : 준비하여라. 절제하여 실천하라. 익히도록 하여라.

이해와 감상

 

전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다 남은 흥을 지친 나귀에 모두 싣고, 경치 좋은 계곡 산길로 흥에 겨워 돌아와서, 아이의 거문고와 책 읽기를 단속하고, 남은 해를 그 흥취에 젖어 보내리라는 것으로, 자연에 몰입된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자연 속에서 실컷 풍류를 즐기며 놀다가 발을 저는 나귀에 몸을 싣고 돌아와,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며 남은 시간을 보내려는 작자의 모습은 한가함과 여유로움이 가득 찬 모습이다. 특히 '전원'은 심미의 대상이 아니라 풍류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전대(前代)의 상황과는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자연을 즐기고, 자연 속에 노니는 흥취(興趣)를 노래하는 경향은 시조에 담겨진 내용적 특색을 이루는 주류의 하나라 하겠다. 이 시조도 전원에 묻혀 세사(世事)를 초탈(超脫)하여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면서 거문고와 서책을 벗삼아 여생을 즐겁게 지내보고자 하는 가객의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연을 완상하며 그 속에서 노니는 흥취를 노래한 작품이다. 전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다 남은 흥을 발을 저는 나귀에 모두 싣고, 경치 좋은 계곡 산길로 흥에 겨워 돌아와서, 거문고와 책을 벗하면서 자연의 흥취에 흠뻑 젖어 남은 세월, 즉 여생을 보내리라는 소박한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조는 전원에 묻혀 세사를 초탈해 버리고 거문고와 책을 벗삼아 음풍농월하며 여생을 즐겁게 지내려는 옛 선비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드러나 있다.

심화 자료

김천택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시조작가·가객(歌客). 자는 백함(伯涵) 또는 이숙(履叔), 호는 남파(南坡). 본관과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680년대 말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고금창가제씨 古今唱歌諸氏≫의 명렬순(名列順)으로 보아 김수장(金壽長)보다 몇 살 연장자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김수장의 출생년이 1690년(숙종 16)이므로, 김천택의 출생년은 1680년대 말이라고 보아도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김천택의 가계와 신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광산김씨세보≫에 김천택이라는 이름이 있기는 하나, 자가 화중(和仲), 호는 몽현재(夢賢齋), 관직은 통정대부 돈녕부도정(通政大夫敦寧府都正)으로 다르게 되어 있어, 동명이인으로 보인다.

김천택의 신분에 관해 ≪해동가요≫의 작가제씨(作歌諸氏)에는 숙종 때의 포교(捕校)라 소개되어 있다. 당시 가객들의 신분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중인계층으로서 관직생활은 젊었을 때 잠시 지냈고, 거의 평생을 여항에서 가인·가객으로 지낸 것 같다.

 

≪청구영언≫에서 자신의 시조를 ‘여항육인(閭巷六人)’이라는 항목에 넣은 것을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가 있다.

정윤경(鄭潤卿)이 ≪청구영언≫ 서문에서 “성률(聲律)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문예에도 밝다.”라고 평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당시의 일반 가객들보다는 인격이나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추측된다.

교유인물로는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을 이룬 김유기(金裕器)·김성기(金聖器)·김중려(金重呂) 등이 있으며, 이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시조작품은 진본(珍本) ≪청구영언≫에 30수, 주씨본(周氏本) ≪해동가요≫에 57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면 73수가 된다. 박씨본(朴氏本) ≪해동가요≫에서 새로운 작품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약 80수가 되므로, 당시의 가객으로서는 김수장 다음으로 많은 작품을 남긴 셈이다. 장시조는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단시조 작품이다.

내용은 강호산수를 읊은 것이 가장 많고, 교훈적인 것, 체념과 탄세적(歎世的)인 것이 많아서 사대부 시조의 경향을 답습하고 있는 느낌이다. 1728년(영조 4)에 편찬한 ≪청구영언≫은 당시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가악의 발달과 가집의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진본 ≪청구영언≫을 김천택이 편찬한 최초의 ≪청구영언≫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에는 580수의 작품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珍本靑丘永言, 古時調論(崔東元, 三英社, 1980), 金天澤의 身分에 대하여(權斗煥, 靑坡文學 13, 198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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