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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병정 / 동화 / 안데르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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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병정 / 안데르센

 

옛날에 스물 다섯 명의 장난감 병정이 있었다.
모두 낡은 주석 숟가락으로 만든 형제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붉고 푸른 멋진 군복에 어깨에는 총을 메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병정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들은 소리는
"야! 장난감 병정이다"
라는 소리였다.
생일 선물로 장난감 병정을 받은 한 소년이 선물 상자를 열어 보고 좋아서
손뼉치며 그렇게 외친 것이다. 소년은 병정들을 책상 위에 세워 놓았다.
병정들은 하나같이 똑 같았다. 그러나 한 병정만은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이 병정은 맨 마지막으로 만들어졌는데, 주석 이 모자라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 병정은 두 다리를 가진 다른 병정들과 똑같이 한 다리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래서 더우더 눈에 띄었다. 책상 위에는 다른 장난감들도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눈을 끄는 것은 종이로 만든 예쁜 성이 었다.
작은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면 방들이 보였다.
성 앞쪽에는 거울로 된 호수가 있었고, 호수 주위에는 수 많은 작은 나무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또 호수 위에는 밀랍으 로 만든 백조들이 떠다녔다.
백조들은 모두 매우 귀여웠다.
그중에서도 열린 성문 한가운데 서있는 작은 숙녀가 제일 귀여웠다.
그녀 역시 종이를 오려서 만든 것이었다.
작은 숙녀는 밝은 모슬린 옷을 입고 있었고 어깨에는 가느다란 푸른색 띠를 스카프처럼 두 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띠에는 그녀의 얼굴만큼이나큰 금박으로 된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무희인 작은 숙녀는 양팔을 하늘로 내뻗고 있었고 다리 하나를 외다리 병정이 볼 수 없을정도로 높이 쳐들고 있었다. 그래서 외달리 병정은 무희도 자기처럼 다리가 하나밖 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색시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콧대가 너무 높아. 귀족처럼 성에서 살잖아.
나는 스물 다섯 형제와 함께 상자에서 사는데 말이야.
상자는 저 아가씨한테 어울리지 않아. 그래도 친구라도 될 수 있는지 알아봐야지.
외다리 병정은 이렇게 생각하며 책상 위에 있는 담배통 뒤로 몸을 쭉 뻗고 누웠다.
그러자 한 다리로 균형을 잃지 않고 서 있는 우아한 숙녀가 제대로 보였다.
저녁이 되어 그 집 사람들은 병정들을 모두 상자 속에 넣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자 책상 위의 장난감들이 저희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게임을 하고, 전쟁 놀이도 하고, 무도 회도 열었다.
병정들은 그들과 함께 놀고 싶어 상자 속에서 몸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나 상 자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호두까기는 공중제비를 하고, 연필은 책상을 뛰어다녔다. 참으로 소란스러웠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 카나리아가 수다를 떨며 시를 읊조렸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외다리 병정과 춤추는 무희뿐이었다.
무희는 두 팔을 곧게 뻗고 외다리 병정처럼 꿋꿋하게 한 발끝으로 서 있었다.
외다리 병정은 잠시도 무희이게서 눈을 떼지 않 았다.
시계가 열두 시를 치자 담배통 뚜껑이 획 하고 열렸다.
그런데 그 안

에서 튀어나온 것은 담배가 아니라 검은 색의 작은 도깨비였다.
그 담배통은 수수께끼 상자였던 것이다.
"외다리 병정, 네 것이 아닌 것은 갖고 싶어하지 마."
도깨비가 말했다. 그러나 외다리 병정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어렵쇼, 그럼 내일 두고 보자."
도깨비가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외다리 병정을 창가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도깨비의 장난 때문 인지, 아니면 바람이 불어서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창무이 획 열리면서 외다리 병정이 삼층 에서 길거리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외다리 병정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외다리를 공중에서 바둥거렸다.
헬멧과 총검이 돌멩이 상이에 박혀 버렸다.
하녀와 어린 소녀이 외다리 병정을 찾으러 쏜살같이 달려 내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외다리 병정을 밟을 뻔했으면서도 찾지 못했다.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소리쳤더라면 소년이 금방 알아보 았겠지만, 외다리 병정은 가만히 있었다.
멋진 군복을 입은 병정의 체면상 그럴 수가 없었 다. "저기 좀 봐! 장난감 병정이 있어. 배가 있어야겠는걸." 한 아이가 말했다.
두 아이는 신문지로 종이배를 만들어 그 위에 외다리 병저을 태워 도랑으로 띄워 보냈다.
그리고 도랑 둑을 따라 손뼉을 치면서 배를 따라왔다. 그런데 이제 큰일이었다.
억수같이 퍼부은 비 때문에 도랑에 큰 파도가 일을 쳤다.
그 때마다 외다리 병정은 겁이 나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외다리 병정은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잘 견뎠다.
그는 앞을 똑바로 보고 총을 어깨 위에 꽉 메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종이배가 하수구로 휩쓸려 들어갔다.
예전에 갇혀 있던 상자처럼 주위가 컴컴해졋다.
외다리 병정은 덜컥 겁이났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그래. 이게 다 그 도깨비 때문이야.
아, 이종이 배에 무희도 함 께 있다면 이런 어둠쯤은 하나도 무섭지 않을테데.
" 그 때 갑자기 하수구에 살고 있는 큰 시궁쥐가 나타났다. "너 통행증 있어? 당장 내놔 봐."
시궁쥐가 다그쳤다. 그러나 외다리 병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단단히 총을 거머쥐었다.
종이배가 계속 떠 내려가자 시궁쥐가 쫓아 왔다.
"막아. 못 가게 막으란 말야. 통행세를 안 냈어, 통행증을 보여주지 않았다구!"
그러나 물살은 점점 더 거세졌다. 하수구가 끝나는 곳에 이르자 햇살이 비쳐 들었다.
조금 나 가면 하수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쏴쏴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그 소리를 들으면 겁이 났을 것이다.
하수구는 곧장 큰 운하와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큰 폭포 속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나 장난감 병정에게나 똑같 이 위험한 일이었다.
이제는 배를 멈추기에도 이미 늦어 버렸다. 종이배는 쏜살같이 미끄러 졌다.
그래도 가엾은 외다리 병정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전혀 겁나지 않은 것처럼. 종이배는 몇 번씩이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가장자리까지 물이 가득 차 올랐다.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외다리 병정은 목까지 물이 차 올라와도 꼼짝 않 고 서 있었다.
종이배는 점점 더 깊이 가라앉더니 마침내 물에 젖어 일그러져 버렸다.
외다리 병정의 머리 위로 물이 덮쳤다.
외다리 병정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귀엾고 작은 무희를 생각했다.
바로 그때 노랫소리가 드렸다. "잘 가오, 전사요!"
죽음의 문턱을 건너더라도 항상 용감해야 하느니!"
마침내 종이배는 갈기갈기 찢겨지고 외다리 병정은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바로 그 순 간, 큰 물고기가 나타나 외다리 병정을 삼켜 버렸다. 오, 고기 뱃속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그 곳은 하수구보다 더 어둠침침하고 비좁았다.
그러나 외다리 병정은 여전히 총을 단단히 잡고 꿋꿋하게 견뎠다.
물고기는 멋진 동작으로 이리저리 헤엄을 쳐 다니다 잠잠해졌다.
얼 마 후 물고기 뱃속으로 한 줄기의 밝은 빝이 비쳐 들어오는 듯 하더니 햇살이 와르르 솓아 졌다.
그리고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장난감 병정이다!"
그 물고기는 어부에게 잡혀 시장으로 옮겨졌다가 어느 요리사에게 팔렸는데, 요리사가 이제 막 큰 칼로 물고기의 배를 가르던 참이었다.
요리사 아줌마는 외다리 병정을 꺼내 방으로 가져갔다.
아이들이 물고기 뱃속을 여행하고 온 장난감 병정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외다리 병정은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들 책상 위에 세워 놓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참 희한한 일도 많은 법,


그 방은 바로 장난감 병정이 있던 방이 아닌가! 아이들도 그대로이고, 책상 위에 있던 옛 친구들도 그대로였으며, 귀여운 무희가 서 있던 화려한 성도 그대로였다.
무희는 여전히 한쪽 다리를 높이 든 채 한 다리로 서 있었다.
무 희를 본 외다리 병정은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 았다. 외다리 병정은 무희를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외다리 병정을 집어들더니 난로 속에 집어던지는 게 아닌가.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담배통 속에 있는 도깨비의 장난이 틀림없었다.
불길이 외다 리 병정을 덮쳤다. 무지무지하게 뜨거웠다.
그러나 외다리 병정은 그 뜨거움이 불길에서 나 오는 것인지,
무희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군복의 색깔도 바래 있었지만, 그것도 여행 중에 그렇게 된 것이지 슬픔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외다리 병정은 무희를 바라보았으며, 무희도 외다리 병정을 바라보았다.
몸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지만 외다리 병정은 여전히 총을 들고 꿋꿋하게 서 있었다.
그 때 문이 획 열리더니 바람이 무희를 덮쳤다.
무희는 마치 공기 요정처럼 날아서 외다리 병정 옆에 떨어졌다.
그리고 불꽃 속으로 사그라졌다. 물론 외다리 병정은 다 녹아 내려 쇳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하녀가 난로에서 재를 끄집어냈을 때 외다리 병정이 녹아 내린 쇳덩어리는 작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희가 타고 남은 것이라곤 숯처럼 까맣게 타 버린 금박 장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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