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장 자크 상페
by 송화은율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장 자크 상페 지음 최영선 옮김
<앞부분 줄거리>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자전거를 타지 못했던 라울 타뷔랭은 자신이 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 내 보려고 자전거의 모든 부분들을 줄기차게 연구했다. 그 결과, 그는 자전거 전문가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타뷔랭은 포르통 영감의 가게에서 조수로 일하다가 그 가게의 주인이 되었다. 그의 자전거 수리 실력은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차츰 높아졌고, 생 세롱에서는 자전거라는 말 대신 타뷔랭이라는 말을 쓰게까지 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한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되면 그 전문가의 이름을 따서 사물들의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햄을 잘 만드는 프로냐르의 이름을 따서 햄은 프로냐르로 불렸다. 그러나 타뷔랭은 자신이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타뷔랭은 아내 마들렌이 매일같이 잘 다려 주는 푸른 작업복과 도시락, 예쁜 두 아이, 타뷔랭이라는 명성에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에르베 피구뉴라는 사진사가 찾아와 자전거를 타는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자고 제의했다. 타뷔랭은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피구뉴과 함께 아리드 언덕에 올라갔다.
피구뉴는 타뷔랭에게 소리쳤다.
자, 이제 달려 봐요!
그러자 타뷔랭이 말했다.
어디를요? 나, 자전거 탈 줄 몰라요!
점점 더 화가 난 피구뉴는 그에게 소리쳤다.
그 농담 되게 웃기네요! 뭘 걱정하고 그래요? 자전거를 그렇게 잘 고치면서, 그리고 간 호사와 결혼까지 한 양반이!
결국 타뷔랭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확실히 알지도 못한 채,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그는 브레이크를 꽉 쥐었다. 이상한 빛이 구름 사이로 새어들었다. 운이 지지리도 없지, 얼마 안 가서 비가 오겠어.하고 그는 생각했다.
피구뉴가 그에게 소리쳤다.
자 어서요! 곧 비가 오겠어요!
그는 브레이크를 늦췄다.
모든 사람들이, 프랑스는 물론 외국 언론에 커다랗게 실린 그의 자전거 타는 모습의 사진을 기억한다.
타뷔랭은 석 달을 누워 있었다. 우선, 다리와 왼팔 등 여기저기에 입은 타박상과 골절상, 그리고 도처에 얼룩진 핏자국. 그의 자전거는 더 이상 탈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밤이면 이 악몽의 일요일이 그에게 되살아나곤 하였다. 언덕 중턱에 있는 피구뉴가 다시 보였다. 그는 눈을 사진기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타뷔랭은 그 때 그 순간에 혼자 수없이 되뇌었던 말을 아주 큰 소리로 다시 외칠 때도 있었다.
난 안 넘어진다!
겁에 질린 피구뉴를 피하기 위해 격렬하게 발을 움직였던 순간도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 발동작 때문에 그는 도로 끝의 낭떠러지로 튕겨 나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가슴 부분이 아주 휑하니 비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처음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렸을 때처럼……. 그는 프로몽투아르라고 부르는 작은 고원 위에 어리는 그림자, 바로 자신의 그림자를 똑똑히 보았다. 그가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하고 지리 선생님을 따라서 딱 한 번 여기에 와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가장자리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셨다. 타뷔랭은 생각했다. 이번에는 꾸중을 듣겠는걸!
그 해 생 세롱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그러나 주변의 성화에 못 이긴 피구뉴는 그 역사적인 일요일의 일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이미 진부해진 그 유명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사방에서 요청을 하는 바람에 그는 몇 차례나 목청을 뽑아야 했는지 모른다. 어떤 출판 편집자는 피구뉴가 찍은 생 세롱 주민들의 인물 사진을 묶어 사진첩을 내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그 유명한 사진을 표지에 싣고서……. 피구뉴는 매일 타뷔랭을 방문했다. 그의 상태는 예상보다 빨리 호전되었다.
봄이 되자,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이라는 겸손한 제목을 단 사진첩이 출판되었고, 타뷔랭도 퇴원했다. 한 번 골절이 된 팔다리가 더욱 튼튼해지듯이, 타뷔랭과 피구뉴의 우정도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었다. 무의식과 오만, 영웅 심리가 밑바탕에 깔린 이 영광이 타뷔랭에게는 영 거북했다. 그는 인터뷰를 완강히 거절했다. 물론 모욕감 때문이었지만, 자신이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을까 봐 두려워서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애교가 지나쳐 허풍이라고까지 생각할 것이고, 뭐니뭐니해도 피구뉴와 마들렌, 나아가 셍 세롱의 신용까지도 손상될 것이 뻔했다. 타뷔랭은 속으로 늘 이 모든 것이 다 사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쨌건 사기는 사기인 것이다.
어느 날 저녁, 타뷔랭은 사진사 ― 그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 의 사진관에서 사진첩을 들추어 보면서 소시지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타뷔랭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자신의 사진이 빵집 여주인 이본이나 식료품상 쿠아뇽 같은 이들의 사진과 대조를 이루는 데에 다시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른 이들은 모두 부드럽고 평온한 조명 아래 조용하면서 절제 있고 겸손해 보였다. 타뷔랭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사진이 표지를 장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물론 인정했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이기에 더 이상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덤벼들다시피 했다. 꼭 아리드 언덕에서 떨어질 때처럼 그렇게…….
잠깐만, 피구뉴. 우리의 우정을 걸고 말하지만, 이 표지는 말이지요, 이건 일종의 사기예 요…….
당신 말씀이 아주 틀리지는 않아요.
영상의 사냥꾼 피구뉴가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야겠어요. 이건 내 생애의 비극이랍니다.
타뷔랭씨도 이제 나의 개인적인 비극을 다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이 사진, 아시지요? 아시다시피 이것은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입니다. 여기 저기 많이 복제되었지요. 채무 관계 를 해결하러 부인과 함께 프랑스를 방문했던 영국 총리, 기억 나시죠? 총리가 도착하던 날, 발판의 빨간 양탄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목이 부러진 총리. 거기에 나도 있었습 니다. 나도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찍은 사진은 이래요. 기술적으로야 내 사진은 완벽하지요. 공무원들의 시커 먼 무리며, 꽃을 들고 있는 꼬마 아가씨. 물론 잘 나왔지요. 그러나 나는, 순간,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이 사진 역시 아실 거예요.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이지요. 타뷔랭 씨도 잘 아시 는(타뷔랭은 모른다고 해도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 화해를 위해 마련된 정찬 때의 사진입니다. 젊은 공작 부인이(타뷔랭은 이름을 잘 알아듣지 못했 다.) 작은 원탁 위에 찻잔을 올려놓으려 하고 있고, 그의 젊은 남편이 그것을 보고 놀라는 바람에 황태자에게 커피를 쏟고 있지요. 그 때도 그래요. 거기에 나도 있었습니다. 그런 데…….
피구뉴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내 사진은 이렇습니다. 마찬가지예요. 기술적으로 내 사진은 흠잡을 데가 없어요. 그리 고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내 사진은 뛰어나다고까지 해야 할 겁니다. 황태자비가 젊고 수줍은 공작 부인과 얼마나 도도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가 잘 보이니까요. 그러 나 역시 순간을 잡지 못했습니다. 나는 두 경우만 예로 들었지만, 오십 가지라도 더 얘기 할 수 있어요. 내 비극은 말이요, 타뷔랭 씨. 항상 극히 중요한 사건의 이전이나 이후밖에 못 잡는다는 겁니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면, 그것은 당신의 그 환상적인 도약을 담 아 낼 수 있었던 거죠. 그러나 불행히도 그건 우연이었어요.
타뷔랭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당신이 이리저리 오고가는 재주를 부리면서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 묘기라니! 난 정말 당신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 내리막길로 질주할 때, 나는 당신을 단 한 컷 도 잡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당신이 내 쪽으로 돌진하다가 나를 피했을 때, 당신이 어디로 굴러 떨어지는지 보려고 길가로 다가갔어요. 그러곤 너무 놀라 그만 사진기를 떨어뜨렸지 요. 찰칵! 사진기가 사진을 찍었던 겁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요.
타뷔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피구뉴는 그 이튿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며 타뷔랭에게 좀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했다.
날씨는 습했다. 타뷔랭은 왼쪽 다리 때문에 고생스러웠다. 타뷔랭은 잊을 수 없는 그 사진 찍던 날, 피구뉴가 길에 물 그림자가 비쳤으면 하고 바랐던 기억이 났다. 오늘 저녁 같으면 물 그림자가 어리는 것을 볼 수 있었겠군! 사진사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의 모습을 찍는다면, 자기가 그렇게도 담아 내기를 열망했던 그 결정적인 순간,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는 말도 했다. 자신이 자전거를 잘 탔다면 피구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화가 치밀었다. 절대로 아무에게도 입을 열지 않을 일을 하마터면 피구뉴에게 고백할 뻔했을 뿐 아니라, 박제된 동물 사진이나 찍으면 딱 맞을 무능한 이 놈 때문에 목숨을 빼앗길 뻔하지 않았던가?
그는 여전히 기분이 언짢았다. 날씨는 계속해서 습했고, 그의 다리는 그런 날씨의 여파를 고스란히 느꼈다. 사진사에게 곧바로 사실을 털어놓았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금세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생 세롱이 주최하고, 그 유명한 루복스표 프레임이 후원한 자전거 경주가 벌어진 날이었다. 출발 신호를 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타뷔랭이었다. 사람들은 피구뉴가 아직도 여행 중이라서 참석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어쨌든 절대로 털어놓으면 안 돼, 피구뉴. 그래야 당신이 기쁨과 행운을 퍼뜨릴 거 아냐? 타뷔랭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울적했다.
축제가 끝나자 마들렌은
당신, 피구뉴가 보고 싶은 모양이군요.
하고 말했다.
그 못난 친구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합시다.
라고 타뷔랭이 대답하자, 마들렌은 그가 멋쩍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저녁, 타뷔랭은 크랭크 장치 하나를 대충 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달 동안 떠 나 있던 피구뉴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사진사가 입을 열려고 할 때 타뷔랭이 불쑥 말을 시작했다.
내 말을 좀 먼저 들어 봐요! 당신이 알아야 할 일이 있어요. 나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이 얘기를 진작 했어야 하는 건데……, 이건 비밀이오……. 날 좀 이해해 줘 요……. 내가 할 줄 모르는 것이 하나 있는데…….
타뷔랭은 별안간 기분이 맑게 개어 웃고 싶어졌다. 그는 웃었다.
내가 못 타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거 참, 우스운 노릇이지요! 내가 할 줄 모르는 것은…….
그의 웃음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고. 그러자 피구뉴도 함께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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