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임옥인 - 생활에 집약된 여인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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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생활에 집약된 女人像
                     丘仁煥

 

 

1

  문학은 인생의 표현이요, 현실의 반영이라는 말은, 소설의 경우에는 적어도 그 본령을 간명하게 간파한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인간 의식이나 생활이 변모한다고 해도 소설은 그 시대에 사는 인생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상상의 상징적인 표현도 현실과 유리될 수는 없다. 카프카의  〈변신〉이나 리처드 버크의 〈환상〉이 전혀 인생이나 현실과 무관한 상상의 소관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인생이나 현실을 기축(基軸)으로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창조해 보인 데 지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현실과 유리된 환상 세계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소설이 인생이나 현실을 구조적 기법으로 수용하는 언어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인생과 현실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여 다양한 기법으로 형상화하는 장인(匠人)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언어 예술의 장인에 의해 창조되어진 인생이나 현실의 새로운 해석이요 질서의 세계다.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언어 예술의 장인이 구사하는 기법과 문체의 측면과 인생이나 현실의 새로운 해석과 질서의 창조적 측면으로 집약되어진다. 그것은 소설이 기법과 문체에 의한 예술성과 새로운 해석과 질서의 창조에 의한 사상성의 이원적인 융합에 의해 형성되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예술가이면서도 철학가이어야 한다는 소이(所以)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대나 생활은 변해도 소설은 언제나 두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인생의 본질을 추구하여 인간 존재의 의미를 해명하려는 경향과 또 하나는 그러한 인간의 생을 향유하려는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경향이다. 앞의 경향은 〈오발탄〉이나 〈날개〉〈이방인〉과 같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본질적이며 존재론적인 인생의 해석이요, 뒤의 경향은 〈움직이는 성〉이나 〈을화(乙火)〉〈페스트〉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나 상황을 초극하여 궁극적으로는 유토피아를 추구하려는 삶의 모럴에 의한 삶의 현장의 제시다. 하나는 인생의 본질적 내향적 추구인데 비해 또 하나는 미래 지향적인 현재성의 제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역사 의식에 의한 인생과 현실의 투시이요, 낙원을 추구하는 삶의 도정(途程)의 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설에 수용되는 인생이나 현실은 정지적인 것과 역동적인 것의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정지적인 것은 식민지하에서의 삼대(三代)의 생활을 반영한 〈삼대〉나 제이 제정 시대의 사회를 배경으로 대가족사를 엮어 나간 졸라의 〈루공 마까르 총서〉와 같이 그 시대를 풍속사적으로 수용한 풍속도로 나타나며, 역동적인 것은 지성인의 삶의 지표를 보여 준 〈불꽃〉이나 6·25의 상황에서의 삶의 현장성을 보여 준 〈전야제〉와 같은 역사 의식에 의한 내일에의 지향성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앞의 경향은 어느 시대의 상황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경향으로 귀결되고 뒤의 경향은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여 내일을 추구하려는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경향을 띠게 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쓰건 그것은 작가의 자유다. 다만 그 소설의 공시적(共時的)인 의미를 넘어  통시적(通時的)인 의미를 추구할 때에 그 소설이 지닌 의미와 작가상이 문제로 등장하게 되다.

  그러면, 40년 동안 쉬지 않고 창작을 지속하고 있는 임옥인 씨가〈월남 전후〉를 중심으로 보여준 소설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아, 임옥인 소설이 안겨 주는 공감 영역의 문을 두드려 보자.

2

  우리의 많은 여류작가 중에서 임옥인 씨같이 집요하게 창작 생활을 지속하는 작가도 드물다. 그것은 《문장》에 단편 〈봉선화〉를 발표한 이후 40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씨의 창작의 도정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임옥인 씨는 1915년에 함북(咸北) 길주(吉州)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줄곧 그 곳에서 보내고 함흥의 영생 여고(永生女高)를 거쳐 일본의 나라(奈良) 여자고등 사범 학교를 졸업하여 모교인 영생 여고에 근무하면서 창작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본격 문학의 발표지인 《문장》에 〈봉선화〉〈고영(孤影)(1940)을 추천받아 직장 생활과 더불어 창작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그 후 누씨여고(樓氏女高)를 거쳐 해방 후에 혜산진(惠山鎭) 대오천(大吾川)에 가정 여학교를 설립·운영하면서 야학을 실시하여 농촌 부녀 계몽 운동에 몰두하다가 월남하여 창덕 여고(昌德女高)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6·25를 전후하여 《부인신보(婦人新報)》, 《부인경향(婦人京鄕)》의 편집과 미국 공보원의 번역관 등의 일을 맡아보면서 씨의 본격적인 창작 생활이 시작된다. 이 시기에 단편 〈중학생〉〈젊은 아내들〉〈구혼〉〈해바라기〉등과 장편〈그리운 지대(地帶)>(1954)와 〈기다리는 사람들>(1954)등을 발표하여 씨의 창작의 지주를 마련한다.

  민족의 비극인 6·25의 상처가 아물기 전인 1955년 이후 씨는 이화여대·덕성여대·건국대 등에 출강하면서 창작은 더욱 왕성해진다. 많은 단편과 장편 〈월남 전후〉(1956), 〈젊은 설계도〉(1957), 〈힘의 서정(抒情)〉(1962)등을 발표하여 여성의 생활에 얽힌 삶의 애환 속에서 그 고뇌를 인종과 사랑으로 극복하려는 씨의 소설 세계를 정립해 간다. 이 시기에 《문학예술》에  발표한 〈월남 전후〉는 해방 직후의 혜산진을 중심으로 한 혼란성과 여주인공의 투철한 역사 의식에 의한 생활을 보여준 작품으로 주목되며, 아시아 자유 문학상을 수상하고 KBS에서 대일 방송을 하는 등 씨의 출세작이 된다.

  씨는 그 뒤 건국대의 전임에서 여자 대학장, 가정 대학장을 역임하면서 문학의 강의 생활과 크리스찬 문학가 협회 초대 회장(1969), 기독교 방송국 자문 위원장(1970), 한국 여류 문학가 협회 제4대 회장(1972)등 사회의 공직에서 봉사하면서 창작에 시종하며 수많은 소설과 수필 등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씨의 봉사적인 사회 생활과 집요한 창작 생활은 조로하기 쉬운 문단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게 된다. 그것은 기독교 정신에 의한 봉사 활동이 창작의 결실을 풍성하게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씨의 교육자로서의 교수 생활과 다채로운 사회 생활의 조화에서 얻어진 창작의 의욕의 발현이다. 60편이 넘는 단편과 〈소의 집〉〈일용의 양식〉등의 중편은 물론 〈그리운 지대(地帶)〉,〈기다리는 사람들〉〈월남 전후〉〈젊은 설계도〉〈사랑이 있는 거리〉〈힘의 서정〉〈장미의 문〉〈돈도 말도 없을 때〉〈일상의 모험〉〈방풍림〉〈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등 십여 편의 장편으로 나타난 씨의 창작 활동은 실로 여류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한 작업의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씨의 문학 생활에서, 역경 속에서 강인한 생의 의지를 가지면서 내일을 지향하여 오늘을 인고(忍苦)하는 여인 생활을 묘파한 〈후처기〉(1940)는 씨의 출세작이며, 해방 후 혜산진의 무질서한 상황에서 가정 학교를 세워 투철한 역사 의식으로 살려다가 마침내 월남하는 생활을 그린 〈월남 전후〉는 씨의 대표작으로 할 수 있다. 또한 산장과 목장을 중심으로 사랑의 인고와 비극을 그린 〈힘의 서정〉, 착하고, 믿고 살려는 기독교의 의식이 짙게 나타난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등 여성의 생활에 얽힌 애환을, 오늘을 인고하면서 내일을 소망하는 기독교 정신을 기저로 주로 리얼리즘적인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씨의 소설 세계의 기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어느 작품을 보아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표현과 회상을 주로 삽입하는 구조는 친근성을 더해 주는 여류의 경향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씨의 소명적(召命的)인 창작 생활을 결실 가운데에서 본 전집에 수록된 장편 〈월남 전후〉와 단편 〈전처기〉〈어떤 혼사〉〈현실 도피〉를 중심으로 씨의 소설 세계의 실상을 찾아 씨의 소설의 의미를 추구해 보기로 하자.

3

   한 작가가 동일한 작품 세계에 안주하거나, 기법이나 문체의 편향성을 지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다양하게 변모해 가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염상섭이나 장용학 등에서 볼 수 있는 제재나 기법의 심화를 의미하고, 후자는 이광수나 서기원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의 확대와 다변화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정지되어 정체되지 않고 역동성을 지니고 새로운 변모를 지닐 때 완성한 구조미를 지향하는 예술로서의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독자의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는 삶의 의미를 구축하여 완성의 경지로 이행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임옥인 씨의 소설의 실상을 몇 가지 측면으로 집약시켜 볼 수 있다.

  첫째는 인텔리 여성 편중의 제재의 편향성을 들 수 있다. 〈월남 전후〉는 장편이기에 다른 면이 있다고 해도, 〈전처기〉나 〈후처기〉〈현실 도피〉〈어느 정사(情事)〉〈구혼〉등 많은 소설이 인텔리 여성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인텔리 여성은 세계나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성과 세련된 생활 감정을 겸비한 서민의 선두에 설 인물이다. 그런 인물은 누구보다 개체인 나의 생활의 소중함을 알아 생활을 향유하려는 개인적인 욕구와 시대와 이웃의 아픔을 자각하고 지향적인 삶의 지표를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 욕구의 갈등 속에 괴로워하는 것이 그 일반상이다. 그러나 〈전처기〉와 〈후처기〉〈현실 도피〉와 같은 작품에서 괴로움을 참는 인고와 생의 근원에 대한 애정을 추구하여 삶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춘희(椿姬)’를 연상하리만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소생을 위해 다른 여인과 맺은 남편을 깨끗이 보내는 서간체 소설인 〈전처기〉나 이웃과 친척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림과 전처 소생에 정성을 다하고 유일한 이해자인 친구 덕순이와 절교하고 나서 뱃속에서 커 가는 아이에 새 세계를 느끼는 〈후처기〉, 집요하게 생을 추구하다 어처구니없이 남자와 맺고 그 곳을 떠나는 〈현실 도피〉등이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

  덕순이를 절교해 버린 내 주위에는, 집 식구 이외엔 강아지 새끼 하나 어른거리는 것이 없었다. 이런 외부의 사교에서 멀리멀리 떠나도 털끝만큼도 고독과 허전함을 느끼잖는다. 내 속에 커 가는 한 생명이 내 유일한 벗이요,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나는 ‘내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질 듯이 기쁘다.

  내 주위는 점점 제한되어 가나, 그러나 내 마음은 무한정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새 세계에서 내 뱃속에 커 가는 내 아이의 태동을 빙그레 웃으며 느끼는 것이다.

  이 〈후처기〉의 종말은 바로 인텔리 여성으로서 새로운 생활의 자각으로도 볼 수 있으나 혈육에 의한 생의 계승적 의미를 자각하는 면에서 필부(匹婦)와 다를 바 없다. 〈전처기〉는 아이를 못 낳는 일생을 실망하지 않으며 ‘제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지 않듯이 아이 못 낳는 일도 안타까워 아니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관습의 희생자’의 길을 택하고 〈후처기〉에서 보인 인종보다 자아의 각성에 의한 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씨가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에서 보여 주듯 이웃을 사랑하고 관용의 미덕으로 인정하려는 기독교 정신이 그 기조를 이룬 데서 연유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아픔만이 아니고 이웃이나 민족과 시대의 격동과 아픔을 같이하면서, 삶의 현장과 상황을 응시하며 초극하려는 데 개인 의식이 사회 의식으로 확대되어 내일의 지향성을 가능케 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나 카뮈의 고뇌는 실존적 자각이나 부조리한 인간 존재를 자각하는데 마치지 않고, 그 자각을 확충하며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데 있다.

  인텔리 여성의 생활 편향의 제재가 답습된 윤리 의식과 기독교의 인고의 정신이 흡입 교차되어 형성된 것이 바로 씨의 작품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 정신에 의한 윤리 의식의 확산이 없이 개인 의식으로 응집하는데서 야기된 것이요, 계층 의식과 관습의 혼동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씨의 제재의 편향성은 인텔리 여성의 개인 의식과 기독교와 관습 의식의 이원적 의식의 상충과 관습에로의 도피에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이웃이나 시대와 아픔을 같이하고 그것을 초극하려는데 그 특성이 보인다.

  이런 경향은 기독교 정신에 기반을 둔 씨의 작가 의식에서 연유된 것이다. 자각된 의식이 개인의식으로 유착되어 버릴 때 그것은 내적 칩거(內的蟄居)의 동굴에 갇히게 된다. 그 의식이 의식의 동굴에서 사회로 확대될 때 이웃과 더불어 아픔을 같이하면서 내일을 가늠하는 삶의 지표로 상승되어 갈 수 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적 정신의 발현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월남 전후〉에서 이런 경우를 볼 수 있다. 그것은 풍속도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나(김 영인)의 안목으로 당시의 시대 상황을 투시하고, 역사 의식으로 그것을 점철했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말과 우리 글을 맘대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는 인텔리 여성의 자각을 민중 계몽 운동으로 실천 확대하고 있는데, 이 작품의 문제성을 찾아볼 수 있다.

  길주(吉州)에서 혜산진으로 가는 속의 소련군의 횡포, 일인(日人) 피난민의 참경, 을민의 변모, 권덕화 여사의 사랑과 사상의 갈등, 낙오된 일병의 비참한 모습, 순이와 연순의 생활의 정, 당원들의 도시화된 행동 등이 가정 학교를 세워 야학을 하고 문맹에서 민중을 구출하려는 영인의 역사 의식에 투시되어 수용되고 있는데 사회 의식의 자각을 확대해 가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어진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월남에서 남편이 총살당한 윤봉선 여사를 만나 그 악몽의 지역을 집약해 보이고, 유선생과 신여사들에 어울려 살아가는 것으로 끝마치고 있는 것은 고뇌의 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됨을 암시해 보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월남 전후〉는 해방 직후 공산화되어 가는 혜산진을 상징해서 보이는 한 사회를 투시해 형상화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집약되어진다. 이것은 여성의 안이한 생활에서 방황·고뇌하던 씨의 소설의 새로운 극복이 아닐 수 없다.

  셋째는 리얼리즘을 기저로 한 구조와 여성적 문제를 들 수 있다.

  작가가 구사하는 기법 여하에 따라 작품은 전혀 별개의 것이 된다. 씨는 근대 소설의 리얼리즘적인 기법으로 소설의 구조를 형성하여 간결하고 부드러운 여성적인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다.

  미묘한 모자의 심정을 간결하게 플롯화한 〈어느 정사〉나 회상법으로 평면화를 지향하며 일인칭 시점으로 후처의 생활을 부각시킨 〈후처기〉, 시종(始終)을 연결시켜 행동의 동기를 삽입한 〈현실 도피〉등 어느 작품을 보아도 가시적(可視的)이면서 인간 생활을 평면도로 구상화시키고 있다. 또한 그것이 약간 확산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을 주는 여성 특유의 표현으로 문제화하고 있다.

  이것은 변모해 가는 문화적 기법의 무관심을 입증하는 것이며, 씨의 문학적 경향화의 고착화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기독교 정신에 의한 문학 의식의 편향이 기법과 문체의 가변성을 저지하고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월남 전후〉는 삽입된 모든 장면이 을민의 횡포로 집약돼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사회를 투시하는 데 인과적으로 집약되어 구조의 긴밀성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도 〈월남 전후〉는 씨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

4

  시대나 역사는 부단한 것이고, 작품도 새로운 의미를 다양한 기법으로 형상화해 갈 것이다. 이러한 변모 속에 작품은 공시적(共時的)인 의미를 지니면서 계시적(繼時的)인 의미로 흡입되어 그 작품의 실상을 가지게 된다.

 〈봉선화〉를 발표한 이후 집요하게 지속한 작가 임옥인 씨의 40년에 걸친 피어린 창작 생활은 60여 편의 단편이나 10여 편의 장편에 집약되어 있다. 뿐만이 아니라 식민지 이후 8·15 해방과 6·25 등 수많은 사회적 격동 속에서의 여성 계층의 생활사를 압축하여 그것을 평면적으로 부각시키고, 기독교 정신에 기저를 둔 의식과 전통적 관습에 젖은 의식의 교착을 극복하려는 여인상을 형상화한 데 씨의 소설의 의미가 집약되어 진다.

  이런 의미가 해방의 기쁨 속에 공산화의 도식 속에서 방황한 한 시대의 상황을 역사 의식으로 투시하여, 삶의 지표를 제시한 작품이 〈월남 전후〉다. 이 〈월남 전후〉에 의해 작가 임 옥인 소설의 편향성을 지향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작품의 의미를 구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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