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일반화의 오류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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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의 오류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라고는 없다. 수학에서는 같은 양이나 크기가 값을 나타내는 등호에 의해 똑같은 것을 상정하지만 그것은 가정일 뿐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50억의 인간들이 서로 다 다르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은 서로 다 다르다. 예를 들면, 바닷가에 수많은 모래알조차 다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일일이 다 구별할 수는 없다. 또 그럴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통틀어 모래라고 부른다. 모래라는 이름으로 일반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모래알 하나하나는 서로 다 다르다. 심지어는 같은 기계 제품마저도 똑같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렇게 일반화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무수한 사물이나 현상의 하나 하나를 따로따로 이름을 붙이고 달리 취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모습, 성질, 구성인자 등등의 유사성에 의해 수많은 사물이나 현상을 몇 가지 작은 범주로 분류하고 이름을 붙인다. 말하자면 우리는 비슷한 사물이나 현상을 같은 이름으로 일반화해 부른다. 이 일반화하는 행위의 대표적인 것이 정의(定義)이다. 일반화 또는 정의는 이렇듯 무수한 사물과 현상의 간편한 파악을 위해서 필요한 인식론상의 한 방법이다. 그것은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고 지배하려는 인간의 필요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일반화나 정의는 같지 않은 것을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잘못된 인식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것은 흔히 엄연히 존재하는 개체간의 사실이나 차이를 무시하기 때문에 오류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일반화나 정의는 일반성을 지향하는 나머지 개체의 특수성이나 개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가진다. 그래서 에라스무스의 말처럼, "모든 정의는 위험하다." 한 두 예만을 보고서 성급하게 또는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신중해 행해진 일반화조차도 오류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사물이나 현상을 일반화해서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들의 인식을 돕기도 하지만 때로 그것들의 바른 인식을 방해하기도 하는 것이다. "분류는 인식의 조건이지만 인식 그 자체는 아니다. 인식은 분류를 배척한다"고 비판이론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그들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에서 한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름에 의한 일반화가 사물의 바른 인식을 막는 데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지도와 그 지도가 나타내는 지역이 서로 다르듯이, 이름과 그 이름이 지칭하는 사물은 서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혼동하는 것이다. 이런 혼동 때문에 사람들은 사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사물의 이름에 대해서 반응한다. 이것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먹이에 대해서가 아니라 종소리에 대해서 침을 흘리는 조건 반사와 같은 것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호랑이가 나온다" 또는 "순사가 잡아간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혼동에 의한 조건 반사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적이 쳐들어올 것이다"라고 국민을 위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예들은 실제 사물이나 현상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름에 반응하는 조건 반사를 이용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의 이름만 듣고도 움츠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물건보다는 상표를 보고 물건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의 예에 속한다. 그래서 유명한 상표의 사용권을 사는 일종의 속임수가 법적으로 행해진다. 반대로 사람들은 이름이 다르면 비슷한 것이라도 전혀 다른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교활한 상품제조업자들은 같은 물건을 포장과 이름만 바꾸어서 새로운 제품인 양 속이기도 한다. 최근 사회학자들은 사회문제로 간주되는 정신병자,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자, 동성연애자, 범법자 등이 많은 경우 그들에게 붙여진 그런 불명예스런 이름 때문에 문제가 없음에도 문제 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고 주장한다. 나쁜 이름으로 낙인찍음으로써 반대자에게 타격을 가하는 행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용되는 정치의 수법이다. 소련당국이 반체제 인사를 정신병동에 감금시키고 그들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익 독재 국가에서 민주 인사를 좌경으로 낙인 찍는 것도 같은 수법이다.

 

이름에 의한 일반화가 사물의 바른 인식을 저해하는 다른 하나의 경우는 같은 이름이 붙여진 상이한 사물이나 사상을 똑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같지 않은 것도 이름이 같기 때문에 똑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명이인을 서로 다른 사람인데도 이름이 같기 때문에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비근한 예로 우리말의 파랑이라는 말은 녹색과 청색을 하나로 취급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색깔에 같은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다른 색깔을 구별하지 않거나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국 색맹이 서로 다른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고 다른 색을 같은 색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에스키모인들에게는 눈()을 구별하는 말이 수십 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함박눈, 싸리눈, 진눈깨비 등 몇 개에 불과하다. 물론 어떤 사물을 지칭하는 말이 없다고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에스키모인들은 눈과 밀접한 자기들의 생활 때문에 눈을 세분하고 따로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차이를 구별하는 다른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 현상에 대한 명명의 일반화보다는 사회 현상에 대한 명명의 일반화이다. 더구나 일반화한 사회 현상에 대한 이름이 어떤 편견이나 악의와 결부되어 있을 때는 바른 인식을 크게 해친다. 가령 미국에서 흔히 흑인들은 교육수준이 낮고 범죄율이 높고 게으르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을 일반화해서 모든 흑인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흑인에 대한 편견으로 "흑인"하면 그들을 모두 같은 사람들로 본다.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을 "조센징"이라는 말로 열등한 사람으로 본 것이나 과거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을 "왜놈"이라는 말로 일본 사람 모두를 야만스런 사람으로 경멸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서울 깍쟁이," "시골 촌뜨기," "전라도 출신" 등 어떤 지역 출신 모두를 하나의 표현으로 지칭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똑같은 사람들로 획일화해서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 방식은 일종의 지나친 일반화로서 지역 차별을 낳은 등 문제가 많다.

 

이름에 의한 일반화는 필요하다. 수많은 사물이나 현상을 일일이 구별할 수 없고, 또 비슷한 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그것의 어떤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이 같다고 그 대상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동일한 사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간과 장소가 바뀜에 따라 달라지는데 하물며 동일한 것이 아닌 경우라면 그것들이 아무리 같은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서로 크게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이름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을 보아야 한다. 구체적인 사물 대신 추상화한 이름에 반응하면 방울 소리에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나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는 색맹과 다를 바가 없다. 이름은 사물이 아니며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고 같은 것이 아니다. 이름에 의한 일반화는 비슷한 사물이나 현상의 특성을 손쉽게 파악해 주는 것일 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모두 같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화하는 정의나 이름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어떤 집단을 낙인 찍는 수단으로 쓰이는 이름은 더욱더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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