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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에 관하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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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에 관하여 / 김광섭

 

() 나는 서울에 가서 중등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영문학을 공부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것이 나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망국민(亡國民)이기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 수모(受侮)는 형언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당시 동경은 공산주의의 아성(牙城)이었다. 나는 우리의 독립에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여 한동안 그들을 넘겨다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차라리 조용한 휴머니스트가 되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힘이 없어 일제(日帝)에 항거(抗拒)할 수도 없고, 이 땅의 아들이라 순종할 수도 없는 그 가운데, 미칠 듯이 달려드는 고민과 몸부림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항일 운동에 가담하고 만 것이다. 참으로 뼈저린, 일본의 8년이었다.

 

() 오늘날, 세계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방황하는 사람들이 적잖은 것 같다. 그들은 이 시대를 매우 어려운 때로 보고, 심각한 전환기니, 상실(喪失)의 시대니 하면서 고독해하고, 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난무(亂舞)를 즐긴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풍조(風潮)는 어느덧 우리 나라에도 상륙하여, 일부 청소년들이 이에 쏠리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은 자기 방치다. 시대를 핑계 삼지 말아야 한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들, 목적지가 있어도 사명감이 없는 사람들, 오직 그들만이 시대를 핑계삼아 불순하고 나약(懦弱)한 자기를 합리화(合理化)하는 것이다.

 

() 우리는 이스라엘 족속(族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들은 모세의 인도(引導)로 애급(埃及)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카나안 복지를 향했다. 그러나, 그리로 가는 도중에 그들은 어찌했는가? 좀더 참지 못하고 추악(醜惡)한 난무 속에 휩쓸리고 말았다 400년의 노예 생활에서 구제되는 날에도 자기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전철(前轍)을 되밟아야 할 것인가?

 

() 우리는 명백(明白)한 목표(目標)가 있다. 안으로는 통일(統一)을 이룩하며, 밖으로는 세계에 웅비(雄飛)해야 할 우리들이다. 그것이 또한 제군의 자기 실현이기도 하다. 이렇듯 명명백백한 목표가 있는데도 방황해야 할 것인가? 작은 생활 하나하나에도 경건(敬虔)한 태도로 임하여 한 발씩 한 발씩 우리들의 목표에 접근해 가야 할 것이다.

 

() 인생, 나는 이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무엇인가 일관(一貫)된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방황하는 것이 아니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남에게 괴롭힘을 많이 받은 우리의 인생은 이것이 첫째 자기 구제(自己救濟)인 것이다.

 

김광섭, ‘일관성에 관하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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