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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 헨릭 입센 / 해설과 줄거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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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Et dukkehjem:1879) / 헨릭 입센

 


  해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의 걸작으로 사회극 3막물인 "인형의 집"은
1879년 5월 2일에서 8월 3일에 걸쳐 완성되어 같은 해 코펜하겐의 길덴달과
레클람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1879년 12월 21일 코펜하겐의
왕립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입센을 일양 세계적 작가가 되게 한 문제작으로 발표 당시 이 작품의 예술적
평가를 압도할 만큼 찬부 양론으로 나누어져서 사회에 여러 가지 사건을
야기시켰다. 작품에 대한 비난 모작 개작 노라에 대한 모의 재판 등
사교계에서는 금지된 화제로까지 되어 있었다. 그 당시 어떤 파티의 초대장에는
'노라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하지 말 것'이라는 말이 써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의
문에는 '"인형의 집"에 대해서는 논쟁을 금함'이라고 씌어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 작품에서 취급된 테마 여성 해방 문제는 오늘날은 상식화된 것이지만
당시는 작가 자신도 예기하지 못했던 논란을 일으켰으며 사실적 대화와 치밀한
무대 기교와 아울러 19세기 이래 근대 극의 운동에 선명한 선을 그은 역사적
명작이 되었다.


  여주인공 노라는 우연한 사건에서 '수천 년 옛날부터 여성은 자식을 낳아서
기르듯이 본능적이며 맹목적으로 육체와 영혼을 모조리 남서에게 바쳐 왔지만
남자는 평생 여성이 바치는 순결한 애정을 충분히 향락하면서도 법률이나 체면의
앞에서는 어제의 향락주의자가 돌변하여 군자처럼 행동하는 비겁하고도 교활한
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사회에서 여성이란 결국 남성을 위한 한낱 인형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깨닫는다. 노라는 이러한 불합리한 사실을 각성하고 참된
인간 의무를 다하고 진실한 생활을 찾기 위하여 남편과 세 자식들을 버리고
결연히 10년 가까이 살아 온 가정을 떠나게 된다.


  "인형의 집"은 입센의 생존시 많은 논란의 대상이었던 여성 해방 문제에 가장
중요한 문학적 기여를 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형의 집"이 코펜하겐
오슬로 뮌헨 베를린 빈 등 유럽 각지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을 때 이
드라마는 세인들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작가 약전
  1828년 3월 20일 입센은 노르웨이의 스키인에서 출생하였다. 양친은 크누트
입센과 마리헨 입센으로 중류 이상의 가정이었으며 가족 중 많은 사람이 정치에
영향력이 있었다.


  8세 되던 해에 크누트 입센이 파산하면서 갑작스럽게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16세에 가족이 흩어져 그림스타드의 약제사의 견습 직원이 되었다. 매우
불행한 시기였다. 적은 봉급과 형편 없는 작업 조건으로 고독한 생활을 했으며
이 때부터 어둡고 반항적인 기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1848년 유럽을 휩쓸고 간 2월 혁명의 분위기에 젖어서 분노와 정열에
휩싸인다. 이 때 그는 대학 입학 자격을 얻기 위해 보조 목사와 함께 라틴어를
공부하는데 라틴어의 명문집 중에 키케로의 '카틸리네'를 읽은 것이 동기가 되어
처녀작으로 운문극 "카틸리네(비열한 반역자)"를 발표하였다.
  "카틸리네"는 오늘날 문예 호사가들의 수집 진본의 하나이나 발표 당시에는
극장과 출판업자가 원고를 인수하지 않아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자기의 이름을
숨기고 자비로 출판해 준 작품이다.


  21세에 시 대학 입학의 지망과 다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여비를
만들어 수도 키리스차니아로 갔다. 이 곳에서 일생 동안의 경쟁자였던 뵈른손과
빈예 등 노르웨이 문단의 명성들로서 빛난 사람들과 동창생이 되었던 것은
기연이었다.


  의학 시험에는 실패하고 친구인 쉬레류토의 하숙에서 궁핍한 생활을
계속하였으나 사극 "용사의 무덤"이 우연히 크리스차이나 극장의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일과 전후하여 젊은 친구들과 정치 문예의 주간 잡지를
발행한 일이 인연이 되어 1851년 24세에는 베르겐 시에 신설된 노르웨이 극장의
전속 작가 겸 무대 감독으로 초빙 받았다.


  이 극장은 덴마크의 사상과 문예적 영향에서 독립하여 노르웨이의 신문학
운동의 기초를 닦으려는 시도로 설립된 것이다. 그는 이듬해 4월에 파견되어
덴마크 독일 등의 극장을 견학하고 새로운 영향을 받고 귀국하였다.
  1858년 6월 18일 수산나 토레센과 결혼했다. 수산나 부인은 시인의 좋은
내조자였으며 여성 해방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영향을 미쳤다.


  1864년 4월 고국을 떠났다. 65세에 귀국할 때까지 28년의 긴 외국 유랑의
생애가 시작되었다. 남부 유럽 로마의 교외에 기거하면서 "브란드"를 썼다. 이
작품은 입센이 자기 나라의 문화를 비평한 것이다. 안이한 생활에 몰두하고 있는
노르웨이 국민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으며 탄핵이었다. 이 작품이 본국에 전해져
이 천재에 대한 경탄의 소리는 북유럽의 사회를 휩쓸었다.


  노르웨이의 국회는 시인 수당으로 연금을 그에게 지급할 것을 의결하였으므로
그의 생활은 겨우 여유를 찾게 되었다. 1868년에는 로마를 떠나 독일로
이주하였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번갈아 거주하며 1879년 "인형의 집"을 출판하였다. "인형의
집" 발표 이후 입센은 세계적 존재가 되고 발표되는 작품들은 모두 가치 있는
걸작이었다. 1891년 63세가 되던 해에 고국에 돌아왔을 때에는 백발의 노인이
되었으나 근대극의 선구이며 유럽 연극계의 왕자로서의 영예로 빛났다.
  그 후 입센은 크리스차니아에 영주하면서 약 10년 간 4편의 희곡을 내 놓고
병상에 눕게 되었다.


  1898년에 국민적으로 70세 생일을 축하받았으며 다음 해 그의 동상이 국립
극장 앞에 건립되었다.


  1906년 5월 23일 입센은 79세의 고령으로 동맥 경화증을 일으켜 생애의 막을
내렸다.



  줄거리


  노라가 변호사인 헬머와 결혼한 것은 8년 전의 일이었다. 노라는 세 아이의
어머니였으나 명랑하고 아름다워서 헬머로부터 귀염을 받아 왔으며 노라 역시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었다.


  남편이 중한 병을 앓게 되자 남편이 질색할 것을 알면서도 전지 요양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크로그스타트라는 고리 대금업자에게서 1200프랑의 돈을 빌렸다.
그 당시 헬머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변호사였기 때문에 살림이
대단히 곤란하였다. 노라는 이 사실을 남편에게는 비밀로 했다. 남편은 돈에
대해서 대단히 인색한 사람이었으며 남에게 돈을 빌리는 따위의 일은 아주
싫어하였기 때문이다.


  헬머는 노라의 배려로 남쪽 지방으로 요양해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였다.
  불과 56년의 눈부신 활약 끝에 헬머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실업계에 뛰어들어
어느 은행의 중역으로 있게 되었다. 헬머의 가정은 어느 때나 봄날같이
행복했으며 노라는 언제나 자식들과 함께 종달새처럼 즐겁게 노래 부르며
뛰어다녔다.


  노라의 불안은 순조로이 가라앉았다. 남편으로부터 넉넉한 용돈을 받아 절약해
모은 돈으로 빚을 청산할 작정이었다. 빚을 다 갚는 날 이 사실을 헬머에게
말해서 헬머가 자신에게 고마워하며 칭찬할 것이라는 즐거움을 상상하며
불편함을 참아갔다.

 



  -제1막-


  크리스마스 전날 노라는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아주 많은 물건 꾸러미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왔다. 돈에 인색한 헬머는
노라의 낭비벽을 꾸짖으면서도 변함없이 인형을 귀여워하듯 노라에게 애정을
보낸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노라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까닭은
그가 새 해부터 은행장으로 추천되어 수입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라는 남편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자신들의 나아진 형편을 헬머에게 말하며
헬머의 잔소리를 묵살한다. 그러한 노라의 모습에는 단지 낭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고 있다는 자랑의 빛이 엿보인다.


  옛 친구인 린데 부인이 찾아왔다. 린데 부인은 늙은 어머니와 나이 어린
동생을 위하여 사랑하는 애인과 이별하고 부유한 사람과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였으나 3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늙은 어머니와 동생을 먹여 살리는 책임감이
강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죽고 아우도 다른 곳에 가 있게 되어 홀몸이
되자 쓸쓸하고 재미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린데 부인은 노라 남편의 은행에
취직을 부탁하기 위해 온 것이다.


  노라는 린데가 자기만 고생을 한 것같이 말하는 데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취직의 일만은 쾌히 승낙하였다.


  그러나 무심코 한 약속을 이면에 뜻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하였다.


  린데 부인의 방문에 이어 크로그스타트가 찾아왔다. 노라는 곧 환멸을 느꼈다.
그는 남편 은행에 고용되어 있는 사람이며 노라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인데
부정한 수단으로 재물을 모았으나 지금은 헬머의 은행에 고용되어 사회에서
행세하고 있었다. 헬머는 크로그스타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그를
퇴직시키려 하고 있던 판이었다.


  크로그스타트는 희망을 잃고 노라의 비밀을 먹이로 면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라의 문서 위조가 형법상의 범죄가 된다고 하면서 노라를 협박하고 노라에게
헬머의 마음을 돌리도록 압력을 주었다.


  법률에 무지한 노라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문서 위조의 죄를 범했던 것이며
노라를 협박하기에는 충분한 무기였다.


  노라는 외쳤다. 딸이 사경에 빠진 아버지께 염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 또
남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와 남편을 위하여 한 희생적 행위를
처벌하려는 법률 그것은 인륜을 벗어난 법률이라고 당시의 법률은 여성의 권리를
철저히 부정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노라는 만일 자신이 죄를 졌다면 그것은 남편의 생명을 위하여 한 일이나
남편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내를 용서하여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노라는 헬머에게 크로그스타트의 복직을
간청하였으나 한 마디로 거절당했다.


  "크로그스타트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오. 죄를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남을 속이고 자신을 가장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구료. 자기의 이웃 사람
심지어는 마누라와 아이들에 대해서도 가면을 써야 하다니 이건 정말 끔찍스러운
일이오 노라. 일찍부터 타락해 버린 사람들 중 거의 모두가 거짓에 찬 좋지 못한
어머니를 갖고 있었소. 노라는 그런 자를 위해 어떤 일을 주선하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해 줘야겠소. 자, 노라"


  헬머의 말은 도덕가의 설교에 지나지 않으나 그 말은 노라의 양심을 칼로
찌르는 듯이 들려 왔다.

  제2막


  같은 방 크리스마스 저녁
  하루 사이에 노라의 심경은 눈에 띄일 만큼 변화했다. 그녀는 회의와 희망의
어둠 속에 시달리게 되었다.


  남편이 무심코 한 말이지만 그녀가 받은 충격은 컸다. 그날부터 노라는
자식들을 딴 방에 옮겨 두고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의 도덕적 부패가
자녀들의 죄를 빚지나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남편과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기가 범한 과실의 책임은 자기 자신이
져야 한다고 결심하고 그러기 위해서 어떠한 치욕이나 고통이라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사실이 폭로되어 노라의 위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게 될 때 남편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아마 헬머는 노라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노라는
생각한다.


  '대개는 어떻게 될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을지라도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아직 흥미가 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로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보여 줄 것인가?
중대한 위기에 처하는 아내의 생애에서 보잘것없는 욕망을 떠나 진실과 자유의
정신에서 보여 주는 남편의 희생적 행동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기적일 것이다. 그
기적을 나는 보고 싶다'
  '그리하여 깨끗이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의 길로 들어서 진실되게
살아가야 한다'


  크로그스타트는 드디어 면직되었다. 오늘도 그는 찾아와서 사정 없이 노라를
협박하고 돌아갔다. 그가 불쌍하기도 하였다. 그는 은행에 취직한 것을 기회로
지금까지의 부정을 뉘우치고 사회적으로 갱생의 길로 나가려 하는데 버림을 받게
된다면 다시는 재생의 길이 없을 터이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다시 은행에
복직할 수 있도록 말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음을 안 크로그스타트는
노라의 비밀을 폭로한 편지를 우편함 속에 넣고 가 버린다.


  우편함의 열쇠는 헬머가 가지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노라는
크로그스타트의 협박에 대한 공포감은 사라졌다. 다만 사랑의 기적이 시작되기
전에는 비밀이 폭로되어서는 안 되었다.


  노라로부터 사실을 알게 된 린데 부인은 크로그스타트를 설득하여 그 편지를
철회시키려고 한다. 그녀와 크로그스타트는 어떤 관계가 있는 듯 하였다. 편지는
헬머의 우편함에 이미 들어 있다. 헬머가 우편함을 열려 하자 노라는 타란테라의
춤 연습을 핑계로 그것을 중단시킨다.
  "노라! 당신은 목숨을 걸고 춤추는 것 같아"

 



  -제3막-
  이튿날 밤 2층에서 가장 무도회가 열렸다. 린데 부인은 이 곳에서
크로그스타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크로그스타트와 린데 부인은 똑같은
생활의 파선자이다. 묵은 사랑의 잿더미 속에서 그들의 애정은 다시 타올랐다.
  크로그스타트는 노라의 비밀을 폭로한 편지를 찾아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린데 부인은 이를 말리면서 언제까지나 부부 사이에 그러한 비밀을 감춰 두는
것은 옳지 못하니 이 기회에 알게 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생활의 기쁨을 얻은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밖으로 나간다.
  "아무리 사는 것이 비참할지라도 살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노라의 옆 아파트에서 의사를 개업하고 있는 랑크가 곧잘하는 말이다.
  랑크는 헬머의 옛 친구이다. 노라는 이 옆방 의사와 친히 지내는 터였다. 그는
아버지의 방탕한 사관 생활의 화를 입어 심한 음독 병으로 척추를 상했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생활의 즐거움과는 등을 지고 무덤 속을 향하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행복이라곤 있을 수 없는 그에게 젊고 아름다운 노라는 비참한
생활에 비치는 따뜻하고 귀중한 빛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오늘 밤 노라의 발작적인 타란테라 광무를 보고 죽음의 직전에서도 취할
수 있었다. 랑크는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하여 약속대로 명함에다 검은
십자가를 그려 놓은 후 떠났다.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생활에 시달리면서도 인생의 행로를 발견하여 손을
맞잡는 크로그스타트와 린데 숙명적인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끝까지 감각의
향락을 추구했던 랑크. 이러한 남녀의 무리가 떠난 후 헬머와 노라는 마주
앉았다. 사랑의 기적이 나타나야 할 순서이다.


  헬머는 크로그스타트의 편지를 읽었다. 그러나 노라가 기대하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라! 그대의 몸에 어떠한 위험한 일이 쏟아져 나의 생명과 재산을 내던져서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으며 좋겠어"
  헬머는 자주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편지를 다 읽은 헬머는 노라에게 거짓말쟁이니 위선자니 하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노라에겐 집안 일이나 자식들도 맡겨 둘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체면도 있고 하니 표면상의 부부 관계는 이대로 두고
좋지 못한 이 비밀만은 언제까지나 두 사람 사이에 감춰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적을 믿어오던 노라는 형용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졌다.


  크로그스타트로부터 두 번째 편지가 왔다. 그 편지에는 자기는 다행히 안정된
생활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있었으며 차용 증서까지도 들어 있었다.
그가 오래 전부터 사모하고 있었던 린데 부인이 그의 구혼을 승락함으로써
크로그스타트의 마음을 돌려 놓았던 것이다.


  자신의 명예에만 급급했던 헬머는 금시에 태도가 달라졌다.
  "아아 노라! 이젠 살았어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의 과실도 다 용서해 주지"
  남편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노라의 마음은 무거웠다.
  비겁하고 경박하며 이기적인 남편의 정체는 완전히 폭로된 셈이다. 8년 동안의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는 무의미한 장난이었으며 거짓이었다. 노라는 용서한다는
남편의 말에 대해 쌀쌀하게 응답했다.


  "용서해 줘서 고맙군요"


  노라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는다. 헬머가 뒤따라와 노라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인형의 옷을 벗습니다"


  노라는 간소한 여행복으로 갈아 입은 후 여행용 가방을 들고 나온다. 노라는
남편을 조용히 앉게 한 후 자기의 결의를 침착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오늘까지 8년 동안 나는 당신과 함께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행복한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즐거웠을 뿐입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형을 사랑한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어릴 때는
아버지의 집에서 인형과 같은 딸로 자라 온 것과 같이 당신의 집에 와서는 인형
아내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식들도 또한 우리들의 인형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들은 인형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과 같이 서로
희롱하였을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부부관계이었으며 나는 이제 내가
아내이고 어머니인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당신도 나와 같이 한
인간이라는 것을 믿는 것 뿐입니다. 나는 이제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진정한 인간으로 생활을 시작해야겠습니다"


  노라는 진실한 생활을 찾기 위하여 정든 가정을 버리려는 것이다.
  자기의 의사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으로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그녀의 가슴
속에 처음으로 격렬한 자기 혁명의 폭풍이 불었던 것이다. 이 폭풍 앞에서는
가정이라는 껍질도 남편이나 자식이라는 정을 이어 주는 사슬도 더 이상 아무
의미를 갖지 못했다.


  헬머는 노라가 미치지나 않았냐고 물으며 타일렀으나 노라는 단호히 말한다.
  "나는 오늘 밤처럼 홀가분한 기분에 젖어든 적이 없습니다"
  노라는 10년 간이나 살아온 정든 집을 버리고 천천히 나간다.
  "노라! 노라! 없구나. 그녀는 이제 여기 없어..."
  헬머는 그의 마음 속에 한 가닥 희망이 남아 있는 듯 외친다.
  "가장 경이로운 기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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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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