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인간의 야만성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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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또 다른 면, 야만성

 

흔히 동물의 세계에는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종을 먹이로 취급할 때뿐이고 대부분의 동물이 자신과 같은 종류의 동물을 마구 죽이지 않는다. 암컷이나 먹이를 차지하기 위하여 위협을 하여 또는 싸워 도전자나 침입자를 쫓아버리는 것이 고작이다.

 

여기에 예외적인 동물이 하나 있다. 다른 종의 동물을 마음대로 잡아먹거나 재미로 죽일 뿐만 아니라 자기와 같은 종의 것들도 서슴지 않고 죽이는 그런 잔인한 동물이다. 다른 종의 동물과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들 사이에서도 문자 그대로 약육강식의 법칙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동물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의 생존 양식을 정글의 법칙으로 표현했지만 실은 인간이야말로 정글의 법칙대로 사는 존재이다.

 

그러나 정글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정글의 법칙은 야만의 법칙이다. 야만의 상태에서는 본능과 충동만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런 야만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런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제멋대로의 행동을 규제하는 규범을 마련하고 그런 규범이 제대로 지켜지는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인간들의 이런 규범, 즉 관습이나 법을 노모스(nomos)라고 불렀다. 이 말은 퓌지스(physis), 즉 자연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인간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하여 자연 상태를 벗어나도록 제도를 발전시킨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제도는 무엇보다도 짐승의 그것과 같은 단순한 울부짖음에서 정교한 언어를 발전시켜 의사소통 수단으로 삼고 남의 권리를 인정하게 됨을 말한다. 그리하여 사람간의 문제해결에 있어서 서로에게 해가 되는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공존을 추구하는 평화적인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평화적 방법이란 언어적 방법을 일컫는다. 인간은 언어에 의해서 협상, 타협, 양보, 설득 등 평화로운 문제 해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인간은 이해 관계를 힘에 호소하여 피차 위험한 상태에 떨어지는 일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많은 갈등 관계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규범과 제도가 발달된 상태를 문명화된 상태라고 부른다.

 

고대 희랍인들이 인간 문명의 발달을 노모스의 발전으로 설명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노모스를 잘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도 "악법도 법은 법이다"라고 하며 법에 따라 독배를 마시고 죽은 것이다. 희랍인들이 생각했던 노모스는 군주나 강자가 멋대로 만들거나 없애는 자의적인 법이 아니라, 누구든지 지켜야 하는 천륜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몸은 최고로 문명화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태고적 야만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런 인면수심의 야만인들은 노모스는 모르거나 무시한 채 퓌지스만을 따라 문제를 힘과 살육으로 해결하려 든다. 정글의 법칙만을 좇아 행동하는 이들 야만인들은 남의 인권을 무시하고 언어를 경멸한다.

 

역사적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야만적인 상태를 조정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집권자들은 때때로 더욱 야만스럽다. 인간 역사의 많은 부분이 야만스런 집단이나 권력자의 살육 행위로 얼룩져 있는 것이다. 최고로 문명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에 조차도 집권자들의 대살육은 많이 자행되어 왔다. 반혁명 분자로 낙인 찍어 자신들의 인민을 2천만 명 이상이나 학살하거나 굶어죽게 한 스탈린주의자들, 영구 혁명의 망상 속에서 2천만 명 이상을 반동 분자로 몰아 처형한 모택동주의자들, 인종적 편견으로 6백만의 유태인을 처형한 나치들, 인종적, 종교적 편견에서 3백만 명의 벵갈인들을 학살한 파키스탄 정권, 비공산 정권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자기 종족 160만을 잔인하게 처형한 크메르루즈 캄보디아 공산 정권, 전쟁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살육한 터키 정권, 100만 명의 투씨족을 학살한 르완다의 후투족, 독립을 추구한다 하여 50만 명의 동 티모르인들을 학살한 인도네시아 정부군, 남경 사건에서 30만의 중국 양민과 31운동에서 7만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군, 인종 청소라는 이름으로 20만 명의 회교도인들을 살육한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정권 등은 그런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런 야만스런 인간 살육 행위는 우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1980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의 신군부의 학살 행위가 그것이다. 전두환 일당이 정권욕에 눈이 멀어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것이다. 저들은 저희들의 수하에 있는 군인들로 하여금 민주화를 요구하며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시민들을 곤봉으로 구타하고, 대검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헬리콥터에서 기총소사까지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겨 훈장들을 나누고, 포상하고, 승진했다. 그리고 우리 언론은 그런 그들을 칭송하고 아첨했다.

 

이렇듯 많은 예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인간은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면을 갖는다. 특히 그것이 권력과 관련되었을 때 더욱 그렇다. 인간의 야만성을 극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언어적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영영 멀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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