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인간과 종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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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종교

 

우리는 종교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증명을 좋아하는 속성을 지닌 이성을 가지고는 접근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해서 주체의 믿고자 하는 의지가 종교의 선택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종 종교에 의한 사회적 갈등까지 나타나는 상황을 우리는 심심찮게 보게 된다. 깊은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사회는 더욱 더 다양하고 활발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 사회를 특징 짓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윤리의 부재라는 말과 불확실성이라는 말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교육 전반에 걸친 많은 문제들이 공유하는 대표적인 원인이 바로 윤리적 성찰의 부재 또는 도덕적 성향의 붕괴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종교란 무엇인가

 

삶이란 엄제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종교란 인간 자신에 대한 질문과 인간이 사는 목표와 그 의미를 찾는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 안에서 탄생하였으며, 그러한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종교는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그가 관계하는 우주 그리고 자연과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서 비롯하여 그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으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종교는 다름이 아닌 인간이 자기 자신과 우주에 대하여 질문하는데서 비롯하여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인간적 노력의 총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우주에 관한 의미 있는 질문과 해답은 모두가 종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종교는 인간적인 물음과 탐구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즉 종교는 인간의 생활과 문화의 전역에 걸쳐서 표현되는 인간의 물음이며 관심이며 태도이며 자세인 것이다. 서양의 현대 신학자 중에서 포올 틸리히 같은 사람은 종교는 인간 존재의 한 차원으로서 인간 존재의 전역에 걸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종교는 인간 존재의 전체, 삶의 전부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중세사나 서구의 문화사에 보면 예술이나 자연 과학과 윤리 등은 인간 문화로서 종교와 관련되지 않은 것을 있을 수도 없거니와 인간 문화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포올 틸리히의 유명한 말 가운데 "종교는 문화의 정수이며, 문화는 종교의 표현"이라는 말이 있다. 종교는 인간 생활의 어떤 하나의 부분으로 생각하거나, 없어도 되는 생활 영역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인간 생활의 전체가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실존과 우주에 관한 질문, 그리고 그 답변의 총화라는 것이다. 가장 넓은 의미로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기 이해와 자기 성찰은 떼어놓을 수 없으며, 인간의 문화와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도 없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인간학이나 종교 철학, 그리고 신학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우선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명쾌하게 대답할 수가 없으며, 대답한 사람도 없다. 수세기 동안 숱한 석학들에 의해서 토론되어 왔으나, 결국은 이것은 절대자인 창조주 하나님께서 대답해야 될 것이라고 결론 아닌 결론으로 끝나왔다.

 

오늘날 자연 과학은 첨단을 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복제 인간을 눈앞에 내다보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자연 과학에 대한 경의보다 공포의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런 자연 현상 모두를 분명하게 원인부터 규명한 적이 얼마나 있는가? 결과를 설명하기는 분명하지만 원인 규명은 결국은 철학이나 신학, 결국은 창조주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설명하려면 대상이나 목적은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인간 실존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물질적 세계와 관계를 가지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는 '사회적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이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수세기 전부터 사회학자나 인구학자들이 공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는 내용이다. , 인간은 인간 사회 속에서 '던짐을 받은' 존재이므로, 인간 사회 안에서의 관계를 통하여 인간성을 형성하며 실현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히 이웃을 원하게 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도덕과 종교의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종교는 사회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받아들이는 종교적 관습과 전통을 받아들이는 것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포올 틸리히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과 무력함에 항상 불안하고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유한성과 무상을 느낄 뿐 아니라, 항상 죄의식에 사로잡혀있는 불안한 존재라고 하였다. 이러한 불안에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힘은 '인간다운 인간'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필연적인 종교적 힘, 즉 인간 정신의 승화에서 찾을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종교는 '인간답게'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려는 인간들에게 희망과 사랑으로써 인간의 소중함과 인생의 즐거움과 그리고 인간은 보다 귀중하고 신비와 영원의 세계와 직결되어 있음으로써 인간 생명은 거룩한 것이며,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와 윤리

 

무릇 윤리의 본질은 자율(自律)에 있다. 윤리라는 것은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가 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의 세계에서는 윤리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서만 윤리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윤리라는 것은 인간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증거를 암시한다. 종교가 인간에게만 있는 것처럼 윤리도 인간 사회에서만 있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인간을 부정하는 종교는 있을 수 없으며, 인간의 생활과 관계가 없는 종교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인류의 문화사를 통해 볼 때, 인간이란 생명체의 인격을 무시한 종교는 다 없어졌으며, 종교를 갖지 못한 맹목적인 종족도 살아남지 못했음을 말한다. 종교는 인간이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며 교육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의식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르게 살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교육적 기능을 다하여야 한다고 한다. 혹자는 종교가 그러한 윤리 의식의 개발이라는 교육적 사명을 제외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든 인간의 양심의 소리와 '하늘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을 동일시하여 인간 양심의 개발은 바로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종교와 윤리는 인간의 최고의 선이 무엇이며,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가 무엇인가를 찾을 뿐 아니라 실제의 생활 현장에서 무엇이 정의롭고 옳은 행위인가를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종교라는 말과 신앙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사용한다. 일반적인 윤리학이나 종교 철학에서 논할 때, 석가모니의 설법에 이러한 것들이 있고, 공자나 맹자의 가르침,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강론이 이러이러하였다고 정의하여 가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이보다 우선하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더욱 고심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에 즉, 그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정당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서, 종교와 의무론적 윤리와는 직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 그 자체가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삶의 근본이 되며 삶의 양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하나의 삶의 현장이며 윤리적 행위인 것이다. 동서양의 문화나 삶의 양식을 보면, 한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 바로 삶의 방법을 선택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종교는 생활로써 표현되어야 하며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개인적 양심 생활을 추구하는 것만큼 또한 사회의 정의를 추구한다. 종교는 사회의 복지만을 논하지 않고 사회의 윤리 도덕, 그리고 정의를 논해야 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양심을 논하는 것과 동시에 사회의 구조적인 정의를 논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그 종교는 사회적 사명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종교는 오늘의 윤리적, 도덕적 잘못을 수정하는 노력과 내일의 정당한 삶, 즉 최고의 선을 행하는 삶을 내다보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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